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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04-0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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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4월 0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기초를 세우라!
본 문 : 고린도전서 3:1-23

 

 오승주 목사

 

- 어린 아이를 대함과 같이 하노라_고린도전서3:1-5

 

오늘 3장은 지난 고린도전서 1,2장 설교에 이어서 연결된 설교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고 또 고린도전서, 후서 그리고 고린도교회를 이해하고 오늘 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하면 건강한 신앙생활, 건강한 교회를 세워깔까 했을 때 아주 중요한 본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1절에 보니까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_고린도전서 3:1

 

제가 고린도전서 3장을 보면서 바울이 진짜 세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성도들에게 목회자들이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네가 수준이 떨어져서 신령한 것을 말 못할 것 같다. 내가 너를 어린아이 취급, 육신에 속한 자 취급해서 이야기 할 것이니 잘 들어. 지금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분 나쁘시죠? 목회자들은 그렇게 잘 말을 하지 못합니다. 대부분 장로님이든, 권사님이든 신령한 자, 영에 속한 자처럼 대화를 하는데 사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는 오픈되어 있어야 하고 정직해야 하고 신앙이 진실해야 성장할 수 있는데도. 바울은 오늘 고린도 성도들에게 아주 리얼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번역이 이렇게 되어서 그렇지 원문에는 굉장히 리얼하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네가 수준이 안 되어서 수준 높은 영적인 이야기를 말 할 수 없어서, 네가 어린아이처럼 육에 속한 자라고 생각하고 편지를 쓸 때니 잘 들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후서가 굉장히 평이체로 쓰여 있고 일반인들이 다 이해할 수 있는 편지 단어들로 쓰여 있습니다. 로마서, 다른 바울의 서신하고 글체가 다릅니다. 편지를 굉장히 풀어서 쓴 것입니다. 원래 바울은 풀어서 잘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서는 굉장히 풀어서 이해가 되도록 성경을 썼습니다.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같은 사람에게 말하듯이 말한다고 했는데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다 어른입니다. 교회도 설립이 되었고 바울이 굉장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교회를 세운 곳인데 심지어 아볼로라는 사람이 와서 교회에서 양육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적으로 숫자가 많지 않지만 그 당시에 교회의 모습을 갖춘 몇 교회 중의 교회이기 때문에 굉장히 자부심도 많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영적인 신령한 것을 말해 줄 수 없어.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는 본문을 보면서 되게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오목사가 식사시간에 식사하는데 다 돈가스를 썰고 있든지 냉면을 먹고 있든지 해야 하는데 제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젖병을 꺼내서 윤빈이도 안 먹는 젖병을 꺼내서 젖을 빠는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식사시간에 어른이 젖병을 빨고 있다면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교회 안에서 중직자인데 혹은 목회자인데 젖병 물고 있는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1장, 2장에 나와 있습니다. 서로 싸우고 파를 가르고. 이것은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젖병 물고 있는 모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파를 가르고 싸우고 시기하고 분쟁하고 이간질하고. 그건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젖병 물고 있는 모습으로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3절-4절에 더 심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여전히 시기와 분쟁이 있기 때문에 육신에 속한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_고린도전서3:3-4

 

