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1,2부 예배
본문: 출애굽기 13:17-22
제목: [모세 11] 광야를 지나며
찬송: 254장(내 주의 보혈은)
1. 이스라엘 자손이 군대라고?
• 성경은 이제 갓 노예의 신분을 벗어난 이스라엘 자손을 군대로 묘사합니다.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_출애굽기 12:41’
•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출애굽 이후의 모습은 피난 행렬이 아니라 군대의 행군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대장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후에 곧장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신분은 바로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군대로 변화를 경험했지만, 하나님의 군대 다운 삶을 갖추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종 노릇하던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군대로 신분을 바꾸어주셨지만 우리에게는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한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 애굽에서 빠져 나올때 가나안으로 갈 수 있는 길은 크게 2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첫번째 길은 바란 광야를 가로질러 네게브 지역을 통과해서 가는 길로 해안평야지역인데 가장 최단 경로입니다. 그러나 이 땅은 당시 애굽과 견줄만한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지나가야 하는 길입니다. 두번째 길은 왕의 대로로 알려진 시내 반도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길로 전쟁의 위험이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은 네비게이션으로 검색되지 않는 새로운 경로였습니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길이 아니라 더디고 먼곳으로 돌아가는 경로이며 심지어 홍해도 건너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 자손의 수준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무력 충돌을 겪게 되면 용감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전투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로 살더라도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애굽으로 돌아갈 정도의 수준 밖에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삶의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힘들고 어려운 길로 인도하시는 분명한 의도가 있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삶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_출애굽기 13:18’
• ‘대열을 지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전투 대형을 이루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하게 줄 맞춰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군인들처럼 행군하는 모습으로 전쟁을 치루러가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여기에는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도 아이들도 전부 하나님의 군대로 여기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행군과도 같습니다. 향방없이, 목적없이 시간에 등 떠밀려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발맞춰 착착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네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경로를 선택하듯 인생의 성공의 길, 자녀 양육의 길과 같이 내가 먼저 설정해 놓고 하나님이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연약한 이스라엘 자손의 행군 방향을 가나안이 아닌 홍해의 광야 길로 변경하셨습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_출애굽기 13:17’
• 성경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길을 광야 길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사실 광야 길은 네비게이션에 없는 길입니다. 한번도 누구도 가본적이 없는 길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이끄시는 이유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기초훈련을 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2.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훈련 장소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은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_출애굽기 13:19’
•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다급히 빠져나왔지만, 요셉의 유골을 잊지 않고 챙겨 나왔습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어 부와 권력을 누렸지만, 그는 결코 애굽 생활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평생 꿈꾸는 사람이었고 그의 꿈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삶이었습니다.
창세기 50:24-25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 요셉이 전한 꿈은 단순히 가나안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을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돌본다’는 표현이 2번이나 반복적으로 강조되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400년 이상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언약백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즉, 애굽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을 먹이시고 입히셨으며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70명 뿐이던 자손들은 200만명이 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온 것은 출애굽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게 될 것을 나타냅니다.
• 요셉의 꿈은 이스라엘 백성을 반드시 돌보시고 또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_출애굽기 13:20’
• 지도를 다시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출애굽하여 나일 강 하구의 숙곳을 지나 광야 끝 에담에 진을 쳤습니다. 여기서 ‘떠나서(미완료형)’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미완료형으로 계속 이동하는 장막생활을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400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장막을 펼쳐 얼마간 머물다가 다시 장막을 정리하고 이동하는 생활은 너무 불편하고 힘든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곧장 가나안으로 가면 2주도 걸리지 않을 텐데 왜 이런 불편하고 힘든 과정을 거치게 할까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제공하고자 하신 것은 안정된 주거환경이 아니라 영원한 거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모세는 시편 90편에 하나님께서 대대에 이스라엘 자손의 거처가 되십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출애굽기를 통해 어디서 살 것인가? 가 아닌 어떻게 살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_출애굽기 13:21’
• 이스라엘 앞에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한 광야였습니다. ‘그들 앞에서 가시며’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걷다 라는 의미에서 나오는 표현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시기 위해 앞장서서 걷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행군을 하는 긴 대열의 선두에 하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새로운 길을 내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 보다 앞서 가셔서 스스로 길이 되어주셨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시는 행군의 선두에 위치한 깃발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명령만 내리신 것이 아니라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3. 신앙생활은 (선택)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 아브라함과 롯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의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순종하는 삶입니다. 롯은 선택했습니다. 화려한 성을 선택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하나님의 진노가 예정된 곳입니다. 아브라함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순종으로 어려운 길을 걸어가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가문을 축복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서 아니하니라_출애굽기 13:22’
• 결핍으로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중에 광야의 곳곳에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또 애굽을 그리워합니다. 마라에서, 르비딤에서, 므리바에서, 가데스바네아에서 수도 없이 훈련을 받습니다.
• 물리학에서 ‘차가움’은 열의 부재일 뿐입니다. 어둠은 없습니다. 빛의 부재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승리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시길 원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교회는 그런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열정을 다시 회복하고, 빛을 다시 회복하고, 열을 다시 회복하려고 합니다. 어둠과 싸우지 마세요. 빛을 가지고 오면 끝납니다. 죽음은 생명의 부재입니다. 이 땅에서 마지막 호흡을 내시고 눈을 뜨면 하나님 품에 안길 것입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에도 토요제자훈련을 하게 되고, 신앙생활 기초훈련도 다음주 부터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함께 훈련 받으셔야 합니다. 그 훈련과 여러분의 삶이 연결되어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군대로 승리하길 원합니다. 버티고 견디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냥 하나님이 하시겠지 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겠지 하고 살면 400년 노예생활하는 것 밖에 안됩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 앞에 선두에서 인도하는 삶으로 훈련 받아 세워져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에게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죽으심이 내게 진짜 은혜가 되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정통교회가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정통은 사이비나 이단에 반대되는 것이겠지만 저는 우리교회가 구원의 은혜가 있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도 성령을 받고 나서야 회개했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따랐습니다. 우리 인생에 광야는 주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으로 여러분이 깨닫는 다면 그것이 진짜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_히브리서 10:19-20’
• 광야를 지나면서 예수님을 만나기를 축복하고, 그분만 따르고 그분을 통해 살길로 나아가길 간절히 바라고 원합니다. 여러분 인생마다 힘들고 어려운 광야를 지나고 계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오늘 말씀이 큰 위로가 되고 또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신앙인들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네 삶의 역경들이 우리를 둘러싸는 것 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선두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르며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님의 몸된 교회로 세워지길 기도하는 한주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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