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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1-02-07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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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07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여호와께서 눈물을 씻겨주시다

본 문

이사야 25:1-12

 

 오승주 목사

 

Ⅰ.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_이사야25:1

 

이사야 말씀을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조금 반복되는 말씀 같지만 매주 본문마다 특징되는 주제들이 있어서 놓치지 않고 성도님들이 깊이 그리고 전체적으로 확인하고 가는 시간이 꼭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저희가 수요일 밤에 말씀을 푸는 말씀묵상을 하다보니까 코로나 때문에 시작한 것인데 되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 영상도 살펴보시면 좋습니다.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되게 중요하고 말씀이 내게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많이 듭니다. 대충 넘어가시지 말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놓치는 부분, 어려운 부분이 뭐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인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가 신앙생활을 한다, 교회를 다닌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개념은 있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에 대해서 알기 위해 우리가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니까 우리의 믿음도 더 이상 발전이 없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지 못하니까 자각하지 못하니까 우리의 신앙이 계속 이 세상, 사람들의 기준, 환경, 상황,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가 경외해야 할 하나님이고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될 하나님이라고 인식이 된다면 깨닫는 다면 그 분이 어떤 분인 줄 안다면 우리는 결코 이 땅에서 함부로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낙심하거나 교만하거나 이렇게 할 수 없을 텐데. 그래서 세상이, 어둠의 세력들이 교회를 향해서 가장 강력하게 공격하는 것이 뭐냐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게으르게 만들어서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 성도들이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 공부하는 것을 게을리 하고 그런 것을 이단, 사이비들은 성경공부를 무료로 해주고 성경 읽고 이상한 해석들을 하는데도 열심히 합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나요? 사이비들이 이상한 교주들이 그런 것을 열심히 하는데 거기는 사람들이 젊은이들이 대학생들이 엘리트들이 똑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신천지 같이. 그렇게 하는데 교회는 정작 그런데를 비난하면서 비판하면서 교회는 주일 예배 외에는 하는 것이 없는. 우리가 구원 받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알아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계획대로 사는 것이 면류관을 받고 축복을 받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신앙의 길을 가야 되고 믿음의 길을 가고 싶은데 그 길을 가야 천국보좌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상급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정작 그 길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신앙이 환경이나 상황에 완전히 함몰되어서 교회가 이렇다 더라, 예수 믿는 것이 이렇다 더라 사람들이 말하면 그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뛰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 평범합니다. 신앙은 우리가 뛰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우리가 탁월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별 볼 일 없는 우리가 위대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조지 뮬러가 60년이 넘도록 목회를 했습니다. 우리는 조지 뮬러라고 하면 고아원에서 몇 만 명을 먹여 살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지 뮬러의 생애를 잘 살펴보면 조지 뮬러는 고아원이 메인 사역이 아니었습니다. 목회, 작은 교회를 섬기는 일이 그에게 아주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아원을 왜 했냐면 그 당시 성도들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교회를 운영하는 장로님들이나 교회의 성도들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우리 교회도 밖에서 다른 교회들이 하는 것 우리도 도입합시다, 우리도 이런 것 해봅시다, 우리도 저런 것 해서 교회가 축복을 받읍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지 뮬러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 살아계시는 것을 믿지 못하는구나 해서 시작한 것이 고아원 사역입니다. 그가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고아들을 하나님이 돌보시고 기도로 하나님께서 이 고아들을 어떻게 축복하시는지,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을 우리 성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고아원을 시작했다고 간증했습니다. 자기도 그렇게 커질 줄 몰랐습니다. 정말 아무 운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고아원을 어디 가서 도와 달라, 후원해달라는 이런 운영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조지 뮬러는 오직 기도만 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들을 먹여 주시옵소서. 놀라운 일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그의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아침에 먹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 새벽에 하필이면 우유 배달차가 고아원 앞에서 전복되어서 그 많은 우유를 버릴 바에는 고아원이 있네 해서 우유를 먹었다는 사건도 있습니다. 조지 뮬러가 이야기했습니다. 성도들에게 설교하면서. 봐라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냐. 하나님의 그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냐.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_누가복음 11:11-13 

