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21-01-10 주일예배

2021-01-10 주일예배.hwp
0.32MB

2021년 01월 1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죄와 어둠, 우상에 갇히다

본 문

이사야 21:1-17

 

 오승주 목사

 

Ⅰ.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심판의 메시지

 

바벨론에 관한 말씀이고요 바벨론과 함께 했던 두마, 아라비아를 묶어서 같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오늘 새해가 돼서 그런지 시대의 상황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내면의 갈등들을 요즘 많이 겪고 있습니다. 그런 갈등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한쪽, 당연히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성령께서 저에게 주시는 그 음성을 따라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또 연약한 제 육신의 음성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상황 속에서의 오승주라는 목회자의 삶들과 부딪히는 그런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그것이 매우 작지 않고 갈등이 심합니다. 당연하게 목사니까 예수님을 따라야지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게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을까요? 사복음서에 보면 특히 누가복음 14장 이런 데를 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거죠? 예수님을 따르려면 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까? 내 아버지, 어머니, 네 부모 형제 심지어 자식 아내, 네 목숨까지 다 미워하라고 합니다.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부인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한술 더 떠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내 제자가 될 거라고 합니다. 말이 십자가가 예쁘지 요즘으로 말하면 전기 사형틀을 등에 짊어지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누가복음 14장에 이런 사건이 벌어집니다. 부자 청년이 왔을 때 부자 청년이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고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이야기를 했을 때 우리 같으면 부자 청년이 교회 왔구나, 알짜배기 성도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겠지만 예수님은 뭐라고 합니까? 네가 돌아가서 네가 가진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와라 그러면 하늘에서 네 상급이 크리라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복음을 따른다는 것은 내 모든 소유, 내 모든 존재를 부인하고 다 내어 버릴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유를 하십니다. 천국비유를 드는 것입니다. 밭에 보화가 숨겨져 있는데 그걸 발견한 사람은 전 재산을 팔아서 밭을 살 것이다. 왜? 밭 속에 금은보화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은 진짜 금은보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내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집을 다 팔고 재산을 정리하라는 메시지입니까? 그 말이 아닙니다. 절대 그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를 우리는 한번 정도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시대에? 많은 불신자들이 교회를 옵니다. 그러면 교회에서는 압축된 복음 메시지를 전합니다. 새가족 과정. 우리도 새가족 5주간의 과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새가족 과정 중에 복음을 압축해서 전하고 영접 기도를 따라하라고 합니다. 영접기도를 따라하면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천국백성이 되었습니다 라고 선포해버립니다. 성경 어디에도 없는 영접기도를 따라하라는 것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은 주님은 인간의 영접이 필요한 것일까요? 죄인인 우리 인간 편에서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요? 죄인인 우리 편에서 예수님이 필요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야 되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해서 예수님을 우리가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변화 돼서. 그래서 그렇게 영접한 수많은 자칭 천국백성이라고 하는 가짜신자들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고 순종도 없고 순복도 없고 희생도 없고 헌신도 없는 그냥 주일 날 교회 왔다 갔다 하는 수많은 크리스천들. 크리스천이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이 심판의 메시지는 엄청 지루하게 들립니다. 여러분 이사야서의 메시지는 계속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지루하지 않으신가요? 또 심판의 메시지야? 지난주도 심판의 메시지, 이번 주도 심판의 메시지, 당분간 몇 주는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다행히 곧 끝납니다. 장으로 따지자면 곧 두로와 시돈까지 되면 경고의 메시지가 끝납니다. 계속 심판의 메시지가 들리지가 않습니다. 나하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죠?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복음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그렇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우리를 몰아가는 힘이 있습니다. 진짜 복음이라는 것은. 깊게 생각해보면 은혜라는 것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그분에 대해서 알고 싶고 그분을 사랑하려고 내 삶을 바꾸게 되고 그분을 경배하고 싶고. 이 복음이라는 것은 죄를 용서하거나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리라는 확신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 구원의 최종적인 목적이구나 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하게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해져서 다 가진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주님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삶이 반드시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제가 그것을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대학교 때 인도라는 나라에 비전 트립, 선교여행을 갔습니다. 