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수)
본문 : 마태복음6:1-18
제목 : 홀로 기도할 수 있나요?
왜 오래전에 우리 장로님 권사님 또 믿음의 선배들이 그 고통의 세월 속에서 왜 기도를 하셨나요? 다른 것을 해서 고통을 해결 해야 하지 않나요? 기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새벽예배든 금요예배든 사람들이 진짜 많았습니다. 기도원에 가는 것이나 산 기도하러 가는 것이 정말 많았습니다. 지금처럼 금요예배 좀 오세요. 새벽예배 좀 오세요. 라고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냐면 기도가 가장 빠른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만큼 쉬운 길이 어디 있나요?
1. 기도제목
그런데 그분들의 기도제목을 보면 놀랍습니다. 고통속에 있으면 고통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그분들은 민족이 복음을 받도록, 가정이 복음화되도록, 교회가 부흥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놀랍지 않으세요? 우리는 어제 말씀처럼 세상적인 것(큰 것, 육신적인 것)이 아닌 지극히 작은 것(영적인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을 바라보고 살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도우신다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인도하십니다. 믿으시나요?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7절에 보니까 이방인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중언부언은 대화가 아니라 기도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도 모르는 기도제목을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끊어지면 불안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기도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조차 모릅니다. 누구한테 하는 기도인지도 모릅니다. 대상이 불분명한 기도입니다. 혼자가 그냥 주문 외우듯이 기도합니다. 성경의 기도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8-9절을 보세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상하죠? 다 아시는 데 왜 기도하라고 하십니까? 기도를 통해 우리의 사정을 다 말하려고 하지 마세요.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에서, 민족에게 무엇을 하실지 알려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기도가 먼저 되어야 할 것은 말씀이 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마음에 담겨진 것입니다. 빌립보서2:13에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지 그것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그 기뻐하시는 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2. 진짜 기도는 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 앞에서 기도합니까? 그것은 기도까지도 자기 자랑의 기회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시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사람들을 향하여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안보면 기도를 안 합니다. 보통 교회에서 리더를 뽑을 때 새벽기도 나오나 금요예배 나오나 봅니다. 봐야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기도입니까? 훈련은 되지만, 진짜 기도는 아닙니다. 6절에 보니까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으신다면 홀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 보기에 중요한 문제인가요? 예수님께서 정말 속 터지는 문제여씁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시간별로, 때별로, 장소 따라 기도훈련을 했습니다. 9시기도, 12시 기도, 3시 기도 이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가다가 시간이 되면 기도했습니다. 지금 모슬렘들이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칭찬하고 존경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시간되면 나갑니다. 율법적인 교회가 되면 그런 것으로 자기를 포장합니다. 내가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인데,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런 사람이 유혹이나 문제에 빠져 넘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 기도 많이 하는 율법이 자기의 옷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떠나도, 성령이 떠나도 무감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작 관심은 없습니다. 기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이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혼자서 기도하는 시간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이 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을 의식하고 골방기도를 늘려가야 합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홀로 기도하다가 교회에 모여서 함께 기도할 때 진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갈 때 여러분 기도할 수 있지 않습니까? 걸어가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금식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것을 위해 금식하는데 우리가 왜 슬픈 기색을 보이고 금식한다고 표시내고 다니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우리 삶에서 진짜 예수님을 믿는 삶을 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을 불신자들이 다 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보물에 있는데 그 보물이 세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금식하기 때문에 금식을 해도 마음에 평안이 없고 감사와 찬송이 없습니다. 금식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찬송하고 감사하며 기뻐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전혀 금식했다는 표시도 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진짜 표시는 금식이 아니라 그 마음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 삶으로 나타납니다. 믿는 자의 삶은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그래서 진짜 믿음의 기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의 위력이 그의 삶에 나타납니다.
결론 – 우리는 지금 가장 악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가장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하나님 고난을 주세요. 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차라리 고난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이 없어서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이 산다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산다면 그것이 더 저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영이 다시 우리에게 임하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 기도의 영이 임하길 원합니다. 젊은이들에게 기도의 영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시험공부한다고, 미래를 준비한다고 기도하지 않고 공부하는 것이 지혜로운가요? 맞는 것 같고, 논리적인 것 같은데 틀린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미래도 주십니다. 이것은 참 신비하고 신기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직장, 가정에서 홀로 기도가 되어지길 원합니다. 말씀을 통해 주시는 기도제목들이 여러분 마음에 담겨져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예배 때 함께 기도할 때 이 땅이 회복되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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