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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1-02-14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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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14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본 문

이사야 26:1-21

 

 오승주 목사

 

Ⅰ. 이 노래를 부르리라_이사야26:1

 

오늘 26장 말씀은 지난 주 말씀에 연결되는 말씀이기도 하고 이사야서의 말씀들을 우리가 끝까지 살펴봤을 때 우리 교회에 큰 변화들이 있었으면 좋겠고 가스펠교회 성도들에게 진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그 음성을 듣는 은혜가 가스펠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사야서를 설교하고 은혜 받고 있습니다. 저도 이사야서 설교를 준비하고 말씀을 다시 듣고 묵상하면서 목회자인 저에게도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고 또 많은 깨달음들과 은혜들이 있음을 여러분에게 고백합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제가 어제 밤에도 제 개인 채널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뜨거운 예배에 대해서 이야기를 1시간 정도 나눴는데 우리가 지금 예배가 뜨거운 가요? 뜨거운 예배라는 것에 오해가 조금 있습니다. 뜨거운 예배 이러면 이런 악기라든지 어떤 세션들을 생각합니다. 요즘은 유명한 찬양팀이 굉장히 많습니다. 음악 전문인들이 모여서 찬양팀을 결성해서 합니다. 위러브, 마커스 팀. 유명한 팀들이 주중에 집회들을 많이 하지만 그게 뜨거운 예배인가요? 거기 가서 마음껏 음악적으로 뛰어난 기술 속에서 뛰어난 찬양인도자들의 노래 속에서 부르는  것이 뜨거운 예배인가요? 물론 그 속에서 뜨거운 예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양이나 그 예배가 뜨거운 예배는 아닙니다. 왜냐면 그렇게 따지면 불과 3-40년 전만해도 이 땅에는 신디도 없었고 드럼도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냥 풍금 하나 놓고 아니 풍금이 어디 있어요, 그냥 손뼉 치며 찬송 부르면서도 눈물 흘리며 예배했고 회개했습니다. 그 성령이 진짜 불처럼 바람처럼 임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예수 믿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초대교회가 무슨 악기가 있었습니까? 이런 조명이 있었습니까? 이런 훌륭한 시설들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마치 우리가 예배를 잘 드려야 된다고 하면 현대 문화적인 요소들 이런 것들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어떤 강박관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싱어, 악기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이니까. 그러나 거기에 우리가 뜨거운 예배라는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뜨거운 예배가 무엇이냐? 그러면 우리가 또 하나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헌금을 잘 드리고 우리가 외모적으로 성공해서 뭔가를 갖춰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뜨거운 예배인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예배를 하나님이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예배를 드렸을 때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어떤 자들의 예배를 받으셨냐면 고아와 과부 세리 어떻게 보면 세상 적으로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그 마음에 진짜 예수님 앞에 가서 엎드려서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그 예배했던 그들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그러니까 뜨거운 예배가 뭐냐면 사실 우리의 겉모양, 육신의 예배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고 있는가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배드린다고 했을 때 지금 한국교의 예배는 사실 종교적인 예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짜 예배를 드린다 했을 때는 우리의 환경이나 상황을 다 등지고 세상을 등지고 주님만 따르겠다고 고백한 자들이 드리는 것이 진짜 예배입니다. 왜냐면 예수를 믿겠다고 하면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저도 정말 내면의 음성을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죽은 것은 너 때문이야. 내가 십자가 피 흘린 것은 바로 승주 너 때문이야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는데 그런 자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사람이 우리 내면이 우리 영혼이 정말 주님을 만나려고 주님께 감사해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런 뜨거운 예배가 있다면 우리가 주변 사람을 신경 쓸 이유가 없습니다. 주일 날 우리가 와서 다른 프로그램이나 행사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배드리기 너무 바빠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 코로나 때문에 교회 와서 예배드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되냐? 우리가 있는 현장에서 정말 빨리 이 코로나가 하나님의 계획이겠지만 그리고 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악한 영들의 공격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엇이던지 간에 우리는 다시 하나님 앞에 뜨겁게 예배하려고 간절하고 사모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는 사람은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주님을 찾는 사람이 은혜 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얼굴빛을 비춰주시고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의 예배가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그들은 하루에 5번씩 기도했고 길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찬양했고 헌금을 십일조를 얼마나 잘했는지. 그런데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이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를 꾸준하게 드렸습니다. 그런데 뒤로는 앗수르의 문화를 좋아했고 구스의 지식과 지혜를 좋아했고 저들의 재물을 탐했습니다. 와서 예배는 드렸지만 그들의 삶에서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에서는 주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래놓고 안식일 날 와서 제사는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제사를 역겹다고 하셨습니다. 그 예배가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예배가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목사인 저는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제 마음에 회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그런 목사님들도 봤습니다. 사회 보시는 분이 앞에 찬양을 합니다. 예배시간에. 예배 시간이 다 됐는데 목사님이 입장하지 않으십니다. 장로님들이 기도할 때 입장하셔서 자기 설교하고 축도하고 나가시는 목사님들도 봤습니다. 제가 충격이 되었습니다. 목사가 과연 강대상에 앉아서 설교 하는 존재인가. 아니죠 같이 예배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저도 이 설교가 끝나고 내려가면 이 단에서 내려가면 성도로서 하나님을 같이 찬양해야 됩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속아버리면 안됩니다. 그런 육신에 저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자꾸 착각을 합니다. 무언가가 갖춰져 있어야 찬양을 하고 무언가가 갖춰져 있어야 예배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이 광야에서 동굴에서 적들에게 피난해서 동굴에 숨어서 지은 시편이 제일 많습니다. 우리는 환경이 안돼서 예배를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서, 우리 집에 문제가 너무 많아서 예수님 못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경제가 너무 너무 어려운데 어떻게 교회를 가냐 라고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헌금이 없어서 교회를 못 가겠다고 합니다. 창피해서. 아닙니다. 교회를 헌금하러 오나요?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우리 마음으로, 영혼으로, 내면으로, 가슴으로 드리는 예배를 놓치고 있나요. 사실 우리가 주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진짜 예배해야 합니다. 뜨거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간절히 뜨거운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예배를 너무 많이 놓치고 있습니다. 그런 예배가 너무 많이 소멸되고 있습니다. 지금 예배는 정말 종교적인 예배가 전부입니다. 맞죠? 그냥 교회 갔다 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그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훌륭한 교회야. 우리 목사님은 훌륭한 목사님이야. 나는 그런 교회를 다녀. 그게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짜 우상입니다. 여러분 예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공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이 예배 때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공동체가 모여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우리의 삶에 가서 주님을 찾고 복음 전하는 자의 삶을 인도받으라는 것인데 우리가 잘못하다가는 교회 갈 때 예배 시간에 앉아서 찬양하고 말씀 듣고 아멘하고 돌아서서 아무런 변화가 없는 예배.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 때마다 주님을 간절히 찾는다는 것은 내 죄를 회개한다는 것이고 내 그릇된 삶을 돌이켜서 믿음의 길을 간다는 것인데 그런 회개함 속에 성령께서 예배 시간에 각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면 변화된 우리가 새 삶을 살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예배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일주일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는 것입니다. 변화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뜨거운 예배가 다시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일 날 교회 오면 애써야 됩니다. 앞자리에 앉으려고 애써야 되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찬양 부르려고 애써야 되고 은혜 받으려고 애써야 되고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게 은혜 받은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미리 주시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_이사야26:1 