제가 여러 나라를 많이 다녔는데 인도에 선배 선교사님이 인도 북부지방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교회라고 갔더니 인도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인들 몇 명하고 인도의 신학생을 교육한다는 열댓 명 앉아있는 교회인데 교회가 엄청 허름했습니다. 교회가 너무 허름해서 충격이 되었습니다. 저는 해외를 처음 간 것이 인도였습니다. 인도에서 아주 훌륭한 선배 선교사님이 사역하시는 곳인데 교회 간판도 붙일 수 없습니다. 힌두교 국가에서. 얼마나 많은 핍박과 제재, 목숨의 위험이 있는 인도였습니다. 교회 간판도 없는 교회에서 열댓 명이 예배드리는데 처음에 가서는 선배가 조금 안 됐다고 생각을 했고 여기 성도들 불쌍하다고 생각이 되었는데 제가 거기서 십 며칠을 같이 예배드리고 은혜를 나누는데 저는 그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땅을 치면서 제 인생에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 시간이 그 시간이거든요. 저는 그 선배가 불쌍하다고 생각했고 그 성도들이 안됐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제가 중국에 갔을 때 중국 지하교회를 가본 적이 있습니다. 지하교회는 말 그대로 땅 속에 있는 지하교회가 아니라 모여 있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주로 선교사님들이 저를 강사로 데려가면 몰래 어딘가로 갑니다. 오늘은 여기서 집회하면 내일은 다른 곳에서 모레는 또 다른 곳에서 집회하고 늘 바꿔가면서. 문 앞에 늘 보초가 서있고 걸리면 안 되니까. 가면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습니다. 제가 강의를 준비해갑니다. 2-3강을 준비해 오세요 해서 준비를 해 가면 강의가 끝났는데 사람들이 일어서지 않습니다. 목사님 말씀을 더 듣기를 원한다고 4-5시간 설교한 적도 있습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찬송을 부르는데 우리처럼 박수를 칠 수 없으니까 소리가 나지 않는 박수를 칩니다. 그러나 단 한명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박수치는 시늉을 다 합니다. 그만큼 찬송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처럼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소리 높여서 찬송은 못하고 입을 벌려서 소리는 안 나지만 찬송을 다 부릅니다. 말씀이 끝나면 그들이 서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보면 다들 힘들고 어렵겠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시간에 눈물범벅이 돼서 은혜를 나누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에 와서 주일에 보고 있으면 정말 우리는 편안합니다. 한국 교회가 타락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차를 타고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교회 입구에 들어오면 주보를 나눠주고 자리를 안내해주고 극장식 같은 좋은 시설에 의자에 앉아서 설교 30분짜리를 듣고. 요즘 어떤 목사님은 설교를 20분짜리 한다고 합니다. 그런 교회는 여러분 다니지 마세요. 설교가 20분짜리가 목사입니까 여러분? 설교가 짧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여튼 그렇게 서비스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을 비교했을  때 과연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따르고 있나? 저는 제가 이 교회를 개척한 이유가 그런 이유가 많았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말 예수님을 따른다면 몇 가지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구원의 증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째는 성경을 통째로 읽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통째로 읽기 위해서 내 시간을 투자하는데 아깝지 않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알고 싶기 때문에. 그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경을 통째로 읽고 싶어서 하나님을 알고 싶기 때문에. 여러분 지금 한국교회는 메시지를 요약하고 압축하고 정리해서 마치 우리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족집게 과외 받듯이. 대학만 입학하면 다 잊어버리고 내 인생은 하나도 인격적으로 변화되지 않고 학교 교육을 받는 것처럼. 응답 받기 위해서 축복 받기 위해서 족집게 과외처럼 메시지를 주일날만 잠깐 듣고 요약된 메시지들을 가지고 그냥 일주일을 살아가는 그릇된 우리의 모습들.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처럼, 사두개인들처럼 자기 욕심을 따라서 배를 채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사람은 성경을 통째로 읽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이 너무 알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내 믿음은 자라고 내 존재의 가치는 발견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이 땅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될지 성경을 읽으면서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을 투자하는 일에 아깝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는 일에. 그리고 두 번째는 복음이 없는 곳 복음의 불모지, 복음이 필요한 낯선 곳. 우리가 낯선 곳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가보지 않은 땅이기 때문에. 그 복음이 없는 곳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고 그리고 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섬기려는 삶의 방향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제가 성경을 읽었을 때 성경 속 인물들이나 믿음의 선배들이, 구원 받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의 모든 특징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그랬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복음이 없는 곳을 보고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한국 교회 상황에 갇혀서 삽니다. 그러나 정말 복음이 있는 교회, 복음이 있는 목회자, 성도라면 복음이 없는 불모지를 늘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전 세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수많은 영혼이 지옥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사역하시는 동안 내내 바리새인들이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죄인들의 집에 가고 복음이 필요한 고아와 과부들의 집에 가고. 그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사마리아 땅에 가고. 우리가 욕하고 비난하는 삭개오나 세리의 집에 가서 식사하시고. 