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1월 24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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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무엇을 바라보고 계신가요? |
본 문 |
이사야 23:1-18 |
오승주 목사
Ⅰ. 두로는 어떤 도시인가?
오늘 내용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두로라는 도시에 대해서 심판을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돈도 도시이기는 한데 두로에 속국과 같은 도시입니다. 시돈은 큰 영향은 없습니다. 페니키아 문명의 핵심도시가 두로입니다. 두로의 영향을 받아서 속국역할을 하고 있는 작은 도시가 시돈이고 시돈 상인, 두로 상인하면 그 당시에는 최고의 무역도시가 두로라는 도시였습니다. 페니키아 문명의 거점, 해변에 위치한 국가도시였습니다. 홍콩과 같은 느낌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페니키아는 고대 지중해 동쪽에 있는 문명이고 도시인데 두로는 애굽과 활발한 교역을 통해서 부를 축적을 했습니다. 다시스하면 지금의 스페인, 스페인의 끝자락입니다. 그 당시는 유럽이 전체라고 생각했던 문명입니다. 아시아, 미국 대륙이 발견되기 전입니다. 전 세계에 핵심 되는 전체 무역을 관장하는 도시가 두로라는 도시였습니다. 천해의 요새. 지형도 좋았습니다. 먼 스페인 남부 다시스에서 두로까지 와서 무역을 할 정도로 아주 아시아 내륙의 특산물들을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공급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부가 많았냐면 두로에 대해서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니 금과 은을 돌멩이 같이 흔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시돈은 식민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추수한 곡식을 통해서 부유하고 풍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지리적인 이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풍요를 줬던 신이 바알 신입니다. 바알 신에게 풍요를 받았다 생각해서 두로는 바알 신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음란했습니다. 고린도처럼 음란한, 아주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사치와 향락에 취해 살았고 엄청 교만했습니다. 두로가 어디 민족인지 아십니까? 가나안의 민족입니다. 신기하죠? 상상도 못하셨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수아 갈렙에게 명령하신 것이 가나안을 정복했을 때 그 땅의 모든 민족을 멸하라고 하셨는데 두로를 멸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두로는 그때부터 살아남아서 바벨론의 전쟁에도 살아남았습니다. 나중에 알렉산더 왕에 의해서 앗수르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두로는 아주 기회를 잘 탔습니다. 두로에 대해서 계속 설명을 하겠지만 두로가 나중에 전 세계에 영향을 많이 끼칩니다. 그리고 다윗, 솔로몬 시대가 지나서 이스라엘에게도 영향을 엄청 끼칩니다. 이스라엘이 수많은 우상을 끼친 것에 있어서 영향을 끼친 나라 중에 한 나라가 바로 두로입니다. 두로의 것을 이스라엘이 계속 무역을 통해서 받았는데 그때 받아들인 것이 바알 신이라든지 수많은 우상들을 이스라엘이 두로로부터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부강했다가 다시 쇄락의 길을 걸었을 때 그게 다윗 때 부강했다가 솔로몬 때 부강했다가 쇄락의 걸었을 때 그게 하나님의 심판인지도 모르고 왜 우리가 쇄락할까 그리고 돌아봤더니 두로는 부유하고 잘 사는 것입니다. 어? 그러면 우리가 두로처럼 살아야 되는 것 아닌가 해서 두로의 온갖 쾌락들, 우상들을 들여왔습니다. 우리가 일본이 한참 잘 나갈 때 일본의 것을 다 수입해서 쓰던 것처럼 또 미국이 한참 잘 나갈 때 미국의 것을 들고 들어와서 쓰던 것처럼. 그냥 물품이나 문화만 들고 들어 온 것이 아니라 신앙이나 우상들도 가지고 옵니다. 우리나라 노래방, 룸살롱 다 일본에서 가지고 온 일본 문화입니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음란한 나라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우상을 많이 섬기고 있고 폐쇄적이지만 뒤로는 굉장히 음란합니다. 음란한 향락의 문화가 거의 다 일본에서 왔습니다. 일본을 위해서 기도하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두로가 그런 나라입니다. 이런 두로는 오늘 날 저와 여러분에게는 풍요의 상징입니다. 주변 국가 중에서는 앗수르, 바벨론 수많은 나라들은 강력한 문화 나라 이런 것이었다면 두로는 뭘 상징하냐면 재물을 상징하는 국가입니다. 여러분 지금 유다 주변의 열 나라를 설명을 했는데 열 나라가 다 세상의 어떤 죄악의 모습을 우리에게 상징하고 있고 유다가 거기를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도록 한 나라 한 나라씩 하나님이 심판하는 장면입니다. 다 사라지는 것인데 맨 끝자락에 뭐가 있냐면 재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재물이라는 것은 부, 돈입니다. 돈이라는 것은 강력한 우상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맨 마지막 심지어 아홉 나라를 다 심판하시고 그 강력한 앗수르, 바벨론을 향해 다 심판의 메시지를 하시고 유다에게 다시 한 번 회개를 촉구하는 심판의 메시지를 하시고 마지막으로 다루는 나라가 두로라는 것은 두로의 상징인 재물, 부를 향한 우리의 죄악된 마음들에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어렵기도 합니다. 