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3월 28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2부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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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내 마음 속에는 아직 은혜가 있어요 |
본 문 |
이사야 30:1-17 |
오승주 목사
Ⅰ. 은혜 받고 있다? (신앙생활의 오해들)
오늘 본문은 앗수르의 위협에서 피해서 신흥강국인 애굽과 동맹을 맺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일대일 동맹이 아니라 오늘 본문에 보니까 엄청난 재물을 애굽에 바치고 애굽의 보호를 받는 상황입니다.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조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남유다가 애굽과 연합전선을 펴는 장면입니다. 애굽은 이제 막 신생하는 강대국이었는데 이제 앗수르에 대항할 만큼 커진 강대국이었는데 북이스라엘을 앗수르가 쳤을 때 그런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애굽에게 많은 재물을 보내서 우리를 지켜달라고 합니다. 오늘 보니까 애굽의 그늘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지켜 달라.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들에 오해들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 교회 다닌다, 예수님 믿는다. 사실 세상에도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고 감사한 것이 진짜 많습니다. 우리가 지금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호흡하고 있는 것. 우리가 크고 작은 위험과 어떤 유혹으로부터 잘 살고 견디고 있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감사한 내용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건강이라든지, 우리가 이렇게 예배하는 거라든지 다 주의 도우심입니다. 그런데 사실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 보면 뭐든지 어떤 열매나 결과를 얻으려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이나 젊은이들의 문화를 보니까 청소년 직업군 조사해보니까 옛날에는 의사, 변호사, 판사가 최고의 직업군이었는데 한동안은 유튜버로 바뀌었습니다. 쉽게 돈 벌 수 있는 것. 요즘은 그런 것도 있다고 합니다. 주식 하는 사람. 초등학생이 어떻게 하나 싶은데. 그런 것처럼 다들 어떤 이미지가 있냐면 남들은, 저 사람은 쉽게 돈을 번다는 이미지가 있고 그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 그런데 여러분 아시다시피 세상에 쉽게 돈 버는 직업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볼 때 금수저야, 엄청난 배경이 있어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회장, 사장님이니까 얼마나 부러울까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과정은 혹독했다는 것. 그것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요즘은 눈에 드러나는 언론, SNS, 화려한 삶들을 보고 그것을 동경하는데 사실은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얼마나 고된 과정들을 거치는지 요즘 젊고 어린 친구들이 잘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진짜 안타까운 것은 그런 문화가 교회로 들어옵니다. 심지어 밖에 믿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과 과정들 그리고 그 과정들에 대한 결과들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교회 와서는 신앙생활을 무슨 이상하게 교회만 오면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건강하려면 운동이라도 꾸준히 해야 됩니다. 상식 아닙니까? 그런데 교회 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밖에서는 우리가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하면 열심히 공부를 해야 됩니다. 좋은 직장에 가려면 남들보다 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만 오면 교회는 그런 것과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냥 하늘에서 은혜를 부어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 예배 갔다 오고, 헌금 좀 하고 그러면 갑자기 하나님이 내 삶에 기적을 베풀어 주실 거 같은 허망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가 없죠?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는데 아무런 내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잘 모릅니다. 요즘 청년들이 교회를 왜 다녀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안타까워요. 여러분 그게 교회 안에도 들어온 것입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이런 둘 중의 하나의 삶을 삽니다. 어떻게 하면 자기를 미워하면서 살까? 그게 세상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빛나고 내 인생을 더 포장하고 더 똑같은 세상의 자랑을 나도 할 수 있을까? 이게 기본인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삶에서 영혼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는 삶이 크리스천의 삶인데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영혼을 살려낼까? 세상 자랑하지 않고 주님 자랑하고 자기 체면을 살리는 것보다 한 영혼 살리는 중요한 삶을 살아가는 그 사람이 천국 문 앞에 갔을 때 주님께 칭찬을 받습니다. 잘했다, 나의 사랑하는 종아. 네가 착하고 충성되었구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가 있습니까? 그런데 신앙생활이 얼마나 많이 오해됐냐면 신앙생활은 세상의 이치들과 좀 다르다는 오해를 하는데 세상의 이치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신앙생활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오늘은 고난주일입니다. 이번 주가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뭐가 있죠? 부활이 있습니다. 고난 없는 죽음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죽지 않았는데 어떻게 부활해요?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너무 오해합니다. 율법 없는 복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깜짝 놀랍니다. 한국 신학이 큰일 났다 싶은 것이 어떤 목사님은 구약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신약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약을 가지고 구원 받을 수 있겠지.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복음 있는데 왜 율법을 강조하냐고 합니다. 여러분 율법이 아니고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율법으로 내 죄가 드러나야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건데. 