왜냐면 그들이 복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에 갇히고 우리 스스로의 의로 움에 갇혀서 복음 없는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섬김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그런 겉치레에서 벗어나서 복음 없는 곳을 섬기는 삶의 방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특징이라고 성경에서 봤고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늘 그곳을 향해서 가야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갈 수 없지만 매년 제가 성도님들을 꼬셔서 네팔에 가는 이유이고 가서 보시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지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 있는지 가서 보신다면. 지금 잘못된 우리의 삶의 방향들이 다 설정이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갇혀서 살면 안 됩니다. 그곳을 위해서 기도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복음적인 교회를 섬기면서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무너지면 사회는 금방 주저앉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복음 전하는 통로이고 파수꾼입니다. 교회가 주저 앉아버리면 다음 세대는 구원 자체를 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없는데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는데 누가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없는데 누가 배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마귀는 사단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혈안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교회 무너지면 끝입니다. 목회자 타락하고 목회자들이 복음을 놓쳐버리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신학교를 위해서 기도하고 후원하고 좋은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교회는 끊임없이 좋은 신학생들을 배출해내고 끊임없이 좋은 지도자를 배출해내고 끊임없이 교회를 세우고 무너지지 않도록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신실한 제자가 돼서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교회 부흥하자, 교회 성장 시키자 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제가 그 정도라면 목회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왜 타락합니까? 그 훌륭한 목사님들이 왜 무너집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 무너지면 다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에 대해서 제가 회개하는 것이 있습니다. 작년에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이 교회를 이사 와서 저희 교회가 월세가 조금 셉니다. 또 이제 5년 정도 계약을 했기 때문에 5년 뒤에 우리 어디 가지 이런 마음이 제 마음에 훅 들어왔습니다. 땅을 보러 다녀야 되나 성전을 건축해야 되나 이런 생각이 갑자기 막 들어왔습니다. 한동안 빠졌습니다. 다행히 우리 장로님들께서 저를 깨닫게 해주시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목사님 원래대로 목회만 하시죠. 기도하시고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거예요. 제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교회가 숫자적으로 늘어나다 보니까 교회 건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쓸데없는 시스템을 갖추려고 애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회개했습니다. 이사야를 설교하면서 회개했고 장로님들의 기도 때문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도움을 주셔야 됩니다. 우리는 지금 전 세계 복음을 듣지 못하는 정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도 병든 자와 가난한 자, 죄인, 사마리아로 갈 수 있어야 됩니다. 바리새인 공동체가 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그리고 심판의 메시지가 지루하게 들린다면 우리는 각성해야 되고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면 오늘 본문은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를 심판한 메시지입니다. 왜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를 묶냐면 에돔과 아라비아는 바벨론의 속국 같은 나라들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바벨론이 누구를 이겼죠? 앗수르를 이겼습니다. 여러분 엄청난 일입니다. 바벨론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냐면 그 강력한 앗수르를 이겼습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비교는 할 수 없는데 중국이 미국을 이긴 셈입니다. 그 정도로 강력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앗수르는 미국 같은 나라인데 그것을 바벨론이 정복했습니다. 어느 왕 때인가요? 느부갓네살 왕 때입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이 대단한 왕입니다. 느부갓네살 왕 때 앗수르를 무너뜨리고 예루살렘 포로들, 주민들을 강제로 바벨론 그발 강가에 끌고 갔다가 70년이 지나고 바사의 고레스 왕 때 돌려보내는데 그 고레스 왕이 누구죠? 메데와 바사입니다. 그 고레스 왕에 의해서 누가 무너지나요? 바벨론이 무너집니다. 지금 이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역사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바이블스쿨 때나 자세히 설명을 해보려고 합니다. 도표도 많이 있습니다. 찾아보세요. 그래서 고레스에 의해서 바벨론이 무너지는데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앗수르를 이긴 바벨론이니까 얼마나 교만했겠어요. 얼마나 강력했겠어요. 우리는 세계 최고의 나라야. 앗수르를 이기고 패권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오늘 그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앗수르를 대신하여 전통 강국인 애굽에 줄을 서느냐, 아니면 신흥강국인 바벨론에 줄을 서느냐 갈등에 빠졌습니다. 이사야는 그것에 대해서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들 나라가 하나님에 의해서 심판 받을 것이니까 외교적인 줄타기로 나라의 안전을 도모하지 말아라. 지금 이스라엘이 그런 백성이냐? 이스라엘이 외교활동 해야 하는 나라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강대국과 단교하고 쇄국정책을 하라는 그런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닙니다. 관계를 맺고 교류를 해야죠.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서 세계역사가 움직이고 있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라는 유다, 이스라엘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대국이나 애굽의 왕을 믿고 안심하거나 자국의 마필과 병거와 군대를 믿고 태평인 것은 불신이나 우상숭배와 마찬가지입니다.  