이것을 설교하기가 굉장히 난해하고 어려운 내용입니다. 쉽게 설교하면 되는 것 아니냐? 물질은 죄다, 돈은 죄악이다. 이렇게 설교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렇지 않잖아요. 어떻게 물질이 다 죄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어떻게 돈이 없이 살 수 있어요? 저도 돈을 쓰고 있고 돈이 없으면 우리 자녀들을 키울 수 없고 돈을 저축하지 않으면 우리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돈을 무조건 죄악이다, 돈은 우상이다. 이렇게 설교를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굉장히 많이 고심을 했고 역사적인 배경이라던 지 오늘 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번 한 주 굉장히 많은 준비과정을 거쳐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Ⅱ. 두로의 몰락의 원인
- 재물로 흥하고 재물로 몰락하고_이사야23:2-3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인들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해변 주민들아 잠잠하라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큰 물로 수송하여 들였으니 열국의 시장이 되었도다_이사야23:2-3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는 전부 애굽을 상징합니다. 큰물은 애굽의 나일 강입니다. 지금 두로가 시돈 상인으로 인해서 많은 교역을 통해서 열국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두로가 어느 정도냐면 전 세계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무역의 중심지가 된 것입니다. 엄청 부유했습니다. 그 당시 고대 근동지방의 최고 무역 도시였습니다. 자료에 보니까 어마어마했습니다. 다시스(스페인)에서부터 무역배가 오고 아시아, 아프리카의 물건들을 유럽과 아시아에 서로 교류했습니다. 두로는 보통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열방에 대한 예언의 마지막으로 페니키아 문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두로에 관한 경고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두로가 나중에 어떻게 되냐면 오늘 본문에 보니까 두로가 황무해지고 집이 없어서 들어갈 곳도 없이 된다고 합니다. 누가 당황하게 되나면 그 소식을 듣고 애굽이 고통스러워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갈 곳이 없어서 슬피 울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두로가 사라지고 나니까 두로와 무역을 했던 나라들 애굽이라든지, 다시스(스페인)라든지 주변 국가들은 배를 다시 돌려서 가야 합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누가 슬퍼한다고 표현이 되어 있냐면 애굽이 슬퍼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그 소식을 듣고 슬퍼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두로가 망해버렸습니다. 이게 좀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 경찰국가라고 하면 미국입니다. 미국이 전 세계의 안전을 지키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살기도 했지만 자국의 희생을 하고 헌신을 하면서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미국이 많이 희생을 하고 헌신을 했다고 봅니다. 그런 미국이 내부적으로 타락하고 범죄하고 내부적으로 어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튼튼한 나라들이 무너지는 것을 볼 때는 우리들이 마음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 약간 그런 뉘앙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를 보호해주던 나라, 지켜주던 나라, 우리에게 같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나라가 무너졌으니까. 주전 703년에 앗수르의 공격으로 인해서 두로는 무너집니다. 앗수르는 무려 3년 동안이나 두로를 함락시키기 위해서 두로를 포위해서 공격을 했습니다. 대단한 것이 앗수르의 공격을 3년이나 막아냈습니다. 왜냐면 막대한 재산 그리고 애굽과 다시스라든지 주변 국가들이 두로를 동맹을 맺어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 앗수르가 대단한 게 3년을 두로를 포위해서 결국은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알렉산더 왕에 의해서 완전히 함락이 됩니다. 두로는 지중해 상권을 독점했던 나라로 가장 부강한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완전히 멸하라고 하셨던 가나안 족속의 후손들로 구성된 두로입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멸하라고 했는데 가나안 족속 중에 완전히 멸하지 않았던 남아 있던 가나안 족속이 형성된 국가가 두로입니다. 두로라는 특별한 민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민족 중에서 남아 있는 소수의 민족 사람들이 살아남아서 두로라는 지역에서 형성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국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지중해 연안에 많은 식민지를 두었습니다. 