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7월 0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 |
제 목 : | 가정을 세우고,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
본 문 : | 고린도전서 11:2-16 |
오승주 목사
- 그리스도 안에서 인종적, 신분적 차별이 없어진 교회_고린도전서11:2, 5-6, 11-13
예배에 관해서 많은 문제가 있었던 시절입니다. 첫 번째는 여자들 머리에 너울, 두건, 천 같은 것을 쓰는 문제였는데 그게 오늘 본문입니다. 그 다음은 성만찬 문제입니다. 성만찬 때 너무 술을 많이 마시고 너무 음식을 많이 먹어 과식하는 문제들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 방언과 예언에 대한 문제들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세 가지 문제를 겪고 사도 바울에게 서신을 통해서 질문했던 내용들입니다. 오늘은 첫 번째 머리에 두건을 쓰는 문제입니다. 사실 본문을 정말 건너뛰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설교를 해야 되나 싶었습니다. 요즘은 머리에 쓰는 것도 없고, 우리가 가톨릭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니고 안 쓰고 하면 되지 이렇게 넘어가도 될 거 같은데 제가 한 주 이 본문을 묵상하고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그 당시에 이 문제가 왜 중요한 문제가 되었는지 확인해보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서 여러분과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오늘 본문은 여성들의 복장, 옷차림에 관한 내용입니다. 처음에 사도 바울이 2절에서 칭찬을 합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_고린도전서11:2
사도 바울이 뭔가 전해준 전통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켜서 칭찬을 잠깐하고 그러면서 3절에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_고린도전서11:3
이 머리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케팔레라는 단어인데 단지 우리의 머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원천, 권위, 기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리더십에 대해서는 우두머리 이런 단어입니다. 여기서 단어를 이해해야 사도 바울이 머리를 이야기 할 때 우리 신체의 머리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권위를 인정하는 것인지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야,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야,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야) 이런 구분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단지 케팔레라는 단어는 우리의 두상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단어에는 원천, 권위, 우두머리 이런 뜻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권위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오늘 본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상황을 잘 봐야 합니다. 잘 들으셔야 합니다. 이 본문을 잘못 읽으면 정말 이상한 기독교가 될 수 있고 우리 삶에 이상한 적용점이 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_고린도전서11:2
2절에 사도바울이 칭찬하고 있습니다. 뭘 칭찬하고 있을까요? 사도 바울이 전통이라고 써놨는데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사역하고 교회를 세운지 얼마나 됐어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전통이에요? 전통이라는 것은 오래된 거잖아요. 오랫동안 선조들이 지켜왔던 것들을 우리가 또 지키고 지키고 이건데. 지금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전해 준 것을 너희가 전통으로 잘 지키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2000년 전 당시 여자의 인권문제를 살펴보니까 인구조사에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도 불과 100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밥을 먹을 때 남자들끼리 밥을 먹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밥을 먹고. 이 당시에는 겸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으로 현실이었습니다. 여러분 여자들에게 선거권이 생긴 것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1900년대 초반입니다. 그 전에는 여자에게 선거권도 없었습니다. 좋은 시대에 살고 계신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여자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 여자들이 탄압을 많이 받았고 어렵고 고통스럽게 살았던 시절이 많습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 당시 남자들은 남자로 태어난 것 그 자체로 우월감이 있었습니다. 어떤 철학자의 기도문을 보니 이런 기도문이 있었습니다. 제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신께 감사하며. 그런 자료가 있을 정도입니다.