  

그 날에 유다 땅에서는 어떤 날인가요? 그 날은 25장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이 있는 날. 유다 땅이 육신적으로 봤을 때는 멸망이 있는 날. 주변의 강대국들이 유다 땅을 함몰하려고 전차와 마병을 동원해서 유다 성, 하나님의 성읍을 둘러싸고 있는 그 날, 그 때.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뭐라고 노래를 부르나요?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부르라는 것입니다. 아니 말이 되나요?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어디 있어요? 다 무너질 건데. 그 밑에 보세요.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 삼으시리로다. 그러니까 어떤 것이 견고한 성읍이냐면 지금 이 건물. 유다 땅에 있는 이스라엘 나라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 건물이 강력하고 견고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견고한 성. 지리적으로 완전히 요새였고 아주 훌륭한 성벽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견고한 성은 뭐냐? 여호와께서 하나님께서 구원을 외벽과 성벽 삼으실 때가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노래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 땅 너희들아 다시 회개하고 너희들이 바라봤던 앗수르의 문화들, 바벨론의 문화들, 지식과 지혜와 재물에 포로가 되었던 너희들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을 신뢰하고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주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건물은 다 함락되고 너희가 포로로 끌려갈지언정 너희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그 성읍은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 교회를 빗대서 이야기를 하자면 가스펠교회를 빗대서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가 회복해야 될 것은 어떤 교회의 시스템이나 눈에 보이는 외적인 사역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교회가 진짜 견고한 성읍으로, 구원의 성읍으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축복된 교회가 되려면 여호와께서 우리의 성벽과 외벽에 구원으로. 밖에서 볼 때는 저들이 볼 때는 이방 땅에서 예수님 믿고 돌아와야 되는데 돌아올 성읍, 성벽이 없는 것입니다.

