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22-07-31 주일예배

2022-07-31 주일예배.hwp
0.30MB

2022년 07월 31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사랑은 영원한 것
본 문 : 고린도전서 13:8-13

 

 오승주 목사

 

- 사랑의 가치 두 가지_고린도전서13:8-9

 

여러분 사랑이, 사랑에 관한 설교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결말이 당연하니까. 서로 사랑합시다, 주님을 더 사랑합시다와 같이 결론이 당연한 설교라서 여러분도 사랑이 제일이라고 해도 별로 아멘이 안 되시죠. 헌신합시다, 뭐 합시다 이러면 아멘 이러는데 사랑합시다 그러면 그런가보다 그렇게 할 정도로 오늘 본문은 목회자들이 설교하기 어려운 본문인 거 같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흔히 죄 이러면 돈 많은 사람들, 아니면 부유한 삶에서 나오는 어떤 것이라고 단정 지을 때가 되게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범죄들, 흥청망청 사는 것들 이런 것들이 죄라고 생각을 해서. 그러다보니 우리가 오류를 범하는 것이 뭐냐면 삶이 어려운 분들, 가난한 분들은 죄를 안 짓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그런 거 있잖아요. 너 지금 먹고 살기도 힘든데, 너는 지금 기도 할 시간이 아니고 일 해야 돼. 너는 지금 예배드릴 시간이 아니고 일 해야 돼 이렇게 우리가 가난한 분들 배려한다고 그렇게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게 아니죠. 신앙생활에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면 바로 교만입니다. 그 교만이 부자들, 부유한 삶을 사는 사람들, 흥청망청 사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가난한 분들, 하루 하루 먹고 살기 힘든 분들도 왜 말씀을 의지하지 못하고 왜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냐? 자기가 자기 삶을 자기 스스로 살 수 있다라는 교만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거기서 되게 많은 오류를 범합니다. 바쁘니까, 우리 먹고 살기 바쁘니까 주님도 이해하실 거 이러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그 교만함. 그 배후에 깔린 교만감. 여러분 회개는 우리가 주님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회개는 자연스럽게 됩니다. 그런데 왜 회개가 안 되냐? 주님을 만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삶이 바쁘고 어려운데 주님 만날 시간이 어디 있어? 기도할 시간이 어디 있어? 내가 성경을 읽을 시간이 어디 있어? 내가 지금 내 자녀 교육 시키기도 바쁜데. 내가 지금 가장으로 가정을 책임지기도 쉽지 않은데. 시간되면 하자, 나중에 하자, 여유 되면 하자, 애들 키워놓고 하자, 사업 좀 제대로 일으켜 놓고 하자, 목회 좀 해놓고 하자. 다 그런 식인 거죠. 진짜 무서운 이야기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기억하시고 보호하십니다. 그거는 진짜 좋은 말입니다. 자기 백성을 기억하신다고 합니다. 환난 날에. 우리가 지옥에 가지고 않고 천국에 가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셔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자기 백성이 아닌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두 종류의 교회, 두 종류의 신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종교적인 교회, 종교적인 신앙이고 하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회개하는 교회, 회개하는 자의 신앙. 제가 한국교회는 많이 가보지 않았습니다. 목사는 한국에서 다른 교회를 갈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휴가를 받거나 쉼을 얻으려고 미국이나 유럽을 종종 갔었는데 가면 이민 교회를 가봅니다. 이민교회 가면 문제가 다 있습니다. 제가 제 친구들이나 목회자들에게 물어봅니다. 이민교회가 왜 어렵냐, 왜 힘드냐 했을 때 성도들이 너무 자주 삐진다는 것입니다. 왜 삐지냐? 뭐가 문제냐? 했을 때 목사님이 교회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배후에는 오랜 이민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서울대 나오고 좋은 직장 생활하다가 미국 가서는 영어가 안 되니까. 서울대가 한국에서나 서울대지 미국 가면 서울대 입니까? 태국 국립대학교 이름 아세요? 잘 모르죠? 그런 것처럼 미국 사람들 서울대 잘 모릅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영어를 못하잖아요. 그래서 일을 하는데 페인트칠 하고 세탁소 하고 이렇게 이민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 키우려고 미국까지 가서. 그러니까 이거를 한국 사람들 모여 있는 교회 가서는 알아줘야 되잖아요. 내가 이렇게 힘들게 헌금하고 내가 이렇게 힘들게 피아노 헌물하고 내가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교회에 이렇게 뭐 좀 사서 드렸는데 목사님 차도 사드렸는데. 목사님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떠나고. 상처 받았다고 그러고 낙심해 있고. 그게 이민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이고 목회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스페인에 2달 정도 머물러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어떤 장로님, 권사님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진짜 좋은 집이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그렇게 좋은 집을 가본적이 없습니다. 4층 집에 뒤에 수영장 있고 바비큐장 있고 으리으리합니다. 초대 받아서 갔고 거기서 머물러 있는데 권사님이 자기 고민을 이야기합니다. 갈만한 교회가 없다고. 그리고 보니까 주일에 교회를 안 가시는 거예요. 그리고 저보고 예배를 인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볼 때 장로님도 좋으신 분이고 권사님도 신앙이 좋으신 분인데. 제가 원래 갔던 교회는 어디에요? 여쭤보니 현지인이 목회하는 교회도 가고 한인교회도 가고 했는데 교회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럴 수 있죠. 제가 그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설교했던 본문이 오늘 본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본문 가지고 설교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제가 설교를 하고 끝나고 은혜를 나누는데 권사님이 훌쩍훌쩍하셨습니다. 그 남편 장로님은 와이프 가는 데로 다 따라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권사님께 물어봤습니다. 권사님 예수님 진짜 사랑하세요? 정말 예수님 사랑하세요? 대답을 못하셨습니다. 진짜 예수님 사랑하세요? 정말 주님 사랑하시냐고. 말 못하시고 울기만 하셨습니다. 제가 뒤에 그랬습니다. 그러면 교회를 섬기세요. 지금은 신앙생활 진짜 잘하고 계십니다. 요즘은 연락 안하지만 종종 연락을 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가? 무엇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가? 사랑에는 두 가지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_고린도전서13:8

