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3월 14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2부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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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
본 문 |
이사야 29:1-14 |
오승주 목사
Ⅰ. 아리엘은 무엇인가?
오늘 29장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주시고 나서 그 이유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질 텐데 어떻게 해야 될지 그런 내용들이 29장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 29장에 보면 아리엘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오늘 설교 자체가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입니다. 아리엘 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사자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면 천사,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군대가 될 수 있습니다. 구약에 하나님의 사자가 되게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또 어떤 본문에서는 영웅이라는 단어도 아리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믿음의 영웅 할 때 그 영웅. 그리고 또 하나의 단어가 있습니다. 단어가 똑같은데 하나님께 제사, 예배를 드릴 때 제물을 각을 뜨고 내장을 꺼내기도 하고 이렇게 하고 나서 제물을 최종 마무리로 성전의 화덕에 제물을 태우는데 그 제물을 태우는 성전의 화덕을 아리엘이라고 합니다. 발음이 똑같습니다. 두 가지 의미를 다 이해를 하고 있어야 오늘 본문이 해석이 되고 이해가 됩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의 사자, 영웅이라는 뜻이라면 예루살렘 성, 성읍에 대한 메시지가 오늘 예루살렘 성을 보고 하나님께서 아리엘이여라고 하셨는데 이 성읍의 과거의 영광을 반어적으로 상기시키는 말이 됩니다. 예루살렘 성에 대한 역사를 이해해야 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여러분 예루살렘 성이 원래 어떤 성인가요? 원래 예루살렘 성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마치고 가나안을 정복했을 때 여부스 족속이 살던 성입니다. 여호수아서에서는 여부스 족속이라고 딱 나와 있지는 않고 아모리 족속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원래 예루살렘 성 자체가 여부스 족속이라는 존재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여호수아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죠? 가나안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을 다 쳐서 멸하라고 하셨습니다. 단 한 명도 남겨두지 말고 그 우상을 다 제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고 놀랍게 이 예루살렘 성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예루살렘 성이 굉장히 견고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여리고도 무너뜨리고 견고한 성들을 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무너뜨리셨습니다. 희한하게 예루살렘 성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이방 민족, 여부스 족속이 예루살렘 성에서 계속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가나안 땅 정복을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우상을 다 제거하지 못하고 그 족속들을 다 멸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디까지 오냐면 다윗 때까지 옵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이스라엘의 왕권을 접수하기 전에 사무엘하에 보면 어떤 장면이 나오죠? 예루살렘 성을 진을 치고 둘러싸서 정복합니다. 그리고 여부스 족속을 완전히 멸절시키십니다. 다윗이 그냥 예루살렘 성을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을 다윗은 늘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 민족이 이렇게 어려운지, 우리가 이 가나안 땅에서 우상을 섬기고 실패하고 있는지 다윗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 살렘 성을 다윗이 사무엘하를 보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진을 사방으로 쳐서 여기를 정복하는데 여부스 족속을 죽이고 멸합니다. 그러면서 이 여부스 족속을 뭐라고 지칭을 하냐면 맹인이고 다리 저는 자라고 지칭을 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맹인을 다 죽이고 다리 저는 자를 다 죽여라. 그리고 그들이 다시는 예루살렘 성에 함께 있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 본문만 봤을 때는 조금 잔인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리 저는 자, 맹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여부스 족속을 상징합니다. 여부스 족속을 완전히 멸하고 다윗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해서 거기를 뭐라고 하냐면 다윗 성이라고 명칭을 겁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은 통일 왕국이 되고 아주 강력한 나라가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맹인이었고 다리 저는 자의 상징이었던 여부스 족속이 사라집니다. 맹인과 다리 저는 자는 성경에서 계속 나옵니다. 나중에 어디에 나오죠? 히브리서, 요한계시록에도 상징해서 계속해서 나옵니다. 