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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메세지

2024년 송구영신예배 2강

송구영신 2강

-선교적 교회: 마주앉고, 사도행전11:1-19

[본문 설명]
• 우리가 교회가 복음을 이 도시, 세상에 마주하고 전해야 하는데 정말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832년에 조선 땅에 처음으로 발걸음을 내딘 선교사가 귀츨라프라는 선교사입니다. 이 선교사는 역사적으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라는 타이틀이 주어져서 유명합니다. 홍콩에 가보니 귀츨라프 거리도 있더라고요. 그가 서해 고대도라는 섬(혹은 원산도라고도 하고)에 20일 간 머물러 있으면서 주민들에게 성경, 전도문서, 서적, 약품 등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서양감자와 포도주 재배법도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참 감사하고 귀한 발걸음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원래의 목적지인 중국 선교를 위해 떠납니다. 
• 참 역사가 정말 무서운 것은 귀츨라프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습니다. 루터교 선교사지만 그가 중국에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하는 부분에서 막힌 문을 뚫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중에 런던선교회 소속이 되어서 선교사로 활동합니다. 그때 마침 영국과 중국은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중국의 귀한 차와 비단을 가지고 와서 팔아서 영국 사람들 창고마다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영국의 상업하는 사람들은 금은 보화를 전부 중국에 내어준셈이죠. 그걸 그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편(마약의 종류)을 중국에 팔기로 합니다. 그런 일에 쓰임받은 사람이 바로 귀츨라프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중국어에 그 누구보다 능통한 사람입니다. 선교를 위해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 공부했던 그가 중국에 들어가기 위해 마약을 판매하는 상선에 오릅니다. 
• 중국이 기독교를 거부하는 것은 공산주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마약을 제공한 기독교라는 인식이 강하게 있습니다. 선교사가 마약을 판매했습니다. 귀출라프는 스스로 복음을 중국에 전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 그럼에도 중국에 삼자교회나 지하교회등 어마무시한 기독교가 있는 것은 허드슨 테일러와 같은 선교사 때문입니다. 그는 귀츨라프와 다르게 중국인의 옷을 입고 그들의 음식을 먹으면 복음을 전했습니다. 중국선교할 아내를 만나 아이들을 낳았지만 병으로 아이들과 아내까지 먼저 보내고 결국 중국 땅에서 뼈를 묻게 됩니다. 
•  본문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고넬료라는 사람의 집에 가서 세례를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예루살렘교회 즉 초대교회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의 공동체였기 때문에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는 것도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세례를 받아 예수님을 믿는 교회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구약의 율법들을 지키는 유대교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줍니다.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 기는 것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냐? 잡아 먹으라! 베드로가 이야기합니다.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라고 합니다. 베드로가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 아시죠?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의 의인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한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느냐? 그래서 고넬료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함께 하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라고 합니다. 그가 경건한 자라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 그리고 실제로 베드로는 세례를 베풉니다. 온 집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는 그 베드로의 간증 조차 듣기 싫합니다. 그리고 19절부터 안디옥교회가 조명됩니다. 바울의 사역이 조명됩니다. 

