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5월 29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 |
제 목 : | 약속을 믿는 믿음 |
본 문 : | 민수기 14:1-9 |
이상규 목사
서울에 이렇게 좋은 교회가 있는 줄 몰랐는데 와서 보니까 정말 분위기도 좋고 또 이렇게 젊은 분들도 많이 계셔서 한국교회에 위로와 소망이 된다고 생각이 듭니다. 오승주 목사님이 늘 참 궁금하고 그랬습니다. 오랫동안 못 봤는데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가웠고 학생 때부터 복음에 대한 열정도 있고 또 생각이 건실하고 참 마음속으로 귀하게 생각했던 분이신데 훌륭한 목회자가 되시고 이렇게 교회를 개척해서 일하시는 것을 보니까 마음이 든든합니다. 특별히 제가 어떤 교회인가 몰랐는데 와서 보니까 아주 건실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을 보니까 참으로 좋습니다.
오늘 제가 민수기를 설교하는 것이 목적이기 하지만 민수기가 갑자기 들어가는 책이 아니고 창세기부터 쭉 하나님의 구원계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제가 큰 흐름을 말씀드린 다음에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다섯 권을 뭐라고 말합니까? 모세오경, 율법서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다섯 권의 책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본래는 한 권의 책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창세기 다음에 나오는 책이 출애굽기인데 출애굽기 제일 처음에 나오는 단어가 그리고 입니다. 레위기에 제일 처음에 나오는 단어가 그리고 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데 원래 성경을 보면 창세기 다음에 출애굽기도 그리고, 레위기도 그리고, 민수기도 그리고 라는 단어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강물이 흘러가듯이 하나의 하나님의 계시가 쭉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_누가복음24:27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_누가복음24:44
그래서 누가복음 24장 27, 4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이 모세오경을 별개의 다섯 권의 책으로 말하지 않고 모세의 율법과 모세의 책과 이렇게 붙여서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은 인쇄기술이 발전하고 해서 이렇게 책을 잘 만들 수 있습니다. 과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기록을 남길 때 성경을 기록할 때 물론 파피루스에 기록한 적도 있지만 주로 B.C. 3세기를 거쳐 가면서 주로 양피지에 기록을 했습니다. 양피지라는 것은 아시다시피 양, 염소, 소를 잡아먹은 다음에 가죽을 가공해서 글씨를 쓰는 것이 양피지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신구약 성경을 양피지에 다 기록하려면 양을 몇 마리나 잡아먹어야 할까요? 물론 양이 얼마나 큰 것인가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300~320마리의 양을 잡아먹어야 양피지에 가공을 해서 성경을 필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세 때 수도사들이 성경을 필사하는데 얼마쯤 걸렸을까요? 보통 2년이 소요되었습니다. 양 한 마리를 15만원씩 계산해보면 얼마인가요? 거기에 2년 노동력까지 계산하면 상당히 고가의 제품이 되겠죠? 그렇게 성경을 필사를 했는데 더 큰 문제가 무엇이었냐면 성경을 필사한 다음에 성경을 제본을 하는 방식이 두루마리였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을 찾으려고 하면 쉽겠죠? 그런데 오늘 읽었던 민수기 14장을 찾으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두루마리를 막 돌려야 되겠죠. 이런 불편함 때문에 일부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다섯 권의 책으로 분철하게 된 것이 지금의 모세오경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구원계시가 창세기부터 쭉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라는 책이 창세기 50장까지 되어 있지만 따지고 보면 딱 두 가지 메시지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사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다음에 나몰라하고 뒷짐 지고 계시지 않고 창조한 이 피조세계에 오셔서 간섭하시고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말하는 우리말로 말하면 섭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창세기의 핵심입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과 창조 세계를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의 여정을 인도하시고 우리를 통치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섭리하시는 분임을 말하는 것이 창세기의 주된 메시지입니다. 출애굽기라는 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온 기록입니다. 출애굽기가 40장까지 되어있지만 딱 두 가지입니다. 1~18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서 지금 모여있는 시내 광야에 오기까지의 여정이 기록되어 있고 두 번째 19장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에 체류하면서 성막을 세우고 십계명을 받는 등 이런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출애굽기의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출애굽기를 통해서 가르쳐주는 중요한 한 가지가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서 끝까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가셨던 것처럼 오늘 이 시대도 자기 백성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책이 출애굽기의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책이 레위기입니다. 레위기 어렵죠. 성경을 읽겠다고 마음먹고 창세기 읽고 출애굽기 읽고 그 다음에 레위기 읽으려고 하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힘드시죠. 그래서 레위기를 레위기라고 말하지 않고 ‘내 위기’라고 말하게 됩니다. 금년에 해가 바뀌었으니까 성경 한번 읽어보자 해서 창세기, 출애굽기 읽었는데 레위기 산을 못 넘고 포기한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면 간단합니다. 