 

Ⅱ. 심지가 견고한 자

 

- 견고한 도시(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_이사야26:2-4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_이사야26:2

 

2절.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이스라엘이 성읍을 꽁꽁 잠그고 있는 것입니다. 무서워서 적들이 침략하면 안 되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문을 열라고 하십니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들. 다시 말해서 이방 땅 중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구원 받은 백성들이 이 성읍 안에 들어오도록. 이 성읍은 무슨 성읍이 되어야 되냐?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 삼으셔서 우리 성읍은 견고한 성읍이다 라고 그 노래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노래를 부르라는 것은 무슨 말이에요? 그 당시 노래는 전부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책이 있지만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서 핸드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것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을 노래로 전수했습니다. 성경도 노래로 전수했고 전통도 노래로 가르쳤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 그랬잖아요. 진짜 어렸을 때 아이들에게 교육하면 다 노래로 가르쳤습니다. 이 구약시대는 노래가 전부이고 삶입니다. 우리가 지금 부르는 노래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때 당시에는 글이 없기 때문에 이런 도구, 책이 없기 때문에 노래로 모든 것을 자녀들에게 전수했습니다. 조상의 지혜도 노래를 가르쳐서 전수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노래는 어떤 의미가 있냐면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 정체성, 어떤 민족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이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노래 부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을 때 우리의 문들을 열고 저들이 구원 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성읍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우리가 문을 열 수 있을 텐데. 교회가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는 그 노래를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은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나요? 세상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몇 가지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_이사야26:3-4

 

3-4절.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하나님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 여러분 심지가 견고하다는 것이 어떤 뜻인 줄 아시겠죠? 흔들림이 없는, 변함이 없는, 견고한. 그러니까 이 성 안에 남은 자들이 심지가 견고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남은 자들, 심지가 견고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평강하고 또 평강하도록 반복해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주님을 신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평강을 주시겠다고, 샬롬을 주시겠다고 그러겠습니까? 심지가 견고한 자들이 힘들기 때문에. 심지가 견고한 자들이 힘듭니다. 왜냐면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다 세상 문화를 받아들이고 재물을 추구하고 우상을 섬기고 이러는데 그 속에서 혼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속에서 믿음의 길을 간다는 것은 외로운 길입니다. 다 불의 속에서 살아가는데 우리가 의를 지키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이 길을 간다는 것은 아무 보상도 없는 것 같은 이 길을 가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복잡하고 힘이 듭니다. 외롭습니다. 윤복희 권사님이 불렀던 찬양처럼 외롭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평강으로 너희를 지키시겠다고 하십니다. 평강으로. 견고한 성읍. 다시 말해서 견고한 도시 우리말로. 우리는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그 구원을 성벽과 외벽 삼으시는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문이 그때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노래 부르고 있을 때, 여호와를 신뢰하고 심지가 견고한 자들이 그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세상이 다 무너지고 우리가 의지했던 것들이 다 사라지고 세상과 타협하고 쾌락을 추구하던 자들이 다 낙심할 때 그 때 하나님이 그 남은 자들, 그 심지가 견고한 자들을 통해서 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래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세상과 등지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과 결코 같이 가지 못합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세상을 등지고 가는데 이 길이 막 축복된 길이냐 응답 받는 길이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 사랑을 받고 십자가 보혈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가는 길은 이 길을 가면 그 전에 내가 어울렸던 사람들과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 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과 절교할 수도 있습니다. 굉장히 고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길을 계속 가다보면 하나님이 그 심지가 견고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성읍 삼고 도시 삼으십니다.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다윗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렸을 때 수많은 정치인들, 수많은 이스라엘 나라의 유력가들이, 재산이 많은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다윗을 추종하고 칭찬하고 다윗을 좋아했습니다. 심지어 사울 왕과 사울 왕의 신하들도 다 다윗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에 악신이 들려서 다윗을 죽이려고 하니까 다윗을 내쫓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쉽게 생각하니까 그렇지 정치적으로 보면 다윗은 완전히 패배한 것입니다. 거지 차림으로 집도 다 버리고 재산도 다 버리고 혈혈단신으로 광야로 그냥 야반도주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다윗을 칭송하던 사람들, 다윗을 좋아하던 사람들, 다윗이 만만이요 했던 사람들이 다 등을 돌려서 사울 왕에게 빌붙었습니다. 사울 왕에게 줄 섰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사울 왕이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친한 친구, 나에게 잘 해주고, 나에게 밥도 사주고, 나는 너 밖에 없어 라고 했던 사람들이 전부 다 등을 돌렸을 때 다윗이 그 낙심한 것을 시편에서 노래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다윗이 뭐했어요? 낙심하고 힘들고 외로웠지만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왜?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셔, 하나님이 저 악인들을 심판하실 거야. 그래놓고 뭐했냐면 완전히 하나님을 찾고 그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다윗에게 무엇을 붙여 주셨나면 그 변화된 다윗에게 부랑자들과 광야에서 만났던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다윗이 도왔습니다. 다윗이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다윗이 왕으로 복귀 했을 때 진짜 친구들이 정치인들이 아니라 권모술수를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곳에 붙었다, 저곳에 붙었다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윗 주변에 가득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다윗 왕권 내내 다윗에게 충성하고 봉사했습니다. 심지어 다윗이 우리야를 죽였을 때도 흔들림 없었을 정도로. 얼마나 충성했는지. 우린 심지가 견고해야 합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심지가 견고하다는 것은 오늘 말씀에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주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다. 그것에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 사건에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게 진짜잖아요.