여러분 육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인간의 방식대로 사는 사람들. 육에 속한 사람은 주석에 보니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야 만족하는 사람. 이것을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메시지이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에 그대로 번역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을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야 만족하는 사람이다 라고 성경을 써놓았습니다. 맞는 번역입니다. 이것이 정확한 번역입니다. 육에 속하다 이러면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야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어린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른들 중에서도 나이가 들었지만 또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영적으로도 어린아이 같은 신앙생활을 대부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야 만족이 되는 사람. 여러분, 우리는 영적으로 어른이신가요? 만약에 영적으로 어른이 아니고 어린 아이라면, 육에 속한 사람이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야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분들이 우리 교회에서 지도자가 되고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쉽게 말하면 우리 교회 초등부 아이들이, 유치부 아이들이 교회의 당회를 하고 교회를 이끌어가고 중요한 결정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큰일 날 것입니다. 물론 순수한 마음으로 교회를 더 잘 이끌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설교 준비하면서 해봤지만. 초등부 아이들이 교회 당회를 이끌어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런 사람이 앞에서 설교를 하고 목회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심방을 하고. 정말 큰일 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들이 목회자들 모임에 가도 이런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어린아이인데 맡고 있는 책임은 중한 것입니다. 엄청 많습니다. 저희 노회에 목회자들께서 코로나가 끝나서 다시 뭐가 발동하셨냐면, 놀러가는 것. 목회자들이 교역자 수련회라는 이름으로 매년 봄, 가을에 놀러 가십니다. 제가 노회에 속해서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개척교회 하는데 돈도 상당히 내야하고 또 시간도 3-4일 빼야 하고 갈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에는 학교를 다니니까 아예 못 가는데 전화를 4통 받았습니다. 네가 지금 이걸 같이 우리가 밥도 먹고 같이. 사실 제가 가서 보면 좋은 문화가 아닙니다. 그렇게 여유가 있지가 않는데. 제 시간표가 하루하루가 벅차고 아이들 키우는 것도 벅차고 심방하는 것도 벅찬데. 그분들은 연세가 있어서 그렇게 해도 괜찮은데. 제가 못 가는 대신에 비용은 드리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말았는데 제가 무슨 마음이 드냐면 참 어린아이와 같다.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만족이 되는. 그런 분들이 노회를 이끌어가고 계시고. 제가 그런 부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지금 그럴 때인가? 코로나로 저희 노회에 교회 3개가 없어졌습니다. 목사님들 20-30명 놀러갈 돈이면 교회 하나는 세울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때인가? 이 어려울 때에. 어떤 교회들은 사라지고 있는데. 월세를 내지 못해서 집으로 자택으로 들어가는 분들도 계시는데, 천만 원, 이천만 원 예산을 들여서 거제도 놀러갈 때인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물론 놀 건 놀고 할 건 해야 합니다. 그걸 구분 못하는 제가 아닌데 그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저는 현재 이런 어려움이 우리나라 정치나 사회적으로도 비슷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겉은 어른인데 정치하시는 분들이 사회를 이루는 계시는 리더십들이 속은 어린 아이와 같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야 만족하는 분들. 그래서 사회가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요즘 나와 의견이 다르면 적인 세상을 만들어버렸습니다. 나와 의견이 당연히 다를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 어떻게 의견이 다 똑같나요? 우리가 공산국가인가요? 우리나라가 공산당입니까. 의견이 전부 똑같게. 그런데 의견이 다르면 의견이 다른 데로 친구가 될 수 있고 같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속상합니다. 그래서 갈등이 너무 심합니다. 이제는 지역 간의 갈등이 아니라 세대 간의 갈등이 너무 심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다 만들었나요?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이 다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사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교회는 그렇게 하면 안 되죠. 교회는 바르게 가야합니다. 그런데 교회마저도 고린도교회처럼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가정에도 문제가 오고 나라에도 위기가 오고 자녀들 세대에도 큰 어려움이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싸우고 갈등하고 분쟁하면 신앙이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될까요? 믿음이 자녀들에게 온전히 내려갈까요? 도대체 왜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되는 것일까? 왜 그럴까?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 밝히고 있습니다.

 

- 어린아이, 기초를 다시 세우라_고린도전서3:10-15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_고린도전서3:10-15

 

