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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1-06-1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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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1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2부예배)
제 목 자아도취에 빠진 히스기야
본 문 이사야 39:1-8

 

 오승주 목사

 

오늘 이제 이사야 39장을 설교를 하면 이사야 말씀의 흐름이 바뀝니다. 39장에서 40장은 완전 다른 이사야 설교가 됩니다. 이사야서를 3단계로 나누는 신학자들도 있고 2단계로 나누는 신학자들도 있는데 2단계든 3단계든 아주 핵심적으로 분리가 되는 게 오늘 나누게 되는 39장이 끝나고 40장부터가 내용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39장까지는 이스라엘의 역사 중심, 왕 중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고 40장부터는 어떤 희망의 메시지, 영적인 내용들이 많이 다뤄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39장이 이사야 전반부 말씀을 마무리하는데 도움이 되고 유익한 설교라서 자세히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Ⅰ. 이사야의 전반부 이야기

 

39장까지 내용과 다음 주부터 살펴 볼 40장부터의 내용은 전혀 다르진 않겠지만 지금까지의 이사야서의 내용과 조금 다른 배경, 다른 메시지들이 전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왜 완전 분리가 되냐면 39장까지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북이스라엘, 남유다의 역사, 왕들의 역사인데 다 실패의 역사입니다. 오늘 본문의 히스기야도 지난주까지만 해도 대단한 기도의 사람이라고 18만 5천을 물리치고 죽을병도 물리친 믿음의 사람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오늘 39장에 형편없는 사람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그리고 40장부터 나오는 것은 하나님이 희망의 메시지, 소망의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39장까지의 말씀을 보면서 그리고 우리가 40장부터의 말씀을 대면하면서 우리가 얻어야 될 교훈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사야 39장까지 설교를 하면서 저 개인에게, 제 자신에게 그리고 주변에게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건들, 또 저에게 오는 어떤 하나님의 음성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씀을 드린다면 저는 그동안 하나님이 아닌 사람 중심, 어떤 조직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또 목회사역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그러면 올바르게 제대로 안 했냐? 그 전에 제 딴에는 올바르게 제대로 한다고 했지만 이사야 말씀을 살펴보니까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어떤 조직을 위해서 신앙생활하고 사역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도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 했던 것이 더 많았고 하나님이 두렵고 떨리는 것보다 성도들 생각을 하고 성도들 입장을 생각하고 이렇게 목회를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별 차이가 나지 않은 것 같지만 그게 제가 하나님 앞에서 진짜 좋은 목사냐 그렇지 않냐, 하나님이 쓰시는 목사냐 아니냐에 아주 중요한 갈림길이라고 저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중요하고 조직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보다 우리 주님보다 더 높았던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기서 오는 어떤 결과들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제가 교회사를 공부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것을 정말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게 제 모습이어서 저는 이사야서 39장까지 설교를 하면서 굉장히 많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어떻하지?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 이런 마음들이 많았습니다. 여러분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절대적인 사역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게 교회가 하는 사역이 맞습니다. 목사가 하는 사역이고 우리 복음 가진 사람들이 하는 사역이 맞을 수 있지만 아닙니다. 그 말을 의미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만 하시는 절대적인 사역이라고 믿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까지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가정, 우리의 가문, 우리의 후손들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고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 일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으로 사역을 합니다. 누구 한 영혼을 전도하려고 그 사람을 섬기고 그 사람 발도 씻겨주고 이것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허락하셨기 때문에 나에게 그런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완전히 하셔야 하는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사역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이 사역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사역이라는 단어가 맞는데 조금 더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섬세하게 살펴보면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을 제가 오늘 이 말씀에서 정말 많이 깨달았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생명을 지키려고 자기 목숨을 지키려고 하면 자기 목숨을 잃어버릴 거고 자기 목숨을 내놓으면 반대로 얻는다고 합니다. 이게 두 단어가 다릅니다. 육신의 생명을 지키려고 하면 영적인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육신의 생명을 내어놓으면 영적인 생명을 얻는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내어놓으면 얻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약함은 주님의 강함이 됩니다. 이게 저와 여러분 보고 우리가 강제로 약하다, 약하다 고백해라, 우리 약한 사람이야 하나님이 강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죄인이구나, 연약하구나 그 어떤 사역을 했던 사람이라도 그 어떤 기적을 일으켰던 사람이라도 예수님에게서 멀어지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바로 타락할 수 있구나. 우리는 이것을 알고 가야 합니다. 그 어떤 인간이라도, 대단한 업적을 이루고 온갖 역사적인 인물이라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타락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D.L.무디라고 미국의 진짜 유명한 전도자입니다. 시카고에 가면 D.L.무디 신학교도 있고 교회들도 많습니다. 얼마나 복음을 많이 전하고 교회들을 많이 세웠는지 시카고가 D.L.무디의 도시 같습니다. 저는 시카고에 가서 신학교도 가보고 박물관, 역사관도 가봤습니다. D.L.무디 책들도 많이 읽었습니다. 정말 존경하고 진짜 많은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요즘 공부를 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유명한 찬송가를 많이 지은 시각장애인이었던 페니 크로스비의 책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뭐라고 기록이 되어 있냐면 D.L.무디에 대해서 좋지 않은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D.L.무디가 나이가 들어서, 말년에, 끝날 즈음에 굉장히 많은 부정과 부패, 옳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것을 페니 크로스비가 걱정하면서 쓴 자료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D.L.무디가 쓴 자서전이나 D.L.무디 사람들이 쓴 것은 다 찬양을 하지만 페니 크로스비는 우리가 믿을만 하잖아요? 얼마나 진실 된 사람이에요. 그런 기록을 진실 되게 남겨놨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D.L.무디를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D.L.무디를 엄청 좋아하지만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간이라도 어떤 제자들이라도 어떤 사역자들이라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타락할 수 있는 것이구나. 인간은 그렇게 연약한 존재이구나.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다시 바라보고 의지해야 되는데 앞으로 40장부터 어떤 말씀을 주실지 너무 개인적으로 기대가 많이 됩니다. 그러나 40장부터의 설교들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설교를 하고 여러분은 듣고 이런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 성도들이 모든 가족들이 이 말씀 속에서 40장부터 주시는 말씀들이 우리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고 우리를 그 말씀의 인도 가운데로 올려놓는 그런 일들이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역사, 성령의 역사는 인간이 주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주체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주체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39장 결론 말씀을 우리가 굉장히 정리를 잘 해놓아야 합니다. 