레위기도 핵심이 딱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는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나아올 것인가? 두 번째 하나님께 나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할 것인가? 이 두 가지가 기록된 책이 레위기라는 책입니다. 여러분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없겠죠? 그러니 뭐가 필요할까요? 희생제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중보자. 그래서 희생제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레위기 앞부분을 보면 번제로부터,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등 다섯 가지 제사제도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제사제도에 대한 규례가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제일 처음에 나오는 제사가 무슨 제사인가요? 번제입니다. 젊은 분들은 한문을 모르니까 잘 모르더라고요. 번제 무슨 뜻입니까? ‘번’이라는 말이라는 태울 번, 구울 번(燔)입니다. 희생제물을 완전히 태워서 그 태운 향기가 위로 올라가게 만든 제사가 번제입니다. 완전히 태운다는 말은 완전 헌신을 의미하는데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한 온전한 희생제물이 되실 것을 미리 보여준 사건이 번제라는 것입니다. 부산에 가면 중앙동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중앙동에 있는 음식점 주인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한문을 모르니까 한문을 가르쳐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는지 가게에 사자성어를 매일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중앙동 가까이에 있는 대학이 있는데 그 대학의 남여 학생이 그 식당에 식사를 하러 왔습니다. 그 날 사자성어가 ‘새옹지마’였습니다. 여러분 아시죠? 새옹지마(塞翁之馬) 여학생이 쳐다보니까 앞에 두 자는 모르겠는데 뒤에 두 자는 갈 지(之), 말 마(馬)로 뒤에는 알겠는데 앞에는 잘 몰라서 남자친구에게 물어봤어요. “오빠, 저게 무슨 뜻이야?” 남자친구도 보면서 자기도 뒤에 갈 지, 말 마는 알겠는데 앞에 두 자는 몰랐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는데 “저거, 남기지마.” 그래서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실은 한문을 모르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고신대 안에 의대가 있습니다. 의대 학생들 그래도 공부 좀 잘하는 학생에 속하지 않나요? 그런데 유비무환(有備無患) 뭐냐고 물었더니. 있을 유(有)는 알았던지. “비가 오니 환자가 안 오네.” 이런 식으로 생각하더라니까요. ‘번제’라는 말은 태울 번, 구울 번으로 완전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 제도를 드렸던 것은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해준 것입니다. 레위기 두 번째 부분은 하나님께 나가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할 것인가. 여러분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의 말씀에 청종하는 것. 정말 중요한 하나님과 교제입니다. 기도생활에 힘쓰는 것 정말 하나님과 중요한 교제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가 있는데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면서도 그렇게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그것은 진실한 의미에서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진짜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는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후반부에 보면 이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렇게 사십시오 라는 삶의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규례도 따져보면 이렇게 하라고 하는 적극적인 지시명령과 하지 말라는 금지명령이 동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후반부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렇게 사십시오 라는 그 규례가 기록된 이유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렇게 살면 그것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온 책이 민수기라는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광야에 오기까지 3개월, 시내광야에 와서 1년 동안 체류했습니다. 1년 동안 체류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규례가 기록된 책이 레위기입니다. 이제 1년을 체류한 다음에 다시 시내광야로 출발해서 38년이 지난 다음에 모압 평지까지 도착합니다. 모압 평지라는 곳은 어디 입니까? 요단 강만 건너면 가나안 땅입니다. 가나안 땅의 접경 지역이 모압 평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민수기 라는 책은 시내 광야를 출발해서 모압 평지까지 오는 38년의 여정이 기록된 책이 민수기라는 책입니다. 그런데 왜 이 책 제목을 민수기라고 부르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를 출발을 할 때 인구조사를 한 번 했습니다. 38년 지난 다음에 모압 평지를 왔을 때 두 번째 인구조사를 합니다. 두 차례의 인구조사를 기록했기 때문에 이 책을 민수기, 백성들의 수의 관한 책이라는 제목이라는 붙게 된 것입니다. 민수기라는 책이 한문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떨 때는 영어가 더 쉽습니다. 영어로 민수기라는 책이 무엇인가요? ‘Numbers’, ‘수들’이라는 책입니다. 그러니깐 두 차례의 인구조사가 기록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민수기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많은 분들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이 숫자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정말 중요한 의미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을 한번 찾아보고 지나가겠습니다. 민수기 1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를 출발을 하기 전에 인구 조사를 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1장 2절을 보겠습니다.