다윗이 왜 율법을 즐거워했고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이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셨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이상하게 교회만 오면 이런 준비과정, 아주 상식적인 부분들을 다 놓쳐버리고 그냥 나 교회 다녀, 하나님 축복하시겠지, 하나님 응답하시겠지, 뭐 교회 잘 다녔으니까 천국 가겠지 다 이런 식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흥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흥은 가정이 다 예수님을 믿고 내 마음이 하나님 은혜로 충만해지는 부흥을 이야기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고. 그런데 이런 부흥도 준비가 없으면 하나님이 주시지 않습니다. 준비 없는 부흥은 없습니다. 칼빈의 예정론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구원하실 자에게 하나님을 찾는 선제적인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교회도 가고 싶고 어느 날 예수 믿는 사람에게 나 예수님 믿고 싶다고 말도 하고 싶고 성경도 읽고 싶고 이런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니까.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부흥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에 준비 없는 결과는 없는 것입니다. 예배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부흥을 맛볼 수 있겠어요? 저는 그런 것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어떤 젊은 부부가 저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우리 가정이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형제들도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너무 가슴이 아프고 엄마 아빠가 진짜 예수님 믿고 복음이 가정화 될 수 있도록 목사님 기도 해주세요 하며 우리 눈물을 글썽글썽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 기도를 해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이 분은 예배를 오지 않습니다. 벚꽃 피면 벚꽃 핀다고 안 오고 유채꽃 피면 유채꽃 핀다고 안 오고 무슨 1년 내내 꽃이 그렇게 많이 피는지. 꽃구경 가느라고 예배를 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가정복음화가 자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인데 자기는 준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목사님 기도해주시면 가정 복음화 되겠지 이런 식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허망한 신앙생활을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생활의 오해들을 너무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세상의 그런 가치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 잘 준비해야 되고 더 과정이 중요해야 됩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너무 많이 놓치고 사는 것입니다. 운동선수, 농부, 뭐든 세상의 그 어떤 것이든 과정에 따른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신앙생활은 그렇지 않을까요?
Ⅱ. 패역한 자식들(히.사라르 : 고집 센)
- 애굽의 그늘_이사야30:1-7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2.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3.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4. 그 고관들이 소안에 있고 그 사신들이 하네스에 이르렀으나 5.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민족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 6. 네겝 짐승들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들의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들의 보물을 낙타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7.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_이사야30:1-7
패역한 자식들은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남유다의 이스라엘을 이야기합니다. 패역은 히브리어로 사라르입니다. 사라르가 무슨 뜻이냐면 고집 센 이라는 뜻입니다. 패역이라는 단어의 뜻이 고집 센 이라는 뜻입니다. 남유다가 고집이 너무 센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냐면 남유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뜻대로 살아야 되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야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고집대로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기 고집대로 살았던 이스라엘.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앗수르가 쳐들어올 것 같으니까 공격할 거 같으니까 애굽과 동맹을 맺으면 애굽에 재물을 바치고 애굽이 우리를 보호해주면 우리는 안전할 것이라고 자기들끼리 회의를 한 것입니다. 애굽이 좋다고 애굽으로 갈 거라고 애굽에게 돈 주고 도와달라고 그러면 앗수르 이길 수 있어 라고 고집 센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떼쓰듯이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애굽 갈 거야. 왜냐하면 이미 애굽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앗수르에 맞설 수 있을 만큼 신흥강국 애굽이 커진 상태이기 때문에 애굽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애굽의 정치와 경제에 영향을 받아서 애굽이 너무 좋았습니다. 어린아이가 떼쓰듯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그늘로 가면 좋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그 애굽에 너희가 애써서 힘써서 어린 낙타 등에 재물을 들고 뱀이 나오고 전갈이 나오고 독사가 나오는 길을 가서 그 재물을 그들에게 바쳤지만 그들은 무슨 민족이라? 무익한 민족이라. 너희에게. 오히려 너희에게 도움이 헛되고 무익할 뿐만 아니라 그 애굽은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고 하였습니다. 라합은 성경에서 세 번 나옵니다. 기생 라합, 그리고 욥기에서도 라합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도 라합이 나옵니다. 라합이라는 뜻은 리워야단과 비슷한 뜻입니다. 악한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애굽을 그런 라합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세상으로 가면 그 세상이 우리를 보호해주고 지켜줄 줄 아는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더 수치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그것을 이야기하는데 남유다는 어린아이처럼 떼쓰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자살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인들이 공약을 내걸고 이런 저런 공약들을 내 거는데 정치인들 다 다시 뽑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어른들이 해야 될 일은 어린 자녀들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금요일에 충격적인 기사를 봤습니다.