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21-02-21 주일예배

2021-02-21 주일예배.hwp
0.32MB

2021년 02월 21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1부예배)

제 목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

본 문

이사야 27:1-13

 

 오승주 목사

 

Ⅰ. 힘이 쎈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_이사야27:1

 

이사야서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구원이 교차되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잡하게 보이기도 하고 헤깔리게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지금 이사야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두 가지 길입니다. 두 가지 길을 명확하게 반복적으로 교차해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사야 27장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포도원에 관한 설교라면 우리는 이전에 이사야서 5장을 보면서 멸망할 포도원, 하나님이 심판할 포도원에 대해서 이미 말씀을 통해서 살펴봤습니다. 하나님께서 교차를 계속하시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심판과 구원이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고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지금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심판과 구원입니다.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는 것. 우리가 내세에 하나님 나라 천국에 입성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는 것. 구원 받냐 그렇지 않느냐, 우리가 구원 받느냐 구원 받지 않느냐가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이런 기본적인 믿음.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주셔야 할 믿음입니다. 이런 배경이 없으면 성경책 잘못 읽으면 굉장히 이기적인 책 같고 교회에서 설교 들으면 굉장히 기독교는 편협 되고 이기적이다 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이라는 내세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믿고 성경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기서 건지시려고 우리를 심판에서 건지시려고 우리를 구원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큰 공의와 사랑을 우리가 깨닫는 다면 이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우리 인생을 다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리워야단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욥기에도 나타납니다. 설명을 다 하셨습니다.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 바다에 있는 용 리워야단. 요한계시록에 있는 옛 뱀, 붉은 용, 마귀, 사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_이사야27:1 

 

