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5월 16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2부예배) | |
제 목 | 랍사게_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
본 문 | 이사야 36:1-22 |
오승주 목사
Ⅰ. 앗수르(산헤립)의 공격
3주간에 걸쳐서 히스기야의 사건, 히스기야 때 앗수르가 공격해오고 그것을 방어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입니다. 참 재밌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성경이 순서대로 시간대별로 나열되어 있으면 좋은데 이사야서 자체가 그런 예언서가 아니고 전체를 설명하고 예언했다가 오늘 갑자기 히스기야의 때에 앗수르가 쳐들어온 장면을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36장, 37장에 그런 내용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설교를 거의 한 장씩 하고 있습니다. 한 사건, 한 챕터씩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내용이 많을 수도 있겠다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많은 내용이 함축되서 전달될 때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또 너무 디테일하게 설교를 하면 반복되는 설교들이 너무 자주 있다보면 피로도가 있을 것 같아서 한 장씩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을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앗수르가 공격해왔습니다. 이 당시 앗수르는 근동의 패권을 장악한 아주 강력한 아시리아입니다. 그때의 왕이 산헤립이라는 왕입니다. 아주 유명한 왕이고 실력자입니다.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고 이제 남유다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왔냐면 18만 5천입니다. 여러분 말이 18만 5천 군대이지 새까맣을 것입니다. 18만 5천 군대가 예루살렘 성 주변을 둘러싸서 포위한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사람만이 아니라 그 당시 앗수르가 나라들을 정복했을 때 왜 강력한 실력가였냐면 말과 병거가 굉장히 뛰어났습니다. 기마부대가 굉장히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말을 잘 다뤘습니다. 그 말은 오랫동안 전쟁준비를 했던 나라였습니다. 굉장히 실력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오늘 본문에 보시면 알겠지만 18만 5천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둘러싸고 전쟁을 하기 전에 랍사게를 보냈습니다. 랍사게는 사람이름이 아니고 술 맡은 관원장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비서실장, 총리, 장관이라고 합니다. 랍사게는 술 맡은 관원장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실력자입니다. 왕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 비서실장, 총리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실력자가 장수 노릇까지 하고 있습니다. 랍사게를 보내서 지금 뭐하는 내용인가요? 회유하는 내용입니다.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키려고 합니다. 백성들에게 항복해라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 장면입니다. 예루살렘 성 입장에서는 참 암울한 상황입니다. 분명히 1년 전에 재물을 보내서 우리를 쳐들어오지 말아주세요 라고 했는데 1년 만에 다시 쳐들어왔습니다. 지금 상황은 굉장히 암울한 상황입니다. 1년 전에는 앗수르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많이 했고 다른 나라를 점령하는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 다 정복하고 나서 예루살렘도 정복하려고 포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굉장히 두려웠을 것 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그 작은 성에서 밖을 쳐다보면 새까만 말과 기병들,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가진 아시리아 군대가 주변을 둘러 쌓고 있으면 얼마나 두려웠을 까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백성들이 자기 대변을 먹고 오줌을 먹을 정도로 밖에 나갈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말은 두렵다는 것입니다. 엄청 두려운 상황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지 않으면 세상은 늘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 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공격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말에 동의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는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면 저들의 공격이 사실 우리에게 무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다는 말을 쉽게 이야기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 인간관계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맺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들을 해야 합니다. 몇 일전 기사에 보니까 아프리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관심이 있어서 자세히 보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우리나라 정부에 도움을 요청한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들은 돈도 보내고 도로도 닦아주는 정책들을 하는데 우리나라가 하는 것은 우리나라 농업기술이 세계적이잖아요? 특히 벼농사 기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합니다. 그 기술을 아프리카에 전수해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을 주면 그냥 돈을 쓰고 말아버리는데 필요한 기술을 전수해서 자기들이 농사를 짓고 그것에서 나오는 쌀로 밥을 먹는 그런 기술을 전수해주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세네갈 이런 나라들은 우리나라 시골풍경과 비슷합니다. 논농사 짓는 기술을 우리가 투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와 좋은 관계를 맺으면 그런 기술도 전수해주고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서 사람을 파견해서 그게 익숙해지고 이해될 때까지 도와주는 일들을 우리나라가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잘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건은 UN사무총장을 내는데서 나왔습니다. UN사무총장 후보자가 우리나라에서 한 명 나왔고 어디서 나왔냐면 나이지리아 사람이 나온 것입니다. 