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21-03-21 주일예배

2021-03-21 주일예배.hwp
0.31MB

2021년 03월 21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2부예배)

제 목

마음이 가난한 자들의 기쁨

본 문

이사야 29:15-24

 

 오승주 목사

 

Ⅰ.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 진저_이사야29:15

 

오늘 본문에 보면 지난주에 연결해서 말씀을 살펴보셔야 하겠지만 1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 진저‘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긴다. 이 말은 꽁꽁 싸매서 하나님께 자기의 계획을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런 자가 화가 있을 것이라고 시작을 합니다. 자기의 계획을 하나님께 숨길 수 있나요? 성경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언제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숨기려고 했나요? 제일 먼저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을 피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했고 하나님을 만나기를 거부했고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런 것처럼 오늘 본문에서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한다고 합니다.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_이사야29:16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하면서 토기장이 비유를 드십니다. 인간이 만든 수건이 인간보고 너는 똑똑하지도 않고 나는 너 없이 스스로 생겼어 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인가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을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패역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거나 자식이 부모를 어떻게 하는 것을 패륜아라고 하는 것처럼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지금 무엇이라고 하나요? 나 하나님 없이 스스로 생겼어. 그리고 당신은 총명하지 않아. 우리끼리 잘 할 수 있어. 우리끼리 지킬 수 있고 우리끼리 성공할 수 있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요즘 같이 은밀한 일들이 많을 때 죄는 우리를 은밀한 곳으로 자꾸 안내를 합니다. 죄가 주는 특징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은밀하게, 남들이 보지 않게. 남들이 안보면 괜찮은 것이 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 삶과 보이는 삶이 거의 비슷할 때.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삶과 보이는 삶이 거의 같은 사람을 우리는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게 훌륭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말도 그렇습니다. 좋은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삶은 아무나 살 수 없습니다. 말처럼 쉽게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대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 보이는 곳에서나 하나님께 대하여서 한결 같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역설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보이는 삶이 가난하고 보이는 삶이 죄악 투성이고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고백이 보이는 삶과 똑같은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시지 바리새인처럼 겉으로는 굉장히 훌륭한 것처럼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굉장히 기도 많이 하는 것처럼 구제를 많이 하고 헌금도 많이 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들을 악독,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위험한 적이 있는데 위험한 순간이 있는데 바로 신앙의 고착화입니다. 고착하다는 것은 고여서 굳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고착화라고 합니다. 여러분, 물도 흘러가는 물이 썩지 않지 고여 있는 물은. 그냥 고여 있어서 썩지 않습니다. 새로운 물이 공급되지 않으면 죽습니다. 다 썩습니다. 신앙도 고여서 굳어버린 것입니다. 신앙의 고착화라고 그러는데 신앙의 고착화를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가 그 신앙 고착화의 현상을 몇 가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중에 두 가지가 너무 와 닿았습니다. 하나는 목회자들이나 교회가 목적성 메시지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고착화되었을 때부터 교회가 타락하는데 타락한 현상 중 하나가 목적성 메시지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적성 메시지 처음 들어보시죠? 그런데 목적이 어떻게 없을 수 있나요? 교회는 비전이 있어야 하고 꿈이 있어야 하고 소망이 있어야 하고 우리 인생에는 목적이라는 것이 다 있어야 합니다. 집도 사야하고 돈을 모아서 자녀도 키워야 하고. 목적이라는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변질되어 고착한 교회, 어떤 두드러진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목적성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권사님이 너무 신이 나서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오늘 일곱 명에게 복음을 전해서 일곱 명이 다 영접시켰습니다. 라고 문자가 왔습니다. 기쁜 일이기는 한데 생뚱맞게 저에게 문자를 하셨는데 제가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구구절절 하나님께서 특별한 날이고, 특별한 역사라고 써 놓으신 것입니다. 제가 그 문자를 보면서 속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 일곱 명을 영접하지 않는 날은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힘이 빠지는 일일까. 그러니까 그것이 목적성 메시지의 폐해 중 한 가지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서 사는 것이지 결과는 하나님 손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잘못 되었나요? 어떤 교회는 성전 건축을 멋지게 해놓고 벽에 일 억 이상 헌금한 명단을 액자 같은 것을 만들어서 걸어놓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되나요? 일 억이 무엇인가요? 