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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05-08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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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08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주의 일을 염려하고 살아가는 가
본 문 : 고린도전서 7:25-40

 

 오승주 목사

 

저는 교회를 소개해달라는 연락을 종종 받습니다. 목사님 어느 지역에 교회를 소개해주세요 이렇게 연락을 받았을 때 어떤 교회를 소개하면 좋으실 것 같으세요?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물론 행복을 주는 교회,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교회. 다 그런 교회를 많이 찾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정말 선택해야 한다면 나에게 행복을 주는 교회인가 아니면 나의 믿음을 더 강하게 해주는 교회인가. 행복을 주는 교회는 다 이런 교회들입니다. 병을 낫게 해준다든지 가난에서 벗어나서 부유하게 해준다던지 복을 받게 해준다던지. 보통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실패하고 주저앉은 사람에게 소망을 주고 희망을 주는 교회가 있다면 너무 좋을 것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심리를 하나님이 잘 하시고 예수님을 보내시면서 이사야 말씀에 가나한 자에게 기쁨을 병든 자에게 고침을 갇히고 눌린 자에게 자유를 마음에 슬픔가진 자에게 위로를 주려고 아들을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전 부 우리 마음에 행복, 복을 받기를 마음이 본질적으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마음을 나무라지는 않으십니다. 그런데 한동안 뜨거웠던 영적인 부흥기를 지나서 미국과 한국에 이런 메시지들이 유행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조엘 오스틴 목사 같은 분들인데. 하나님께 기도하면 풍성히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면 너희가 헌신하면 하나님이 응답해주신다. 복을 받기를 원하면 복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어라. 치유받기를 원하고 응답받기를 원하면 예수님을 믿어라. 라고 해서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교회에 예배 1회당 3-4만 명씩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몰렸는지 모릅니다. 실제 증거들도 많았습니다. 예수님 믿고 부자 되고 잘 되고 또 그런 것만 간증을 세웁니다. 또 미국의 덴버 시에 있는 어떤 교회는 목사님이 목회를 잘하시다가 그런 영향을 받아서 교회 이름을 행복 교회로 바꿔버렸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갑자기 부흥을 하였습니다. 교회 이름을 바꾸고 메시지도 행복을 위해서 설교를 하다 보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덴버의 가장 큰 몰을 교회가 샀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몰은 이마트 이 정도인데 미국에 있는 몰은 그런 게 아닙니다. 얼마나 크고 거대한지. 교회가 부흥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교회의 역사와 흐름들을 보면서 아 맞아, 저런 것도 필요하지, 가난한 자에게 부유함을 주고 희망을 주고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고 슬픈 자에게 위로를 주고 필요하지. 그런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목적이 소원 성취, 행복을 위해서 나오는 것에 머물러 버린다면 우리는 평생 기독교의 본질, 신앙생활의 본질을 절대 찾지 못합니다. C.S. 루이스가 이야기 했습니다 자기는 행복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행복을 위해서는 와인 한 병이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좋은 와인 하나만 있으면 행복을 얻을 수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축구 클럽에 가서 응원하면 그런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굳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기독교를 찾는다면 나는 기독교를 추천하지 않겠다. 좋은 와인을 한 병을 추천하고 가지면 스포츠를 가지고 응원하는 팀을 가지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C.S. 루이스가 이야기 했습니다. 굉장히 일리 있는 말입니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 교회에 온다면 세상에 행복을 줄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좋은 음식도 있고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는 것도 있고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있고 재산을 모으는 것, 자녀를 잘 키워서 보람을 얻는 것. 