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할 정도로 그 당시 여자의 인권은 거의 바닥을 쳤습니다. 실제로 구약에서도 여자는 숫자 계수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인구조사 계수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로 그런 문화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여성들이 진짜 짓눌려 있었던 것이 맞습니다. 얼마나 짓눌려 있었을까요. 얼마나 고통의 세월을 살았을까요. 제가 멀리 가보지 않고 저희 엄마만 생각해도 철없는 아빠를 대신해서 자식을 키워야 되지. 자식들 학교 보내려고 남의 집 품팔이 해야 되지, 집에 오면 빨래, 설거지 혼자 다 하셨지. 농사도 지으셨지. 그냥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저희 어머니가 살았던 여자의 삶은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병에 걸려서 돌아가신다는 시한부를 받고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2박 3일 일정이었는데 1박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몸이 너무 안 좋으셨습니다. 음식 먹은 것을 다 토하고 그래서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울었는지 아세요? 평생을 제주도 한 번 못 가보신 것입니다. 진짜 후회가 되었습니다. 조금 젊었을 때 내 먹을 거 조금 아껴서 어머니 모시고 여행이라도 다녀올 걸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때 진짜 많이 울었습니다. 어머니의 인생이 그런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것도 좋아하셨습니다. 아들과 둘이 제주도에 간 것 자체만으로도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정말 짓눌려서 어렵게 산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예루살렘 교회가 그걸 생각을 했나요? 안했습니다. 누가 이것을 바꿨는줄 아세요? 사도바울이 바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_갈라디아서 3:28
여러분 당시 유대인 여자들은 성경을 읽고 예배 드리는 시나고게에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별도의 공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회당의 별도 공간. 예배 드리는데 여자들이 눈에 띄면 안 되었습니다. 법이. 그래서 별도의 공간에 칸막이를 치고 거기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전통이 그대로 왔기 때문에 예수님 부활 후 사도들은 유대인 전통을 가지고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뭐라고 이야기하죠?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다. 똑같다. 기독교 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처음에는 예배당이 없었기 때문에 가정에서 예배를 시작을 했습니다. 그 가정에서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예배가 시작되면서 남자, 여자, 종, 헬라인, 자유인 할 거 없이 다 같이 모여 예배를 처음 드린 것입니다. 여자들 입장에서는 그게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이런 느낌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나 같은 여자도 구원 받을 수 있고, 예수님 때문에 나도 상급을 받을 수 있고, 나도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딸이 될 수 있고. 십자가로 내 죄 문제도 해결 받을 수 있고. 그게 얼마나 감사한지. 그래서 많은 은혜를 받고 많은 여자들이 사고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 사도 바울 시대에 진짜 많은 여성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고. 남자들도 하기 힘든 편지를 전달한다든지, 교회를 세우는데 목숨 걸고 희생하는 일들에 여자들이 되게 많이 희생하고 헌신했다는 역사적인 자료가 되게 많습니다. 뵈뵈 같은 인물. 힘든데 내가 이걸 왜 해야 돼? 가 아니라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참 잘하고 있다 이것은 고린도교회 예배당에서 남자와 여자가 같이 예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당시 고린도교회 여성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사랑 받는 존귀한 자다. 사도 바울이 가르친 것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여자들이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고개 숙일 필요가 없다. 우리도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복음 안에서 모두가 자유인이고 예수 복음을 받고 보니까 우리도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의 사고가 달라지고 그들의 생각이 달라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여성인권이 왜 좋아진 줄 아세요? 대표적으로 여성 인권 운동을 하셨던 분이 김활란 박사님이십니다. 이 분이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단발머리에 파마를 하고 들어오셨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서특필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나라는 머리를 길러서 비녀를 꼽는 시대이니까. 