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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1-05-30 주일예배

2021-05-30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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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3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2부예배)
제 목 하나님께 피하여 남은 자
본 문 이사야 37:21-38

 

 오승주 목사

 

Ⅰ. 내게 기도하였다 하시고_이사야37:21

 

어떤 목사님들은 똑같은 설교를 8번 하시는 목사님들도 계셨습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할 거 같습니다. 두 번 하는 것도 굉장히 벅차고 또 오전 예배 설교, 오후 예배 설교가 조금 많이 뉘앙스가 많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대상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주중에 말씀을 한 번 더 들을 때는 2부 예배 오신 분들은 1부 예배 설교를 꼭 들으시면 도움이 많이 되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오늘 이 본문은 지난주에 히스기야가 제사장 무리들과 고관들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내고 자기는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갔던 고관들이 답변을 가지고 와서 답변을 이야기하는 본문 장면입니다. 뭐라고 답변을 가지고 와서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답변을 이야기하는 그런 본문 장면입니다. 뭐라고 답변을 하는지 오늘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보통 리서치를 많이 합니다. 정치인, 기업들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리서치가 전부 맞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30%다, 40%다 이게 오차범위가 있겠지만 불특정다수에게 조사를 하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리서치라는 것은 그 시대의 분위기라든지 그 시대의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대변해주는 역할들은 충분히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퍼센트가 정확하게 맞다 틀리다 이거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이런 것을 불편해하는구나, 사람들이 이런 목소리를 내고 있구나 이것을 대변해주는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미국에서는 한동안 20세기에 들어서 교회, 기독교 리서치 단체들이 많이 생겨서 진짜 많은 리서치를 냈습니다. 우리나라도 200년대 하반기에 들어서 그런 리서치 자료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떤 기독교 기관에서 이런 리서치를 했습니다. 교회에 가도, 교회를 다녀도 내게 아무런 변화가 없다. 교회를 다녔는데 내가 아무런 변화가 없다가 40%라고 합니다. 10명 중에 4명은 교회를 10년, 20년, 30년 다녔는데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설문조사를 한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이거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80%는 될 거 같은데 40% 밖에 되지 않는다고? 교회 가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발표가 되고 있고 요즘 들어서 리서치 기관에서 발표하는 내용들을 들어보면 영적으로 교회가 침체가 되었다, 예배 숫자가 감소가 되고 있다, 주일학교가 없어지고 있다 이런 부정적인 조사결과들이 끊임없이 발표가 되고 있습니다. 많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실제로 그런 리서치 결과들이 나오는 것을 언론을 통해서 보고 있으면 교회가 되게 위기이구나, 문제가 많구나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리서치를 진행한 기관에서 리서치를 발표하면서 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을 발표해서 올렸습니다. 첫 번째가 뭐냐면 가장 큰 원인으로 실제로 성경을 읽고 있는 사람이 줄고 있다.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도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영적으로 침체가 되고 예배 숫자가 감소가 되고 주일학교가 줄고 있고 이것에 대한 원인으로 성경을 실제로 읽는 인원이 줄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장로님, 권사님 신앙생활 하실 때는 읽을 것은 성경 밖에 없었습니다. 70-80년대 교회 다녔던 분들은. 지금은 신앙서적도 많고 유튜브도 많고 언론도 많고, 볼게 많고 읽을 것이 많고 들을 것이 많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앉아 있기가 너무 힘든 시대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성경을 읽는 사람이 계속 줄고 있습니다. 요즘 교회들은 미디어가 발달해서 큰 교회 목사님들, 저도 그렇게 설교를 하잖아요? 주중에 주일 설교를 꼭 다시 들으십시오. 10번만 들으시면 됩니다. 매일 들으십시오. 그 말은 성경을 읽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시간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은데. 그래서 성경 읽는 사람들이 점차 줄고 목사님 설교만 계속 일주일 내내 귀에 달고 다니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두 번째 이유는 뜨거운 기도 모임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기록하고 있냐면 요즘 시대는 개인의 영성을 강조하는 프로그램들, 메시지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영성을 강조하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보니까 뭐가 사라지냐면 우리가 함께 모여서 뜨겁게 기도하는 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전에는 모였다 하면 기도했습니다. 구역예배만 모여도 통성으로 합심으로 뜨겁게 같이 기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뜨겁게 기도하는 시대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영성은 뛰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일리가 있는 것이 저도 그런 책에 영향을 진짜 많이 받은 세대입니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저도 목회 초기에 여러분 묵상일기 쓰십시오, 개인 묵상이 중요합니다 이러면서 저도 개인의 영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나 사역들을 진짜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리서치를 보고 놀랐습니다. 뜨거운 기도모임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저희 교회도 뜨거운 기도모임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작년까지는 전무했습니다. 금요예배요? 한 5명 오셨습니다. 5명 와서 앉아있으면 전도사님이나 제가 기도회를 하려고 해도 잘 안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말에 한해를 복기하면서 교역자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금요일에 5명이 있든, 혹은 우리끼리 예배를 드리든 우리 그래도 하나님 앞에 뜨겁게 기도하자. 그리고 성도님들이 기도하러 한 명이라도 나와도. 금요예배 끝나고 기도시간을 주는데 작년까지 10분쯤 지나면 다 불을 켰습니다. 집에 빨리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빨리 가야 되니까. 우리도 퇴근해야 되니까. 이런 마인드가 있었습니다. 우리 그거 회개하자. 정말 성도님들이 끝까지 기도하고 갈 때까지 불 켜지 말고. 우리는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고 일하는 직원이니까.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자. 이렇게 작년 말에 같이 기도하고 한 해를 복기하면서 그런 의논들을 나눴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그나마 정말 신기한 것은 올해부터 금요예배가 정말 기도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놀랍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기도모임들이 정말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이게 이유라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부흥에 대해서 되게 많이 공부를 하고 싶고 또 공부를 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바람은 조금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제 마음에 공부를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대학원을 다시 들어가 볼까? 