 

아버지는 아들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육신의 아버지인 저도 어린 자녀에게 집에만 가면 어떻게 좋은 것을 먹일까 좋은 것을 입힐까 최고로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최고로 좋은 교육을 해주고 싶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고 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서라도 우리 자녀들에게 잘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고 부모 심정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은 구하면 성령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 시대에 성령을 구하지 않고 있냐? 왜 성령이 신앙생활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냐? 희미해지고 있냐? 마음만 먹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현대 문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마음만 먹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현대 문화. 우상입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이 위대한 일을 성취하는데 더 필요한 조건을 다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노력하면 돼. 그래서 현대 문화 속에서 내가 자신이 큰 일, 대단한 일을 하는데 모든 조건이 세상 문화 속에 다 있어. 그래서 그 문화 속에서 노력하고 애쓰면 나는 내 이름을 드러낼 수 있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어 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들도 그런 착각을 합니다. 저도 책, 대형교회 목사님들 보면 나도 저렇게 대형교회 목사님이 될 수 있을까 라는 꿈을 가지고 있는데 헛된 꿈입니다. 저는 제가 이번 주에 계산을 해봤습니다. 앞으로 목회를 65-70세까지 하겠잖아요? 20년이 남았는데 현실을 빨리 자각해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제가 버릴 것은 버리고 선택하고 집중하려고 이번 주에 많은 메모들을 했습니다. 목회, 저희 교회. 우리는 그런 허황된 꿈속에서 삽니다. 왜냐면 현대 문화가 그렇습니다. 그거 하면 다 되는 것 같은. 텔레비전을 보고 영화 같은 것을 보면 나도 저런 삶을 살 수 있을 거야라고 꿈꾸지만. 교회 안에 그런 문화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선교헌금을 하는 것도 그런 마음으로 합니다. 네팔, 아프리카다 하면서 선교헌금을 내는 건데 직접 가라고 하면 나는 그런데 절대 못가. 우리 이런 농담도 합니다. 야 하나님이 너 신앙 똑바로 하지 않으면 아프리카, 네팔 보내버린다.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몰라. 이런 말을 서스름 없이 하고 강단에서 서스름 없이 하면서 아멘이라고 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모습, 실상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나는 돈 많이 벌어서 선교헌금 몇 푼 내면서 우리가 그 땅에 가려고 하는 마음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치 선교와 열방과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없는 것처럼 이렇게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현대 문화 속에서 방향을 잡고 가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원대한 소원인 영혼구원, 이방선교,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주의 복음, 빛을 전하는 쪽으로 가면 우리는 아무리 현대 문화가 발전하고 시스템이 대단해지고 화려한 세상 속이라도 성령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저 복음이 없는 7-8세가 창녀로 팔려가는 그 땅을 우리에게 사명으로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도 성령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신앙은 현대 문화 속에서 내 이름을 드러내고 조금만 노력하면 더 잘하면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우리가 성공할 수 있어 라는 그런 이 땅에서의, 이생에서의 끝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성령이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을 삼으실 때, 그리고 초대교회를 시작하실 때 다 가난한 사람들, 모자란 사람들, 부족한 사람들, 배경 없는 사람들, 어부들, 세리들을 데리고 시작하셨습니다. 왜? 제대로 교육 받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기도하고. 그래서 사도행전1:14에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_사도행전1:14

 