만 원, 오만 원, 십만 원 헌금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안 받으셨나요? 귀하지 않은가요? 교회가 자꾸 그런 목적성 메시지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도 죽고 일 억 헌금한 사람도 죽는 것입니다. 신앙은 끝나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것이 아니면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이해하시잖아요. 그런 현상들이 있잖아요. 그것 아니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아니면 내 평범한 일상, 내가 직장에서 가정에서 성경을 한 장 읽고 은혜가 받는 순간 그 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아름다운 신앙은 없는 것입니다. 그 감동은 없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신앙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성경 3독을 했는데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낙심되어 이제 성경 안 읽으래요. 라고 왔습니다. 다 목적성 메시지의 폐해입니다. 3독해서 변화될 것 같으면 저는 30독이라고 하겠습니다. 30독정도 저는 했는데도 변화가 하나도 안 되는데 여전히 죄인이고 여전히 발버둥 쳐서 주님 붙잡고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뭐죠? 성경을 읽으면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 고착화된 타락한 목회자들의 설교라고 어떤 신학자가 책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살아있지 않고 죽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오늘 현재 나에게 두렵고 떨림의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의 특징은 내가 옛날에는 말이야. 라고 하면서 시작을 합니다. 신앙이 고착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이런 분들도 계십니다. 내가 30년 동안이나 교회에서 헌신하고 봉사했는데 목사님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요? 나보고 무슨 회개를 하라고 그러세요? 이러면서 시험 들어 교회를 떠나신 분들도 있습니다. 신앙이 고착화된 분들의 특징입니다. 회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 번째 특징은 자기의 의와 선을 드러냅니다. 그 신학자가 정확히 표현했습니다. 가짜복음의 특징은 자기의 의와 선을 드러내는 것이고 복음의 특징은 자기의 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맞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자기의 선과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선과 의를 드러내기 시작하면 십자가가 필요 없어집니다. 예수님 필요 없어집니다. 그래서 자꾸 내가 옛날에는 말이야. 내가 얼마나 이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했는데. 목사님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개척해서 내가 기도해서 내가 목회해서 세운 교회인데 너희들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라고 은퇴할 때 퇴직금 많이 안 주신다고. 이런 목사님도 있습니다. 다 신앙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버린 신앙이 밖으로 볼 때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활발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리새인들입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되어 죽어있지만 자기들끼리의 전통과 관습과 어떤 프로그램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도 많이 하고 십일조도 더 잘하고 구제도 더 많이 하고. 그 분들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제가 오는 길에 제가 거지에게 동전 한 닢도 주었고 오늘 십일조도 주었고. 이것이 유대인들의 기도입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도 읽었고 암송했고 이것이 유대인들의 기도입니다. 그러니 축복해 주옵소서 입니다. 이것이 목적성 메시지입니다.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신앙은 자기의 의와 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죄를 드러냅니다. 여러분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볼 때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셔서 벌레 같은 우리를 티끌 같은 우리를 구원해주셔서 하나님 자녀 삼아주셔서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움을 받은 것이지, 인간인 우리의 편에서 볼 때는 늘 죄인인 것입니다. 그런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을 보세요. 사도바울이 죄를 지었을까요? 안 지었을까요? 죄 지을 일도 없습니다. 유대인으로도 완벽한 사람이었고 예수를 믿고 나서는 교회를 세우고 전도한다고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죄를 지을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라고 하나요? 그 많은 교회를 세우고도 기도할 때 무엇이라고 하나요?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합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떠나지 않도록 나는 그것을 굳게 붙잡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의와 선을 계속 드러냅니다. 보세요 제가 그 동안 사역을 이렇게 해서.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남유다 예루살렘의 성에서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게 숨기려 한 자들은 화가 있다. 하나님께 깨끗하지 못한 계획들은 사람에게도 깨끗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정말 투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뒤에 숨어서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면서. 교회는 그런 것이 없어야 합니다. 장로님들, 교역자들 모여서 중요한 회의를 한다고. 중요한 회의가 어디에 있나요? 그런 것 없습니다. 저희 교역자들 모이면 매일 먹고 우리도 회개하고 은혜 받은 것 나누고 그러지 중요한 것 없습니다. 별 볼일 없습니다. 은밀하게 중요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비밀스러운. 그러니까 이것이 타락의 징조라는 것입니다. 숨기고 포장하고 거기에는 은혜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찾지 않으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Ⅱ. 마음이 가난한 자들의 기쁨