이게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초(터)를 세워주셨는데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반석이십니다. 교회 세울 때 우리가 머릿돌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적인 건 잘 모르겠습니다. 성경적인 것은 우리 인생을 이야기 하는 건데 교회를 두고. 머릿돌을 세우십니다. 기초. 여러분 이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내 안에 계시거나 예수님을 실제로 믿고 바라본다면 어린아이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실제로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렇게 할 수 있나? 분쟁하고 싸우고 남 욕하고 할 수 있나요? 주님이 내 마음에 계시고 내 삶 가운데 함께 계시다고 믿는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제적인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전 절인 6-8절에 뭐라고 하냐면. 바울이 실제로 고린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양육하러 설교하러 못가니까 아볼로가 대부분 고린도교회에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 그런데 너희들을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심는 이도 물주는 사람도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신앙을 주고 너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나도 은혜로 나도 그렇게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값없이 너희들에게 이런 사역을 하는 것이야. 그래서 나나 아볼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정도는 우리가 이해하고 구분할 수 있죠? 아마 상식이 있는 분이라면 이 정도는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분은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다 하시면 우리가 심을 필요 있냐. 우리가 물 줄 필요가 있냐. 그래서 어떤 분들은 교회에서 아무 사역도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구원하신다면 우리가 왜 복음을 전해야 하고 가서 사랑해주어야 하고 왜 봉사해야 하고 왜 그 사람 전도하기 위해서 우리가 애써야 하냐. 하나님이 다 하신다며. 이렇게 초딩처럼 이야기하고 계신 분이 계십니다. 이것은 구분이 되시죠 여러분? 오직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만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11절에 보니까 다른 기초를 놓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기초 위에 우리가 공적을 쌓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적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반석이신데 반석 위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세우십니다. 구원이라는 것을 세우십니다. 그런데 구원이 어떤 사람은 단단한 보석이고 금이나 은인데 어떤 사람은 풀이나 짚이나. 이게 왜 중요하냐. 우리가 아기 돼지 삼형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기 돼지 삼형제가 편하게 놀고 먹으려고 짚으로 집을 짓는데 늑대가 와서 후 부니 다 날아가고. 다 알 것입니다. 지금 비슷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우리의 신앙을 단단하게 금이나 은이나 보석처럼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이 무엇으로 우리를 심판하시냐면 무엇으로 확인하시고 테스트하시고 검증하시냐면 불로 검증하십니다. 다 태운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짚이나 풀은 다 타버리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무엇만 남아있을까요? 단단한 것들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기초라고 합니다. 그것을 신앙의 뼈대라고 합니다. 단단한 것은 남아있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하나님 앞에 그 공적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상을 받고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는다고 성경에는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석 같은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석 같은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요?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인 교회, 사람의 노력이나 비전이나 열심으로 세워진 교회는 지푸라기 같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풀 같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로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1948년은 공산당이 중국을 집권했던 해입니다. 중국이 공산당이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시나요? 그 전에 중국은 평양의 대부흥운동 못지않게 중국에 수많은 해외 선교사들이 교회를 세우고 정말 활발하게 찰스 스펄전이나 우리가 내노라 하는 다 선교사들이 중국 땅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첫 번째 했던 일이 뭐죠? 당연히 공산당은 교회를 싫어할 수밖에 없죠, 신이 없다고 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선교사들을 일제히 추방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건물을 다 불태웠습니다. 상징적으로. 그리고 모든 성경책을 압수했습니다. 1948년에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중국이 공산당에게 장악되던 해입니다. 그런데 뭔가 모범을 보여야하니 특히 교회에 대해서 엄청난 핍박을 가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교회에는 선교사도 없고 심지어 목사도 다 감옥에 갔고 예배당도 불타서 사라졌습니다. 소망이 아예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더 부흥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지하교회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가정교회입니다. 왜 그 어려운 시기에 교회가 더 부흥했느냐. 원래 예수님만 바라보던 사람들입니다. 건물, 목사, 선교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예수님만 바라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불같은 시험을 다 통과했습니다.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불 시험을 받고 견딜 수 있는지, 우리 교회는 견딜 수 있을까. 가스펠교회는 견딜 수 있을까.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오늘 바울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기초를 준비하라고 합니다. 너희의 기초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가. 그 기초로 성숙한 신앙생활을 단단한 신앙생활을 쌓고 있는가. 그런데 지금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그 기초가 바울이고 아볼로이고 파 따지고 소속 따지고 학교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세상의 것들을 가지고 와서 교회에서 어디 출신이신지 따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세상의 습관들을 가지고 와서 교회에서도 그런 것을 따지는 것입니다. 너 교회 몇 년도에 등록했어? 이 교회 몇 년 다녔어? 이런 것을 따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코미디 같지 않습니까?