항해술이 엄청 발달했고 특히 발달한 것이 공해가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두로는 다윗 왕과 솔로몬 시대 이후에 이스라엘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상하죠? 영적으로 가장 부흥기를 겪었던 다윗 시대 때는 두로와 친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가장 부흥기를 겪었던 솔로몬 시대 때는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는데 솔로몬 시대 이후에 이스라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두로와 친해졌다는 말은 그만큼 두로의 재물, 두로와 교역을 하면서 그들에게 우상의 영향을 받을 정도로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약해졌다는 반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도록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친 가나안 족속의 후손이 두로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멸하라고 하셨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멸하지 않고 그대로 두니까 그게 결국 부메랑처럼 이스라엘을 우상국가로 만드는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이 여기를 다 도륙하고 살육해, 멸망시켜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재물에 관한 죄. 왜 가나안 정복 때 두로를 살려뒀을까? 그것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 마음 한켠에 죄를 향한, 재물은 좀 남겨놔야 되는 거 아닌가, 이 우상은 조금 남겨놔야 되는 거 아닌가. 그것을 조금 남겨놨을 때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후손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아주 큰 교훈을 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죄는 남겨두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은 남겨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멸하라고 하셨을 때 완전 멸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애처롭게 여기고 불쌍히 여겨서 남겨두면 나중에 그것들이 성장하고 독버섯처럼 자라서 큰 강대국을 이뤄서 우리 자녀들을 칩니다. 한 두 번입니다. 저는 주일성수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목사입니다. 저는 모 교회에서 청소년 사역을 할 때 아이들에게 예배를 철저히 가르쳤습니다. 예배를 빼먹는 것을 부모님들이 쉽게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너 내일 시험기간이니까 월요일에 중요한 시험 있으니까, 중간고사, 기말고사니까, 주일날 하루정도는 안 가도 돼. 그거 아주 무서운 사상입니다. 너는 고3이니까 예배드리지 않아도 돼. 상황이 안 되서 예배를 못 드리는 것과 우리가 스스로 예배를 포기하는 것을 다른 말입니다. 내가 운동선수이고 비즈니스가 있어서 주일날 어쩔 수 없이 출근했는데 예배를 가지 못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흠모하는 것과 그래서 못 드리는 것과 그냥 내 이익을 위해서 재물을 위해서 돈을 위해서 예배를 포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교회 안에 우상을 섬기는데 재물에 대한 우상, 돈에 대한 우상으로 인해서 예배를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자녀들을 완전히 신앙에서 떠나게 하고 복음에서 떠나게 하고 교회에서 떠나게 하는 것을 너무 많이 목격했기 때문에 아주 단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주일예배가 율법처럼 주일성수를 이야기한다고 저에게 비난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그럼 눈에 보이는 주일예배도 안 드리는데 평상시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것? 못 드립니다. 악착 같이 밥은 먹으면서 악착 같이 자기 삶의 이익을 위해서는 운동하고 살면서 왜 예배는 악착같이 드리지 못합니까? 지금 이스라엘이 그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남겨두었던 죄에 대한 여지가 돈에 대한 여지, 성공에 대한 여지였습니다. 그런 것들이 지금 큰 부강한 나라를 이뤄서 솔로몬 시대 이후를 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심판입니다. 지금 우리 자녀들에게 재물이 성공의 이유라고 만약에 가르친다면 그 재물로 우리 자녀들은 멸망할 것입니다. 돈이 성공의 이유라고 가르친다면 돈은 우리에게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엄청난 불이익을 줄 것입니다. 