 

이게 바로 사랑의 영원성입니다. 두 가지 가치 중 하나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방언도 예언도 지식도 다 떨어진다고 합니다. 다 사라진다고 합니다. 여러분 당연하죠? 여러분 이것은 정말 천국을 이해하신 분들만 오늘 설교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다시 말하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통해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에게 부어준 은사가 예언, 방언, 지식, 직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축복들, 달란트들입니다. 그것은 분명 목적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헌신하라고 주신 것들이 그런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언, 방언, 지식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면 혹은 반대로 우리가 우리 생을 마감하고 천국에 입성하면 다 뭐하는 것들이죠?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필요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지식이나 예언, 방언, 달란트들,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귀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으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목적을 가지고 강을 건너가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강을 건너려면 배가 필요합니다. 배를 비싸게 주고 샀습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강을 건너게 해줬으니까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가요. 강 건너서 이 배가 아까워서 나는 배를 떠나지 못하겠어, 이 배가 나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건데. 맞아요, 그런데 배를 계속 붙잡고 앉아계실 것입니까? 강을 계속 왔다 갔다 하실 겁니까? 빨리 배 놔두고 배 버리고 목적을 향해서 가야죠. 강을 건넜으면. 마치 예언이나 방언이나 지식은 이런 배와 같은 것입니다. 강 건너면 끝나는 것입니다. 중요하지만 더 이상 필요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을 때. 여러분 복음이 완성되면 더 이상 복음이 필요가 없습니다. 맞죠? 이 땅에서는 복음이 엄청 중요하지만 우리가 천국에 입성하면 복음이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뭐는 남죠? 사랑은 영원히 남습니다. 9절에는 또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_고린도전서13:9-10

 