영국의 철학자인 토마스 홉스라는 사람이 1651년에 리워야단이라는 단어를 끄집어서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리바이어던 책을 읽어보니까 처음에 리바이어던 단어가 무슨 단어인지 한참 찾았는데 이 어원이 리워야단 이었습니다. 토마스 홉스가 무엇을 이야기했나요? 타락해버린 로마 교황청 그리고 변질되어 버린 국가 권력, 종교 권력에 대해서 처음에는 순수하게 깨끗하게 시작했던 국가, 로마 교황청, 종교 권력들이 나중에는 거대한 악의 제국이 되고 악의 집단이 되었다는 것을 꼬집어서 쓴 책이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입니다. 다시 말해서 리워야단은 어떤 한 동물 뱀, 용을 상징할 수 있지만 거대한 악한 세력들, 악의 무리들, 우두머리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옛 뱀, 붉은 용, 마귀, 사단이라고 지칭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죄악의 끝장입니다. 죄악의 최종 보스와 같은 존재가 리워야단이라고 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은 심판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끝이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의 무리들이 끝이 없겠습니까? 하나님은 그걸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언제죠? 그게 우리가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는 때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재림 때에 부활하신 주님이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 간 그대로 이 땅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때가 종말론적인 세계의 시작과 끝인 것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지금 신약시대에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시대의 삶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종말론적인 삶을 우리는 계속적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뒤부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가 시와 때는 알지 못하지만 반드시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이 심판을 당하느냐? 이 심판을 왜 당하고 도대체 리워야단과 같은 이런 세력들이 왜 계속해서 발생하느냐? 그것은 죄 때문에 그렇습니다. 창세기 3:15의 언약을 다 알고 계시죠? 지금도 여인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뱀의 후손, 악의 무리의 후손인 악한 영들과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싸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영적인 싸움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 된 저와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과 악한 영, 악의 무리들과 지금도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이 그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저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의와 빛과 더불어서 싸우는 어둠이 되었냐? 그게 바로 죄 때문인데 이 죄는 하나님의 다스리심,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 만왕의 왕 되심을 버리고 스스로 왕이 되고 주가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게 창세기에 뱀을 통해서 사단이 인간에게 준 죄의 첫 번째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처럼 눈이 밝을 수 있다. 너희가 왜 하나님을 예배하느냐? 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느냐? 왜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너희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이게 죄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언제나 인간세계는 교만으로 악의 제국이 형성이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 돈이 많거나 권력이 많거나 소유물이 많거나 언제나 그 유혹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목사들도 그렇습니다. 죄의 유혹은 교회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목사들도 교회가 부흥하고 내가 개척해서 교회가 막 1000명, 2000명, 3000명, 만 명, 이만 명이 되면 마치 내가 이 교회의 왕이 된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그런 것처럼 나도 모르게 은밀한 리워야단의 세력들이 우리 마음을 침투하고 우리 생각을 침투해서 어떻게 되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뭐라고요?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하나님의 왕 되심을 버리고 스스로 왕이 되고 스스로 주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의 정의를 정확히 알고 계셔야 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가운데서 언제나 심판을 받을 때는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고 자체적인 힘을 축적할 때 늘 심판을 당했습니다. 지금 북이스라엘이 우상을 더 많이 섬겼지만 남유다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언제나 심판을 당하기 직전의 모습은 독립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무엇으로 부터요? 하나님으로부터. 죄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게 이스라엘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러면 안 되는 나라입니다. 저와 여러분과 이스라엘은 또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특별한 정말 사랑을 많이 받은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앞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고 앞에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경외하는 것 같은데 뒤로는 자기들의 힘을 축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것은 절대적인 순종을 원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먹일 거다, 너희를 입힐 거다, 내가 너희를 통해서 해야 될 일이 있다. 너희가 먹을 것, 입을 것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완전하게 특별하게 여기셨습니다. 그게 출애굽 시켜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신 약속입니다.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그 추위 속에서 불기둥으로. 만나를 내려주시고 메추라기를 내려주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요단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인데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인도 하실 텐데. 그런데 스스로 자체적인 힘을 축적하기 시작했고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세상 나라들과 화친을 맺으며 더 강력한 나라, 더 대단한 나라의 유혹에 빠져서, 리워야단의 유혹에 빠져서 자기 이름을 드러내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 이름, 왕의 이름, 우리 민족의 우수성, 민족의 뛰어남, 우리의 발전된 과학기술, 현대문화 이런 것을 이스라엘이 드러내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결과가 뭐냐면 심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냐면 오늘 본문에 보니까 적당하게 견책하셨다고 합니다(8). 악한 무리를 심판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는 것이 조금 다릅니다. 적당하게 견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백성 안에 아세라 목상이 다시는 서지 못하도록 태양상이 다시는 서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적당하게 견책하셨다고 합니다. 정말 하나님도 대단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리워야단의 유혹 속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거기서 건지시려고 거기서 우리를 그냥 두시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적당한 견책성의 심판을 베푸신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적당한 견책들이 있기를 원합니다. 정말 있어야 됩니다. 한빈이와 산책을 가는데 공원을 걷는데 이 아이가 얼마나 순간 속도가 빠른지 순간적으로 제 손을 뿌리치고 도로로 뛰어갑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제가 그 순간에 나는 목사야, 나는 착한 아빠, 좋은 아빠야 한빈아 어디가니? 빨리 이리와 이렇게 말할 수 있나요? 욕부터 나옵니다. 왜? 사고 나면 안 되잖아요. 다치면 큰일 납니다. 왜? 내 아들이니까. 한빈이는 기분 나쁠 수 있습니다. 그 아이가 커서 아빠가 늘 혼내고 때리고 욕하고 이런 것밖에 기억하지 못할 수 있지만 저는 이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하게 그냥 위험한 곳에 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야! 당장 돌아와! 그 순간만큼은 저도 나쁜 아빠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러시는 것입니다. 왜?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태양신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이고 아세라 목상이 우리 안에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병이 있으면 되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위험이 있으면 되겠습니까? 