 

- 누가 메시야를 거절했나?_이사야29:15-16, 20-21, 마태복음12:1-21, 34-37

 

15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16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_이사야29:15-16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마음에 교만과 오만이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죄가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이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메시야를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지옥 가운데서 억만 죄악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 주시려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십자가의 계획을 가지고 구약을 이끌어 가시는데 그 메시야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언제 올지 알고 당장 먹고 살아야 하고 당장 성공해야 하고 당장 번영해야 하는데. 그러니까 메시야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뭐가 없죠? 회개가 없습니다. 회개 없는 신앙은 위험한 신앙입니다. 회개 없는 신앙은 우리를 죽음으로 내몹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개를 주셨는데 죄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어둠의 세력들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서 회개를 주셨는데 그 회개가 사라져 버리고 교회에서 더 이상 죄에 대해서 설교 하지 않고 회개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습니다. 번영신학의 영향으로 성공해야 하고 축복받아야 하고 잘 되어야 되는 것만 설교하지 죄에 대해서 더 이상 목회자들이 설교하지 않습니다. 그런 교회를 성도들이 선호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무엇을 거절하나요? 여러분 내가 죄가 깨달아지지 않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필요하겠어요? 율법으로 인해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예수님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날마다 그 보혈의 은혜 십자가 그늘이 필요한데 내 죄가 안 깨달아지니까 나는 의인이고 나는 선하고 나는 선한 일을 너무 많이 했는데 예수님이 왜 필요하겠냐는 것입니다. 회개가 없이 예수님이 있을 수가 없고 회개가 없이 구원의 기쁨, 죄 사함의 감사함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인의 기쁨과 기독교인의 감사함 들은 회개의 기쁨, 죄 사함의 감사함이 아니라 다들 뭐에요? 기도했더니 성경 읽었더니 내가 교회를 열심히 다녔더니 이런 문제가 해결되었네. 승진이 되었네. 가정문제가 풀렸네. 이런 현상적인 감사함 들입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남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보다 인간이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지었던 죄입니다. 마귀가 준 생각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거야. 하나님 필요 없어. 너 스스로 하나님이 되면 돼. 이것이 인류의 죄 역사입니다. 교만한 것입니다. 우월감. 그런데 여러분, 수건이 우월해 봤자 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우월해 봤자 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보지 못하고 거절한 셈입니다. 이 내용이 마태복음에 연결이 됩니다. 남유다 예루살렘의 성 사람들이 그들이 후손 예수님의 시대까지 연결이 됩니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9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16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_마태복음12:1-21

 

성전보다 크다고 해서 바리새인들이 열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니까 바리새인들이 완전히 폭발했습니다. 오늘 이사야 본문에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송사로 사람에게 죄를 씌우며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를 올무로 잡듯 하며 헛된 일로 의인을 억울하게 하느니라_이사야29:21

 