다시 말해서 예언, 은사, 지식, 달란트, 직분 이 모든 것들은 다 부분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온전한 것이 뭐에요? 사랑이죠. 그래서 사랑의 두 번째 가치는 사랑의 완전성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영원하고 완전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이시니까.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셨을 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불완전한 것들은 다 뭐하죠? 다 폐해지고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여러분 그럼 불완전한 직분, 달란트, 예언, 지식, 방언 다 필요 없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타락한 저와 여러분, 타락한 인간은 존재 자체가 불완전합니다. 사실 우리가 구원 받긴 했지만 모든 것이 완전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완전한 존재는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과 완전을 동일시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거기서 우리가 많은 오류를 범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어떤 은사들,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천국의 그림자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들입니다.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 실체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믿음이라든지, 사명이라든지, 교회를 세워가기 위한 어떤 많은 사역들을 하는 것들은 그림자라고 성경은 이야기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도 말씀하고 있고 로마서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림자와 같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이 무슨 말인지 진짜 한참 묵상하고 제 삶을 돌아봐서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저는 목사니까 얼마나 믿음으로 살려고 발버둥치겠어요. 24시간. 물론 잠 잘 때는 믿음으로 사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잠 자기 전에 성경 읽고 아침에 일어나면 성경 읽으니까 잠 잘 때도 믿음으로 사려고 발버둥 친다고 여러분 이해해주세요. 목사니까 얼마나 말씀으로 살려고 하겠어요. 그런데 하루에도, 여러분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일 년도 아닙니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넘어집니다. 마음이 무너지고 괴롭고 힘들고 의심이 생기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런 마음들이 하루에 수도 없이 밀려옵니다. 환경을 보면 답답하고. 저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목사인 저도 제 마음에 의심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진짜인가? 진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거 맞나? 이럴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뭐하다는 거죠? 불완전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또 후회하고 회개하고 또 주님 붙잡고 다시 일어서고. 이것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잖아요. 맞죠 여러분? 아니 목사님 우리 불완전하니까 대충 살아도 되겠습니까? 우리 불완전하니까 신앙생활 하나 안하나 똑같네요? 아니죠.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분적으로 하던 것 때문에 주님을 만났을 때 우리를 온전히 알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아는 것이 불완전하잖아요? 우리는 주님을 아는 것이 부분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주님을 진짜 대면했을 때. 우리가 천국에 입성해서 혹은 주님이 재림하셔서 다시 주님을 완전히 만났을 때는 우리도 주님을 온전히 알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지금은 주님은 나를 온전히 알고 계시고 나는 주님을 아는 것이 불완전하지만 우리가 주님과 만났을 때는 우리도 주님을 온전히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직전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뭐죠? 믿음이고 소망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나면 믿음과 소망이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 만났으니까. 더 이상 우리의 불완전한 믿음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 만나서. 우리가 이 땅에서 교회에서나 설교를 듣다가 아멘 이러는 거지. 천국 가서는 아멘 할 필요도 없죠? 믿습니다 이런 거 할 필요도 없습니다. 막 뜨겁게 믿음을 달라고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는. 주님 품에서 살 때는. 사실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완전치 못합니다. 10절에 보니까

 

-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완전치 못하지만_고린도전서13:10-11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_고린도전서13:10 

 

11절을 볼까요? 그 의미를 비유로 들고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_고린도전서13:11

 