이것은 그냥 말이 아닙니다. 그거 아니면 복음 전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거 아니면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족들에게 자녀들에게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시작하셨습니다. 심지어 똑똑한 바울이 하나님께 필요했습니다. 모든 전략과 문화와 언어를 갖춘 바울이 필요했지만 바울을 어떻게 쓰셨나요? 바울이 뭐라고 고백했나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배설물이다, 나는 날마다 십자가 앞에 죽노라 이런 고백을 하게 하여서 사용하셨습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왜 성령이 필요 없을까요? 내가 내 삶을 잘 살도록 세팅해서 살 만 하니까 뭐 예배 간절히 드릴 필요 있냐? 기도 열심히 할 필요 있냐? 단지 예배 열심히 드리고 헌금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보다 더 성공하고 더 풍족하게 살기 위한 어떤 종교심 때문이 아닌가요? 정말 우리가 선교헌금을 내어도 그 땅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본 적이 없고 관심도 없고 그냥 내는 것입니다. 이거 안 내면 벌 받을까봐. 네팔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 그 영혼들에 관심도 없습니다. 그냥 만 원짜리 한 장 내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선교헌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 하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이 그렇게 병 들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예수님의 명령처럼 가서 제자 삼으라,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 그게 하나님의 명령이 진짜라면 그 명령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고 진짜로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고 성령을 구할 수밖에 없는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데 우린 이 고백이 사라졌습니다. 무슨 고백이 사라졌나요?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_이사야25:1’

 

여호와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이 고백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이 필요가 없는 신앙생활입니다. 교회에 하나님이 필요가 없습니다. 다들 머리 맞대고 아이디어 내서 회의해서 교회 운영하는데 여호와 하나님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이 고백이 없습니다. 목사들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얼마나 똑똑한 인재들이 많은데요, 재정은 넘쳐나죠, 인재들은 널렸죠. 하나님 의지하지 않습니다. 목사들도 하나님 바라보지 않습니다. 왜? 이 정도면 나 먹고 사는데 지장 없고 내 이름 드러나는데 지장 없고.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고백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백이 아니라면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위로, 저 천국에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 위로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가스펠 교회 성도들이 천국에 입성해서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그런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Ⅱ. 주를 경외하라

 

- 포악자의 기세_이사야25:2-5 

 

주께서 성읍을 돌무더기로 만드시며 견고한 성읍을 황폐하게 하시며 외인의 궁성을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원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강한 민족이 주를 영화롭게 하며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이 주를 경외하리이다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요새이시며 환난 당한 가난한 자의 요새이시며 폭풍 중의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 같이 주께서 이방인의 소란을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림 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_이사야25:2-5

 

2-4절. 무슨 포악한 나라들이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상황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다고 합니다. 포악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다고 합니다. 포악자, 어둠의 세력들, 교만한 자들. 자기들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 문화들, 이 땅의 지도자들, 정치인들, 권력자들. 대단한 재물과 권력, 실력 다 가졌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인간들. 자기 목숨 하나 어떻게 할 수 없으면서, 병 하나 치료할 수 없으면서, 암 하나도 치료하지 못하면서, 코로나 하나도 이기지 못하면서. 오만하고 교만하기 짝이 없는 이 포악한 자들. 하나님의 성읍을 공격하고 폭풍처럼 몰아치면 마치 하나님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신앙 가진 사람들이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이 되잖아요. 얼마나 성읍 안에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얼마나 어리석게 보였겠어요. 온갖 마차와 군대를 동원해서 성읍을 에워싸고 있는데.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저들은 왜 그렇게 사냐면 이 땅, 이 세상이 전부라고 인지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그게 죄입니다. 죄는 내세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죄는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원죄)를 짓고 제일 먼저 육신의 눈이 떠졌습니다. 영적인 눈이 가려졌습니다. 육신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요. 먹고 사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차 좀 타고 좋은 음식 좀 먹으면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내세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포악합니다, 악합니다. 누가 보실 때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합니다. 악한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기세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세력, 기세가 등등합니다. 포악자의 노래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노래합니다. 승리했다고 술 취하고 노래 부르고 드디어 함락시켰다 이 성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앗수르, 바벨론, 모압이 그랬을 것입니다. 주를 경외하는 것을 조롱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 때 그런 포악자의 기세가 등등할 때 그 때 믿음을 지킨 사람들. 그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 고난을 선택한 사람들. 그들을 성경은 남은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질까 전전긍긍하고 그들의 걱정은 그 포악자의 기세 때문에 우리가 먹고 못 살까 우리가 죽을 까 이 성벽이 무너지면 어떻게 할까, 우리가 다시 가난해지면 어떻게 할까가 걱정이 아니라 그 남은 자들의 진짜 걱정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할까,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나님의 임재가 끊어지지 않을까. 그게 진짜 크리스천들의 걱정이고 고민이어야 됩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교회들이 포비아 현상을 일으켜서 사람들이 무조건 코로나 하면 교회 탓을 합니다. 교회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완전 다 묶어서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가 잘 못 했습니다. 저도 사과 몇 번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포비아 현상 속에서 우리가 진짜 지켜야 되고 우리가 정말 확인해야 될 것이 뭐냐? 우리의 믿음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광야에 쫓겨 나가고 정말 먹을 게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목숨이 위태로 운데 먹을 것이 중요한가요? 때로는 미친 척도 해야 되고 때로는 정말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지키려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런데 다윗이 그 순간에 고백한 시편을 보면 그런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걱정했냐?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할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어떻게 할까,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면 어떻게 될까. 다윗의 걱정은 온통 하나님이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알았기 때문에, 상황이나 환경이나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알았기 때문에, 내세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 때문에 그 영광이 가리어질까 그것 때문에 늘 전전긍긍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까.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믿음을 지킨 사람들.