나이지리아가 사무총장을 내려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나이지리아가 우리나라를 굉장히 많이 비방했고 누구를 등에 업었냐면 중국을 등에 업었습니다. 중국이 그런 일을 굉장히 잘 합니다. 중국을 등에 업어서 결국 나이지리아가 사무총장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가 마음이 상한 것입니다. 너무 비방을 많이 하고 나이지리아가 우리와 좋지 않은 나라들과 그런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문제는 뭐냐면 우리나라가 바로 옆에 있는 나라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나이지리아도 그런 도움을 받고 있었고 도움을 받으려고 요청했을 때 우리나라 대사들이 너네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나이지리아 입장에서는 답답한 것입니다. UN사무총장을 냈지만 실제로 도움을 받아야 할 농업기술이라든지 우리가 도움을 주고 있었는데 그런 도움들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제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좋은 관계가 깨지면 뒤에서 내 욕하고 다니는데 내가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내 앞에서는 잘하는 척하지만 뒤에서는 제 욕하는 것을 뻔히 알면 도울 수 있나요? 돕지 못합니다. 그런 거짓된 관계는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가족도 그렇고 부모자식 관계도 그렇고 부부관계도 그렇습니다. 뭐든지 관계가 좋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내게 유익이 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투자를 합니까?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지금 남유다는 자기들은 예루살렘 성도 지어놓고 성전도 지어놓고 거기서 제사법도 만들고 시간도 들여서 제사도 잘 드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내가 너희들을 떠났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지금 읽고 있는 에스겔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서 떠났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잘 맺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 편에서는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뭐에요? 그들의 예배는 다 껍데기였습니다. 속이 비어버린 강정 같은 것입니다. 속이 비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들을 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실 때라야. 우리도 그렇습니다. 강도가 물건을 빼앗으려고 하는데 바로 옆에 경찰이 있다? 보디가드들이 있다? 그럼 뺐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는 남유다가 강력한 나라가 되지만 하나님이 떠났기 때문에 앗수르의 공격은 두려움이 되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공격은 엄청 무서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두렵지 않을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판단을 할 사람이 있었을까요? 여러분 18만 5천 군대가 갑자기 내 주변을 둘러싸는데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벌벌 떨고 두려워서 무엇을 해야 될지 몰랐습니다. 쉽게 말하면 몸이 굳어버린 것입니다. 몸이 굳는다는 표현 아시죠? 멈춰버린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지 않으면 말씀으로 신앙생활하지 않으면 어느 날 우리를 공격하는 그 악한 영들의 공격 앞에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몸이 굳어져 버립니다. 저는 너무 많이 봤습니다.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내 신앙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았나, 내 믿음이 이렇게 연약했나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몸이 굳어져버린 것입니다. 내 영혼과 마음의 상태가 무엇을 판단하고 어떻게 해야 될지를 멈춰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구체적으로 산헤립의 공격이 어느 정도냐? 앗수르 대왕이 얼마나 똑똑하냐면 자기 중에 가장 똑똑한 랍사게를 보냈습니다. 이 랍사게가 협박을 하는 것입니다. 협박이 그냥 협박이 아닙니다. 산헤립 왕, 대왕의 말을 들어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대왕이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을 하는데 랍사게가 적군이지만 얼마나 매력이 있는 인물이냐 정말 실력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실력 있는 장수여고 지도자였고 산헤립의 충성스러운 신하였습니다. 랍사게는 언변이 엄청 뛰어났습니다. 그 증거가 뭐냐면 예루살렘 성에 와서 산헤립 대왕의 말을 전달하는 오늘 본문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실제로 예루살렘 성으로 오기 전에 다른 나라들도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정복하는데 랍사게가 중요한 공을 다 세웠습니다. 싸워도 무조건 이기는 전술과 전략과 군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말로 언변으로 다 항복시킨 인물이 랍사게입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게 진짜 힘 있는 사람입니다. 공포심을 조장하고 다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공통어가 아람어인데 이 사람이 무슨 언어까지 했냐면 유대 언어까지 했습니다. 유대 언어인 히브리어는 어려운 언어이고 그 당시 사람들이 쓰지 않는 언어이고 필요 없는 언어입니다. 그런데 랍사게는 대 앗수르의 랍사게였습니다. 총리이고 비서실장이었습니다. 힘없는 작은 나라의 언어를 할 필요가 없는데 그 언어가 완벽하게 구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엄청난 엘리트였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대왕의 이야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을 만큼 히브리어를 완벽하게 한 사람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렇게 언어를 잘한 것 때문에 많은 신학자들이 유다출신이 아닌가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그 뿐이 아니고 산헤립에 대한 충성스러움, 충성도, 성실함이 강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랍사게라는 사람은 매력적이고 실력 있는 사람이고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산헤립의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얼마나 논리정연한지. 상대방이 말 한마디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논리정연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실력가였습니다.