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_민수기1:2-3
지파별로 인구를 조사하라는 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 읽을 수 없으니까 21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르우벤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사만 육천오백 명이었더라_민수기1:21
이런 식으로 지파별로 쭉 나옵니다. 다 볼 수 없으니 결론만 보겠습니다. 이렇게 다 세어보니 결론이 민수기 1장 46절입니다.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_민수기1:46
총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 년 동안 체류한 다음에 다시 시내 광야를 출발할 때 인구를 조사를 해보니깐 20세 이상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남자의 숫자만 603,550명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다음에 도착한 곳이 모압 평지인데 여기가 민수기 26장입니다. 민수기 26장은 민수기 1장과 똑같은 문맥입니다. 38년이 지난 다음에 모압 평지에 왔는데 또 다시 인구 조사를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총수를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조사하되 이스라엘 중에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하시니_민수기26:2
쭉 나옵니다 무슨 지파 몇 명, 무슨 지파 몇 명 똑같습니다. 결론만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된 자가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이었더라_민수기26:51
파악하셨죠?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민수기라는 책을 따져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를 출발할 때 603,550명이었습니다. 38년 지난 다음에 모압 평지에 왔을 때 601,730명이었습니다. 숫자는 큰 변동이 없습니다.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열쇠가 민수기 26장 63절을 보십시오. 63절을 보면 두 번 째 계수, 601,730명이 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63. 이는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계수한 자라 그들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한 중에는
64.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65.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_민수기26:63-65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다 파악하셨겠지만 혹시 잘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 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를 출발할 때 603,550명이 출발했습니다. 38년 지난 다음에 모압 평지에 와서 두 번째로 계수해보니 601,73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 민수기의 핵심이 이것입니다. 603,550명이 시내 광야를 출발했습니다. 38년 지난 다음에 모압 평지에 와서 보니까 601,73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출발 했던 사람 다 죽었습니다. 두 번째 계수 속에 포함 된 사람은 딱 두 명만 살아남았는데 여호수아, 갈렙만 살아남아서 두 번째 계수 속에 포함되어 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수아, 갈렙 말고 다른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광야에서 태어난 제 2세대 사람들이었습니다. 603,550명이 시내 광야를 출발했는데 다 죽었습니다. 두 사람만 살아남아서 두 번째 계수 속에 포함된 것입니다. 여호수아, 갈렙만. 나머지는 누구인가요? 출발한 사람 다 죽고 나머지는 광야에서 이동해 오는 동안 출생했던 제 2세대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민수기의 핵심입니다. 이 정보를 제시하시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을까요? 603,550명이 약속의 땅을 향해서 출발했지만 다 죽었습니다. 여호수아, 갈렙만 살아남아서 계수 속에 포함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 정보를 제시하시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을까요? 이런 궁금증을 가진 우리들에게 해답으로 제시된 본문이 민수기 13과 14장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었던 민수기 13, 14장은 민수기를 해결할 열쇠와 같은 본문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13, 14장 다 읽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기 때문에 우리 오목사님께서 일부를 읽어 주신 것입니다. 제가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603,550명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했죠. 얼마 안 가서 도착했던 곳이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을 다른 말로 바란 광야라고 부릅니다. 가데스바네아라는 말을 어자적으로 해석하면 ‘거룩한 행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너희들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거니까 정탐꾼을 보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각 지파의 대표되는 열두 사람이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 몇 일 동안 정탐했나요? 얼마동안 정탐했습니까? 다 아시면서 기분이 안 좋으시니까 대답을 안 하시는데. 얼마 동안 정탐했죠? 몇 일 동안? 잘 모를 때는 여러 날 동안 했습니다 하면 되는데. 40일 동안 정탐했습니다.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와서 회중 앞에 보고했습니다. 보고한 내용이 13장에 나옵니다.