  

Ⅱ. 죄와 어둠, 우상에 갇히다

 

- 이사야의 고통_이사야21:1-4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괴로워서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_이사야21:1-4’

 

지금 누구인가요? 이사야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묵시는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지금 바벨론이 앗수르를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인가 앗수르인가 애굽인가 줄서기 하고 있는데 그 나라들이 다 무너지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멸망하는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니까 이사야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뭐가 고통스럽습니까? 저는 이 고통을 알 것 같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줄타기를 하고 세상과 동맹을 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성경을 읽고 영적인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목회자들은 가슴이 탑니다. 속이 탑니다. 그 묵시가 보이는 사람들은 그것을 고통스러워합니다. 저 길로 가면 안 되는데, 저 쪽으로 가면 안 되는데. 나라들은 서로 속이고 약탈합니다. 깨끗한 나라이고 멋진 나라인 것 같지만 문화적으로 훌륭한 나라인 것 같지만 그 나라들끼리 속이고 속이고 약탈합니다. 지금도 육신적인 나라들은 그렇습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러시아냐 일본이냐. 우리는 그러고 있지만 서로서로 속이고 약탈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소망이 있습니까? 그 나라들이 왜 망했습니까? 바벨론이 왜 망했습니까? 

 

- 파수꾼의 부르짖음_이사야21:5-10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되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를 보거든 귀 기울여 자세히 들으라 하셨더니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_이사야21:5-10’

 

기가 막힙니다. 그들이 파수꾼을 세워놓고 먹고 마셨다고 합니다. 그런 것입니다. 나라가 부강하고 힘이 세지니까 나라를 지키는 파수꾼 같은 것을 세워놓고 안에서는 흥청망청 식탁을 베풀고 먹고 마시기 시작합니다. 급하게 기름칠을 했다는 것은 파수꾼이 적들이 쳐들어옵니다 했을 때 방패가 다 녹슬어 버렸습니다. 급하게 기름칠을 하지만 이미 함락되었습니다. 순식간에 함락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그러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죄와 어둠은 계속해서 우리를 파고 드는데 우리는 교회 다녀, 나 어디 교회 집사야, 권사야 라는 파수꾼을 세워놓고 그 죄를 막고, 그 어둠을 막고 기도생활은 안하고 깨어 성령을 구하거나 예수님을 믿거나 신실하게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먹고 마십니다. 여기서 먹고 마신다는 것은 단지 음식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이 본문이 요한계시록 18장에도 나와 있습니다. 

 

- 그럼에도 멸망당하는 바벨론_이사야21:5, 요한계시록18:14-20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_이사야21:5’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_요한계시록18:14-20’

 

