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요찬양예배

2017-08-11 금요찬양예배

2017-08-11 금요찬양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7-08-11 금요찬양예배.hwp



음성다운로드: http://bit.ly/2vVsxzi




20170811일 가스펠교회 금요찬양예배

제 목 :

주의 말씀을 열면

본 문 :

시편119:129-136

오승주 목사

 

. 왜 회복되지 않을까?_호세아6:1-6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나_호세아6:1-6’

 

호세아6:1-3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구절은 정말 유명하잖아요. 수련회 때마다 암송도 많이 하고 너무 잘 아는 구절입니다. 참 좋은 내용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백성들의 아름다운 회개를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셨습니다.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냉담하게 받으시지요. 내가 너를 어떻게 할까? 너희의 사랑이 아침 구름 같고 일찍 사라지는 이슬 같구나. 우리가 큰 대회를 만들고 하나님 정말 우리 대단하지요. 했는데 하나님께서 너희들의 모임을 별로 기대하지 않아. 너희들은 지금 대단한 것을 외치지만 조금 지나면 금방 사그라질 테지. 라고 냉담하게 반응하신다면 정말 슬플 일이 되어버립니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6절에 나와 있죠.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요? 제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렘넌트대회 같은데 가면 제가 목사님을 너무 잘 압니다. 목사님 글로, 설교로 은혜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런 사람이니 기도해달라고 하십니다. 아마 하나님을 아는 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럼요 제가 하나님을 너무 잘 알지요. 제가 모태신앙이에요. 우리 아버지가 중직자예요.’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정도가 마치 렘넌트대회 때 저를 찾아와 저를 잘 알고 있다고 하는 그 분과 같지는 않을까요? 실제로 그 분은 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뭘 할 때 행복한지, 어떤 일에 슬픈지, 근래에 무엇에 몰두하며 사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들이 다 피상적인 것들은 아닌가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길 원하십니다. 알지도 못하는데 믿음이 좋다는 것을 보고 맹목적인 믿음이라 합니다. 그것을 보고 바로 기근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알고 지나가는 것,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을 기근이라고 합니다. 부부로 살면서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고 이해해주려 하지 않고 자기 이익으로만 살려고 하는 것 그것이 부부사이의 기근입니다. 아이를 키워도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고 부모의 욕심으로만 하려고 하면 그것 또한 기근이 아닌가요? 그러니 회복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은 이런 기근이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 주의 말씀을 열면

 

1. 무엇이 기근일까?_아모스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_아모스8:11’

 

이 땅에 기근이 심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한 것이 없고 너무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이 되었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심각한 기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의 말씀처럼 불행하다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는 이유입니다. 분명 환경이 좋아지면 감사해야 하는데 감사는 잠시 뿐입니다. 곧 더 큰 욕심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짜 문제가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음에도 늘 양식이 없어서, 물이 없어서 라고 불평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그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나 간절함이 사라졌습니다. 렘넌트대회를 하면서 늘 느끼는 나쁜 기분이 있습니다. 찬양이 시작되어도, 예배가 시작되어도 여전히 커피한잔 들고 수다를 떨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일찍 집에 가려고 예배 도중에 나가기도 합니다. 그들 마음에는 사모함이나 간절함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 그리고 열매로 우리를 평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로는 다 할 수 있고 말만 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에 기근이 들이닥쳐 있어도 모르는 것입니다. 물도 많고, 양식도 많기 때문이죠.

 

2. 주의 말씀을 열면_시편119:130-133

 

저는 어려운 환경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엄청난 축복이었고 지금 사람구실이라도 하고 살게 된 이유입니다. 만일 그때 사모하는 마음,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면 저 또한 하나님을 오해한 채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교회도 다녀봤어. 훈련도 받아봤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우둔한 사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른 채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평생을 다 바쳐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통로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어떻게 대했는지 시편 기자의 고백을 보세요.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_시편119:130-133’

 

말씀을 우리 인생에, 우리 삶에 어느 위치에 올려놓아야 할까요. 그것이 우리 인생을 결정한다고 확신합니다. 시편기자는 말씀을 사모하여 헐떡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헐떡였단 표현은 정말 수준 낮은 표현입니다. 저 여자에게 헐떡이다, 저 음식에 헐떡이다. 그런데 말씀에 헐떡였다면 다른 말이 됩니다.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웠다고 합니다. 그때는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척박하고 어둠이 가득한 조선 땅에 선교사님들이 말씀을 번역해서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는 사경회를 열었습니다. 수 십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모여서 말씀을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영혼에 빛이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그 빛이 어떤 빛인지 그들이 단지 가난에서 벗어나 잘살게 되었더라 그 정도로 그 빛을 설명합니다. 전혀 아닙니다. 마귀를 몰아내는, 악을 몰아내는,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었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사람답게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삶도 변화된 것이고, 가난에서도 벗어난 것입니다.

 

3. 주의 말씀을 향한 태도_시편119:136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_시편119:146’

 

그뿐 아닙니다. 시편저자는 말씀에 대한 태도가 더 깊었습니다. 주의 법을 지키지 않는 백성들을 보고 안타까워서 눈물을 시냇물처럼 흘렸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번 렘넌트대회를 하면서 몇 번을 울었는데 사람들이 은혜 받아서 울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렘넌트들을 보면서 흘린 눈물이 더 많았습니다. 그들이 말씀보다 다른 것을 훨씬 더 사모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과연 저들이 자신의 삶에 돌아가서 저 모습으로 예배를 사모하고 말씀을 사모할까? 저들이 회개하고 돌이킬까? 제 생각엔 며칠 가지 않아 보였습니다. 관심이 말씀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몇몇 모였냐? 무슨 프로그램인가? 화려한 조명과 무대가 관심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하나요? 내 가족이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파야 하지 않을까요? 시편 저자는 그런 눈물이 있었습니다.

 

 

 

. 고난이 만들어준 매일 해야 할 일_시편119:129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_시편119:129’

 

요즘 저는 고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특히 우리 성도들을 보면서 말입니다. 9월이 되면 심방과 지교회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서 분명하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벗어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당신에게 할 말씀이 있을 텐데 그것을 들어야 합니다. 다윗은 10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하나님이 나를 통해 무엇을 하시려고 하시는지 말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만은 저에게 큰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고난을 단지 피할 것으로만 생각하고 기도하거나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진짜 고난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로 붙잡게 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지키기 위해 간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열려고 할 것입니다. 영혼이 그것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지키려고 애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아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지나갈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매일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영혼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축복된 삶이 거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감정이나 환경이 그것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습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모함이나 간절함이 여전한가입니다. 더 깊어졌습니다. 우리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켜야 합니다. 주의 증거들이 사라지는 인생은 정말 안타까운 인생입니다. 주의 증거가 내 삶에 없어진다면 그것이 곧 기근이 아닌가요? 주의 증거가 항상 있도록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이번 말씀 사경회에서도 그 증거들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 내 영혼에 영적인 기근이 사라지길 원합니다.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날마다 주의 증거가 내 삶에서 확인되어지는 참된 신앙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매일 주님을 경배하고 주의 말씀으로 증거를 붙잡고 살아가도록 인도해주세요.

 

'금요찬양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08-25 금요찬양예배  (0) 2017.08.25
2017-08-18 금요찬양예배  (0) 2017.08.18
2017-07-28 금요찬양예배  (0) 2017.07.28
2017-07-21 금요찬양예배  (0) 2017.07.21
2017-07-14 금요찬양예배  (0) 2017.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