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22-08-14 주일예배

2022-08-14 주일예배.hwp
0.30MB

2022년 08월 14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공동체를 위한 사랑의 은사
본 문 : 고린도전서 14:1-25

 

 오승주 목사

 

-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한 예언을 하려고 하라_고린도전서14:1-3

 

방언, 예언을 비교하고 방언보다 예언을 하라 이렇게 말씀하는 것 같지만 오늘 날 교회에 빗대어 설명을 드릴 예정이며 그 당시에는 방언, 예언을 사도바울이 들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잘 간파를 하고. 그래야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확인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_고린도전서14:1

 

예언을 하라, 방언을 하라 라는 이런 신앙생활을 해라 저런 신앙생활을 해라, 어떤 구체적인 것이고 사도바울이 진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사랑을 추구하고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리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것,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것,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언과 방언은 내가 이 공동체에서 어떤 달란트, 어떤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섬길까하는 아주 구체적인 헌신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사실 이 고린도전서의 핵심은 우리가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여러분, 혹시 나 죄인 아닌데? 예수님이 나의 죄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는데?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나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이 어렵고 교회가 문제가 있는 것은 이런 죄에 대한 개념, 복음에 대한 이해도의 차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죄를 한국교회 성도들은 이런 식으로 이해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교회 밖의 불신자들보다 다른 환경보다 나는 예배드리고 있으니까 나는 죄인이 아니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까 죄인이 아닌 것 같죠. 그런데 이사야를 우리가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이사야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었습니다. 천사들이 날개로 자기들의 얼굴을 가리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바로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신약에 와서 사도바울도.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믿음이 좋았던 사도바울도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처음 믿고 나서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1차 전도여행, 2차 전도여행, 쉽게 말해 교회를 몇 개 세우고 엄청난 사역을 하면서 하는 고백입니다. 나는 죄인이다. 그냥 죄인이 아니라 괴수다.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나면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죄에 대해서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누구와 다른 환경과 비교해서 나는 죄인이다. 아니다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되면 나 진짜 죄인이다. 그래서 성인군자같이 죄 없이 살 것 같은 목사님들, 훌륭한 목사님들도 날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분들이 계시고 또 어떤 분들은 맨날 죄 짓고 나쁜 짓 하는 분들도 나는 하나님 자녀야. 나는 죄인 아니야. 이런 분들이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만나지 않는 것의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짜 죄인이라고 생각하면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제일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고 예수님이 아니면 회개할 길이 없고 예수님이 아니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길이 없습니다. 중보자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고 연합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성경은 사랑을 추구하고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런 죄인을 그런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런 사랑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령한 것, 그 은혜를. 은혜는 신령한 것입니다. 은혜를 우리가 설명할 수 있나요? 하나님의 은혜를 신학으로 설명할 수 있고 목사의 설교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최선을 다해 은혜에 관해서 책을 쓰고 간증도 하고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은혜를 감히 설명할 수 있나요? 스데반집사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 얼굴이 환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나요? 감옥에서 내일이면 목이 잘릴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을 끝까지 믿고 믿음을 지켰다는 것으로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나요?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신령한 것입니다. 그것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오늘 본문에는 예언을 하려고 노력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예언보다 방언을 훨씬 더 좋아했습니다. 아마 방언을 하면 그 당시 성도들이 이랬을 것 같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 저희 교회에 토요 새벽기도회까지 철야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방언하는 분이 몇 분 계셨습니다. 방언을 하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습니다. 방언은 성경의 언어라고 하는데 자기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그것이 해석이 되어야 진짜 방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해석하는 사람이 따로 있기도 하고 방언을 해석해서 풀어주지 않으면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냐고 사도바울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언을 하게 되면 어떤 모습이 보이냐면 저 사람 신령하다. 저 사람 하나님의 사람인가보다. 저 사람 성령이 임했나 보다. 라고 우러러보고 쳐다봅니다. 제가 부산에서 신학교 다닐 때에 선교단체에서 훈련도 받고 해외에도 다녔는데 선교 단체에서 청소년 수련회를 했습니다. 600-700명 모아놓고 학교 강당에서 재우고 강당에서 집회하고 교실에서 재우고 이런 수련회를 하는 단체였는데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40일 금식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러면 진짜 뜨겁습니다. 가면 방언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는 신학생인데 자존심이 상합니다. 방언하고 기도하고 저는 방언을 따라해 보려고 했지 방언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신령해 보이고 리더처럼 보이고 이런 게 있습니다. 기도도 오래하는 그런 분들이. 아마 고린도교회에서 그런 것이 있는 것입니다. 우러러보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본인도 방언을 하면 그런 시선을 즐기고 교만해지고. 방언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교만해진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이 죄입니다. 교만한 것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우러러보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방언을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증거입니다. 그것을 오늘 사도바울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냐면 방언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언어니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본인이 하는 방언은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에는 전혀 도움 되지 않으니까 그래서 차라리 예언을 해라. 여기서 예언은 이해를 잘하셔야 합니다. 이 당시의 예언은 점쟁이들이 미래를 예언하는 그런 예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_고린도전서14:3