다윗이 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역사적인 관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너희가 또 맹인이 될 것이라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이 그대로 살지만 맹인이 될 것이다. 엄청난 의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 아리엘을 번제단이라고 해석을 한다면 제물을 태울 때 하나님의 진노가 멈췄습니다. 그 성전의 화덕을 아리엘이라고 뜻한다면 그럼 어떤 의미가 있죠? 번제단은 예배를 상징하고 예배의 하이라이트를 상징합니다. 하나님 앞에 흠향하고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상징하는데 그것은 어떤 것이죠? 우리가 죄를 죽이고 우리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또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우상을 섬기던 여부스 족속이 살던 성에서 다윗이 거기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했던 것이 예배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의 역사는 평생 예배드리는 역사입니다. 다윗은 본인이 개인적으로 실수를 했건 본인이 어떤 잘못을 했건 그런 역사들도 있겠지만 다윗의 업적 중에 하나가 뭐냐면 예배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평생을 그 예루살렘 성에서 예배를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그냥 예배드리자 이게 아니라 예배드릴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했습니다. 성가대를 조직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곡들을 만들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드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윗의 평생소원이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이고 하나님께 은혜 받는 것이고 그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시편을 통해서 다윗이 얼마만큼 하나님을 사모했는지 얼마만큼 예배를 사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게 아리엘, 번제단 입니다. 그런데 다윗처럼 하나님을 예배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윗의 시대 때 엄청난 나라의 강력함들, 또 평안을 주셨습니다. 다윗의 나라를, 인생을 한 마디로 평가를 하면 샬롬이라고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샬롬 왕 아닙니까? 그런 다윗인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이 아리엘을 하나님이 슬퍼하신다고 합니다. 번제단을 슬퍼하신다고 합니다. 어떻게 됐죠? 우리가 이사야 1-3장에서도 본 것처럼 이 번제단은 뭐만 남았어요? 형식만 남아있는 것입니다. 제사만 드린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해마다 절기 때마다 구원을 받고 싶고 죄 사함은 받고 싶으니까 엄청난 양의 짐승을 잡아서 태워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지만 그것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형식과 관습, 전통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두 가지 의미가 오늘 본문에 다 내포가 되어 있습니다.
Ⅱ.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 제사만 지내면 된다고 예루살렘이 끄떡없다고 생각한 남유다_이사야29:13-14
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_이사야29:13-14
13절. 지금 예루살렘 성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받았을 뿐이라 이게 중요합니다. 이 사람의 계명으로 받았을 뿐이라를 예수님이 나중에 마태복음에서 인용하시는데 이게 바리새인의 관습, 바리새인, 장로들의 전통으로 인용하십니다. 그러니까 현재 히스기야 왕 시대의 예루살렘은 사람의 가르침으로 관습이나 전통으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마음으로 드린 것이 아니며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14절. 기이한 일을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기이한 일이 뭐라는 것을 이 본문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대해서 하시려고 하시는 일이 뭐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 포도주와 독주 때문이 아니야_이사야29:9-12
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11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12 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_이사야29:9-12
9절. 여기서 맹인이 나옵니다. 심지어 어떻게 말씀하셨냐면 11-12절. 지금 어떤 상황이냐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이유가 이 사람들이 타락한 이유가 포도주와 독주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지난 주 말씀에 포도주와 독주가 나왔죠? 이런 것입니다. 지금 세상 문화가 교회 안에 들어왔어, 밖에 있는 강력한 유혹이 교회 안에 들어왔어 그것 때문에 교회가 망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과 거대한 리워야단의 세력 때문에 교회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죠?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도주와 독주라는 이런 핑계를 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영적으로 얼마나 무감각했는지 놀라운 것은 10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그들에게 부어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눈을 감게 하셨다고 합니다. 