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예배>
일시: 2014년 11월 07일
제목 : 주와 함께하는 나그네 인생
말씀 : 시편 39:1-13
설교 : 오승주 목사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ANfOLt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11218752
가스펠교회 금요예배 20141107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Ⅰ. 인간의 주제파악
길이 여러 갈래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맞는 길로 가면 좋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살아도 된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이 땅에서 누리고자 하는 어떤 소망도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줄 수 없습니다. 다윗이 은혜를 받은 것은 그가 의롭거나, 완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주제파악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1. 한 뼘 길이밖에 안 되는 나의 날_시편39:4-5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_시편39:4-5’
인생의 날이 한 뼘 길이밖에 안됨을 안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시간표에서 보면 빨리 죽으나 늙어서 죽으나 똑같은 것입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여 든든하게 서있는 듯 하나 모두가 허사입니다. 결국 우리는 주저앉게 되어있습니다. 병이 들어 그렇든, 나이가 들어 그렇든 어떤 이유에서 간에 인생의 말미에는 주저앉게 되어있습니다. 영원이라는 시간표 속에서 우리 인생은 참으로 짧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것만 깨달아도 인생을 소중히 여길 것인데 그렇지 않는 것은 세상이 주는 착각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을 줍니다.
2. 그림자 같은 인생_시편39: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_시편39:6’
우리 인생이 그림자 같다고 표현합니다. 사람들은 그림자 같이 다닌다고 고백합니다. 그림자는 형체가 없고 무의미한 것입니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그림자 같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역사를 창조한 듯, 인류를 만들어가는 듯, 엄청난 개발은 한 듯 하나 실상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절대 불가능한 일들입니다. 그리고 사실 하나님은 그 일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러니 헛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강력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 일대의 모든 나라를 차지했습니다. 나가는 전쟁마다 승리했습니다. 자신의 아들 솔로몬은 전쟁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는데 하나님이 비웃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대단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부자가 없습니다. 공부를 많이한 지식인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이 땅의 많은 교회들이 그런 실수를 합니다. 목회자가 설교를 잘해서 부흥합니까? 기도를 많이 하니까 부흥합니까? 프로그램이 좋아서 부흥합니까? 맞습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같잖은 것입니다.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보지 않으면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과 방향이 맞지 않으면 헛된 일이고, 소란을 피우는 것밖에 안됩니다. 재물을 모으나 누가 거둘지도 모르는 재물을 모으는 것입니다. 이 땅의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이나 많은 명예를 가진 정치인들이나 많은 지식을 가진 학자들이 진정 영적인 것을 알지 못하면 그들의 인생이 그림자 같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 전부 쇠망하고 반드시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3. 쇠망하고, 소멸되는 인생_시편39:10-11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_시편39:10-11’
결국 악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악인들에 대해 부러워하거나 혹은 분노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할 것 같고, 그들이 자신들을 과신하여 소란을 피우나 모두 소멸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끝은 사망입니다. 그러니 인생이 참 헛되고 헛됩니다. 소멸될 것들을 붙잡은 인생은 그 인생도 소멸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붙잡아야 하는데 쇠망한 것을 붙잡으니 그 인생도 쇠망하는 것입니다. 헛된 것을 붙잡고 소란을 피우며 사는 그들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Ⅱ. 다윗의 깨달음
1. 주님 앞에 사는 인생_시편39:1-3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_시편39:1-3’
우리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어느 나이가 되면 어느 정도에 오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다 생각하면 교만해서 오히려 괴물이 됩니다. 괴물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그런 신자들이 많기 때문에 괴물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다윗이 그럴 때에 하나님이 치셨습니다. 어찌 하나님 앞에서 완벽할 수 있겠습니까. 개, 돼지, 소 같은 짐승이 아무리 완벽하게 살려 해도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을 합니다. 오만한 자가 되어버립니다. 주님 앞에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이용하여 또 세상방정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했다고 생각하니 축복받은 사람이 결국 다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것을 경험하고 자신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합니다. 악인을 보고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하고 내가 맞으니 올바른 소리다 하여 말하지만 그것이 상처가 되고,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말씀을 묵상하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주님 앞에 사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인생입니다. 제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말씀이 들리면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묵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묵상을 지식적으로 하면 은혜와 평강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식만 많아져서 오만해집니다. 그런 사람은 누군가 자존심만 건드려도 무너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세요’ 라고 말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은혜와 평강이 임합니다.
주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묵상은 묵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은밀하게 주의 음성을 듣거나 말씀을 묵상하여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지 않고 자기 의로움과 자기 열심으로 할 수 있는 신앙생활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다른 어떤 훈련보다 좁은 길입니다. 다윗은 말씀을 읊조렸다 했습니다.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누군가 알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내적인 것입니다. 다윗은 그 말씀을 묵상함으로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재물을 모으는 사람들, 세상에서 잘났다고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 인생이 영원할 줄 알고 사는 사람들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힘듭니다. 그래서 다윗도 괴로웠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 여러분보다 어려운 사람이 오면 말로 내 뱉지 않고 기도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전도를 쉽게 하려 합니다. 말로 때우려 합니다. 하지만 진짜 사랑한다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선한 말도 참았습니다. 여러분 묵상의 꽃은 적용입니다. 시간 내서 말씀 읽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했으면 실천하려고 해야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는 주일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데에서 끝내버립니다. 그 말씀을 적용해서 갈등을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 생각, 지식으로 풀려 합니다. 그런 묵상은 오만한 자, 교만한 자를 만들 뿐입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자녀인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루를 살고자 하는 결단이고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날마다 이어지는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끊임없이 말씀을 통해 내 죄를 찾고, 묵상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이런 묵상이 습관이 될 때 내게 있는 은밀한 죄의 모든 습관을 물리치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말씀의 인도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것이 주 앞에 사는 인생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믿음이 나타나는 삶입니다.