 

- 만민을 위하여 연회를 베푸시리니_이사야25:6-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_이사야25:6-7

 

6절.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만민을 위해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신 다고 합니다. 포도주는 오래 저장할수록 비싸고 값어치가 있습니다. 7절. 사망과 그늘의 덮개를 거두어 주시는 시간. 이게 그 당시의 상황이기도 하고 또 종말론적인 해석도 가능하고 우리 개인에게는 개인의 종말, 죽음을 앞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다 거두어집니다. 우리 얼굴을 가린 것들, 덮개들. 다 거두어주신다고 합니다. 죽음입니다. 여러분 이 땅의 고난은 죽을 때 끝납니다. 우리가 죽고 나서 천국에 입성할 때 우리가 위로라는 것을 받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난이라는 것이 이 땅에서는 끝나지 않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땅, 어둠이 관영한 땅에서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신앙을 지키며 사는 거지. 이 땅이 천국은 아닙니다. 그게 다 거둬진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잔치, 연회를 베푸신 다고 하십니다. 진품으로 잔치를 베푸신 다고 하십니다. 누구에게요? 세상에서 멸시받고 세상을 쫓지 않아서 현대 문화를 쫓지 않아서 괴로운 인생을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수고하는 자들에게. 포로로 끌려갔지만 거기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고난의 시간표지만 거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눈물을 흘렸던 그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연회를 베푸신 다고 합니다. 

 

-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_이사야25:8-9, 요한계시록7:17, 21:4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_이사야25:8-9

 

8절. 사망을 멸하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망에 대한 심판입니다.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이야기를 하십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만 세상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외면하고 바라보지 않고 그냥 이 땅을 살아가지만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 내세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죽음이 제거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죠? 8-9절. 우리가 천국에 입성하면 기다리던 고대하던 아버지 하나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사망이 사라지면 죽음이 사라지면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 얼굴에 모든. 모든 이라는 것은 충만함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얼굴에서 그 눈물을 씻기신다고 합니다. 인생의 모든 것.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_요한계시록7:17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_요한계시록21:4

 