 

Ⅱ. 자아도취에 빠진 히스기야

 

- 자아도취에 빠진 히스기야_이사야39:1-2

 

(1)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2)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_이사야39:1-2 

 

지금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었는데 병이 낫고 15년이나 연장이 되는 나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이게 소문이 다 났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우리나라도 국제정세 한 가운데 있는 국가 중에 하나입니다. 위로 북한이 있고 남북이 갈라져있고 일본, 중국, 대만, 러시아, 미국. 이런 국가들로 둘러 쌓여있는 우리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보수가 대통령이 되냐 진보가 대통령이 되냐에 따라서 엄청 주변 국가들이 계산하고 난리가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경제가 오르락내리락 하고 군사훈련들이 바뀌고 엄청난 일들이 뒤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보다 훨씬 더 원초적인 국가적인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 때 당시의 국가 정세는 엄청 예민할 때인데 히스기야가 죽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국가들은 신이 났을 수도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죽는데,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이런 계산들을 하며 주변 국가들이 계산기를 두드렸던 때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또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살아나면 더 강해집니다. 여러분 히스기야가 그냥 있는 것이 강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위기를 극복해서 자기의 신으로 말미암아 살아났다 하면 훨씬 강한 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주변 국가들이 전부 다 계산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 바벨론에서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사절단을 보내왔습니다. 그 당시 바벨론은 강대국이 아닙니다. 그 당시는 앗수르(앗시리아)가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절에 바벨론은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였습니다. 앗수르의 속국과 같은 나라입니다. 바벨론이 강대국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벨론 마음에는 조공을 바치면서 언제나 앗수르를 넘어서겠다, 우리가 강대국이 되겠다 하면서 엄청난 준비를 하고 있는 나라가 바벨론입니다.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는지 오늘 조금 살펴 볼 건데 그 바벨론이 앗수르를 대항하는 남유다의 왕이 죽었다가 살아났어? 하고 바로 사절단을 보냅니다. 그냥 보낸 것이 아니라 많은 예물과 왕의 친서를 사절단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사절단이 왔을 때 히스기야의 자세가 오늘 본문에 너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로 인해서 오늘 보니까 기뻐했다고 합니다. 제가 원어를 살펴보니까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병을 고침 받았을 때 기뻐했다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죽었다 살아나면서 쓴 단어와 지금 사절단이 온 단어를 똑같은 단어를 썼습니다. 기뻐하다. 너무 신난 것입니다. 너무 너무 신이 나서 어떻게 했냐면 사절단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오픈해 버렸습니다. 여러분 죽을병이 걸려서 기도해서 나았던 사람이 삶이 변화된 것이 맞는데 그런데 삶이 변화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적을 체험하고 신앙생활하면서 병 고침 받고 대단한 역사를 체험하면 내 삶이 변화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여러분 우리가 수영장 가서 우와 수영 진짜 좋네, 나 진짜 수영 배우고 싶어, 수영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한다고 해서 수영실력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그런 생각하잖아요. 지금 히스기야가 딱 그런 상태입니다. 저는 이런 경우를 정말 많이 봤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하셨던 젊은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암에 걸리신 것입니다. 갑자기 아버지가 암이 걸리니까 어떻게 해요? 교회를 너무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불안할 정도로. 어떻게 교회를 저렇게 열심히 다니지? 안 다니던 교회를 잘 오고 새벽기도도 오고 아버지 병원에 목사님들 초대해서 예배도 드리고 정말 간절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보고 아들 변화시키려고 아버지에게 암을 주셨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암이 치유가 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셨습니다. 폐암 4기셨는데 6개월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들이 다시 교회를 나오지 않습니다. 교회를 나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아예 하나님을 부정해버립니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새벽기도도 갔는데 왜 아버지를 치료하지 않으셨냐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이 그런 것입니다. 대상, 주체가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그럴 수 있습니다. 지금 히스기야의 상태는 완전히 흥분상태입니다. 무엇으로 흥분했어요? 병고치고 나은 것 다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다 잊어버렸습니다. 구원의 노래를 부른 것 다 잊어버렸습니다. 우와, 바벨론이 나한테 사신을 보냈어? 이 많은 예물을 보냈어? 그러니까 그것에 흥분이 되어서 완전 자아도취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마치 이 축복을 자기가 잘한 것처럼. 