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구영신예배 1강 >
일시: 2014년 12월 31일
제목 : 칭찬과 명성을 얻는 가스펠교회
말씀 : 스바냐 3:14-20
설교 : 오승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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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교회 송구영신예배 1강 20141231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1년을 걸어온 가스펠교회의 첫 번째 송구영신예배입니다. ‘송구영신’이 뜻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김치도 묵은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새것만 찾는 시대에 지나고 나면 상관없다 하여 과거를 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과거를 발판삼아 우리의 여정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온 날들에 대한 감사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지나온 날들에 대한 회개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은혜도 있고, 새로운 날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송구영신예배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교회의 여정가운데 하나님의 시간표를 확인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인하는 예배가 되길 바랍니다. 그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두 성경을 선택하였습니다. 스바냐와 마태복음입니다. 스바냐는 제가 생각할 때 저희의 시간표와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이 시대에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타락하고, 지도계층이 타락하고, 더불어 백성들까지 타락했던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시아 왕을 통해 구약의 마지막 종교개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종교개혁이 우리 가스펠 교회가 감당해야 할 그릇 준비와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종교개혁을 하기 전에 어떤 상태였는지, 어떻게 그릇준비를 하였는지 보며 우리가 가야할 길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자 합니다.
Ⅰ. 스바냐: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시야의 종교개혁
1. 하나님의 경외하는 요시야와 선지자 스바냐에게 임한 말씀_스바냐1:1
‘아몬이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_스바냐1:1’
이 시대에 유명한 선지자 두 명이 예레미야와 스바냐입니다. 선지자 스바냐는 예레미야와 동시대의 선지자로써 선지자 시대의 마지막 세대이기도 합니다. 곧 선지자 세대가 끝나고 예수님이 탄생하기까지 긴 어둠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어둠의 세대이고, 타락의 세대이며 또, 우상의 세대였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요시야 왕입니다.
이 본문을 보며 어떻게 요시야 왕이 하나님을 경외했는지 신기했습니다. 아버지 아몬과 할아버지 므낫세왕은 악질이었습니다. 므낫세왕은 우상을 성전까지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의 아들 아몬은 그 우상을 널리 백성들이 섬기도록 재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에게 절하며 사는 시대였습니다. 그런 아몬의 아들인 요시야가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을까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을 보며 알았습니다. 요시야가 스바냐와 예레미야 등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시야 왕에게 종교개혁을 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시야왕은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것이 요시야의 종교개혁의 첫 번째 일이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는 거짓 선지자가 많았습니다. 그런 수많은 거짓 선지자 중에 하나님 앞에 모든 이익과 세상적인 것을 내려놓고 말할 수 있는 선지자 스바냐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2015년에는 더 많은 것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가스펠교회의 전부는 바른 말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를 만나고, 그 말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은혜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2. 불행한 신앙생활_스바냐1:6, 12, 17-18, 2:1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_스바냐1:6’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행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아무리 왕이 타락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백성이 한결같이 그 왕을 따랐기 때문에 하나님이 화가 나셨을 것입니다. 혹시 제가 타락한다면 여러분은 저를 책망해 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2014년을 되돌아보기 위해 이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신앙생활을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를 만큼 지금 우리는 언약에서 많이 벗어나 버렸습니다.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고 구하지도 아니하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먹고 살만하니 기도하지 않아도, 예배드리지 않아도 살 것 같지 않습니까? 예전처럼 여호와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그와 같았습니다.