여러분 돈, 재물 이라는 것은 재물을 관리하고 건강하게 쓸 능력이 없으면 우리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써야 되고 이 재물을 어떻게 관리해야 되고 이것이 훨씬 더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진짜 부자들, 부자에 대해서 관심은 없지만 유대인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면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가르치냐면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런 것을 먼저 가르치지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돈 많은 것을 먼저 가르칩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을 가르치지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재벌들이 돈 쓰는 것을 보십시오. 흥청망청 자기 자식들 다 버리고 있습니다. 재벌 2,3세들이 마약하고 잘못 가르쳐서 돈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자기가 열심히 자수성가해서 성공한 회장님들의 자녀들이 피폐한 삶을 사는 것을 보면서 재물 자체가 우리에게 성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보스턴 하버드에 가서 하버드 아이들을 만나면서 조금 많이 놀란 것이 있습니다. 하버드 의대 다니는 한 친구를 만나서 물어봤습니다. 왜 의사가 되려고 해? 우리나라 학생 같으면 돈 벌려고 성공하려고 잘 살려고. 그런데 저는 그 친구 이야기를 듣고 조금 깜짝 놀랐습니다. 내심 그런 대답을 당연하게 할 줄 알았는데 제가 의사가 되어야 병든 환자들, 불치병들을 치료하는 일에 일생을 가치 있게 쓸 수 있으니. 대답이 완전 다릅니다. 당연히 그 친구가 하버드 의대를 나왔으니 돈은 많이 벌 것입니다. 의사로써의 소명, 사명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부하는 내용도 다르고 우리나라처럼 어느 과에 가면 돈을 많이 벌어, 성형외과에 가면 많이 벌어, 어디 과에 가면 훨씬 더 부유하고 잘 살 수 있어 이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재물을 관리할 능력이 없으면 재물로 완전 망하게 됩니다. 두로는 그것에 전형적인 도시입니다. 돈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써야 될지 모르니까 다 쾌락에 쏟아 부었습니다. 우상을 더 화려하게 만드는데 쏟아 부었습니다. 여러분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이 불안한 것 아시죠? 그래서 더 점쟁이를 찾고 우상을 섬기는 것 아시죠? 신기하게도 갑부들이 대기업회장님들이 점쟁이를 더 찾습니다. 훨씬 엘리트이고 훨씬 지적일 것 같은데 점쟁이를 훨씬 더 많이 찾습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점쟁이를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잖아요? 더 불안하고 더 소유하고 싶고 더 많은 욕심이 있기 때문에. 오늘 두로가 그렇습니다. 얼마나 바알 신을 잘 꾸며놨는지, 얼마나 바알 신전을 잘 꾸며놨는지 그리고 이면에는 자기들이 그렇게 돈을 벌어야 되는 사명, 왜 돈을 많이 벌었는지 이유도 모르니까 흥청망청 쓰는 것입니다. 두로의 관료들의 자식들, 상인들의 자녀들은 완전히 피폐했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창녀촌이 가득했습니다. 정상적인 가정이 없을 정도로 가정들은 다 이혼하고 깨지고 그래서 돈이 많은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집에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어떤 복권 당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복권이 당첨되면 가정이 행복하고 잘 살 것 같지만 87-8%가 이혼한다고 합니다. 가정이 쑥대밭 된다고 합니다. 신기합니다. 복권만 당첨되면 더 잘 살 것 같잖아요, 더 화목하게 살 것 같고, 행복하게 살 것 같은데 그 조사에 의하면 90% 가까운 복권 당첨자들의 가정이 다 깨지고 상하고 망치로 때리고 자녀들이 재산으로 법정 다툼하고 완전 남남처럼 되고. 재물이 주는 위험성입니다. 그 두로가 주변국에 끼친 영향력은 더합니다.
- 주변국에 대한 두로가 끼친 영향들_이사야23:5, 13-14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으리로다_이사야23:5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 곧 앗수르 사람이 그 곳을 들짐승이 사는 곳이 되게 하였으되 그들이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헐어 황무하게 하였느니라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의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_이사야23:13-14
괴로운 것입니다. 이 괴로움이 어떤 괴로움이냐? 돈 벌 곳이 사라진 것입니다. 내가 이익을 얻어야 할 곳이 사라진 것입니다. 두로가 멸망하고 나니까 애굽과 다시스는 무역의 중심지였던 두로가 불이익이 되고 살길이 막막해진다고 생각하니까 완전히 고통을 당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입니다. 유다. 하나님은 두로를 멸망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이 의지할 수 있는 모든 주변 국가를 다 패망시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은 하나의 스토리입니다. 여러 사건 같고 여러 인물, 나라를 설명하는 것 같지만 구약은 하나의 사건입니다. 하나의 스토리입니다. 이 유다가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지 않고 열 나라의 각 특성의 우상들을 바라보던 유다를 하나님은 모든 것을 끊으셔서 유다로 하여금 메시야를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오늘 날 우리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 가장 강력한 우상, 죄가 뭐냐? 그것이 재물에 관한 것입니다. 부에 관한 우상입니다. 이런 두로를 멸망시키고 17-18절에 이런 메시지가 있습니다.
