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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1-03-07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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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3월 07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2부예배)

제 목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본 문

이사야 28:14-29

 

 오승주 목사

 

Ⅰ. 나는 괜찮겠지!

 

역사적으로 보면 지금 히스기야의 시대이고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는 호세아 왕 3년차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로부터 완전히 멸망을 했습니다. 지난 주 13절까지는 북이스라엘에 관한 말씀이었고 오늘 14절부터 29절은 남유다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때 남유다는 히스기야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실 북이스라엘이 호세아 3년 때 B.C.722년에 멸망을 했는데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이 때가 히스기야 시대인데 히스기야는 아버지가 아하스 왕입니다. 아주 악한 왕으로 알려져 있고 히스기야의 아들은 므낫세라는 왕 입니다. 조선왕조 때도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섭정이라고 합니다. 히스기야가 왕위를 물려받았지만 아하스가 통치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14년 정도. 그리고 아들을 왕으로 세웠는데 히스기야가 통치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0년 정도. 그것을 제외하면 히스기야가 홀로 통치하던 시기는 19년정도이며 다 합치면 42년 정도 통치를 했습니다. 그 기록이 39장까지의 기록입니다. 북이스라엘을 앗수르가 멸망시키고 딱 19년 만에 정확히 말하면 20년만인데 B.C.701년에 앗수르가 남유다를 쳐들어옵니다. 처음 쳐들어 올 때 히스기야가 어떻게 돌려보냈냐면 온갖 재물을 다 줘서 돌려보냅니다. 온갖 재물을 다 줘서 돌려보내고 안심을 합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그 다음해에 또 쳐들어옵니다. 정확히 20년만에 또 쳐들어오는데 이 때 쳐들어온 군대의 숫자가 18만 5천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하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앗수르이 왕은 산헤립이고 그때 앗수르이 군장, 군사령관이 랍세가입니다. 산헤립이나 랍사게 모두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앗수르가 쳐들어옵니다. 마침 그때 히스기야가 첫 번째는 재물을 줘서 돌려보냈는데 1년 만에 또 쳐들어오는 것입니다. 온갖 재물을 다 줬는데 이제 좀 안심하고 살만했는데 또 쳐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것도 18만 5천을 데리고 쳐들어왔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그렇죠? 우리가 뭔가 돈으로 해결을 하기 시작하면 뭔가 본질을 해결하지 않고 자꾸 물질로 뭔가를 해결하려고 하면 더 큰 문제가 옵니다. 거짓말도 거짓말로 덮으면 더 큰 문제가 오듯이. 이 때는 히스기야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히스기야의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히 우상을 제거하고 산당을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 이런 회개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회개의 기도를 들으시고 18만 5천 군대를 하룻밤에 격퇴를 시키십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리고 나서 남유다에 약간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평화가 어느 정도 지속이 되냐 120년 동안 평화가 지속이 됩니다. 그런데 120년 그 때 하나님이 마지막 때 바벨론을 통해서 멸망을 시키셨습니다. 이 바벨론에게 히스기야가 엄청난 실수를 합니다. 바벨론의 사신이 남유다를 찾아왔을  때 내탕고, 국가의 금고를 다 보여주고 교만하게 자기의 국력을 과시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국력을 과시했던 바벨론이 준비해서 쳐들어옵니다. 120년만에 남유다도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그게 이제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사실 이런 역사는 긴 역사이고 구약성경의 전체 역사이기도 합니다. 열왕기하에 나오는 긴 역사입니다. 남유다가 사실은 북이스라엘이 앗수르로부터 괴로움을 당할 때 침략이 계속 올 때 남유다(아하스, 히스기야 왕)가 의지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뭐라고 생각했냐면 우리는 괜찮아, 우리는 괜찮겠지, 나는 괜찮겠지 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면 앗수르와 국력이 비슷한 애굽을 남유다가 의지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이 앗수르로부터 완전히 멸망을 당했을 때도 남유다는 사실 정세적으로 정치적으로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20년이나 앗수르가 바로 쳐들어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왜냐면 앗수르와 거의 버금가는 애굽을 남유다가 동맹을 맺고 의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식이냐면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로부터 완전히 망했을 때 그것을 경고의 메시지로 듣지 못하고 우리는 애굽하고 동맹을 맺어서 끄떡 없어, 나는 괜찮아 이런 상황입니다. 사실 우리도 이런 신앙생활을 진짜 많이 합니다. 이게 사실은 인생을 살면서 제일 좋지 않은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더 큰 문제를 가져다 쓰는 것. 이정도의 빚을 해결하기 위해서 큰 사채를 가져다 쓰는 것. 이 거짓말을 덮기 위해서 더 큰 거짓말을 하는 격입니다. 사실 지금 이 상황에 남유다에게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이 하나님 앞에 엄청난 경고의 메시지가 되고 회개의 메시지이고 기회인데 그때 애굽을 선택해버립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Ⅱ.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 북이스라엘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남유다_이사야28:14-15

 

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_이사야28:14-15

 

