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4월 11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2부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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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
본 문 |
이사야 31:1-9 |
오승주 목사
Ⅰ. 가장 어려운 시기, 가장 성장하는 시기
제가 설교를 준비하는데 설교 제목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안 하는 편입니다. 이미 느끼셨겠지만 설교 제목은 본문 중에 가장 이 본문을 설명하기에 합당한 구절을 띄워놓습니다. 그러나 그 제목이 본문 속에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 말은 설교 자체를 본문에 충실하게 여러분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인지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있으십니까? 신앙생활은 분명한, 건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현 시대신앙의 모습들을 살펴보면 신앙의 거룩한 목적들이 상실된 시대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예전 같으면 가정 복음화를 위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서, 주의 신실한 일꾼이 되기 위해서, 아니면 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를 파송한다던지. 어떤 거룩한 목적들이 우리 신앙생활에 있었는데 요즘 특히 젊은 세대들, 교회 다니는 분들을 만나보면 그런 거룩한 목적들이 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냥 교회 다니는 것입니다. 그냥 교회 왔다 갔다 하고. 주일날 교회 갔다 오는 선데이 크리스천인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영혼을 구원하는 것, 생명을 살리는 것이 더 이상 거룩한 목적이 되지 않게 되고 그것이 우리가 세속화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 굳이 왜 교회를 가야돼? 굳이 뭐 기도를 왜 해야 돼? 신앙생활의 정확한 이유들을 찾지를 못해서 더 세속화가 되는 그런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여러분 앞으로 더 어려운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조던 피터슨의 책 ‘질서 너머‘ 라는 책에 보면 또 그분의 여러 가지 책들을 보면 그런 내용들이 잘 있습니다. 앞으로는 좌우이념 대립이라든지 민주화냐, 산업화냐 이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젊은 세대들에게 실존의 문제를 가르쳐야 된다. 왜나하면 그런 것들이 분명하게 좌우, 옳음 그름이 분명하게 구분 되어 있는 시대가 아니라 정말 혼돈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제만 해도 자살한 숫자가 60명이 넘습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지 않으시겠지만 우리나라 하루 평균 자살하는 인원 평균이 30명이 넘습니다. 우리는 코로나로 몇 명 죽는 것을 두려워하고 몇 백 명 코로나 걸린 것 때문에 두려워하지만. 자살하는 인구가 하루에 30명이 넘습니다. 계산해보십시오. 자살로 몇 명이 죽는지. 그것은 언론에 다루면 난리가 날 것입니다. 사실 정치하시는 분들이 그런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어떤 희망이 없고 또 어떤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해결책이 없어서 자기의 생을 끊는 자살 인구가 어마어마합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자살 1위 국가입니다. 압도적인 1위 국가입니다. 2위와의 격차가 너무 큽니다. 코로나로 하루에 30명씩 죽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난리 나겠죠? 그뿐 아니라 요즘은 정자은행 같은 것이 생겨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빠 없는 아이인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코앞에 와 있습니다. 이제는 성적인 대상들도 기계, 로봇으로 쾌락을 추구하고 만족함을 느끼는 시대가 왔다고 합니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감정을 자극해주는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고차원적인 우상숭배하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지난 20년, 길게 보면 20년이 조금 넘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한국교회가 쏟아낸 메시지가 있는데 그게 치유 메시지였습니다. 위로 메시지였습니다. 그래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책들과 맥락을 같이 했습니다. 치유해주고 존재 자체로 귀하다고 해주고 위로해주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분위기에 따라서 교회도 그런 설교들을 진짜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원래 그 책에 대해서 비판을 많이 했었는데 우리 젊은이들에게 실제를 이야기해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이야기해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 다 덮고 위로해주면 끝나는 것입니까? 그냥 다 덮고 위로해주고 괜찮아, 밥 한 끼 먹고 토닥토닥 해주면 그 문제가 사라집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계속 위로만 하고 있으니까 성도들은 실제 내용이라든지, 신앙의 실력이라든지 성경에 보면 정금 같이 단련, 연단되고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고 이런 내용들을 이 세대가 경험하지 못해서 지금은 어디 교회 다닌다고 이야기해서 들어보면 내용이 하나도 없고 신앙도 하나도 없고 주일에 겨우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그런 거짓 신자입니다. 겉모양만 그리스도인인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교회 오면 다 포장하고 숨깁니다. 목회자들도 그런 설교를 하지 못합니다. 왜? 자존심 건드릴까봐. 