 

- 견고하지 못한 도시처럼 보이는 이유_이사야26:5-6, 10-14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_이사야26:5-6

 

높은 데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고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땅바닥 진토에 미치게 하셨고 발이 그것을 밟는다고 합니다. 이게 예수 믿는 사람의 삶입니다. 그러니까 견고하지 못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그 전에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견고함을 따졌습니다. 이 교회 엘리트들 많네, 이 교회 헌금 수입이 어마어마하네, 이 교회 건물 지어놓은 것 봐라. 이런 것으로 교회를 따졌습니다. 안에 예배가 썩어지고 회개도 없고 구원의 감사와 감격도 없고 회심도 없고 우리가 이 땅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것도 없는데 상관없습니다. 사람이 많고 그러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잘 안되면 어떻게 느껴지냐면 견고하지 못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데 좀 세상 적으로도 성공하고 잘나가고 좋은 대학도 가고 직장도 빵빵 나가고 좋은 차도 타고 이래야 예수 잘 믿는 것 같다고 세상은 이야기합니다.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예수 잘 믿는다는 것은 높은 데 있는 사람을 낮추시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솟은 성을 헐어서 땅에 엎드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밟는다고 합니다. 목사님 그게 어떻게 예수님 잘 믿는 것입니까? 거기서 가짜들을 다 가리는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 믿는 사람, 정말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다, 예수님이 정말 그리스도다 라고 믿는 사람은 교만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광야에서 12-13년을 고난 속에 있었습니다. 물론 그 속에서 다윗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표였지만 외적으로는 다 걸러냈습니다. 정치인들, 다윗이 조금 잘 나가니까 거기 빌붙었다가 다윗이 광야로 쫓겨나니까 다시 사울에게 빌붙는 사람들 다 걸러냈습니다. 그게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견고하지 못하게 보입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오나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들을 사르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는 주만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_이사야26:10-14

 

10절. 반대입니다. 악인은 은총을 입었는데 의를 배우지 않습니다. 11절.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견고하지 못한 도시 같아 보이지만 그래서 저들이 교만해서 하나님의 손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은혜, 은총을 베푸셔도 그것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짜들을 다 걸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겉모양으로 다니고 종교적으로 다니는 사람들 절대 하나님의 의를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의 손이 이렇게 있어도 주의 열성을 봐도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육신적으로 신앙생활하면 진짜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뜨거운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종교적인 예배 밖에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왜요? 견고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동기를 가지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그건 진짜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진짜 예수님 믿는 사람은 다릅니다. 정말 다릅니다. 교회들도 이 부분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높은 데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니까 그것도 진토에 미치게 하고 발이 그것을 밟으니까 누가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겠어요? 성장하려고 하겠어요? 누가 그 길을 가고 싶어 하겠어요? 어떤 교회가 그 믿음의 교회로 성장하려고 하겠어요? 특히 요즘 같은 시대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교회가 뭔가요? 예수님께서 어떻게 공생애 사역을 하셨습니까? 저는 얼마 전에 교회 청년들과 연탄배달을 하고 왔습니다. 진짜 너무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게 육신적인 봉사였지만 복음을 전하고 이런 것은 아니지만 연탄 나르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 마을에 조그만 교회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이런 교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아마 우리가 교회가 진짜 뜨거운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이 우리의 성벽이 되고 외벽이 되면 그쪽으로 문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자존심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자꾸 교회를 어떤 수준, 어떤 시설로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수준, 시설 따집니다. 오장로님 보고 제발 페인트 좀 칠해주세요, 교회 수리 좀 해주세요, 교회가 깔끔하고 깨끗하게 해달라고 저도 따지고 좋아하지만 그게 부흥의 요소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요소는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보고 그런 것이 없으면 견고한 도시처럼 보이지 않으니까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구원 받은 사람, 하나님의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는데 진짜 구원 받은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우리의 말씀으로 우리가 드리는 뜨거운 예배로 들어오는 것이지 결코 우리의 외적인 사역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역자들은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가 세련되게 사역해서 사람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감각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바리새인이 그렇게 멋들어지게 예배드렸지만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뭐라고 하셨나요? 역겹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시대의 예배도 그랬습니다. 뒤에 가서는 아세라 목상을 섬기고 바알 신을 섬기고 그리고 안식일에 와서는 주님 밖에 없다고 막 제사상을 차려서 하나님께 향 피우고 레위기의 절차대로 짐승 잡아서 피 흘려 드리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들의 제사가 너무 역겹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뜨거운 예배가 아닙니다. 안식일에 짐승 잡아서 찬송 부른다고 해서 그게 뜨거운 예배가 결코 아닙니다. 그건 가짜 예배입니다. 그 가짜 예배는 하나님께서 진짜 구원 받을 사람을 보내주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정말 구원의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게 진짜라고 믿을 때 그래서 심지가 견고할 때 그 길을 계속해서 갈 수 있는 사람. 교회가 이것을 넘어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구원이라는 것을 딱 붙잡으면 실패할 것은 느낌이 듭니다. 불안해요. 뭔가 갖추어야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 같습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무언가를 갖춰야지 하나님께 더 화려한 예배, 더 뜨거운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잖아요? 아닙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하나님이 드시는 손을 보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의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면 안 될 것 같게 하는 것이 현대 문화입니다. 마치 현대 문화를 안 따라가면 퇴보될 것 같고 저들과 못 어울릴 것 같고 멀어질 것 같은 불안함이 있잖아요. 속지 마세요 저들은 다 심판 받습니다. 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저들은 다 심판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저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해서 불안합니다. 견고하지 않을 것 같아서 금으로 단단하게 벽돌로 요새를 만들어놓은 것 아닌가요. 이스라엘 백성이 못 알아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엇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해요? 구원으로 성벽이 둘러싸여 있어야 됩니다. 교회가 건물이나 조직 이런 것들이 뛰어나야 견고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그런 것은 한순간에 다 무너집니다. 오늘 본문에 불이 대적자를 사른다고 합니다. 악인은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견고하지 못한 것입니다. 겉으로 정직한 척 하면서 뒤로는 불의를 행하기에 영적으로 봤을 때는 견고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견고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뛰어난 모든 것을 다해서 예배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이 이상하면 죄송하지만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유다가 그랬고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을 때_이사야26:7-8, 17-19, 데살로니가전서1:6-7, 3:15-17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_이사야26:7-9

