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예배>
일시: 2014년 10월 10일
제목 : 항상 찬송하는 인생되게 하소서
말씀 : 시편 35:27-28
설교 : 오승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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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교회 금요예배 20141010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Ⅰ. 주님은 우리의 News다.
기자가 뉴스를 먼저 보도하면 시사해설 같은 것들이 뒤를 잇습니다. 보도되지 않은 뉴스는 해설할 수가 없습니다. 뉴스는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전달되어야 설명과 주장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첫 번째는 중요한 이슈는 뉴스입니다. 어느 누구의 사상이기 전에 이미 일어난 사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사건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죄를 모르는 예수님에게 우리 죄를 대신 씌우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됨으로써 하나님과 교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될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구원받게 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온갖 박해 속에서도 우상의 나라 로마제국에서 그 사실을 가만히 감춰둘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은 그 사실을 외치고 있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그레샴 메첸(J. Gresham Machen)의 ‘초월적인 하나님’이란 책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사로운 생각이라면 사람들에게 전파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보다 더 똑똑하고 학식이 풍부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한 도시가 적국에게 포위당했을 때 과거에 도시 하수구를 수리한 한 무식한 노동자의 경험 덕분에 탈출구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된다면, 그의 말이 어느 누구의 말보다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위험에 빠져 있을 때는 뉴스를 전하는 메신저가 철학자보다 백배 낫습니다. 그 메신저가 사투리를 쓰든 안 쓰든, 외모가 초라하든 수려하든 이웃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그는 너무 귀중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뉴스를 듣고 생명을 건진 평범한 사람들은 이 말에 수긍할 것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자신이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뉴스를 전파하기가 때때로 어렵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생명과 소망과 영원한 기쁨을 주는 뉴스를 전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_누가복음2:10-11’
Ⅱ. ‘항상 찬송하는 인생 되게 하소서’
그래서 신앙생활의 분명한 목표는 항상 찬송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창조하실 때 우리를 통해 찬송받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인생이 되는 것은 우리가 많은 것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단순히 찬양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교회를 다니라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찬송한다는 것은 우리에 우리 주님이 뉴스가 되어 전하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응답이 계속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구원받은 신앙생활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에 어패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은 하는데 구원 받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니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뉴스를 전하지 않고 삽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주님을 만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만나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어떻게 주님을 만납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제품에는 제조자가 만든 사용설명서가 있습니다. 그 설명서를 무시하면 제품을 망가뜨리게 마련입니다. 고가의 제품일수록 제조자가 제공한 설명서의 내용을 더욱 철저하게 따릅니다. 값비싼 제품 사용설명서를 놓고 ‘이 내용은 분명히 거짓말일 거야’ 하고 불신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품을 만든 제조자가 제품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신 것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 사용설명서가 됩니다. 이 세상의 제품은 아무리 사용설명서대로 사용해도 언젠가는 수명이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 사용설명서인 성경은 영원한 사용법입니다. 그 사용법을 따르면 인간의 죽음은 종착역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됩니다. 영원한 사용법을 좇아 참된 생명으로 건져 올려진 자는 이미 영원에 접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믿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 중심을 다해 품게 됩니다. 그것만이 참된 생명가진자의 존재이유인 까닭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곧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인간 세상 속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로고스, 즉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지 사흘 만에 사망을 깨트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신을 영원한 생명으로 건져 올릴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눈먼 자의 눈을 열어주고, 보지 못하는 자를 보게 하셨습니다. 귀머거리의 귀도 뚫어 주셨습니다. 듣지 못한 자에게 들을 수 없던 것을 듣게 해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 변방 중의 변방인 갈릴리 호숫가의 빈민, 일자무식꾼에 지나지 않았던 어부들을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하는 당신의 제자로 세워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보잘것없던 자에게 할 수 없던 것을 해주신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만 들리고, 아는 만큼만 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 자, 그분을 인생의 주인으로 자기중심에 모신 자, 그분의 생명의 말씀을 온 중심으로 품은 자는 평소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실은 쇠퇴와 소멸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 구원받은 자는 영원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영원한 것 속에서 진정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은지,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지,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피해야 할 것인지를 확연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인생의 해답이라 합니다. 구원받은 자로 신앙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말씀과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결국 쇠퇴하고, 소멸될 것입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_시편35:9-10’