우리의 사랑이 완전치 못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뭐냐면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가 경험하던 것들이 다 완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잖아요? 어렸을 때뿐이에요? 제가 군대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병 때, 이등병 때. 이제 막 군대 가서 여유가 없을 때는 모든 것이 다 진짜 같고 사실 같고. 나중에 상병, 병장 되니까 다 진짜 아니고 우리 놀린 것이었고. 이런 거 있잖아요. 우리가 어렸을 때는 그렇습니다. 그게 어린 아이들이 어렸을 때 깨닫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깨닫는 것은 진짜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른들이 야 지금 깨닫고 있는 것이 진짜가 아니야, 네가 아직 직장생활 안 해봐서 그래, 네가 아직 결혼 안 해봐서 그래 이렇게 말할 수 있나요? 5살, 6살, 7살 아이한테? 그렇게 말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높이 교육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그것을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야기를 해줘도. 그래서 우리가 어른이 돼서 아이들이 뭘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어른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들이 뭐에요? 주로 자기들이 못했던 것들. 집에서 공부를 빡세게 시키시는 엄마, 아빠 계시면 주로 자기들이 못 했기 때문에 시키는 것입니다. 공부 잘했던 부모님들은 빡세게 안 시킵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멘 이럴 거 같은데. 진짜 그런 거 같습니다. 저도 막 어렸을 때가 후회가 되니까 아이에게 뭐해라 뭐해라 잔소리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들은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 부모님은 왜 저렇게 말할까? 이해를 못합니다. 반대로 아이들은 자기들이 깨달은 것이 엄청 귀하고 자기들이 본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저는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춘산리에 살았습니다. 제가 다닌 국민학교가 대산국민학교였습니다. 지금은 학교가 사라졌습니다. 학생이 없으니까. 제가 어렸을 때는 학생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건물도 새로 지었는데 진짜 컸습니다. 그리고  운동장이 얼마나 넓었는지 달리기 시합하면 너무 끝이니까 진짜 운동장 좀 작았으면 좋겠다, 운동장 가로지르면 힘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군대 제대하고 부산에서 학교 마치고 광주 와서 학교 한 번 가봐야지 하고 갔는데 학교 운동장이 뒷마당 같은 것입니다. 그런 거 느껴보시지 않았어요? 여러분 모교 한 번 가보세요. 나 학교 다닐 때 진짜 커보였는데 왜 이렇게 학교가 작지? 왜 이렇게 운동장이 작지? 아마 이런 느낌이 드실 것입니다. 100%. 어렸을 때 그런 느낌이 지금 어른이 되고 난 후 가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사랑은 완전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이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완전하지만 그러나 언제 어린아이를 버리죠? 우리가 믿음이 성장하고 주님을 만나고 어른이 돼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완벽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해도 주님 만나면 부끄럽습니다. 우리가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어떤 헌신을 해도 주님 만나면 부끄럽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우리의 모든 과거를 자랑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남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했던 걸 주님은 아시죠? 주님 사랑합니다. 그 고백은 주님 만나서도 남습니다. 그 고백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사실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제 30대 중반 대 교회를 개척을 했으니까 어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경험 없는 제가 어떤 교회를 해야 될까? 또 두렵기도 하고 또 주변에서는 개척하면 다 실패해 이런 이야기만 하고. 저는 실패냐, 성공이냐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제가 개척을 하면 뭐하지?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척하자 말자 비브릿지 NGO를 같이 설립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제 마음에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이렇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고 싶고. 우리가 받은 사랑 나눠주고 싶고. 그래서 그때 서초구청하고 연결해서 한 부모자녀들 서초구청에 가난한 집 아이들을 7-8명을 저희가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비브릿지 시작한 처음입니다. 이런 일을 처음에 개척 때 우리 청년들하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 청년들 몇 명 되지 않을 때입니다. 이런 일들을 하고. 그 집에 가서 청소도 해주고 쌀도 가져다주고. 이 사진은 고아원입니다.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 돌봐주기도 하고 아이들 체육대회도 하고. 이런 사역들을 개척하고 3-4년 했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 성도들이 몇 명이나 됐어요? 교회 예산이 있었습니까? 그때 저는 사례도 제대로 못 받았습니다. 그럴 때 이런 일을 했었는데 코로나 핑계를 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 마음에 현실 문제, 교회의 현실 문제, 교역자들 사례, 교회 어디로 이사 가냐? 이런 것들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청년들과 이런 사역을 하는 것이 점차 희미해지고. 요즘은 거의 뭐. 물론 우리가 네팔에 사역을 하고 있지만. 그때처럼 순수하게 깨끗하게 몇 명 되지 않는 청년들과 같이 장로님들 꼬셔서 성준이네 집 청소해주고 수리해주고 이런 일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부흥할 이유가 없잖아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이유가 없는데 왜 우리 교회가 성장했을까 생각했을 때 하나님이 그 일을 기뻐하지 않으셨을까? 하나님이 그 일을 기뻐하지 않으셨을까?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을까?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뭘까요? 우리가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이고,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우리 자녀들과 같이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것이 서툴잖아요. 표현도 잘 못하고 방법도 부끄럽습니다. 부모들이 볼 때는 어른들이 볼 때는 서툴고 성에 안차고 내 마음에 안 들고 이러지만 아이들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남잖아요. 우리 자녀들이 어렸을 때 엄마, 아빠 사랑한다고 했던 고백들이 남잖아요. 아이들이 커서 뭐가 되냐? 어떤 삶을 사냐도 중요하죠. 그런데 사실 부모와 자녀 간에도 사랑이 남죠. 아닌가요? 사랑만 남습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인생이 끝날 때쯤 우리 자녀와 어떤 관계냐? 사랑만 남습니다. 내가 너한테 무엇을 해줬냐 못해줬냐, 네가 어떻게 자랐냐? 안 자랐냐?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대단한 뭔가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의 모든 것은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그 불완전한 것을 하더라도 뭐가 있어야 하냐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다 사라집니다. 믿음도 사라지고 소망도 사라집니다. 우리가 주님을 직접 만나면 다 어린 아이 때처럼 부끄러워서 가지고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뭐는 남아있냐? 하나님이 뭘 기억하시냐? 사랑은 남아있고 사랑은 기억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에. 12-13절.