 

얼마나 사모했는지 보세요. 9절. 그러니까 남은 자들은 그동안에 얼마나 서러움을 당했겠어요? 유다가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어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부흥기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별 볼일 없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맞잖아요. 대한민국이 잘 먹고 잘살면 교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깐 교회를 함부로 터부시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멸망할 때는 그 때 가서는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 진짜 헌신하는 사람들, 견고하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다시 회복될 수 있듯이 위기가 왔을 때 이들이 빛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유다 땅에 이 성읍에 위기가 왔을 때 이 남은 자들이 빛나는 겁니다. 이들은 무엇을 기다렸냐면 심판하는 길에서 주님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주님이 다시 회복시키시기를 기다리고 그 남은 소수 몇 명이서, 심지가 견고한 몇 명이서 주님을 신뢰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고 배교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했다는 겁니다. 그 서러움을 다 당하면서. 사람들이 바보야 등신아 이 많은 문화적인 혜택을 누려야지. 지금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냐, 예배하고 있을 때냐. 그럴 때 심지가 견고하게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했던 사람들. 그러나 이 성읍이 무너질 때 심판이 왔을 때 이들이 빛난 것입니다. 이들이 이 심판이 왔을 때 뭐라고 하나요. 그 동안에 주님을 기억하려고 내 영혼이 주님을 사모하였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잊지 않으려고 밤마다 밤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사모하셨습니다. 내 중심이 주님을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실 때 세계 거민이 의를 배우도록. 그게 남은 자들, 견고한자들의 소망이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를 보고 가야 합니다. 세상이 좋아질 것 같습니까? 세상은 좋아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코로나 2,3,4 나올 겁니다. 세상은 좋아질 수 없습니다. 성경 말세에는 갈수록 자녀가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녀를 죽이고 배반하고 배교하고 부정하고 지금 그 말씀 그대로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후 2주짜리를 친부모가 죽일 수 있습니까. 우유를 토했다고 생후 2주짜리를. 말세입니다. 악해도 그렇게 악할 수 있을까요? 생후 2주짜리 아이를 보셨습니까? 그 아이를 때린다는 것 자체가 정신병입니다. 우리가 그런 시대를 지금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좋아요? 얼마나 타락했으면 남자들 만나러 다니고 술 마시고 놀러 다닌다고 2-3살짜리 집에 방치해서 애가 굶어서 죽고 섞어서 부패할 때까지 애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속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속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세상이 좋습니까?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산고를 겪으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 앞에서 그와 같으니이다 우리가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하였나이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_이사야26:17-19

 

17절. 이 남은 자들이 기도합니다.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산고를 겪으며 부르짖음 같이 기도하는 겁니다. 

 

우리가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하였나이다_이사야26:18

 

18절. 바람을 낳은 것은 헛된 것을 낳은 것입니다. 이것은 회개입니다. 이렇게까지 심판이 임해서 유다 땅이 포로로 간 것에 대한 그 회개가 누구에게 있냐면 남은 자에게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남 탓하고 네 탓, 내 탓 싸우고 이럴 때 진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일이 자기들 때문이라고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뭐라고 이야기를 합니까?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_이사야26:19

 