심지어 선지자들과 그들을 지도해야 될 선견자들, 영적인 지도자들까지 덮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 봉한 책을 열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글을 아는 사람도 못 열고 글을 모르는 사람은 아예 글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맹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맹인은 누구라고요? 맹인은 여부스 족속입니다. 원래 예루살렘 성에 살았던 여부스 족속이 맹인이고 다리 저는 자였습니다. 그들의 명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보고 맹인이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맹인이구나, 너희가 지금 영적으로 무감각하구나. 얼마나 영적으로 무감각한지. 맹인이 되고 다리 저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이 아니고 맹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고 다리를 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말씀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저는 다리를 일으켜 세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영적인 눈을 떠서 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맹인이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부스 족속을 다윗 때에 완전히 제거를 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뭐가 되었다고요? 여부스 족속이 된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이게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교회가 그럴 수 있겠구나. 교회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뜨거웠는데, 신실했는데 차갑게 식어버릴 수 있겠구나. 지난 주 금요일에 설교를 했습니다. 이름도 같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사도바울이 이방에서 얼마나 가슴 뛰는 구원을 눈물로 기도하면서 이방에 교회를 세우고 한 영혼, 한 영혼이 돌아오는 것이 가슴 뛰며 설레는 마음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보고를 했습니다. 여러분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오고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나고 고난과 환란 가운데서 교회들이 세워지는 것을 보고했으면 예루살렘 교회가 잔치를 벌이든지 찬송을 하든지 감사를 하든지 해야 하는데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이 뭐라고 했죠? 그건 됐고, 너 이야기 들어보니까 할례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다니더라? 너 유대인의 관습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그거 안 지켜도 구원 받는다고 말하고 다니더라? 바울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가 모여서 바람 같이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주의 복음으로 뜨거운 그런 교회였잖아요? 하루에 3,000명, 5,000명씩 구원 받고 교회가 진짜 얼마나 사랑했는지, 음식을 서로 나누고 재산을 서로 나눠서 그 환란과 핍박 속에서 하나님의 교회로 세워졌는데 완전히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얼마나 차갑게 식어버렸냐면 그 뒤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를 쳐다보지도 않으셨습니다. 촛대를 옮겨 버리셨습니다. 어디로요? 안디옥 교회로, 이방교회로. 완전히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바울은 그 뒤로 예루살렘 교회와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오늘 본문이 딱 그렇습니다. 이 예루살렘 성이 다윗 때 평생의 에너지를 다 동원해서 하나님의 예배를 세우고 은혜를 받고 회개했습니다. 다윗의 소원이 뭔지 아시죠? 하나님 떠나지 마세요, 하나님 우리는 은혜 없이는 못 살아요, 하나님 성령을 거두어가지 마세요. 그런 마음으로 중심으로 드리던 예배가 다 사라지고 오늘 뭐만 남았냐면 딱 사람들의 가르침, 관습, 제도만 남은 것입니다. 영적으로 완전 무감각해진 것입니다. 포도주와 독주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가 관습, 습관, 전통만 남았습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 막을 수 있어요? 막을 수 없습니다. 다 빼앗깁니다. 지금 그런 상황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맹인이 되고 불신자들처럼 똑같이 육신의 눈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사실 불신자들도 우리 육신의 눈도 내가 어떤 지식과 지혜를 가지냐에 따라 보는 것이 다릅니다. 맞죠? 똑같은 사건을 봐도 한 살이 보는 것과 열 살, 스무 살이 보는 사건과 일반 사람이 보는 사건과 대학 교수, 지도자가 보는 사건은 다릅니다. 사건이 실제로 다릅니다. 더 깊이 보고 제대로 보고 넓게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뭘 소유했냐에 따라서. 내가 어떤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보는 시야가 완전히 다릅니다. 여러분이 매일 성경을 읽고 계시잖아요?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을 쳐다보면 조금 시야가 달라질 것입니다. 해석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맹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다리까지 절게 되었습니다. 아예 움직이지도 않고 주저앉아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복음으로 눈을 열어야 되고 저는 다리를 일으켜 세우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보고 일어나라고 합니다. 일어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은 완전히 주저 앉아있습니다. 완전 맹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맹인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영적으로 완전 무감각해져 있습니다. 완전 식어버렸습니다. 차갑게 차디찬 교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_이사야29:1-8