천국에서 우리의 눈물을 씻겨주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눈물을 씻겨주신다고 표현했을까? 우리가 주님을 위해 이 땅에서 받은 핍박 때문에. 마태복음에 나온 것처럼 너희가 나를 위하여,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으리라. 이게 신앙생활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으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박해를 받는다는 것이고 고난의 길을 간다는 것이고 눈물 흘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래서 눈물을 씻겨주신다고 성경 곳곳에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눈물 없이 신앙생활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도 적응을 잘하고 교회에도 적응을 잘하고 눈물이 없네, 예수님 잘 믿었더니 축복이 넘치네. 성경은 그건 신앙생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눈물이 없습니까 현대교회가? 아버지 하나님 마음으로 저 선교지에 있는, 우리 이웃에게 있는, 우리 자녀들에게 있는 그 가난한 영혼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죄악이 관영하고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가릴까 전전긍긍하는 신앙이 없기 때문에. 눈물이 다 말라버렸습니다. 한국교회 신자들이 과연 몇 프로나 하나님의 마음으로 선교지를 두고 기도하겠습니까. 그들이 선교 헌금을 내면서 몇 프로나 눈물을 흘리면서 선교헌금을 내겠습니까. 나는 그런데 못가 대신 선교사나 파송해, 내 자식은 선교사로 절대 안 보낼 거야. 돈 잘 벌어서 중직자로 교회 헌금 많이 해서 선교사 파송이나 하지 네가 뭐한다고 선교사로 가. 다 이런 마음 아닙니까 솔직히. 우리가 세상을 선택하고 어둠을 선택하면 편합니다. 반대로 믿음을 선택하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인생이 사실 선택의 연속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희 교회도 진짜 어려운 가정에서 교회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거의 대부분입니다. 저희 교회는 풍족해서 잘 풀려서 오신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심방 가면 맨날 울고 옵니다. 그런데 그 힘든 상황 속에서 믿음을 선택하고 예배를 선택하고 신기합니다. 다 깜깜한데 진짜 빛이 작은 구멍에서 작은 빛줄기가 비추는데 그것을 보고 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환경은 더 좋은데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모님을 원망하고 왜 나한테 이런 환경을 줬냐면서 나한테 왜 이렇게 상황을 줬냐고 부모,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포자기 합니다. 인생의 결과는 달라집니다. 인생은 내가 뭘 선택하느냐에 따른 결과가 인생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선택은 그런 것입니다. 인생의 열매는 무엇을 선택했느냐 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열매도 달라지는데 천국에 가면 더 달라집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셈하시니까, 우리 인생을 관찰하시니까. 여러분 자녀가 주일날을 기대하고 예배를 기대하도록 만들어주셔야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선택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선택할 것이 얼마나 많아요. 그 아침에 눈을 떠서 성경을 선택하고 펼친다.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눈물을 흘려야 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왜?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일해야 되니까.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해야 자녀들을 키우니까. 그런데 미쳤다고 성경을 펴나요. 그럴 시간이 어디냐. 그거 싸우셔야 합니다. 그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등지고 주님을 따르는 선택을 한다면 혹시 그 길이 죽음의 길일수도 있고 너무 외로운 길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흘리는 눈물 하나님이 다 기억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너희가 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 너희가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 너희가 나를 위해 흘리는 눈물 다 씻겨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신앙이 무엇인가요? 누구를 위해서 사는 건가요? 무엇을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것인가요? 주님을 위해서 살았던 자들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눈물을 씻겨주신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예루살렘 성에 유다백성 사람들 중에 남은 자들. 다 모압과 암몬과 구스와 바벨론과 앗수르와 다 동맹을 맺고 그렇게 살면 당장은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그들을 선택하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드리고 그들의 경제를 받아드렸던 그 사람들과 그 속에서 예배를 지키고 신앙을 지켰던 남은 자들. 결말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 기세가 등등한 포악자들은 하나님이 진토가 되게 하신다고 합니다. 땅의 저주를. 지난주 메시지입니다. 죽어요. 죽고 나면 끝입니다. 어디로 갑니까? 죽으면 전부 지옥으로 갑니다.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신앙을 지켰던 사람은 내세, 하나님 품에, 아버지 품에. 주님이 직접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연회를 베풀어주신다고 합니다. 목사님 지금 내세 이야기를 자꾸 하시는데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이 땅에서 어떻게 축복을 받고 살아야 되는지, 이 땅에서 어떤 응답을 받고 살아야 하는지 그런 메시지 좀 해주세요 라고 한다면 저희 교회 안 다니셔도 되요. 다른 교회 가세요. 괜찮아요. 성경은 그런 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전혀. 그건 축복이 아닙니다. 저주입니다. 그런 교회는 다니시면 안 돼요. 재앙입니다. 내세를 이야기하지 않고 천국을 이야기하지 않는 목사가 어떻게 목사입니까. 우리는 많이 울어야 합니다. 내 자녀들 예수 믿게 하기 위해서 울어야 되고 내 남편 예수 믿게 하려고 울어야 되고, 내가 그 죄에서 벗어나서 아버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울어야 됩니다. 속상해야 됩니다. 예수님 믿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속상해야 됩니다. 압니다. 우리 성도님들 어려운 것 압니다. 환경이 힘든 거 알아요, 상황이 현실이 녹록치 않은 것 압니다. 나만 왜 이러는가, 우리 집만 왜 이러는가, 그럴 수 있습니다. 남은 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그때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좋은 것이 뭐였나요?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성경은 기가 막힙니다. 너희가 구할 때 내가 너희에게 성령을 주겠다. 여러분 우리의 눈물의 기도 우리가 다시 회복할 때입니다. 그런데 왜 이것을 못하게 하냐? 이게 왜 다 사라졌냐? 인간의 교만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Ⅲ. 교만은 우리를 망하게 합니다