19절.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자. 다시 깨어서 노래하자. 다시 우리가 일어나서 우리 중심으로 여호와를 구하자. 심지가 견고한 자들이 그 심판의 때에 하나님 앞에 다시 모여서 깨어나자. 깨어 노래하자. 우리 교회가 준비해야 될 미래입니다. 우리 이렇게 예배해야 합니다.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산고를 겪는 것처럼 예배해야 합니다. 그런 뜨거운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배 어떻습니까? 날씨도 좋은데 빨리 예배하고 놀러가자. 정신들 차려야 합니다. 전 세계, 네팔만 다녀와 보세요. 네팔 말고도 이 나라 상황만 봐도 우리가 예배를 그냥 드려야 됩니까? 우리가 주일날 모여서 드리는 예배가 그냥 내가 좀 복 받기 위해서 승진하기 위해서 경제적으로 잘 풀리기 위해서 드리는 예배여야 되냐고요? 어떤 예배이어야 하나요? 남은 자들이, 심지가 견고한 자들이 산고를 겪는 마음으로 드렸던 예배. 왜? 땅이 죽은 자들을 다시 내놓아야 하니깐. 죽은 자들이 끌려 갈 때, 어둠에 끌려가는 저 죽은 자들을 멱살 잡고 끌고 와야 되는데. 다시 구원, 부흥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예배는 어떤 예배여야 하나요? 진짜 뜨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해야하고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으니깐 주의 성령으로 역사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마 한 세대가 지나서 그런 기도하면 늦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 믿지 않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곧 올 것입니다. 아마 부모님에게 따져 물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에 교육부에서 나온 초등학교 성교육 책자를 보셨습니까? 동성애를 가르치는 책자가 있습니다. 뭐라고 기록되어 있나요? 서로 사랑하면 결혼할 수 있어, 그리고 그림은 남자 남자, 여자 여자입니다. 지금 한국 현실입니다. 아이들은 지금 세상에서 그런 것을 배웁니다. 서로 사랑하면 결혼할 수 있어. 교묘하게 맞는 말 같습니다. 그런데 그림은 남자 남자, 여자 여자입니다. 제가 자료화면 준비하려다가 또 어떤 공격을 당할까봐. 비참합니다. 우리 다음세대 아이들이 예수님이 안 믿어도 좋은 것입니다. 왜 우리는 재산 물려주잖아요, 발전된 문화 물려주잖아요. 부모님들이 그것으로 떳떳합니다. 그 때가서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 안 믿는다고 그 때가서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 바라보지 않는다고 통곡하고 회개하고 기도하면 늦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진짜 산고가 임박해서 이미 죽어버린 땅에 묻혀버린 저들을 살려야 되는 그런 때가 올 수도 있습니다. 제가 목회를, 우리가 이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그냥 우리끼리 마음 맞는 사람끼리 교회 한번 해봅시다. 그런 것인가요? 그럴 것 같았으면 저 이렇게 목회하지 않습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교회들을 리서치하고 얼마나 많은 훈련들을 받았는데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는 것을 왜 제가 모르겠습니까. 어디에 줄서면 내 삶이 더 편해질 것이라는 것을 제가 왜 모르겠어요. 저는 작년 한 해 동안 결단해서 본부에서 하는 일들을 다 멈췄습니다. 이제 더 이상 페이를 받고 일하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이제 외부강의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말 제가 도움이 될 만한 강의를 제외하고는 외부 강의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저한테도 별로 유익하지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그런 것으로 제 인기, 제 명예를 약간이라도 동아줄 잡고 있듯이 잡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회개하고 또 회개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회복해야 될 것은 바람을 낳으면 안 되잖아요. 힘들고 고통스럽게 산고를 겪었는데 애를 낳았는데 바람이야, 사라지는 바람, 흘러가는 바람을 낳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다시 깨어서 노래하라는 겁니다. 이 노래를 뭐라고요? 찬송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부르는 악기에 맞추는 음률에 맞추는 노래가 아니라 그 당시에 노래는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다시 깨어서 여호와를 신뢰하는 삶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구원으로 우리의 성벽 삼고 우리의 외곽 삼는 심지가 견고한 신앙. 그 때 하나님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시겠데요, 다시 일으켜 세우시겠데요. 그게 무엇인가요? 부흥이에요. 땅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날 때 그게 부흥입니다. 하나님 지금 성읍에 문을 열어 신의를 지킨 자들. 여러분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앗수르, 블레셋, 구스에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이 성읍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려고 하는데 우리가, 교회가 구원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들이 돌아올 성읍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할 것은 뜨거운 예배, 구원을 노래하는 삶 그게 회복될 때 저들을 다시 보내주시겠데요, 일으켜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죽은 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부흥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_데살로니가전서1:6-7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을 말씀으로 받아 우리가 그렇게 말씀으로 받고 있으면 마게도냐, 아가야에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_데살로니가전서4:15-17

 

이건 뭐죠? 끝까지 살아남은 우리지만 이미 우리를 위해서 기도한 이미 무덤에 묻혀있는 믿음의 선배들 그들이 먼저 일어난다고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먼저 하는 사람이 먼저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하늘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다 일어나겠다고 합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이 그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구원을 붙잡고 있을 때 저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시는 부흥을 하나님은 허락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언제요? 심판의 때. 여러분 그 끝. 그 심판의 끝. 마라나타.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러면 이렇게 우리가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될 수 있냐? 재림을 믿고 그 이유를 믿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것으로 데살로니가전서에 서로 위로하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이 뭘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냐면? 평강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왜 평강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냐면 우리 인생은 일평생 불안한 삶입니다. 진짜 불안합니다.