1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2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3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에워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4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이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이리라 5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날려 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7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요새를 쳐서 그를 곤고하게 하는 모든 자는 꿈 같이, 밤의 환상 같이 되리니 8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_이사야29:1-8
1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2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_이사야29:1-2
지금 두 가지 의미가 붙어 있습니다. 아리엘을 슬프다 하시는데 괴롭게 하신다고 하는데 내게 그 아리엘이 또 아리엘이 되리라 하시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말장난이냐? 아닙니다. 이 예루살렘 성에 아리엘이라는 제단이 있고 또 하나님의 사자가 더 이상 예루살렘 성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슬픈 것입니다. 또 하나는 번제단의 제사가 형식적으로 드려지고 있어서 슬픈 아리엘입니다. 이 예루살렘 성을 하나님은 뭐 같이 하신다고 하시냐면 아리엘처럼 하신다고 하십니다. 다시 하나님의 사자처럼 만드시고 또 하나는 번제단에서 불로 제물을 태우는 것처럼 이 예루살렘을 태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주전 701년에 앗수르가 여기를 둘러 쳤습니다. 18만 5천 군대가 다윗이 여부스 족속을 몰아낼 때 진 쳤던 것처럼 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범죄 한 이방 민족을 사용하셔서 예루살렘을 진 쳤습니다. 그 때 히스기야가 어떻게 했어요? 회개했습니다. 베옷을 입고 왕궁에 있던 사람들 다 베옷을 입히고 이사야 앞에 가서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 가서 회개했습니다. 그 회개가 아리엘입니다. 예루살렘을 아리엘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하나님의 사자가 동원 되서 앗수르 족속의 18만 5천을 물리쳤습니다. 다시 아리엘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고통을 받게 하시는데 남유다가 이런 심판을 받는데 심판을 왜 받게 하시냐? 그래야 우리 후대들에게 그들의 후손들에게 영적인 무감각을 그대로 물려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 여기를 괴롭게 하고 적당한 견책으로 슬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만드시냐면 3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에워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_이사야29:3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이렇게 시작을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내가 너를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에워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이것을 누구를 사용하셨어요? 앗수르를 먼저 사용하셨고 또 한 번 바벨론을 사용하셨습니다.
4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이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이리라_이사야29:4
무슨 소리인가요? 남유다가 하나님의 심판 전에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우리 견고한 성, 능력 있는 남유다, 우리는 애굽과 동맹을 맺고 세상의 문화를 받아들여서 강력한 예루살렘 성이 되었어. 엄청 교만하고 오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만드셨나요? 하나님께서 땅바닥에 내친다고 하셨습니다. 땅바닥에 내친다는 표현을 누가 제일 많이 썼죠? 다윗이 제일 많이 썼습니다. 하나님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어떤 상태죠? 내 영혼이 진토에 진흙에 땅바닥에 붙어버렸다고 합니다. 티끌에 붙어버렸다고 합니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처럼 희미한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왜? 힘이 하나도 없어서, 심판 받아서. 그런데 이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인 것을 아시죠?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는데 영적인 눈을 띄워 주시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간섭해서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교회로 세워주시려고 하는데 우리가 오만하고 교만해서 움직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리 영혼을 진토에 바닥에 붙이십니다. 의지할 것 하나 없게 만드십니다. 다윗을 그렇게 훈련시키셨습니다. 그의 영혼을 진토에 완전 바짝 붙여버리셨습니다. 너 나만 바라봐, 나만 의지해. 그런데 그게 우리에게 인간의 입장에서는 고난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보호하심이고 농부 되시는 하나님이 기묘자 되시는 하나님이 지혜가 광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입니다. 그 증거가 뭐에요?