아마 최초의 파마 한 사람이 김활란 박사님이실 것입니다. 김활란 박사 이러면 이화여대 초대 총장이다, 여성인권운동가이다 하지만 사실은 신실한 크리스천입니다. 인천의 내리교회에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그가 평생 책을 선물하거나 강단에서 강의하기 전에 항상 했던 말이 여성들이여 하나님을 당신의 삶에 영접하십시오 이것을 늘 입에 달고 사셨던 분입니다. 그런 분들이 여성운동을 했습니다. 여성들이여 배우십시오, 일하십시오. 그게 무엇으로 시작이 되었어요? 복음 때문에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하나님 말씀, 복음이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성운동이 시작되고 여자들의 지위가 높아지고 하나님 앞에서 많은 여성들이 배우고 공부하고 이런 일들이 다 교회가 들어왔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이 들어와서 시작한 것입니다. 전 세계 다, 어디나 다 그렇습니다. 노예해방운동도 기독교가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회는 사회운동을 등한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국가가 문제 있다? 우리는 신경 안 써. 우리는 예수님만 믿을 거야. 우리는 그냥 기도하고 은혜만 받을 거야. 그것은 나쁜 태도입니다. 국가가 전쟁이 나면 교회가 가만히 있을 것입니까? 국가가 공산당에 넘어가고 이러면 가만히 있을 것입니까? 그것은 나쁜 태도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사회 운동에 굉장히 많이 쓰임 받습니다. 복음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기에. 우리나라에도 그런 역사가 많았습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 얼마나 많이 핍박 받았습니까? 남자가 때려도 어디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까? 다 때리던 시절이니까. 가정폭력이 심했던 시절입니다. 옛날에는 어머니들이 진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옛날 조선시대 때 여자들이 장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자기 몸을 가리고 있는 장옷, 그것을 다 벗어 던졌습니다. 교회 때문에 벗어 던진 것입니다. 똑같습니다. 오늘 고린도교회 상황이. 장옷을 집어 던진 것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칭찬을 하는 것은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구나, 여자들도 같이 예배를 드리는구나. 그것을 칭찬했지만 칭찬 뒤에 본문 내용은 조금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게 오늘 중요한 내용이겠죠. 요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복음 안에서 여자들이 해방이 되었다, 이제 여자들의 권리를 찾아주고 교회가 말씀으로 여자들이 공부하고 신앙생활해서 배우고 일하고 이렇게 해줬는데 뭐가 되어버렸냐면 예를 들어서 페미니즘 같은 것입니다. 그릇된 남녀평등. 그런 자유가 뭐가 되어버린 거죠? 그릇된 권리가 되어 버리고. 성 같은 것이 문제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남자도 똑같습니다. 여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여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거지. 사실 남자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축복을 권리로 주장해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우리가 은혜를 받고 새 사람이 되게 하셨는지 목적이라는 것이 있는데 목적은 사라지고 그 자체 권리 자체만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고린도교회에 그 문제가 조금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동성애 문제를 거론하고 지나가려고 합니다. 동성애가 죄인가요 아닌가요? 죄입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죄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는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살피고 도와줘야 되고 그들을 치료해줘야 되고 복음을 전해줘야 되지 동성애 자체는 죄입니다. 동성애는 가정을 파괴하는 큰 죄입니다. 후대가 없습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반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동성애 자체가 죄가 아니다. 어떤 교회들은 성명서를 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끔찍하게 싫어하시는 죄가 성과 관련된 창조원리인 성 문제를 틀어버리는 것입니다. 어긋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고린도교회에 가장 많았던 문제이기도 하고. 요즘에도 많고. 이것을 축제로 아이들에게 알리고 이러는데. 알리니까 아이들도 동성애자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호기심에. 여러분 진짜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그런 문화들을 막을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이렇게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가 기도하고 깨어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예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다 그런 문화를 받으며 큽니다. 