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예배>
일시: 2014년 12월 05일
제목 :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말씀 : 시편 43:1-5
설교 : 오승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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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13708973
2014-12-05 금요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Ⅰ. 때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시편43편은 지난 42편과 연결된 시편입니다. 다윗의 연결된 고백입니다. 우리는 오늘 시편을 묵상함으로 중요한 교훈을 또 얻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편할 것이란 생각을 문득 하게 됩니다. 인간관계의 문제를 만나고 갈등을 겪을 때 술 한잔하면 될 문제, 그냥 싸워버리면 되는 문제, 그냥 죽어버리는 되는 문제, 나만 생각하고 내 살길만 생각하면 될 문제라고 생각할텐데 예수님을 만나고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더 힘들단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목회자도 그렇게 생각하니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많은 목회자들이 속병이 든다고 합니다. 목회자로써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언행에 제약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교역자로 있을 때 못 느꼈는데 지금 그런 것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제 스승 목사님이 교회에서 화장실도 가지 못한 이유를 조금은 알 듯도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중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아니면 풀 길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하면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갑자기 고난이 올 때입니다. 다행이도 다윗은 그것을 깨달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런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젊은 나이이지만 주변의 많은 지인들을 병이나 사고로 잃었습니다. 그때마다 이유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왜 인간은 그토록 어리석어 하나님의 섭리를 못 깨달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주인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주인 삼으면 답이 보입니다. 저는 그것이 이제야 깨달아지기 시작합니다.
Ⅱ. 시편기자(다윗)의 갈등
1. 세상방정식대로 사는 자의 복_시편43: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_시편43:1’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가면서 하나님께 따지는 것입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불의하고 간사하게 사는 사람들은 세상말로 복 받고 사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나는 왜 이러한지 따지는 것입니다. 세상방정식대로 사는데도 복을 받는 사람은 왜 그럴까요? 저도 그런 생각을 수도 없이 해 보았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합리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 간사하고, 불의한 자들이 잘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에게도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는 대도 잘 먹고 잘 살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이 진짜 복일까요? 영적인 눈을 떠서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복인가요? 세상방정식을 움직이는 사단이 주는 복이 진짜 복인가요? 세상이 하나님을 떠나 타락했을 때 사단이 세상의 정사를 움직이고 권세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세상방정식을 움직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좋은 것을 다 줍니다. 때론 부럽기도 합니다. 최고의 것을 주기도 합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리석도록 생각될 만큼 최고의 것을 줍니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복입니까?
2. 믿는 자의 고난_시편43: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_시편43:2’
그런데 불신자들이 복 받는 것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믿는 자의 고난입니다. 다윗의 고난입니다. 하나님이 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혼자인 듯하고 버림받은 것 같습니다. 원수의 억압이 너무 슬프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고난이라 합니다. 예수 믿어서 생기는 고난이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진짜 그것이 고난입니까? 그리고 예수 믿기 때문에 생기는 고난입니까? 다윗이 정말 의롭게 살고 말씀 따라 살았는데 압살롬의 반역이 일어났습니까?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고난이 오면 남 핑계, 환경핑계, 심하게는 하나님핑계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못하고 문제가 있기에 하나님이 고난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 믿어서 그렇다고, 교회에 다녀서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그럴까요?
저는 이제야 알겠습니다. 모든 문제는 내게 있었습니다. 내가 문제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날 만들어 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켜 당신의 언약을 전달하는 자로 삼으시기 위해 훈련시키심을 알겠습니다. 사단의 종노릇하지 말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못 깨달으니 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다윗을 하나님만 온전히 바라보는 왕으로 세우시기 위해 압살롬의 반역을 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자신의 국가, 권력이 힘이 된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주님은 어디에 계시는 가_시편43: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_시편43:3’
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다윗이 착각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 입니까?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참 착각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주님을 만나고 계십니까? 정말 질문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현재형입니까? 지금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해석이 가능합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해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죽고 사는 것은 어쩌면 아무 의미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주님을 만나는가 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잘되는 것에 왜 배가 아픕니까? 왜 우리에게 주신 고난이 짜증납니까? 정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맞습니까? 주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삶 중심에 계시나요?