자존심 건드려서 교회 떠날까봐. 그래서 그냥 위로나 하고 덮어주기 바쁩니다. 저는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그것은 사랑도 아니고 목회도 아닙니다. 바르게 이야기해주고 현실을 이야기해주고 정신 차리라고 이야기해줘도 부족할 판입니다. 그래서 뭘 준비해야 되는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다 위로만 하고 있습니다. 밥 한 끼 먹으면 해결이 되나요? 제가 고등학교 때 엄청 뜨거웠습니다. 예수님을 이제 막 믿어서 예수님에 대해서 뜨거웠습니다. 불탔습니다. 그리고 신학교를 갔습니다. 신학교 가서 확 식었습니다. 시골에 있다가 부산의 고신대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학교에 가서 확 식었습니다. 영적으로도 식고 삶으로도 다 식었습니다. 식은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저희 집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원래도 어려웠는데 외지에서 살려니까 돈도 필요하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는데 그런 것이 채워지지 않았고 전화하면 집에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아버지가 어머니를 괴롭히고 어머니가 일해서 돈 벌어놓은 거 들고 가서 술 드셔버리고 멀리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하고 저희 누나들도 전국에 흩어져서 다들 어렵게 살던 때입니다. 가정이 힘들다 이것뿐만 아니라 현실문제입니다. 고등학교 때는 은혜로 막 뜨거웠는데 신학교에 와서 목회자가 되는 과정을 공부하려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헬라어, 히브리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공부는 너무 까마득했습니다. 현실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들은 배경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이러니까 그거에 눌려서 낙심했습니다. 정말 웃긴 것은 낙심이 되고 포기가 되는데 그때부터 방탕하며 살았습니다. 신기합니다. 대충 굴러 가는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정말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 2학년 때 활동하던 선교단체에서 인도에 단기선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15박 16일 2주였습니다. 그게 제 인생에 여러 가지 의미에서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군대 다녀온 신학과 선배가 15일 동안 룸메이트였습니다. 저는 그 선배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아마 그 선배가 없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비브릿지에서 봉사활동 가는 것처럼 널널하게 가지 않고 정말 힘들게 갔습니다. 대학생들끼리 단기선교를 가면 정말 힘듭니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버스타고 기도하고 저녁에 집회하고 엄청 빡빡한 일정을 소화합니다. 그래서 숙소에 들어가면 다 뻗습니다. 숙소에 들어가면 그 선배는 항상 저보고 먼저 씻으라고 했습니다. 씻고 나오면 항상 그 선배는 책상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뭔가를 적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엄청 피곤해서 겨우 알람 맞춰서 눈 딱 떠서 보면 아침에도 그 선배는 항상 책상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뭔가를 적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그 선배와 오래 지내다보니까 제가 겪고 있는 집안 이야기라든지, 어려운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정말 힘들다, 내가 목회자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그 선배가 저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너 정말 하나님 믿냐고 물어봤습니다, 너가 하나님 앞에서 정말 쓰임 받을 것을 믿냐고 물어봤습니다.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믿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그게 어떻게 믿음이야? 현실, 상황이 힘든데요? 아니 현실, 상황은 중요하지 않아. 네가 정말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고 그 일에 쓰임 받고 싶다면 지금 준비하면 되지. 그 선배도 저하고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5장을 읽고 저녁에 자기 전에 5장을 읽고 성경을 읽으면서 받은 은혜들을 일기장에 옮겨서 썼습니다. 제가 그 선배 영향을 받아서 지금도 일기를 씁니다. 늘 일기를 쓰고 하루 일과를 체크하고 점검하고 구체적으로 자기가 오늘 하루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정리하고 이런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훌륭한 목회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목적이 있으면 준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행함입니다. 우리가 진짜 믿음이 있나요? 정말 믿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나?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_잠언19:3