- 칠십 년이 찬 후에_이사야23:17-18
칠십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_이사야23:17-18
에스라 3장 7절에 보니까 실제로 두로의 재물이 성전에 쓰였다는 기록이 잠깐 있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가장 첫 번째 해석은 두로는 멸망하지만 두로에서 몇 사람이 건짐 받아 돌아와서 하나님의 성전에 그 재물이 쓰임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 70년은 완전한 때, 마지막 때를 상징합니다. 7은 완전 숫자입니다. 70년은 마지막 때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바벨론부터 시작한 열방에 대한 예언이 두로에 대한 예언으로 마무리 되고 있는데 이 단락의 가장 큰 주제가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에 대한 남유다의 의지입니다. 그것이 두 가지 기둥과 같은 주제입니다. 열방에 대한 예언을 통해서 열방을 통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모든 것들을 그냥 두시는 것이 아니며 패망시키신다. 그러면서 열방이 강한 것 같고 자기 스스로 부흥한 것 같고 자기 스스로 대단한 우상들을 섬겨서 성공한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 통치 아래에 있다. 하나님 통치 아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유다는 열방을 의지하지 말아라. 그 마지막 순서에 두로가 나옵니다. 두로는 그 당시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두로는 다윗 시대 때는 다윗에게 조공을 바치던 나라였습니다. 솔로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두로가 다윗 왕, 솔로몬 왕이 부강할 때, 이스라엘이 부강할 때는 조공을 바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이 좋을 때 사람들이 와서 고개를 조아립니다. 그런 것들을 뒤에서 합의하고 협력하고 동맹을 맺는 것입니다. 괜찮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특히 재물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설교를 하기도 합니다. 복음을 위해서 쓰이는 건데 뭐 어때? 이게 어떻게 번 것이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야. 이것이 불법으로 돈을 번 것이든지, 아니든지. 심지어 어떤 목사님은 이런 설교를 하셨습니다. 조폭들이 교회에 헌금해서 성전건축을 했다고 자랑을 하시던데 그것이 나중에는 뭐가 되죠? 반대로 교회 신앙이 무너지고 교회가 힘을 잃었을 때는 반대의 결과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두로가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로가 돈을 지원해주지 않고 두로가 무역을 제공해주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버틸 수 없는 돈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면 잘 할수록 더 정직하고 깨끗하게 돈 벌고 청교도 정신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로를 멸망시킴으로써 두로를 의지하지 말아야 되는 것을 우리에게 메시지로 주고 계십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유다가 의지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깨뜨리는 것이 열 나라에 관한 심판입니다. 이제 사방 그 어느 곳에서도 의지할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게 불행입니까? 아닙니다. 유다가 이 때부터 행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실 유다가 의지할 것이 남아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혹시 어떤 것이 남아있다고 그것을 붙잡으면 그것은 썩은 동아줄 같은 것입니다. 왜? 그 모든 것을 의지한다면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깨지고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만이 의지할 분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축복,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의지할만한 모든 것이 무너질 때 절망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참된 희망이 시작되는 시점임을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 끝에 뭐가 있냐면 재물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이 왔을 때 네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와라, 하늘 상급이 클 것이다. 고민하며 고심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재물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재물을 의지하는 동안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물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재물에서 자유하는 방법들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점검,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지금 하나님이 유다에게 주신 메시지입니다. 사실 두로에게 주신 메시지가 아닙니다. 열 왕국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는 전부 유다에게 주시는, 하나님 백성에게 주시는 메시지인데 지금 유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너희가 뭘 바라보고 있냐? 저는 이사야의 열방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나누면서 우리가 참 의지하고 있는 것이 참 많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가구나. 예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배경도 없고 실력도 없고 이럴 때는 진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봤는데. 제 모습을 봤을 때요. 신학교 때는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돈, 집은 가난하고 그런 것을 떠나서 의지할 거라곤 아무것도 없어서 정말 하나님 한 분만 의지했습니다. 그 기쁨이 너무 컸습니다. 새벽마다 밤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 시간이 너무 설레이고 좋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의지할 것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배경도 생기고 동맹 맺을 것도 생기고 경험들도 쌓이고 주변에 실력 있는 사람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시스템, 프로그램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또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다보니까 타협할 것들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타협할 것이 많이 생기니까 하나님이 저에게 맡겨주신 부흥, 거룩함, 이 시대의 소명들은 희미해져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의 신앙이 변질되어 가고 있는 그릇된 길로 가고 있는 저의 삶들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자녀들, 후배들, 청년들, 젊은이들. 