육신이 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탐한다고 합니다. 한 시간 만에 망하였도다. 바벨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부유한 것들, 금은보화, 세마포 옷, 비단, 진주, 보석. 세계를 패권한 나라인데 한 시간 만에 망했습니다.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 지금 이 식탁은 이사야 말씀의 먹고 마시는 것은 육신적인 먹고 마시는 것도 있겠지만 영혼이 탐하던 것. 그래서 바벨론 안에 수많은 우상들. 이 사람들이 전 세계 패권국가가 돼서 수많은 우상들을 섬기기 시작하는데. 지금 미국이 그렇습니다. 미국이 기독교 국가가 아닙니다. 말만 기독교 국가입니다. 집에 다 성경책은 한권씩 다 있지만 교회 가지 않습니다. 주말이면 전부 차 끌고 레포츠 하러 산으로 들로 놀러가고 스포츠 구경하러 갑니다.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미국의 주일예배는 토요일 아침부터 있습니다. 그게 무슨 주일예배입니까? 한국의 큰 교회도 토요일 아침부터 주일예배를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불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일은 주일로 지켜야 합니다. 왜요? 주일에 놀러가라고 교회가 배려해주는 것 아닙니까? 무슨 주일예배가 토요일 아침부터 있습니까? 우리가 무슨 안식교입니까? 안식일을 지키게? 미국은 지금 완전히 온 우상이 가득합니다. 미국 LA에 가면 중국의 절이 있습니다. 아시아의 것보다 훨씬 큰 절이 있습니다. 엄청 큰 절이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 무슨 이런 절이 있나 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절만 있습니까? 온갖 우상이 다 잡다하게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이 겉으로는 파수꾼을 세워놓고 우리는 기독교 국가야 라는 파수꾼을 세워놓고 안에서는 우상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마약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음란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죄가 스멀스멀 파고 드는지도 모르고 여러분 그게 한 시간 만에 무너져버렸습니다. 순식간에 무너져버립니다. 지난주에 서울시 교육청에서 성소수자 평등과 노동인권교육. 노동인권교육은 좌익사상입니다. 성소수자 평등과 노동인권교육을 만3세 유치원부터 확대해서 교육하고 초, 중, 고에서는 의무 교육한다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정신 차리셔야 됩니다. 성소수자 교육을 그 평등교육을 만3세 유치원부터 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동성애는 정상이야. 저들의 인권을 인정해줘야 해. 의무 교육한다고 합니다. 이런 교육을 벌써 배우기 시작하면 나중에 어떻게 되나요? 아무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무감각하게 큽니다. 저는 미국에서 많이 봤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가 그렇습니다. 제 친구가 선교사로 있습니다. 가슴 치면서 회개한다고 합니다. 지금 복음주의자 목사들이 이제 와서 회개한다고 합니다. 이제 와서 무엇을 회개 하냐면 그동안 미국교회가 건물 짓고 대형교회 만들고 화려한 프로그램 만들어서 마치 쇼케이스 하듯이 예배드리고 그것이 다 파수꾼 세워 놓는 것입니다. 거기에 성도들은 헌금하고 주일에 교회 갔다 오면 나는 잘했다 생각하고 그 삶에 성경을 읽고 이 땅을 위해서 복음 없는 지역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예수 믿는 삶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미국에 다행히도 감사하게도 복음주의자 목사님들이 다시 복음을 회복하자. 다시 교회를 회복하자, 다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자고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동성애는 미국에서 기본입니다. 초, 중학교 때부터 마약을 합니다. 얼마나 심각한지 여러분 잘 모르실 거예요. 저는 그것을 봤습니다. 일본 가보셨나요? 일본의 성 타락 문화를 보셨나요? 일본의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깨지고. 왜? 이미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막 스며듭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나요? 교회는 나쁜 곳, 부패한 곳. 무슨 교회가 부패했습니까? 몇몇 목회자들의 타락을 일반화의 오류로 폄하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미신. 성경이 어떻게 미신입니까?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누구의 작전, 전략입니까?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자기 손해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이 전부인 것처럼 계속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주입합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게 만들고 내세를 생각하지 않게 만듭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이 모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파수꾼 세워놓고 먹고 마시는 동안에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우리 영혼이 탐하던 것들이 심판 앞에 다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들 아닙니까. 바벨론이 먹고 마시는 것을 즐거워했지만 한 시간 안에 멸망했습니다. 너의 보배로운 상품이 망했도다 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감옥에 갇혀있습니까? 먹고 마시는 것이 명예이기도 하고 먹고 마시는 것이 내 삶이 추구하는 행복이기도 하고 어떤 화려한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를 가둬버렸습니다. 복음 전하는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요? 제가 딜레마에 빠진 것은 저는 한국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입니다. 저는 딜레마 입니다. 이것을 해야 되나 하지 말아야 되나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엄청난 딜레마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이 있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눈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눈물이 있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째로 읽고 하나님을 알려고 해야 되고 복음의 불모지를 끊임없이 사모하고 흠모하고 기회가 된다면 우리가 거기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삶의 방향을 가져야 합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신실한 제자의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파수꾼이 부르짖었습니다. 적들이 옵니다. 기름칠 하는 동안에 망했습니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물어봅니다. 