 

-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_고린도전서3:16-17

 

16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기초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면서 17절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_고린도전서3:16-17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다. 16절 말씀만 은혜 되어서 암송하고 듣고 계시지만 우리가 암송해야 할 것은 17절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이런 것을 암송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전혀 암송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성령이 계시는 것은 좋은데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멸함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듣고 배우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하나요? 기복 신앙. 그것을 축복 설교. 그것을 세속화된 종교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성전을 파괴하는 것인가.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이 멸하신다고 하셨는데. 여러분 너무 잘 아시죠?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사울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러 다녔습니다. 자기는 유대인으로써 그 당시에 이단이었던 예수님을 싫어했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싫어했기 때문에 핍박하러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에서 주님이 사울을 직접 만나주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사울이 도대체 누구십니까. 눈도 못 뜨고 바닥에 엎드려서. 예수님이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그때 사울이 항변합니다. 저는 주님을 만나본 적도 없고 누구신지도 모르는데 제가 주님을 언제 핍박했습니까. 네가 교회를 핍박했잖아. 네가 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잖아. 무슨 말인가요? 예수님은 교회와 본인이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파도 나뉘고 싸우기도 하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멸하시니라. 너희 성전을 더럽히면 멸하시리라. 주의하고 조심하고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늘 성령 충만을 받도록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도록 우리 공동체 가운데 계시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게 예수님 영접할 때 쓰는 성경 구절이 아니고 하나님께 멸함 받지 않도록 성전을 더럽히지 않도록 성령을 늘 우리 안에 모시고 있고 우리 공동체 안에 늘 성령이 계시는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기초로 우리가 단단히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내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교회를 건강하게 섬길 수 있고 또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져야 내 자녀들에게 주님을 믿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선순환이 됩니다. 교회와 나는 하나입니다. 내가 희생하는 것 같지만 결국 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우리 자녀들은 신앙생활을 하고 또 우리는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 같지만 또 누군가는 봉사로 인해 구원을 받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그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다들 교만했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나는 영적으로 매우 성숙한 사람이야 라고 대부분이 생각을 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냐. 나는 바울파야. 나는 바울과 연락하는 사람이야. 아볼로가 고린도교회를 잠시 목회를 했으니까 나는 아볼로파야. 나는 예수님의 직속 제자인 베드로와 연락하는 사람이야. 나는 되게 성숙해. 그런데 바울은 영적으로 성숙하다고 하는 사람을 보고 너희들에게 신령한 것을 말도 못하겠다. 너희들에게 단단한 음식을 줄 수가 없네. 아주 어린아이와 같고 미성숙한 존재고. 이렇게 이야기하니 얼마나 웃깁니까.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자기는 유혹도 없고 마귀의 공격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목사들이. 나는 목사니까 유혹도 없고 마귀가 나를 공격할 수도 없고 나를 무너뜨릴 수 없고 넘어뜨릴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 전도자였던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냐면 너희가 섰다하면 무너질까 주의해라. 자기가 그러니까. 바울이 유혹받을 시간이 어디 있나요? 매일 서신서를 썼고 복음을 전했고 감옥에 있었고 매 맞았고. 그런데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하나요? 나를 늘 넘어뜨리려 하는 유혹하는 악한 영, 날마다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악한 영, 불화살을 쏘는 마귀 사단을 이야기했습니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우리는 성숙한 존재가 맞습니다. 목회자니까 성숙한 존재이고 장로님, 권사님이니까 성숙한 신앙인이 맞으니까 직분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도 없고 세상의 유혹도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위험하나요? 우리가 하나님인가요?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육을 입고 있으니까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도 육을 입고 있으니까 화가 나고 시기심도 생기고 욕망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이 다른 한 가지는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시기심도 일어나지만 화도 나지만 욕망도 생기지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점 한 가지입니다. 밥 안준다고 배고프다고 우는 윤빈이와 저와 다른 점은 저도 배고프지만 울지 않습니다. 기다리고 밥 차려서 먹지.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인 사람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니까 자기가 원하는 것만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 옳다고 맞다고 생각을 해버리니까 맨날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성숙한 사람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배려하고 섬깁니다. 왜? 주님이 기초인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이고 그 위에 단단하게 믿음이 있고 성령이 내 안에 계셔서 성령을 의지한 사람은 연약한 성도에게 아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도 나와 같이 예수님을 알도록 섬깁니다. 이 사람을 가르쳐서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러려고 합니다. 나는 너보다 많이 알아. 이런 식으로. 그런데 진짜 알면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어린 초등부 아이들, 유치부 아이들 앉혀놓고 너희 왜 그것도 몰라. 나는 아는데. 얼마나 그 아이들이 나를 볼 때 유치하다고 말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어른과 아이의 차이입니다. 아이들은 한 살만 많아도 두 살만 너는 그것도 모르냐 라고 하지만 어른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보면 영적인 것을 통째로 부인하는 태도가 교회 안에 생겨나고 있습니다. 단순히 무관심 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 저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고 있는데 그것을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이 아닙니다. 기도하면 저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영적인 개념 자체가 없어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존재에 대한 믿음 자체가 사라져버린 시대입니다. 오미크론, 저희 교회 성도들 대다수 걸리고 계십니다. 지금도 격리중인 분이 계십니다. 어제도 통화했습니다. 목사님, 목이 너무 아파요, 물도 못 넘기겠어요. 