사람이 미련해서 반듯한 길을 자기가 굽게 해놓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한다고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_잠언14:27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 것인가?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때문에 지금 진짜 어려운 시기라고 합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되게 어렵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먹고 살기가 힘들다면 그것은 국가의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밤낮 쉬지도 않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는데 내 꿈을 이룰 수 없다면 국가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떠나서라도 지금 어려운 시기라고 하는데 어려운 시기니까 우리도 같이 포기하고 우리도 대충 굴러 가는대로 살고 어려운 시기니까 그냥 방탕하게 살자? 그건가요? 아니잖아요. 그래서 위로해주면 되나요? 치유해주면 되나요? 부모님 때문에? 저는 진짜 그게 많았습니다. 여러분 저는 대학교 4년 학비를 부모님에게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어려웠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손잡고 버스타고 어디 여행을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아버지가 다정하게 해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좋은 아빠가 되려고 좋은 남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그것에 함몰되어서 목적이 없으니까 뭐라고 이야기하죠? 우리는 그냥 인생 굴러 가는대로 살아야 되나요?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어려울 때 우리를 위로해서 위로로 우리를 덮을 것이 아니라 치유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보호해주고 그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을 냉정하게 오픈해서 함께 실존적인 문제를 풀어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시기를 지나서 성장할 수 있고 조금 더 희망적인 미래를 맞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뭐 그렇게 체면, 자존심이 중요한지 오픈하고 그것을 점검할 수 없습니다. 그럼 신앙이 어떻게 되죠? 겉은 좋은 옷을 입고 있는데 속은 곪아 터져 있습니다. 제가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을 자주 거론합니다. 저하고 아무 상관 없는 목사님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왜 그분을 자주 거론하냐면 한국대형교회 목사님들 중에 이렇게 행동하는 목사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대형교회를 29개로 분립하고 독립시킵니다. 그것도 놀라운데 그렇게 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목회를 은퇴하냐? 아닙니다. 가평에 학교를 짓고 교육사업에 들어갑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시대의 흐름을 다 읽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 이렇게 큰 교회 하고 있어, 나 이렇게 목회 성공했어 이런 것을 자랑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실제적인 것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것들을. 무슨 말이에요? 시대의 흐름이라든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까지 다 공부하고 파악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목회자의 자존심, 명예 이런 것에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중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어떤 대형교회 목사님이 그렇게 하셨습니까?
지혜 있는 자가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_잠언24:5
어떤 지식이고 어떤 지혜입니까?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강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약해보이지만 강한 것입니다.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_잠언24:6
치열한 세상 싸움도 전략 없으면 이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기합니다. 교회만 오면 바보가 됩니다. 좋은 대학 나온 청년들이 교회만 오면 멍 하니 있습니다. 영적인 것이 훨씬 더 디테일해야 되고 준비를 많이 해야 되는데 교회만 오면 바보가 됩니다. 마치 군대가서 이등병 되는 느낌입니다. 신앙생활도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거룩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처럼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예배를 드릴,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 인생을 드려야 될 이런 거룩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실수를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습니다. 다윗이 엄청 나게 큰 실수를 했을 때 그냥 왕이 아니라 통일왕국의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그 실수에 대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합니다. 당신 큰 죄를 지었어, 하나님이 당신 떠날지도 몰라. 여러분 그 당시 다윗이 가지고 있었던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선지자의 목을 쳐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이정도 하면 됬지, 이정도 큰 나라를 이루고 이정도 큰 업적을 이뤘으면 죄는 좀 용서해줘야지. 이렇게 나오는 것이 정상 아닌가요? 우리 한국교회 지도자들, 목회자들 다 그렇습니다. 내가 이정도 했는데 이정도 죄는 좀 봐주지 이럽니다. 다윗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왜요? 다윗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침상이 눈물로 다 젖을 만큼 회개했습니다. 주의 성령이여 떠나가지 마옵소서. 주님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왜냐하면 다윗의 소원은 뭐였어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분명한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이 없으니까 우리는 어떻게 되죠? 내용이 하나도 없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될까요? 오늘 본문을 자세히 봐야 합니다.