이들은 교회 존재 이유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그렇게 살았고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에. 이들은 우리 부모님 봐라, 목사님 봐라. 목사님이 강단에서는 오직 복음, 오직 예수하면서 뒤에 가서는 의지하는 것들 봐라. 앗수르를 의지하고 바벨론을 의지하고 문화를 의지하고 시스템을 의지하고 재물을 의지하는데 당연히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서 자녀들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돼? 우리가 왜 회개해야 돼? 우리가 왜 눈물로 기도해야 돼? 지금 젊은이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만 온전히 바라봐야해? 훨씬 좋은 것들이 주변에 널렸는데. 그래서 오늘 이 메시지는 유다 주변에 관한 메시지는 우리에게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메시지입니다. 자기 자신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지고 처참해질 때 예수님이 이 땅에 십자가를 지러 오셨습니다. 크게 구약의 역사지만 작게도 구약의 수많은 역사들이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전 38년 동안 광야 생활하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38년 된 앉은뱅이 기억하시죠? 그것이 가나안 땅 38년과 같습니다. 38년이라는 숫자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의지했습니다. 자기 몸이 치유될까? 저 연못에 들어가면 살 수 있을까? 물이 어떻게 되었을 때 살 수 있을까? 아니요. 예수님 만나고 살았습니다. 안식을 얻었다고 합니다. 예수님만나고 38년 만에 안식을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그 의지를 통해서 부흥이 옵니다. 부흥이 뭐에요? 부흥은 우리의 내면이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완전 천국 백성이 되는 거예요. 이 땅에서 구원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부흥입니다. 부흥은 그 결과가 교회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단지 교회 성장이 부흥에 포함되지만 그게 부흥은 아닙니다. 부흥은 우리의 속사람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주인으로 오시는 거예요. 그 분만 의지하는 삶이에요. 그것을 경건이라고도 말하고 부흥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없이 신앙의 열매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과정으로 주변국가들,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우상을 차단해가는 작업들을 우리에게 지금 메시지로 주십니다. 우리는 보통 신앙생활 하면서 하는 불평들이 뭐냐면 환경이 어렵다고 합니다. 상황들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 말은 무엇인가요? 환경과 상황이 우리에게 우상으로 있는 겁니다. 돈이 많으면 헌금할게, 여유가 있으면 예배드리러 갈게, 성경 읽을 시간이 있으면 내가 성경 읽을게. 이런 식입니다. 옛날에 장로님, 권사님 신앙생활 할 때 기도할 시간이 있었습니까? 낮에는 밭일하고, 애들 키워야하고 하루세끼 밥해야 합니다. 새벽같이 읽어나서 일해야 하고, 시부모들 모시고 살아야 되죠. 그런데 기도하고 싶어서 남들보다 일 10배로 더해놓고 교회 가서 예배드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성경에 있는 인물들 성경 읽을 시간 있었습니까? 예배할 시간이 있어서 예배합니까? 아닙니다. 그건 이 시대가 정말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너 할 것 다하고 공부할 것 다 하고, 돈 벌 것 다 돈 벌고, 성공할 것 다하고 나서 교회 예배드리고 성공하고 직분 감당하라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 모르는 세대가 나올까봐 두렵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녀들은 구원 못 받고 다 지옥 갑니다. 그래서 그 과정이 뭐냐, 부흥에 대한 과정이 그것을 다 끊어내는 것입니다. 그것다 하지 말고, 그런 삶들을 포기하고 그 무인도가서 하나님만 바라보라보고 살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유대백성을 왜 세워놨는지 알라는 것입니다. 두로는 어떤 대상입니까? 복음전파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두로가 멸망하고 나서 두로의 몇 사람들이 주께 돌아와서 나중에 그 재물을 성전 건축하는데 헌금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먹고 옷을 해 입는데 그 재물이 쓰입니다. 에스라서에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그 말은 뭐에요? 예수님 믿고 돌아왔다는 겁니다. 그 말은 이스라엘이 두로가 망하고 나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우리 주변 국가들, 우상 국가들이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하는 대상들이지 우리가 그들의 노예가 되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응답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게 한국교회 성도들이 모습이 아닌가.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닌가. 예배는 극장식, 관람하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이 없는 것입니다. 그 우상들을 제거하고 그 죄악들을 제거하고 우리가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들을 시선을 바꿔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의 과정이 없고 영적인 경건과 회개의 과정이 없이 응답해주세요, 축복해주세요가 지금 우리 신앙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에 부흥을 잃어버렸습니다. 변화되고 새사람 되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가정과 가문이 변화되고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회개하고 회심할 때 우리가 기뻐 뛰며 찬송하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해서 교회 안에 새가족들이 오고 누군가 예수님을 믿으면 같이 기도하고 그것으로 너무 신나고 기뻐하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부자, 기업인, 돈 많은 사람이 교회 오면 목사님이 너무 좋아서 신나서 광고하고 그렇게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해서 몇 가지 결단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후서에 말씀으로 세 가지 결단을 나누려고 합니다. 유다에게 열방의 열 나라를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정리를 해야 합니다.
Ⅲ. 무엇을 바라보고 계신가요?