25.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_민수기13:25-27
그 뒤에 보고한 내용이 쭉 나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요? 가나안 땅에 가보니까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입니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합니다. 무슨 족속은 어디에 살고 있고, 무슨 족속은 어디에 살고 있고 하면서 종족의 분포도를 보고 했습니다. 성읍은 견고하면서 군사적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다 보고한 다음에 결론이 무엇인가요? 그 땅에 가보니까 우리는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을 보았다.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이라는 말은 신체가 장대한 체구의 종족을 말합니다. 우리는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애굽으로 돌아갑시다. 그게 열두 명의 중에 열 사람의 보고 내용이었습니다. 절대 다수의 사람이 가서 보니까 도저히 그 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여기 성경에는 안 나와 있지만 그 땅 가보니깐 성읍은 견고하고. 무슨 말인가요? 거기에 이미 철제 무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갑시다. 그게 열 사람의 보고였습니다. 이 보고에 대한 반응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이 14장 1절 이하에 기록되었습니다.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_민수기14:1-2
하면서 왜 이곳까지 우리를 데리고 와서 우리를 여기서 죽게 하는가? 문제가 생기면 항상 지도자를 원망합니다. 그러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차라리 애굽에서 사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이런 사람들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수아, 갈렙 만이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문제는 열두 사람이 똑같은 걸 보았습니다. 열두 사람이 40일 동안 똑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당시 가나안 땅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경상남도 보다 적은 땅입니다. 40일 동안 땅을 다 똑같은 것을 보고 왔는데 여호수아, 갈렙은 무엇을 보았길래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그 땅을 취할 수 없다고 보았는데 여호수아, 갈렙은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보고 했을까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중요한 핵심입니다. 저는 3가지로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_민수기14:8-9
핵심이 이것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가나안 땅을 보았을 때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성읍은 견고하고 장대한 체력에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고 우리 스스로 보기에도 우리는 메뚜기에 지나지 않는데 어떻게 우리가 이긴다는 말입니까? 똑같은 현실을 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 갈렙이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보았던 판단의 첫 번째 근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한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도 똑같은 어려운 일을 당하고 삽니다. 때로는 시험에 낙방하죠. 때로는 사업이 실패하죠. 때로는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전부 우리도 똑같은 그런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망치 않을 수 있는 한 가지 근거가 바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한다는 이 확신입니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을 살아갈 때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큰 난제에 봉착할 지라도 낙망치 않을 수 있는 한 가지 근거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한다는 이 확신입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왜 여호수아와 갈렙은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보았을까요? 14장 11절을 한 번 보십시오.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2.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_민수기14:11-12
11절에 보면 내가 여러 차례 너희들에게 이적과 기적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역으로 말하면 여호수아, 갈렙이 가졌던 확신의 두 번째 근거는 과거에 우리와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은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그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를 출발한 이후에 하나님이 여러 번 어떻게 하셨습니까? 물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바위를 쳐서 물을 내주셨죠. 홍해를 건너지 못할 때 홍해를 건너가게 했습니다. 그런 이적과 기적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그처럼 내가 많은 이적과 기적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라는 책망은 역으로 말하면 내가 앞으로도 너와 함께 하시겠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에 우리를 인도하셨던 하나님은 앞으로도 우리를 인도해주신다는 그 확신 때문에 우리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그 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과거의 우리를 인도하셨던 하나님은 앞으로도 우리를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신앙의 연조가 필요한 것이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혹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이런 세월이 다 뒤돌아보면 저도 스스로 그렇게 느낍니다. 지난 날들을 뒤돌아보면 내가 선택해서 한 것 같은데 정말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인도해오셨구나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스펠교회 나오신 것도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인도해주신 거예요. 모르기는 하지만 이 교회를 선택할 때도 주변에 얼마나 교회가 많아요. 처음에 이 교회도 가보고 저 교회도 가보고 하셨죠. 이 교회도 가보고 그 다음 주에 저쪽 교회도 가보고 다니다 보니 그래서 우리 가스펠교회가 정말 말씀이 살아있는 건실한 교회구나 이런 확신이 드니까 이 교회 온 것이 아닙니까? 교회를 결정하기 전에 이 교회도 가보고 저 교회도 가보고 하는 것을 좀 고상하게 뭐라고 말하냐면 그걸 순례 헌신예배라고 그럽니다. 그렇게 다니시다가 교회 오신 거 아닙니까? 내가 선택해서 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주셔서 우리 회중이 함께 은혜로운 예배당을, 교회를 구성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우리를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 때, 나만 왜 이런 어려운 일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금방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세월 지나면 그것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더 좋은 길로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여러분도 그런 사례가 있을 것입니다. 