기독교가 시작되면서 그들의 예배는 회당에서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처음에는 가정집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예배당을 만들어서 예배를 시작했는데 단지 예배당만 바뀐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자유화된 어떤 문화, 예배 양식 이런 것들이 그 당시에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사도 바울을 통해서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쓰신 이유가 있습니다. 핍박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자료가 많이 없는데 당시 로마에 트리안이라는 황제가 있었고 그 황제에게 비두니아 지역의 플린이라는 총독이 썼던 편지가 자료로 남아있습니다. 그 편지가 뭐냐면 플린이라는 총독이 너무 고민하면서 쓴 것입니다. 뭘 썼냐면 사람들이 총독에게 고발을 했다. 지금 총독이라고 말하면 시장, 도지사 정도입니다. 뭐라고 고발을 하냐? 저 교회가 이상핟. 개신교회가 타락했다. 개신교회가 사이비 같다. 이유가 뭐냐면 남자, 여자가 한 장소에 같이 있는다 입니다. 거기다가 뭐도 먹죠? 성찬식을 매주 하니까 술도 마시죠? 여자들이 보니까 두건도 안 쓰죠? 사람들이 볼 때는 오해할 만 합니다. 또 지금처럼 예배 1시간만 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때의 주일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말씀 듣고 교제하고 이랬습니다. 그것으로 고발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플린이라는 총독이 조사를 했습니다. 조사했더니 별 내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황제에게 서신을 보낸 것입니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되냐? 나는 모르겠다.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기독교가 잘못 없고 그냥 예배드린 거 같은데. 그 정도로, 남녀가 함께 예배드린 것만으로도 사회적 이유가 되고 충격이 됐던 그런 시절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여자들이 머리에 썼던 너울을 집어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 당시에 여자들은 예언의 말씀을 공부할 자격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예언도 여자들에게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의 성별의 문제는 없다. 하나님이 쓰시는 일이 다 있다. 그렇게 남녀평등하게 예배하는 것을 바울이 허락해줘서 칭찬하는 것이 딱 한 절 있는 것입니다. 참 잘했다, 너희들이. 교회가, 복음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아셔야 합니다. 아동 학대 문제, 여성 인권 문제, 노예, 자유 민주주의 전부 기독교가 근간입니다. 그러면 여자들이 머리에 너울을 쓰지 않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바울은 바울은 반대로 이야기를 합니다. 너울은 좀 써라. 오늘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면.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을 바울이 여자의 머리는 남자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고 이렇게 복잡하게 신학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신학적인 난제가 아닙니다. 이것을 가지고 어떤 교단은 여자들이 대표기도 할 수 있냐 없냐. 여자들이 설교를 할 수 있냐 없냐. 우리 한국에도 여자 목사 안 주는 교단이 많습니다. 장로는 꿈에 못 꾸고. 대표기도 할 때도 남자들은 목사가 서 있는 강단에서 대표기도하는데 여자들은 밑에서 기도해야 되고 이렇습니다. 아직도, 한국 교회들이. 그걸 이 본문을 다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신학적인 난제가 아닙니다. 머리에 두건을 써라. 써라. 왜 두건을 써야 되는지 이해를 해야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을 써야 한다고 말하면서 바울이 여자의 머리는 남편이고, 여자는 남편에게서 나왔고 남편을 존경해야 되고 그리스도처럼 해야 되고 남편은 또 그리스도를 머리 삼아야 되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고 이런 이야기를 쭉 합니다. 다 맞습니다. 다 맞지만 그 당시 문화를 보자는 것입니다. 당시에 여자들은 조선시대 때 장옷을 입고 다녔던 것처럼 머리에 두건을 쓰고 머리를 다 가리고 다녔습니다. 그것을 안 쓰면 무슨 의미인줄 아세요? 길거리 여자인 것입니다. 몸 파는 여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두건을 다 벗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쉽게 생각하면 그 당시 문화는 그런 문화입니다. 두건을 쓰지 않으면 그냥 길거리 여자입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면 나는 동성애자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역할을 하는 여자야. 그리고 남자들이 머리를 길면 나 동성애자야. 나는 여자 역할을 하는 남자야. 길거리 남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창남이 있었으니까. 그게 그 당시 문화인 것입니다. 그것으로 다 확인했던 시절입니다. 길에 머리 긴 남자가 있네, 몸 파는 남자. 머리에 수건을 안 썼네? 나는 남편이 없어요. 나는 아무에게나 몸을 줄 수 있어요 라는 표시입니다. 머리에 두건을 썼다는 것은 나는 남편이 있는사람이에요. 나는 한 남자에게 내 정절을 지키는 의미로 두건을 썼던 것입니다. 여러분 조금 이해가 되세요? 지금은 다릅니다. 남자들도 머리 길고. 지금은 그런 문화가 아닙니다.