그래서 오자마자 다 구경시켜줬습니다. 자기 재산을 어떻고 국력은 어떻고 무기고까지. 심지어 오늘 본문에 보니까 전 국내의 소유를 다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절단을 나라를 다 돌아다니면서 남유다 이스라엘 땅을 데리고 다니면서 관광투어를 시켜주면서 우리는 이런 나라야, 내가 이런 나라를 이뤘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바벨론은 히스기야가 왜 나았는지를 모릅니다. 그냥 그 정도입니다. 바벨론은 심각한 우상을 섬기던 나라니까 히스기야, 남유다가 믿는 여호와란 신이 고쳐줬나 보다 이정도 일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정말 어떻게 기도했는지 하나님이 그 속에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으로 어떤 역사가 일어났는지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그런 역사적인 내용은 바벨론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바벨론은 남유다와 동맹을 하면 언젠가는 앗수르를 뛰어넘겠다는 계산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그러잖아요. 우리도 예를 들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진짜 강하게 체험을 해도 밖에서 볼 때는 의사를 잘 만났나보네, 때를 잘 만났나보네. 교회도 그럽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목사는 교회 바닥에서 눈물로 기도하고 하나님이 두렵고 떨림으로 사역하고 섬겨서 부흥 한 것인데 밖에서는 가스펠교회 시스템이 얼마나 좋아, 인재들이 많아서 교회가 부흥한데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용이 그 정도인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들이 왔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간증했어야 되는데 언제 구원의 노래를 부른 사람이냐 싶을 정도로 자아도취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원어에 보면 히스기야가 흥분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흥분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사람이 흥분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어렵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화가 났으면 감정이 좋지 않으면 감정을 풀고 예배에 오라고 합니다. 감정이 기분이 나쁘면 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배 시간에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듣는 것 같은데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기분이 너무 좋아서 흥분해도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자아도취에 빠지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보고 묵상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컨트롤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을 컨트롤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저도 옛날에는 흥분하면 아무 말이나 내뱉게 되고 나도 모르는 무의식 속에서 내 행동이 나오게 됩니다. 기분이 나빠도 나오지만 기분이 좋아도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실수한 말들, 행동들 얼마나 많이 합니까 우리. 그래서 성경은 우리보고 묵상하라고 합니다. 묵상해서 우리의 말과 행동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잘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고 행동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분하면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주은전도사님이 지난 주에 준목고시에 합격했습니다. 6개월 공부했습니다. 목사 과정 가운데 제일 어려운 시험입니다. 의사는 의사고시가 있듯이. 몇 명 안 떨어졌더라고요. 합격했습니다. 제가 사실 제 후배들을 만나면 선배로서는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또 저는 선배들을 만나면 하나라도 배우려고 합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일 가르쳐주기 어려운 사람이 제 후배들 중에 어떤 부류의 사람이냐면 대형교회 큰 교회 부목사들입니다. 막 목사가 되어서 대형교회 청빙을 받은, 이제 막 목사가 된 친구들이 제일 가르쳐주기가 어렵습니다. 이 친구들은 무슨 착각을 하냐면 큰 교회 부목사니까 기관을 맡습니다. 대학부를 맡는데 이미 수백 명입니다. 교구를 맡습니다. 이미 성도가 엄청 많습니다. 이미 세팅 되어 있는데 부목사로 가서 사역을 합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항상 착각하는 것이 자기들이 사역을 잘하고 설교를 잘해서 그렇게 모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막 목사가 되어서 부목사입니다. 저희교회는 부 자를 쓰지 않습니다. 다 목사이지 부목사 이런 것이 없습니다. 저희 주보에 부 자를 붙이지 않습니다. 큰 교회들에 있는 부목사들이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 선배가 큰 교회 부목사였습니다. 제가 개척할 때 서울에 올라왔는데 몇 번 만났습니다. 정말 잔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개척을 해서 이렇게 예배를 하겠다고 하니까 오목사 그렇게 예배하면 안 돼. 이런 것 있잖아요? 한두 번은 충고로 듣고 귀담아 들었는데 만날 때마다 자기 교회는 이런 것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형님네 교회니까 그런 것을 할 수 있지 개척교회가 그런 것을 어떻게 하냐고 했습니다. 그러면 네가 믿음이 없어서 그렇지, 믿음을 가지고 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저한테 계속 했습니다. 제 예배 보고 너네 예배 스타일이 왜 그러냐 그랬던 선배입니다. 그 선배가 제가 개척한지 2년째에 자기가 개척을 했습니다. 지금 5년이 된 것입니다. 지지난주에 만났습니다. 왜 만났냐면 다시 대형교회 부목사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개척을 접고. 개척하는 동안에 새신자가 1명 왔다고 합니다. 5년 동안 너무 힘든 것입니다. 그 선배가 그랬습니다. 