때로 시험에 낙방하고 때로는 취직, 시험에 떨어지고 때로는 직장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고 그때는 힘들고 가슴이 아프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런 일들을 통해서도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갈렙은 눈앞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난제가 있었지만 과거에 우리를 기적적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앞으로도 그런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해주실 거라는 그 확신 때문에 능히 그 땅을 취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세 번째입니다. 14장 23절을 보십시오. 분위기를 알기 위해서 22절부터 보겠습니다.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_민수기14:22-23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사실은 23절에 가나안 땅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가나안 땅이라고 말하지 않고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_민수기14:30
가나안 땅을 말하고 있는데 가나안 땅이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했던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603,550명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했지만 다 죽은 이유가 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나안 땅을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나요?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겠다고 맹세했던 땅, 그래서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이 본문을 읽기 때문에 이해가 안 갈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가나안 땅을 너에게 주겠다, 가나안 땅을 너에게 주겠다” 많이 듣고 지내왔습니다. 지금 시내 광야를 떠나서 바란 광야에 모여 있는 이 사람들은 “가나안 땅을 너에게 주겠다, 가나안 땅을 너에게 주겠다” 많이 듣고 왔습니다. 그런데 열 사람의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열 사람의 부정적인 보고만 듣고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낙망했던 사람들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여호수아, 갈렙이 가졌던 세 번째 확신의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는 약속이라는 이 약속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그 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보았지만 그 땅을 주시겠다고 이미 약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 될 수 없는 약속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 땅을 취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우리가 늘 경험하지만 인간의 약속, 사람의 약속은 파기가 됩니다. 일생을 함께 하겠다는 부부의 신성한 결혼의 서약도 불과 1년이 못 되어서, 때로는 3개월이 못 되어서, 불과 일주일이 못 되어서 파기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겠다라는 많은 약속을 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일 처음으로 가나안 땅을 주겠다라고 약속했을 때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거 아닙니까. 그것이 창세기 17장 8절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합니다.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_창세기17:8
아브라함에 말씀하시면서 후손까지 약속합니다. 하나님이 값없이 주는 땅을 기업이라고 그럽니다.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이미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만 약속하셨습니까. 이삭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창세기 26장입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_창세기26:3
‘이 모든 땅’을 가나안 땅을 의미합니다. 이삭에게만 약속했습니까? 야곱에게도 약속했습니다. 그게 창세기 35장입니다. 35장까지만 보겠습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_창세기35:12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쭉 나옵니다. 그래서 그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이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수아, 갈렙이 가졌던 확신의 세 번째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는 약속이라는 약속을 믿는 믿음 때문에 그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약속은 파기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고 정복할 수 없는 땅이라고 보였지만 이미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는 믿음 때문에 그 땅을 취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갈 때 우리도 환난을 당하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큰 과제가 우리 앞에 있을 수 있지만 낙망하지 않을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근거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는 약속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두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일할 때 하나님께서 땅 끝까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그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는 약속입니다. 로마서 8장에 나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_로마서8:28
모든 것이라는 말은 다 좋은 일들, 잘된 일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좌절하고 그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서도 선한 목적을 이루신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어려운 일이 있더라고 낙망치 말고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603,550명이 시내 광야를 출발했지만 다 죽은 이유가 그들이 병 들어서 죽은 것이 아니고 건강하지 못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상실했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여호수아, 갈렙이 살아남았던 것은 그들이 무병하고 건강해서가 아니라 약속을 믿는 믿음 때문에 끝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민수기라는 책이 두 차례의 인구 조사를 가지고 이 숫자를 제시하시면서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강조하는 책이 바로 민수기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본문 말씀처럼 이 땅을 사는 날까지 변함없는 믿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신앙생활을 잘하시는 우리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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