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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06-19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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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 19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그런 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본 문 : 고린도전서 10:1-22

 

 오승주 목사

 

-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_고린도전서10:1-4

 

성경을 읽을 때 문맥이 굉장히 중요하고 문맥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도적으로 설명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오늘 날 저와 여러분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찬식을 매일 해라 라고 설교하시는 분이 계시고 귀신과 교제하면 안 돼. 제사음식을 먹으면 안 돼 라고 설교하시는 분이 계시고 이 본문을 가지고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설교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 본문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시는가 집중해서 말씀을 들을 때 살펴보시고 주중에 말씀을 묵상하고 다시 듣고 기도하면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들을 여러분이 꼭 확인하셔야 우리의 신앙이 자랄 수 있고 영혼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_고린도전서10:1

 

다시 말해서 너희가 모르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희가 절대 알아야 해. 도대체 무엇을 알지 못하면 안 될까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출애굽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구름아래 있었고 이 구름은 하나님의 구름기둥 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줄 구름 기둥, 그리고 바다 가운데로 지났으며. 홍해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 가서 40년 동안 신령한 음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여러분,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만나를 주셨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었으니까. 매일 아침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40년 동안 경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반석에서 바위에서 하나님이 물을 쏟아 나오게 해서 많은 인구들이 먹고 마시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반석이 무엇이냐. 그 반석이 그리스도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도바울이 하는 이야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가까이 애굽의 노예 살이를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다. 구름기둥이 보호했고 바다가 갈라졌고 구름기둥이 그들이 가는 길을 인도해주셨고 위험을 다 막아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괴롭힌 이스라엘의 군대가 수장되는 것을 눈으로 목도했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신이 나서 찬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아침마다 만나를 주셨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해주셨다. 이것을 사도바울이 세례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 중에서 예수님을 처음 믿고 세례를 받으면 얼마나 기분이 감격이 되고 세례를 받은 자기 자신도 내가 새로워질 수 있겠구나. 예수님을 믿고 새 삶을 살아야겠구나. 라는 결단, 감격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통째로 전체가 세례를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구름 기둥으로 홍해를 건너고 아침마다 만나를 주시는 것으로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으로 세례를 주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사도바울은 은혜를 받았다. 세례를 받았다. 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 정도 은혜를 받았으면 솔직히 이 정도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도록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주셨으면 매일 예배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며 살아야겠죠? 평생 노예 생활하고 종 생활하다가 지옥 가는 인생을 하나님이 건져주셨는데 하나님이 세례를 베풀어주시고 베푸신 이유가 그리스도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세례를 받을 수 있고 구원 받을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을 세례를 받고 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면 그 기적을 경험하고 나면 평생 감사하고 찬송하고 매일 예배하고 살 수 있겠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살았나요? 얼마나 악했는지 출애굽기에 보니 민수기에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 광야에서 다 죽이셨습니다. 얼마나 악했는지.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았는데 십자가의 복음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그래서 감사하고 찬송하고 살아야 하는데 우리가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사도바울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죄의 본성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 죄의 본성을 이기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 죄의 본성을 따라 살면 죽는다. 너희가 그렇게 되지 않을 원한다. 라고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절제하고 내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복음을 사모하는지 아느냐. 그건 나도 너희도 같이 죄 성이 있고 연약한데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면서 죄의 본성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 말세를 만난 우리를 꺠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으니라_고린도전서10:5-11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_고린도전서10:6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악을 즐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4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7절에 우상숭배. 8절에 음행한 죄. 음행한 죄는 어떻게 되었나요? 2만 3천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9절에 주님을 시험한 죄. 뱀에게 멸망당했습니다. 주님을 시험하다가 독사에 다 죽을 뻔 했습니다. 10절에는 불평하고 원망한 죄. 그래서 원망하다가 불평하다가 멸망을 당했습니다. 이 4가지 죄를 상기를 시킵니다. 여러분, 엄청난 세례를 받았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라는 반석위에 완전히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악한 죄를 4가지나 지은 것입니다. 우상숭배, 음행, 하나님을  시험한 죄, 불평하고 원망한 죄.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였습니다. 광야에서 죽은 이유였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 이야기를 왜 할까요?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 이 본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나요? 혹시 나는 그런 죄를 짓지 않고 있다고 확신하고 계시는 분이 계신가요? 이 일은 누구에게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냐면 고린도 교회 성도. 이 편지를 받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상태가 어떤 상태냐면 나는 믿음이 진짜 좋아. 라고 생각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믿음이 없고 우리는 연약해. 기도해야해. 복음이 필요해. 이런 고린도 교회 성도가 아니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엄청 자만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서로 믿음이 좋다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싸우는 와중에 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상 숭배하는 신전에 가서 그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거리낌 없이 먹었습니다. 객기입니다. 나는 믿음이 좋아. 나는 우상에 바친 음식을 먹어도 괜찮아. 라고 객기를 부린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까?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신앙이 좋으니까 이것 해도 돼. 이것은 엄청 객기입니다. 하나님이 전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런 식으로 나는 신앙이 너무 좋아. 심지어 세상 사람들도 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상상하지 못할 음행, 동성애 이런 것을 고린도 교회 성도가 스스로 용납한 죄를 지었습니다. 교회가 음행한 성도를 스스로 용납해버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용납하고 치리하고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예수 믿으면 되지. 구원받았으면 되지. 그런 식으로 스스로 용납했습니다. 이런 영적인 교만이 가득한 사람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서 있는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섰다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상태를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_요한계시록3:1