Ⅱ.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 랍사게의 협박_이사야36:4-10
(4)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5) 내가 말하노니 네가 족히 싸울 계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뿐이니라 네가 이제 누구를 믿고 나를 반역하느냐 (6)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7) 혹시 네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노라 하리라마는 그는 그의 산당과 제단을 히스기야가 제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던 그 신이 아니냐 하셨느니라 (8)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내가 네게 말 이천 필을 주어도 너는 그 탈 자를 능히 내지 못하리라 (9) 그런즉 네가 어찌 내 주의 종 가운데 극히 작은 총독 한 사람인들 물리칠 수 있으랴 어찌 애굽을 믿고 병거와 기병을 얻으려 하느냐 (10) 내가 이제 올라와서 이 땅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올라가 그 땅을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니라_이사야36:4~10
4-6절. 너희가 우리와 싸울 수 있다는 계략이 있다는 말은 말뿐인 거 다 알고 왔다 이 말입니다. 너희 애굽과 손잡았다며? 이것도 다 알고 온 것입니다.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왔습니다. 왜냐하면 애굽 왕 바로는 정말 질이 나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포로가 되면 다 노예를 시켰지만 앗수르의 정책은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오지만 앗수르의 포로가 되면 생활을 유지하게 해주었습니다. 자유를 줬습니다. 포도원도 주고 무화과나무 농사도 짓게 해주고 이주해서 살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싸우지 않고 항복했던 것입니다. 산헤립의 전략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애굽을 믿어? 애굽에 완전 당해볼래? 애굽과 동맹을 맺으면 애굽이 너희들을 다 죽일 거고 노예 삼을 건데 그런데 애굽을 의지한단 말이야? 이 말입니다. 7절. 진짜 파악을 다 하고 왔습니다. 히스기야가 우상 산당을 다 제하고 하나님 앞에서만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너희의 신앙이 지금 엉망진창인 것 다 알고 왔다, 너희가 지금 여호와를 의지한다고 하는데 너희 지금 엉망진창인 것 다 알고 왔다 이렇게 비꼬는 것입니다. 8절. 기가 막힙니다. 너희가 싸울 전략도 없고 힘도 없고 신앙도 없고 믿음도 없고 너희가 동맹 맺은 애굽은 개판이고. 그래서 내가 우리와 싸우도록 말 이천 필을 줄게, 말 이천 필을 줄텐데 너희 이것을 탈 사람이라도 있냐? 실제로 전쟁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다 파악하고 온 것입니다. 이런 것입니다. 우리와 싸우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총이 없습니다. 나에게 있는 총 줄게 쏠 줄 알아? 이 말인 것입니다. 얼마만큼 전쟁준비를 잘 해 왔냐면 완벽하게 다 파악하고 모든 빈틈없이 압도할 내용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제가 볼 때 1년 동안 앗수르가 준비한 것입니다. 9-10절. 산헤립과 붙어서는 게임도 되지 않고. 너희는 우리나라 장수도 못 이겨 이 말입니다. 이제는 너희 신의 뜻도 있을 것이다. 너희가 개판으로 여호와를 섬겼으니까 여호와의 뜻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남유다의 신앙, 종교, 정치,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하고 전쟁준비를 하러 온 것입니다. 앗수르가 그 당시에 대국이 될 만 합니다. 실력 있는 나라가 될 만 합니다. 비참합니다. 반대로 예루살렘 입장에서는 비참하고 한스러운 장면입니다. 유다를 그냥 비웃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완전히 능욕하는 장면이고 너희가 예배해봐라, 기도해봐라 하나님이 너희를 도우시겠냐 이 말입니다. 지금 쳐들어가면 너희가 아무 손도 쓸 수 없이 우리에게 전멸 당할 것을 다 파악하고 왔다. 그런데 내가 너희에게 항복할 기회를 주겠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이 말은 하나님이 함께하셨을 때 남유다가 강력했다는 것을 앗수르가 몰랐을까요? 다 알았습니다. 역사까지 다 조사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신앙이 다 무너졌다는 것을 파악하고 온 것입니다. 완전히 예루살렘 성 안에 부패와 타락하다는 것을 다 알고 온 것입니다. 전쟁 준비 하나도 안 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온 것입니다. 여러분 이 메시지는 오늘 날 기독교, 한국교회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자꾸 외부 탓을 합니다. 세상이 악해서. 세상이 우리를 핍박한다면서. 아니요. 우리가 내실을 다지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준비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지 못한 것입니다. 심지어 랍사게는 오늘 여호와의 뜻이 없겠느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불신자들이 엄청난 실력과 능력을 가지고 너희 기독교가 사라지는 것 당연한 거야, 너희가 그렇게 살았잖아 하면서 비웃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지도자들은 더 부끄러운 행동을 합니다.
- 부끄러운 유다의 지도자들_이사야36:11-20
(11) 이에 엘리아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아람 방언을 아오니 청하건대 그 방언으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하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에서 우리에게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마소서 하니 (12) 랍사게가 이르되 내 주께서 이 일을 네 주와 네게만 말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으며 자기의 소변을 마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도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냐 하더라 (13) 이에 랍사게가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외쳐 이르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14) 왕의 말씀에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미혹되지 말라 그가 능히 너희를 건지지 못할 것이니라 (15)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신뢰하게 하려는 것을 따르지 말라 그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시리니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할지라도 (16)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이요 (17) 내가 와서 너희를 너희 본토와 같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에 옮기기까지 하리라 (18) 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속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자기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19)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스발와임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20) 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자기의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하니라_이사야36:11~20
11절. 이 세 사람(엘리아김, 셉나, 요아)은 히스기야 왕의 핵심 관료들이 저들이 랍사게를 보내니까 마중 나온 것입니다. 무슨 일인지 들어보려고 나가는 상황입니다. 그때의 공통어인 아람 방언을 안다고 합니다. 자존심 상하는 것입니다. 아람어로 우리에게만 이야기해주세요, 우리 백성들 아람어를 모르니까. 이미 지고 들어갔습니다. 당신의 종들에게 말해주세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년 전에 돈 바친 것처럼 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돈을 바칠 까?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모면해볼까? 머리를 쓰는 것입니다.