승주야 내가 그 때 했던 말 진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제가 밥 사 먹이고 다시 대형교회 부목사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그 선배를 만나고 이사야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선배를 만나게 하신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스승이신 박이석 목사님은 목회를 늦게 시작하셨습니다. 목회하기 전에 직업이 한전에서 근무를 하셨습니다. 80년대 한전. 전신주 세우는 담당직원이었습니다. 옛날에 시골에 전기 줄을 깔고 전신주를 세웠습니다. 그 일을 직접 맡아서 하신 분이십니다. 전기 기술자이십니다. 전문가이십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셔서 그것을 다 접고 목회를 하신 것입니다. 조그만 판넬로 예배당을 짓는데 목사니까 그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와서 전구를 달고 전기를 설치하는 친구가 전기 과 다니는 학생이었다는 것입니다. 전기 과 다니는 학생이 전구를 만지고 다는데 목사님이 볼 때 안전하지 않고 위치도 틀리고 하니까 목사님이 그것은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고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 학생이 목사님에게 했던 말이 무슨 말인줄 아세요? 목사님, 모르면 가만히 계세요. 한전에서 20년 근무하신 목사님에게 전기 과 학생이 목사님 모르면 가만히 계세요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 목사님에게 그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를 경고하시는 메시지를 그렇게 에둘러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정신 차려라 너네는 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맞는 말입니다. 여러분 교만은 우리의 귀를 막고 눈을 막고 마음을 폐쇄합니다. 마음이 닫히면 끝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닫히면 그 인생은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교만을 이길 수 있는 뭐라고 말하냐면 성경은 지혜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특히 잠언과 전도서 이런 말씀들은 우리에게 지혜를 가지면 교만을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지혜는 어디서 오냐면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온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경건에서 지혜가 온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에서 지혜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건은 사도바울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훈련이라고 합니다. 경건은 훈련이라고 합니다. 왜 방금 목사 된 친구가 어렵냐면 아직 필드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지 훈련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큰 교회, 대형 교회 부목사들이 마치 자기가 큰 대형 교회에 있으니까 자기가 사역을 잘 한다고 생각하고 어른 목사님들, 큰 교회 목사님들을 함부로 비난하고 비하하고 이럽니다. 그리고 개척교회가 어쩌고 저쩌고 이런 말을 함부로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훈련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는 지혜를 얻어야 되는데 말씀을 묵상하고 경건에서 지혜가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어제가 아니고 또 미래가 아닙니다. 내일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과거가 아니고 미래가 아닙니다. 물론 과거도 중요하고 미래도 엄청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만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지 못합니다. 신앙은 오늘 내 연약함을 인정하고 오늘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내 삶에 은혜를 구하며 사는 오늘이 바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내가 오늘 주님을 가까이하고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깨닫고 사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실패하는 이유가 과거에 묶여있다든지 헛된 망상 같은 미래를 가지고 헛된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실패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낙심이라는 것, 포기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히스기야처럼 되겠죠. 과거에 하나님이 주신 축복들이 오늘은 자기의 영광이 되고 자기의 자랑이 되버리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된 것입니다. 죄 짓는데 써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은, 섭리와 경륜을 믿는 사람, 내세를 믿는 사람은 절대 과거와 미래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오늘을 살게 됩니다. 내가 연약한 죄인이라고 매일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이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살 수 없는 삶, 바로 그것을 보고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낙심과 포기가 없습니다. 멜리데 섬에 가서 독사에게 물렸던 사도바울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죽으면 죽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항상 오늘 내가 죄인이구나. 나는 연약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사도바울은 아침마다 일어나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는 삶,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서신서에 바울의 신앙관이 다 드러나 있습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이라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문제가 굉장히 많이 옵니다. 이 사건을 두고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옵니다.