 

Ⅲ.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_이사야21:11-12

 

‘두마에 관한 경고라 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하더라_이사야21:11-12’

 

여기서 파수꾼은 바벨론이 세운 파수꾼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파수꾼은 이사야 본인이기도 합니다. 이사야는 그 시대의 파수꾼입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본인이기도 합니다. 이 파수꾼에게 물어봅니다.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밤은 멸망의 시간입니다.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요? 이 어두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뭐라고 이야기하나요? 12절 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리니 밤도 오리라. 아침이 오는 것 같지만 또 밤이 온다는 겁니다.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세상은 아침이 오는 것 같지만 또 밤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좋아진 것 같습니까? 여러분 세상이 날로 좋아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만 그 의료기술이 따라가지 못하는 질병이 계속되고 문명이 발달해서 자동차도 타고 컴퓨터도 가지고 있고 핸드폰도 가지고 있지만 우리 마음은 사람을 살인하고 온갖 우울하고 미워하는 감정들로 세상은 더 어지럽고 황폐해져있는 시대입니다. 이 땅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수많은 사람들은, 세상을 더 낫게 발전시킨다는 기업가, 정치인들은 사실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세상은 나아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계속 수레바퀴처럼 반복될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의 인생을 80,90년 나그네 인생을 살다가 끝납니다. 옛날에는 말이야 이랬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좋아진 것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옛날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1000년 전, 2000년 전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 인생이 첫 인생 아닙니까. 아침이 되는 것 같지만 또 밤이 됩니다.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빨리 이 멸망이 끝나기를 원하지만 밤이 마무리가 되기를 원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세상이 발전하는 것보다 더 후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법이요? 더 좋은 헌법과 법이 생기지만 세상은 더 많은 불법이 생깁니다. 따라가지 못합니다. 더 좋은 시스템이 생기는 것 같지만 그 시스템을 더 악용하는 더 악한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 시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깨어 기도하지 않아야 됩니까? 하나님을 안 바라봐야 됩니까? 은혜를 구하지 않아도 됩니까?

 

-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_이사야21:13-17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데마 땅의 주민들아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그들이 칼날을 피하며 뺀 칼과 당긴 활과 전쟁의 어려움에서 도망하였음이니라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_이사야21:13-17’

 

아라비아는 바벨론의 속국 같은 나라였지만 오지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표현에 수풀에 유숙하리라. 인적이 두문 곳입니다. 아라비아 상인들이라고 유명합니다. 그래서 아라비아는 오지입니다. 거기에 바벨론이 함락당하니까 바벨론 사람들이 아라비아로 피난 옵니다. 피난을 오니 사람들에게 떡도 주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또 이야기합니다. 너희도 안심하지 마, 아라비아도 곧 함락 될 거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상인들의 나라였고 전쟁을 피해서 오는 곳이지만 여기도 안전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고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파수꾼이 경고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어쩌면 교회 다니는 저와 여러분도 세상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코로나 때문에 똑같이 어렵고 경제문제가 있으면 똑같이 경제 어려움을 겪고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도 똑같이 죽어야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뭐라고 이야기를 하십니까?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 깨어 있다는 것_요한계시록22:1-7, 로마서12:2

 