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_이사야28:14

 

오만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_이사야28:15

 

애굽을 사망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앗수르가 와도 우리는 괜찮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뭐라고 표현하냐면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_이사야28:15

 

여러분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 경고로 하나님께서 적당한 견책으로 앗수르를 보내서 멸망시키고 있는데 그것을 보면서도 애굽을 선택합니다. 지금 그러면서 자기들이 얼마나 교만하고 오만하냐면 우리 애굽과 동맹을 맺어서 끄떡없어. 앗수르보다 더 강력한 나라 애굽이 우리의 뒤를 봐주니까 우리나라는 끄떡없어. 지금 딱 이런 상황입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에요.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자 남유다는 애굽의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그것을 사망이라고 표현을 하고 스올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여러분 애굽은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우상 천지이며 멸망할 나라였습니다. 애굽이 사망이고 애굽을 스올이라고 어둠과 지옥의 존재라고 그런 존재라고 하는데 그것을 피난처 삼고 그 아래 자기를 숨긴 것입니다. 남유다가를. 이게 아하스, 히스기야 왕이 했던 일입니다. 이런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멸망하든 말든 나는 괜찮겠지 안심했던 이유가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우리가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 우리 신앙도 빨리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그런 거 있습니다. 유럽 교회가 망했어 그런데 우리는 안심이야, 미국 교회가 어렵데 그런데 우리는 괜찮아. 진짜 악한 생각입니다. 우리 교회들도 그렇습니다. 옆에 교회는 코로나 때 어려움이 많데, 교회가 힘들데. 그런데 우리 교회는 재정도 튼튼하고 우리 교회는 부흥하고 있고 나는 괜찮겠지 딱 이런 격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람도 그렇잖아요. 저 김 권사, 김 집사, 이 집사, 오 집사. 저 사람 진짜 하나님 앞에 벌 받나봐 왜 이렇게 어려워. 그런데 나는 괜찮아. 의지하는 것이 진짜 하나님을 의지해서가 아니라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그것을 회개의 메시지로 듣고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 나는 아직 살만해. 나는 재산도 있고 나는 아직 안정적인 장치들이 있고 지금 그런 장면들입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남유다에게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들이 그런 마음입니다. 우린 정치적으로 국가와 친하니까 괜찮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죄도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남유다가 보기에는 북이스라엘이 엄청 큰 죄가 맞습니다. 죄의 경중으로 따졌을 때는 북이스라엘이 훨씬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악합니다. 악한 왕들의 역대기로 따지면 북이스라엘이 정말 많습니다. 호세아,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이 훨씬 더 큰 죄를 지어서 심판을 받고 있는데 뭐라고 하냐면 나는 저들보다 작은 죄를 짓고 있으니까 나는 괜찮아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신학적으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죄가 크고 작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비교해가지고 내 죄는 괜찮다 라고 생각하는 게 맞습니까?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 앞에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죄는 저 사람이 큰 죄를 지어서 큰 환란을 당한 것이지만 저 사람하고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죄는 크든 작든 내 죄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은 죄가 애굽과 동맹을 맺고 침략을 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죄가 사라지는 것입니까? 해결이 되는 것입니까? 조금 우리 식으로 적용을 하자면 이 죄가 있는데 내 인생이 삶 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혹은 내가 가족들과 잘 지내고 조금 행복하고 요즘 나는 일이 잘 풀리고 한다고 해서 이 죄가 하나님 앞에서 사라지는 것입니까? 아니죠. 죄는 반드시 뭘 받죠? 보응을 받습니다. 여러분 죄라는 것은 반드시 보응을 받습니다. 이것을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나는 죄를 조금 밖에 짓지 않았으니까 괜찮고, 쟤는 큰 죄를 지었네 이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죄. 그래서 지금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나는 괜찮겠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로마 가톨릭이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가 제시하는 도덕으로 죄 문제를, 죄의 경중을 따져버렸습니다. 여러분 죄는 어디서 기준 삼아야 되죠? 다른 사람에게서 기준 삼아서, 상대적으로 평가해서 죄 문제를 해결하면 안 됩니다. 죄는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성경 앞으로 가지고 가야 되고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가서 죄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죄 사함의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의 기준은 옆에 있는 김 장로, 오 장로, 김 집사가 아니고 성경이어야 합니다. 내 신앙의 모든 기준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유다가 엄청 착각한 것입니다. 자기들은 지금 앗수르 이겨냈다는 것입니다. 앗수르가 침략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래서 괜찮겠지. 나는 괜찮겠지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해서 어떤 하나님이에요? 분명히 판결하시는 하나님이에요. 