‘그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_스바냐1:12’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가 어느 정도입니까? 마음속에 여호와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고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할 정도입니다. 하나님이 무관심한 상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버렸습니다. 그것이 저주이고 재앙입니다. 저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제게 두려운 한 가지는 하나님이 저를 떠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여호와가 사라졌습니다. 점차 종교적인 행위만 남고 마음속 믿음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피는 쏟아져서 티끌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같이 될지라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_스바냐1:17-18’
말씀을 보면 이들이 어떻게 신앙생활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은과 금을 쫒아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날에 내릴 저주와 재앙에 은과 금은 소용없다고 탄식하고 계십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 그렇게 삶을 살아가다 보면 불신자가 되어버립니다. 맹인처럼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어버립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살아야 하는지 모르게 됩니다. 지금 초등학교 3학년, 10살 아이들의 평균 수면시간이 6시간이라고 합니다. 학원에 있는 시간이 하루 평균 4시간이라고 합니다. 보통 11시에 집에 돌아온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가르칩니까? 다른 집 아이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은 왜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왜 자녀를 낳아야 하며 일을 해야 하는지 소명도 사명도 없습니다. 그러니 윤리, 도덕도 없습니다. 어떻게는 돈을 벌어 좋은 집에서 먹고 사는 것이 목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맹인처럼, 이 땅의 티끌처럼 은과 금을 쫒았습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_스바냐2:1’
수치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수치를 알아야 합니다. 저는 어릴적에 형제 중에 막내라 제일 복 받고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많이 본 것은 빚쟁이들이었습니다. 엄마가 문을 잠그고 없는 척을 하고 그랬습니다. 그 것은 가난이 아닌 수치였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잊고 살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수치를 잊어버린 민족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수치를 잊어버렸습니다. 신앙인이 신앙인답게 살지 못하는 것이 수치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제대로 신앙생활하지 않는 것이 수치입니다. 목사가 목사답지 못한 것이 수치입니다. 그런데 목사들이 무엇을 수치로 여깁니까. 목사가 유학을 다녀와야 하고, 화려한 인맥도 자랑해야 하고, 높은 자리에 앉아 정치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수치로 여깁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줄 모르고 여호와가 임하지 않는 것이 수치입니다.
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수치인지 모르고 신앙생활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것이 수치가 아닙니다. 교회에 올 때 내가 돈을 잘 벌고, 혹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오면 수치가 없고, 조금 그렇지 못하면 수치심이 듭니까? 틀린 생각입니다. 그것은 수치가 아닙니다. 가난하면 어떻습니까. 무엇이 수치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은, 금을 모으지 못한 것이 수치였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내팽개치고 우상을 함께 섬겼습니다.
진짜 수치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실패했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더 노력해야 할 것이며, 우리가 비록 가난하다면 언약을 붙잡고 검소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여호와를 믿지 않는다면 그것이 수치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타협하는 것이 수치입니다. 요시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 수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지 않는 것이 수치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이 되지 않고 언제 응답을 받았는지 모르는 것이 수치입니다. 언제 하나님께 기도하고 서원했는지 모르는 것이 수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지 않고 사는 것이 수치이지 않습니까?
3. 주변 나라들에 대한 심판_스바냐2:8-10
‘내가 모압의 비방과 암몬자손이 조롱하는 말을 들었나니 그들이 내 백성을 비방하고 자기들의 경계에 대하여 교만하였으니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은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에게 대하여 교만하여졌음이라_스바냐2:8-10’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도 놓치고, 우상도 섬기고, 수치를 당하는 동안에 우리 주변의 사람들까지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지금 한국교회 크리스천의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불신자들이 크리스천들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신앙을 잃었을 때 그런 비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놓칠 때 우리 주변의 사람들까지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역사가 주는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우리 가족이, 우리 자녀들이 죽게 됩니다. 내 이웃이 죽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에 우리를 비웃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비웃게 되니 그들 역시 하나님을 대적하여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원인제공을 신앙인들이 한 것입니다. 이 땅에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이 누구의 죄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하나님이 사건사고를 주신 것입니까? 우리에게 정신 차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4. 말씀을 듣지 않는 신앙생활_스바냐3:2,4,9-10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_스바냐3:2’