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가 현직교사인데 주말부부입니다. 자녀들 교육 때문에 엄마랑 아이 둘은 한 도시에 살고 있고 아빠는 지방에서 교사를 하는 것입니다. 교사가 끝나면 주말이니까 집에 옵니다. 누나가 있는데 공부를 좀 잘하는 것 같고 중학생 남자 동생은 정황상 공부를 잘 못한 것 같습니다. 아빠가 집에 오면서 뭐에 충격을 받았는지 기분이 나쁜지 갑자기 가족회의를 소집해놨습니다. 내가 오늘 갈 건데 갈 때까지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 우리 가족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 그런 문자를 보낸 것입니다. 갑자기 아빠가 행복이라는 주제로 회의를 소집합니다.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 아빠가 오랜만에 왔으면 통닭도 사주고 잘 지냈냐고 해야 하는데 뜬금없이 행복이라는 주제로 가족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모여서 회의를 하는 것입니다. 너는 뭐라고 생각해? 결론이 뭔 줄 아세요? 둘째가 공부를 못하니까 애초부터 둘째가 타겟이었습니다. 나름 머리를 쓴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너만 공부 잘 하면 우리가족이 다 행복할거야. 이 중학생이 나만 사라지면 우리 가족이 행복할 것 같겠네 하고 회의 도중에 바로 뛰어내렸습니다.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즉사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너무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을 정말 믿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겠죠? 또 보니까 기독교 집안이니 어쩌니. 저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아마 추측하건데 그 아빠가 학교 선생님인데 다른 집 자식들은 과외도 안하고 학원도 안 보냈는데 공부 몇 등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현직교사인데 교사인 내 아들이 공부를 못하네,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고 기분이 나빴는지 너만 공부 잘 하면 우리 가족이 다 행복할거 같다는 말로 아이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대못만 박았으면 다행입니다만.. 지금 우리가 너무 잘못된 사회구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도 똑같습니다. 신앙생활을 다 겉모양으로 다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다 교회를 떠납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신앙의 어떤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들 이러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라, 예배 드려라, 예배 똑바로 드려라, 헌금해라, 왜 태도는 그렇냐. 아이들이 다 교회를 떠납니다. 그것은 그동안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우리 젊은이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하려면 우리는 눈물로 씨앗을 뿌려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정말 회개하고 믿음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여러분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마귀, 악한 영, 어둠의 세력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우리 아이들이 돌아왔을 때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미국 교회 역사공부를 많이 합니다. 미국이 굉장히 탄탄한 기독교 국가가 된 것은 그들이 굉장히 탄탄하게 성경을 읽고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굉장히 소박한 삶들을 추구했었는데 갑자기 미국에 문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락, 콘서트 문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미국에 사람들이 조금 부유해지니까 모여서 콘서트 같은 거 하고 대형 집회 같은 거 하고 이런 일들이 막 벌어졌습니다. 문화가 발전한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그것과 상관없이 자기 일을 꾸준하게 했으면 됐을 텐데 교회, 목사님들이 뭐라고 생각했냐면 우리 젊은이들 다 빼앗기겠다 세상에 다 빼앗기겠다 해서 뭐한 줄 아세요? 그때 세상의 것을 똑같이 했습니다. 열린 예배, 콘서트 예배를 했습니다. 그래서 실제 교회가 효과를 봤습니다. 엄청난 젊은이들이 교회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미국의 메가 처치가 생겼습니다. 대형교회가 아닌 메가 처치입니다. 수만 명씩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교회가 식어버리고 다 떠나버렸습니다.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왜냐면 뜨겁게 모여서 눈물 흘리고 찬송하고 찬양하고 집회를 했지만 내용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막상 결혼해서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살다보니까 그런 문제를 처리할 능력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국교회가 한동안 모방해서 했습니다. 진짜 감사한 것은 지금 미국에 그것을 다시 회복하자, 회개하고 우리가 다시 하나님 앞에 성경을 읽고 다시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삶을 살아보자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책들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싱클레어,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 책들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다시 회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기본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데 나는 신앙생활을 안 하면서. 제가 와이프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빈이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가면 진짜 좋겠는데 우리도 못 갔잖아? 입도 꺼내지 말자. 우리도 못간 서울대를 왜 아들에게 강요하냐고. 벌써 헛된 허황된. 탄탄하게 기본은 갖춰주되 본인이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밀어주자 이런 대화를 진짜 많이 합니다. 오류입니다. 부모들이 이상합니다. 자기는 서울대 안 갔으면서 아들은 꼭 서울대를 가야되는 것입니다. 행복이 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게 왜 그러는지 보세요.
-배불뚝이 성벽_이사야30:8-14
8.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 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11.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을 의지하니 13. 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 14. 그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 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_이사야30:8-14
8절.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 내용을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남유다의 실수들을 기록해서 서판에 영원히 있게 하라고 합니다.