 

-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_이사야28:16-22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지나가며 주야로 지나가리니 소식을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의 일을 행하시리니 그의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의 사역을 이루시리니 그의 사역이 기이할 것임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_이사야28:16-22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_이사야 28:17-18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신다고 하십니다. 공의의 하나님. 하나님이 그런 남유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시냐면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약은 율법서라고 합니다. 좀 심각한 어떤 목사님들은 구약은 율법, 신약은 복음 이렇게 설교하는데 진짜 큰 오류입니다. 그렇게 설교하면 안 됩니다. 무식하다고 티내는 것입니다. 구약이 율법, 신약이 복음이면. 그래서 어떤 분들은 신약만 읽어야 한다는 분들이 있어습니다. 아주 편협적이고 잘못된 신학을 공부하신 분들입니다.  여러분 구약이 어떻게 율법이고 신약이 복음이고 이렇게 나누어질 수 있습니까? 신구약이 다 율법이고 복음이고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하나님이 광야를 가는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뭘 주시죠? 율법을 주십니다. 십계명을 비롯해서 모세오경을 주십니다. 이 율법이 있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죄를 판단할 기준이 없었습니다. 그냥 전해 내려오던 하나님을 직접 신비롭게 만나서 그때그때 죄 문제를 해결을 받았던 것입니다. 어떤 신비적인 사건들로 예를 들어 소돔과 고모라가 불에 탄다던지 이런 것으로 해결을 받았지 하나님의 말씀이 시내 산에서 율법으로 내려오기 전에는 죄를 판단할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역사는 모든 말씀들 성경을 보면 율법으로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조명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의 시는 거의 다 회개의 시입니다. 전부 회개의 시입니다. 회개의 시가 슬프냐?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회개의 시는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회개에는 반드시 기쁨이 있기 때문에. 죄 사함의 기쁨이 있습니다. 회개라는 것은 우리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서 우리의 죄를 해결 받는 것이 회개이기 때문에 회개는 기쁨, 희열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은 이 율법으로 죄가 드러나는 것들을 다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우리가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으로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이 없이 신약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이 율법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이 율법이라는 것이 우리의 신앙에 중요한 것인지. 그래서 무엇이 사라졌냐면 회개가 다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한국 교회에 회개가 사라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 발생된다고 생각이 듭니다. 회개가 사라졌습니다. 목사님 회개는 어렸을 때 청소년수련회나 수련회 같은 곳에 가서 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요. 회개는 매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확인하고 감사와 감격이 그 회개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기쁨이나 희열이나 안식, 하나님 품에 있다는 안정감은 다 회개에서 나옵니다.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이기 때문에. 죄에서 돌아와서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 율법이 우리 삶에 사라지기 시작하니깐 회개도 사라지기 시작한 겁니다. 보세요. 이사야가 남유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_이사야28:16 

 

지금 뭐 이야기하고 있죠? 예수님 이야기하고 있죠. 우리는 다 알죠. 시온에 세운 돌이 예수님을 상징한다는 것. 그게 기초인데 시험도 당한 돌이야. 그리고 견고한 기촛돌이 됐는데 그것을 믿는 자는 다급하게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스라엘 왔을 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 율법과 복음을 나눠서는 안 됩니다. 전부 예수님을 가르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붙어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사랑이 빛날 수 있냐? 공의로우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왜 하나님의 공의가 정의이고 흔들림이 없냐?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입니다. 공의 때문에 사랑도 사랑 때문에 공의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심판도 하시고 분노도 하시고 그리고 구원도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자녀를 낳아서 키워보니까 조금 더 명화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저희 아이를 진짜 사랑합니다. 아마 정상적인 부모라면. 요즘에 하도 자기 자녀들을 학대하는 정말 이상하고 미친 욕 나오는 부모들이 많지만은. 정상적인 부모는 자기 자녀가 정말 잘되기를 원합니다. 정말 정말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할수록 오냐오냐 키우지 않습니다. 그쵸? 나쁜 버릇을 호되게 혼냅니다. 그게 가슴이 아픕니다. 아이에게 매를 들 때 가슴이 아프지만 이 아이가 정말 잘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엄청난 혼도 많이 냅니다.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를 꾸중하고 나쁜 습관도 고치려고 합니다. 너 그렇게 살면 밖에 나가서 진짜 큰일 나 하면서 집 안에서 아이를 잡습니다. 그건 진짜 사랑하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냐오냐 키워서 네가 최고야 키우면 밖에 나가서 진짜 병신처럼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도 똑같습니다. 우리에게 왜 율법을 주셨습니까? 우리에게 왜 공의를 주셨고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처럼 삼아서 계속해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이렇게 견책하고 계십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오실 메시야를 보라고, 구원하시려고. 그래서 너희가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왜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_이사야28:22

 

우리를 하나님이 적당히 견책으로 결박해놓으셨는데 오만해요. 그것을 깨닫지 못해요. 적당한 견책을. 그러면 어떻게 되요? 단단해 지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지금 단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박해놓으셨는데 북이스라엘이 단단한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완전히 등을 돌렸습니다. 잠시 잠깐의 회개도 없었습니다.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_이사야28:22

 

