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pel Letter. ' 예수님께 미치다, 예배에 미치다 '
저는 예수님을 만나고 ‘교회에 미쳤다’라는 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늘 교회에 가니 교회에 미쳤다고 했지만 실상은 예수님께 미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었고 저는 목사가 아니었더라도 예수님께 미친 사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미쳤더니 제일 먼저 마음이 변화되었습니다. 거친 입과 나쁜 행동도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늘 부정적이던 제 마음은 소망으로 바꿔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망을 가지니 낮은 자존감도 사라졌습니다. 내 삶 자체가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생각도 치유되었습니다. 말씀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항상 올바른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결과 나뿐만 아니라 주변도 변화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승주야 너는 지금 매우 심각한 위기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신앙생활한 지 20년쯤, 목사가 되어 한참 인정받고 사역할 때입니다. 제가요? 그러나 그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예배를 통해 주신 말씀이 이해가 되고 해석도 되지만 내 삶에 적용이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다윗과 사울의 이야기를 들어도 당연히 나는 다윗이지 생각했지 한 번도 내가 사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도 마찬가지였고, 제자들과 가룟 유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 영혼과 마음은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주일에 드리는 예배뿐 만 아니라 내 삶에서 드리는 예배에 대한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 미친놈 소리 들었을 만큼 예배는 모든 것이었는데 그것이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죄의 영역인 자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 속에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신났는지 어떤 환경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세상의 모든 것들을 전부 동원하여 융단 폭격하여 그 마음을 빼앗아갔습니다. 아니 빼앗겼습니다.
그러는 동안 수준 높은 척, 응답받고 있는 척,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여 평가하고, 자랑질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룟유다가 될 수 있고, 사울과 롯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된다는 말씀처럼 우리는 항상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어떻습니까? 저는 우리의 예배가 더 뜨거워지길 원합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직업을 불문하고, 직분을 불문하고 우리의 예배는 가장 뜨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심이 입술로, 얼굴로, 삶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알 수 없는 중심입니다.
저는 항상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애를 써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를 쓰지 않고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한다면 애를 써서 만나야 합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얻어야 할 것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애를 쓰는 가요? 성공하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어떤 가치관을 위해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는 가요!
단지 열심히 하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느냐입니다. 우리 삶도 어느새 바리새인들처럼 영혼과 마음은 병 들어가는데 외적인 것만 잘 갖추며 살고 있지 않는가요? 그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찾지도 않았고 심지어 바로 앞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나지 못했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_야고보서4:8’
_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 말씀으로 그 은혜로 가슴 뛰는 생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