 

Ⅲ.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 인생은 일평생 불안한 삶_데살로니가후서2:1-4, 9-12

 

우리 인생은 일평생 불안한 삶입니다. 진짜 불안합니다. 저는 결혼 전에는 결혼 못할까 불안했고 결혼했더니 애를 못 낳을까봐 불안했고요. 애를 낳았더니 애를 어떻게 키울까 불안했고요. 유치원 보냈더니 이 유치원 보내야하나, 저 유치원을 보내야하나 불안했고요. 아마 부모님들 느끼실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육을 어떻게 해야 되나 불안하고요. 영어를 먼저, 수학을 먼저 가르쳐야 하나 불안하고요. 이거하면 이게 불안하고 저거 하면 저게 불안한 것이 인생입니다. 어디 만족하는 것이 있습니까? 맞죠? 하루를 사는데 매일 매일 불안한 것이 인생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_데살로니가후서2:1-2

 

1-2절.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예배의 모임으로 뭘 하라고 이야기 하냐면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모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_데살로니가후서2:3-4

 

3-4절. 강력한 악한 영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무엇을 하라고 하나요? 미혹되지 말라. 지금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들 천지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들, 직접 말하는 사람들, 그렇게 만드는 사람들,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 저는 많은 교회들이 강대상위에 목사님 좌석을 만드는 것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목사님이 야, 목사님이 저 밑에 앉았다가 위에 올라왔다가 왔다갔다 힘들잖아, 그러면 예배가 방해되잖아. 아니요. 충분히 성도들이 기다릴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예배의 편리함이나 사람들이 보는 것에 익숙함 때문에 목사님들이 강대상에 와서 하나님 자리에 앉아있는 육신적인 모양 자체도 저는 갱신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예배드리지 않아요. 설교하고 끝납니다. 찬양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의 이야기입니다. 목사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조심, 경고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경고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 후배들에게는 경고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 그러니까 지금 뭘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데살로니가후서에 이런 환경 속에서 예수님을 높이는 것이 보이냐는 말입니다. 견고하지 않게 보이잖아요. 여러분 이런 문화적인 요소 속에서 하나님만 높이고 무릎 꿇는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과 밥 먹고 병든 자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하찮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저 교회는 견고한 교회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목사인 저에게도 불안한 삶이 계속 있을 수 있습니다. 불안합니다. 어떤 불안함이냐면 서럽기도 하고 외롭기도 합니다. 이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이 바보 같기도 합니다. 저는 진짜 감사한 것이 그런 저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이야기하시냐면 승주 너를 위해서 내가 십자가에 죽었어. 저는 그것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제 가슴에 주님의 음성이 박혔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진짜 믿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심판을 믿고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자기를 내세울 수 있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어야 합니다. 내가 날마다 십자가 앞에 죽노라. 내가 사는 것은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이름 내세우기 바쁘고 그런 사람들끼리 갈등하고 싸우고, 정치질하고. 그동안에 세상은 구원 받을 사람들은 돌아올 성읍이 사라집니다. 외롭고 서럽고 힘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갈 때 같이 어울렸던 사람들과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나를 배신할 수 있고 배교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도 여러분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의 반석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성읍이십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_데살로니가후서2:9-10

 

9-10절. 예 저들은 구원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_데살로니가후서2:11-12

 

11-12절. 하나님이 지금 걸러내십니다. 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허락하시냐면 왜 하나님이 심판을 이 땅에 허락하시냐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가짜 신자들을 다 걸러내기 위해서 그대로 내버려두신다고 합니다. 교회가 부패하고 썩어져 가는데도 그대로 내버려두신다고 합니다. 다 걸려내시는 겁니다. 진짜 예수님 믿는 사람은 그 속에서 견고하게 외롭고 고독하지만 이 믿음을 지키는 자들.

 

-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_데살로니가후서3:1-5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_데살로니가후서3:1-5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_데살로니가후서3:1

 

1절. 말씀이 퍼져 나가야 영광스럽게 됩니다.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_데살로니가후서3:2

 

2절. 빠지지 말라고 깨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뒤에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믿음이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것입니까?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_데살로니가후서3:3-4

 

3-4절.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행하고 행할 줄을 확신하노니.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행하는 사람이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가식적으로 예배하는 것을 나는 받지 않아. 그러면서 뭐라고 이야기하셨나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가 구원 받을 수 있어.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_데살로니가후서3:5

 

5절. 결국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이 이 환난 속에서 남은 자들이 평강한 것은 결국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이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견고해야 합니다. 이 마음이 어디 안에 들어가면 견고하냐? 하나님 사랑 안에 들어가면, 그리스도 인내 속으로 들어가면 견고합니다. 그게 우리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차고 넘쳐야 합니다. 내가 널 사랑한다. 이게 아침마다 고백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인내, 왜 인내라고 했나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인내하셨습니다. 거기에 우리도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승리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말세 때가 다 될 때까지 이 믿음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이 이 부활로, 재림 때 일으켜 세우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그리스도의 인내 속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속에 퍼지길 원합니다.