수많은 행복이 세상에 다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에게 기독교를 추천할 필요가 있나 라고 C.S. 루이스가 이야기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그 이상을 가진 종교라는 것입니다. 저는 C.S. 루이스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도 포함하지만 진짜 본질은 거룩한 강자를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C.S. 루이스의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임 받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 교회에 가는 것이지. 행복이 교회의 낮은 수준의 목적이라면 교회의 높은 수준의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C.S. 루이스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백성이 되어 무엇을 하느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우리 가스펠 교회가 거룩한 강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것 때문에 저의 삶과 성도들의 삶이 치열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제가 그런 치열한 삶을 살고 있어서 저의 답답한 과정을 설교를 통해서 전해 듣기 때문에 괴로울 수도 있겠습니다. 괴롭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분명한 한 가지는 우리 교회가 가는 길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우리 교회가 가야할 길입니다. 거룩한 길. 제가 이번 주에 가스펠 편지를 쓴 것처럼 영광스런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원칙을 결코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처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는 원칙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를 설교하면서 저도 많이 괴롭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삶을 말씀 앞에 세워야 합니다. 직면해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가슴에 양심에 손을 얻고 생각해보세요. 미국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 100% 원고 설교를 했습니다. 원고설교를 적는 데만 4시간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등이, 빛이 없으니까 강단에 촛불을 올려놓고 거기서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여러분과 아이 컨택 하면서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 원고를 그냥 읽으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원고를 읽는 시간만 평균적으로 90-100분을 소요 했습니다. 그의 설교를 처음에는 성도들이 너무 싫어했다고 합니다. 설교의 서론은 하나님의 진노를 설명하면서 설교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지옥이 여러분을 향해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 종일 죄를 짓고 저녁에 잠을 잘 때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지금도 여러분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에드워드 설교의 초입부에 동일하게 썼던 원고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설교를 90분이나 읽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성도들이 교회를 많이 떠났다고 합니다. 지루하고 늘 지옥에 대해서 죄의 회개에 대한 설교를 하니까. 여러분 누가 이런 교회를 갑니까. 누가 이런 설교를 듣고 하겠습니까. 전부 다 잘 먹고 잘 살자. 축복받자. 그런 교회로 성도들이 다 몰려 갈 것입니다. 목사님이 자기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의심하는 것도 비참한 일이고 성도들도 목사님들에게 자기의 믿음을 의심받는 것도 비참한 일이 아닙니까. 에드워드는 자기 교회 성도들을 늘 의심했다고 합니다. 정말로 기도하고 있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고 있나. 죄 안 짓고 있나. 늘 설교 때 그것을 책망하고 이야기하고.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그 설교와 그 예배에 임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 교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회개하고 예배 시간마다 눈물바다 되고 가정이 다시 회복이 되고 술을 끊고 음란을 끊고 세속적인 삶을 회개하고 돌이키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강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고린도 교회 상황도 지난주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고린도 교회에서 무엇을 질문했냐면 처녀와 과부에 대한 질문을 바울에게 했습니다. 바울의 태도를 보려고 합니다.