5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날려 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7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요새를 쳐서 그를 곤고하게 하는 모든 자는 꿈 같이, 밤의 환상 같이 되리니 8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_이사야29:5-8
그들은 앗수르, 바벨론입니다. 이런 것입니다. 내 자식들을 깨워야 되겠고 저는 다리처럼 앉아 있는 자식들을 일으켜 세워야 되겠고 내 자식들 눈을 떠주고 싶은데 하나님이 범죄가 심각한 우상을 섬기는 이방 민족 앗수르와 바벨론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사용하시는데 이것을 그냥 두냐? 그들에게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시고 그냥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감히 내 새끼를 쳐? 감히 예루살렘을 쳐 너네들이? 뭐라고 하냐면 겨와 같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그렇게 보호하십니다. 그런데 그것도 맞는 것이 예루살렘 성이 든든히 서 있지 않으면 앗수르와 바벨론도 구원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 시대에 무너지면 교회가 진리를 사수하지 않고 있으면 교회를 모함하고 교회를 함몰시키는 저들을 구원할 길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그래서 예루살렘 성을 진흙 바닥에 완전히 다윗이 경험한 것처럼 눕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그렇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손들이 후대들이 부흥을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그들을 태워 번제단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번제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것은 이사야 1-3장에서 우리가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합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인애를 원하시고 순종을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내 성전 뜰만 밟고 가는구나. 너희들이 절기 때만 사방팔방에서 와가지고 짐승을 하도 많이 태워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그러셨죠? 그들의 제사를 역겹다고 하셨습니다. 관습만 남아있고 전통만 남아있는 그들의 예배를 하나님이 역겨워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사건이 신약에도 똑같이 벌어집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예수님이 그들의 종교, 기도, 예배 예수님께서 역겹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들의 기도를 들은 적이 없어, 너희들의 예배를 받아본 적이 없어. 정말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역사를 하나도 놓치지 않습니다. 다 연결되어 있으며 오늘 날 우리의 신앙까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냐?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봉한 책을 다시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야 합니다. 단지 하루에 성경 3장씩 읽자 이게 아니라는 것을 주일설교를 통해서 확인하고 가셔야 합니다. 제가 거창하게 한국교회 이야기하지 않아도 오늘날 교회를 봤을 때, 우리의 모습을 봤을 때 우리가 정말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저는 젊으니까 어떻게 하면 교회가 부흥하고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장하고 얼마나 이런 것을 살펴보고 공부하겠습니까? 얼마나 많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교회 안에 그런 것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아서 있지만 하나님이 이 교회에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이 교회는 그냥 종교집단인 것입니다. 교회의 미래가 누구 손에 달려 있냐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냐, 안 하시냐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받으시냐, 안 받으시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끼리 바리새인이 되어서 세를 구축해서 탄탄하게 교회를 세워간다? 우리는 만족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이 교회와 상관이 없으시다면 이 교회는 아무 쓸모없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뭘 해야 하냐면 하나님이 떠나시지 않도록 하나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표현이 이상하지만 하나님 발목이라도 붙잡아야 합니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어가지 마옵소서. 한국교회가 얼마나 중요한 일들을 많이 했습니까. 사실 우리나라 복지? 개신교가 70-80프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지금 억울해합니다. 어떻게 나라에서 이럴 수 있냐.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많이 하는데. 선교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어려운 나라, 가난한 나라, 제 3세계 국가에 가보면 한국선교사가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교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못하겠어요. 자녀들 교육도 어렵습니다. 자기 인생 다 쏟아서 소수민족에게 가서 그들과 살면서 교회 세우고 있는데 큰 유명한 선교사 몇 분을 빼고는 이름도 모르는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정말 중요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 역사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일을 많이 한 그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일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우리가 복지를 많이 하고 어렵고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돕고 교회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력으로 교회가 존재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게 아무리 아름다운 전통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떠나시면 교회가 아닙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지 아셔야 합니다. 이런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교회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세운 예루살렘 성입니다. 다윗이 구축한 시스템들입니다. 그게 사람들의 가르침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우리 다 그런 식입니다. 우리의 과거의 영광. 한국교회가 말이야 옛날에는. 이런 겁니다. 뭐가 없죠? 다 식어버렸습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을 향한 뜨거움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들. 오늘 하나님이 우리보고 맹인이 되라고 하시고 잠들게 하는 영을 허락하신 것처럼. 마치 그런 것처럼 이렇게 교회가 식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 뜨거웠던 초대 교회가 완전 식어버려서 다시 율법과 관습, 전통만 남아있던 것처럼. 지금 예루살렘 성이 딱 그 정도인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오늘 본문을 예수님이 그대로 인용하신 것이 마태복음 15장입니다.