이사야 오늘 말씀의 상태가 지금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의 상태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누가 만드셨죠? 하나님이십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행하던 일을 가지고. 지금 똑같은 것입니다. 피조물이 자기가 그릇으로 빚은 사람이 빚은 자를 지금 네가 총명해? 내 역사를 알아?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그릇들끼리 모여서 의논해서 자기들을 창조한 인간을 모함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딱 그런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 화가 났을까요? 자기들이 만든 전통을 허물었다고 자기들이 만든 관습을 허물었다고 그것을 철저히 지켜서 복을 받아야 하는데 자기들이 백성들을 군림해야 하는데 얼마나 악한 줄 아시나요? 이사야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배불렀습니다. 그러나 주변 상황은 백성들은 암흑기였습니다. 예수님 시대도 똑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배가 불렀습니다. 정치적으로 로마와 타협했습니다. 권력에 아부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깜깜했습니다. 전염병이 돌고 심지어 헤롯 왕이 아이들을 죽일 때에 저항도 못했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까? 그런 상태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남유다의 후손들이 여전히 변함없는 상태.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죽였습니다.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_마태복음12:34-37 

 

무슨 말인가요? 너희 속에 악이 쌓여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  사람이 선한 것이 쌓여있으면 선한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악한 말을 하려고 해도 안 나옵니다. 저는 요즘 욕이 안 나옵니다. 바뀌었습니다. 내 속에 악이 가득하면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해도 악하게 살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용이 악인데 선한 척하고 사는 것입니다. 진짜 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하니. 너희가 하는 말들이 다 사람을 살리는 말이 아니라 죽이는 말이다 라는 말입니다. 신앙이 고착화가 되면 무서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예배의 주인이신데 예수님이 이 예배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예수님이 어떻게 하면 영광을 받으실 것인지 이곳에 오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예수님으로 인해서 은혜를 받은 것인지가 중요한데 가스펠교회 오승주 목사가 개척했으니까 내가 만든 전통 누가 조금이라도 어기면 화나고 분노하고 이것이 죽은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이 가스펠 교회의 주인은 제가 아닙니다. 장로님들도 아닙니다. 법적으로는 성도들이 공동의회가 주인이지만 예수님이 주인이 아닌가요? 신앙이 고착화가 되면 그렇게 위험한 것입니다. 은혜를 못 받으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면 그렇게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메시야를 거부한 사람들은 이런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누가 영접했나요?

 

-메시야를 영접한 이방인들과 죄인들_이사야29:17-19, 마태복음11:5-6

 

17 오래지 아니하여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지 아니하겠으며 기름진 밭이 숲으로 여겨지지 아니하겠느냐 18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19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_이사야29:17-19 

 

레바논이 어떤 지역입니까? 18절에 레바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가 메시야를 받아드렸죠? 맹인이, 가난한 자가, 겸손한 자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이것이 예수님 시대에 와서 그대로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다 이런 사람들만 찾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로 말하면 지금은 영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해석하면 우리의 마음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음 상태가 맹인인 것을 깨닫고 가난한 것을 깨닫고 우리의 마음이 죄로 인해 연약하고 보지 못한 사실을 깨닫고. 그런 연약한 레바논. 레바논은 이방 땅을 상징합니다. 앗수르, 바벨론. 남유다 북이스라엘은 예수님을 거부하지만 오히려 앗수르, 레바논, 애굽, 구스는 예수님을 받아드립니다. 이것이 신약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은 거절하고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이방 땅이 다 들고 일어났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말씀을 설명하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_마태복음11:5-6 

 

예수님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 동안 주로 이사야서의 예언 말씀대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찾아갔습니다. 누가 그들을 배척했나요? 바리새인들이 그들을 배척했습니다.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러운 사람들이라고. 진짜 더러운 것이 너희들이라고 예수님이 말했습니다. 너네들이 독사의 자식들이야, 이 사람들보다 너네들의 마음이 더 더럽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방인들, 오늘날 말하면 죄인들입니다. 죄인들에게 베푸실 은혜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심지를 끄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실족이 이런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다들 실족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딜을 했습니다. 우리 유대인의 왕이 되어줘. 우리의 지도자가 되어줘. 당신 정도의 능력이면 죽은 자를 살리고 오병이어를 일으키고 많은 군중들을 이끌 수 있는 힘 있는 사람이라면 유대인의 왕이 될 수 있고 이 로마로부터 독립하고 강력한 나라를 이루자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딜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마무시한 일을 하러 오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지옥 가는 인생, 죄악에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인생을 건져 주시려고 십자가 성육신 사건을 이루시려고 이 땅에 오셨는데 바리새인들은 정치적으로 왕이 되어 달라고 예수님의 능력을 그 일에 쓰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자꾸 자기가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마리아에 가고 앉은뱅이와 어울리고 죄인들과 같이 밥 먹고 죄를 해결해주고 하니 바리새인들이 분노가. 신앙이 고착화된 사람들의 특징. 화가 납니다. 내 것을 침범하면 화가 납니다. 회개하라고 목사님과 말씀이 안 맞으면 기분 나쁘고. 그러나 누가 이 기쁨을 얻습니까? 성령이 임재하시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희열과 감사와 감격은 누가 얻을 수 있죠?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얻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구속으로 부끄럽지 않고 창백하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 마음이 가난한 자들의 기쁨_이사야29:22-24, 요한계시록5:4-5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23 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24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_이사야29:22-24 