 

- 이사야 선지자와 히스기야의 관계_이사야39:3-7

 

(3)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묻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이르되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 하니라 (4)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내 창고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 보물이 하나도 없나이다 하니라 (5)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6)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7)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_이사야39:3-7 

 

6절. 여기서 날은 때로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는 이 본문 말씀을 보면서 몇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히스기야 축복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사야 선지자와의 관계였습니다. 좋은 관계. 그런데 히스기야가 얼마나 영악하냐면. 이 죄, 교만이라는 것이. 히스기야가 병에 걸려서 아파죽을 때는 히스기야가 이사야 선지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바벨론의 유명한 사신들이 와서 예물을 들고 왔을 때는 히스기야가 이사야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저도 목회를 하다보니까 매일 심방 요청하는 것, 상담 들어오는 것을 보면 다 괴로운 분들, 힘든 분들입니다. 물론 목사가 그 사역을 해줘야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 있으시면 세상 말로 생까시더라고요. 여러분 좋은 일도 나눠야 합니다. 좋은 일도 교회 공동체와 나눴을 때 배가 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는 선지자를 찾았는데 엄청난 바벨론의 사신이 왔을 때 선지자를 찾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죠? 그리고 사절단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오픈해서 보여줘 버렸습니다. 여러분 로마가톨릭에 고해성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부들에게 자기 마음의 은밀한 죄를 고백하는 것. 저는 그것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저한테 와서 은밀한 죄는 이야기하지 마세요. 저 계속 생각납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 앞에 가서 고백하세요. 사람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어떤 목사라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성령께 의지해서 죄 문제를 해결 받으려고 애쓰셔야지, 은밀한 죄 이야기를 자꾸 목사들에게 하시면 안 됩니다. 그것을 자꾸 오픈하는 것을 믿음 좋은 거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히스기야가 바벨론에게 다 보여줘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 보여주고 나서 누가 왔냐면 이사야 선지자가 왔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가 와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하면서 하나님이 하신 이야기가 뭐냐면 네 모든 소유와 조상들이 쌓아놨던 모든 것이 다 바벨론으로 옮기게 된다고 예언 하십니다. 예언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아세요? 바벨론이 나중에 패권을 장악할 때 앗수르가 실패한 정책을 바벨론은 다른 정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예를 들어 앗수르는 패권을 장악했을 때 각 나라 신들을 인정해주고 각 나라에 총독 같은 것을 파송해서 그 나라의 사람들을 그대로 그 지역에 살게 했습니다. 그래서 실패한 것입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남아있으니깐 독립을 다 꿈꾸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이 성도 다 바꾸고 씨를 말려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중국에 임시정부를 세워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앗수르가 실패한 정책이라는 것을 바벨론이 알고 씨를 말려버렸습니다. 그 나라에 그 민족이 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의 민족은 저 먼 땅 나라로 이주시키고 이 나라의 민족은 다른 나라에 이주시키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엄청 똑똑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이 그 나라에 쓸모없는 인간들은 다 죽여 버렸습니다. 씨를 말려버렸습니다. 그게 바벨론입니다. 오늘 말씀이 그대로 성취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슨 저주를 하나님이 하셨나요. 네 자녀들이 바벨론 왕의 환관이 되리라. 무슨 말인가요? 왕의 자손, 후손이 바벨론 왕가의 신하가 된다는 겁니다. 그게 다니엘이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아닙니까. 저주입니다. 여러분 이게 타이밍입니다. 만약에 바벨론에 사신들이 왔을 때 히스기야가 병 걸렸을 때처럼 이사야에게 질문했다면, 바벨론의 사신이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요,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요 라고 질문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봤을 때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는 절대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믿지만 이 본문 사건만을 봤을 때 이 히스기야의 실수, 선택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에게 교훈입니다. 우리도 그런 것이 많습니다. 우리 성도들 상담하러 오면 이미 일 다 벌리고 일 다 저지르고 결정 다하고 목사에게 옵니다. 목사에게 와야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사야 선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다 일 벌리고 부모님에게 상담합니다. 기도할 기회도 주지 않습니다. 오늘 히스기야는 이미 바벨론에게 모든 것을 다 오픈하고 그제서 비로소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왔을 때 고백합니다. 이미 지나가버렸습니다. 이게 후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지. 얼마나 어리석어요? 왜요? 흥분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자아도취에 빠져있어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업적을 자화자찬하고 있고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음성으로 듣지 못하고 있으면 우리 후대들 잡혀 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무섭다 이 말이 아닙니다. 세상은 항상 무서웠고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괜찮은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속아서 세상에 넘어갈 수 있는 겁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한국교회. 세계 교회사에 유일합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렇게 급성장한 것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초대교회보다 더 급성장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세계 10대 교회 중에 한국교회가 대형교회 중에 7-8개인가 있습니다. 엄청납니다. 10만 명 교회가 우리나라에 몇 개 있는 줄 모릅니다. 완전 짧은 시간에 급성장했는데 지금 미국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급하락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걱정할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탄탄합니다. 미국은 신학이 탄탄하고 공부하는 목사들이 많기 때문에 성도들이 말씀묵상이라는 것이 체질이 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은 쉽게 주저앉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성도들은 기복신앙과 함께 병 고침의 은사라든지 기복적인 신앙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금방 식어버립니다. 