오늘 메시지의 중요한 결론입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교회 시스템에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 시대가 주는 상황, 환경, 시스템에 갇혀 버리면 안 됩니다. 파수꾼 세워놓고 그 안에서 먹고 놀면 안 됩니다. 내 영혼이 탐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꾸 누구하고 비교를 합니까. 드라마 속 인물들과 비교를 하고 뉴스, 인터넷에 나오는 사람들과 늘 비교를 해서 마치 우리가 조금 더 모아야 될 것 같고 마치 우리가 조금 더 부해져야 될 것 같고, 마치 조금 더 성공해야 될 것 같고, 조금 더 유명해져야 될 것 같습니다. 거기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을 데리고 네팔도 가려고 하고 인도, 중국도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거기에 가면 너무 많은 영혼들이 우상을 섬기고 죽어가고 있구나. 너무 많은 어린이들이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구나. 한 해 17만 명의 10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질병으로 마이신, 페니실린 하나가 없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매 년. 돈 만원이 없어서.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노동을 하고 있고 교육을 받지 못하고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있는데 끔찍합니다. 그것을 보아야 내 존재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내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찾고 내가 그 삶을 살 수 있는 것 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마주하고 있으면 여러분 우리가 어둠과 마주하고 있으면 어둠과 닮아가게 되어 있고 명예와 마주하고 있으면 명예를 쫓아가려고 하는 심리가 있고, 돈을 마주하고 있으면 돈 돈 돈하고 살아가는 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얼굴을 늘 아침마다 마주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마주해야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우리는 돈, 세상, 세상이 이야기하고 추구하는 것들에 그들의 감옥에 딱 갇혀버립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승주 목사도 똑같습니다. 제가 유명한 성공한 목사님들, 큰 교회 목사님들 정말 설교도 많이 듣고, 책도 많이 보고 한동안 저도 그것에 빠져서 나도 이 목사님처럼 될 거야. 그게 감옥입니다. 나도 이 목사님처럼 명예롭고 훌륭한 목사가 될 거야. 그게 목회자의 감옥입니다. 그러면서 늘 그것을 향해서 살아가다보면 하나님을 마주하는 것을 잃어버립니다. 이 땅을 위해서 기도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잃어버립니다. 왜요? 그것을 쫓아가야 하니깐 요. 바리새인들이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거 해야 돼, 이렇게 살아야 돼. 그러는 동안에 복음의 불모지의 수많은 영혼들이 지옥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목회가 너무 어렵고 이 시대 목사로 사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_요한계시록22:1-7’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실 때 다시는 밤이 없고 어둠이 없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세상의 빛은 잠깐 아침이 오는 것 같지만 다시 밤이 되는 겁니다. 은혜의 빛. 사도바울이 다메섹에서 만났던 그 예수 그리스도의 그 빛. 복음의 빛은 다시는 어둠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는 어둠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빛을 우리가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햇빛이 쓸데없고 등불이 쓸데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빛이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 생명나무에 열두 가지가 열매를 맺되. 이것은 천국을 표현합니다. 이 땅에 교회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전해지는 복음전파의 역사들을 요한계시록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 빛을 어디를 통해서 받을 수 있냐면 성경을 통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성경에서 멀어집니다. 아이러니하게 목사가 타락하면 성경에서 멀어집니다. 성도들도 세상을 쫓아가다보면 성경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나 왜 이렇게 성경 읽을 시간이 없어? 위험한 거예요. 징조입니다. 나 왜 이렇게 예배드릴 시간도 없이 바쁘냐? 조심하셔야 됩니다. 내 영혼이 무엇을 사모한다고요? 내 영혼이 탐하던 과일. 바벨론과 같습니다. 내 영혼이 무엇을 탐하고 있는지 무엇을 욕심 부리고 있는지? 우리가 돈 성실하게 모아서 집사고 차사고 자녀들 교육하자 그것 다 하셔야 합니다. 있는 힘껏 좋은 학교를 보내시고. 가능하면 좋은 집에서 사십시오. 지금 그것을 부정하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나 심판의 메시지를 듣지 못하는 우리의 영적인 감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인 묵시를 듣지 못하는. 우리를 지옥으로 향하게 하는 것을 가로막는. 그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그 복음의 메시지를 듣지 못하는 것에서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망대에 있는 파수꾼이 된다면 우리는 저들의 침략을 알 수 있습니다. 타락한 고관들과 백성들은 파수꾼을 세워두고 안에서 먹고 마시는 일을 합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 자녀들이 멸망이 오는 줄도 모르고 교회가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세상이 황폐해져가는 줄도 모르고 죄가 세상에 관영해져가는 줄도 모르고 교회들이 자화자찬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부흥했어. 우리가 이 행사 잘했지.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닙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_로마서12:2’

 