 

여기에서 야곱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이 얼마나 자존심이 센 사람인지 여러분은 아시죠? 야곱은 겉치레가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돈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고 여자도 좋아하고 야곱은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자존심이 엄청 센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씨름까지 했습니다. 신앙을 그런 식으로 한 것입니다. 그런 야곱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어떻게 변했나요? 완전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진짜 마음이 가난해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너희가 평생 겪어보지 못한 기쁨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_요한계시록5:4-5 

 

이 성경책을 펴고 보고 말씀을 여는 사람이 없어서 슬퍼했는데 성경을 열겠다는 것입니다. 누가요?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다윗의 뿌리가 이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아무나 다 읽을 수 있습니다. 박사도 읽을 수 있고 교수도 읽을 수 있고 동네 아저씨도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내 안에 은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 그래서 여러분 신학을 복잡하게 한다고 해서 개념 정리를 잘 한다고 해서 은혜 받지는 않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어려운 메시지를 깨닫는다고 해서 은혜가 깊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저의 어머니는 한글도 모르셨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만 지으셨습니다. 아들이 가끔 가서 성경 읽어주면 그렇게 눈물 흘릴 일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엄마, 돈 밖에 모르잖아? 제가 그랬습니다. 평생 자식들 키워야 하니 일요일도 남의 집 품팔이 하러가시던 분이 돈돈 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자식들 키워야 하니까. 그런데 그런 분이 그 먼 교회를 예배를 가셨습니다. 새벽기도를 가시고 주일예배를 가셨습니다. 신학을 알아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똑똑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에 은혜가 되니까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받으면 사랑하게 되고 삶이 변화되고 죄와 싸우게 되고 좋은 사람, 선한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두루마리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일곱 인을 떼신대요. 완전히 열어주시겠대요. 일곱은 완전 숫자니까. 은혜를 받으면 보이는 것이 성경이고 들리는 것이 말씀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얼마나 지겹습니까? 하루에 성경 3장 읽는 것이 고역일 것입니다. 은혜 받는 사람은 3장이 짧을 것입니다. 힘든 시간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엄청난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저희 교회 비전이 딱 하나 있습니다.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저희 교역자와 장로님과 모이면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특별한 목적이 하나 있는데 이 성전에 이 예배에 은혜가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생각해보세요. 우리끼리 예배당 시설 잘 갖추고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숫자도 많이 늘어나고 교회 부흥 된다. 신난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를 안 주세요. 하나님이 이 교회를 떠나셨습니다. 촛대를 옮기셨습니다. 끔찍합니다. 그것이 제일 두렵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상상해 보세요. 그래서 제가 늘 기도하고 소망하는 것은 교회만 오면 엎드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은혜가 소멸되지 않도록 성전제단에서 생명의 생수가 흘러나와야 하는데 이 곳에 오는 모든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을 흠모하고 사모하고 사는 것이 그것이 교회의 역할인데 그것이 끊어지지 않도록. 그러려면 설교하고 목회하는 목사는 어떻게 해야 돼요? 그 은혜가 끊어지면 저는 끝입니다. 진짜 은혜 받은 사람은 과거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제가 가끔 간증은 하지만 과거가 저한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교회를 어떻게 개척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런 부흥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잡하고 은밀하게 회의하고 계획 세우고 목적 세워서 누군가를 비난하고 정죄하고 패 가르고 헌금 걷어서 성전건축하려고 악한 계획들을 세우는. 그러면서 뒤에서는 너무 가슴 아프게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이 같지 않아서 생기는 수많은 사건들, 부패함들. 목사로써 부끄럽고 제 모습도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에 얼마나 회개를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바꿔야 합니다. 제가 진짜 한 동안 사역을 진짜 열심히 할 때가 있었습니다. 해외를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가 50만이 넘습니다. 호주, 캐나다, 미국. 30대 초중반 목사가 해외집회에 강의하려 다니면 사람이 얼마나 교만하겠어요. 그 때에는 교만한지도 몰랐습니다. 겸손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여러분 이상하죠? 그렇게 큰 사역들을 하고 나면 제 마음에 죄가 있는데 무슨 생각이 드냐면 이 정도의 죄는 괜찮겠지. 또 이런 것도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개척교회니까 얼마나 사역이 바쁩니까. 녹초가 되어서 집에 갑니다. 집에 들어가면 와이프는 하루 종일 애보고 하루 종일 살림하고 남편이 오면 대화도 하고 싶고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전 집에 가면 짜증부터 냅니다. 무슨 말이에요? 내 선, 내 의가 드러나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밖에서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이런 것을 알아주라는 식으로 화내고 짜증내는 것입니다. 나 피곤해. 좋은 사람이 아니죠.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이 가짜복음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면 그런 태도 그런 말들이 나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모든 사역을 다 줄였습니다. 왜? 제가 죽겠고 내 가족이 죽는 것입니다.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옳지 않습니다. 지금은 집에 가면 설거지부터 하고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Ⅲ. 우리가 살아야 할 신앙인의 삶