그 정도는 괜찮아 그런 것이 있으면 부모가 아닙니다. 행복하기만을 원하고 잘되기만을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당신들의 자녀에게 그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만 온전히 바라보면 될 텐데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면 될 텐데 뭐가 강력해요? 타락한 천사, 악한 영, 리워야단의 세력이 강력하다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대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장되어서 우리는 그들과 싸워야 됩니다. 여러분 교회는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교회들이 목사님이 싸워주시겠지, 믿음 좋은 사람들이 싸우겠지 다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악한 영의 세력들을 분별도 못할뿐더러 그들의 세력의 존재를 인식도 못할뿐더러 세상 문화에 현혹되어서 함몰되어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 마음, 생각, 삶에 리워야단의 악의 세력들이 스며  들어서 시편에 뭐라고 고백하고 있나요? 그들의 눈이 여호와를 바라보는 빛을 잃었도다. 어느 순간 교회 안에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우리 입에서는 불평, 원망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뭐가 되었나요?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마른 가지가 된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강퍅해졌습니다. 그 말은 뭐에요? 하나님 필요 없다 이것입니다. 은혜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꼭 줄기에 붙어있어야 돼? 내 가지에서 열매가 얼마나 많이 나오고 있는데 내가 꼭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돼?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돼? 나 독립할거야. 우리는 지금 리워야단의 세력들을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닙니다. 악한 영들에 대한 싸움입니다. 교회가 이 싸움을 망각해버리면 다 잠식되어 버립니다. 이번 주에 뉴스앤조이라는 언론사에서 주일학교 교재에 관해서 영상을 하나 만들어 올렸습니다. 뉴스앤조이가 기독교 언론사라고 생각하지 마셔야 합니다. 제가 느낄 때 아주 악한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의 탈을 쓴 악한 세력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시리즈로 만든 목회자 시리즈가 있는데 전부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목회자들이 주중에 통닭집을 하고 목공소 일을 하고. 마치 이런 목사들만 좋은 목사이고 성도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처럼. 그리고 풀타임으로 목회를 하는 것은 건강하지 않은 목사처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주일학교 교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세 명의 교사에 관한 영상을 나중에 한번 살펴보십시오. 기가 찹니다. 그 중에 한 교사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줄 아십니까? 전도사인지 교사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세상은 진화론을 계속해서 가르치는데 교회가 뒤떨어지게 창조론을 계속 고수하면 안 됩니다, 시대흐름에 발맞추어서 교회도 교육을 다르게 해야 됩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민주적인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과 이렇게 적당히 타협하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를 지키는 곳입니다. 교회가 진리를 잃어버리면 우리 자녀들이 돌아와서 구원 받을 곳이 없습니다. 여러분 지옥을 믿지 않으셔서 그러시는데 교회에서 복음의 진리, 십자가의 진리를 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유럽 교회처럼 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자녀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들을 곳이 없고 십자가의 복음의 소식을 들을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 문화가 대단히 발전했다고 해서 세상의 시대상황들이 대단하다고 해서 그것을 다 흡수해서 교회에서 그런 교육을 하면 되겠습니까? 심지어 어떤 전도사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유치부, 초등부 아이들의 집중력이 5분밖에 안 된다고 하면서 5분 이상 설교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인형극 같은 거 하고 영상 같은 거 보여주고 그럽니다. 설교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시죠? 3-4세 아이들 뽀로로 영상 틀어주면 눈동자 하나 흔들리지 않고 잘 봅니다. 저희 한빈이 유튜브 틀어주면 눈동자 하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미동도 없습니다. 30분, 1시간이고 계속 보고 있습니다. 5분 설교가 말이 됩니까? 아이들이 일주일에 겨우 한 번 와서 설교 듣는 시간에 5분짜리 설교가 말이 되냔 말입니다. 무슨 사고가 우리 안에 들어왔냐면 세상의 어떤 현대 문화가 우리 속에 스며 들어서 교역자든 전도사든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우리 신디도 없고 드럼도 없는데 어떻게 찬양해요, 우리 예배드릴 장소도 없는데 어떻게 예배드려요, 교재도 없고 프로그램도 없고 시스템도 없는데 어떻게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어요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권사님 장로님들은 아시죠? 20-50년 전에 교회에 그런 게 있었습니까? 그래도 그때가 교회다웠습니다. 교회는 그런 것으로 목회하고 그런 것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곳이 아니라 기도로 내게 맡겨주신 한 영혼을 어떻게 하면 살릴까, 어떻게 하면 이 영혼이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어서 천국을 사모하고 흠모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눈물로 기도하며 양육하는 것이 교사의 사명, 부모의 사명 아닙니까?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시설들, 이런 프로그램들. 그걸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있는데 써야죠. 그러나 우리 속에 마치 그런 사상들이 그런 리워야단의 사상들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아이들이 5분 이상 집중 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상 속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들어 와버린 것입니다. 어떤 고등학교 3학년 아이가 저희 교회를 왔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와서 우리 교회를 다니려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화가 조금 이상했습니다. 물어봤더니 혹시 누구누구 장로님 이 교회 다니시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장로님 우리 교회 안 다니시는데? 하니 그래요? 목사님하고 친해서 그 교회 다니시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왜? 라고 물어보니 제가 그 장로님 인턴쉽을 받아야 해서 이 교회에 왔다고 자기 전공이 그 장로님이 하는 일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 장로님 어디 교회 다니시는데요? 물어보길래 어디 교회 다닌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게 정상입니까? 교회가 무슨 전문성 가르쳐주는데 입니까? 대학교입니까? 우리 아이들 다 버려놨습니다. 성경 가르치지 않고 복음 가르치지 않고 예수님 가르치지 않고 여러분 우리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는 뭐하는 곳인지 망각해버렸습니다. 교회가 뭘 해야 되는 곳인지 잊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그런 상태입니다. 누구 때문에요? 리워야단 때문에. 악한 영의 세력들이 우리를 그렇게 함몰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마음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왜 선택하셨고 왜 부르셨는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지 않으면 다 죽습니다. 주변의 무슨 나라든지 간에 블레셋이든지 간에 거대한 나라든지 간에 엄청난 지혜가 있는 구스든지 간에 재물이 많은 나라든지 간에 다 소멸되고 다 심판을 당합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교회로 이스라엘 백성을 세워주셨는데 그들과 싸워야 될 것은 싸워야 하는데. 이 싸움은 육신적으로 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핍박과 환경 속에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키고 이 복음을 후대들에게 전해주고 이 언약을 저들에게 말해줘서 우리 교회가 저들에게 문이 열려서 저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인데 교회가 그 싸움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주일학교 예전처럼 뜨겁게 우리 아이들 두고 교사들이 눈물로 기도하고 계십니까? 우리 성도님들을 향해서 우리가 눈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혹시 은혜를 주실까봐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언제부턴가는 어느 순간부턴가는 프로그램 이야기하고 있고 시스템 이야기하고 있고 엘리트 이야기하고 있고 세상의 거대한 문화고 교회 안에 다 흡수되고 교회 안에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Ⅱ.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