 

-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_고린도전서7:25-31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_고린도전서7:25 

 

처녀에 대해서는 구약에 어떤 말씀도 없는 것입니다. 처녀가 시집을 가야한다 안 가야한다 말이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처녀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시집을 가야한다고 생각하지 있지 처녀가 시집을 가야하나 안 가야하나 물어 봤을 때에 하나님께 받은 말씀 계명이 없다고 사도바울이 솔직히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구약의 말씀에 벗어나는 상황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특히 고린도라는 지역과 고린도 교회에서는 구약의 말씀으로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타락했고 온전치 못했던 상황들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 말씀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상황들과 환경들이 진짜 많이 우리에게 직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에 우리는 말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은 구약 말씀이 처녀에 대해서 정확하게 정답으로 주신 말씀이 없지만 이 말씀의 본질을 가지고 이해하고 너희들에게 말할게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오늘처럼 어떤 상황에서 그 선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인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택인지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말씀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 기준을 잃지 않았습니다. 항상 그래서 그리스도의 종 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가 하나님께 받은 계명이 이것인데 하나님께 받은 계명은 없지만 내가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의 구원을 기준삼아 너희에게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환난의 때에 결혼 적령기에 있는 이들이 결혼하는 것이 마땅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합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_고린도전서7:26

 

이 임박한 환난에 대해서 주석을 보니 여러 가지 해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종말론적인 해석을 하는 분들도 계시고 아니면 그 당시의 로마의 핍박으로 해석하는 분이 계시고. 그런데 바울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핍박이라는 환난도 이야기했지만 또 하나는 너희들이 짓고 있는 죄를 보니까 곧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 같아 라는 곧 임박한 환난을 해석했습니다. 그 환난의 의미는 어떤 주석을 보니 너희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는 것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는 환난 이러면 지진이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나고 세상이 곧 무너질 것 같고 코로나가 터지는 것이 환난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고 지옥을 향해서 가고 있는 무감각한 영적인 삶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이 없이 살아가는 그 삶이 환난이라고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얽매여서 감정에 얽매여서 우리의 이해관계에 얽매여서 기쁨으로 천국을 준비하지 않는 삶이 환난이라고 바울은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환난들 때문에 결혼을 해야 할까. 하지 않아야 할까. 바울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냐면 당연히 결혼을 하는 것, 하지 않는 것, 너희들에게 말해 줄 수 없어.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그 기준이 무엇이냐가 중요해. 결혼을 하나, 안하나의 기준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면 그렇기 때문에 결혼해야하는 것이라면 결혼을 해야 해.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야. 그러니까 환난 때문에 닥쳐올 무엇 때문에 결혼을 하냐, 안하냐가 진짜 진심으로 나에게 하는 질문인거야? 아니지? 그러면서 32절부터 보면

 

-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_고린도전서7:32-35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_고린도전서7:32-35

 

바울은 그런 질문을 하는 처녀, 총각들에게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냐면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환난의 때에 결혼을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그런 염려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결혼해서 아내를 기쁘게 하거나 아내와 가정 때문에 염려할 바에는 결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처녀 때에는 총각 때에는 주의 일을 걱정하고 염려했는데 결혼하더니 주의 일을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걱정하지 않고 아내를 기쁘게 하고 아내 때문에 걱정하고 남편 때문에 걱정하고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한다면 차라리 결혼하지 마. 결혼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주의 일을 하는 것에 있어서 염려를 한다면 흐트러짐 없이 주님을 섬길 수 있다면 결혼해야지. 주님을 섬기는 것이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오직 그것에 있었습니다. 너희가 교회를 염려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염려해야 하는데 결혼해서 그렇지 않거든 그것은 틀린 것이야. 너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혼을 하라,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지, 그것을 염려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보고 영적인 일을 염려하고 신앙을 염려하고 우리의 자녀들을 염려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염려 없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천하태평, 남도 괴롭히지 않고 나도 괴롭힘 당하지 않고 나는 집에서 편안하게 혼자 신앙생활 잘하고 감사하고 기쁘고.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눈물로 씨앗을 뿌리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무너져 가는데 염려가 없습니까.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안 하는데 가슴을 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거룩한 염려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눈물로 애통하고. 그러면서 무슨 질문을 했냐면 그럼 과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살다가 남편이 죽거나, 아내가 죽거나. 사별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_고린도전서7:36-40,히브리서9:11-22,10:19-25,39,12:18-29

 

37.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_고린도전서7:37-40

 