여러분 그게 뭐에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우리는 오미크론을 어디서 걸렸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걸 예측 하는 거지 눈에 보이지 않고 확인할 방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미크론이 걸렸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게 뭐에요? 증상이 있습니다. 목이 아프고 열이 나는 것입니다. 증상으로 이 사람은 바이러스와 접촉을 했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증상입니다. 죄도 마차간가지입니다. 죄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죄에 대해서 스스로 인식 자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증상으로 압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무섭단 말입니다. 오미크론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주의하고 있습니다. 마스크도 쓰고 약도 먹고 백신도 맞고 많은 것들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요? 크리스천들에게도 성경은 다른 책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여러분 성경 귀히 여기고 계십니까? 사람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을 거룩한 책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증상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 증상이 무엇이냐. 성경은 회개라고 이야기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나타나는 증상이 있는데 그것은 회개입니다. 또 하나의 증상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예배드리고 찬양 부르고 말씀 듣고 그것이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증상입니다. 예배드리는 자체가. 성경은 말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구나. 그것이 성령이 내 안에 계시다는 증상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주목을 해야 합니다. 심방을 갔는데 권사님이 그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자기가 힘든 시기에는 주님과 멀어졌던 시기에는 계속 육신적인 것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말씀도 들리지 않고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결책만 찾으러 다니고 그러나 어느 날 말씀을 들으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육신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고 예배드리지 않고? 순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말씀이 들리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리는데 그 전에는 말씀을 들어도 기도해라 성경 읽어라 해도 수도 없이 들었는데 그것을 멸시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멸시를 주님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이 사도바울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네가 나 핍박했잖아. 우리가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예배드리지 않는 것은 주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자리에 갔더니 주님을 의식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살았더니 삶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문제는 어떤 문제인가요? 신학적인 문제인가요? 여러분 솔직하게 말씀해보세요. 여기에 계신 분 중에 칭의에 대해서 올바르게 설명하실 분이 계시나요? 전도사님들 완벽하게 알고 계세요? 신학교 7년 다녔으니까 알고 계시나요? 구속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구속 이야기하는데. 성화에 대해서 우리가 잘 이해하고 있나요? 4월달은 부활의 날입니다. 부활을 제대로 이해하고 계시나요? 신학적으로 말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 있나요? 그런데 우리는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아시나요? 신학적으로 논쟁을 합니다. 되게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신학적으로 말이야. 이러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칭의가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어떤 분은 성경이 문제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개역개정을 읽고 있고 쉬운 성경으로 성경읽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쉬운 성경은 성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흠정역 성경만 진짜 성경이야 이런 분들도 계십니다. 그것 아니면 성경이 다 틀렸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구분할 수 있으시나요? 개역개정, 쉬운성경, 흥정역 성경 구분 하실 수 있으세요? 과연 우리나라 목사가 몇 명이나 성경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신천지 성경과도 구분하지 못해서 가져다가 인용하는 목사들이 천지에 널렸는데. 제 말은 정말 신학이 문제일까요? 성경책 뭐 읽냐가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의 마음이고 사람 마음에 있는 악이 문제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죄가 문제인 것입니다. 악이 문제입니다. 말이나 용어나 시스템이 아니라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지금 고린도교회가 착각해도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굉장히 수준 높은 것처럼. 나는 아볼로 파야. 나는 게바 파야. 그러니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성령이 계시는 것을 알고 있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고 있느냐. 우리 문제는 지금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고 말이나 용어의 문제가 아닙니다. 용어를 좋은 것을 쓴다고 삶이 변화가 되나요? 우리가 설교시간에 좋은 용어, 멋있는 용어를 쓰면 성령 충만한 것인가요? 우리의 문제들이 해결됩니까? 우리 가정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우리 자녀들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사무치도록 절실하게 느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방법 및 조직, 모든 요령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구할 것은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장로님, 권사님 성령으로 충만해 지시길 원합니다.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하라고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간절히 구하라고 기도하라고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세상의 문제가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능력은 그보다 무한히 더 크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변증이 아니며 철학이나 과학이나 종교나 현대의 모든 기술과 좀 더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사람의 영혼 안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깨뜨리고 부수고 낮춰서 새롭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성령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죄에서 멀어지게 하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 우리가 칭의가 되고 성화가 되는 것. 그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여놓은 신학의 그런 것들이 될 수 있는 것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던 사울처럼 우리 역시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그 능력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해야 합니다. 교회가 다시 그런 믿음의 교회로 바뀌어야 하고 우리의 신앙도 그런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사도바울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 자기 지혜로 신앙생활하지 말라_고린도전서3:18-23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_고린도전서3:18