대학원을 다시 들어가기엔 이 나이에 너무 힘들고. DMin을 조금 해볼까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런 생각도 들고 알아보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공부를 한 3-4년 하면 목회적으로는 엄청 손해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공부하면 사역을 잘 하지 못하니까 손해가 있지만 제 마음에 어떤 마음이 드냐면 아니야 내가 목회적으로는 활동이 제약이 있고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 자녀들과 후대들을 위해서는 공부를 집중해서 하고 싶어 이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왜냐하면 제가 지금 사역하면서 활동하면서 공부를 하려고 하다보니까 집중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허락해주신다면 아예 학교를 다녀볼까 생각도 됩니다.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부흥에 대해서 좋은 자료를 찾아보고 준비하고 좋은 논문과 좋은 책을 써보고 싶은 마음들이 듭니다. 왜냐하면 제가 요즘 나온 책들을 보면 다 뭐냐면 기술, 전략 대다수 이런 내용들입니다. 제가 이번 달에도 책을 여러분에게 추천하려고 6월 달 책을 올렸는데 제가 올린 것이 단단한 기도공부입니다. 급하게 찾은 것입니다. 이 책은 기도에 대한 스킬 같은 내용들입니다. 기도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내용들입니다. 사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았고 사실 정말 추천하고 싶었던 것은 옛날 책은 아닌데 이 목사님이 뉴욕의 빈민가에서 1972년에 목회를 하셨던 옛날 분입니다. 이름이 짐 심발라 목사님이십니다. 이런 책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책의 차이가 있습니다. 단단한 기도공부는 기도는 이렇게 하는 거야 이런 책이라면 엎드려야 한다는 그 기도를 실제로 하셨던 간증들입니다. 사실 엎드려야 한다 책이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왜 추천을 못했냐 다 절판이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책을 추천했는데 책을 살 수 없으면 안 되잖아요. 아무튼 이런 식입니다. 제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도 그런 것입니다. 지금 제가 책들을 읽으면 사실 처음에는 우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우와 이런 전략들이 있구나 이렇게 감동이 되고 이거 빨리 우리 교회 가서 적용해봐야지 이런 마음들이 많았는데 사실 그런 시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책들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70년대만 해도, 80년대만 해도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메시지들이 없었습니다. 그런 전략들도 없었습니다. 목회를 하려면 성전건축을 해야 되고 목회를 잘하려면 교역자들을 이렇게 청빙을 해야 되고 목회를 잘하려면 교회 조직을 이렇게 만들어야 되고. 여러분 60년대, 70년대, 80년대 그런 것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 조직이? 건물, 성전건축 이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주일학교 교육 시스템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성경 가르치고 천국 가게 복음 전하고 이랬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훨씬 더 부흥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전도를 하려고 해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복음의 내용을 전달합니다. 예수님이 누구고 구원 받으면 당신은 이렇게 변화가 되고 이런 내용으로 양육하고 설명하고 가르치려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복음에 대해서 내용이 많은 것입니다. 메시지가 많은 것입니다. 그것을 막 집어넣어서 다 들어가야 이 사람이 구원 받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그렇게 전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전도할 내용이 어디 있어요? 제가 어떤 책을 보다가 진짜 감동이 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한 마을에 부흥이 벌어지고 있냐면 남편이 맨날 술만 먹고 외도하고 도박하고 집에 오면 부인 때리고 이런 남편이었습니다. 어느 날 부인이 교회 한 번만 가자고 우리 교회에서 부흥회 하는데 부흥회 한 번만 가자고 해서 그 부흥회에 가서 성령을 받아버린 것입니다. 남편이 성령을 받으니까 완전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교회 집사가 되었는데 그 마을이 어떻게 복음화 되고 부흥이 되냐면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저 남편이, 저 술주정뱅이가 예수 믿고 집사가 되서 새사람이 되었다더라. 당신도 교회가자. 이 화상아 너도 교회 가면 변화될 수 있단다. 할 말이 뭐가 있어요? 복음의 내용 말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온 마을이 다 예수 믿고. 여러분 정말 부흥에 대해서 확인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성도님들의 삶에 부흥이라는 것이 임할까? 어떻게 하면 다시 뜨거운 예배를 회복하고 그 거룩함 속에서 기쁨과 찬송이라는 것을 회복할 수 있을까? 교회를 다니는데 어떻게 하면 능력 있는 삶, 새로운 변화된 삶 이런 것이 우리 삶에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이게 너무 하고 싶고 간절히 원하는데, 간절히 바라는데.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그 속에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았으면 좋겠는데. 너무 고민인 것입니다. 너무 공부가 하고 싶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제가 책들을 보고 성경을 읽는데 책들이나 성경들이 안내하는 곳이 있습니다. 맨 끝이 어디인줄 아세요? 하나님입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기법, 새로운 전략, 새로운 메시지들이 우리에게 막 쏟아져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새로운 것, 더 뛰어난 전략, 더 뛰어난 메시지를 쫓아다니지만 그렇게 쫓아다니다가 무엇을 잃어버렸냐면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마치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교육하다보면 주변의 말들이 많습니다. 이 맘 카페에 가면 이렇게 아이를 교육해야 된다고 하고 저 맘 카페에 가면 이렇게 교육해야 된다고.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다 듣고 있으면 짬뽕이 돼서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그런 것을 다 쫓아다니다 보면 무엇을 잊어 버리냐면 우리 아이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뭘까? 우리 아이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뭘까? 또 내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들을 다 잃어버립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교회도, 우리의 신앙도 새로운 기법, 새로운 메시지, 새로운 전략. 목사님들도 거기에 자기 체면이 걸려서 무슨 마케팅 책 같은 거 하나 보다가 단어 같은 것 하나 있으면 설교 시간에 이런 것 해야 된다면서. 그러면서 무엇을 잃어 버리냐면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성경은 우리보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는 그래서 지금 저희 단체, 교단과 어떤 영적인 거리를 조금 두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한테 물어보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거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답변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 저희 단체에서 자랐고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거리를 조금 두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가 느끼는 것은 선한 영향력을 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때처럼 뜨거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나 한 영혼을 향한 마음이나. 여러분 제가 교회를 처음 다녔을 때, 처음 복음을 받았을 때 그 때 금요예배, 그 때 주일예배, 그 때 우리가 전도하러 병원마다, 공원마다 전도하러 다니던 그런 뜨거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마음들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가까워지려고 성경과 가까워지려고 조금 거리를 두는 것뿐입니다. 저는 새로운 기법을 배우려하지 않고 하나님을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사람을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하시고_이사야37:21