마음이 오만해서 회개하지 않으니까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 율법을 다시 회복해야합니다. 율법이 무엇인가요? 율법이 십계명, 딱딱한 교리인가요? 아닙니다. 구약성경, 신약성경.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율법입니다. 성경자체가 율법입니다. 율법을 다시 회복해야합니다. 그래야 예수님도 회복할 수 있어요.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도 우리 삶에서 찾아낼 수 있어요. 그럴려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오만한자여.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라는 겁니다. 신명기 6장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자녀, 내 손주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기 위해서는 뭐해야 되냐?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무엇을 이야기하고 계시냐면 신명기에 너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오승주 목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게 무엇이냐? 하나님이 유일하게 우리의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하나님은 믿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우리의 중심도 아시고 우리의 행위도 아시고 우리의 모든 삶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하나님 사랑합니다, 내가 하나님 사랑하는 줄 아시잖아요? 거짓말인거 다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죠? 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말씀을 듣고 지키고 행하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녀가 여호와를 경외하고 손주가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려면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똑같이 말합니다. 너희가 나를 믿느냐? 네가 나를 신뢰하느냐? 네가 내게 복을 받기 원하느냐? 그러면 말씀을 듣고 지키고 행하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가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교회는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뮤지컬 하는 교회도 있더라고요. 어떤 주일학교는 전도사님이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설교를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인형극 같은 것을 합니다. 인형극이 내용이 성경이겠지만. 온갖 행사들이 1990-2000년도에 한국 교회를 강타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열린 예배부터 해서 찬양집회, 수많은 집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장로님, 권사님들 세대의 신앙의 아름다운 유산 중에 하나인 성경읽기, 성경공부가 한국교회에서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어떻게 됐죠? 교회가? 완전 극장식 교회가 되었습니다. 주일 날 가서 예배 한 번 드리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성경책은 먼지가 쌓이고 자동차 캐비넷에 넣었다가 주일날 올 때 꺼내고. 그게 오만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과 동맹을 맺어서 나는 괜찮겠지. 주일날 교회도 갔는데, 교사도 하는데, 헌금도 하는데 나는 괜찮겠지. 이해 가시나요? 우리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무엇을요? 성경을, 하나님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가 뭐라고요?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지키는 것이고 행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그게 무슨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까요? 예. 어마어마한 영향력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유대인에게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월요일에 유대인 강의를 한 것입니다. 유대인을 배우자 이게 아닙니다. 유대인은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삽니다. 세상과 같이 살지 않습니다. 세상 방법대로 교육도 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6장 말씀 붙잡고 모세오경 토라를 아이들에게 그냥 가르치는 정도가 아니라 달달달달 가르칩니다. 아이들이 괴로울 정도로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리처럼 가정예배 드려, 부모가 메시지하고 이게 아닙니다. 엄마, 아빠가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들은 삶으로 예배를 배웁니다. 심지어 그들의 결혼 문화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결혼하면 남자를 직장에서 휴직을 시켜줍니다. 그리고 아내는 일을 합니다. 아빠가 1년동안 뭐하냐? 토라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것을 위해서 수료를 위해서 어렸을 때 받았던 토라 교육을 다시 받습니다. 왜? 이유는 아빠는 이 가정의 토라 교사야. 모세오경, 율법 교사라는 말입니다. 1년 동안 여자가 일을 합니다. 아빠가 수료를 하면 여자는 다시 가정으로 돌아와서 아이를 낳고 남자는 직장을 가는데 그때부터는 아빠가 가정에 낳은 자녀들 성경을 가르치는 성경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애굽과 동맹 맺지 않았으니까 앗수르와 동맹 맺지 않았으니까 실패해야 되잖아요? 우리 유대인의 역사 알잖아요? 실패했습니까? 이 모든 세계 위에 있습니다. 복음이 없고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그렇지 구약에서부터 아브라함 때부터 내려오는 그들의 수많은 고난과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삶들은 우리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우리 교회는 하나님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뭐가 없죠? 행함이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 사도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릅니다. 여러분 요즘 크리스천들에게 하나님 아냐고 물어보면 하나님을 다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왜?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요즘 신학적으로 문제가 생길 발언도 가끔 하는데 예수님 영접기도 해서 구원 받았을까? 저는 조금 의구심이 듭니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구약에도 구원 받았고 성경이 우리 손에 쥐어지기 전에도 쪽 복음 듣고 구원 받았으니까 너무 비약적일 수 있지만 너무 심각합니다. 그러니 교회가 언제 가장 빛이었는지 우리 신앙공동체가 세상에서 언제 가장 강력했는지를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우리 어렸을 때 자녀들에게 성경 학교를 하고 어른들은 말씀 사경회를 하고 하나님 말씀을 사랑했을 때. 겉모양은 별 볼일 없었지만 세상에 교회 공동체, 신앙 공동체는 막강했습니다. 지금은 반대입니다. 다 가진 것 같은데, 겉보기는 멀쩡한 것 같은데 속은 아무 내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 읽으셔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으셔야 합니다. 목사가 성도들에게 달콤한 말로 설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주제설교하면 끝내주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제를 정하면 됩니다. 이번 주는 응답, 다음 주는 축복, 그 다음 주는 성공. 주제설교 할 수 있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내 마음대로 설교하는데. 목사님 설교가 너무 달콤하다. 너무 달콤하다면서 다 죽습니다. 성도들도 다 죽고 저도 죽고 교회도 다 죽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한빈이한테 하루 종일 초콜릿 먹이고 아이가 좋아한다고 아이스크림 계속 먹이고 공부하기 싫다고 계속 놀이터에서 놀아주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죽이는 것입니다. 내 자녀가 미숙한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면 이 아이를 죽이는 것입니다. 아이는 훈련 받아야 되고 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교육을 받아야 세상을 이길 수 있고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 안에는 교육이 다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저 쪽 세상은 어둠의 세상은 교육으로 사람을 주입시킵니다. 교육이 힘이 막강한 줄 다 아시죠? 들어가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엄청나게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사상 교육, 이념 교육. 제가 강단에서 정치이야기를 안하지만 보시면 알잖아요? 여러분 교회는 분별해야 합니다. 지금 정권도 딱 남유다, 북이스라엘과 똑같지 않습니까? 더럽다고 뒤집어 놨는데 자기들이 더 더럽습니다. 지금 그렇잖아요. 더럽다고 해서 뒤집어놨는데 더 더럽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 어떤 정치인을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정권이던지. 이사야처럼. 그런데 지금 이게 무엇 때문에 문제가 되냐면 저들은 교육으로 사람을 잡습니다. 이단, 사이비들 전부 교육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성경교육이 없습니다. 그러니 안다고 생각하지만 모르는 것입니다. 유대인 속담에,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 하나님께서 계속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쉐마. 들으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의 마음이 기름져서 듣지를 못하고 있구나. 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3절부터 재미있습니다. 