Ⅲ. 봉한 책을 열어라
-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시대_마태복음15:8-20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_마태복음15:8-20
8절 똑같이 인용하셨습니다. 9절 사람의 계명.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장로들의 전통입니다. 이것으로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계속 공격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 예수님 믿으라고 주신 계명, 율법으로 예수님을 공격했습니다. 10-12절 듣고 깨달으라. 들어라 깨달으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왜 그게 잘못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요? 13절 하나님은 농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심는 것은 절대 뽑히지 않아요,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지 않으신 것은 다 뽑힙니다. 14절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이사야 말씀처럼 똑같은 말이 나옵니다. 15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못 알아먹습니다. 왜요? 베드로는 구약을 모릅니다. 이사야서를 모릅니다. 16-20절 지금 음식 이야기가 아니다. 더러운 음식을 먹어도 다 뒤로 나온다. 그게 아니라 너희 마음이 부패하고 마음이 죄악으로 관용해서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 악한 말, 살인, 간음, 음란이 다 어디서 나오냐? 마음에서 나온다. 그런데 너희 마음이 어떻게 되었느냐? 맹인이 되었다. 그리고 마음에 뭐가 심겨져 있냐? 죄가 심겨져 있다. 겉으로는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고 나를 예배하지만 너희는 진짜 나를 믿지 않는구나. 하나님이 심은 것은 하나님이 거두실 것이지만 하나님이 심지 않은 죄는 그대로 둬라. 다 뽑힐 것이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어디로 간다고요? 구덩이로 간다.
-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_마태복음16:5-20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7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_마태복음16:5-20
5-6절 갑자기 주의하라고 합니다. 떡을 안 가져왔는데 예수님이 갑자기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라고 하십니다. 7절 누룩 이야기하시니까 떡도 안 가져 왔는데 왜 예수님이 누룩 이야기를 하시지? 이런 것입니다. 8-11절 오병이어 사건 이후입니다. 계속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이 무엇입니까? 맹인 아닙니까? 그들이 심은 것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12-14절 지금 이게 어떤 상황이냐면 예수님이 지금 바리새인들, 유대인들에 대해서 그들이 맹인이 될 것이고 마음에서 나오는 죄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하시면서 떡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사실 제자들이 떡을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 오병이어로 아무리 떡을 아무리 배부르게 먹어도 하루 지나면 우리 또 배고픕니다. 그때 좀 들고 왔어야 했는데 아무리 오늘 배불러서 내일 안 먹을 것 같아도 하룻밤 자고 나면 어제 먹을 것 좀 아껴둘걸 이런 생각이 나는 겁니다. 제자들이 떡에 관심이 있는데. 예수님의 말은 내가 지금 떡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야. 누가 떡이라는 거에요? 마태복음에 예수님이 떡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면서 물어보십니다. 지금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사람들이 뭐라고 이야기하죠?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지금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가 어떤 상태죠? 맹인 된 상태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 그를 못 알아봤습니다. 구약의 말라기부터 세례요한 활동하고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무려 500년 동안 선지자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단 한 번도 없었고 하나님의 임재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암흑시대입니다. 로마의 포로가 되고 백성들은 굶주려가고 전염병이 돌았는데 이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세,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똘똘 뭉쳐서 폭리를 취하고 육신적으로 백성들이 죽든 말든 영적으로는 더 심합니다. 온갖 교리를 만들고 전통을 만들어서 더 빡빡하게. 로마의 포로가 되더라도 정의로운 사람 하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세례요한을 죽였습니다. 정의로운 사람 하나 나타났는데. 그 500년 동안 하나님의 임재, 음성 한마디 없었습니다. 완전 맹인이 되고 저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차갑게 식어서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대인들이 말합니다. 엘리야나 예레미야나 되겠지. 이런 식입니다.