 

답변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신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산헤립 왕의 일로 내게 기도했다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이 모르시겠어요? 앗수르 18만 5천을 보내신 것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인데. 지금 이 상황들을 다 아십니다. 히스기야가 애굽을 의지했던 것도 아시고, 재물을 줘서 꼬신 것도 아시고 지금 불안하고 걱정하고 있는 그 나라의 상황을 하나님이 다 아시지만 하나님이 언제 일하시기 시작하셨냐면 언제 역사하시고 언제 마음을 돌이키기 시작하셨냐면 히스기야 네가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일로 내게 기도할 그때. 그때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기도할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오늘 본문에 상세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Ⅱ.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에게니라

 

- 산헤립의 분노와 오만함_이사야37:22-29

 

(22)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3)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은 누구에게냐 네가 소리를 높이며 눈을 높이 들어 향한 것은 누구에게냐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에게니라 (24) 네가 네 종을 통해서 주를 훼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나의 허다한 병거를 거느리고 산들의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의 깊은 곳에 이르렀으니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향나무를 베고 또 그 제일 높은 곳에 들어가 살진 땅의 수풀에 이를 것이며 (25)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으니 내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리리라 하였도다 (26) 네가 어찌하여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네가 견고한 성읍들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27) 그러므로 그 주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 같이, 푸른 나물 같이, 지붕의 풀 같이, 자라지 못한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28)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을 내가 아노라 (29)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과 네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으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를 꿰며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셨나이다_이사야37:22~29

 