- 예배를 방해하는 일_고린도전서11:3-4, 7-10, 13-16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_고린도전서11:3-4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_고린도전서11:7-10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_고린도전서11:13-16
지금 교회 공동체를 이룰 때 차별이 없고 하나가 되었다, 자유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을 가지고 교회에서 논쟁이 된 것입니다. 여자들이 우리 두건 벗을게. 맞아요, 언젠가는 벗었겠죠, 언젠가는 여성 인권운동이 있어서 그것을 벗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장옷을 벗었던 것처럼. 맞지만 지금 당장 고린도교회에서 사도 바울이 너희들이 진짜 예배를 생각하냐? 너희들이 진짜 복음의 유익, 하나님의 영광,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정말 생각하냐? 복음은 초월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 맞습니다. 모든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이니까. 십자가의 복음은. 그러나 복음이 전해지는 통로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우리 이웃에게 시험을 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린다고 남을 불편하게 해서라도 우리가 꼭 예배 드려야 할까요? 남의 문 앞에 주차해놓고 번호도 안 남겨놓고 예배드리러 가서 전화도 안 받고 그러면 될까요? 그런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실까요? 지금 그런 문제와 비슷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올 때 옷도 신경 써야 합니다. 여러분 만약 제가 BTS 같이 옷을 입고 빨간 머리로 물들이고 찢어진 청바지에 난닝구 입고 금팔찌 금목걸이 하고 설교하면 여러분 들으실 거예요? 그거는 공연장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마음 문을 열기 위해서. 공연장에서는 그렇게 해도 되지만 설교할 때는 목사가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남자든 여자든 같이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교회 올 때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옷차림을 너무 야하게 입고 와서 다른 성도들이 예배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본문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너무 지저분하게 세수도 안 하고 와가지고 냄새나고 이렇게 예배 오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 시험이 드는 것입니다. 너울 쓰는 문제는 나에게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나에게는 남편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그 시절에 너울을 다 썼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셨다는 의미를 설명하면서 여자들아 그거 굳이 벗지 않고 써도 되지 않냐? 지금 그것 때문에 밖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겠느냐?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지시고 이 땅에 오실 때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이 땅에 오신 다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그런데 복음을 위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그런 희생을 하셨습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신학적으로 풀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머리가 하나님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더 높고 그리스도는 더 낮다고 성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진짜로 복음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두고 두건 쓰는 것이 남편을 향한 존중의 의미라면 굳이 그것을 벗을 필요가 있냐?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예배드릴 떄 여자들이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지 않는 것 자체가 권리가 되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성인권운동을 하고 노예 해방 운동을 해서 노예를 해방 시켜서 우리가 같이 예배드립니다. 그런데 이 노예들이 갑자기 우리에게 이런 권리가 있지 않아. 우리는 이럴 수 있지 하면서 살인도 하고 남의 물건도 훔치고 이러면서 총기사건도 있고. 그러면서 우리가 노예였을 때 이런 고통을 당했으니까 지금은 봐줘야지. 지금 미국에 그런 역사가 있었잖아요. 그건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권리가 되어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시대에 신앙생활이나 교회 안에 이런 전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 전통이라는 것은 신앙의 전통이 될 정도로 신앙의 선배들이 애쓰고 싸우고 심지어 순교하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순교하며 싸웠던 이유들은 다 사라지고 전통만 남은 것입니다. 목회자도 똑같습니다. 제가 오늘날 어떻게 해서 이런 목회자의 형태가 생겼는지도 공부하고 있는데 너무 그릇된 것이 많습니다. 오해한 것도 너무 많고. 그래서 전통만 남아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권리로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십자가의 복음으로 그 은혜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김활란 박사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여성이여 공부하십시오, 여성이여 배우십시오. 그래서 우리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이게 김활란 박사의 기조였습니다. 우리가 왜 힘들게 굳이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되고 우리가 바이블스쿨을 하면서 묵상을 왜 배워야 되며 왜 여름에 힘들게 수련회 가서 눈물로 회개하고 기도하려고 하나요? 그렇게 해야만 우리 가정을 세울 수 있고 우리 교회를 세울 수 있고 이 세상에 복음의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 안 그러면 우리 혼자 신앙생활 편하게 하면 되지, 내가 적용하고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고 저렇게 해석하고. 