 

- 너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자세히 들으라_이사야28:23-29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_이사야28:23-29

 

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좀 들어라 남유다야. 그러면서 갑자기 농사 이야기를 하시는데 왜 농사 이야기를 하시죠? 그때 남유다에 주로 농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유다를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려고 농사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농사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까요.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_이사야28:24-25

 

소회향, 대회향은 미나리과의 식물입니다. 미나리하고 비슷한 식물. 미나리를 모르는 거 아니시죠? 대맥, 소맥은 보리입니다. 귀리는 요즘 우리가 잘 먹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_이사야28:26-28

 

왜죠?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면 알맹이, 열매 다 깨져버립니다. 농부가 곡식을 부술 수 있겠어요?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_이사야28:29

 

그러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나요? 하나님이 농부이십니다. 하나님이 땅을 개간하고 밭을 만들고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씨앗만 계속 심겠느냐 아니라 물도 주고 잡초가 나면 뽑아도 줍니다. 농부가 그것을 가만히 두겠냐는 말씀입니다. 씨앗도 한 종류만 심겠느냐? 소회향도 심고 보리도 심고 또 땅이 조금 남으면 귀리도 심고 그것은 농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로 다른 시간표 속에서 교회에 모인 것이 딱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포도원에 농사를 이런 지으시는데 씨만 뿌리냐? 농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물도 줘야 되고 햇빛도 비춰줘야 되고 바람이 불면 잠도 못자고 막아줘야 되고 새가 열매를 쪼아갈까 그것을 늘 지키고 보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추수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추수하겠는데. 연약한 식물은 연약한 막대기로 껍질이 두꺼운 것은 말발굽으로 밟아서. 그런데 이 열매를 상하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열매가 무엇입니까? 이 열매가 우리입니다. 이 열매를 어디에 보관합니까? 천국창고 곳간에 보관한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입성한다는 겁니다. 열매가 되어서. 그런데 그 농부가 어떻다고 합니까? 그의 경영은 기묘하고. 기묘자, 모사라. 지혜롭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지혜를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다는 겁니다. 그의 지혜는 광대하니라. 농부의 지혜는 광대하니라. 그런데 여러분 목적은 분명합니다. 열매 알곡을 건지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입성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씨앗이 이게 어떤 씨앗인지 농부는 압니다. 이게 사과 씨앗인지 배 씨앗인지 열매를 농부는 압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미래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씨앗을 심고 농부가,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나요? 잡초가 나던지 비바람이 불던지. 아닙니다. 매일. 저는 농부의 자식이어서 농사가 제일 힘듭니다. 직장은 퇴근이라도 있지. 농사는 퇴근도 없습니다. 1년 365일 아버지 비만 오면 삽 들고 나가셨어요. 바람만 불면 비닐하우스 날아 갈까봐 가서 붙잡고, 농약 줘야 되죠, 벌레 온다고 걱정하죠. 이게 뭐냐면 그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농부니까 그렇죠. 하나님은 기묘자고 경영자이세요. 모사입니다. 하나님의 묘략은 뛰어나며 인도해가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해서 가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요? 그것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가야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매일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가꾸시며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매일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그 어느 때가 아닙니다. 오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어야 되고 오늘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뭐라고 이야기 하냐? 