22절. 여기서 그는 ‘앗수르, 산헤립’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지금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조롱하고 머리를 흔드는 것입니다. 쟤네들 안 되겠다, 죽여버리자 이럴 때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이 뭐라고 이야기하시냐면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고 처녀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이 예루살렘, 시온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다 하나님 당신을 상징합니다. 내가 너에 대해서 머리를 흔들고 있어. 너 안되겠다, 멸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쌍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23절. 지금 앗수르가 싸우고 있는 게 남유다라는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인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인 것입니다. 24-25절. 랍사게를 통해서. 18만 5천 군대가 사람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병거가 움직이니까 18만 5천 군대가 움직이는 곳은 다 초토화되었습니다. 백향목 다 잘라야 됐습니다. 길을 만들어야 되니까. 그리고 가서 머물러 있으면 어떻게 되요? 풀 자라는 것 다 쑥대밭이 됩니다. 바닥에 있는 물, 지하수 다 끌어서 마시니까 완전 초토화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보니까 병거가 산꼭대기에도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옛날에는 성들과 싸울 때 앗수르 군대가 얼마나 전략적이고 똑똑하냐면 성이 높으니까 문을 잠그고 있으면 병거가 갈 수 없잖아요? 그래서 성의 높이만큼 흙을 쌓아서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성으로 병거를 넘겨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 뛰어난 전략을 가진 군대가 앗수르이고 산헤립이었습니다. 이 군대가 가는 데마다 초토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26-28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누구에요? 앗수르입니다. 앗수르. 너희 이렇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다시 앗수르를 멸망시키려고 하시냐면? 

29절. 오만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오만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거슬러 분노한다는 것입니다. 앗수르가 뭐에 대해서 분노했죠? 산헤립이? 아니 저것들이 항복하라고 기회를 줬는데 항복을 안 해? 이것 봐라 하고 분노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에서도 우리도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했는데 교회도 다니고 헌금도 하고 했는데 하나님 내가 원하는 기도 왜 안 들어주셨어요. 진짜 너무 하시네 이렇게 우리 화날 때가 있죠. 이렇게. 아니 내가 못해준 게 뭐가 있는데?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분노하는 거 있죠. 마치 앗수르가 그런 것처럼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 이것들이 내가 기회를 줬는데. 항복하라고 랍사게를 보냈는데 지네들의 신 앞에 기도하고 투항을 안 해? 그 분노는 어디서 오죠? 오만함에서 옵니다. 오만할 만 합니다. 앗수르가 지금 얼마나 대단한 나라이며 나라가 확장되고 있는지 오만할 만 합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냐 멸망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거스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오만함인데, 하나님을 거슬러 분노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축복과 저주가 갈립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문화들이 생겨납니다. 창피한 이야기입니다. 성공회대라는 신학교가 있습니다. 거기 학생 기구에서 남녀가 함께 쓸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미 유럽이나 미국에는 그런 화장실들이 많습니다. 성소수자를 위한 화장실입니다. 저는 일반 대학교에서 해도 조금 그럴 거 같은데 신학교에서 도대체 어떤 배우가 있길래 학생회에서 이런 일을 진행할까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성중립 화장실은 남녀가 화장실을 한 공간에서 같이 쓰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게 나중에 법이 되면 국가에서 공공기관마다, 공공시설마다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어야 돼. 법이 내려지면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 종교기관 다 만들어, 안 만들면 너희 허가 안 해줄 거야 이러면 우리 중립화장실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법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이런 것이 그냥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화가 나는 것입니다. 분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분노하고 진리에 대해서 분노하고 막 짜증이 나고 견딜 수가 없는 그런 것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앗수르 산헤립이 그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하나님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산헤립은 전략, 전술, 실력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도 심지어 교회도 목회자인 저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잘하고 또 나를 잘 꾸미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당신의 섭리와 경륜을 믿지 않는다? 그러면 거기서 축복과 저주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산헤립에 대해서 이런 메시지를 주시고 그 다음 주신 것이 그것에 대한 징조입니다. 

 

- 여호와께 피하여 남은 자_이사야37:30-32

 

(30)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올해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둘째 해에는 또 거기에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셋째 해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 (31)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32)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_이사야37:30~32

 

30절. 무슨 말이에요? 전쟁 때문에 초토화된 땅에 첫 해, 둘째 해는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냥 자연적으로 난 음식을 먹고 셋째 해부터는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앗수르가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라는 확신을 준 것입니다. 징조로. 