 

예수님이 사데 교회를 책망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살았다는 이름을 가진 것은 무엇인가요? 성도라는 이름. 장로, 권사, 집사, 직분자. 다 살았다는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이 직분입니다. 특히 목사. 누가 목사를 구원 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누가 목사를 죽은 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누가 장로, 권사를 죽은 자라고 이야기 할 수 있나요? 그래서 사데 교회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완전 반전입니다. 저는 칼빈 교리를 배워온 목사입니다. 그런데 칼빈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논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성경은 계속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칼빈 교리 때문에 안 믿습니다.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주의하라. 서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넘어져있고 살아있다는 이름 때문에 나는 살아있어. 라고 하지만 실상은 죽은 자가 아니냐. 목사지만 장로지만 권사지만 죽은 자로 살고 있지는 않느냐. 사데 교회를 책망하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죄인이 아니야.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니까 죄를 지어도 괜찮다 라고 생각하는 그 교만. 그 교만은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합했던 인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셨던 인물,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셨던 인물이 다윗입니다. 다윗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아시죠? 다윗을 가장 사랑하고 다윗에게 가장 충성했던 장군이 우리아입니다. 우리아는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모릅니다. 다윗과 요나단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제가 성경을 보았을 때에 다윗보다 우리아가 다윗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아의 아내를 범했습니다. 그것은 실수라고 합시다. 실수로 우리아의 아내가 혼자 있으니까 그 당시 왕의 입장에서는 어떤 여자라도 취할 수 있는 분위기와 문화가 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십니다. 진짜로 다윗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여자를 완전히 내 것으로 취하기 위해서 충성스런 우리아를 살인교사를 했습니다. 우리아가 승리했다고 왕에게 보고하려고 돌아왔습니다. 그 우리아를 죽을 수밖에 없는 전쟁터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우리아는 얼마나 다윗을 좋아하고 충성스러운지 그 이야기를 듣고 장군이 그 전장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전히 죄의 가책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보냈습니다. 다윗이 스스로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한 것인데 나단 선지자가 이야기합니다. 예화를 듭니다. 왕이시여, 한 마을에 소와 양이 엄청 많은 부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웃에는 가난한 이웃이 살고 있는데 그 가난한 이웃은 암 양 한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암 양을 딸처럼 애지중지하게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잣집에 손님이 와서 대접을 해야 하니 이웃의 딸처럼 여기는 암양 한 마리를 빼앗아 손님에게 대접했습니다. 다윗이 사무엘하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도 그런 부자들은 사지를 찢어 죽여야 해. 화를 냅니다. 자기 이야기인 줄 모르고. 그토록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자기 이야기인 줄 모릅니다. 그것이 왕이십니다. 라고 나단선지자가 이야기하기 전까지 그 부자에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자기는 많으면서 딸처럼 키우던 암 양을 죽여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느냐.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는 내가 악을 저지를 수 있구나. 죄를 저지를 수 있구나. 내 신앙도 위기가 올 수 있구나. 늘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죄를 지을 가능성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중의 괴수다. 나는 하루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으면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바울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나요? 나는 절대로 안 그럴 것이야. 나는 절대로 그런 죄를 짓지 않을 거야.  그런 존재가 아니야. 나는 성도야. 나는 구원받았어. 나는 목사야.  라고 계속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리적으로 메시지를 많이 들어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구원 받았어. 그런 식으로 관념이 형성이 되다보면 죄를 짓고 살았는데 죄책감도 없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신기하게도 역설적이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삶. 이것을 무엇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살았다는 직분을 가진 자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죄를 많이 지을 때가 목사가 되었을 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가 가장 큰 죄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저는 사람이 보지 않으면 완전 딴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은밀한 죄, 부끄러운 죄. 그런데 사람들이 볼 때는 괜찮은 목사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내 안에 있다고 믿는다면 내 안의 은밀한 죄는 없어져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한다고 생각한다면 사람이 보던, 보지 않던. 오히려 보지 많을 때 죄와 싸우고 멀어질 수 있겠죠.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까 예수님을 모시고 살지 않으니까 사람이 볼 때만 괜찮은 목사로 살았던 것이지 혼자 있을 때에 은밀하게 짓는 죄. 또 하나는 마음의 죄가 큰 죄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실제로 가늠하는 것과 마음으로 가늠하는 것이나 똑같은 죄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살인하는 것이나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이나 똑같은 죄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짓는 죄를 큰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제가 가스펠 교회를 개척하기 1-2년 전에 정말 회개를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면 안 돼. 이것은 신앙생활이 아니야. 저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정말 회개하고 회심하고 깨닫고 보니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도 믿지 않지 않구나. 은밀한 죄를 짓고 있구나. 마음이 짓는 죄를 큰 죄라고 생각하고 살지 않고 있구나. 말세를 만난 고린도 교회 성도들. 사람들이 말세를 만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어쩔 수 없이 그런 죄를 지으면서 살 수 밖에 없어. 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도바울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밖에 주지 않는다. 죄를  어쩔 수 없는 짓는다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의 죄를 어떻게 이길 수 있냐. 라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군자냐. 죄를 안 짓고 살 수 있냐. 말세인데 어떻게 하냐. 환경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하냐. 세상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하냐. 신앙이 좋다고 교만했던 사람들이 마음의 죄 이야기하니까 은밀한 죄 이야기를 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이야기하니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악을 좋아하는 본성대로 살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_고린도전서1-12-22, 빌립보서3:1-16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_고린도전서10:13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죄 안 짓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14절부터 기록하고 있습니다.