말씀이라고 성경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겁니다. 그 말씀이 너희의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잘 사는 방법, 신앙생활을 잘 하는 방법. 오늘을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들의 유혹은 무엇입니까? 과거에 사로잡히게 하거나 미래의 헛된, 허황된 꿈을 꾸게 합니다. 여러분 저는 세계복음화를 위해 기도해 본적이 없습니다. 물론 세계복음화가 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게 재림, 종말론입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그 일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기에 빠져 있으면 오늘을 살지 못합니다. 오늘 어떻게 살든지 괜찮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막 살아도 괜찮다는 겁니다. 그 목적만 붙잡으면. 너무 앞뒤가 안 맞습니다. 오류투성입니다. 신앙은 오늘 은혜 받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오늘을 살지 않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맞죠? 갓난아기는 울어야 합니다. 젖도 먹어야 합니다. 기어도 다녀야 합니다. 갓난아이가 기어 다니지 않으면 척추나 등뼈가 발달하지 못합니다. 어릴 때 많이 앉아주면 아이 허리가 튼튼하지 못합니다. 부모들이 예뻐서 어렸을 때 안고만 키우면 애들 허리가 안 좋습니다. 신비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신비합니다. 그 때에 맞는 일이 있습니다. 학생 때는 배우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어른이 되면 어른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자꾸 교회 안에 최선이라는 단어를 빼버리는데 교회 안에서 최선이라는 단어를 빼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섭리입니다. 밖에 나가도 불신자 세계에도 최선을 다해야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농사도 최선을 다해서 지어야 합니다. 경기하는 자도 최선을 다해서 경기를 해야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방향이 중요하지만. 신앙은요? 이상하게 신앙만 게으릅니다. 신앙은 대충해도 된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신앙 대충하면 구원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 대충해서 하나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어디 그런 법이 성경에 쓰여 있습니까? 농부는 열심히 우리를 보호합니다. 이 씨앗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열심히 하루하루 자라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섭리라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열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입니다. 농부가 우리를 키우시고 계시는 겁니다. 그런데 싫어, 나 좀 막대기로 때리지 마, 아프니까. 추수 때 깨를 털 듯이 막대기로 텁니다. 깨는 텁니다. 깨는 약한 식물이니깐. 깨는 밟아버리면 으깨집니다. 집에 있는 깨는 다 털어서 만드는 겁니다. 쌀도 다 터는 것입니다. 말려 가지고. 그건 좀 더 쌔게 터는 것입니다. 잘 안 나오잖아요. 쌀알은 튼튼하니까. 깨를 텁니다. 그런데 뭐라고 그러나요. 아파요, 그만 좀 해요. 우리가 지금 그러는 것입니다. 그것을 맞아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적당한 견책을 맞아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그래서 뭘 의지해 버리는 거에요? 애굽을 의지해버리는 것입니다. 교회도 똑같습니다. 목사는 목사다워야 합니다. 목사의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거의 죽을 만큼 해야 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그렇게 해도 부족합니다. 나이가 들면 경험이 쌓이니까 대충해도 됩니까? 아니요.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매일 한결 같이 똑같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하고 잘할 수 있어요. 그렇게 주님 품에 안겨야 합니다. 지금 남유다는 뭐라고 이야기하나요? 괜찮겠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요? 신앙의 귓가에 괜찮겠지 라는 말이 들리면 얼마나 무서운 말이에요. 야 너 괜찮아. 헌금하고 있잖아, 괜찮아. 교회 갔다 왔잖아, 괜찮아. 사업 바쁜데, 성경 안 읽어도 괜찮아. 여러분 자녀를 그렇게 키우시겠습니까? 그렇게 내 자식을 못 키우잖아요. 하나님도 그렇게 우리를 못 키우시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발생 하냐면 상대적인 판단의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판단을 하는 겁니다.

 

Ⅲ. 회개(repentance)의 중요성

 

- 상대적인 판단의 실수 ‘나는 괜찮겠지!’

 