Ⅱ.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 애굽이 어떤 존재인지 발견하는 것_이사야31: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_이사야31:3
애굽은 사람입니다. 애굽은 장차 멸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멸망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과 연결되어 있는 나라들은 같이 멸망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도움을 받든 애굽에게 도움을 구하든 다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애굽을 잘 모릅니다. 지금 남유다는 애굽을 잘 모릅니다. 그냥 애굽이 강력한 나라, 엄청 힘 있는 나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애굽은 엄청난 경제대국이었습니다. 군사력이 막강한 것은 경제가 없으면 군사력이 막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가난한 나라가 군사력이 막강할 수 있나요? 미국이 왜 강력한 나라입니까? 국방비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런 애굽이 신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니고 그냥 멸망할 인간이라고 합니다. 이게 애굽을 무시하자, 세상을 무시하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세상을 정확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아는 방법이 무엇이냐?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_창세기1:27-28
하나님은 창세기 1:27-28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뭐에요? 하나님은 모든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께 모든 근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유다는 경제대국, 군사대국 애굽 그것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이 경제대국이 되고 군사대국이 된 근원은 누구 손에 있어요?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하나님, 믿는 자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믿지 않는 일반세계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세상을 정확히 알고 정복해야 되는데 그들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돈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돈을 예로 들어볼까요? 돈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이 다 어떻게 생각하죠? 목사님들이 돈은 일만 악의 뿌리다 이렇게 설교를 해서 돈 이러면 굉장히 악한 어떤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정말 잘못되고 나쁜 설교입니다. 그래놓고 목사님들은 돈을 좋아합니다. 사실 돈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경제의 흐름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돈이라는 것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초창기에 선교사가 들어왔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 아펜젤러 선교사. 미국의 남침례교회에서 파송하고 호주 장로교가 파송해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뭐했습니까? 배제학당을 짓고 학당들을 짓고 학교부터 세웠습니다. 그 학교들이 연세대학교, 이화여대가 되었습니다. 병원을 지었습니다. 여러분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학교가 그냥 오 주님 학교 좀 세워주세요 하면 학교가 뚝딱 세워집니까? 오 아버지 병원 좀 지어주세요 하면 병원이 지어집니까? 아닙니다. 미국의 남침례교회 교단에서 호주장로교 교단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헌금을 보내왔습니다. 작은 돈이 아닙니다. 막대한 예산이 이 조선 땅에 들어와서 병원이 지어지고 학교가 지어지고 거기서 아이들이 스스로 자립해서 살 수 있도록 간호사, 의사로 양성하고 유학을 보내고 양자를 삼고 그게 초창기 때 우리나라를 선교했던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입니다. 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난한 나라가 선교사 파송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왜 우리 대한민국이 경제대국이 되었습니까? 우리 대한민국이 경제대국이 되어서 선교사 파송 2위 나라가 되었습니다. 돈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까? 잠언은 우리의 현실문제를 다루는 지혜서입니다. 잠언은 가난한 자는 복 되지 않다고 합니다. 재물이 없는 자는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정말 듣기 싫으시죠? 우리 목사님 이것만 편집하면 돈 밝히는 목사가 될 수 있겠네요.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난한 자는 선을 베풀 수 없다라고 잠언은 이야기를 합니다. 왜 그렇죠? 우리가 선교사를 한 명 파송하더라도 한국선교사 한 명 파송하는데 500만원 가까운 예산이 든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 대신 오지에 가서 선교를 하니까 그들의 가정을 책임져야 되고 그들의 자녀들, 교육을 책임져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는 현지인 따루 목사님을 선교사로 한 달에 30만원만 보내면 되는 현지인 선교사를 풀타임 선교사로 모시고 있어서 부끄럽습니다. 돈이 없으면 우리 일상에 좋은 일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집이 있어야 되죠? 차도 있어야 되죠? 자녀를 교육하려고 해도 돈이 필요합니다. 저도 지금 한빈이 유치원 다니는데도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수영도 가르치고 싶죠, 영어도 가르치지고 싶죠. 좋아하는 것 다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인데 돈 없으면 못 해줍니다. 돈이 악합니까?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_잠언11:28
무슨 말인가요? 재물이 누구 것인가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면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에 가서 재물을 의지합니다. 그들의 노예가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속하여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유다는 애굽의 강력한 군대, 재물을 의지했습니다. 이사야 31:1-2에 그것에 대해서 정확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세대_이사야31:1-2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_이사야31:1-2