 

- 아름다운 포도원_이사야27:2

 

그 날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_이사야27:2

 

여러분 이 2절을 평생의 성경암송구절로 가지고 있으시길 바랍니다. 아름다운 포도원. 노래를 부르라고 합니다. 3절에 보니까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_이사야27:3

 

그러니까 지금 무슨 말이냐면 이 포도원을 만드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포도원지기. 그럼 포도원은 지금으로 이야기를 하면 뭔가요? 구원 받은 백성의 공동체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5장과 반대로 오늘은 아름다운 포도원을 이야기하는데 이 포도원지기가 누구냐? 나 여호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보고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노래는 그 당시에 뭐라고요? 소망, 삶,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것이 노래로 전수되었고 노래로 모든 것이 다 전달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노래는 지금의 가요와 다른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꿈꾸라는 것입니다. 열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아름다운 포도원을 허락 할 텐데 그것을 너희가 노래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아빠 나 이거 뭐 사달라고 노래를 부르잖아요? 온 열망이 되고 소망이 되는 것처럼 절대 기도 하지 않는 아이가 어린이날 뭐 사달라고 기도까지 하는 것처럼 우리의 노래가 되라는 것입니다. 뭐가요? 아름다운 포도원이. 우리로 말하면 아름다운 교회가 우리의 노래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세 가지 열매에 대해서 굉장히 중요하게 나옵니다. 올리브나무,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계와 직결된 과일이 세 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나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교회를 설명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설명하실 때 항상 올리브, 무화과, 포도열매를 예화로 많이 드셨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하나님의 교회와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설명할 때 포도원과 포도열매를 가장 많이 설명하셨습니다. 지금도 유럽은 포도주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그들의 인생에 포도열매가 전부입니다. 성지 순례하는 어떤 영상에서 지하 카타콤 교회 영상을 보여주는데 지하 교회가 어디 있냐면 포도나무 밭 밑에 지하교회가 있었습니다. 왜 거기에 있냐면 성찬식을 해야 되니까 위에서 포도 열매를 밟아서 어떤 구멍으로 쏟아주면 그것이 지하 동굴로 쭉 타고 내려와서 성찬식 하는 예배당까지 쭉 흘러가는 시스템을 그 당시에 다 만들어놨습니다. 왜냐하면 매주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해야 되니까. 포도나무 밭에서 로마군 몰래 유대인들 몰래 밟아서 포도즙을 내려주는 것입니다. 성찬식을 하기 위해 그런 시스템을 지하교회를 만들 때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보고 노래를 부르라는 것은 아름다운 교회, 부흥 그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기도하고 열망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식어져버렸잖아요. 왜요? 리워야단 때문에. 거대한 문화, 우리의 삶에 어떤 치열한 삶들이 우리를 아름다운 포도원을 노래 부르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포도원을 우리가 노래 부르고 열망할 때 어떻게 하시겠냐고 하시냐면

 

- 밤낮으로 간수하다_이사야27:3-6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와 화친할 것이니라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_이사야27:3-6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_이사야27:3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포도원을 어떻게 관리하시냐면 밤낮으로 간수하신다고 합니다. 왜? 포도원 주인이니까. 밤낮으로 주님이 뭘 하시냐? 우리에게 때때로 물을 주시고 밤낮으로 여기에 찔레나무가 나는지 잡초가 나는지 나지 않는지 잡초가 나면 어떻게 한다고요?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_이사야 27:4

 

내가 다 모아서 밟고 불살라버리겠다. 하나님의 교회를 지금 그렇게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밤낮으로 간수하신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 찔레 같은 인간들이 나오면 찔레 같은 불신앙이 나오면 하나님이 그것을 거둬들여서 불살라버린다고 하십니다. 우리 안에서 태양신을 섬기고 아세라 목상을 섬기면 그것을 거둬가지고 불살라버리신다고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로 유지할 수 있고 순수하고 깨끗한 하나님의 교회로 유지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적당한 견책, 심판을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허락하신다고 합니다. 저 이방의 심판과 같겠느냐고 오늘 본문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에게 행한 심판이 이방 리워야단에게 하는 심판과 같겠느냐? 다르다. 그러나 너희가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너희에게 심판을 하는 이유는 너희에게 고난을 주고 너희를 포로로 끌고 가는 이유는 너희 안에 있는 아세라 목상, 너희가 섬기는 태양신이 없게 하기 위해서. 다시는 너희가 태양신을 섬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게 9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포도원을 관리하신다고 합니다. 지금도 교회를 관리하신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는다고가 아니라 하나님께도 유일한 희망이 뭐냐면 교회입니다. 저는 신학교 다닐 때 선교단체와 교회의 차이점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선교단체를 통해서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교회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교회가 아무리 타락하고 무너지고 교회가 정말 세상의 손가락질 당해도 하나님께서 다시 교회 안에 부흥을 허락하셔서 회개하고 다시 아세라 목상, 태양신을 끄집어내서 다시 교회를 세우실 것입니다. 왜냐면 교회 밖에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말해주고 우리 가족들,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말해줄 수 있는 곳은 교회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름다운 교회를 우리보고 노래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셔서 갑자기 기분 나쁘셔서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심판을 자초했습니다. 그게 어디에 나옵니까? 