 

- 그 손이 능숙함에도 불구하고_이사야25:10-12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물 속에서 초개가 밟힘 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그가 헤엄치는 자가 헤엄치려고 손을 폄 같이 그 속에서 그의 손을 펼 것이나 여호와께서 그의 교만으로 인하여 그 손이 능숙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누르실 것이라 네 성벽의 높은 요새를 헐어 땅에 내리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_이사야25:10-12

 

10절. 모압도 심판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11절. 무슨 말인가요? 모압이 자기 손을 끝까지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손을 펼치셨는데 그 손을 붙잡아야 되고 그 손을 바라봐야 되는데. 구원의 손을 붙잡아야 되는데 모압은 내 손, 아직도 살아있는 내 능력, 내 배경을 붙잡는 것입니다. 뭐라고 기록합니까? 11절 하. 끝까지 예수님 안 믿어도 된다고 합니다. 끝까지 하나님 앞에 굴복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나는 죄 지은 것 없어. 나는 내 인생 잘 살았어. 내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살았는데. 내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데.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까지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어. 여러분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종교입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깨닫지 못하면 신앙이 아닙니다. 아직도 의로우십니까? 내가 신앙생활을 몇 년을 했는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예수를 믿었는데. 신앙은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과거 다 버려야 합니다. 내가 옛날에, 한 때는 말이야. 이런 것 다 버리셔야 합니다. 그게 얼마나 큰 교만인지 모릅니다. 모압이 그런 것입니다. 자기 손을 펼쳐서. 심지어 능숙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뛰어다는 것입니다. 능숙하다, 교만입니다. 죄는 교만을 열매 맺게 합니다. 죄의 열매가 교만입니다. 교만이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큰 죄입니다. 왜냐하면 교만이 있으면 하나님께 엎드리지 못하니까 믿지 못하니까 따르지 못하니까 주 만 높임을 받으시라고 하나님만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으니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으니까. 다 뭐 때문에 못하는 거죠? 교만 때문에. 이 뛰어난 현대문화를 배경 삼은 이 시대의 사람들이 조금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잖아요? 병원 다니면 치료 받을 수 있을 것 같잖아요? 돈 좀 모으면 내 이름 드러내고 살 수 있을 것 같잖아요? 정치인들이 대통령, 국회의원되면 세상 다 가진 것 같잖아요? 내세가 있다는 것도 죽음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자기 손을 끝까지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사인을 줘도 하나님이 아무리 하나님의 손이 그 성 위에 와 있는데도 곧 도달하고 있는데도 모압은 짓밟혔습니다. 멸망당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자기 손을 끝까지 붙잡은 모압. 성경은 오늘 교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손이 아무리 능숙해도 세상 적으로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교만하면 하나님 만나지 못합니다. 이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아십니까?