이것은 중요한 해석이고 바울의 개인의 견해이고 바울의 견해이지만 성경에 기록되었기에 성경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냐면 아내가 죽거나 남편이 죽으면 다시 결혼을 하려거든 주 안에서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냐면 그 전의 결혼은 불신 결혼을 했다면 믿음 없는 상태에서 결혼했다면 이제 너희가 신앙생활을 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사별을 했지 않냐. 그러면 다시 결혼을 하려거든 주 안에서 결혼을 해라. 네가 신앙을 가진 상태에서 결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거든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시 말해서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인데 우리의 결혼과 가정의 목적이 행복이 아닙니다. 바울의 고린도전서, 후서뿐 만 아니라 바울 서신에 결혼과 가정에 대한 메시지를 살펴보면 결혼과 가정의 목적이 단지 인간들이 추구하는 행복이 아니라 뭐죠? 거룩입니다. 만일 그저 행복하려고 결혼한다면 결혼은 재앙이 될 것이다. 바울이 이야기 합니다. 평생 남편 때문에 걱정해야 하고 아내 때문에 걱정해야 하고 남편을 기쁘게 할까, 아내를 기쁘게 할까, 자식 때문에 평생 매여 살아 주의 일을 한 번도 걱정하지 않고 주님을 기쁘게 섬기지도 못하는 삶을 사는데 그것이 어떻게 행복이냐 라고 본문에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약혼한 자에게 그런 메시지를 던지는 것입니다. 고민해라. 결혼 쉽게 하지 말고 고민해라. 아무렇게나 하지 말고 생각해봐라. 가정을 이루려고 하는 목적이, 결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지금 남편이 죽고 아내가 죽으면 이 말은 아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을 때 가정일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상황을 보았을 때에.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삶을 살텐데 이제는 주 안에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과거처럼 육신적으로 결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바울의 신앙 중심을 우리가 발견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히브리서 9장 11절부터 보면 사도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셨을 때에 우리가 그동안은 염소와 황소, 암송아지 등 엄청난 피를 흘리고 제사를 드려서, 우리의 육체를 정결하게 하는 제사를 너희가 끊임없이 드려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유지하려는 거룩한 삶을 유지하려고 엄청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느냐? 구약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짐승을 잡아 엄청난 피를 흘려 제사를 드려 우리의 육체를 정결하게 하려고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면서 제사를 드리지 않았느냐. 하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라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아니면 우리의 양심이 죽은 행실이 살아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_히브리서10:19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_히브리서10:22-25

 

우리의 신앙이 처녀 때보다 결혼해서 보다 나이가 들어서 더 성숙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처녀들에게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앞둔 처녀, 총각에 하는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도리어 세상의 때가 묻어 결혼을 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세상의 때가 찌들어서 주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지 않고 십자가의 보혈의 피를 어린 아이들이나, 새신자에게나 필요한 메시지로 전락시켜 버리지 않았느냐. 우리의 지혜와 배움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오만과 교만한 삶을 살고 있지 않느냐? 그래서 스스로 거룩하다고 하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세상의 염려로 가득한. 즉 남편과 아내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염려가 가득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너희가 결혼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정을 이루어 가면서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되는 것인지.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_히브리서10:39

 

그리고 18절부터 보십시오. 진짜 무서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선지자들의 이야기도 피하지 못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셔서 경고하시는 일을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28절에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_히브리서12:18-29

 