 

- 심령이 가난한 자_마태복음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_마태복음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어떤 자인가요? 내 마음 영혼이 가난한 자입니다. 가진 게 없는 비어있는. 그런데 왜 가진 게 없고 비어 있어야 하나요? 그래야 예수님이 우리 속에 오시니까.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_요한계시록3:19-20

 

요한계시록3:19. 제가 설교 한 번했습니다. 회개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3:20에 회개가 무엇이라고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새신자들 영접시키기 위해서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메시지입니다. 회개가 무엇이냐? 옛날 옛날에 지었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지 않습니다. 메시야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교만하니까. 내 선을 드러내고 내 의를 드러내는 목적성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실 수가 없습니다.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쁘고 내가 열심히 헌금하고 기도했는데 바리새인들처럼. 기분이 나쁩니다. 내가 30년 동안이나 이 교회에 봉사했는데 이런 말이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셔야 하는데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느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며. 예수님을 모셔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마음에 선이 쌓여야 선한 말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음의 선이 무엇인가요? 우리의 유일한 선이 무엇인가요? 예수 그리스도 말고 선은 없습니다. 어쩔 때에는 저 정치인들이 깨끗한 것 같고 선거 운동하면 저 정치인이 멋있어 보이고 젠틀해 보이고 밀어줬는데 대통령 하는 것 보면 끔찍하고 그렇잖아요. 속지 마세요. 선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 변화시켜주실 분, 우리에게 빛 비춰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는데 그 예수님을 모셔야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좋은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좋은 사람은 내 속사람에 선을 쌓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 좋은 가족, 좋은 교회_마태복음5:4-9, 13-16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_마태복음5:4-9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_마태복음5:13-16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신앙. 그런 교회, 그런 목회자, 그런 성도. 그러려면 우리 마음에 쌓아야 하는 선이 애통, 온유, 의, 긍휼, 청결, 화평. 다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사람, 좋은 가족, 좋은 교회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속습니다. 남의 눈에 좋아 보이는 삶을 살려고 하고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고 제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계도 몇 개나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사람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심리가 있냐면 제가 당장 오늘 저 사람들이 나를 떠날까봐 두려운 심리도 있습니다. 제가 미래를 바라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 만나는데 몸 쓰고 시간 쓰고 돈 쓰고. 세상 사람들과 술 마시고 좋지 않은 문화들로 건강이 악화되고. 그래서 나중에 내 분야에서 성실하게 세워져 있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다 떠나버립니다. 지금은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어울리지만 너 밖에 없어 이러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영적으로 죽어있는 존재가 되면 그 사람은 내가 쓸모가 없으면 다 떠납니다. 신앙인일수록 자기 분야에 자기 삶에 성실하게 성공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내 스스로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삶이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문화가 아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을 가꾸고 준비해서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실과 겸손을 음식 삼아서 사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보든지 보지 않던지 그 삶이 똑같아야 합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깨끗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연약한데 어떻게 해요? 하나님 앞에 그 연약함이 그대로 드러나야 합니다. 성실은 보이지 않을 때 성실해야 합니다. 겸손은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삶의 자세입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그렇게 여러분이 영적으로 세워져 있어야 내 가족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교회와 자손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닌가요? 제가 지금 제 아들 한빈이에게 한빈이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 지금은 아빠를 좋아하겠지만 커서는 원망할 것입니다. 그 때 왜 공부 안 시켜줬어? 왜 안 가르쳐줬어? 원망 할 것입니다.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너무 한국 기독교인들이 구분이 없습니다. 구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_마태복음5:10-12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_마태복음5:10-12