여러분 신앙은 성경을 기준삼아 절대적인 평가가 있는데 상대적으로 판단해서 우리가 이 시대가 주는 이 환경이 주는 도덕법을 가지고 내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 하나요? 이 정도 죄는 괜찮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우리가 판단하면 안 되잖아요. 죄는 절대 우리가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가야 합니다. 진짜 중요한 겁니다. 이 원론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그래서 제가 미국에 가보니까 제 친구가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데 개척할 때부터 들락날락해서 그 교회 성도들을 거의 다 압니다. 다들 어떤 분들이냐면 자녀교육을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가신 분들도 계시지만 주로 대다수가 한국에서 뭔가 어려워서 새로운 삶을 사려고 미국에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셔서 성공한 분과 실패한 분의 차이가 무엇이냐면 한국에서 살았던 삶을 똑같이 살면 거기서도 실패하는 것입니다.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거기서도 성공하겠습니까? 가정이 여기서도 아빠가 아빠의 역할을 못하는데 미국에 가서 마음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가정이 화목해 지겠나요? 회개가 없이. 그러니까 상대적인 판단의 실수를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큰 죄를 짓고 나는 작은 죄를 지으니까 괜찮겠지. 이것을 우리는 가장 경계해야 됩니다. 신앙의 기준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 십자가라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두 가지 정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한 가지는 뭐냐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차이입니다. 사실은 북이스라엘과 비교할 때 남유다는 상대적으로 덜 타락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공의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은 두 나라가 똑같습니다. 아하스 왕이 엄청 악했기 때문입니다. 남유다보다 훨씬 더 상대적으로 더 타락한 북이스라엘이 B.C.722년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유다 차례입니다. 남유다 차례인데 남유다에게도 앗수르의 침공을 똑같이 주셨습니다. 아하스 왕이 악하니까. 그런데 왜 앗수르로부터 멸망하지 않고 120년간 평화가 유지되었냐? 그것은 뭐에요? 히스기야 왕의 회개 때문입니다. 회개가 주는 차이입니다. 이 회개라는 단어는 사전적인 의미로 뉘우침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뉘우침을 여러분 아시죠? 잘못했어~, 미안해~ 이게 뉘우침인가요? 아닙니다. 말이 아닙니다. 이 뉘우침은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잘못한 것이 있는데, 한국사회 잘못한 것이 있는 게 미안해 한마디만 하면 끝날 것을. 저는 그게 굉장히 나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미안해 한 마디로 끝나면 안 돼요. 그런데 미안해로 다 끝내버렸습니다. 그것 때문에 범죄가 계속 됩니다. 사실은 뉘우침이랑 회개라는 단어는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미안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삶이 바뀌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내가 나쁜 짓을 저질렀는데 저 사람한테 미안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저 사람의 마음에 뭔가 미안한 표시들이 내 삶으로 변화되어서 나타나야 진짜입니다. 미안해하고 뒤에서 행동은 똑같이 하면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지금 히스기야의 회개는 120년의 차이를 만들어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 120년의 차이를 만들어 냈지만 결과적으로 히스기야는 이 삶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120년의 차이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북이스라엘을 그냥 멸망시키시지 않으셨습니다. 

 

- 회개가 주는 차이_호세아2:14-20, 14:1-3, 아모스5:4-6, 열왕기하19:1-2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_호세아 2:14-20

 

지금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서 북이스라엘에게 기회를 주는 겁니다. 타이르고 위로하고. 포도원도 주고, 소망의 문도 주고. 제발 바알 좀 섬기지마. 내가 너의 남편이야. 나 좀 섬겨. 나 너하고 장가들고 싶어. 하나님이.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_호세아 2:19-20

 

이게 북이스라엘에게 하신 하나님의 부탁이었습니다. 호세아 14:1-3에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_호세아14:1-3

 

이스라엘아, 에브라임아 북이스라엘아 이 말입니다. 기회를 또 주십니다.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앗수르를 의지했습니다. 말을 타고 권력을 의지했습니다.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몇 번이나 호세아서를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아모스는 더 심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_아모스5:4-6

 

이게 무슨 말이에요? 벧엘, 길갈, 브엘세바. 옛날 과거에 너희 조상들이 은혜 받았던 그것, 과거 경험을 찾지 말고 이 말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에도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찾으라.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베이직으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길갈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벧엘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어떻게 회개했냐면.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_열왕기하19:1-2

 

여호와의 말씀을 똑같이 들었습니다. 일단 하나님의 전에 들어갔습니다. 혼자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들 다 베옷을 입혔습니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여러분 이게 120년의 차이입니다. 남유다는 그래도 히스기야가 이런 회개를 했습니다. 그런데 120년 뒤에 왜 바벨론에게 멸망했어요? 그래놓고 히스기야가 삶이 바뀌지 않은 것입니다. 아모스처럼 똑같이 옛날로 돌아갔습니다. 므낫세는 더 했습니다. 신당도 제거하고 다 잘했는데 다시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원위치 되었습니다. 심지어 바벨론의 책사들이 왔을 때, 대신들이 왔을 때 내탕고를 보여주고 금고를 보여주고 국고를 보여주고 국력을 자랑하고 나의 힘으로 내 힘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나요? 120년 뒤에 너희는 멸망할 거야. 누구에게? 이 바벨론에게. 사실 더 끔찍합니다.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_잠언16:18, 고린도전서10:12, 빌립보서2:5-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_잠언16:18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_고린도전서10:12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정말 잘하고 잘 살기 위해서는 열매 맺기 위해서는 오늘을 잘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이냐? 성경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품으라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 품으라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의 어떤 마음인가요? 순종했던 마음, 십자가에 죽으신 마음, 사랑했던 마음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던 마음. 만약에 예수님이 하늘에게 나 너희들 다 사랑해, 너희 죄 내가 해결해줄 거야. 그런데 왜 내려가기가 싫냐. 가서 십자가 지는 것도 끔찍하다. 자존심이 있지. 나 안 내려갈래 하셨으면 우리 다 죽어야 합니다. 다 지옥가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 고난의 십자가를 통과하셨기 때문에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다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야 성숙해 질 수가 있습니다. 타이거 우즈가 이번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일전에 했던 인터뷰가 인상 깊었습니다. 자기는 어렸을 때 골프를 하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살려고 성공하려고 죽도록 연습했다고 합니다. 죽도록 연습했는데 자기 아들은 골프를 시키는데 아빠가 엄청난 재산가니까 그 열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한 가지 고민은 우리 아들이 최고의 좋은 삶을 살게 해주고 싶은데 그 열정을 어떻게 가르칠까라고 합니다. 일리 있습니다. 진짜 일리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_빌립보서2:5-11 