[바울과 예수님의 사역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었습니다.]
• 바울의 사역은 참 다양했습니다. 사도행전13장에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주로 있는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고, 13장에서는 루스드라라는 지역에서는 서민층이자 다신론자들이었던 자들에게는 오래된 미신과 교육을 받지 않아서 그들에게 맞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17장에서는 아테네에서 교육 수준이 최고로 높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20장에서는 밀레도에서 그리스도인 장로들에게 고별설교를 합니다. 21장부터 22장까지는 예루살렘의 적대적인 유대인 군중앞에서 설교를 했고 마지막 24-26장은 이방인의 리더들인 가이사랴, 벨릭스, 베스도, 헤롯 아그립바에게 설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 바울은 죄에 대해 말할 때에는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이 그들을 의롭게 할 수 없다고 말했고, 도덕적 노력이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고 명료하게 이야기합니다. 사실상 바울은 성경을 믿는 신자들에게는 ‘여러분이 선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선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 반면 이방인 회중에게는 우상의 헛된 것과 일을 버리고 기쁨의 참된 원천이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을 섬기라고 설교합니다. 그러면서 실상은 ‘여러분은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죽은 우상에게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말씀과 공동체안에 참된 자유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 예수님의 사역이 모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에서는 우물가의 여인에게 자신의 죄를 깨닫도록 율법의 문제가 아닌 영혼의 갈증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합니다. 그런데 3장에서는 니고데모와 율법의 논쟁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시죠. 대립되는 장면입니다. 
• 이처럼 생명의 복음은 변치 않는 진리이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마주하는 도시와 문화는 다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도시와 문화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그래서 이것을 상황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한가지 모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복음이 진짜라면 하나님의 우리의 달란트 즉, 우리의 인생을 사용하십니다. 
• 그런데 어떻게 사용하실까?
• 금요일에도 말씀을 나누었지만, 가장 먼저 은혜의 복음을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안식이 있는가입니다. 우리 인생에 진정한 답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우리는 변화되려고 노력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이 도시와 문화를 공부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이 도시와 문화와 마주하고 기쁜 소식인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 저는 우리가 그런 과정을 준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인간 마음에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위로이고 무엇보다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헤피엔딩이 유치한 예술 작품에서나 나오는 것이라고 믿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비평가들은 삶이 그렇게 녹록치 않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헤피엔딩을 꿈꿉니다. 유명한 배우의 말로가 끔찍한 한주였습니다. 그러나 금방 잊혀지고 또 헤피엔딩 영화속 아름다운 모습을 동경하고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깨어짐과 모순, 역설, 좌절로 가득찬 인생은 거부하려고 하죠?
• 스티븐 스필버그는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 많은 감독이었지만,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기전까지 오스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해피엔딩 영화로는 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동화같은 마무리로 끝나는 영화에 사람들이 몰리죠. 인간의 깊은 동경, 죽음을 피하고 영원히 사는 것, 외계인이나 천사같은 다른 인격적 존재와 교류하는 것, 아이언맨같은 첨단 과학기술 발달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것, 영혼을 온전히 치유하고 결코 이별 없는 사랑이야기등..우리는 대부분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악을 영원히 끝장내는 승리에 동참하길 원합니다. 
• 그런데 아시나요? 복음은 인생에 결코 감상적인 관점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사실 성경은 어느 비평가보다 더 어두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성경은 사탄과 마귀의 무리가 세상에서 일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고, 우리에게 깊은 오류와 잔인함이 있어서 하나님의 개입없이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 그럼에도 복음은 사랑과 죽음과 승리에 대한 열망들보다 더 충격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첫째, 복음은 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설명합니다. 인간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원래 지음 받았다. 우리는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다. 둘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강력한 증거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당신은 죽음으로부터 탈출과 이별없는 사랑, 악에 대한 승리를 보고 알게 될 것이다. 외계인이 아니라 천사들과 대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살 것이다. 
• 그러면 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는가? 기쁜 소식이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기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버림받아서 악에 대해 승리할 것입니다. 그가 고문받고 살해당하시고 패배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열망하던 해피엔딩이 동화가 아니라 영화가 아니라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 이 복음을 우리는 이 도시에 전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 이 도시에 사역하기 위해 4가지 기회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첫째, 젊은 세대입니다. 도시의 특징 첫번째는 바로 젊은이들입니다. 전국에서 성공하고자 기회를 얻고자 문화를 즐기고자 모여드는 젊은이들이 우리의 선교 대상자입니다. 둘째, 문화를 이끄는 사람들입니다. 이 그룹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업, 출판, 미디어, 학문, 예술의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는 이들은 이 도시의 삶을 결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문화와 접촉하고 이들이 이 도시에서 교회가 되도록 섬길 것입니다. 셋째, 접근 가능한 미전도종족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이 분야가 생소할 것입니다. 서울에만 해도 약23만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습니다.(한국 전체는 약 195만명), 경기도는 약 36만명입니다. 우리가 매년 네팔에 가서 선교를 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한국에 노동자로 들어와서 복음을 듣고 목사가 된 따루목사님때문입니다. 네번째, 기회는 바로 빈곤층입니다.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이러니하게 빈곤층의 대다수가 도시에 있습니다. 우리는 도시의 엘리트들을 전도하는 것과 빈곤층을 섬기는 것 사이에 중요한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빈곤층을 섬기는 사역은 교회의 타당성의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선한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문화적 엘리트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와 제자가 된다면 그들의 방향이 전환이 됩니다. 자신들을 위하는 대신에 빈곤층과 도시의 필요를 위하여 그들의 부와 힘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도시 교회는 빈곤층에 대한 사역과 엘리트에 대한 사역 사이에 양자택일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빈곤층을 섬기기 위해 엘리트들의 경제적, 문화적 자원이 필요합니다. 
•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 공동체는 공부를 하면서 가려고 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 콘서트는 그 공부의 과정이었습니다. 콘서트 후원만 3-400만원이나 하셨다고 합니다. 교회 재정을 하나도 쓰지 않고 우리는 청소년 무브먼트라는 빈곤층을 섬기기 위해 알리며 또 그들에게 위로를 전해준 콘서트를 진행했습니다. 모두 복음을 전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말씀이겠죠. 이번 콘서트로 인해 주변 교회와 참여하신 분들은 아마도 많은 여운이 마음에 남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일 제가 설교를 했거나 혹은 우리가 성탄절에 우리의 잔치를 했다면 그런 여운이 있었을까요?
• 이 도시를 섬기기 위해 우리 공동체는 앞으로 믿음의 발걸음을 제법 멋지게 걸어가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멋지셔야 합니다. 도시 사역자가 되어 이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하나님앞에 홀로 서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항상 듣고 새로운 은혜로 살아가는 영적인 준비와 이 도시를 섬기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앞으로 다양한 그룹들이 우리 교회에 세워지고, 다양한 도시와 접촉이 드러나, 유일한 헤피엔딩인 복음이 전해지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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