왜 이런 역사가 반복 될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니 점차 하나님의 은혜에서도, 하나님의 역사에서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건강한 음식을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제가 복음이에게 부탁했습니다. 건강한 음식을 적어서 벽에 붙여놓고 식습관을 고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쉽게 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지만 변화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말씀을 듣지만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생각과 마음을 고쳐먹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안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것들이 훨씬 편하고 좋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를 망치게 됩니다. 사단이 우리 주변에 가득 차려놓았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신앙생활을 위해 갱신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야 영혼이 살고, 우리 신앙생활이 건강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좋은 것이 많아 말씀을 소홀히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들에게 재앙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상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_스바냐3:4’
이것이 진짜 재앙중의 재앙입니다. 교회가 타락한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경솔하고 간사하게 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혔습니다.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자꾸만 요구합니다. 짧은 설교, 간단한 예배, 신앙생활의 편리함 그런 것들을 두고 많은 목회자들이 점차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이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목사님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협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참 축복받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축복받을 것입니다. 지금은 시대가 그런 시대이기에 교회도 시대를 따라가야 합니다.’ 점차 이런 거짓말들이 쌓이고 쌓여서 진짜 같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 진짜인데 거짓으로 강단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진짜인 것 같아 지는 것입니다. 목사님들도 설교를 하다 보니 그것이 진짜인줄 아는 것입니다. 요시야 왕때 스바냐라는 선지자가 하나님께 붙들린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저도 스바냐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붙들리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자녀니까 괜찮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녀니까 괜찮지 않을 것입니다. 구원받았으니까 문제가 될 것입니다. 구원받지 않았다면 그냥 막 살다가 지옥에 가면 됩니다. 그러나 구원 받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문제가 올 것입니다. 사단의 문화와 세상의 방식에 완전하게 빠져 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앙생활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5. 신앙생활의 시작_스바냐3:9-13
‘그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_스바냐3:9’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스바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였다 합니다. 우리 입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깨끗한 입술이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섬기는 입술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이고 종교개혁의 시작이었습니다. 몇 사람이 현장에서, 가정에서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몇 사람이 은, 금과 타협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시야 왕 한 사람이 종교개혁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 사람의 입술을 깨끗하게 한 것입니다.
말은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은 마음에서 담긴 것입니다. 마음에 무엇이 담겨있습니까? 자녀를 성공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계속 생각할 것입니다. 마음에 보물을 담겨있다면 그 보물이 생각이고 말과 행동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있는 보물을 마음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네 가운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네가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라_스바냐3:11’
하나님을 마음에 담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우리의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얼마나 세상 것들을 자랑하나요? 세상에서 그들에게 자랑하는 것들을 보세요. 재물자랑하기 바쁘고 세상스팩 자랑하기 바쁘고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이 없다면 수치심을 느낍니다. 그것이 지금 신앙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알아줍니까? ‘와 저 사람들이 신앙이 정말 좋구나. 멋지구나.’ 이럽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겉으로는 같이 웃어주는 지 모르지만, 전부 등을 돌립니다. ‘예수 믿으면서 신앙도 없네.’ 그럽니다. 우리는 무엇이 신앙생활인지 분별부터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그러면 교만할 이유도 없습니다. 수치도 사라집니다. 자랑도 사라집니다. 오로지 주님만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_스바냐3:12’
그렇게 신앙생활이 시작되면 첫 번째로 내 주변이 보입니다. 그것이 은혜 받은자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남겨두신다 했습니다. 내 가정에, 내 직장에, 내 삶의 터전에 반드시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그런 것입니다. 제가 돈을 나누고, 우리의 시간을 나누자고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실상은 그것은 어쩌면 우리 가스펠공동체가 건강하게 되도록 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신앙생활은 여러분 삶의 터전에 남겨진 자들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여지면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죄송하지만 아버지가 없었으면 했습니다. 그 아버지가 마음에 담길 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전에 싫었던 가족, 예전에 저주했던 그 사람이 이제 안타깝고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_스바냐3:13’
그런 신앙생활을 하면 두렵게 할 자가 없게 됩니다. 아무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을 행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해도 피해를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정도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가스펠교회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기위해 세워진 교회라 자랑하고 싶습니다. 다른 교회는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성경속의 교회들이 비교 대상입니다. 세상의 교회는 그들 나름대로의 시간표와 인도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일 년간 그릇준비를 한 것입니다. 그릇준비가 건물도 될 수 있고, 예배나 기타 시스템도 될 수 있겠지만 진짜 그릇준비를 할 것입니다.