12-13절. 네 주는 히스기야입니다. 포위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될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너희보고 여호와께서 도와주실 것이니까 여호와께서 함께하실 것이니까 여호와를 의지해라 그 말을 듣지 말아라. 그거 뻥이다. 너희 그 말에 한두 번 속았냐. 그러니 그 말 버리고 대왕 앗수르의 왕 산헤립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엄청 자존심 상하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하고 뭐라고 정책을 펴죠? 관료들이 아닌 백성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항복하면 너희의 포도원 다 유지하게 해 줄게, 무화과나무 먹게 해 줄게 심지어 더 좋은 땅으로 이주시켜서 살게 해줄게. 일본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올 때 그런 정책을 많이 폈습니다. 항복해, 그러면 일본에서 대학도 다니게 해주고 직책도 주고, 돈도 주고 집도 줘서 살게 해 줄게. 앗수르가 그런 정책을 편 것입니다. 그러니까 관료들과 상관없이 밑에 백성들이 다 항복해버리면 끝나는 것입니다. 랍사게의 협박에 유다 지도자들은 백성이 듣지 못하도록 아람 말로 말해달라고 조용히 부탁을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하나도 준비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백성들에게 이 말을 전달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관료들은 전쟁준비라든지 어떤 대책이라든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입니다. 준비가 되지 않으니까 부끄럽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영적으로 싸우고 실력을 준비해서 리더십을 발휘해서 백성들과 싸워도 부족할 판인데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시작부터 접고 들어갔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몸과 마음 영혼까지 굳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왜 굳었죠? 왜 두렵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으면 그 앗수르의 군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평상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앗수르의 군대가 두려운 것입니다. 굳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들이 평소에 하던 것이 아부고 돈 받치는 것이고 계략을 세우는 것이고 평생 하던 것이 아부니까 이런 위기가 왔을 때 나오는 것이 아부 밖에 없습니다. 제발 우리를 살려주세요. 우리가 듣겠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던 습관대로 규칙대로 사람은 그런 것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매일 불평하고 원망하고 그런 것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그대로 들어납니다. 얼마나 규칙이 중요한지 아시죠? 스티븐 코비 박사가 습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습관을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습관을 한 번만 만들어 놓으면 습관이 우리 인생을 인도한다고 합니다.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좋은 습관을 만들려고 엄청나게 투자를 합니다. 좋은 습관을 만들어놓으면 그 좋은 습관 때문에 우리 인생은 좋은 습관이 주는 영향 때문에 좋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살아왔던 습관대로 규칙대로 결정적일 때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습관이 아니라 나쁜 습관, 불평 원망을 늘 하고 살면 신앙생활을 하다가 결정적일 때 적들이 쳐들어올 때 우리가 그런 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그런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20-30대가 후회스럽다 이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아쉽고 안타깝다 이런 마음이 계속 들었습니다. 제 나이가 30대 중반이 아니라 4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50대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제 손에 물맷돌이 없습니다. 골리앗이 앞에 나타났는데 돌은 있는데 던질 기술이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죠? 제가 20-30대 때 기술을 연마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게 너무 후회스럽고 너무 속상합니다. 우리교회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여러분 한국교회에서 말하는 믿음과 서구사회 즉 미국 같은 나라에서 말하는 믿음에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믿음은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열심이냐면 그들의 열심과 우리의 열심이 조금 다릅니다. 우리의 열심은 교회 열심히 나와서 찬양하고 예배하고 사역하고 목사님 말씀 잘 듣고, 젊을 때 청년 때 이런 청년들 보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믿음 좋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미국사람, 서구사회의 믿음의 개념이 우리와 조금 다른 것은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기 위해서가 자기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켜서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 받을까가 기본 사고입니다. 그러면 내가 40-50대 때 중요한 일을 해야 되는데 그때를 위해서 20-30대 때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가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이 우리와 조금 다릅니다. 개념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20-30대 때 저는 No를 잘 못했습니다. 어른들이 일시키면 무조건 Yes하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진짜 일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그게 저한테는 패착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나님 앞에서 40-50대 때 드릴 것이 있어야 되는데 하나님 나를 사용해주십시오 했을 때 드릴 무기가 있어야 되는데 그게 손에 없는 것입니다. 남 좋은 일 다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오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교회 성도님들은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되도록 그 사실을 정말 믿는다면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젊을 때 믿음이랍시고 매일 교회 와서 놀고 다른 사람 심부름하고 이러다가 정작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때 손에 물맷돌 하나 없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네팔에 복음을 전합니다. 목사들이 가서 설교를 합니다. 그게 복음 전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 듣고 맙니다. 하나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력이라는 것이 같이 가야 합니다. 학교도 지어줘야 되고 병원도 지어줘야 되고 그 국가의 시스템을 바꿔주면서 복음이라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말이 아니고 그 이면에 복음을 증명할 삶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시잖아요? 