-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니라_요한복음1:1-14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_요한복음1:1-14
1절 이 말씀이 누구라고요?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또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예수님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누구 안에요? 예수님 안에요, 말씀 안에요.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본당에 있는 전등의 빛이 아니고 어둠을 비치는 빛입니다. 11절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맹인이 되고 저는 다리로 주저앉아 있는 것입니다. 지금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본인 스스로가 생명의 떡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 때 떡을 떼어주시고 정확히 말하면 빵입니다. 빵을 떼어주시고 포도주를 나눠주시며 이건 내 살이다, 내 피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진짜 명령하셨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는 항상 이 성찬식을 해야 됨을 명령하셨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계속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 당신이 빵이고 당신이 떡인데 예수님을 먹으라는 것을 설명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먹어요? 예수님이 누구라고요?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셨다고 하십니다. 12절 여기서 영접은 영접 기도 아닙니다. 영접은 무엇인가요? 우리 집에 진짜 중요한 손님이 오시면 영접한다 라고 표현을 합니다. 우리나라에 외국에 대통령이 오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나요? 공항에 가서 영접합니다. 가장 좋은 숙소를 내어주고 합니다. 저 같은 목사도 이름도 없는 목사지만 해외에 가면 제 친구, 아는 집사님들이 집에 초대해서 하룻밤 묵게 해주십니다. 그러면 가장 좋은 방을 주십니다. 미국에 가면 제 친구는 애들 방에 커튼이 없다고 시차적응 해야 하니까 안방을 줍니다. 그것을 뭐라고 그러나요? 영접이라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을 모시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영접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겁니다. 어떤 분인 줄 알고 내 삶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영어단어 receive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영접을 하는 것이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13절에 예수님이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관습과 전통으로 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가르침으로 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4절 이 예수님을 모셔드린 사람은 아버지의 영광을 보기 때문에 눈이 열립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일으켜 세웁니다. 살아납니다. 회복합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될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교회로 어떻게 살아야 될지 힘을 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은 세상이 크게 보일까요? 작게 보일까요? 세상이 작게 보입니다. 예수님을 정말 우리 삶에 모신 사람은 세상에 아무리 큰 파도가 치고 광풍이 불어도 엄청난 유혹이 우리에게 마수처럼 어둠이 우리를 진치고 둘러싸고 있을지라도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샬롬. 평안합니다. 그것이 예수님 믿는 사람의 엄청난 힘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디가요? 예루살렘 성이. 다윗 때에는 그 하나님이 말씀하신 메시아, 예수님을 모시려고 그것을 깨달으려고 그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려고 다윗이 늘 예배 드렸습니다. 진심으로 온 마음 다해 정성을 다해. 그 증거가 시편입니다. 다윗의 시편을 읽어보세요. 얼마나 사모했는지 모릅니다. 나라가 어땠습니까? 주변에 강대국들이 없었나요? 앗수르, 바벨론 없었나요? 다윗에게는 이방의 강대국들이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한 가지 걱정은 자기가 죄 지을까봐, 자기가 하나님을 떠날까봐, 하나님이 나를 떠날까봐. 그게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때는 이 이방인들이 너무 크게 보였습니다. 이방민족들이 너무 거대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애굽과 동맹을 맺으면 앗수르처럼 문화를 발전시키면 바벨론처럼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되면 우린 안전할 거야. 큰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오만하고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예루살렘 성을 진토에 붙여버리셨습니다. 바닥에 내 치셨습니다. 맹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리를 저는 여부스 족속처럼 영적으로 무감각해진 그들이 다시 눈을 열도록 다시 일어서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무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이 신약에 와서도 그대로 똑같이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에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 첫사랑을 잃어버렸구나. 하나님이 요한계시록에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다 갖추고 있는데 시스템도 갖추고 있고 제도도 다 갖추고 있는데 첫사랑을 잃어버렸구나. 너희가 식어버렸구나. 그래서 히브리서에는 저는 다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라고 하십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봉한 말씀을 다시 열라는 것입니다. 봉한 말씀을 열라는 것이 성경책을 펴서 읽으라는 말도 있지만 다시 예수님을 우리 삶에 중심에, 말씀이신 예수님을 우리 교회의 중심에, 우리 인생의 중심에 다시 이 예수님을 모시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이 두렵지 않은 눈이 열리고 세상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보게 되고 그의 영광을 보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져서 우리가 이 땅에서 정말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예수님을 모셔 들이라는 겁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냐? 봉한 말씀을 열으라는 겁니다. 글을 모르냐? 