마음대로 살면 되지 혼자 편하게 신앙생활 하면 되지. 그런데 성경에는 혼자 편하게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절대 없습니다. 반대로 은혜라는 것을 받으면 절대 죄악 속에 살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았는데 죄악 속에 계속 산다? 그것은 은혜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았는데 나는 연약해서 또 죄악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은혜와 죄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싸우죠, 죄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거룩해지려고 노력하겠죠. 은혜 받았다는 말은. 절대 불신자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합니다. 교회를 위해 헌신하거나 가정을 믿음으로 세우는 일을 절대 외면하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지 못했기에 나 혼자 편하게 살다가 죽어서 천국 갈 거야.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은혜를 못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은혜를 왜곡합니다. 교만하게 만들고 그 은혜의 원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전통만 주장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직분, 권리 이런 것들. 지금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싸우는 교회들이 너무 많습니다. 진짜 싸워야 될 것과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7절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가정을 세우고,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_에베소서5:22-33, 4:17-32, 고린도후서6:11-7:1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러면서 25절에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_에베소서4:25
5장 22절에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_에베소서5:22
여기서 아내는 누구에요? 크리스천 아내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아내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_에베소서5:23-27
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내어준 것처럼 아내를 뜨겁게 사랑하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교회를 세우사. 여러분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사도바울이 하고 있습니다. 왜 교회를 세워야 되냐? 왜 우리에게 교회를 세우라고 하냐? 고린도후서 6장 11-18절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_고후6:11-13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죠? 그러면서 14절부터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_고후6:14-16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아내들이 남편을 믿음 안에서 존경하고 남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희생하면서 아내를 사랑해서 가정을 세워야 교회가 세워지고. 이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세상의 것들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거룩해지고 우리의 삶이 변화된 새 삶으로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세워져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고 주의 복음을 우리 자녀들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인권 문제, 교회가 다루어야 하는 수많은 문제의 본질, 이유는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복음으로 여성들이여 해방 받아라. 맞아요. 해방 받아야 합니다. 교회가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거기서 더 나아가서 그 목적은 상실해버리고 그 은혜는 잊어버리고 여성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고 그릇된 전통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교회에 그릇된 권위, 그릇된 권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왜 장로를 세우고, 왜 목회자를 교육해서 신학교를 보내서 세우는지 모른다면 우리는 전통, 권리만 남고 진짜 해야 될 사명은 우리가 거룩해지고 변화 받아서 세상에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되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주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하며 우리 자녀들을 믿음으로 세워야 되는 일을 상실해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우리가 축복 받으려고 우리의 권리를 찾으려고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닌데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지금 고린도교회 여성들도 복음으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성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자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얼마나 축복되었어요? 감사해요. 로마나 세상에 오해를 받을 만큼 대단한 개혁을 한 게 맞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도바울이 얼마나 많은 핍박을 당한지 모릅니다. 그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걸 넘어서 그것이 복음이 되어버려서 문제인 것입니다. 잘못된 전통을 고쳐서 올바른 전통을 만들면 좋은데. 이 올바른 전통이 또 잘못된 전통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십니까? 로마 가톨릭이 문제 있습니다. 