 

- 가지가 마르면 꺽이나니_이사야27:7-11, 5:1-7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던들 그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 백성이 죽임을 당하였던들 백성을 죽인 자가 죽임을 당함과 같았겠느냐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의 죄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을 부서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10 대저 견고한 성읍은 적막하고 거처가 황무하며 버림 받아 광야와 같은즉 송아지가 거기에서 먹고 거기에 누우며 그 나무 가지를 먹어 없이하리라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들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이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이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_이사야27:7-11

 

대저 견고한 성읍은 적막하고 거처가 황무하며 버림 받아 광야와 같은즉 송아지가 거기에서 먹고 거기에 누우며 그 나무 가지를 먹어 없이하리라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들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이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이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_이사야27:10-11

 

가지가 마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이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심판을 당하는 이유는 우리가 메말라버린 것입니다. 가지가 말라버린 것입니다. 농사 지으신 분은 아시죠?  조그마한 화분을 관리해도 가지가 말라비틀어지면 빼내야 합니다. 귤 박스 안에 귤 하나가 썩어갑니다. 그것을 그대로 두면 다른 귤로 썩어가는 것이 다 번집니다. 그래서 털어서 조금이라도 상처 있는 귤들을 다 꺼냅니다. 가지가 말라 있는 것을 그대로 포도원에 두지 않으십니다. 마른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잘라 버리신다고 합니다. 물을 줘도 마른 가지는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을 베푸시는데 마른 가지는 나 하나님의 은혜 필요 없어요, 제가 혼자 한번 잘 살아볼게요 라고 합니다. 여러분 가지가 혼자 잘 살 수 있나요? 가지가 줄기에 붙어서 영양분 공급 받지 않고 독립해서 살 수 있나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독립해서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독립해서 절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서 리워야단 세력에 가 있으면 당장 세상적인 육신적인 열매를 맺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다 불에 타버립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밟아서 불에 태워버리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마른가지와 같은 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강퍅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강퍅하고 이웃에 대해서 너무 강퍅하고 은혜 받는 일에 너무 강퍅합니다. 다 말라버렸습니다. 교회도 아이들 주일학교 교육하는데 교육 교재나 프로그램은 화려한데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말라버렸습니다. 강퍅합니다. 새가족들이나 조금 모난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뒤에서 수군거리고 정죄하지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다 말라버렸습니다. 교회가 자꾸 세상과 싸웁니다. 오늘 제가 예배를 시작할 때 읽어드렸던 시편. 세상이 잘 나가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다 불태우신다고 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의지해라,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그 은혜, 주의 성령. 그것으로 우리의 영혼이 말라있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강퍅해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견고하던 하나님의 성읍이 주의 은혜로 견고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적막하고 황무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송아지들이 와서 그 가지를 먹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렇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상태입니다. 교회 안에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갉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리워야단이 우리를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가 지금 메말라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촉촉하게 은혜의 단비로 젖어있어야 되는데 성령의 보혈의 은혜, 피로 촉촉하게 적셔있어야 하는데 보혈의 피 이야기를 하면 바보취급 당합니다. 목사 세계에 가서도 제 동료들 목사 세계에 가서도 제가 보혈의 피 이야기를 하고 성령의 단비 이야기를 하면 바보 취급, 옛날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구시대적인 취급을 받습니다. 목회를 잘하려면 이런 이런 스킬이 있어야 돼. 교회가 부흥하려면 이런 스킬이 있어야 돼. 교회가 부흥하려면 중직자들이 좀 빵빵해야지 이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 같습니다. 그런데 다 메말라 버렸습니다. 마른 가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옛날에 장로님, 권사님들이 신앙생활 하던 때를 기억하십시오. 교회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회 시설이 어디 있습니까? 애들 등에 들춰 업고 손에 들고 그때 차량 운행이 어디 있고 인터넷이 어디 있습니까? 그 주일에 은혜 받으려고 그 새벽에 은혜 받으려고. 그 춥고 배고픈 시절에. 남편에게 타박 받지 않으려고 일 다 해놓고 밥 다 차려놓고. 그리고 교회 가서 한없이 울다가 온 게 그 시절 아닙니까. 그때 뭐 기도했습니까? 하나님 우리 가정 구원해주세요, 하나님 우리 자녀들 구원해주세요.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그게 그 시절의 유일한 기도제목 아니었나요? 지금은 기도제목도 너무 많습니다. 얼마나 기도제목들이 디테일한지. 제가 청소년 수련회를 맨날 하지 않습니까. 아이들 기도하고 있으면 어이가 없습니다. 저게 기도냐 싶습니다. 기도한번 들어보세요. 우리 교단의 청소년들이 기도하는 기도제목 한 번 들어보시라니까요. 저들이 저 단어를 알고 쓰는지조차 의구심이 있습니다. 무슨 주문 외웁니까? 지각이 없습니다. 다 말라버렸습니다. 메말라버렸습니다. 제가 청소년수련회 가서 기도회를 인도합니다. 기도회를 인도하다보면 아이들이 회개하고 눈물 흘리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렇죠?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기도회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회를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여러분 일 년에 한 번 모이는 수련회 하나님이 기름 부으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눈물 흘리고 회개하는데 내려가면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다음 프로그램 지장되게 왜 이렇게 기도회를 길게 하냐고 합니다. 다음 프로그램이 어디 있습니까? 제정신입니까? 아이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다음 프로그램 이야기가 나옵니까? 교회가 뭔지를 모릅니다. 세상의 그런 리워야단의 세력들에게 함몰되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그렇게 메말라져가고 있는 가지를 표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싹 말라버렸습니다. 영혼 사랑, 하나님 사랑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전부 행정적으로 따지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다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더 깨끗하게 할 것이고 더 바르게 할 것이지만 가지가 말라버렸습니다. 교회는 사업체도 아니고요 회사도 아니고요 여기는 일반 학교도 아닙니다. 이 포도원이 망해버리면 찔레나무로 망하고 마른 가지로 다 말라버리면 세상은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포도원을 지키시려고 하나님이 직접 때때로 물을 주시고 하나님이 밤낮으로 간수하셔서 무엇을 하십니까? 마른 가지를 잘라버리시고 찔레를 뽑으시고. 지금 교회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간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섬기면 그냥 두시면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게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제 아들이 나쁜 길로 가고 도둑질 하고 거짓말을 하는데 가만히 두고 그것은 좋은 부모가 아닙니다. 진짜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때려야 합니다. 그게 사랑하는 부모입니다. 올바른 길 가라고. 지금 하나님이 이 포도원을 그렇게 간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오늘 27장에서 이야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오늘 본문에 어떤 축복을 주시냐면 12절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_이사야5:1-7  