1절. 애굽이 경제대국, 군사대국이 된 것입니다. 돈이 엄청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2절.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그 재물로 악한 일을 하기 때문에. 근데 이렇게 사는 이유는 애굽을 의지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복의 근원이라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영원하시다는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심판 주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보다 세상이 훨씬 더 커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 보니까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앙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애굽에 가면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군사적인 도움, 문화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까. 저여러분 다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소그룹리더들을 통해서 1995년도 여의도에서 경배와 찬양 하스데반 선교사님이 집회하는 영상을 보내드렸습니다. 혹시 보신 분 계신가요? 제가 보내드리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냥 생각 없이 제가 즉흥적으로 보내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번 주에 한번 시간 내서 보세요. 어떻게 예배드리고 있나. 지금 우리의 예배와 그때의 예배와 어떤 차이가 있나. 무슨 기도를 하고 있나. 여러분 역사가 증명하고 교회사가 증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 주변의 문제들을 다 해결해주셨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통일왕국에 강력한 왕이 되었습니까? 군사적으로 뛰어났고 배경이 좋았고 전략이 좋았나요?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겠지만 그러나 다윗의 한 가지 소원은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식하게 예배만 드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창조주이시고 전능하시다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기 때문에 그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니깐 마지못해 그냥 교회를 다녀주는 것? 주일에 예배 한 번 드리는 것? 인터넷으로 훌륭한 메시지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머리 속에 알기는 얼마나 많이 아는지 그런데 머리 속에 있는 메시지가 내 가슴으로, 내 삶으로 오지는 않습니다. 내 가슴에 은혜가 되지 않고 감동이 되지 않고 머리 속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내 삶에 뜨거운 은혜가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은혜가 없으니깐 당연히 애굽을 의지합니다. 하나님께 엎드리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유들도 많습니다. 나이 들어서, 너무 어려서, 집에 이런 문제가 있어서, 이런 환경, 이런 상황 때문에. 온갖 이유들이 많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찾거나 부르짖거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가슴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 제가 저희 와이프에게 마음속으로 사랑해라고 백만 번 이야기해보십시오. 그리고 집에 가서는 사랑하는 표현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남편입니다. 내 아이에게도 나는 우리 아들을 사랑해라고 하면서 가서 때리고 폭언하고 아빠의 역할을 하나도 안 해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신학생이 찾아왔는데 앉아서 제가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더 많이 하니까요. 너무 뜨거웠습니다. 닿으면 손이 데일 것 같습니다. 자기는 하나님 너무 사랑한다고 합니다. 은혜 받은 것이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신학교 때는 좀 그럴 수 있습니다. 제가 그거를 자랑하러 오셨나. 시험 들어서 온 것이 아니어서 감사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좀 짓궂잖아요. 뜨거워서 불같이 하나님을 너무 사랑한데요. 그런데 전도사님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시는데요? 그냥 무조건 사랑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지 알겠는데 어떻게? 무엇으로? 하나님 어떻게 사랑하고 계세요? 라고 했더니 가슴으로 하나님이 너무 좋고 하나님 밖에 없고. 알겠는데 어떻게 사랑하냐니까요? 우리 다 그럽니다. 제가 물어 봤습니다. 혹시 성경 읽고 계세요? 성경 읽을 시간은 없다고 합니다. 성경일독 한번 해보셨습니까? 신학교 3학년이신데. 아직 일독을 못해봤다고 합니다. 어디 가서 하나님 사랑한다고 하지 마세요. 한 마디도 하지 마세요. 부끄러운 것입니다.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식어버립니다.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나중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나 이렇게 하나님 사랑했는데. 언제 사랑했냐는 거예요 하나님이. 너 나 언제 사랑했는데? 언제 나 좋아했는데? 사랑했다니까요! 언제? 무엇으로? 내용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해서 사랑합니다.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 사랑 아닌가요? 이번에 세 모녀를 죽인 남자를 보세요. 사랑했는데 집착해서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아서 죽였다고 합니다. 미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200만년을 받아야 합니다. 감옥에서 아무리 착하고 모범수로 있어도 못 나오도록 말입니다. 자기 사랑인 것입니다. 상대방은 싫다는데. 우리도 그런 것입니다. 내 감정, 내가 원하는 삶으로 사랑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뭘 기뻐하시는지 뭘 원하시는지 관심도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을 사랑해서 남아 있는 남은 자. 그게 누구에요? 학사 에스라, 느헤미야, 오늘 선지자인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 때문에 예루살렘을 보호하신다고 합니다.