 

어려운 말입니다. 아마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말을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알아들었으니 고린도교회가 하나님 앞에 변화되고 쓰임 받았을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어리석은 자가 되라고 합니다. 바보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데 바보가 되라고 합니다. 신앙생활 하는데 바보가 되라고 합니다. 자기 지혜로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것을 가지고 있으면 성경과 성령이 주시는 것을 못 받으니까. 와이프와 한빈이가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습니다. 한빈이가 엄마한테 대드는 것입니다. 이게 맞다고. 제가 가서 보니 엄마가 한숨 쉬고 있었습니다. 한빈이가 틀렸습니다. 자기의 수준에는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엄마한테 대들고 있으니 엄마도 화가 나서 서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가지고 와서 이것이 칭의라고. 이것이 성화라고. 이것이 복음이라고. 내 지혜를 가지고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바울에게 배웠어. 나는 아볼로에게 배웠어. 바울이 이야기합니다. 나 너희에게 가르쳐 준 것이 그것이 아닌데. 십자가의 도를 가르쳐 주었는데. 그래서 어리석은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100%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어리석다는 표현은. 이게 고린도교회에 경고하는 것 같지만 오늘 날 우리 교회들에게 경고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저는 성령의 역사가 언제 일어날까 생각해보니 제 사역이나 삶을 보면서 깨닫는 것은, 또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곰곰이 살펴보면 우리의 신앙이 차원이 높고 고귀하고 너무 수준이 높습니다. 그럴 때 역사가 일어나는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선교단체나 복음운동 했던 단체들이 처음에는 어떻게 시작하나요? 다 일차원적으로 신앙을 시작합니다. 같이 모여서 기도하고 성령 구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다 일차원적인데 단체가 커지고 열매가 많아지면 일차원적인 기초가 사라지고 거기에 단어들, 시스템들, 비전들, 미션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때부터 뭐가 사라지죠? 성령께서 역사하는 것이 사라집니다. 거의 그렇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단체도 그렇습니다. 왜 변질될까? 왜 변질이 되냐면 자기들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서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변질이 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일차원적이어야 합니다.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님께서 자기 교회 장로님, 권사님들 은퇴식하고 은퇴자들 예배드리는데 강의하러 가시는데. 제가 은퇴자들에게 은퇴하신 목사님이 무슨 말을 하시는지 들어보았는데 이 분을 제가 원래 존경했지만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분입니다. 무엇이라 말씀하셨는지 아시나요? 여러분, 평생 교회를 섬기고 헌신했지 않느냐. 평생 심방하고 교회 청소하고 아이들 밥해서 먹이고 교회에서 당회하고 교사로 헌신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제 은퇴해서 섭섭하죠? 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아직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쫓겨난 것 같고 밀려난 것 같고. 은퇴를 하면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무엇이라고 그러시냐면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바쁠 때에는 주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고 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은퇴라는 좋은 제도를 주셔서 이제 천국가기 전까지 하나님을 가까이 하다가 가십시다.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도 해주고 하다가 우리 여유가 없어서 자녀들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은퇴는 선물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저는 참 좋은 목사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단은 은퇴제도가 없습니다. 아시죠. 그것이 타락하고 변질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은퇴를 해라 안해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진짜 믿는 것입니다. 좋은 후배들을 세우고 자녀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헌신하고. 