-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_고린도전서6:12-20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_고린도전서6:12-20
12절.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13-14절. 이 몸은 무엇입니까? body, 육신을 이야기합니다. 15-16절. 여기서 창녀는 몸 파는 여인이 아니라 우상을 이야기를 합니다. 사단, 마귀를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에서 창녀는 실제 몸을 파는 그 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은 사람이고, 그 분은 복음을 받아야 할 우리의 모습입니다. 17절. 주님과 합해야 한 영, 몸이 되고 주님이 아닌 다른 모든 우상들은 다 창녀라는 것입니다. 18절. 성적인 음행을 피하라는 음행도 있지만 우상 섬기는 것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해석하셔야 합니다. 19-20절. 하나님이 여러분 잘못하면 영지주의자들처럼 이원론에 빠져서 우리 영혼만 구원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이단입니다. 예수님이 왜 재림하십니까? 우리의 육신의 부활까지 완벽하게 부활을 시키시려고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도 십자가의 보혈에 피 값으로 사신 하나님 것입니다.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고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영과 육을 분리하는 메시지들을 하시는데 위험한 것입니다. 내 영혼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내 영혼만 기뻐하고 내 영혼만 주님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제가 이것을 몰랐습니다. 저도 한동안 제 마음만 깨끗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몸은 더러 워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첫 번째 의미는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겁니다. 우리 육신이 뭘 바라보고 있느냐? 유다백성, 하나님의 백성이 몸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들의 중심은 예배였습니다. 그들의 중심은 늘 메시아를 기다리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몸은 늘 앗수르의 문화, 바벨론의 문화 그들의 강대함 그리고 재물이 많은 두로 그것을 흠모하고 그곳에 갔습니다. 그들과 교류했습니다. 신앙은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구나. 돈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구나. 가난한 자를 돕지 않고 어찌 나를 사랑한다고 하느냐 가난한 자를 섬기지 않고 어찌 주님을 섬긴다고 하느냐. 그 말은 너희가 진짜 교회에 헌금만하고 예배만 드리면 너희가 하나님이 축복하신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절대 그것으로 축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개척할 때 같이 비브릿지를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한 달에 돈 만원, 몇 만원이지만 병든 자, 가난한 자를 위해서 후원하고 그들을 섬기려고 하는 것은 교회가 반드시 같이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복지를 잘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복지하면 교회가 나라에서 혜택을 받고 복지하면 교회가 조금 부흥 할 수 있어. 그 말이 아닙니다. 그 얼토당토않은 동기를 가지고 요행을 가지고 목회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돈을 쌓아놓고 있는 부자 청년에게 다 나누어주고 나를 따라오면 하늘상급이 크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인정하는 겁니다. 주권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재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몸, 삶이 무엇을 바라보고 사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내 몸이 내 인생길을 걸어가는 발걸음이 바라보고 있는 그것이 내 인생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멋있는 삶을 살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돈이 엄청 많아서 기부하고 남을 돕고 신문에도 나고 그러면 좋겠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 정도로 빠듯하게 삽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내 몸이 내가 정말 부흥을 꿈꾸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땅에서의 삶을 바라본다면 내가 내 삶의 일부분을 그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돈 뿐이 아닙니다. 내가 돈 만원을 후원하기 어려우면 내 삶을 후원할 수 있고 내 기도를 후원할 수 있고 내가 헌신하는 내 삶의 일부분을 시간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다 셈하시고 감찰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간은 끊임없는 죄의 욕심에 빠져서 부패하기 때문에 두로처럼 되기 때문에. 돌아오는 주에 연탄배달을 가게 됩니다. 다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숫자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신청이 이미 끝났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그런 곳에 왜 자꾸 우리 젊은이들과 봉사활동을 가냐면 가서 보라는 것입니다. 네팔도 가서 보고, 가난한 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서 보면 절대 사회가 주는 압박을 받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자유함이 있습니다. 나는 엄청 부유하구나. 저는 제가 부자라는 것을 네팔 가서 늘 느낍니다. 나는 잘 사는 사람이구나. 늘 느낍니다. 네팔은 최상위 계층이 3-40만을 받습니다. 네팔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안과의사가 평균 월수입이 2-30만원 밖에 안 됩니다. 네팔에 국민 평균이 10만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세계 최대 빈민국가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서 만 원, 이만 원짜리 밥 사먹으면 따루 목사님이 놀라십니다. 만 원짜리 한 장이면 아이가 한 달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비싼 밥 사먹는 것을 보면 따루 목사님이 놀라십니다. 만 원짜리 한 장이면 아이가 한 달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거기를 다녀오니 제가 자유 합니다. 만족하고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몸으로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두 번째는 우상숭배를 피하라는 것입니다.
- 우상숭배를 피하라_고린도전서10:14-22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_고린도전서10:14-22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우상숭배를 피해야 합니다. 두로는 재물이 넘치는 도시였지만 그와 함께 늘 붙어있던 것이 우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성은 재물과 함께 우상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우상은 인간 내면의 욕망이 형상화된 것입니다. 인간 내면의 욕심이 형상화 된 것이 우상입니다. 여러분 바알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 내면에 풍요로워지고자 하는 욕심이 바알 신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거기에 사단이 역사한 것입니다. 아닌가요? 인간 내면에 욕망이 우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그 마음이 우상인데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게 하기 위해서 우상을 만듭니다. 그 우상의 배후는 항상 귀신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점쟁이 집에 가서 점을 계속 보기 시작하면 계속 점쟁이 집을 가야 합니다.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고 소 뒷걸음질 치다가 뭐라고 밟으면 그게 맞아 떨어져서 점쟁이 집에 늘 빠져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운명, 사주, 팔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자기 자신을 여전히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자기 마음에 욕망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그런 우상은 우리를 구원해줄 수 없습니다. 우리를 멀쩡하게 이 땅에서 멋있고 아름답게 살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서 멋있고 아름답고 가치 있게 살아야 되는데 떳떳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데 우상은 절대 그렇게 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상에서 벗어나라고 합니다.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합니다. 우상숭배를 피하기 위해서 성경은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합니다. 어쩌면 예배도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참신 되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우상숭배. 이왕하려는 우상숭배 하나님을 섬기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영원에서 구원하시고 죄에서 건지시며 내세가 분명히 있고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는데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우리를 구원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섬기라고 성경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두 번째입니다.