- 하나님은 예루살렘(교회와 구원)을 보호하시는 분_이사야31:4-9
4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를 불러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 5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7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 우상, 금 우상을 그 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 버릴 것이며 8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9 그의 반석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겠고 그의 고관들은 기치로 말미암아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_이사야31:4-9
4절. 젊은 사자가 자기 새끼를 주려고 음식을 움켜잡습니다. 사자는 최고, 동물의 왕입니다. 그것을 움켜잡고 있는데 여러 목자, 다른 누가 와도 사자 귀에는 안 들리는 겁니다. 놀라지 않는 겁니다. 이거 절대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내 새끼를 먹어야 하는데. 사자가 한번 움켜쥔 음식, 먹이는 절대 뺏기지 않습니다. 그 누가 와도. 하나님이 그렇게 시온 산과 언덕에서 우리를 위해 싸워주십니다. 5절. 새가 둥지에서 자기 새끼를 잡아가려고 하면 새가 날개 치면서 보호합니다. 그런 것처럼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다. 6절.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거역했는데 돌아오라고 합니다. 7절. 그냥 돌아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 한 은 우상, 금 우상을 던져버려라. 8절. 하나님이 앗수르, 애굽을 다 멸망시키는데 사람의 칼로 멸망당하지만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입니다. 9절. 왜 놀랍니까 고관들이, 정치인들이? 남유다가 포로로 끌려갔는데 누구 때문에 다시 성전이 회복되었죠? 느헤미야 같은 학사 에스라 같은 남은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 때문에 남유다는 회복할 수 있고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이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누구 때문에요? 기도하는 소수, 진짜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소수 때문에.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보호합니다. 즉, 지금으로 설명하자면 교회와 구원을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보호하십니다. 쉽게 말하면 복음을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16장에 감춰진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교회가 성도들이 은혜를 못 받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 그럼 복음을 감춰버리십니다. 구원을 감춰버리십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호하셔야 하니까요. 사기꾼들이 있으면 하나님이 그것을 감춰버리십니다. 은혜 못 받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재물을 의지하는 북이스라엘과 같은 타락한 백성들만 있으면 하나님이 거기서 구원을 감추어 버리십니다. 불을 다른 곳에 옮기십니다. 왜요? 복음, 구원을 보호해야 되잖아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주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사랑하면 감춰진 복음을 바로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남은 자들이 금 우상, 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더니 하나님이 그 사자가 먹이를 움켜쥔 것처럼 싸우시고 새가 자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날개 치며 보호하듯이 예루살렘을 보호하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신데요. 먹고 사는 것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앗수르, 바벨론, 애굽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대신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사 역사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오히려 기도하는 사람들을 바보취급하고 은혜 받는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 취급하고. 저는 교회가 실력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도 내용을 갖추고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그래서 그 소수가 정말 실력을 갖출 때 그게 전체로 퍼져가서 전체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집에도 기도하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됩니다. 엄마가 기도하든 아빠가 기도하든 한 명은 정신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이 망하지 않습니다. 한 명이라도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게 무엇인가요? 세상도 성공하려면 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공자의 길이라는 것이 있고 부자가 되려고 해도 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난한 사람이 매일 흥청망청 먹고 매일 돈을 흥청망청 쓰면 절대 가난에서 못 벗어납니다. 아껴 쓰고 목표가 있어야 됩니다. 뚜렷한 목표가 있고 어떻게 저축할지 경제 계획이 있어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 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부도 길이 있습니다. 내가 무슨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는 라인이 있고 길이 있습니다. 신앙도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길을 가야 올바른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그 길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길이라고 합니다. 그 길을 벗어나면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 길을 벗어나면 하나님이 보호해주시기 않는다는 겁니다. 어떤 길입니까?