 

- 교만의 무서움_마태복음12:34-37, 요한일서1:5-10, 3:4-8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_마태복음12:34-37

 

34-36절. 심판 날에 우리의 말에 대해서 심문을 받는다고 합니다. 37절. 마음에 악한 것이 있으니까 악한 말이 나옵니다. 마음에 선한 것이 쌓여있으면 선한 말이 나올 것입니다. 교만의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_요한일서1:5-10

 

5-8절. 말하면. 말입니다. 9-10절. 다들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우리 죄 안 지었는데? 우리 잘 살고 있는데? 그 속에 나 하나님 잘 믿고 있어. 그런데 뭐하면요? 우리 죄 없는데? 그래서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그것 다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우리가 그러고 있습니다. 이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라고 하고 실제로는 어둠으로 행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자입니다. 신앙은 말로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진짜 돌이키는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말이 아닙니다. 그 죄의 길에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를 날마다 하라는 것은 날마다 자백하라는 것은 우리가 날마다 연약하기 때문에.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회개라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왜요? 영적으로 완전히 무뎌져서 하나님과 사귐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없는데 그게 큰 죄인데 하나님과 사귐이 없는 상태를 괜찮다 라고 이야기하는 한국교회. 어떻게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날마다 하나님과 사귀어야 그게 신앙생활인데 그게 없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교회 메시지들. 그래서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 죄인인데, 죄인을 죄라고 회개하라고 말 못하는 한국교회 메시지들. 눈치 보면서.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우리 어른들 심방가면 마음에 있는 말 한 마디도 못 뱉고 올 때가 많습니다. 조금 회개하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사시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인간관계가 있으니까. 그런 말하면 기분 나빠 하시니까. 그게 썩은 것입니다. 교회들이 종교적으로 썩은 것입니다. 그게 사람들의 교회 대중화를 위해서 목회자들이 삯꾼 목사들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 교회 오겠어요? 이렇게 설교하는데.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_요한일서3:4-8

 

4절. 죄는 불법입니다. 8절. 죄를 짓는 것이 괜찮아요? 마귀에게 속하는데? 하나님께 불법인데?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선택할 때 믿음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자기 배경, 자기 지혜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인생은 늘 두 갈래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죄를 짓고 사느냐? 아니면 죄에서 벗어나 빛으로 가려고 하느냐. 두 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신앙은 빛을 향해서 가려고 애쓰는 길이 신앙생활입니다. 이 교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길. 어떻게 하면 교만에서 벗어날 수 있냐? 

 

- 교만을 벗어나는 길_요한일서4:1-6, 욥기23:10-15, 갈라디아서2:16-21

 

첫째는 예수님을 시인해야 됩니다. 교만에서 벗어나려면 예수님을 시인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_요한일서4:1-6

 

1절. 여러분 거짓 선지자들 조심하셔야 합니다. 2-3절. 교회라고 다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목사라고 다 선지자가 아닙니다. 4절.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남은 자들의 고백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고백하고 살 수 있는가. 5절. 요한일서, 마태복음과 똑같습니다.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세상은 말로 다 통합니다. 그러나 6절. 교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야 되고 하나님께 속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 교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_욥기23:10-15

 

이게 무슨 말인가요? 욥이 지금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 한 번도 하나님 말씀 어긴 적 없어. 나 한 번도 하나님의 뜻 어겨서 산 적이 없어. 그런데 내가 고난이 왔다면 그건 하나님 뜻이야. 나는 한 번도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은 적이 없어. 그런데도 내게 이런 고난이 왔으면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야.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할 거야. 이게 신앙입니다. 교만이요? 제가 욥 같았으면 하나님께 따져 물었을 것 같습니다. 아니 도대체 신앙생활을 얼마나 잘했는데. 당대의 의인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사단이 고난을 줘서 부인도, 자녀들도 빼앗아 갔는데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으면 한마디 하나님 앞에 불평이라도 한마디 할 텐데. 욥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가요? 내가 그 앞에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내가 이정도 신앙생활 잘했는데도 내게 고난이 왔다면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야. 교만? 욥에게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완전 전능자, 창조자 하나님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우리가 교만할 수 있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한낱 인간들이 자기의 기세를 등등하게 포악자들처럼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지각을 얻는다는 것은 뭐에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그게 교만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매일 성경을 읽습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고 읽으려고 합니까? 세상의 소리 계속 듣고 있으면 세상이 하는 이야기 듣고 있으면, 유튜브, 뉴스, 정치인들이 하는 이야기 계속 듣고 있으면 그쪽으로 갑니다. 욥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친구들이 와서 계속 자기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네가 잘못했겠지, 네가 교만했겠지, 욥이 귀를 딱 닫고 하나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만하지 않으셔야 됩니다. 