 

Ⅲ.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 하나하나 모으시리라_이사야27:12-13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_이사야27:12-13

 

말세 때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하나 모으시겠다고 하십니다. 농사 짓는 분들은 아시다시피 비바람도 견디고 유충도 견디고 다 견디고 마지막 남은 열매 맺힌 과일. 그 과일이 주인에게 상품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하나 모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어디에서부터 인가요? 창일하는 하수에서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 따는 것처럼. 무슨 말이냐면 그 당시는 전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열방을 향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_이사야27:13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 깨닫는 것입니다. 이거를 노래하고 꿈꾸라는 이사야 5장에 보면 포도원은 반대적입니다. 기억나시죠. 이사야 5장에 가옥에 가옥을 만들고 전토에 전토를 더해서 가옥끼리 안 무너지도록 붙이고 부를 축적하고 홀로 이 땅 가운데 강력한 도시를 만들려고 이스라엘 백성이 했던 것들을 이사야 5장에 망할 포도원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자기 실력으로 하나님 없이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절대 떨어지지 말자하고 마른가지끼리 백번, 천 번 모아 보십시오. 살아나나. 마른 가지끼리 천 번, 백번 모아서 땅에 박아놔 보십시오. 살아나나. 하나님 없이 인간이 잘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 없이 인간이 평강이라는 것을 맛볼 수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이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뭘 해야 되냐? 뭘 이야기하냐? 이 포도원이 무엇을 회복해야 하냐? 거룩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샬롬입니다. 왜 샬롬이냐? 샬롬은 평강인데 하나님과 연합했을 때 오는 평강을 샬롬이라고 합니다. 갓난아이들이 엄마 품에 안길 때 샬롬 인 것처럼 영적인 고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그 때부터 세상 다 가진 것 같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갔는데 안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왔습니다. 집에 전화했더니 아빠가 문제를 일으켰고 엄마는 몸이 좋지 않고 우리 누나들은 전국으로 흩어졌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혼자 신학교를 다니는데 엄마가 얼마나 서럽게 우시던지. 저한테 강하신 분이거든요. 그날을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힘들어요. 그런데 제 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안 좋은 일들이 사방팔방에서 떨어집니다. 저는 이제 돈을 벌어야겠다 싶어서 모교 학교 밑에서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러 갔습니다. 알바를 하러가서 돈을 좀 모으면 그 때도 얼마나 서럽던지. 남들 다 밤에 다 시험공부하고 있는데 저는 밤새 일을 해야 돈을 좀 많이 모으니까. 그것도 그거라도 해서 돈을 모으면 기분이 좋은데 또 밤에 제 실수입니다. 밤에 일하고 와서 몸이 뻐근하니깐 농구공이라도 던지려고 학교를 가려고 했는데 학교 후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정문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피곤하니깐 멀어요. 그 후문 담을 뛰어 넘다가 떨어져서 다리를 깁스했습니다. 그러면 또 편의점 일을 못하잖아요. 제 실수이기는 한데 이게 참 힘들었습니다. 안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그런데 제 인생의 황금기는 그 때였습니다. 목사님 제일 안 좋았다면서요? 그런데 그 때 정말 바라볼 것이 없을 때 하나님 바라봤던 그 때, 새벽마다 기도했던 그 때, 새벽에 기도하고 나오면 찬송부터 나왔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그게 믿어지는데. 상황은 힘들고 배는 고프고 지금은 제가 살이 엄청 찐 것입니다. 그때 사진은 뼈 밖에 없을 때입니다. 지금보다 25kg 적을 때입니다. 하루에 한 끼도 못 먹을 때인데. 상황은 안 좋은데 내 영혼이 얼마나 충만하던지. 내 마음이 얼마나 기쁘던지. 그러니 세상이 다 욱여쌈을 당해도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니깐 아무 문제가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아무 걱정 근심거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무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포도원이 주님을 바라볼 때,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볼 때,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영양분, 때때로 부어주시는 물, 밤낮으로 간수하시는 그 손길을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를 극상의 포도열매를 만드시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의 열매 삼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열매 삼으시기 위해서 무엇이 피어야 되나요? 농작물은 다 꽃이 피어야 합니다. 그 꽃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합니다. 샤론의 꽃 예수. 꽃이 열매는 아닙니다. 모든 열매는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지고 그리고 열매가 나옵니다. 이것은 원예업을 공부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꽃이 되셨습니다. 피고 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포도원의 꽃.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이 예수님이 우리 인생에 드러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인간은 이 리워야단의 세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요? 