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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편지

Gospel Letter. '신앙교육이 다시 회복되길 바라며'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신앙교육이 다시 회복되길 바라며. 

'기독교는 처음부터 '책의 종교'였으며,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고, 설복하고 교훈하는 가르침의 종교였다. 그래서 에드윈 저지는 초기 기독교를 '학문적 공동체'라고 명명한 바 있다. 그런 가르침은 기독교만의 특별한 도덕적 혹은 윤리적 가르침이 있었다. 이것은 가르침의 종교가 지닌 당연한 결과 였고 가르침의 내용이 성경이었기 때문에 다른 종교의 가르침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 공동체에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몇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째, 황제를 숭배하지 않았다. 모진 핍박을 견디고 또 경제적인 불이익과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더라도 황제를 숭배하지 않았다. 둘째, 선을 행하였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지만, 복음을 전파하기 전에 그들은 가르침으로 인해 도덕적 윤리적으로 외형적 변화를 겪었고 그들의 삶의 영향력이 상당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은 당시 사회에서 대단한 모범이 되었다. 셋째,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활발해졌다. 핍박 속에서 유일하게 신앙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가정(개인 가옥의 자유가 있었기 때문에)이었다. 사도와 교부로부터 배운 신앙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일은 당시 기독교의 특별한 성령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_초기 기독교와 로마사회중, 이상규교수

고린도교회는 분쟁이 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분쟁의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볼로파, 게바파, 바울파 이렇게 다투고 있었지만, 실제 삶은 성적으로 문란한 상태였고, 고린도라는 지역에서도 아직 성도의 영향력이 미비했습니다.(고린도 전서를 쓸 당시의 교회의 성도 숫자는 60-70명 정도, 에드윈 저지)

그 말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가 그런 상태가 아니라 그런 상태인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에게 신앙을 교육하기 위해 바울은 고린도서를 쓴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신앙을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으면 신앙은 멈추게 되고 세상 가르침의 영향으로 오히려 퇴보되기도 합니다. 우리 스스로 자만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전에 기억 속에서도 희미한 가르침으로 평생 신앙생활을 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실제로 모르면서 아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신앙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대부분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이 매일 학교에 가고, 예습하고 복습하고 또 그것도 모자라 보충하면서 공부하는 이유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리기 때문에 사회가 제도적으로 교육을 하는 것이고 부모들도 그것에 동의해서 모든 자녀들은 어린 시절 교육을 받습니다. 경쟁적으로 말이죠. 

초기 기독교 성도들은 세상의 그 어떤 학문보다 성경을 귀히 여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알고 따르면 그들의 인생은 확실하게 변화되고 하나님께 쓰임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일 때마다 성경을 함께 읽고 설명하고 또 교제하였습니다. 그들의 삶이 변화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당연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잃어버린 신앙생활을 다시 회복해야만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다시 배워야 하고, 그 복음이 내 삶에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되도록 말입니다. 그때는 우리 삶이 다시 복음을 전파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_고린도전서1:25'

_신앙교육이 다시 회복되길 바라며,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