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pel Letter. ' 한 소녀와의 만남 '
오래전 전도사시절에 제가 가르치던 10대 소녀가 있었습니다. 항상 앞자리에서 총명하게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노트에 빼곡하게 기록하였을 뿐 아니라,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에 빠짐이 없는 친구였습니다. 늘 저에게 와서 ‘전도사님 이것 좀 보세요.’ 하며 기도수첩을 꺼내들고 예쁘게 기록한 그의 삶을 자랑하곤 했습니다.
그런 소녀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울한 모습이 보이더니 예배에도 늦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수첩 자랑도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모든 환경에 불평하는 소녀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소녀를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분명 기도하지 않고 만났으면 그의 모습만 보고 ‘너 왜 그래’ 라고만 다그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만나기 위해 근사한 식당도 예약해 두었습니다. 힘이 빠져있는 그에게 용기를 넣어주려고 했습니다.
소녀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자기를 좋아해 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싫다고 합니다. 10대의 이런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 저는 예수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요.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남자 애들이 저한테 눈길조차 주지 않는 판국에, 그런데 다 무슨 소용이예요?’
소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필요한 이 모든 진리를 다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근사한 남자 아이들의 관심이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자기한테 더 위로가 되고, 더 힘을 주고, 삶의 기쁨과 자기 가치에도 더 근본적이었습니다.
저의 설교와 사역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역인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녀의 마음에는 친구들의 사랑은 실제적인 반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추상적인 개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실제였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_로마서10:6-10’
우리는 어떤가요? 그 사건 이후 저를 돌아보니 제 마음에 과연 예수님을 실제로 모시고 있는가? 그 소녀와 대상이 다를 뿐이지 명예, 성공, 물질, 더 나아가 내 의로움, 이미지 같은 것들이 실제로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척이나 게으르고, 또 그다지 규모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매일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것으로 제 마음을 확인하며, 항상 예배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사실적인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풍성한 삶으로 변화된 믿음의 사람들처럼 되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없이 연약하여 또 넘어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랑이 마음에 있기에 항상 눈물로 회개하며 돌아올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제 삶을 부여잡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말씀이,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매일 일어나는 아름다운 실제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_예수님을 믿음으로 살길,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