히브리서 12장 초절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은혜를 거역하는 것. 무엇 때문에 은혜를 거역하냐면, 은혜에 이르지 못하냐면. 16절에 음행하는 것 때문에. 그러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에서처럼 음식 한 그릇 때문에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서 하나님이 주신 장자의 명분을 판 것 때문에 에서가 당하는 지옥 권세 얼마나 두려운지 아느냐. 지금 그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침침하고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 불붙은 산과 같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에 와서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우리가 무엇 때문에 예배드리고 깨어 기도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그 어떤 이유로라도 거역한다면 당연히 지옥에 가게 될 것인데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느냐 라고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선지자의 말을 들어서도 거역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셔서 우리에게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는 그 메시지도 거역을 하느냐.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는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받았는데.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너희가 매여 있는 것이 무엇이냐. 가정이냐. 남편이냐. 아내냐. 불신자도 그것이 두렵지만 세상에서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다가 죽어서 그 일을 갑자기 당하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불신자들은 죽어서 내세를 만났을 때에. 그런데 너희는 세상에서 그 사실을 알았고 말씀을 들었고 선지자의 이야기와 예수 그리스도 말씀을 들었는데도 은혜를 거역하고 살아가서 그 지옥을 마주한다면 더욱 두려울 것이라고 히브리서에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 다닌다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거역하면. 그래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라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에 익숙해지지 말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지는 가정과 자녀들, 정욕, 이 세상의 그 무엇의 염려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염려를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가슴을 후벼 파는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뜨겁게 섬기던 그 뜨거움이 다 사라지고 없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걱정하고 근심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걱정, 근심이 어디에 있나요? 오직 하나님께 영광. 얼굴에 철판을 깐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선순위고 1순위이기 때문에 모든 삶에서 행동을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선도 확인해야 하고 사람들이 나를 생각하는 입장들도 들어야 하고 이유도 생각해야 하고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과 염려들. 지금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중심을 가지고 그 길을 믿음으로 가면 되는 것인데 사람들의 무슨 말을 하든. 지금 사도 바울은 이 결혼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우리가 결혼 때문에 신앙을 놓친다면 그 신앙을 잃어버려서 너희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만 정욕을 위해서, 그러나 그 뒤에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퇴보되거나 정체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혼 때문에. 그래서 멸망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퇴보되거나 정체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를 위한 염려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으면, 그런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행복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면 그 행복의 기준이 사라지면 교회를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조금 더 자극적인 행복을 찾습니다. 자극적인 쾌락을 찾습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더 자극적인 설교를 하고 성도들도 더 자극적인 것을 교회에 원하고 그래서 미국에 그런 교회들이 어떻게 되었나요? 수많은 목회자들이 성범죄에 연루되어 있고 횡령에 연루되어 있고. 미국의 초대형교회들이 다 무너졌습니다. 호주의 힐송 처치라든지, 조엘 오스틴 목사라든지. 가정이 깨지고. 왜요? 더 자극적인 행복을 찾고 더 부흥해야 하고 더 명예를 얻어야 하고 더 인기를 얻어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야 하고. 그러다 보니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구원자이시자 심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에서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복을 위해서 예수님을 믿었지만 결과적으로 행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진짜 행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의 행복. 그 초심.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의 기쁨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자녀들을 그릇되게 신앙을 가르치면 결과적으로 자녀들이 신앙에서 멀어져서 근심 걱정이 많아 질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이고, 행복해야지. 그래도 이것이 필요하지. 그래서 이것은 있어야지. 그렇게 신앙생활하고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경외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이 있어야지 하는 그것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쉽지 않습니다. 악한 영의 존재가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결혼해서 주님께 멀어지는 분이 참 많습니다. 결혼하니까 이렇고, 애 낳고 보니까 세상 다 가진 것 같고, 행복하고. 그렇다면 그 결혼은 실패한 것입니다. 반대로 결혼하고 남편을 따라 아내의 신앙을 따라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산다면 그것처럼 축복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불신 결혼이든 예수 안에서 결혼하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사람, 그 사람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결혼해서 오늘 말씀처럼 남편과 아내를 기쁘게 하러 간다면 그 가정은 멸망의 가정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불신자 남편과 아내가 멸망할 것보다 믿었던 사람이 멸망할 것이 더 크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더 두려움이 클 거다. 세월이 흘러서 남편이 죽고 아내가 죽어서 주님을 섬기는 일을 계속 한다면 주님 안에서 그 다음 생을 삶을 도모한다면 그것은 평생 주님을 잘 섬겨왔다는 뜻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새로 결혼을 해도 주 안에서 하거라 이 표현입니다. 그 동안 가정을 이루면서도 믿음을 잘 지켜 왔구나. 혹시 남편이 사별해도 아내가 사별해도 혼자 있어도 괜찮을 정도로 새로운 결혼도 주 안에서 할 정도로 너희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의 진짜 행복이 아닐까요? 우리의 인생에, 우리의 가정의 기준이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것이라면 결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바울은 본질적으로는 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흐트러짐 없이 한결같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이다. C.S. 루이스의 말처럼 거룩한 강자,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교회를 다니는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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