Ⅲ. 신앙생활도 정확한 길이 있습니다_디모데전서4:6-16, 6:11-20, 디모데후서2:1-13
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1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_디모데전서4:6-16
6절. 좋은 일꾼이 되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7-8절. 이생과 내생에도 이 땅에서도 죽고 나서도 약속이 있느니라. 우리 한국은 너무 칼빈주의를 맹신해서 현혹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칼빈은 사람인데.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고 합니다. 물론 신학적으로 칼빈주의가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완전한데 그나마 신학 중에 좋은 신학인데 그런데 그게 잘못 오용이 되어서 교회만 오면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노력 안 해도 된다고 합니다. 기도 안 해도 된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알미니안주의가 다 맞습니다. 뭐라고 이야기하나요? 자신을 연단하고 합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고 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기 위해서 좋은 교훈으로 말씀으로 양육 받으라고 합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경건은 영적인 연단은 이생과 내생에 유익하다고 합니다. 약속이 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의 길이 있는데 그 길이 뭔가요? 경건이라는 길입니다. 한국에 잘못된 싸구려 복음주의자들이 경건을 율법 취급했습니다.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믿지 않는 자들, 범죄자들, 죄인들에게 율법은 그들이 죄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그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 경건인데. 이 경건을 복음주의자들이 이상한 것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경건이 다 사라졌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경건을 훈련받으라고 합니다. 경건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그 경건이 엄청난 기독교인의 엄청난 무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경건이 우리를 보호해주는 보호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미래에는 교회가 경건을 갖추지 못하면 삽시간에 무너질 것입니다. 엄청난 시대가 몰려올 것입니다. 경건은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길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좋은 교훈으로 양육 받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경건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기도생활을 하고 언어를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그리고 신앙서적을 읽고 다 경건을 위해서 묵상하고 이런 것이 다 경건입니다. 그것을 연단하라고 합니다. 왜? 경건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것을 취하기가 내 것으로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20.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_디모데전서6:11-20
12절. 영생을 취하라, 구원을 취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가만히 있으면 받는다고 배웠는데. 구원을 취하라고 합니다. 싸워서 얻으라고 합니다. 천국은 뭐하는 자의 것이라고요? 침노하는 자의 것, 먼저 쟁취하는 자의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라고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요? 경건을 얻기 위해서 말입니다. 제가 요즘 토요일 아침이면 아들 수영장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을 합니다. 가면 수영을 1시간 합니다. 거기서 유리문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처음에 가면 한빈이가 물이 무서운 겁니다. 잠수하라고 하면 본인은 3초 잠수를 했다고 말합니다. 제가 밖에서 볼 때는 눈까지도 안 내려갑니다. 물이 무서운 겁니다. 그리고 저보고는 3초 잠수했다고 우깁니다. 지금 두 달 했나요. 지금은 바닥에 동전 던져 놓으면 그것을 짚고 올라옵니다. 지금은 무조건 수영장 가자고 합니다. 수영이 최고입니다. 집에 욕조에 물 받아놓고 맨날 잠수합니다. 그만 좀 해, 수도세 많이 나와. 무슨 말이에요? 경건? 쉽게 내 것이 되나요? 포기하지 마세요.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기독교인들이 실력이 없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 공부해야 합니다. 되는대로 막 사는 것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우리 인생에 펼치실지 알아야 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누구를 보내셨나요? 보혜사,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은혜주시고 가르치는 분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의 교재가 무엇인가요? 성령의 교재가 성경입니다. 좋은 교사와 좋은 교재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싸우라는 겁니다. 싸움은 전략도 필요하고 훈련도 필요합니다. 구원 받기 위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합니다.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7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_디모데후서2:1-13