여러분 천주교는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개신교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개신교회가 개혁해서 다 맞습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개신교회를 리폼드쳐치, 계속해서 개혁해가는, 개혁되어가는 교회. 개혁이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또 타락합니까? 로마 가톨릭보다 더 타락한 교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이것을 우리가 놓쳐버리면 지금 바울이 그걸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꾸 우리도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우리 교역자, 장로님들도 우리 교회는 깨끗한 교회, 우리는 저들과 다르고. 우리도 끊임없이 개혁해야 되고 끊임없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복음을 주셔서 죄에서 벗어나고 예배하고 경배하고 말씀을 심부름하고 그래서 교회와 가정을 세우는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그렇잖아요. 우리가 자유하다 그런데 그 자유를 어디에 써야하나. 썩어져가는 구습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했더니 동성애를 즐기고 교회 성도들이 오히려 우상 재물로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성찬식 하라고 그랬더니 포도주에 취해가지고 신고가 들어오고. 에베소서에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서로 참된 것을 말하라. 복음을 말하라. 여러분 교회를 세우도록 남편도 아내도 은혜를 받고 각자 역할을 하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안 받으면 사람은 금방 교만해집니다. 나 혼자 잘 살 거야. 아닙니다. 은혜 안 받으면 그 마음이 교만해지기 때문에 절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나는 술도 안 먹고요, 나는 혼자 아무 죄도 안 짓는데요? 그거와 상관이 없습니다.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지난 금요일 밤에 말씀을 나누었지만 가정이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그런데 가정이 왜 무너지죠? 믿음으로 사는 엄마, 아빠,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허황되고 세속적이고. 예수님 믿고 더 심해졌습니다. 세속적이고 허황된 것이 말입니다. 예수님을 왜 믿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_고린도후서7:1
이게 신앙입니다. 이게 교회입니다. 복음으로 우리 마음을 넓게 열라고 합니다. 심정이 좁아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런 이야기합니다. 불신자가 쳐다보던 말든 내가 알아서 옷 입고 내가 알아서 말하고 행동하고 다니는데 뭔 신경 써. 은혜 안 받은 분들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옷을 왜 입죠? 제가 양복을 불편한데 왜 입죠? 주일에? 남을 위해서 입는 것입니다. 저를 위해서 입는 것이 아닙니다. 옷은 남을 위해서 입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입을 때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이 진짜 옷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자유를 위해서 산다, 내 행복을 위해서 내 마음대로 산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은혜 받은 사람이라면 우리의 말과 행동, 우리의 모든 삶이 무엇을 위해서 해야 되느냐? 내가 빛과 소금이 되어야지, 내가 거룩해져야지. 그게 아닙니다. 은혜를 받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은혜를 받으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절대 죄악 속에 살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내 아내를 폭행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내 남편에게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교회를 외면할 수 없고 가정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김활란 박사님처럼 미국에 가서 진짜 눈물로 공부해서 왔잖아요. 얼마나 힘들게 공부하고 왔는지 자기가 수도 없이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있는 수많은 여성들과 억압당하고 짓눌러 있고 은혜 받고 복음 받아야 하는데 멋있는 여성으로 살아야 하는 게 그거 생각하고 참고 공부했다고 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왜 그렇게 살 수 있냐? 은혜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복음이 너무 감사해서 내 조국, 우리 자녀들에게 너희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매 맞아가면서 억압당하면서 살지 말라고 너희는 공부하라고 그래서 이화여대 총장이 되어서 여성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우리가 은혜가 받은 것을 그 은혜를 받은 목적을 상실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는 절대 전통이 될 수 없습니다. 좋은 전통을 패기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은혜가 권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우리의 권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거저 받은 거 거저 주라고 사도바울이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과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자. 그것이 가정을 세우는 것이고 우리가 교회의 지체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고 그런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세상에 영향을 주는 세상에 복음의 영향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교회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7-17 주일예배 (1) | 2022.07.17 |
---|---|
2022-07-10 주일예배 (0) | 2022.07.10 |
2022-06-26 주일예배 (0) | 2022.06.26 |
2022-06-19 주일예배 (0) | 2022.06.20 |
2022-06-12 주일예배 (0) | 2022.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