그래서 떨어집니다. 우리가 자화자찬하고 있는 동안에 떨어집니다. 한국교회들이 얼마나 자화자찬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있다. 한국 기독교가 30%를 넘었다, 40%를 넘었다. 지금 우리가 자화자찬할 때가 아닙니다.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동안에 한국교회가 후대들 다 놓쳤습니다. 지금 교회들을 보세요. 주일학교가 아예 없어진다고 합니다. 리서치에 나와 있습니다. 100명 이하의 출석 교회에 주일학교가 있는 교회가 2%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기적입니다. 우리 교회 태영아부, 초등부가 있다는 것은 기적 중 기적입니다. 저는 개척해서 제가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라 개척해서 성도들이 조금 늘었을 때 장로님과 재정부에서 목사님이 한 동안 사례를 못 받으셨으니 사례를 올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 순간에 무슨 용기가 있었는지 그 사례 백만 원 올려 주실 것을 전도사 한 명 더 쓰겠습니다. 그 다음에 또 올려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또 올려주실 그 돈으로 전도사 한 명 더 쓰겠습니다. 또 올려주시겠데요. 또 한 명 더 쓰겠습니다. 그렇게 내리 3년을 전도사를 구했습니다. 지금 제가 사례를 못 받는 것은 아닙니다. 작년부터 많이 올려주셔서 정상적으로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전도사님들이 지금 초등부, 태영아부 사역을 하고 아이들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보통은 그렇게 사역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동안에 우리 후대들 생각하지 않고 우리 미래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 놓쳤습니다. 한국교회 그 많았던 청소년 수련회가 물론 코로나 때문일 수 있지만 작년 10%대까지 떨어졌다고 합니다. 100개를 했다면 10개 밖에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상이 없으니 할 게 없습니다. 제가 고신대학교를 졸업했는데 고신대학교를 갔더니 학교 선교 동아리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동아리가 SFC, 주일학교 사역하는 동아리도 있습니다. 진짜 많았습니다. 성서유니온 동아리도 있습니다. 저는 오프닝도어 라는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단기 선교를 전문적으로 하는 동아리였습니다. 거기서 사역했습니다. 거기 가면 다 대학생들입니다. 조금 위에 있는 리더들은 대학원생들입니다. 다 20대 중후반입니다. 근데 그런 분들이 그 동아리에서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하는지 모릅니다. 채플도 드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모임도 합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사역들을 각 선교동아리들이 하는데 그게 방학 때마다 수련회를 하는 것입니다. 어린이 동아리는 어린이 수련회를 하고요, SFC나 오픈닝도어 같은 데는 청소년수련회를 했습니다. 대학생들이요. 청소년수련회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전부 대학생들이 했습니다. 찬양팀을 구성해서 연습하고 그 정도 아니고 오프닝도어에서는 청소년수련회 하기 전마다 40일 저녁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4년을 했습니다. 괴롭습니다. 여러분 저녁금식이 쉽지 않습니다. 그걸 수련회를 앞두고 매번 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수련회를 하면 참석할 사람이 누구냐 대상자도 정했습니다. 큰 교회 중고등부가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미자립교회, 중고등부가 한, 두 명 있는 아이들을 다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공짜로 받으면 애들이 은혜를 못 받으니깐 회비를 최소로 3만원 이렇게 받고 애들을 다 부른 것입니다. 그러면 수련회 때 600명이 오기도 하고 1000명이 오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수련회 운영하는 돈을 어디에서 구하냐면 대학생들이 수련회 기획안 만들어서 고신교회에 큰 교회, 선배교회들 다 찾아가서 후원을 받도록 뛰었습니다. 저도 팜플렛을 들고 교회들 진짜 많이 찾아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련회하면 학교 안에 대강당에서 수련회를 하고 학교 교실 바닥에서 은박지 깔고 애들 다 재우고 프로그램도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 그리고 말씀 듣고 저녁에 기도합니다. 그 600-1000명 되는 아이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바닥에 다 엎드립니다. 은혜 안 받고 있는 애들 있으면 우리 사역하는 대학생들이 그 아이를 둘러싸서 안수하고 기도합니다. 무릎을 꿇게 만듭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역사합니다. 그러면 애들이 회개한다고 귀걸이를 가져다 내놓고 뭐 내놓고 합니다. 그 아이들이 또 선배가 되고 이 일을 또 섬기고. 여러분 그걸 대학생 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교회가 자꾸 세상과 타협합니다. 설교시간도 줄이고, 청년, 젊은이들을 잡겠다고 예배를 문화화 합니다. 어떤 교회들은 교회를 갔더니 동아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탁구, 음식, 등산, 볼링 동아리. 저는 문화센터인 줄 알았습니다. 교제 중심으로.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다가 정말 말씀과 기도를 다 놓쳤습니다. 우리 초등부 아이들, 청소년부 아이들 전부 설교 들을 수 있는 나이입니다. 성경 눈으로 읽을 수 있는 나이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기름 부어주시면 깨달을 수 있는 나이입니다. 예전에 제가 전도사 할 때 모 교회에 부임해서 갔는데 가자마자 12월 달에 갔는데 장로님, 권사님 몇 분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전임 목사님이 고3 예배를 따로 드려줬는데 전도사님도 그렇게 할 것이냐 라는 겁니다. 네? 무슨 내용이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해서 고3들만 따로 예배를 드리나보다 라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까 예배가 개판 5분 전입니다. 그 많던 애들은 어디가고 예배 시간에 30-40명이 앉아서 다 졸고 있고 교사들도 몇 명 없고. 그런데 고3 예배를 또 따로 드려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저희 교회는 고3예배 안 하겠습니다. 비하인드인데 당회에 불려갔습니다. 왜 고3들을 위해서 예배를 드려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설명했습니다. 제가 모교회라서 편하거든요 제가 설명했습니다. 장로님들 생각해보세요. 그 당시에는 저희 지역에 고3이 되면 자율학습 때문에 학교를 가는 것입니다. 제가 장로님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장로님 생각해보세요. 고3 아이들이 주일에 학교를 오라고 그러면 엄마들이 학교 당연히 가야지, 따로 예배를 드려주세요. 그게 정상이냐고. 아이들이 주일에 학교에 가면 기도도 해보고 자기들이 공부도 하고 선생님한테 저 교회 간다고 말도 해보고 한 시간 늦게 갈 수 있도록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성적도 올려보고.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할 기회라고 줘야 되는데. 무슨 교회 안에 치맛바람도 아니고 장로님, 권사님들이 와서 고3 자기 아들, 딸들. 그래서 고3 아이들은 당연히 교회 안 가도 되는 것처럼. 아이들을 다 버려놨습니다. 그래서 좋은 대학 가면요? 상식적으로 아이들이 신앙이라는 것을 배울 곳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너희가 어쩔 수 없이 학교가면 학교 가, 간절히 기도해, 예배드릴 수 있도록. 그리고 선생님한테 편지 써, 진짜 간절한 마음으로 써, 선생님 저 공부 열심히 할 테니깐. 저 예배 안 드리면 죽어요. 한 시간만 예배드리고 갈게요. 편지 써봐.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새벽예배 드리고 가. 교회는 서비스 아니야. 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이 아니야. 여러분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다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후대들에게 잘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부모님, 교사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안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길을 안내해주는 것입니다. 괜찮다라고. 히스기야의 답변을 들어보세요.