오승주목사요? 여러분 교회 성도 100명만 되도 교만한 마음이 듭니다. 내가 개척해서 5년 만에 성도 100명 됐네. 딱 그 마음부터 듭니다. 미치고 환장합니다. 그 마음이 들어오는데 미치고 환장합니다. 그게 안 떨어져 나갑니다.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간사하고 악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간이 그렇습니다. 내 안에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산다는 것, 예수님이 꽃 피운다는 것. 그래야 구원의 열매라는 것을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스펠교회에서 예수님이 꽃 피워야 여러분 가정에 여러분 신앙이 꽃 피워야 우리 자녀들이 구원의 열매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꽃 피우지 않으면 예수님이 꽃 피고 지지 않으면 절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 예수님이 꽃 피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활짝 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죄는 뭐라고요? 네가 꽃 피라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처럼 되라는 것입니다. 네가 구원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네가 빛나라는 것입니다. 이게 리워야단의 세력들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고 미혹하는 것입니다. 그게 창세기 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마귀가 활동하는 세력들의 가장 강력한 인간을 향한 공격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섯다 하면 넘어질까 주의하라.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니라. 우리 이름 쓸모 있습니까? 우리는 천국 가서 하나님 품에 안기면 최고의 면류관입니다. 오승주 목사 이 땅에서 받을 영광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먹고는 살아야 되겠죠. 삶은 정상적으로 유지해야 되겠죠. 그러나 모든 영광 하나님이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그런 모든 행태들을 다 없애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목사가 권력을 가져서 리워야단, 교황청처럼 되려고 한다면 제도적으로 다 막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구원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눈물로 기도하는 교사들이 있습니까? 교회가 건물도 커지고 모든 것을 다 갖춘 것 같은데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없는 것이 있습니까? 교회 안에 없는 것이 없습니다. 돈도 있고 능력자들도 많고 현대교회는 시설도 좋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마른 가지. 우리가 스스로 쳐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 쳐내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른 가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른 가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교회는 마른 가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에게 딱 붙어서 하나님이 때때로 주시는 물도 받아먹어야 되고 밤낮으로 간수하시는 하나님의 간수, 하나님의 통치 속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은혜, 그 보혈의 은혜. 시편에 보면 다윗이나 신앙의 인물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백했습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는 코람데오, 라틴어입니다. In Front of God. 제가 어릴 적부터 저희 목사님이 교회 벽에 코람데오를 붙여놓으셨습니다. 그것을 어느 순간에 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느 순간 그것을 떼셨습니다. 다시 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교를 부산으로 갔는데 학교 교훈이 코람데오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저희 학교 운동장에 큰 돌 위에 코람데오라고 써놨습니다. 저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가면 이 땅에 와서 미지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죽으신 선교사님들의 모든 일기들, 신앙고백들이 기록으로 남겨져있는데 전부 베이스에 코람데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것은 종교적으로 뭐라고 표현할까요? 종교성을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실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베푸실 구원을 소망하면서 그 하나님 앞에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야 지금 하나님 쳐다보고 있는데 그거 하면 돼? 안 돼? 우리 자녀들 잔소리하려고 하나님이 쳐다보고 있는데 공부를 안 하면 돼? 이런데 써먹으라고 하나님 앞에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주로 그런데 써먹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가 거짓말하면 되냐? 남 정죄하라고 써놓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그 우주적인 역사. 종말론적인 그 하나님의 언약. 성경이 이야기하는 큰 구속의 역사. 그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게 함축적으로 담겨있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 영적인 승리를 위한 ‘하나님 앞에서’_시편51:9-13, 108:1-13, 137:1-9, 147:10-20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_시편51:9-13

 