Ⅲ. 무엇이 신앙인가
1.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_시편43:4a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_시편43:4’
다윗은 고난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저들의 잘됨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고난 받는 이유가 중요하구나.' '아, 내가 한동안 하나님의 제단으로 나아가지 못했구나.' 우리는 비교하는 신앙이 아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신앙의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에 나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배입니다. 예배는 주일날 예배를 드리냐 안드리냐가 아닙니다. 예배가 드려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가 삶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예배하고 계십니까? 예배는 나를 재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에는 선택이 없습니다. 나를 드렸는데 어찌 선택을 할 수 있습니까. 예배는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밥 먹는 것을 우선순위로 하고 있습니까? 당연한 것입니다.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2.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_시편43:4b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_시편43:4’
두 번째,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큰 기쁨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쁨이 아닌데 제단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제가 신앙생활하면서 이제 조금 이해가 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저 교회 다니니까 좋더라. 사람들이 좋더라. 목사님이 좋더라.' 물론 그것이 신앙생활 하는데 중요한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신앙의 진수는 하나님이 좋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것을 열심히 해도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으면 언젠가 시험에 들게 됩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일하는데 하나님이 기쁨이 아니라면 그것이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인간관계로 넘어지기도 합니다. 사단이 주는 불신앙에 금방 속는 사람들은 신앙의 기준, 기쁨이 다른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교사도 하고 찬양도 하며 봉사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기쁨이십니까?
3.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_시편43:4c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_시편43:4’
신앙생활의 세 번째 중요한 요소는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수금으로 찬양했습니다. 전쟁통에 쫓겨나오며 그 당시 최고의 악기인 수금으로 찬양했습니다. 우리는요? 무엇으로 찬양합니까? 진욱 집사님처럼 목소리가 좋아야 찬양합니까? 진환집사님처럼 드럼을 잘 치니 드럼으로 찬양합니까? 맞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재능으로 함께 찬양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의 진짜 요소로 이 말씀은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내 삶의 모든 것을 다해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수금은 도구입니다. 내 삶이 찬양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직장에서 일하는 것,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께 찬양이 되기 원합니다. 원래 전도사, 부교역자라 하면 대접 잘 해주지 않습니다. 제가 전도사 때 중고등부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집사님이 항상 주일 아침에 목이 아플까 따뜻한 물과 또 담임목사님만 해드리는 물과 물수건을 준비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민망함에 제가 처음엔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도사님 때문에 하는 거 아니에요. 전도사님 통해 주시는 은혜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하시도록 가만 두었습니다. 모른 척 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신앙인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이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4.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_시편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_시편43:5’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신앙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이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답입니다. 이것이면 다 끝납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오든 불신자들에게 축복이 오든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다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답 중의 답입니다. 우리가 무엇에 소망을 두면 행복할까요? 돈입니까? 그러면 매일 싸우고 불안할 것입니다. 가족입니까? 직장입니까? 세상의 그 무엇입니까? 그러면 낙심이 됩니다. 건강입니까? 뭐든지 그렇습니다. 낙심이 될 것들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습니다. 저는 진짜 그런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으로 만족합니다. 주님이면 됩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으면 되는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주님을 만났을 때, 대학교 때 주님을 만났을 때 세상의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사랑해주시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새 때가 묻어서 동기도 많아지고, 계산도 하게 되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주님께 소망을 두면 됩니다. 우리 가스펠 교회가 주님께 소망을 둔다면 그것이면 됩니다. '소망을 두니 부흥할 것이다. 소망을 두니 축복받을 꺼다.' 그것도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척 하면서 계산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겉은 성전준비를 하는 다윗과도 같은 것입니다. 속은 불안한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이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좋고 하나님께 내 인생을 드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 마음이면 됩니다. 하나님이 뭔가 대단한 것을 원한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의 4가지 요소를 마음에 담기 바랍니다.
✔ 주님 우리는 늘 어리석게 세상을 동경하거나 내 자신을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어찌 예수를 구주삼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리 살았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필요한 가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제단 앞에 살길 원합니다. 하나님 온 힘을 다해 찬양하고, 하나님이 내 인생의 기쁨 되길 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으로 만족하면 살 때라야 내 자신도 보이고, 내 가족도 보이고, 내 이웃도 보이겠지요. 주님 우리가 이 땅에 주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옵소서. 세상의 방정식으로 살지 않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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