9-10절. 지금 뭐하는 줄 아시겠죠? 여호와의 법을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선견자들보고 선견하지 말라, 지혜자들 보고 지혜를 말하지 말라, 선지자들보고 우리에게 바른 길을 보여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부드러운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거짓된 것을 보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왔는데 목사가 성경 이야기하지 마세요, 하나님 말씀 하지 마세요, 저희들 축복해주세요, 잘 된다고 이야기해주세요. 지금 한국교회에 유행하고 있는 것이 신년예배 때 하는 말씀 뽑기입니다. 진짜 화 있을진저. 저주받을지어다. 회개해야 합니다. 말씀 뽑기 아시죠? 성경구절을 쪽지에 다 적습니다. 성경구절을 뭐만 적냐면 좋은 것만 적습니다. 집어넣어서 뽑으면 그게 당신의 올해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마치 오늘의 운세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 성경구절 뽑아서 올해 당신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진짜 화 있을진저 입니다. 불신자도, 지성인들도 그런 짓은 안 합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너무 많은 교회들이 그런 것을 하니까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성경 자체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말씀 뽑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수준 낮은 교회를 하니까 젊은이들이 지성인들이 교회를 다 떠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마치 그런 것입니다. 좋은 말하라고 합니다. 부드러운 말 하라고 합니다. 회개하라는 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인이라는 말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제 그것을 아예 법으로 만드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죠?
11절. 심지어는 하나님 내 앞에서 치워, 하나님 이야기 좀 하지마, 천국, 지옥 이야기하지 마, 지금 우리가 애굽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애굽의 문화를 수입해서 번영하는 것만 이야기해. 강대상에서. 지금 그런 내용입니다. 이것을 기록하라고 합니다. 그 당시 남유다 백성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록해서 우리가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 것입니다.
12절. 압박은 앗수르의 압박이고 허망은 애굽의 허망입니다. 허망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내용이 하나도 없는 헛된 망상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 이 죄가, 하나님을 멀리하는 죄가 타락한 이스라엘이 불쑥 튀어나와서 터지기 직전까지 담벼락이 불쑥 튀어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댐이 물이 차면 막 불룩 튀어나오듯이 풍선이 부풀 듯이. 배불뚝이 성벽이 된 것입니다. 무엇으로? 이런 죄악들로. 죄악이 관영해서 곧 터지기 직전의 배불뚝이 성벽이 된 것입니다. 그것을 이야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게 터지는데 물 뜰 것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터져서 성벽이 얼마나 쓸모 없게 되냐면 아궁이에 불 지필 것도 안 되고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허망한 것입니다. 패역한 이스라엘, 고집 센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는지를 성경은 기록해놨습니다. 자녀들에게 아주 부끄러운 신앙인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길을 저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우리 앞에서 떠나게 하라고 한 그 이스라엘이 허망한 내용도 없는 허탄한 껍데기만 교회로 후대들에게 남겨놓은 것입니다. 유럽교회처럼. 건물만, 종교심만 남겨놓는 것입니다. 안에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룩도 없습니다. 그냥 종교적인 것만 남겨놓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터집니다. 죄는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결과가 있어서 공의를 이루시려고 사랑을 이루신 것입니다. 여러분 공의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공의가 없다면 나 너 사랑해하고 끝나는 것입니다. 책임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나 너 사랑해 하고 책임은 안 진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보고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면서 당신은 공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희 아들이 6살인데 지금 수영을 배웁니다. 수영을 너무 좋아합니다. 저는 물을 무서워해서 저는 닮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수영장에 가면 수영선생님이 한국체대를 나오셨습니다. 부모님들이 수영을 관람하는데 처음에 갔더니 수영을 제대로 가르치는거 맞아?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니까 계속 아이하고 장난치고 노시는 것입니다. 제 마음에 비싼 돈 내고 힘들게 여기까지 와서 수영 가르치는데 왜 저리시나 하는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하는 말이 수영 기술을 배우기 전에 물과 친해져야 된다고 했습니다. 두려움을 없애주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보고 선생님 이리 와 봐요 비싼 돈 냈는데 왜 수영 가르치지 않고 아이와 놀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됩니다. 그리고 한빈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수영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몸이 다 굳어서 수영에 발달된 근육이 하나도 없으니까 지금은 물속에 들어가면 무서워서 꼬르륵 가라앉는 애가 물 위에서 자유롭게 수영을 하고 다니려면 뭘 해야 되죠? 레슨을 받아야 합니다. 수영을 배워야 합니다. 