 

하나님과 본체이십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성경구절은 그 다음 구절입니다. 이거를 우리가 배우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_빌립보서2:12 

 

저희들에게 하시는 메시지입니다.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항상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_빌립보서2:13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 우리에게 씨앗, 우리 인생을 땅에 심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어떤 열매로 나올지 하나님은 아시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__빌립보서2:14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살라는 겁니다. 원망과 시비가 없는 삶이 어떻게 사는 삶이냐?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_빌립보서2:15  

 

흠 없는 자녀로 살라고 합니다. 거룩해지라는 겁니다. 방법이 뭐에요?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__빌립보서2:16  

 

왜 생명의 말씀을 밝히라고 이야기하냐면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않고 내 수고가 헛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날에 뭐가 있기 위해서? 자랑할 것이 있기 위해서. 우리가 알곡이 되어서 천국 곳간에 들어가려면 그 때 자랑할 수 있으려면 뭐해야 하나요? 우리의 수고, 열심이 헛되지 않으려면 생명의 말씀을 밝히라고 합니다. 여러분 주일에 교회 왔다갔다 30년 했는데 그게 헛되다고 생각해보세요. 엄청 후회스럽겠죠. 우리는 자녀들 잘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애들이 다 삐뚤어졌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부모가 허무할까요. 그게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뭐하라고요? 생명의 말씀을 밝히라고 합니다.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소원을 두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에게 소원을 두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성육신하는 소원을. 그런 것처럼 우리 각자에게도 각자의 인생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소회향, 대회향, 소맥, 대맥, 귀리인 것입니다. 타작할 때도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막대기로 타작하고 어떤 사람은 딱딱해서 수레바퀴로 타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 다릅니다. 우리 인생은 서로 다 다릅니다. 그래서 이 사람과 상대적인 평가로 내 신앙을 평가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신앙은 하나님 말씀 앞에 가야 합니다. 그런 신앙이 여러분 안에 회복되어야 교회라는 공동체는 세상 속에서 정말 힘 있는 정말 강력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그것을 회복하고 싶습니다. 회복해야 합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 순전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아닌가요? 우리 자녀들이 손주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코로나가 저에게 유익하다는 것은 다른 행사를 교회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안 해도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더 집중할 수 있고 오히려 더 기도를 집중할 수 있고 더 본질적인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십니다. 농부이기 때문에. 자기가 심은 씨앗이 뺏기지 않고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하십니다. 일반 농부가 아닙니다. 기묘자이기 때문에 지혜가 광대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냥 농부가 아닙니다. 우리를 매일 우리를 보호해주세요. 매일 우리를 사랑해주십니다. 매일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매일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되나요. 매일 그 은혜를 받아먹어야 합니다. 매일 그 보호하심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열매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은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을 살아보세요 미래가 어떻게 되어있나. 너무 미래에 대해서 큰 거창한 비전을 가지지 마세요. 오늘을 사세요. 성공한 사람들은 전부 오늘을 사는 분들입니다. 유대인들은 남과 비교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옷 입고 다니는 것을 보세요. 진짜 성공하신 분들은 남과 비교도 하지 않습니다. 왜? 자기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 남들이 옆에서 이번 수학문제가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이미 답을 다 알고 있습니다. 이미 예습 다 했거든요. 얼마나 확신이 있냐. 이미 교육을 다 받았습니다. 정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옆에 공부 못하는 친구들이 이게 맞데, 저게 맞데 하는데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왜요? 정답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 하는데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애굽과 동맹을 맺고 분별하지도 못합니다. 왜? 성경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제가 이 교육을 하고 있는 겁니다. 성경 읽으세요. 시간 내서 읽으세요. 그 시간도 사라지는 고난을 당하기 전에 시간 내서 성경 읽으세요. 정말입니다. 열 시간 일해서 십만 원 받으시는 분들 아홉 시간 일하고 성경 한 시간 읽으세요. 구 만원으로 먹고 살 수 있잖아요. 아니면 진짜 십 만원이 필요하시나요? 그럼 새벽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세요. 저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빠, 남편, 목사의 일도 최선을 다해야 하기에 성경 언제 읽나요? 잠을 줄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희열, 말씀을 열었을 때 그 기쁨이 모든 힘의 원천이 됩니다. 저는 가스펠교회 성도님들이 다 알곡이 되어서 천국의 곳간에 들어가기를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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