 

- 사랑은 영원한 것_고린도전서13:12-13, 로마서5:1-8, 갈라디아서5:5-6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_고린도전서13:12 

 

왜 희미하나요? 요즘 거울을 보면 왜 희미해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 당시 2천년전 거울은 청동으로 만든. 산길 가다보면 길옆에 자동차 알루미늄, 쇠 같은 것으로 거울같이 되어있죠. 그 당시 거울은 그거보다 더 못했습니다. 아주 값 비싼 것이었고 희미했습니다. 머리빗을 정도? 그러니까 이렇게 쓴 것입니다. 요즘은 성경을 다시 쓴다면 요즘은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요즘 거울은 너무 확실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_고린도전서13:12 

 

주님을 만나면 우리도 주님을 온전히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희미하잖아요. 뭐가 희미하나요? 천국이 진짜 있나? 주님이 정말 살아 계신가? 희미합니다. 성경을 열심히 봐도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그게 희미합니다. 그런데 주님 만나잖아요? 그러면 확실히 알게 됩니다. 주님이 진짜 계셨군요. 주님이 저를 사랑하셨군요. 네, 주님. 저도 연약했지만 어린아이 같았지만 저도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믿음이나 소망도 이 땅에서 필요한 거지 주님 만나면 믿음, 소망도 다 필요하지 않습니다. 소망이 왜 필요합니까? 우리가 천국을 가기 위해서 천국을 소망 삼아 살아야 이 땅에서 유혹을 당하지 않고 죄에서 벗어날 수 있고 주님을 더 의지하고 살 수 있으니까 소망도 필요한 겁니다. 여러분 천국의 소망이신 주님을 만났는데 소망이 왜 필요합니까? 믿음이 왜 필요합니까? 믿음도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남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_고린도전서13:13

 

로마서 5장 1-8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_로마서5:1-8

 

갈라디아서 5장 5-6절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_갈라디아서5:5

 

우리가 믿음도 소망도 이 땅에서 필요한 거죠. 그러나 6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_갈라디아서5:6

 