어떤 기간을 채워서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한빈이가 힘들다고 배우지 않으면 물에서 수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물에서 자유로 우려면 수영이라는 기술을 마스터해야 내가 물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닌가요? 작은 운동하나도 그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 내가 물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신앙? 이상합니다. 교회만 오면 아무것도 안하려고 합니다. 성경 좀 읽자니까 그게 그렇게 기분이 나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진짜 웃긴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성경 일독을 안 한 목사님들도 계셨습니다. 본인은 성경 일독을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신학교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목사를 하고 있지. 마치 이런 것입니다. 요즘 유튜브에 보면 영화줄거리만 요약해서 해주는 채널이 많습니다. 바쁜 일상인들을 위해서 5분, 10분짜리로 편집해 놓은 것이 있어서 그것만 보고 영화 한 편을 봤다고 하는데 마치 성경을 다 마스터해서 이 성경을 읽고 나서 그게 내 마음에 감동으로 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요약 줄거리를 가지고 남에게 전달하는. 내게는 감동이 되지 않는 것들을 전달하는. 영화는 진짜 감동이 되려면 한 편을 풀 스토리로 다 봐야 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인턴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이제 봤습니다. 진짜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1분도 버릴 것이 없었습니다. 멘트 하나 버릴 게 없었습니다. 로버트 드 니로가 그런 역할도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영화가 재미있었습니다.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제가 이번 주 내내 인턴 이야기를 합니다. 저희 와이프, 아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어제 방송할 때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또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은 마음에 감동이 됐다는 것입니다. 저렇게 늙어야 되는데. 저렇게 멋있게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는데. 감동이 되니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내용이 한 개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 앗수르가 저렇게 일어나며 북이스라엘이 왜 무너졌는지 하나님 앞에 질문해야 되는데 그런데 앗수르를 피해서 애굽을 쫓아갔습니다. 애굽을 피해서는요? 계속 신앙생활이 악순환입니다. 신앙은 한 번 넘어서야 됩니다. 신앙생활을 진짜 잘하시려면 한 번 넘어서야 합니다. 그것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내 말 좀 들으라_이사야30:15-17
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17.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_이사야30:15-17
15절.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조용히 잠잠히 여기서 조용하라는 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남유다가 시끄러운 것입니다. 왜? 북이스라엘이 멸망했거든요, 앗수르가 곧 쳐들어올 것 같거든요. 또 우리는 세상의 문화를 다 받아들여서 남유다 성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문화니, 앗수르의 문화니,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엄청 분주하고 시끄러워서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육신적인 분주함도 있지만 마음이 시끄러운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세상의 것이 막 들어옵니다. 우리 마음에 연예인 한 명만 들어와도 성경 못 읽습니다. 우리 마음에 로또 이런 것만 들어와도 하나님 못 바라봅니다. 지금 마음이 시끄러운 겁니다. 그래서 뭘 다 잃어버렸어요?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다 잃어버렸어요. 그리고 그런 마음이 시끄럽고 분주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전하니까 시끄러워 저리 가봐, 우리 다 알고 있는 거야. 부드러운 이야기, 우리가 축복받을 이야기, 복권 긁었는데 당첨된다는 예언 좀 해줘. 이런 식입니다. 완전 배불뚝이가 됐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내 말 좀 들어. 한빈아 아빠 말 좀 들어. 한빈이가 6살이니까. 한빈이가 약간 감기기운이 있었어요. 감기는 아니고 컨디션은 안 좋았습니다. 제가 유치원 끝나고 데리고 오면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꼭 한 마디를 합니다. 아빠 이러면서. 제가 컨디션이 괜찮으면 보통 사줍니다. 그런데 감기기운이 있습니다. 엄마가 아침에 절대 사 먹이지 말라고 들었습니다 목이 안 좋습니다. 그러니 사줄 수 없습니다. 한빈이가 아빠 했습니다. 오늘은 안 된다 아이스크림 사줄 수 없어 했는데 자기는 괜찮다고 합니다. 당연히 자기는 괜찮다고 합니다. 아이스크림에 먹고 싶은 목적에 빠져 있으니까요. 난 괜찮아, 괜찮아. 저는 안 괜찮아. 안 괜찮아. 아빠 나 안 아프다니까. 너 지금 아파, 네 지금 목소리가 이상해. 아니야 내 목소리 괜찮아. 아이스크림을 먹겠다는 목적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한빈이 마음이 아이스크림에 시끄러운 것입니다. 아빠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런 것입니다. 내 말 좀 들으라고. 내 이야기 좀 들으라고 하나님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조용히 잠잠히. 조용하고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아는 겁니다. 앗수르가 일어나든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든, 애굽이 일어나든. 하나님이 그 세상의 모든 것보다 내 안에 크신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서 모릅니다. 왜?