저는 너무 감동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가까이 하다가 천국을 가야지 일을 하다가 천국에 가면 되겠냐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렇게 일차원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초입니다. 그 기초 위에 우리가 젊은 때에는 특별한 사역도 할 수 있습니다. 세계를 복음화하고 저는 네팔도 가야하고 코로나 끝나면 해야 할 사역이 많습니다. 뛰어야 합니다. 특별한 사역을 해야 합니다. 특별한 사역을 한다고 해서 기초를 잃어버리면 어느새 사역이 변질되고 무너져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특별한 사역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일차원적 신앙이 단단히 기초로 깔려있어야 합니다. 예배하는 것, 성경 읽는 것, 주님을 사랑하는 것. 다 일차원적인 것입니다. 기도 하는 것. 지금은 많은 성도들이 너무 많이 압니다. 전 세계를 구할 것 같은 메시지가 머릿속에 있는데 일차원적인 신앙생활을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무관심합니다. 교회 청소하는 것. 그것은 신앙이 아닌가요?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십니다. 연약한 성도를 돌보는 것. 그것은 대단한 사역이 아니고 하찮은 것이니까 너희들이 해. 나는 대단한 것을 해야 해. 전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이 될 거야. 그러면서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어른들을 공경하고 섬기고 부모를 공경하고 그런 것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일까요? 이 기초가 우리에게 세워져야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 기초가 세워지지 않으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시험이 통과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불시험이 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십시오. 성경에서 중요한 사역자를 세울 때 늘 확인하고 검증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장로를 세우거나 목회자를 세울 때 늘 확인하는 것이 그 사람을 무엇을 봅니까? 저 사람 메시지 잘한다. 저 사람 신령하다. 그런 것을 봅니까? 아닙니다. 가정을 잘 돌보는지 봅니다. 왜 성경에서 그런 것을 볼까요? 성경은 대단한 사역을 잘하는 사람을 사역자로 세우지 왜 그런 것을 볼까요? 가정을 잘 돌보느냐. 그 사람의 됨됨이가 괜찮은가. 그런 것을 봅니다. 정말 교회를 사랑하고 잘 섬기고 있는가. 그런 것을 봅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그러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가정에 임하실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축복받고 싶습니까? 큰 사역자 되고 싶으세요? 그러면 집안 청소부터 하세요. 이렇게 설교하셨습니다. 아주 뼈있는 메시지입니다. 얼마나 우리가 교만한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멀어져 있는지. 정말 방청소 하라는 말일까요? 그 날 설교 본문이 고린도전서 3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마음 청소부터 하라는 말입니다. 자기의 지혜로 신앙생활을 하면 큰일 납니다. 자기 지혜로 신앙생활하지 말라고 사도바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요? 예수 그리스도로. 오승주 목사를 바라보지 마세요. 그 어떤 목사나 사역자를 바라보지 마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신앙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이 소멸되거나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의 신앙이 지푸라기 같은 신앙이라면 하나님은 우리를 멸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노력과 수고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과 수고는 헛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집안에 박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겸손하라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기도하는 일만이 절대적인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로소 부흥이라는 것에 관심도 생기고 영적인 것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지 눈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맨날 싸우던 고린도교회가 나중에 로마를 향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엄청 헌신하고 쓰임 받았던 고린도교회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진짜 우리가 성령이 충만하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많은 것들을 맡겨줄 것입니다. 그런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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