Ⅱ. 그릇준비 : 신앙생활의 개혁
1. 말씀 : 하나님이 주신 소명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_스바냐1:1b'
첫 번째 그릇준비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임하셔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이 들리는 신앙생활을 위해 개혁해야 합니다. 말씀이 여러분 마음에 삶에 임하는 신앙생활로 개혁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고 담기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에게든 교회의 시스템에게든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마음속에 있을 것입니다. 마음속에 다른 것이 담겨있지 않습니까? 은과 금이 담겨있지 않습니까?
말씀이 담겨있지 않으니 소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말씀 안에 있습니다. 스바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으로 부르셨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는 소명이 없습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들으면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는 시대 속에서 말씀을 들을 때 살 수 있습니다. 정말 구원받았다면 말씀을 사모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원 받았다면서 함부로 사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 사람이 정말 구원받았는가? 예수의 세례를 받았는가? 의문이 생깁니다. 정말 구원받았다면 말씀을 듣게 됩니다. 정말 구원받았다면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러니 말씀이 들리지 못하게 사단이 방해합니다. 2015년에는 말씀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2. 기도 : 하나님이 주신 사명
'그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리_스바냐3:9‘
두 번째 그릇준비는 기도입니다. 말씀이 임하면 모든 죄를 회개하고 모든 교만과 악행을 돌이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입술에 담아 그것이 우리의 고백으로 나온다면 하나님의 개혁안에 있는 백성이 아닐 것입니다. 말씀이 담기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구나!’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섬기게 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소리 내서 기도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인정하고 부르는 것이 기도입니다. 어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들은 성전에 우상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은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나, 문제가 오나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입술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기도와 말씀 중에는 말씀이 우선일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들린다면 기도하셔야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여호와의 이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도가 사라진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돈 있으면 되고 살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십니다. 자녀들에게 재앙이 들이닥치게 됩니다.
3. 삶 : 하나님에 대한 소망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_스바냐3:17’
신앙생활의 그릇준비는 삶입니다. 왜 삶이 중요합니까? 어떤 곳에서는 삶이 부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삶은 하나님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삶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타락하고 신앙이 타락하면 삶이 타락하게 됩니다. 여러분 동네의 유흥가를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타락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안에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삶이 타락한 것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삶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 드러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삶의 기준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 개인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삶의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를 들어 정민이는 편입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 주간 주일예배를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죄입니까? 정민이는 주일 예배를 따로 드립니다. 말씀도 듣습니다.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해 보이지 않게 하는 행동이 기준입니다. 진짜 죄는 주일에 잠자느라, 토요일 밤새 노느라 못나오는 것입니다. 삶의 기준은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시는가 아닌가입니다. 우리 삶의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Ⅲ. 칭찬과 명성을 얻는 신앙생활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그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_스바냐3:18-19’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송구영신예배 1부의 결론이자, 2014년 한해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치욕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이 사라지길 원합니다. 오히려 치욕이 칭찬과 명성이 되고,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이 구원받길 바랍니다. 그렇게 신앙생활하길 바랍니다. 저는 저희 아버지가 저에게 칭찬과 명성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문이 그런 가문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꿔버리셔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신앙생활입니다.
종교개혁은 큰 교회나 큰 단체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정적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이 임하여 내 마음이 바뀌는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수치로 느껴지던 것들을 회개하고 진짜 하나님 앞으로 돌이키는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살았는데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세상으로부터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길 원하여 목회자의 역할, 곧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길 축복합니다.
✔ 주님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지요. 주님을 의지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 치유하여 주세요. 이 시대가 아무리 틀린 것이 맞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 우리로 하여금 그들에게 올바른 신앙인으로 증거가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