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선지자들을 내 쫓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세상보다 작은 하나님입니다. 당연히 세상을 쫓아갑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 하나님이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하신 말씀 중에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엄청 크신 하나님. 그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6살짜리 한빈이가 아빠를 안 믿듯이. 나는 다 알고 있는데. 너 오늘만 버티면 되는데 네가 감기를 나으면 2,3개도 사줄 수 있어.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달콤한 결과들만 얻으려고 견디는 과정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말 좀 들으라고 하시면서 주신 것이 율법이고 모세오경이고 십계명입니다. 죽이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서 예수님 믿으라고 주신 말씀들입니다. 그런데 고집을 피우는 겁니다. 패역한 자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사이에 엄마들이 아들을 키울 때 에러사항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가 구조가 좀 다릅니다. 남녀 간의 책을 보면서 오랫동안 여자와 살다보니 저희 집에 있는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은 민감하고 예민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가 입력이 되면 오랫동안 가지고 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입력이 되면 바로 빠집니다. 그게 남자들의 특징입니다. 부부가 맨날 싸웁니다. 남자들은 진짜 까먹은 것입니다. 진짜 깜빡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제가 된통 혼났습니다. 분리수거를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줬나 봐요. 나는 기억이 안나. 난 늘 하던 대로 분리수거를 했는데. 왜 내 말 안 듣냐고 왜 이렇게 분리수거했냐고 뭐라 했습니다. 저는 화가 납니다.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런데 말하긴 했나 봐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요? 남자들한테는 귀를 딱 잡고 눈을 맞추고 머리에 입력시키라고 합니다. 이것이 아동학자가 한 이야기입니다. 여자들이 눈을 마주치고 입력을 시켜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들은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하면 까먹습니다. 거기에 집중을 하지 않고 있으면,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백 프로 까먹습니다. 남자애들은 맨날 까먹습니다. 한 이야기 또 하고 한 이야기를 또 하는 것이 남자입니다. 아마 결혼 안 하신 분들은 이해 못하시겠지만 결혼하신 분들은 다 동감할 것입니다. 환장합니다. 저희 와이프 표현입니다. 그래서 일하고 욕먹는 것이 남자들입니다. 그래서 여자 분들이 이해해주세요. 남자들 힘듭니다. 직장 생활하랴, 사회 생활하랴. 집에 갔는데 또 와이프 말 안 들었다고 혼나고. 하고 혼나는 것이 남자입니다. 아무튼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우리의 마음속에 은혜가 떠나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싸워야할 신앙의 대상은 어떤 세력이 아니라 겉모양을 중시하는 신앙과 그 결과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겉모양을 중시하는 신앙들 때문에 뭘 잃어버렸냐면 우리 속사람, 마음, 영혼이 은혜 받는 방법들을 놓쳐버립니다. 교회가 겉모양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건물, 시스템, 프로그램, 명예. 그러다보니 마음이 변화되고 마음이 새로워지고 내 마음에 은혜가 머물러 있어야 되는 그런 신앙이 사라지다 보니까 부모님들에게 권위만 남고 자녀들은 그런 것이 너무 싫은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Ⅲ. 내 마음 속에는 아직 은혜가 있어요
- 겉모양을 중시하는 신앙과 그 결과들_전도서9:1-3
1.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2.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3.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_전도서9:1-3
1절. 사랑 받는지 미움 받는지는 열매(미래의 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2-3절. 세상은 다 두 가지로 나눠져 있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않은 자. 제사 드리는 자와 제사 드리지 아니하는 자. 그런데 뭐라고 기록하나요? 3절.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악한 것. 그것 품고 죽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뭐하는 것인가요? 지금 사람들이 싸우는 것입니다. 너는 선하냐 난 착하냐 너는 악하냐 너는 제사 드리냐 제사 안 드리냐. 알겠는데 그것이 어떤 미래의 열매로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전도서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너희 마음은 어떠냐는 것입니다. 이 겉모양을 중시하는 신앙은 세속적인 신앙의 형태입니다. 결과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당장 교회들도 임기응변식으로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교회가 숫자적으로 대중화되고 교회에 숫자를 늘리려고 임기응변식으로 목회를 하거나 프로그램을 무분별하게 가지고 교회로 들어오거나. 미국 교회가 지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열린 예배, 콘서트 같은 예배 미국교회들이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 지성인들이 교회를 다 떠났습니다. 이제 다시 성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왜요? 교회는 사실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는 자극적이면 안 됩니다. 교회는 한결같아야 합니다. 