 

교만에서 벗어나는 길 세 번째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으라고 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_갈라디아서2:16-21

 

16절.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21절. 지금 갈라디아서는 무슨 말을 하고 있나요? 바울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율법의 행위로는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꾸 교회에서 행위를 강조하는데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청소도 하고 봉사도 해야 합니다. 그게 내 의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헌금 좀 많이 했지, 그게 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찬양팀으로 봉사 좀 했는데 그게 의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받은 은혜에 비하면 우리의 행위는 사실 보잘 것 없습니다. 그래서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게 은혜 받는 것을 가려버립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20, 30년 하면 은혜를 못 받습니다. 왜요? 행위로 의롭다하심을 얻어버리는 것입니다. 목사 안수 받으면 그 순간부터 은혜를 안 받습니다. 목사라는 겁니다. 행위로 의롭다하심을 받아 버린 것입니다. 바울이 그것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해가 되셔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폐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남들과 비교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남들과 비교해요. 쟤보다 내가 조금 더 신앙생활 잘했어요. 그것으로 의를 여깁니다. 그런 게 어딨나요? 하나님 앞에 서면 도긴개긴이고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의인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비교하는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는 말이야 신앙생활 이렇게 했더니 이런 축복을 받았어. 너는 영적문제가 많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똑같은 죄인입니다. 예수 보혈의 피가 필요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이 교만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목사, 설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목사들이 교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농담으로 천국에 가면 목사들이 제일 없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어야 교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나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살라고 합니다. 은혜를 폐하지 말라고 합니다. 은혜 받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니까 은혜 받지 않아도 되나요? 교회 안가니깐 은혜 안 받아도 됩니까? 은혜 더 받으셔야 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더 은혜를 받도록, 더 은혜를 사모하도록 만들어 주셔야 됩니다. 은혜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까? 그 은혜를 폐하고 소멸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교만해집니다. 우리는 이 선택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세상, 세상의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 믿음을 늘 선택해야 됩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주는지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매순간 예수 보배로운 피를 선택해야 합니다. 교만은 이 세 가지를 거부하게 만듭니다. 우리 인생은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음을 앞두고 삽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뭘 제거하신다고 하시냐면 사망을 제거하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죽음이 없습니다. 천국으로 입성하는 것입니다. 친히 우리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늘가는 밝은 길, 천성을 향해서 가는 길이 늘 내 앞에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그게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죽을까 늘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잘못하면 염세주의자가 될 수도 있는데 이 땅은 다 더럽고 직장도 안 다니고, 사이비 단체처럼 기도만하고 성경만 읽고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하늘가는 밝은 길 그 은혜가 내게 차고 넘치고 믿음을 선택해서 사는 사람이라면 직장생활 더 잘해야 됩니다. 왜? 거기에 영혼 구원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 될 현장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악착같이 살고 더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더 풍성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저 창녀로 팔려가는 7,8살 아이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과 비교해서 동료들과 비교해서 살지 마세요. 우리의 비교대상은 우리가 살아야 될 삶은 우리의 존재 가치는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것 했다고 해서 부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 백성은 앗수르, 바벨론, 모압과 구스를 부러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천성, 천국을 흠모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연회를 베푸시고 잔치를 베푸시는데 예수 공로 의지해서 항상 밝은 빛을 보고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한 가운데에서 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만으로도 조소거리가 될 수 있는데 세상 모든 민족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구원받게 되는 그 날에 모든 수치, 조소거리, 우리가 당했던 수치는 다 눈 녹듯이 사라지게 하신다고 합니다. 믿음을 지키며 갑시다. 가스펠 교회 성도 여러분 눈물로 신앙을 지키며 갑시다. 우리 자녀들 신앙을 지키며 기도합시다. 교회가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우리 눈물로 기도하십니다. 그래서 날마다 힘들고 어렵지만 어둠이 아닌 빛을 선택해서 죄악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선택해서 신앙생활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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