 

- 후대와 미래가 없는 신앙인_이사야39: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_이사야39:8

 

이해되세요? 네 자손들 다 끌려가고 남유다 다 망하고 네 직계자손들은 환관, 바벨론 왕의 신하가 될 건데. 뭐라고 이야기를 합니까? 하나님 말씀에 좋소이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뒷말을 보세요. 그러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37-38장의 히스기야 맞나? 이 정도 되면 약간 정신병이 아닌가요? 사리분별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내 생전에 평강과 견고함만 있으면 괜찮다고요?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괜찮다고요? 자녀들이 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는데 평안과 견고함이 내 시대에 있으면 괜찮다고요?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그러고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훌륭한 목회를 했는데.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승주목사가 죽어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입성했다고 쳐요. 입성했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나의 종아. 이렇게 말하실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목회 겁나 잘해놓고, 너 진짜 열심히 사역해놓고 한빈이, 윤빈이는 왜 교회 안 다니냐? 한빈이, 윤빈이는 왜 내 은혜를 받지 않고 있냐? 네가 지금 웃음이 나오냐? 내가 지금 천국에 왔다고 기분이 좋냐? 너 자손을 봐라. 이렇게 말씀하실까봐 두려웠습니다. 지금 그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딱 그것입니다. 후대와 미래가 없는 신앙인은 저는 신앙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세와 후대를 생각하지 않는 신앙인은 거짓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가 찹니다. 히스기야가 할 말입니까. 어쩌면 세상이 어렵고 너무 강력해서 우리 청년들, 젊은이들이, 우리 후대들이 휘둘린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것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신앙교육, 성경교육 올바르게 안 해서 그렇습니다. 타협하고 교회 대중화를 위해서 교회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타협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교회가 왜 이래하며 떠나는 악순환이 시작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청소년 수련회를 가면 여름성경학교 가면 놀러가는 것 밖에 생각을 안 하는 문화를 교회가 스스로 자초했습니다. 청년들이 말씀에 은혜 받고 성경도 읽고 기도도 뜨겁게 하는 게 정상이라고 저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성령을 허락하시면 은혜를 주시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그 믿음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장로님, 권사님들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셔야 하는데 어떻게 기도해야 하냐면 보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줄줄줄 나오셔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 이름이요. 누구 집 자식 누구. 그리고 교회 안에 권사님, 장로님 자녀들 중에 예수님 안 믿는 자녀들 많아요. 창피하지 마시고 다 공개하고 오픈해서 다들 기도해야 합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둘이 기도하는 것이 힘이 쎄고 둘이 기도하는 것보다 네 명이서 기도하는 것이 훨씬 강력합니다. 기도제목 나누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청년들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교사로 헌신도 해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앞에 가면 내 신앙이 자랍니다. 내 신앙이 성장합니다. 내가 누구를 가르쳐서 그 아이들 앞에 서면 내 믿음이 자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은혜라는 것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 은혜를 위해서 몇 가지 회복해야 될 것이 있어요. 

 

Ⅲ.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은혜_요엘1:2-20, 2:12-17, 27-32, 3:9-13

 

(2)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4)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5)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6)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7)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8) 너희는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자로 말미암아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 (9)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10)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11)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 때문이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12)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13)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15)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16) 먹을 것이 우리 눈 앞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17) 씨가 흙덩이 아래에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18) 가축이 울부짖고 소 떼가 소란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 떼도 피곤하도다 (19)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목장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들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 (20)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_요엘1:2-20 

 