2. 주님이 소망이 되는 인생_시편39:7-9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_시편39:7-9’
우리가 복음, 복음, 복음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오해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잘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를 성공시키기 위해 세상방정식대로 복음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성공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악한 세상과 구별되어 건지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자기 몸을 드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합격복음, 성공복음, 인정복음 같은 잘못된 신앙방정식을 좇아 교회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주님이 소망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나라에 두고 말씀의 원칙을 붙들 때 의식주를 해결해 주십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가 문제가 아닙니다.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우리가 얼마만큼 헌신하는 가가 문제입니다. 그것이 흔들릴 때 내 삶이 요동치고 내 가정과 사업이 요동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공이 무엇인가, 해결책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고난에 대한 답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내가 예수님을 매일 만나고 있는가 입니다. 눈만 뜨면 세상은 전부 사단인데 겨우 예배한번 드리고, 헌금 좀 했다고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시험이 올 때마다, 사건이 올 때마다 지정의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지는 말씀 분별하는 것이고, 의는 의지적 순종하는 것이며, 정은 평안과 축복, 세상에서의 자유입니다. 악인은 행한대로 당하리니 미워하지도 말고 부러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악은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참 권세를 가지는 비결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주추를 주님께 두는 것입니다.
3. 주와 함께 하는 나그네 인생_시편39: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_시편39:12’
다윗이 이 땅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주님과 함께하는 나그네라 하는 것입니다. 봄, 여름, 가을, 이제 곧 겨울이 올 것입니다. 인생은 이처럼 빠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표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또 추억으로 쌓이게 됩니다. 그래서 멋지게 나이가 들고, 인생의 가치가 쌓여 감사할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 인생에는 시시때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찾아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힘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나의 목자, 내가 의지하는 대상이 여호와가 아니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시고 내 힘이 되시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해도 부족한 인생, 해를 당하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해를 당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누구를 의지하느냐에 따라 사망의 골짜기가 푸른 초장으로 바뀝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가장 큰 특권은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평안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들이 수많은 위기 속에서 꿈적하지 않고 주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상황이 변하지 않고 남편이 변하지 않아도, 자식이 변하지 않아도 내가 믿는 예수님 때문에 한결같이 기쁘고 감사한 것이 안식입니다. 우리는 혼자 힘으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통해 ‘함께 가자’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또 내가 누군가를 ‘함께 가자’고 초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그네 인생길을 갑니다. 그러나 종착지는 영원한 천국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들과 전혀 다른 길입니다.
Ⅲ. 건강한 신앙관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_시편39:13’
우리가 단 하루를 살아도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육신도 병실에 누워 오래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영적인 것도 그렇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떠나 죽기 전에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다른 것은 악착같이 하면서 예수 믿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족할 때 하나님께로 가게 돼 있습니다. 힘들어서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중의 축복입니다. 교회를 살아있게 하는 힘, 가정을 살아 있게 하는 힘은 고통 받는 한 사람의 기도입니다. 가장 고통의 때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갈 때에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교회를 살립니다. 가정에 위기가 오고 문제가 올 때 기도하는 사람이 가정을 살립니다. 이 땅에서 많은 것을 누리건 못 누리건 우리는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갈 나그네입니다. 그런데 말로는 나그네, 나그네 하면서, 잠깐 여행길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천국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힘들고 처량해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로서의 신분의식이 확실한 사람은 이 땅의 것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 집, 천국의 소망이 너무 좋아서 당장 가진 것, 못 가진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집에 둔 나그네는 아무리 좋은 것, 세상 것으로 유혹해도 안주하지 않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가까울수록 더 기뻐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가 신앙의 원칙을 지키면 하나님이 먹고 살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한 순종을 해야 합니다. 다윗은 그가 천국에 가기 전 나그네 인생동안 그런 건강한 신앙관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고난 중에서도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찬송까지 할 수 있는 근거는 붙들어야 할 언약, 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면서 우리의 소망은 헛된 소망에서 산 소망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것이 건강한 신앙관입니다. 가진 것, 입을 것, 거할 곳이 없어도 하나님의 유업으로 든든한 나그네는 험한 길에도 찬송의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돌아가 본 집은 천국입니다. 가난해도, 아파도, 무식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줄 것만 있는 인생입니다.
✔ 우리의 주소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선택하셨기에 이제는 나그네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내는 삶으로 응답받길 원합니다. 세상방정식대로의 성공이 아닌 매일 주님과 함께 은혜와 평강을 맛보는 참 성공된 인생을 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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