우리가 전도지 만들어서 사람들 영접시키는데 영접된 사람이 교회 와서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는 경우는 거의 제로입니다.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예수 믿는 것도 감사한데 그러다가 복음 전해준 사람의 실제 삶을 보고 실망해서 실족해서 교회를 떠나서 영원히 교회를 안 나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복음은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을 펼쳐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배드리고 껍데기로, 스텝 같은 거 하고. 그것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해라, 마라 이 말이 아니라 내 인생에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아야 될 황금 같은 인생에 40, 50, 60대 멋지게 나이가 들어가고 실력 있는 사람으로 준비되어져서 주님! 내 인생을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 나를 사용해주세요 하는 것이 진짜 믿음인데. 열심히 뛰고 지쳐서 그러면서 같이 어울려 다니면서 놀고 먹고 마시느라고 내 물맷돌 하나 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제가 지금 그렇습니다. 이제 교회를 개척해서 준비하려고 하니 벅찹니다. 늦게 시작하니까. 우리 교회 청년들 제 이야기를 진짜 귀담아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준비하세요. 실력 준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사용하실 때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라는 믿음의 실력도 준비해야 되지만 세상적인 실력도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저희 교회 젊은이들이 다 그런 중직자들이 되기를 원하고 그런 실력 있는 사람들로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믿음을 너무 오해했습니다. 믿음을 너무 어떤 즉흥적인 것으로만 이해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깨달으면 믿음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아닙니다. 깨닫고 그 깨달은 것을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깨닫는 것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깨닫고 그대로 살면 사라지는 겁니다. 주일날 메시지 듣고 아멘 했는데 돌아가서 삶은 그대로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린 늘 깨닫기만 합니다. 늘 메시지를 들으면 아멘만 합니다. 메시지만 듣고 아멘만 하는 것이 무슨 깨달은 것인가요. 깨달았다는 말은, 진짜 깨달았다는 말은 내 삶을 그 메시지를 가지고 와서 살아내는 것입니다. 애쓰는 것입니다.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 믿음입니다. 지금 남유다가 어떤 상황인지 아시겠죠. 저들은 엄청난 준비를 해서 쳐들어왔지만 우리는 그 사이에 흥청망청 놀고 부패하고 부정하고 아 애굽이 도와주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지. 맨날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안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하실 삶을 살아야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하나님이 함께 안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남유다를 떠나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에스겔을 읽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이미 떠나셨습니다.
- 하나님 손에 있는 역사 그리고 인생_이사야36:21-22
(21)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 (22) 그 때에 힐기야의 아들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자기의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그에게 전하니라_이사야36:21~22
21절.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히스기야가 시킨 것입니다. 대답하라 마라.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대답할 것도 없으면서. 22절. 왜 옷을 찢었습니까. 한스러우니깐, 창피하니깐. 자존심 상하니깐, 자기 백성들이 저 내용을 다 들었으니까.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그에게 전하니라. 앗수르 대왕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했는데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어요. 여러분 그러나 아셔야 합니다. 랍사게가 이렇게 큰소리치고 산헤립이 어마어마한 세력으로 나라를 키워가고 있지만 우리 인생의 역사와 지구의 역사와 우리 개인의 역사는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지금 모든 세상의 상황,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대단해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믿음의 사람들은 알고 계셔야 된다 이것입니다. 어떤 정치권력이나 세상의 발전된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대단해보여서 우리 몸이 굳어져서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랍사게가 큰 소리를 치고 대단한 배경을 가지고 어마한 실력자로 나와서 그들을 압박해도 결국 다 허풍이 됩니다. 왜요? 18만 5천군대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려웠지만 하나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음주, 그 다음에 말씀드리겠지만 18만 5천이 전부 송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대충살고 있다가 하나님이 다 송장시킬 거니까. 그렇게 믿음생활하면 되겠네. 이렇게 이 본문을 이해하면 꽝입니다. 빵점자리 설교, 깨달음입니다.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으면 우리는 준비라는 것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준비하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시나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진짜 믿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쓰임 받을까 준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많은 기독교인들이 혹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청년들이 너무 불평이 많고 상처가 많고 부모님 때문에. 저는 금수저가 아니고요. 금수저, 흑수저 불신자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기독교인들이 다 입에 달고 삽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비전은 얼마나 큰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수련회 때 눈물 흘리고 두 손들고 찬양하면서 비전만 크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습니다. 세계복음화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필통에 써서 붙이고 하더니 아무런 상관없는 삶을 삽니다. 내용은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한 개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 보실 때 하나입니다. 