 

14.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6.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_고린도전서10:14, 16, 17

 

이 떡은, 이 피는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의 피고 살입니다.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살 길을 주셨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승리할 길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찬으로 기념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찬은 교회가 포도주와 떡을 먹는 것도 성찬이지만 진짜 성찬의 의미는 말씀을 먹어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붙잡고 살아라. 이 말입니다 성령을 붙잡고 살아라. 이 말입니다. 그 성찬을 매일 하라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_고린도전서10:18

 

우상 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냐. 이것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섬기면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제물이 먹어야지. 그것이 말씀이야. 그것이 보혈의 피야. 두 개를 동시에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제사지내지마라. 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엄청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본성, 죄의 본성을 충동질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교제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귀신과 교제하길 원하는 것이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합니다. 죄를 짓게 하기 위해서. 귀신을 섬기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우상 숭배하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물, 예수님과 하나 됨. 예수님의 성찬, 예수님의 피의 떡에 참여하는 것을 멀리 하게 만드는 우리의 교만, 육신의 정욕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4.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_빌립보서3:2-6

 

이것이 사데 교회에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살았다는 이름을 가진 자다. 바울이 스스로 흠이 없다고 합니다. 얼마나 완벽하게 살았으면.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_빌립보서3:7-8, 10-12, 14, 16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다 이루었어. 성공했어. 장로 됐어. 먹고 살만해. 그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하라. 무엇을 행하라는 것인가요? 예수 그리스도께 발견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일을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특수한 문화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어려운 시절에 절에 가서 빌고 하던 문화가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양의 문화인데 한국에 복음이 들어와서 교회가 생기고 우상이 사라졌습니다. 물 떠다 놓고 빌거나 부처 앞에 가서 새벽마다 정성스럽게 빌던 것이 사라지고 한국 교회에만 있는 문화가 새벽기도 문화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눈에 안 보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강단에서 목사가 말씀을 전해주니 목사한테 가서 빕니다. 우리 목사님 잘 섬겨야 하는데. 목사가 부처가 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한국 교회에 예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습니다. 자기를 스스로 예수라고 하는 이단이 전 세계에서 80-90%입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사의 자리는 성직자의 자리이고 주의 종의 자리입니다. 신앙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잘 믿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레위 지파를 왜 하나님이 세워놓으셨죠? 예배 준비하라고 세워놓았습니다. 평상시에 일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예배드릴 때 섬기라고 그들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는 땅을 분배해주지 않았습니다. 나머지의 지파들의 십의 일조를 걷어 주었습니다. 온전히 기도하고 예배하라고. 목사는 평상시에 매일 온전히 기도하고 예배하고 그 영적인 관계가 끊어지면 안 되는 사람이 목사입니다. 사람의 뇌는 부정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코끼리의 그림을 보세요. 절대 코끼리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코끼리가 더 강조되어서 들어 올 것입니다. 반대현상이 생깁니다. 교육 전문가인 오은영 박사님이 하시는 말이 소파에서 밥 먹지 말라고! 소파에서 밥 먹지 말라고! 아이들은 소파에서 더 밥을 먹고 싶다고 합니다. 늘 부정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오은영 박사님이 뭐라고 이야기하라고 가르치나요? 식탁에서 밥 먹자. 그것이 정상이야. 라고 가르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큰 산에서 스키를 타고 대회를 많이 합니다. 스키 선수들이 스키 타면서 나무를 피해야 해. 이렇게 스키 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무가 크게 보여서 트라우마 때문에 절대 스키를 타지 못합니다. 나무사이로 가야하는데 나무가 위험해. 나무를 봐. 라고 하면 못 지나갑니다. 스키선수들은 길만 봅니다. 나무 사이에 있는 길이 엄청 커 보이는 것입니다. 스키선수들은 길에 집중하면 나무 사이에 길이 넓다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길이 충분하구나.