그런데 31-32절에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피하여 남은 자. 뭘 피하고 뭘 남은 자? 주어가 없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32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에요? 지금 기도의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스기야 한 명만 기도했다고 생각하는데 히스기야 왕이, 지도자가 엎드려 기도하니까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피하고 남고 또 시온에 가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남은 자들이 뭐에요? 하나님이 땅에 뿌리를 박고 열매를 맺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엎드리는 자를 통해서 32절 하반 절에 보니까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의 열심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을 끌어낸다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 말씀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괜찮을 거다, 살 거다. 왜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엎드렸기 때문에. 여호와 앞에, 살아계신 하나님께 엎드렸기 때문에. 여호와 앞에 피하고 여호와 앞에 남아서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 너희를 보호하겠다 이렇게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목회를 하면서 제가 대단한 목회자는 아닙니다. 인터넷에 검색해도 이름도 나오지 않는  목회자입니다. 아무 신문이나 언론에도 나오는 목회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제가 목회라는 것을 하면서 계속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뭘 놓치고 있을까?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저에게 상담오시는 분들이 목사님, 진짜 감사해요, 너무 행복해요 해서 오시는 분은 없습니다. 목사님, 진짜 너무 기쁜 것 나누어주려고 왔어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상담 오시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힘든 겁니다. 여러분 좋은 소식가지고 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 어렵고 힘드니까 목사를 찾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힘들고 어려운 게 처음에는 경제문제, 가정문제, 자녀문제가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상담을 하다보면 본인들도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요. 여러분 솔직히 돈인가요? 건물인가요? 요즘 현대 목회는 성전을 무조건 예쁘게 지어야 된다고 합니다. 주차장도 좋아하고요. 일리 있습니다. 저도 일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교회 주차장이 오실 때마다 얼마나 불편하십니까. 또 저희 교회는 반 지하라서 올 때마다 냄새가 납니다. 여러분이 냄새를 덜 느끼는 것은 1부 예배에 오신 분들이 그 냄새를 다 맡아서 흡수해서 가셨기 때문에 2부 예배는 냄새가 덜합니다. 저는 어제 밤, 토요일 밤마다 제가 1부 예배를 드린다는 심정으로 여기 환기를 시키고 제습을 합니다. 그리고 예배당에 이렇게 기둥이 많은 교회도 우리 교회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교회. 누가 생각해도 이런 교회는 부흥되기가 힘들어. 조건이 안 돼, 주차장도 불편하고 교회 건물도 허름해서 위에서 자꾸 뭐가 떨어집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책들은 이야기를 합니다. 조직을 잘 만들고 교회 건축을 잘하고 프로그램, 시스템을 잘 갖추고 구역, 조직을 잘 만들면 하나님이 부흥해 주실 것이라고 말하지만 제가 부흥의 역사, 교회사를 공부하면 그게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무리 건물을 잘 해놔도 하나님이 거기에 임재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거기는 더 이상 하나님이 관심을 두지 않으세요. 그러나 반대로 허름해도. 제가 저희 모교회를 처음 갔을 때 판넬 교회였습니다. 진짜 교회 별 볼일 없었습니다. 비 오면 비세고. 빨간 커튼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허름한 교회가 금요일 밤에는 얼마나 뜨거웠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경배했는지. 그런데 지금은 건물은 좋은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끝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열심을 내시면 그것은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이 문제다, 건물이 문제다, 자녀들이 문제다. 아닙니다. 사실은 우리의 영혼은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영혼이 기쁨이 사라진 것은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성령이 내주하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닌가요?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온유, 양성, 화평, 이런 성령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 이런 열매를 맺을텐데. 우리 안에 성령이 없으니까 그런 것들도 채워도 늘 공허하고 늘 목마른 것 아닌가요. 

 

- 여호와의 열심_이사야37:33-38

 

(3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화살 하나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34)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35)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6)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37) 이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8)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_이사야37:33~38

 

33-35절. 하나님 당신을 위하여.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왜냐하면 이 성은 다윗을 중심으로 세워진 성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진짜 대단한 인물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보세요.