교회는 변질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전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은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은혜가 없으면 안 됩니다. 이 예배, 강단에 생명의 생수가 흘러 넘쳐야 됩니다. 성경에 가르침이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의 선포가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 교회입니다. 어떤 세상의 유혹과 환경 속에서도 교회는 교회의 자리를 지켜줘야 합니다. 이곳에 오는 분들이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교회만 가면 구원 받을 수 있다. 교회만 가면 예수님 만날 수 있다 이게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갔는데 콘서트, 집회 끝내 주더라. 집회는 끝내주는데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 다니는 장로, 권사님들이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장로, 권사, 집사라는데 교회에 리더라는데 심지어 목사라는데 아무런 내용이 없습니다. 허망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겉모양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면 교회 안에 교제도 없습니다. 왜? 전부 겉모양으로 사람을 판단하니까. 아름다운 교제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랑하고 섬기고 희생하고 가난한 자를 돕고 이런 것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겉모양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력 있는 사람, 돈 있는 사람하고 교제하려고 하지 가난한 자를 돌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겉모양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교회도 사교의 장이 되었습니다. 어디 교회가면 국회의원이 있더라, 누가 있더라. 이러면서 교회를 옮겨 다닙니다. 겉모양을 중시하는 신앙이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입니다. 사실 우리 내면의 속사람이 은혜로 가득차면 마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앗수르, 애굽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훨씬 큽니다. 그런데 이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겉모양을 중시하면서 우리 안에 있는 은혜를 다 소멸시켜 버렸기 때문에 교회들이 방황하는 것입니다. 애굽, 앗수르 쫓아다니고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인생을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이 끝날 때 셈하신다고 합니다. 우리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 셈하고 계십니다. 사실은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다 셈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악이 가득한 채로 인생을 마치면 되겠습니까. 천국 못 가겠죠. 진짜 실력 있는 크리스천은 마음에 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그 은혜가 있어서 어디로 갔나요?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죄인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시고 세리의 집에 가시고 사마리아 땅에 들어가셨어요. 마음에 진짜 은혜가 있으니까 힘이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사람이 진짜 힘 있는 사람입니다. 겉모양 신앙생활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결과는 배불뚝이입니다. 곧 터집니다. 허망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 은혜를 회복하기 위해서 성경은 방편을 주셨습니다. 방편은 수단입니다. 은혜를 받는 루트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 통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있습니다.
- 회복해야 할 은혜와 방편들_히브리서4:11-16, 9:14-15, 10:19-25, 13:9-19
첫째는 말씀입니다.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_히브리서4:11-16
11절.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힘쓰라고 합니다. 누가 교회에 그냥 다니면 안식, 구원받는다고 이야기 합니까? 그 값싼 구원론에 여러분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힘쓰지 않으면 천국 못 들어갑니다. 12-13절.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 때부터 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14절. 예수님이 큰 대제사장이라고 합니다. 15-16절. 큰 대제사장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보좌가 어디라고 배경 설명을 하고 있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보좌가 도대체 어디인가요? 성경은 그게 말씀이라고 합니다. 은혜의 가장 강력한 방편이 말씀입니다. 성경도 그렇고 주일설교도 성경과 같은 위치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어요? 대제사장이신 우리가 그분을 붙잡으면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면 우리도 구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려고. 그래서 우리보고 뭐하라고 하냐면 말씀의 보좌, 은혜의 보좌 그 곳에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성경입니다. 요즘 한국교회는 성경과 거리가 너무 멀어지고 있습니다. 교회도 회의가 많아지고 전략도 많아지고 요즘 교회들이 전략회의들을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를 부흥할까?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조금 더 마케팅을 잘할까? 그러면서 성경과는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예루살렘과 비슷합니다. 교회는 예배가 많아져야 되고 성경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목사인 저도 똑같습니다. 성경을 읽고 가르쳐야 합니다.