2. 신앙생활은 기도생활
그렇게 인생의 사용설명서인 말씀으로 신앙생활이 시작되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의 과정은 기도생활입니다. 기도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기도에 관한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제 등산을 다녀왔습니다. 가을산을 가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제대로 잠도 못자고 꽤나 먼 길을 출발했습니다. 가는 동안 제 머릿속에는 ‘아, 피곤하다. 할 일이 너무 밀렸는데, 잠이나 잘걸.’이런 생각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 생각은 고된 등산로를 오르는 동안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산 중턱을 지날 쯤 너무 상쾌한 공기와 아름다운 가을 경치가 제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주었습니다. ‘오길 잘했어’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니 이내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로 바뀌었습니다. 저와 함께 한 일행들도 한결같이 지금쯤 집에 있었으면 잠이나 자고 있었을 텐데 오길 잘했다며 좋아했습니다.
생각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생각이 늘 불신앙, 원망과 부정적인 것들 투성이라면 그것은 믿음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생각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깨우쳐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생각도 바뀌게 됩니다. 환경이 바뀌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상 이 땅을 살아가는데 환경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오히려 문제가 많아지는 말세를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마음은 어떻습니까. 마음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이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의 뿌리, 믿음의 뿌리, 은혜를 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과 생각이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이 기도생활입니다. 곧 신앙생활입니다. 주님께 주추를 두어 사는 인생에 기도는 어쩌면 주님께 내 인생을 맡기는 믿음의 고백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이 매일, 매순간 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치열한 영적전투현장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믿음을 생각과 마음에 담는 것입니다.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것도 기도이고 특별한 행위도 기도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과 마음을 고쳐먹어 주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다윗이 주께 쓰임 받은 이유는 자기에게 악으로 대한 저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병들었을 때 그들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나 나는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_시편35:12-13’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주님을 향하고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은 우리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힘들지 않냐고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힘들지 않도록 해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3. 신앙생활의 결론은 찬송하는 인생
신앙생활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다윗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한 계획을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함부로 싸우지도 않았고, 자기를 음해한 세력들을 함부로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다윗은 어려움이 시작되는 때에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_시편35:27-28’
사실 광야에서 생각하기 싫을 만큼 끔찍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다윗은 이 말씀을 지켜내려고 끊임없이 고백을 하였습니다. 의를 말하고 종일 주님을 찬송하는 고백을 지키려 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신앙생활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고백, 삶이 따로 이지 않습니까. 그가 구원받은 은혜를 알기에, 또 생각과 마음에 믿음을 담아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했기에 그의 인생 찬송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소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의를 즐거워하고, 평안함을 주시는 여호와를 위대하시다 하는 말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 큰 축복이 또 어디 있을까요? 여러분의 인생이 그런 인생 되길 축복합니다. 가스펠 가족들이 ‘여호와는 위대하시다’라고 찬송하는 증인들 되길 기도합니다. 그래야 이 생명의 말씀, 곧 우리 주님을 뉴스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주님의 뉴스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구원받은 신앙생활의 참된 가치를 알고 믿음을 잃지 않았던 다윗의 신앙을 봅니다. 주님 우린 어쩌면 우리는 더 힘든 세상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네요.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더 많은 신앙의 갈래가 있으니 우리는 너무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을 우리 인생의 사용설명서로 주신 것을 압니다. 그 말씀 따라 생각과 마음을 고쳐먹어 우리 인생 그 세상 속에서 찬송하는 인생이 되게 해주세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멋진 인생을 살아 우리 후대들에게 참 신앙을 전달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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