36-38절. 지금 어떤 일이냐면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전략적으로 천대 일, 만대 일의 정도의 상황인데 이 예루살렘을 하나님이 보호하시니까 창 하나, 화살 하나 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룻밤에 자고 일어나니 주의 사자가 18만 5천명을 다 시체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의 포인트는 우와, 18만 5천명을 하나님이 다 죽이셨데가 아닙니다. 우리가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면 안 됩니다. 여기에 포커스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냐 엎드리지 않느냐 입니다. 이 18만 5천명이 멸망한 것은 이 사람들이 오만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분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산헤립 왕은 하나님이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18만 5천을 다 죽이셨는데 산헤립 왕은 살려두셨습니다. 이때 산헤립 왕이 살았을 때 항복하고 예루살렘 성에 와서 회개했으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로 돌아갔어요? 니느웨로 돌아갔습니다. 니느웨로 돌아가서 자기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 가서 경배했다고 합니다. 그 니스록의 신전 그 당시에는 고대근동에 전쟁을 할 때 마차, 배 앞에 신을 달고 싸웠습니다. 그 시절에는 마차 앞에도 니스록이라는 신 모양, 형상을 달고 싸우는 시대입니다. 자기 신의 이름으로 싸우던 시대입니다. 이 신이 완전 실패하고 패배했습니다. 18만 5천이 죽었으니까. 그래서 니스록의 신전에 가서 경배하고 있는데 어떻게 죽었냐면 자기 아들 둘이 와서 칼로 아버지를 죽인 겁니다. 여러분 최악의 비참은 아들들이, 자녀가 부모를 죽인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자녀들이 나는 아빠처럼 안 살 거야. 나는 아빠와 같은 인생은 안 살 거야. 나는 아빠를 증오해. 저희 교회 성도님들은 자녀들에게 비록 우리 아빠가 가난했지만, 우리 아빠는 대단한, 훌륭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바르게 우리에게 신앙을 물려주고 우리를 위해서 따뜻하게 기도해줬던 진짜 믿음의 아빠였어. 그런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진짜 그런 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 산헤립이 얼마나 저주를 받았냐면 자기 아들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지금 하고 계시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여호와의 열심이라는 것입니다. 언제 시작했냐? 히스기야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 때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배제하고 당신 혼자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당신의 동역자 삼으셔서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엎드리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하나님은 일하고 싶은데, 역사하고 싶으신데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구속사를 이루기를 원하시고 당신의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십자가 사랑, 놀라운 사랑을 온 열방 가운데 전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일에 엎드리지 않으면 우리가 그 일을 전적으로 믿고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믿지 않으면 그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그 일이 우리 가운데에 벌어지지 않습니다. 이건 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엎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엎드리면 몇 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이것은 기억하고 계셔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정말 엎드린다는 표현을 기도라는 표현보다 더 강한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엎드려야 해요, 엎드려야 합니다. 이 엎드리는 표현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왕의 왕으로 창조주로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인간은 어떻게 되나요? 교만하고 오만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몇 가지 일이 일어나는데 그 첫째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게 되는 것은 우리가 엎드릴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저는 저희 교회 예배 프로그램을 조금 갱신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공부를 하다 보니깐 지금 저희 예배 프로그램이 1시간30분-2시간 사이에 다 끝나야 합니다. 마치 결혼식하고 비슷합니다. 제가 어제 결혼식을 갔는데 25분에 다 끝나더라고요. 목사님 주례가 3분 하시더라고요. 저는 교회 본당에 다른 욕심은 없는데 저희 교회 청년들이 교회에서 결혼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무슨 기계처럼 판을 찍어내듯이 찍어내잖아요. 지금 우리 교회 프로그램도 비슷합니다. 1부 예배, 2부 예배, 3부 예배. 어떤 교회들은 신학적으로 맞는지 틀린지 모르겠는데 토요일 아침부터 1부가 시작됩니다. 그 말은 토요일 아침 일찍 예배드리고 놀러가는 것을 교회가 허용해주는 것입니다. 그걸 공식예배로 못 박아놨습니다. 토요일부터 1부가 시작이 됩니다. 그 중에 십 몇 부까지 있는 예배 중에 하나만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70-80년대 예배를 보니 예배가 3-4시간씩 드렸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숫자도 없고 할 일도 없고 이러니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예배가 목사님이 설교도 2시간씩. 설교를 지루해했다, 힘들어 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예배 끝나고 기도하는데 성도들이 가지를 않습니다. 뭐한다고요? 말씀 듣고 눈물 흘리고 울고 있는 다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한다고 가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 12시에 끝나서 밥 먹으러 가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청소년 수련회 이야기도 했습니다. 청소년수련회 와서 저녁 집회 때 그 황금 같은 시간에 말씀 끝나고 아이들하고 성령이 임하셔서 회개하고 눈물 흘리고 있는데 목사님이 나가십니다. 나가면서 그냥 나가면 좋은데 한 마디씩 합니다. 기도회가 너무 길어.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간식 먹어야 된다고 합니다. 간식을 제때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안 먹으면 안 되나요? 밥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수련회 와서 씻고 자야한다고 합니다. 쉬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수련회 왜 왔습니까? 목사님들은 돈도 안 내면서 말입니다. 그러니깐 정말 이상합니다. 정말 이상하고 너무너무 이상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하나님 말씀을 받고 회개하고 은혜 받고. 그래서 주일이라고 해서 예배만 드리고 가기 바쁜 구조를 벗어나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엎드릴 수 있을까. 옛날에는 농사짓는 분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성경을 한글을 몰라서 읽지도 못했습니다. 또 성경 읽을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피곤해서. 교회 오면 사모님, 목사님에게 한글을 배우고 성경읽기 바쁜 것입니다. 평일 날에는 성경읽기가 힘드니까 주일날 교회에 일찍 가서 성경 읽기 바쁜 것입니다. 너무 은혜 받아서 교회라도 가서 성경 읽으려고 한글을 배우고 이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요? 세련되었습니다. 야, 이 타이밍에 일어나야 돼. 야, 이때는 조명이 이렇게 해야 돼. 물론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세련된 것, 깔끔한 것 좋아합니다. 지저분한 것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성령의 임재를 놓칠 수 있습니다. 정말 어떻게 하면 성령의 임재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새사람이 되어서 회복할 수 있을까? 여러분 이 말씀이 부담일 수 있지만 지금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 시급하게 회복해야 될 것이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임재. 그래서 편리주의,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라든지 성령의 임재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갱신하고 회개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엎드릴 때 성령이 임재하십니다. 