두 번째는 성령입니다.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_히브리서9:14-15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신데요. 그런데 그 일을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우리 삶을 바꿔주는 은혜가 누구를 통해서 오냐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온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고 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그런데 요즘 여러분 기도할 때 성령의 인도, 성령의 도우심 구하고 계십니까? 없어졌습니다. 진짜 신기합니다. 저도 성령을 별로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혜사 성령을 승천하실 때 보내주셨는데 성령의 도우심, 성령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 삶이 성령의 도움이 없어도 살만큼 좋은 말로 부유하고, 풍요롭고 좋지 않은 말로 시끄러운 삶, 분주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죽은 행실에서 돌이키는 자. 은혜의 방편은 죄에서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세 번째는 예배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_히브리서10:19-25
19-20절.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성소를 찢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날 구약의 성막에 지성소가 찢어졌습니다. 절대 찢어지지 않는 가죽이 찢어졌습니다. 이제는 제사장을 통해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왜? 예수님이 우리의 제사장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바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21-25절. 서로 돌아보아 믿음의 소망을 굳게 붙잡는 공동체가 예배 공동체입니다. 교회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저는 교회보다 예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교회가 예배입니다. 예배가 곧 교회고 교회가 곧 예배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냐면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맑은 물로부터 씻음을 받은 참, 온전한 믿음을 가진 자들로 구성된 것이 예배이고 교회입니다. 이 예배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이 예배 회복해야 합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갔는데 진짜 좋은 교회를 갔습니다. 저희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원고를 빽빽하게 적으셔서 읽으시는 설교를 하십니다. 얼마나 지루한가요. 우리하고 눈도 안 마주칩니다. 계속 읽으십니다. 저희 목사님 설교는 예화도 없습니다. 성경 그대로 읽고 설명해주는 완전 오리지널 강해설교였습니다. 저희 박이석 목사님께서. 저도 처음에 갔더니 엄청 졸렸습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작하려고 할 때 목사님 설교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신기합니다. 그 뒤로 좀 죄송하지만 중고등부 전도사님 설교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목사님 설교인 성경이 들어오는데. 저는 진짜 대예배 오전, 오후, 저녁, 수요일까지 예배 드렸습니다. 말씀이 너무 달콤해서요. 그래서 저는 성경과 가까워진 계기가 목사님이었습니다. 여러분 예배는 우리가 그냥 지켜야 되는 정도가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삶을 새롭게 하는 이 예배를 우리가 굳게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방편입니다. 은혜를 어디서 하나님이 주시냐면 예배 때 다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찬송하는 입술입니다.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19.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하노라_히브리서13:9-19
우리 입술에 찬송의 제사가 나와야 되는데. 우리 입술에 찬송의 제사가 나오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과 서로 나누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삶이 완전히 변화되어서 입술로 찬송을 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CCM, 찬송가를 부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선을 행할 정도로 내 삶이 변화되어서 내 입술에서 나오는 고백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언제 가능하냐면 17절에 순종하고 복종할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믿고 맡길 때 우리 삶에 기적이라는 것이 벌어집니다. 한빈이가 수영을 배웁니다. 한국체대 나온 수영선수 출신인 선생님이 한빈이를 가르칩니다. 그 한빈이를 그 선생님에게 믿고 맡겨야 합니다. 믿고 맡길 때 실력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그 과정을 다 믿고 맡길 때 한빈이는 수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종과 순종은 그런 의미입니다. 남유다 백성이 앗수르, 애굽을 바라볼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복종하고 그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신다고 합니다. 여러분 신앙은 굉장한 신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때 시대마다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도 그렇습니다. 성경 속 인물들 보세요. 하나님께 온전히 믿고 맡겼을 때. 온전히 신뢰했을 때. 잠잠히 조용히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항상 일하셨습니다. 그 때 뭐가 나와요? 찬송이 나옵니다. 믿으니까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찬송이 나오나요? 아닙니다. 시끄럽습니다. 애굽으로 가자. 회의하고 있고 전략 짜고 있습니다. 찬송이 안 나옵니다. 안 믿으니까. 내 안에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가 저 멀리 있고, 잊혀졌습니다. 십자가 사랑이 저 멀리 있습니다. 그래서 내 삶이 다 무너져버렸습니다. 마음은 다 돌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마음은 다 돌처럼 굳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남유다에게 제발 내 말 좀 들어라. 제발 사랑하는 나의 백성아. 내 말 좀 들어라. 내가 너희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철없는 아들처럼 시끄러워요, 제발 가만히 좀 있어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은혜가 있습니까? 내 마음 속에 은혜가 있다면 우리는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될 것은 다른 사람과 외부의 적들과 싸울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은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결코 죄는 은혜를 이길 수 없습니다. 결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은혜를 받는 것을 방해하는 겉모양 중심의 신앙과 싸워야 합니다. 목사인 저는 그게 더 심합니다. 목회를 하니까요. 월급도 받아야 되고 건물세도 내야합니다. 우리 교역자들 사례비도 줘야 합니다. 얼마나 신경이 많이 쓰이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싸워야 합니다. 만약에 목회를 시끄러운 그런 쪽으로 목회를 하기 시작하면 완전 삯꾼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겠죠. 성도들 눈치 보겠죠.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천국 문 앞에 갔을 때 하나님이 너 왜 그렇게 살다왔어? 부끄러운 구원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뭘 회복해야 되요? 내 마음에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 그래 우리 굶어 죽더라도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지. 그 거대한 세상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회복해야 합니다. 은혜 받는 일이 우리가 이 땅에서 감당해야 될 사명인 것입니다. 교회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은혜 없는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자극적인 메시지, 우리를 선동하는 메시지. 겉모양을 중시하는 신앙을 경계하고 싸워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싫을 수 있지만. 그래서 우리 속사람이 다시 은혜로 회복할 수 있도록 은혜의 방편들을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경청하고 듣는 자리로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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