글을 배워서 읽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에 사람들은 나 읽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나 글도 모르고 글을 알았는데 봉해져서 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식어버린 무감각해져버린 예루살렘 교회. 예수님이 우리의 빵, 떡이십니다. 그것을 잊지 말고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매주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코로나인데도 하더라고요. 집집마다 성찬기, 카스테라 빵을 포장해서 배달시켜서 모든 성도 가정에 보내서 가정에서 성찬예식을 하게 하더라고요. 굳이 그 말이 아닌데 예수님 말씀이. 그건 안 해도 성찬식은 안 해도 성경은 읽어야 합니다. 지금 제도와 관습만 남아있습니다. 예수님을 한 번 영접하면 끝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침마다 성경을 열어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그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 맹인으로 세상으로 살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어떻게 됩니까? 부모님의 신앙이 맹인이어서 자녀들을 인도하면 어떻게 될까요? 부모님이 다리가 절어서 주저앉아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자녀들은? 구덩이에 다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심은 죄의 씨앗이 나중에 입으로 다 나온다고 합니다. 지금 예수님이 그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남유다가 딱 그런 상황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나중에 예루살렘 성이 다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실 때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왜요? 그건 예수님이 아니니까. 그 제도와 관습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그 귀한 분을 모시고 사는 자. 그래서 요한복음 15장에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합니다. 성경을 보세요. 계속해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접속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을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길, 그 방법이 뭐냐? 성경이라고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경 읽는 것. 우리가 그냥 성경 좀 읽을까? 우리 교회 시스템이 성경 읽는 거야. 우리 가스펠교회는 성경 읽는 게 특징 인가봐. 그런 것 아닙니다. 제가 그런 프로그램 하려고 성경 읽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역사를 다 공부하고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제가 내린 결론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흥을 주시는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부흥을 준비하지 않으면 다음세대에 부흥이 오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의 때에 부흥이 오지 않더라도 내 다음 세대가 우리 자녀 세대가 이 부흥을 겪도록 난 준비해야 되겠다. 그게 다윗의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차갑게 식어버린 교회 다시 회복시키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모여서 회의하면 뜨겁게 회복이 되나요? 아닙니다. 성경 읽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으십니까? 말씀 읽을 때마다 죄악 된 내 모습이 회개되지 않으십니까? 성경 읽을 때마다 새로운 지혜가 생기고 깨달음이 생기지 않으십니까? 그런 은혜를 받고 있는 동안에 예수님이 내 삶에 동행하고 함께하시는 느낌을 받는 동안에 뭐가 오나요? 부흥의 때가 오는 겁니다. 눈을 떠서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봐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이 작게 보입니다. 여러분 은혜와 진리로 충만해지면 저는 다리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으로 우리 삶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 길이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이 연약한 길이고, 별 볼일 없는 길 같지만 하나님께는 꽃 피우는 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범죄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생을 다 살았는데 하나님께 범죄 하면 끝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범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신앙생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생명의 떡,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소중한 예배. 예루살렘처럼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고 몸으로만 드리고 입술로만 공경한다고 하는 신앙 의미 없는 것입니다. 껍데기 아무 쓸모없습니다. 목사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인기가 있다, 목회를 깔끔하게 잘하네 이런 말이 저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인정하지 않고 저를 떠나시면 저는 아무 쓸모없는 인간입니다. 목회 완전 실패한 것입니다. 교회가 천명, 2천명, 3천명 되는 게 저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오 목사 센스 있네, 깔끔하네, 목회 잘하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데. 중요한 것은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떠나지 않고 계시는 것입니다. 계속 번제단에 그 제사가 하나님께 흠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속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촛대를 옮기지 않는 겁니다. 그게 우리에게 간절한 기도가 되어야 하고 간절한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세상에서 진짜 힘이 있는 저들을 구원할 수 있는 진짜 건강하고 복음을 전해줄 수 있고 저들을 구원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게 힘입니다. 그게 본질입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과거 과거가 어쨌다, 저쨌다 이야기할 것 없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고 있습니다. 다윗 때는 말이야 예루살렘 성이 이랬다 하지만 다윗은 너희들처럼 그렇게 신앙생활하지 않았어. 예수님이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회복해야 할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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