엎드리면 두 번째 일어나는 일은 바로 복음을 회복하고 첫사랑, 처음 받은 복음을 지키게 됩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장입니다. 이 복음을 지키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엎드리지 않으면 기도해서 성령을 받지 않으면 처음 받은 복음을 변질시킵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 단체들이나, 교회들이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뜨거웠는데 처음에는 오직 하나님, 은혜 그랬는데 나중에 변질되고 자기의 경험, 전략 이런 것들이 쌓여서 하나님이 사라지고 복음이 변질이 됩니다. 복음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왜요? 엎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 구원이라는 것은 이것은 잘 들으셔야 합니다. 신학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중요합니다. 구원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도 없을뿐더러 우리 영역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고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하는 일은 내 안에 있는 내가 깨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는 일이 우리의 사명, 해야 될 일이지 구원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거 구분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누구를 구원해? 말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내가 걔 영접시켜서 내가 구원했어. 이런 말 하시면 안 됩니다. 천벌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 조카들 내가 다 전도했어. 이런 말 하면 안 됩니다. 내가 다 영접시켜서 내가 구원했어. 이런 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내 안에 계신 복음이 너무 좋아서 감사하고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가는 것이 정말 믿어져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지만 그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지만 구원은 우리 영역이 아닙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분들이 교만하고 오만해집니다. 왜요? 엎드리지 않으니까. 처음 복음이 지켜지지가 않은 것입니다. 첫사랑 다 사라지는 겁니다. 그 은혜, 그 십자가의 은혜. 감동. 다 사라졌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제는 오만, 교만한 것 밖에 남지 않은 겁니다. 왜요? 엎드리지 않아서요. 여러분 엎드리면 제일 먼저 생겨나는 것이 내 안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요, 십자가의 복음이 회복이 됩니다. 그게 감동이 되어서 그 은혜로 내 영혼을 사랑하게 됩니다. 내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영혼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죽어있는데 다른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이 임하셔서 내가 복음이 회복되어야 다른 사람에게 복음이라는 것을 설명, 전달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갈수록 지킬 수가 없게 됩니다. 왜요? 엎드리지 않으니까. 

세 번째. 엎드리면 우리 삶이 새로워집니다. 우리 삶이 변화됩니다. 반드시 새로워집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사업, 업, 나의 인생, 자녀교육 우리가 생각한 모든 문제가 엎드릴 때 풀린다고 확신합니다. 엎드릴 때 길이 열린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워지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많고 그래서 우리 마음이 공허하고 허전한 겁니다. 너무 많은 세상 것들로 채워져서 갈증이 나는 겁니다. 물을 마셔야 하는데 콜라, 환타, 쿨피스 마시고 이러다 보니까 너무 갈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엎드리면 우리 삶은 새로워집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해도 늘 비교하고 상처받고 교만해진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륜, 섭리. 하나님이 구속사를 이루어 가시는 그 섭리와 경륜을 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늘 비교합니다. 내 자존감이라든지 내 인생의 정체성은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 신앙은 엎드렸을 때 그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믿는 성령의 역사, 복음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 삶은 반드시 새로워집니다. 내가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변화되어야 우리 가정도 변화될 수 있고 삶에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들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엎드리면 분명히 변화되고 새로워집니다. 뜨거운 그 복음의 무엇인가가 우리 가슴에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셔야 되는데 하나님이 내 편이 되도록 우리는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애교를 부려서라도 하나님을 내 편으로 모시고 와야 합니다. 

 

Ⅲ.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_시편124:1-8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_시편124:1~8

 

1절. 남유다 입장에서는 예루살렘 성의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아니었으면 18만 5천 군대에게 쑥대밭이 되었을 것입니다. 

2-7절. 올무 아시죠? 새 잡는 올무, 짐승 잡는 올무. 스스로는 절대 못 벗어납니다. 올무는 완벽하게 가두는 겁니다. 딱 묶어버리는 것입니다. 절대 못 빠져 나갑니다. 누가 올무를 끊어줘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앗수르 18만 5천은 남유다의 올무입니다. 못 벗어납니다. 아무리 쳐다보아도.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기도하러 갔습니다.