첫 번째는 1:14-15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성전에 모아라 부르짖을지어다. 무슨 말이냐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서 초토화가 되었습니다. 송아지 한 마리 남아있지 않습니다. 완전 초토화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냐면 나 너희 회복 시킬거야, 너 이거 회복하고 싶으면 다시 성전에 여호와의 성회를 소집하고 성전에 모여서 예배해. 이 말입니다. 여호와의 성일, 남유다가 여호와의 성일을 안 지켰습니까? 네. 형식적으로는 지켰지만 내 마당만 밟고 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껍데기가 아닌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주일. 예배시간에 왔다가 그냥 가고. 나 예배 드렸어, 그 예배가 아니라 이 예배가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이 1시간의 예배, 거룩한 주일 하루가 내 일주일을 승리하며 살 수 있을 그 모든 것을 얻어내겠다는 마음과 욕심으로 이 영적인 욕심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여호와의 성일을 회복하라고 합니다. 주일을 다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주일 다 망가진 거 아시죠. 여기 큰 교회 보니까 주일 예배가 토요일 아침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게 증거가 뭐냐면 주일 첫 예배가 주일 7부예배가 시작입니다. 그러면 토요일에 6부까지 드리고 주일날 7부를 드린다는 겁니다. 그 목사님이 신학을 어디에 가서 배워왔는지 모르겠는데 그러려면 안식교에 가야 합니다. 안식교는 이단이거든요. 기독교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어디서 그런 신학을 배워서 편리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왔는지. 그 말은 토요일에 예배드리고 일요일에 바쁜 사람들 일보라는 것입니다. 마치 고3들 따로 예배드려달라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주일이 그런 것인가요? 이 주일을 회복하라고 합니다. 예배를 회복하라고 합니다. 우리 예배가 다 회복되어야 합니다.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16)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17)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_요엘2:12-17 

 

(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_요엘2:27-32

 

두 번째는 2:17-32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냐면 28-29 무슨 말입니까. 또 중요한 것은 32절 지금 하나님께서 두 번째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너희가 수치를 당했는데 그 수치를 회복하는 방법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영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늙은이에게도 젊은이에게도 어린이에게도 심지어는 남종과 여종에게도. 여러분 종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말로 다시 붙잡으면 우리가 기도해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것을 직접 체험하고 살지는 않습니다. 교회도 당회에 모이면 회의해서 행정적으로 운영을 하려고 하지 우리가 모여서 깨어서 기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우리가 정말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그 능력으로 우리의 수치를 일어서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교회답게 빛과 소금이 되고 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될 수 있는 것은 성령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런 자들이 구원 받는다고 합니다. 구원의 때에 예루살렘과 시온으로 피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9) 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이렇게 널리 선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병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10)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11) 사면의 민족들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12) 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 (13)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_요엘3:9-13 

 

마지막 세 번째는 3:9-10을 보면 왜 선포하라고 합니까. 성령 받고 수치를 극복하고 일어선 우리에게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9-11절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병사로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사면의 민족들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고 내려오게 하옵소서. 무슨 말인가요? 세 번째 이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병사로 일어나고 보습, 낫은 우리 일상에서 가지고 있는 것들을 칼로 만들고 창으로 만들고 약한 우리를 강한 자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인가요? 우리가 다시 우리 후대, 교회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꼭 회복할 것이 무엇이냐면 우리의 삶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의 삶을 다시 회복해야 하는데 그 회복하는 삶이 무엇이냐? 우리의 진실 된 삶. 깨끗하고 정직한 삶. 그리고 우리 안에 성령으로 인해서 감사와 찬송이 있는 능력 있는 삶,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삶들이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달란트, 기능들을 갈고 닦아서 우리가 전쟁 때에 쓰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능을 준비하고 미래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 후대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을 갈고 닦으라는 것입니다. 왜 오늘의 신앙이 사라집니까? 왜 목사들이 타락하고 남이 볼 때는 잘하는 척하고 보지 않을 때는 이상한 짓 하냐면 오늘의 신앙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신앙이 왜 사라지냐면 내세와 후대들을 생각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더 이상 잘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교회가 좀 부흥하고 나면 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잖아요. 그때부터 찾아오는 것이 교만입니다. 흥분하고 감정에 교만이 오고 히스기야처럼 자랑 질하고 자아도취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걸 무섭게 책망하고 계시는지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후대들을 다시 살릴 수 있을까요? 우리 청소년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우리 젊은이들이 다시 하나님 앞에서 뜨겁게 부흥의 세대로 준비시킬 수 있을까요? 저는 소망이 있다고 봅니다. 그건 내 신앙을 회복시키는 겁니다. 전쟁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 준비해야 합니다. 용사들 격려하라고 합니다. 저는 우리 장로님, 권사님들 격려할 것이고 꼬실 것입니다. 싸우셔야 되니까요. 하나님 축복 받으시라고 축복도 해 드릴 것입니다. 무기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거룩함입니다. 경건입니다. 기독교인의 무기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입니다. 여러분 오늘 요엘서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게 없으면 우리는 싸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 짧은 말씀이지만은 여러분 정말 정말 많이 기억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아도취에 빠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후대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내세를 생각하지 않고 나만 평안하면 되지, 나만 문제없으면 되지, 나만 잘되면 되지 이렇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신앙생활하지 맙시다. 우리 교회는 그런 교회 되지 맙시다. 우리가 조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 자녀들, 우리 후손들 그게 우리 내세의 면류관이고 상급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오늘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묵상하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예배를 회복하고 성령을 날마다 아침마다 구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여러분 우리는 죄인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예수님이 필요하고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연약해서 매일 주님과 동행하려고 아침에 믿음을 고백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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