저는 정말 저희 교회가 하나님 앞에 진짜 쓰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이 도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생수를 흘려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곳곳에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주의 복음을, 복된 소식을 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 소식을 전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수 있을까? 이것을 늘 꿈꾸고 기도하고 목회를 하고 있지만.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배경, 배후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아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사랑 이러면 에이 이럴 정도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흔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진짜 사랑이 뭐냐?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다음 주에도 13장 본문을 다시 설교하겠지만 진짜 알고 있다면 이 사랑처럼 귀한 것은 없습니다. 다음 주 여름성경학교를 위해 오늘 교사강습회를 오늘 1시에 합니다. 그리고 다음 주는 여름성경학교가 있고 또 2주 뒤에 말씀사경회가 있고 또 3주 뒤에 비브릿지와 함께 선교바자회를 하게 됩니다. 연이어서 행사가 있습니다. 제가 매년 여름성경학교를 하면서 느끼는 것입니다. 사실 여름성경학교하면 아이들과 찬양하고 예배하고 예배 끝나고 나서 달란트 잔치를 하고 부서에서 프로그램하고 끝납니다. 길게 해봤자 3시간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는 것 길게 해봤자 3-4시간입니다. 그런데 이거 하려고 우리가 후원도 받고 금식으로 기도하고 그러는 거냐? 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니죠. 1년 중에 이런 때를 이용해서라도 내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 교회 아이들이 누가 있는지 알고 마음을 담고. 그래서 성경학교 전에 1-2주 전에 같이 기도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걸 은사라고 합니다. 어떤 목적을 위한 과정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은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요즘은 젊은 부모님들이 요즘 세대는 우리 아이들 잘 가르칩니다. 세상에 학원도 잘 되어있지 교육도 세상이 훨씬 더 잘 되어 있지. 그래서 교회가 뭘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프로그램도 잘 되어 있습니다. 제가 저희 말씀사경회를 하면서 펜션을 구하러 좀 다녔잖아요. 저는 직접 갔습니다. 이런데서 하면 성도들이 오겠냐? 왜냐하면 요즘 휴가 가는 성도들 봐라. 호텔, 펜션 봐라. 얼마나 좋은 곳에서 가고 얼마나 좋은 곳에서 묵고. 그런데 교회에서 한 방에 10명 씩 밀어 넣어서 오겠냐? 성도님들이 수련회 오겠나? 제 마음에 이건 아니야. 또 가격이 비싸면 교회에서 수련회하는 무슨 수련회비가 이렇게 비싸냐? 이러니까 대개 어렵더라고요. 솔직히 그런 거 있잖아요. 세상 교육도 그렇습니다. 우리 아이들 교육을 세상은 얼마나 잘해줘요? 다 해줍니다. 돈만 있으면. 돈이 없어도 요즘은 시스템들이 너무 잘 되어 있습니다. 또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한계가 있잖아요. 그 사랑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우리 아이들의 영혼은 누가 지켜줍니까? 누가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게 해줄 수 있습니까? 누가 아버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살게 해줄 수 있습니까? 그게 여름성경학교를 해준다 이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을 품고 기도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금식하고 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우리의 연약한 사랑, 부족한 사랑이라는 그 사랑 때문에 일어나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교회에서 완벽하게 1+1=2 이렇게 사역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천국에 가서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영혼을 사랑했습니다. 할 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 낙심 속에 있고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분도 계시고 아직 교회는 오래 다녔는데 천국이 안 믿어진 분들도 계시고. 신앙생활 하다보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은데 아직 하나님 앞에 내 삶을 회개하고 정말 주님과 1:1로 관계를 맺고 사시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그래서 말씀사경회 때 우리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수련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그냥 교회에서 프로그램 준비하고 강의준비하고 교역자들이 플랑카드도 붙이고 시간표도 짜서 밥 먹는 시간, 수련회 하는 시간, 찬양하는 시간 이런 시간 붙여놓는다고 해서 벌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진짜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임재 하셔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오늘 로마서 말씀처럼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셔야 되는 일입니다. 그거는 100% 기도 말고는 불가능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것을 인간이 경험하는 것은 기도 말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우리의 헌신을 만들어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불평, 귀찮음, 짜증 이런 것보다 사랑하니까. 제가 성준이 집에 가서 청소한 기억이 나는데 얼마나 힘들고. 그날 기억이 납니다. 야, 우리 청소하고 다시 원위치 될 텐데 왜 해야 되냐 하면서. 거기서 짜장면 시켜먹었는데 밥이 안 넘어갑니다. 환경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비위 상해서 그 집에서 밥을 못 먹고, 뒤에 묘지 같은 곳에서 밥 먹고 내려와서 또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사랑이라는 것을 너무 많이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사랑을 다시 회복시켜주는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예수님을 만나는 회개, 우리의 교만함과 오만함을 버리고 예수님을 만나는 회개, 그리고 말씀을 의지해서 변화된 삶 그것을 두고 정말 우리 교회가 그렇게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는 그런 신앙 생활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뭐가 남아야 하냐면 우리 신앙이 끝날 때 주님 진짜 사랑했습니다. 저 부족한 삶을 살았지만 연약한 삶을 살았지만 제가 주님은 사랑했습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런 고백이 남는 신앙생활을 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반대인거 아시죠? 예수님 잘 믿고 믿음도 좋고 소망, 꿈, 비전도 큰데 사랑만 없습니다. 요즘 교회는 사랑만 없다고 합니다. 교회에 가서 복도 받고 축복도 받고 내 삶도 잘 풀리고 내 가정도 행복하게 살고 다 합니다. 교회 가는 목적이 있으니까. 그 목적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합니다. 뭐만 없냐? 사랑만 없다고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만 없다고 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것만 없다고 합니다. 진짜 아이러니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이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교회에 가서 다 하는데 그 어떤 종교보다 열심히 하는데. 우리가 나중에 때가 되어서 주님을 만나잖아요. 1:1로 대면하잖아요?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의 모습이? 저는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이렇게 사랑했습니다. 내가 주님을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세상 환난과 핍박에 무너지지 않고 제가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주님을 온전히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으로 신앙생활 하다가 이 자리에 왔습니다. 당신이 나를 지켜주셨고 당신이 이 자리에 계시고 나를 정말 사랑해주셨군요 라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8-14 주일예배  (0) 2022.08.14
2022-08-07 주일예배  (0) 2022.08.08
2022-07-24 주일예배  (1) 2022.07.24
2022-07-17 주일예배  (1) 2022.07.17
2022-07-10 주일예배  (0) 2022.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