지루하게만 들리는 심판의 메시지는 결국 우리를 어둠과 죄, 우상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왜 우상을 섬깁니까? 그게 쾌락, 타락, 욕심입니다. 더 번영하려는 욕심이 우상입니다. 그런데 이 죄와 어둠과 우상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이냐면 성경 말씀뿐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이 빛 비추셔서 깨닫게 해주시는 방법은 말씀  뿐이다. 마음이 새로워지고 삶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방법은 성경뿐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쫓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뿐이다. 우리가 구원 받고 천국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뿐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파수꾼에 전파하는 메시지, 이사야가 전해주는 메시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뿐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상 국가에 돈을 가져다 쏟아 붓는다고 해서, 네팔에 돈을 쏟아 부어서 화려한 교회 건물을 짓는다고 해서 그들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땅을 위해서 회개하고 기도하며 중보하며 우리가 복음을 그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애쓰는 우리의 사모하는 마음들이 그 땅을 변화시키는 것이지. 돈을 가져가서 퍼 부어서 건물 짓는다고 해서, 학교 짓는다고 해서 네팔이 복음화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이 역사하지 않고는 네팔은 복음화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후원하고 있는 따루 선교사님이 정말 복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네팔에 수많은 영혼들을 찾아내어 복음의 사람으로 양육하고 그것을 위해서 엎드려 기도하는 기도의 선교사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성경이 아니고서는 우리 인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을 매일 읽어야 합니다. 그 시간을 아까워하면 안 됩니다. 하루 세끼 밥 드시는 것 아깝지 않습니다. 잠자는 것 아깝지 않습니다. 성경을 먹고 마셔야 됩니다. 영의 양식입니다. 성경을 읽고 있어야 우리는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둠의 죄에 갇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에게 성령의 바람이 불기를 원하고, 하나님이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천사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다시 회복해야 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과 싸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회가 자꾸 데모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교회가 눈에 보이는 존재들하고 싸우고 데모하고 법을 어기고 그러는데 잘못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저들을 살려야 되는 교회입니다. 사도바울은 교회에게 육신과 싸우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과 싸우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불모지인 이 땅에 복음을 전해주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복음을 어떻게 전합니까. 예수님처럼 발을 씻겨가면서 사랑하고 용서하며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까. 그들과 싸우면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대통령과 싸워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도 복음 받아야 될 사람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육신적으로 싸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 역사하는 악한 영들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기독교인이다. 겉으로는 교회 다닌다. 겉으로는 예배드린다. 파수꾼 세워놓고 내 삶은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이 아무런 구원의 감사와 감격도 없고 찬송도 없는 삶이라면 우리는 지금 바벨론과 똑같은 것입니다. 나 헌금 했어. 그것이 파수꾼입니다. 그렇게 하고서 내 삶은 흥청망청 살아간다면 우리는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신앙은 파수꾼을 세워놓고 흥청망청 놀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파수꾼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 복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와 어둠, 우상의 감옥에서 벗어나서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이 가셨던 그 발자취를 따라서 우리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향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진정 하나님이 하늘의 상급이 큼이라. 우리가 정말 천국에 입성했을 때 하늘의 상급이 큼이라. 그 상급을 진짜 바라신다면 정말 그 상급을 원하고 의의 면류관을 바라고 또 바라신다면 우리 삶이 조금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 많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인 저 오승주 목사도 지금보다 훨씬 더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타락한 삶이라는 것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지옥을 향한 많은 영혼들을 보지 못하는 삶이 타락한 삶입니다. 그 복음의 열정들이 다시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곳입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을 정말 만났다면 십자가의 보혈로 새사람이 되었다면 복음 전하는 삶에 방향이 맞춰져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비교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 목사님은 교회 부흥해서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러면 나보다 못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은 나하고 비교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비교. 그래서 서로 싸우게 만들고 분열시키고 이간질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교회 안에도 수많은 비교들이 있는데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유한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대로 사용하실 것이며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들대로 사용하실 것이며, 수많은 달란트와 다양한 우리의 삶들을 복음을 위해서 쓰시도록 우리에게 온갖 지체로 손과 발과 몸과 수많은 지체로 불러주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본다면 서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게 될 것이고 이해하게 될 것이고 배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몸이 되었을 때 복음이 강력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주님 죄와 어둠, 우상에 갇혀있는 우리를 건져주십시오.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고쳐주십시오. 다시 복음을 회복하고 다시 경배를 회복하고 다시 이 땅에 파수꾼으로 교회로 살 수 있도록. 교회는 이 땅에 파수꾼입니다. 우리가 저들에게 말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저들에게 경고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저들에게 묵시를 전해주지 않으면 누가 저들에게 묵시를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의 영적인 내세를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누가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그래서 이사야처럼 교회는 파수꾼인 것입니다. 오늘 짧은 말씀입니다. 죄와 어둠, 우상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만일 깨어 있기를 원하고 가스펠교회 모든 성도들이 세상과 마주하고 세상에서 나 자신을 찾으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마주하고 아침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비춰주시는 그 빛 앞에 내 인생의 존재감을 찾으셔서 그 행복이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즐거움, 그 기쁨, 그 감사. 내가 가진 것으로 내 환경, 상황으로 만족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아침마다 주의 얼굴을 마주하며 만족하며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고쳐져야 합니다. 병든 우리가, 감옥에 갔던 우리가 고쳐져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 때 상한 이 땅이 새롭게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1-24 주일예배  (0) 2021.01.24
2021-01-17 주일예배  (0) 2021.01.17
2021-01-03 주일예배  (0) 2021.01.03
2020-12-27 주일예배  (0) 2020.12.27
2020-12-20 주일예배  (0) 202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