 

어떤 목적을 성경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는지 보세요.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천국이 너희의 것임이라.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교회의 목적, 신앙인의 목적은 이것 말고는 없어야 합니다. 이 천국을 소유하고 하늘에서 받을 상금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지키고 험한 세상에서 고난이 가득한 세상에서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이 신앙을 지켜서 천성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목적은 무엇인가요? 천국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머지를 다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악착같이 율법 지켜서 최고의 율법학교를 졸업했고 최고의 실력을 갖춘 유대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다 버렸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 있습니다. 옛날부터 내가 해 왔던 것들, 저도 그런 심정이 있습니다. 내가 이 교회를 개척했는데 말이야. 나를 인정 안 해주고.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두렵습니다. 하나님이 떠날까봐. 예수님이 떠날까봐. 촛대가 옮겨 질까봐.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주인이기를 원하고, 그 분을 늘 마음에 모시고 그 분 앞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좋은 가족, 좋은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주는 목적이 있는데 변치 않는 목적이 있는데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 말고는 우리가 소망 삼을 것이 없습니다.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니라. 그래서 신앙이 식을 수가 없습니다. 천국을 소망하고 하늘의 상금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신앙이 고착화되거나 변질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주인이 되고 친구가 되어서.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냐? 우리의 마음이 심령이 늘 가난해야 합니다. 가난해야 예수님을 찾습니다. 늘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늘 회개해야 합니다. 매일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늘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늘 예수님을 가까이하고. 내가 주님 안에. 그 기쁨이 엄청납니다. 회개의 기쁨, 하나님이 회개 하는 자에게 주시는 기쁨, 죄 사함의 기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신앙인의 엄청난 힘입니다. 교회가 그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엄청난 목적을 내걸고 목회를 하고 있지만 그 삶의 기쁨들,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 한 장 읽고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는 기쁨을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성도들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간증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내가 마치 큰 목적들을 이루지 않으면 실패한 것 같은 신앙생활을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마치 이것을 이루면 내가 대단해. 내가 어떻게 저것을 이루었을까. 나에게 이런 응답이 오다니. 하나님은 원치 않으시더라고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당신을 의지하기를 원하시고 당신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십자가의 그 보혈의 은혜로 천국을 소유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일하게 원하시는 것이 메시야를 받아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하고 오만해서 메시야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4-04 주일예배  (0) 2021.04.04
2021-03-28 주일예배  (0) 2021.03.28
2021-03-14 주일예배  (0) 2021.03.14
2021-03-07 주일예배  (0) 2021.03.07
2021-02-28 주일예배  (0) 2021.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