 

-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_데살로니가후서3:7-16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_데살로니가후서3:7-16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_데살로니가후서3:13-16

 

13-16절. 우리가 뭘 해야 되냐면 지금 이것은 음식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하지 않은 자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육신적인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왜? 데살로니가 1-2장, 데살로니가전서가 그것을 보충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믿음이 내 것이 되냐면 내가 하나님의 양식을 먹어야 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먹어야지 내가 그 일을 해야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 음식을 먹어서 뭘 할 수 있냐면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선을 끝까지 행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왜냐? 너희의 삶을 통해서 저들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저들을 권면할 수 있고 저들을 부끄럽게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대신 뭐라고 하냐면 그 사람과 지목해서 사귀지는 말라고 합니다. 단지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을. 왜?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마다, 때마다 평강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샬롬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가스펠교회 성도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선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선입니다. 낙심하지 마세요. 저 개척해서 진짜 많이 울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희 교회 와서 오 목사는 목회를 이렇게 하냐 저렇게 하냐 밖에서 얼마나 많은 말들이 있는지. 그리고 자기들처럼 안 하니까 자기들처럼 안 한 것을 두고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심지어 저희 교회 온 청년들 중에서 교회를 떠나가는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이유가 뭐냐? 우리가 뭘 안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던 것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진짜 서럽고 외로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저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나? 내가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하나? 목사가? 이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진짜 감사하게 그때 교회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진짜 하나님 앞에 서야 되겠다. 교회 성도가 한 명도 없을지라도. 그리고 그 기간에 저는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내가 성실하게 성도들에게 전달해야 되겠다. 진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평강을 주십니다. 다 떠나갔지만 지금 가스펠교회 성도들이 팀이 되고 가족이 되고 우리가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는 방향에 흔들리지 않도록 저에게 위로가 되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교회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다 떠났는데 다시 주님 사랑하는 사람들로 채워주셨습니다. 여러분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정말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퍼져서 우리 가운데 오는데 그것을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게 견고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 십자가가,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은혜 받는 사람들. 초대교회 지하 카타콤에 모여서 눈물로 모여서 기도하는 그 사람들이 로마사람들이 볼 때는 얼마나 어리석어 보였겠고 바리새인들 강력한 교권을 가진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비참하고 저것들 별 것도 아닌 것들이, 힘도 없는 것들이 기도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견고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목숨 걸고 갔습니다. 세상 등지고 갔습니다. 다 포기하고 갔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얻었나요? 세상 적으로 무엇을 얻었나요? 순교했습니다. 더 핍박 받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얻었나요?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었잖아요, 천국에 입성했잖아요, 사랑하는 내 아들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잖아요.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네가 나를 위해서 핍박을 받았구나, 박해를 받았구나. 그 죽은 자들. 우리보다 먼저 무덤에 묻혀 있는 믿음의 선배들 예수님 재림하실 때 먼저 일으키신다고 합니다. 순서대로.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저는 우리 교회 예배가 다시 뜨겁게 살아나기를 원합니다.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우리의 외모, 겉모양 조금 내려놓고 우리의 예배만큼은 우리의 영혼이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바라보고. 그래서 그 말씀이 퍼져갈 때 놓치고 바람처럼 흘러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붙잡고 받아들이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이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기회를 주셔서 죽어버린 우리의 예배를 회복시켜서 살아있는 예배, 뜨거운 예배로 구원을 노래하는 예배로 우리가 노래 부를 때 하나님께서 구원을 우리 교회 성벽, 외벽 삼으셨을 때 그 때 우리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저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풀고 예수 믿어야 될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쏟아져 몰려 올 것을 늘 환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말세 때 무엇을 준비해야 되냐? 예수님 사랑을 준비해야 합니다. 가식적으로 목회하고 가식적으로 교회를 하면 그 사람들이 올 수가 없습니다. 그게 이사야서의 말씀,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사랑이 없는데,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인내가 없는데 어떻게 저들이 이 곳에 와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겠어요? 제가 이상한 목회를 하고 있는데 삯꾼 목사인데 제가 세상을 바라보고 목회를 하는데 어떻게 이 교회에 진짜 하나님이 구원 받을 자들을 보내시겠냐 이 말입니다. 그 지하 카타콤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등지고 목숨 걸고 갔습니다. 예수님 믿으러. 그 인원이 수천 명이었습니다. 건물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화려한 성전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큰 헤롯 성으로 가지 않고 지하 카타콤으로, 마가의 다락방으로. 허름한 집이지만 거기서 왜? 거기서 성령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에. 다 거기로 간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회복해야 합니까? 우리 교회가? 뜨거운 예배가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구원을 노래하는 삶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겉으로는 예배하면서 내 영이 내 마음이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구원을 노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죽어버린 예배가 뜨거운 예배로 변화되고 회복되어서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내 영이 살아나서 이 땅에 죽어있는 자들을 살리는 그런 영적인 부흥이 있는 예배가 되기를 가스펠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그런 가스펠교회 예배가 되기를 가스펠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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