1절. 강하라고 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강해지나요? 은혜 속에서 가만히 있으면 주일날에 교회 한번 갔다 오면 근육이 생기고 멘탈이 강해지고 그렇습니까?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신 세계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다못해 근육이 생기려면 런닝이라도 하고 헬스장에 끊어서 운동이라도 해야 근육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가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면서 어찌 강해질 수 있겠습니까? 어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은 영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은혜 속에서 강해야 되는가? 2절.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신앙의 분명한 목적.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보고 강해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강해지는 것을 디테일하게 설명해놨습니다. 3절. 왜 군사는 고난을 받습니까? 남자들은 금방 이해할 것입니다. 논산훈련소, 고난을 받지 않으면 좋은 군사가 되지 못합니다. 훈련 안하면 좋은 군사가 되지 못합니다. 논산훈련소. 고난입니다. 언제 끝나나, 하루가 언제 지나가나 괴롭습니다. 그런데 훈련소 지나고 나면 몸에 근육도 붙고 총도 쏠 줄 알고 체력도 붙고 신기합니다. 5절. 법대로 경기하는 룰을 다 배웁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다 배우는 것입니다. 6절. 수고하지 않으면 곡식을 얻질 못합니다. 여러분 오랜 세월 엄격한 훈련, 엄격한 규칙으로 경건이라는 것이 생겨야 합니다. 어찌 경건이 율법입니까? 복음은 율법이 없으면 복음의 역할을 못합니다. 복음은 복음을 살아낼 복음을 담을 경건이라는 그릇이 없으면 복음은 아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는 가장 어려운 시대를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힘들지, 어렵지 이게 아니라 우리는 가장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긍정주의 이런 사람이 아닙니다. 대학교 때 그 선배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저희 아버지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끔찍합니다. 사회에 불평하고 부모님 원망하고 신세한탄하면서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그 선배를 만나고 좋은 교수님 밑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단 하루도 일기를 쓰지 않고 지나가지 않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습니다. 그게 자랑이 아니라 경건이 된 것입니다. 경건은 우리를 보호해줍니다. 내 가족을, 내 인생을 보호해줍니다. 그리고 무기가 됩니다. 제가 복음을 이야기할 때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소개할 때 경건은 엄청난 지혜가 됩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보호하신다고 합니다. 왜 보호하시죠? 예루살렘에 누가 있었죠? 보호를 받을만한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느헤미야. 이해가시죠? 하나님은 당신의 새끼들이, 자기만 바라보는 새끼들이 둥지 안에 예루살렘 안에 시온성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들이 기도의 불을 끄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불을 끄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많은 사역들도 해야 합니다. 많은 업무들도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짜 기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방탕하면서 돌아와서 다시 주님 앞에서 경외, 경배하고 남편은 아내를 다시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돌보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축복해주고 기도해주고. 이런 가정들이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은밀한 죄악들에서 벗어나서 악한 마음, 동기들을 방탕함에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교회도 다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고 우리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선교지, 복음이 없는 곳, 배고픈 곳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지 구체적으로 다음시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우리 자녀들 세대에 부흥이 일어나길 원한다면 준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에 메여 그것을 하지 못하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시간, 물질, 환경입니까? 북이스라엘은 전부 그런 탓을 했습니다. 시간이 없다. 돈이 없다. 힘이 없다. 하나님은 지금 남유다에게 이야기하십니다. 너희 애굽 의지하면 멸망당할 거야. 애굽은 멸망당할 민족이야. 그러면서 남유다에 그 메시지를 들은 소수들은 실력을 준비했습니다. 어떤 실력인가요? 믿음입니다. 믿음은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와서 예배드리고 마당 뜰도 밟는데 뒤돌아서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목적 있는 삶. 목적을 이루려면 그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삶을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삶이 아니면 목적이라는 것은 거짓입니다. 아무리 써 붙여도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 붙여도 목회자가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거룩한 목적들이 있습니까? 그것을 찾아보세요. 저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입성했을 때 하나님께 면류관을 받고 싶은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짜 이 땅에서 저의 목적은 주님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뚜렷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교만할 수 없고 나이가 들어도 무릎을 펼 수가 없습니다. 목사가 됐다고 해서 그 하나님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안 사라지기 때문에 전도사님들하고 경쟁합니다. 전도사님들보다 내가 더 주님을 사랑하고 더 뜨겁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신학생들보다 더 뜨겁고 싶습니다. 그 신학생들 너무 뜨겁더라고요. 내가 이 신학생들보다 더 뜨거워야 되지 않겠냐. 어려운 시기지만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바로 세우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 갱신하고 도전할 수 있는. 어려운 시기라고 저들처럼 대충 굴러 가는대로 신앙생활하지 않고 정확하게 건강한 신앙생활, 거룩한 목적을 하나님 앞에 발견하고 구체적인 준비를 해서. 주님. 주님이 사용하실 때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금과 같이 단련되어서 그렇게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저와 여러분,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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