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훈련했기 때문에 나무는 큰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장애물에 집중하면 장애물만 보입니다. 나무에 집중하며 나무만 보입니다. 나무에 난 길을 보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길입니다. 신앙의 길입니다. 계속 세상을 쳐다보면 있으면 계속 죄 쳐다보고 있으면 엄청 크게 보입니다. 대단하게 보이지만 우리에게 사망의 길입니다. 죽음의 길입니다. 멸망의 길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가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가면 좁은 길 같아도 넓은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피에, 예수님의 살에 떡에 참여하라고 성찬 하라고. 성찬이 무엇인가요? 기도와 말씀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과 연합하라고 합니다. 매일. 목사님, 어떻게 주님과 매일 연합할 수 있나요? 어떻게 매일 주님과 동행할 수 있나요? 목사님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지 어떻게 주님과 매일 동행하면서 함께 살 수 있나요? 어떻게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고 일기 쓰고 그러라는 것인가요? 여러분, 제가 지나친가요? 하루 성경 3장 읽으라고 하는 것이 지나친가요? 우리가 위선자의 삶을 사는 것보다 죄를 지으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멸망 길을 가면서 사는 것보다 성경을 읽는 것이 더 큰 고통인가요? 우리가 죄에서 자유 함을 얻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기쁨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바울은 빌립보서에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해주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 읽는 일. 그 율법 같은 일에 집중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하세요. 그럼 성경 읽는 일은 할 수 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집에서 제가 설거지하는 일에 집중하고 피곤한데 분리수거하는 일에 집중하고 청소하는데 집중하면 힘이 듭니다. 그런데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해. 아이들을 사랑해. 그럼 그 일이 기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가 육신의 죄에 끌어 다니지 않도록 그래서 지옥에 가지 않도록 세상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십자가에 죽어주셨습니다. 죄와 저주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를 찾아와주셨습니다. 그 것이 사실이라면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은혜가 진짜라면 우리는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사랑합니다. 라고 매일 점검하면서 사는 것이 어떻게 지나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 일이 지나친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일이 어떻게 과하다고 말할 수 있나요? 기도하고 말씀을 보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전 제 안에 죄의 시한폭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말씀을 놓치지 않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시험기간이라고 놀려 간다고 우리의 감정이 환경이나 상황 때문에 힘들다고 해서 예배드리지 않고 말씀 보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성경도 읽지 않는다면 그럴 일인가요? 다윗이 그래서 죄를 지었습니다. 평화로워서 잘 돼서. 늘 광야에서 말씀을 사모하고 매일 기도했던 다윗이 왕이 되자마자 매일 기도하지 않고 매일 말씀을 묵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들어와서 무너진 것입니다. 어느 순간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가룟 유다처럼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내가 아니란 법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연약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섰다 하면 넘어질까 주의하라.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러면 우리는 늘 두렵게 살아야 합니까? 늘 넘어질까 걱정하면서 살아야 하나요? 아닙니다. 그 방법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예수 그리스도의 살에 참여해라.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고 십자가의 보혈의 피를 붙잡고 기도하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에 오셨으니 말씀을 먹어서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이 되어라. 귀신과 교제하지 말고. 주님과 교제하면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승리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할 길을 열어주셨는데 피할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교제하면 은밀한 죄를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주님 사랑합니다. 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도 주님만 붙잡고 바라봅니다. 주님만 의지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주님을 진짜로 사랑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 길을 주셨는데 승리 할 신앙생활의 길을 주셨는데 그것이 주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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