그 인생 통틀어서 하나님이 사용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젊을 때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믿음도 준비해야하지만 실력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믿기 때문에 실력도 따라가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을 잘못 배워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많은 분들이 교회에서 소리치지만 정작 주님의 일에, 정작 교회가 공격당할 때 정작 우리가 힘써서 복음을 전해야 할 때 아무것도 드릴 게 없는 빈털터리 같은. 제가 지금 마음에 그것이 한이 됩니다. 복음을 전하고 싶은데, 가스펠교회가 전도를 하고 싶은데. 아직 전도에 전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보여줄 것이 없습니다.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 교단에 신학생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 후배들입니다. 예쁜 마음으로 밥도 사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후배들의 말 속에 우연치 않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나, 어디 감리교회 유기성 목사나, 목사? 제가 속으로. 목사님이 아니고 목사? 그것부터 이미 썩어 빠졌습니다. 어디 목사나 전부 복음이 아니고 율법이고 신비고요. 제가 웬만하면 화를 내지 않는데 화가 진짜 많이 나더라고요. 시끄러워, 입 닥쳐라고 했습니다. 제가 입 닥쳐라고 하는 욕은 제 인생에 가장 큰 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에게 이 말을 들으신 분들은 나를 정말 싫어하는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색하고 입 닥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왜 그러세요 목사님 했습니다. 야 너희들이 그런 목사님들 욕할 자격이라도 돼? 개척이라도 하고, 전도라도 해보고. 여러분 그런 목사님들이 뒤에서 얼마나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헌신하고 그런 교회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회에 공헌을 하는지. 그게 복음이니 율법이니. 하도 어이가 없어서. 먹던 밥맛도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그런 식입니다. 개척이라도 해보고 그런 준비라도 해보고. 입만 살아서. 그게 신앙입니까? 그게 믿음입니까? 얼마나 잘못된 믿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모릅니다. 그런 신앙을 다 기복신앙이라고 합니다. 늘 불평하고 원망하고 남을 비난하고 정작 자기는 주님이 너 나를 위해서 중요한 일 좀 해봐 하는데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습니다. 제가 분당우리교회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기독교에 얼마나 중요한 일을 많이 한 줄 아시나요. 기독교 이미지에. 그 분 때문에 우리가 버티고 있는 거라고 할 정도로 좋은 일을 많이 하십니다. 그런데 뭐라고요? 복음이 아니고, 신학생들이요? 이제 신학교 몇 년 다녀놓고? 신앙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실력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자기 삶이나 전문성이나. 그래서 삶을 들여다보면 불신자들이 다 실망하고 교회를 다 떠납니다. 메시지는 휘황찬란한데 뒷모습은 엉망진창입니다. 그게 기독교인의 모습, 우리의 모습입니다. 손에 다윗처럼 물맷돌 하나 준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쳐들어와서 내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여호와를 모욕할 때 용기 있게 나서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교회를 공격할 때 교회가 위기에 처할 때 내 전문성을 써달라고 내 실력을 써달라고 나타나야 하는데 느헤미야처럼. 그런 사람 하나 없는 시대입니다. 신앙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왜 두렵냐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두려운 겁니다. 하나님하고 관계가 신실하지 않기 때문에 앗수르가 두려운 겁니다. 원래 하나님하고 관계가 신실할 때는 앗수르는 보이지도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보이니깐 애굽과 동맹을 맺고 재물을 바치고 우리는 당신의 종노릇하겠습니다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민족입니까? 이스라엘, 남유다가. 하나님의 존귀한 백성들 아닙니까. 완전히 그 지위를 다 잃어버렸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으면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준비를 해야 됩니다. 첫째는 거룩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거룩한 목적이 우리 인생에 있어야 합니다. 그냥 목적이 아니고 거룩한 목적이 우리 신앙에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목표가 없으면 죽습니다. 목적이 없으면 인간은 사라지는 겁니다. 하다못해 내 자식들 잘 키워야 되겠다는 목적이라도 있어서 부모님들이 성실하게 사는 겁니다. 아닌가요? 내 자식들 대학이라도 보내야지 하고 남자들이 주야로 일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도 없으면 인생은 개차반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에게, 인류에게 목적이라는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거룩한 목적을 주셨습니다. 차원이 다른 목적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 목적이 있는가? 그게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비전입니다. 비전이 있는가? 비전이 없는 민족은 희망이 없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독립운동을 하고 만세운동을 하고 만주까지 가서 임시정부를 세워서 싸운 줄 아십니까? 나라를 회복해야겠다는 비전이 있기 때문에 싸운 것입니다. 비전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두 번째는 그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우리가 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비전만 있으면 뭐하나요? 목적만 있으면 뭐해요? 그 목적과 비전을 위해서 살지를 않는데. 살지를 않으면 아무런 발전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런 삶을 늘 점검받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왜요? 우리는 혼자서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서 살면 스스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한빈이가 유치원 다녀오면 숙제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지가 머리가 커져서 제가 와이프 없을 때 숙제를 도와주려고 하면 아빠 저리로가 알지도 못하면서 지 혼자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알았어. 혼자 할 수 있어, 가 하는 겁니다. 혼자 막 합니다. 놀아야 하니깐 막 합니다. 그리고 숙제를 덮습니다. 그 때 바로 확인하면 안 됩니다. 놀고 있거나 잠자고 있을 때 확인하면 반드시 틀린 문제가 3-4문제가 있습니다. 6살이니깐 안 틀리고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 겁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이런 공동체를 주신 것입니다. 점검 받으라고. 그래서 유대인들이 얼마나 똑똑해요? 유대인은 자기 공동체에 십의 일조도 드리지만 또 십의 일조를 모아서 지역마다 랍비를 둡니다. 랍비 아시죠? 성경을 가르쳐주고 말씀을 해석해주는 사람을 그 작은 지역 공동체에 랍비를 직원처럼 고용합니다. 그들에게 집도 사주고 그들의 인생도 책임져주고. 우리로 말하면 헛된 돈 같습니다. 아까운 돈 같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아까운 돈을 쓰는 것입니까? 우리 지역에 우리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주고 우리 가정에게 성경으로 올바른 길 가도록 지도해주는 랍비를 항상 둡니다. 