-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_고린도후서6:1-10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_고린도후서6:1-10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매우 심오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은 단지 신앙생활 대충하지 말라, 예배를 대충 드리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는 은혜는 하나님의 나라와의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공동체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가족, 우리의 후대, 이 나라, 민족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내 개인적인 은혜에서 머물러 있지 않고 우리가 은혜를 받는 모든 행위, 예배는 공동체와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신앙생활에 개인주의의 극치를 달리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그렇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개인적인 거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신앙은 결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 개인이 국가와 연결되어 있고 가족과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은 영향을 받고 영향을 줍니다. 그것은 단지 육신적인 것에만 제한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그 기도를 사용하셔서 우리 후대에 열매를 맺게 하실 수 있고, 어느 나라에서 열매를 맺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작은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면서도 발버둥치는 이유는 분명 우리의 때가 끝나면 가스펠교회가 우리 자녀들에게 이 나라와 민족에게, 선교지에게 남기 때문입니다. 이 가스펠교회가 다음 세대에 어떤 모습으로 남겨질까? 그게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붙잡고 있는 목회의 방향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은 공동체신앙을 이야기합니다. 그게 신앙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앙이라고 하면 우리 개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에서 신앙이라고 하면 공동체 신앙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신앙생활하면 나 혼자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신앙생활하면 공동체 신앙을 전제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개인에게만 꽃피우는 신앙의 열매란 것은 없습니다. 그런 신앙은 위험한 신앙입니다. 신앙은 수평적으로 수직적으로 전달됩니다. 신앙이 비록 제 각각의 옷을 입고 있지만 결코 개인주의는 아닙니다. 개인이 은혜받기 위한 모든 시간들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사용하십니다. 그것이 내 가족, 내 지체들 더 나아가 이 땅의 모든 영혼들에게 구원의 날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니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녀를 위해서라도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후대를 위해서라도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모든 신앙의 과정이 열매로 우리 자녀들에게 맺힐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목회를 하면, 그것을 보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뭐라고 하나요? 비전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비전이 그것입니다. 저도 편하게 목회하고 싶습니다. 왜 저라고 술 안 먹고 싶겠습니까. 저도 친구 목회자들하고 와인 한 잔,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마실 수 있지. 왜 먹지 않고 있을까요? 저라고 훌륭한 목사님들이 설교한 것 그대로 원고 가져다가 설교하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일주일 내내 성경 뒤지고 머리도 나쁜데 논문 뒤져가면서 다른 목사님들 설교한 것을 살펴가면서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생각해가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해가면서 오늘 이 본문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가면서 밤새워가면서 설교준비를 왜 하겠어요? 후대에 남기고 싶은 목회자의 모습, 삶이 있고 교회 모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꿈이기 때문에 기쁨으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부흥을 꿈꾸고 있습니다. 부흥을 꿈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것 때문에, 돈 때문에, 세상의 성공과 명예 때문에 부흥이 희미해지면 안 됩니다. 우리가 비록 환경이 열악하지만 부흥이 희미해지면 안 됩니다. 부흥이 나의 때에 이루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다윗은 성전건축을 평생 준비했지만 자기 때에 성전건축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건축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은 다윗에게 축복으로 왔습니다. 부흥이 우리 때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부흥을 꿈꾸며 준비하며 눈물로 기도하고 씨앗을 뿌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으로 주님을 섬겨야하고 우상숭배를 멀리해야 합니다. 당장 결과가 없을지라도 그것이 나의 때에 응답으로 연결되지 않을지라도 우상숭배를 멀리하고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아서는 안 됩니다. 부흥을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애쓰는 삶이 부흥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은 은혜 받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 상황을 보세요. 무슨 구원의 날이에요? 아니요. 그것은 우리 생각입니다. 우리 판단입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이야기입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세상 이야기입니다. 우리 기도해봤을까요? 우리 눈물 흘려봤을까요? 하나님은 하십니다. 무엇을 했을 때요?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봤을 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하나님은 항상 부흥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놀랍고 기쁨이 넘치는 감격이 넘치는 부흥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해요. 우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헛되이 허투루 받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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