8절. 아멘.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시도록.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을 뿐더러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를 존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회복시키는 일을 경험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 여호와 앞으로 가서 엎드려야 합니다. 목사님, 성경 읽어야 된다면서요? 맞아요. 성경 읽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하루에 100장씩, 1000장씩 읽어도 엎드리지 않으면 이 성경말씀이 지식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우리가 엎드릴 때, 기도할 때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목회자들이 성도를 위해 기도합니다. 잘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진정은 권사님. 어릴 때부터 봤으니까.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기도가 술술 나옵니다. 왜냐하면 다 압니다. 이 집안의 배경도 알고 부모님의 장례식도 갔고 사연을 다 압니다. 동생은 어디에 살고 그러니깐 기도가 됩니다. 그런데 준하 준목님. 이번 주는 준하 준목님 기도하려고 눈을 감았는데 기도제목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축복해주시고 무엇을 축복해주셔야 되지? 하나님이 준하 준목님 건강 지켜주시고, 뱃살이 들어가게 해주시고 뭐 이런 기도밖에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깐 무슨 말이냐면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성경 읽기가 조금 정착이 되면 해야 하는 것이 우리 기도제목들을 나누는 것입니다. 사실 이 하나님과 섭리와 경륜을 믿고 우리 교회가 뜨거운 기도의 공동체가 된다는 증거가 우리 기도제목이 창피나 수준이나 체면 이런 것과 상관없이 기도제목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가 예수님을 안 믿는다, 우리 부모가 예수님을 안 믿는다, 우리 집에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이 모든 성도들의 손에 들려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학교 아이들 명단을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린 것은 아이들 이름 하나하나 기억하면서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일하신다고 합니다. 열심을 내신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오승주 목사를 위해서 사실은 하루도 쉬지 않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삐뚤어진 길 가지 않고 유혹을 받지 않고 그릇된 무리들과 같이 어울리지 않고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를 기도로 보호해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하나님께 부탁하고 서로의 이름을 하나님께 아뢰고 지켜달라고 인도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엎드려야 합니다. 기도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너무 많은 전략들, 교회 조직은 이렇게 짜야 돼. 이런 것 있잖아요. 제가 교회 성장 세미나를 몇 번 가봤는데. 여러 교단에 성장 세미나를 가봅니다. 개척하고 관심이 있으니까요. 대다수 그런 내용들입니다. 조직은 어떻게 구성해야 되고, 물론 말씀을 인용을 합니다. 그러나 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건물, 성전건축은 어떻게 지어야 되고. 전략은 어떻게 짜야 되고. 무슨 단어 같은 것. 블루오션은 어쩌고. 책 속에 있는 좋은 단어는 목사님들이 다 가져다 씁니다. 그런 것을 플랑카드 걸어놓고 으쌰으쌰 하자는 것입니다. 그거 아니잖아요. 그게 목회인가요? 제가 너무 의구심이 많이 들어서 오죽하면 공부를 다시 하고 싶겠어요. 정말일까? 하나님이 부흥의 때에 정말 그것을 원하셨을까? 성경을 읽을수록, 책을 읽을수록 저를 이끌고 가는 곳은 하나님 앞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보아야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남유다에게 원하는 것은 앗수르가 18만 5천이 죽었다, 내가 너희를 보호했다. 이런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진짜 원하고 바라는 것은 히스기야가 내 앞에 엎드렸다고? 내 앞에 기도를 했다고? 그게 너무 좋으신 겁니다. 그게 너무 행복하신 것입니다. 내 백성이 나를 바라봤다고. 하나님이 그것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 것 아닌가요. 그것 때문에 예수의 이름을 주신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 시대는 지금 오만함 때문에. 분노 때문에. 하나님,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다들 이러잖아요. 내가 하나님한테 한 게 어떤 것인데. 내가 그동안 바친 헌금이 얼만데. 어떤 내 자녀를 대학도 제대로 못 보낼 수 있어요. 그런 거요. 이런 분노들이 우리 안에 있잖아요. 엎드려야 합니다. 정말 엎드려야 되겠죠. 우리가 하나님이 다시 우리 편이 되시도록.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 되시도록.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쩔 뻔 했냐. 오늘 시편저자가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이 다시 내 편이 되도록 그래서 우리 안에 성령의 역사로 다시 첫사랑 복음이 회복되고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어지는 정말 부흥이 여러분 가정에 부흥이 여러분 마음에 부흥이 우리 교회의 예배와 공동체 안에 부흥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 부흥이 있을 때 이 땅이 다시 회복되고 죄인들이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지 않을까요? 주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마다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시거든요. 그 어떤 악행을 저질렀더라도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 받으신데요. 저는 저희 교회 오는 성도님들이 정말 예수님 만났으면 좋겠고,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인생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해보는. 여러분 우리가 평생을 교회 다녔는데 성령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도 모르고 산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다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신앙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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