얼마나 지혜로워요? 실수를 줄이는 것입니다. 오류를 줄이는 겁니다. 늘 점검받고 사는 겁니다.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목사가 되어서 신학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단점입니다. 신학생들이 신학교 졸업하면 끝입니다. 그래서 목사되기 전에 많이 배워야 한다. 이런 메시지 많이 들어보셨죠? 얼마나 목사가 되어서 안하면. 남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고집에 빠져서 그게 목사 이야기뿐입니까? 젊은이들이 아무것도 하기 싫으니까. 하지 마라. 해보지마.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그러나 자기가 할 일을 내가 해야 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만족감을 느낀 것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짊어진 무게가 없는 사람은 결국은 인생이 끝날 때쯤에 자기 스스로를 물어뜯습니다. 자기 냉소와 자기 경멸에 빠집니다. 저는 너무 많이 봤습니다. 젊을 때 준비 안 해놓고 후회하고 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모님을 원망하고. 무게가 있어야합니다. 젊은 때 짊어진 무게가 있어야 합니다. 그 짊어진 무게가 무엇을 뜻하나요? 준비하는 삶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 미래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존재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까 생각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비전이 있기를 원합니다.
Ⅲ. 준비가 되어 있으면 두렵지 않기에_에스겔11:18-20, 36:22-31, 43:1-12
(18)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의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버릴지라 (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20)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_에스겔11:18~20
하나님이 우리와 교제하고 관계를 맺고 싶어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하고 싶으신데. 우리에게 뭐가 있어요? 우리 안에 미운 물건이 있데요, 가증한 게 있다고 합니다. 우상이 있는 겁니다.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가증한 것을 반드시 제거하고 버리셔야 합니다. 그것을 안 버리면 우리가 이런 거 흔하게 이야기하잖아요. 이거 하면서도 우상을 섬기면서도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잘못된 개념입니다. 그렇게 설교하는 목사님들을 주의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절대 더러운 곳에 거룩하지 않는 곳에 임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29)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에서 구원하고 곡식이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닥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30) 또 나무의 열매와 밭의 소산을 풍성하게 하여 너희가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여러 나라에게 당하지 아니하게 하리니 (31)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_에스겔36:22~31
22절. 하나님이 일하시는 게 너희를 위함이 아니라고 합니다. 23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남유다를 세우신 것은 여러 나라에 내가 하나님인 것을 알려주려고 세웠는데, 애굽, 앗수르, 바벨론에 들어가서 여호와의 이름을 더렵혔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더렵혀지는 것을 싫어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은 당신의 이름이 회복하기 위해서 일하십니다. 그 뒤에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그래서 너희가 내 이름을 다시 회복하려면 맑은 물로 너희가 씻김 받아야 하고 새 영을 받아야 되고, 이런 말씀이 에스겔서에 쭉 있습니다. 더렵혀진 나의 이름을 회복하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룩함을 드러내시고 맑은 물로 뿌리고 정결하고 굳은 마음을 제거해서 하나님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겁니다. 땅에서 곡식이 풍성하게 된다고 합니다. 먹고 사는 것 책임져주시겠다는 겁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잘못 들으면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런 겁니다. 하나님의 성품, 즉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는 변화 되어서 깨달아서 성실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 위해서 그것을 믿기 때문에 그것을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실하게 살고 그것을 준비하며 살기 때문에 축복이라는 것을 받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아이에게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처럼. 마치 아프리카에 돈을 쏟아 부어주는 게 아니라 농업 기술을 가르쳐주고 기술의 원천을 가르쳐주어서 그들이 스스로 농사를 짓고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처럼. 그것이 진짜 축복이잖아요. 돈 주면 써버리고 말아버리는데. 그런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축복은 가만히 있어서 믿습니다하면 기도원에 가서 축복해주옵소서 하고 내려오면 축복이 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원에서 가서 기도해서 깨달았으면 그런 변화된 삶을 살았을 때 오는 축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별 은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지, 일반 은총 가운데 우리 기독교인들도 다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히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기업 회장님이나 리더들 함부로 욕하지 마세요. 마치 신학생들이 훌륭한 목사님들 욕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어떻게 성공했는지 그것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비난하고 욕하고 자존감이 낮아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1)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3) 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 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4)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5)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6) 성전에서 내게 하는 말을 내가 듣고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내 곁에 서 있더라 (7)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들의 왕들이 음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8) 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또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망시켰거니와 (9)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거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 가운데에 영원히 살리라 (10) 인자야 너는 이 성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11) 만일 그들이 자기들이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성전의 제도와 구조와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12)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 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_에스겔43:1~12