이게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다윗이 엄청난 죄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사실 다윗은 죄를 지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야. 우리 같으면 왕이니깐 핑계 대고 전략적으로 권모술수 사용해서 덮었을 것인데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가 된 것입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 앞에서. 맞아! 내가 실수했구나, 내가 잘못했구나. 그리고 시편 51편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속았지만 제가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 저를 떠나지 말아 주옵소서. 영을 떠나지 말아주옵소서. 다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저에게 주옵소서. 이게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비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하나님이 그의 성소에서 말씀하시되 내가 기뻐하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발을 벗어 던질지며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해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으로 인도할꼬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들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_시편108:1-13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사방에 욱여쌈을 당하고 내 환경은 비참하고 불신자,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고 있는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을 정했습니다. 내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의지하겠습니다. 저 므낫세, 길르앗, 에브라임도 내 것입니다. 모압은 내 목욕통입니다. 에돔은 내 신발을 벗어 던질 것이고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칠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내 능력으로 그게 가능합니까? 모압이 내 목욕통이 될 수 있습니까? 그 당시 다윗은 쫓기는 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신을 차려보니까 위대하신 하나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이방 땅에 복음 전하게 하시려고 부르셨다는 사실을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철학자들의 말처럼 우리는 망각의 동물입니다. 인간은 잊어버립니다. 주로 내가 어렸을 때 잘해주는 것만 기억하지 내가 죄 지은 것은 잊어버립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망각합니다. 어제일도 그제일도 망각합니다. 잊어버립니다. 여러분 요즘 스포츠 폭력 하는 것 보시죠? 때린 사람은 기억 못합니다. 피해당한 사람만 기억합니다. 피해당한 사람만 기억하지. 내가 너희한테 언제 그랬냐고 합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맞은 것 보셨죠? 어떻게 저렇게 폭행을 할 수 있을까요. 싹 도려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합니다. 때린 사람은 나는 너한테 장난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무섭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잊어버립니다. 뭐라고 이야기하나요? 하나님 앞에서. 맞아 하나님 전능하셨지. 하나님 위대하시지. 모압도 내 목욕통이지. 에브라임도 발아래 두셨지. 내가 저 블레셋 위에서 노래를 부를 존재로 부르셨지.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_시편137:1-9

 

1-7절. 리워야단이 지금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8-9절에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포로로 끌려가서 바벨론에 저들이 야! 너네 찬송 한번 불러봐. 너희 예수쟁이들 노래 잘 부른다며 치욕스러운 현장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나요? 나는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겠어. 하나님 앞에서 다시 회복할거야. 다시 거룩한 성읍을 회복할거야. 다시 구원을 회복할거야. 그게 우리의 신앙 아닙니까? 삶이 쑥대밭이 되어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아야 할 것이 예루살렘 아닙니까? 그것 아니면 이 땅에 소망이 없습니다. 이 나라, 민족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해를 너무 못하시네. 그것 참 이해를 너무 못하시네. 구원이 아니면 우리 자녀들이 무엇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천국을 못 가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잘해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해가 안 되세요? 나중에 여러분 다 천국가고 여러분 자녀들이 천국에 입성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상상이라도 해보세요. 그런데 예루살렘이 저들의 포로가 되고 뿌리까지 뽑혀서 기초까지 뽑혀서 바벨론에 쑥대밭이 됐는데 바벨론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그들에게 아부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세상 등지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의 추위를 감당하리요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_시편147:10-20

 

10-18절. 추운 겨울 차디찬 강퍅한 마른 가지 다 녹이시겠다고 하십니다. 다시 이 땅에 생명수가 흐르는 것입니다. 19-20절. 누구에게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말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이 힘이 세다 하여서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여호와를 진짜 경외하는 자. 포도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서 싱싱하게 살아서 우리 예수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진짜 신앙생활. 이것은 말로 신앙생활이 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말을 백번 천 번 해도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진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마른 가지와 같은 우리 심령, 우리 예배. 다시 부흥을 꿈꾸길 원합니다. 가스펠교회에 부흥이 일어나기를 원하고 우리 자녀들에게 다시 부흥이 일어나길 원하고 우리 아이들이 죄에서 돌이켜서 회개하고 주님을 찬송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이 땅에 하나님이 세우시는 견고한 성이 되어서 주의 복음, 하나님의 생명수를 온 세상에 흘러 보내는 위대한 인물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성령이 다시 우리 가운데 오셔야 합니다. 다윗이 이야기한 것처럼 주의 성령을 우리에게서 거두지 마십시오. 거두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메말라버리니까. 우리가 다시 촉촉한 성령의 단비를 힘입어서 우리가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서는 강퍅하지 않아야 됩니다. 교회에 대해서는 강퍅하지 않아야 합니다. 은혜에 대해서만큼 강퍅하지 마십시오. 다른 것은 다 강퍅해도 괜찮습니다. 세상이 치열하니깐 그 속에서 논리적으로 따져가면서 사십시오. 그러나 은혜에 관해서는 따지지 마십시오. 은혜 받는데. 계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주셔서 밤낮 간수해주시는데 포도원지기의 은혜를 우리가 계산하고 받습니까? 그 강퍅한 마음 오늘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강퍅한 우리의 예배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부흥이 다시 우리에게 일어나길 원합니다.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3-07 주일예배  (0) 2021.03.07
2021-02-28 주일예배  (0) 2021.02.28
2021-02-14 주일예배  (0) 2021.02.14
2021-02-07 주일예배  (0) 2021.02.07
2021-01-31 주일예배  (0) 2021.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