1-3절. 왜 동쪽에서부터 오죠? 하나님의 성전이 동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읍을 멸하러 올 때도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을 봤습니다. 그 영광이 얼마나 큰지. 4절. 영이 떠났다는 것입니다. 다시 들어오시는 장면입니다. 5-7절. 무슨 말입니까. 그 뒤에 뭐라고 말씀하고 계시나요. 시체 치워라 죽은 왕들의 시체를 치우라는 말은 실제 시체를 치우라는 말도 있지만 너희의 역사, 조상들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행, 더러운 것들 다 치우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제서야 동쪽 문을 통해서 들어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우리는 산꼭대기에서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온 열방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삶이 충만할 때 우리는 과거의 상처에 매이지 않습니다. 과거의 영광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환경과 상황에 굴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취해서 살 때 우리 인생은 미래지향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게 제 지난 젊은 시절이 너무 후회되는 지점입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못해주신 거니깐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깨달음이 20대 때 30대 때도 있었습니다. 용기가 없었습니다. 제가 38살에 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 생각도 합니다. 조금만 더 젊었을 때 미래를 준비할 걸 이런 생각 너무 많이 합니다. 책 좀 많이 읽을 걸. 실력도 좀 쌓을 걸. 아무나 만나지 말고 중요한 분들과 만날걸. 하나님 앞에 기도생활을 조금 더 잘할 걸.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송한지 모릅니다. 지금 저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이 너무 많은데 제 손에 드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그런 후회가 저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를 개척해서 뭘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뭘 이루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젊은 세대들이 기억하셔야 됩니다. 믿음을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너 믿음 좋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나이 들어서 실력 없으면 다 팽 시킵니다. 맞잖아요. 너 진짜 스텝일 잘한다. 우와 너 믿음 좋다. 나이 들어서 아무것도 없으면 어떻게 되나요? 구걸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제가 지금 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우리가 믿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사용해주세요.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앗수르가 쳐들어 올 때까지 아무것도. 얼마나 흥청망청 놀았으면 쳐들어 온 줄도 몰랐습니다. 18만 5천군대가 주변에 주둔하고 있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부랴부랴. 지금 교회가 그 지경입니다. 교회를 싸잡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저의 모습,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가 예배 가운데. 다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가 성전이잖아요. 구약은 성전이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성전이고 우리가 지성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우리 안에 들어와야 해요.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음행을 버리고 다른 것과 관계를 맺는 것을 버리고 우리 안에 섞은 시체들, 왕의 시체들 우리가 의지하는 세상 것들, 애굽을 다 버리고 정말 하나님 그 분을 믿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실 것을 믿자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는 거룩한 목적을 가지자는 겁니다. 그것을 두고 살자는 겁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노력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실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물맷돌이라도 들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 받자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한국교회 그 일어났던 부흥의 영광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그 부흥의 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그런 삶을 어떻게 사는지 서로가 점검하고. 이것은 자존심 문제가 아닙니다. 창피하다의 의미가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거나 신앙생활, 기도생활을 하거나 이것이 치열한 준비입니다. 그리고 학업을 잘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젊은이 때 자기 인생을 계발해서 가치 있는 미래, 가치 있게 나이가 들도록 준비되는 과정들 여러분 그것을 허투루 하지 마세요. 여러분 후회하지 마세요. 저는 분명히 설교했어요. 제가 후회하는 것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정말입니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우리에게 얹어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이 준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랍사게가 와서 우리 대왕, 산헤립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렇게 말했는데 사실 그걸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세상에 가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가 준비되어서 우리가 해야 될 말입니다. 우리가 실력자가 되고 우리가 엘리트가 되고 우리가 전략을 갖춰서 우리가 내용을 갖춰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가 해야 되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만 바꿔버리면 딱 복음 메시지입니다. 우리 십자가의 복음 메시지, 하나님 너희를 사랑하시는 메시지를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증명해야 됩니다. 그런데 복음 세지를 말로만 하고 아무것도 없으면 되겠어요? 그런데 앗수르는 말 뿐이 아니었습니다. 허풍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외칠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삶으로. 실력 있는 삶으로 준비되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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