 

그 당시의 예언은 가르치는 교사들, 하나님의 말씀으로 너희가 이렇게 살아야 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야 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의 본성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성경에 보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거야. 라고 하는 사람을 다 예언이라고 했습니다. 점쟁이들이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다 가르치는 자들을 예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예언이 많을수록 좋습니다. 성경을 가르쳐주고 주일학교 교사를 해주고 새 가족을 양육해주고 예언하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교회에 유익합니다. 교회에 교사, 가르치는 자들이 많을수록 신앙공동체에 유익합니다. 

 

- 가르치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라_고린도전서14:6-12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_고린도전서14:6

 

피리는 죽어있는 존재입니다. 거문고도 죽어있습니다. 피리가 소리를 내야 피리구나 거문고도 소리를 내야 거문고구나 라고 알 수 있습니다. 나팔은 그 당시 전쟁할 때에 공격하라, 후퇴하라. 그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으니까 나팔로 전쟁을 조절했습니다. 두 번 불면 후퇴하는 것이고 세 번 불면 전진하는 것이고 이런 약속들을 했는데 나팔이 소리를 안 내면 전쟁에 이길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우리가 사랑을 추구하고 신령한 것을 추구하는데 우리가 예언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한국교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가 신령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데 피리인지 거문고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삶에 갇혀서. 예언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 방언을 하며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데 내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거문고인지. 피리인지. 코인지 입인지 귀인지 심장인지 간인지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인지 하나님과 화목한지 하나님과 연합하고 있는지 그래서 거룩한 존재인지 그런데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냥 은사에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드러내지 않고 방언을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박영선 목사님이 쓰신 인격의 제자훈련이라는 책에서 한국교회의 전도에 대해서 이렇게 비판하셨습니다. 한국교회의 전도는 폭력적이다. 폭력적이라는 것이 단지 전도하는 행위나 말이 폭력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 관한 내용을 설교하셨는데 교회에 오면 다들 표정이 뚱하지 않냐. 눈빛으로 사람들 다 죽이지 않느냐. 자기들 신앙생활 잘 하는 것처럼 어깨에 힘들어가서 주일 날 앉아있지 않느냐. 사랑하고 기다려주고 권면해주시고 위로해주고 가르쳐주고 손잡아주고. 교회의 그런 모습이 있느냐 라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전도를 하는데 복음을 전하는데 내 삶이 그 복음에 대해서 살아내지 못하니까 우리의 말이 위선이 되고 거짓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폭력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단어가 세서 그런 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7장에 겉사람과 속사람에 대해서 갈등하는 부분을 아주 리얼하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면 바울의 위치, 위상 대단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저 같은 사람은 비교도 안 되고 요즘 시대에 사도바울과 비교할만한 목회자가 있을까요? 그 정도인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 속사람과 겉사람이 싸우고 있다. 내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데 내 겉사람은 세상, 육신의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갈등하고 있다. 기도해주어야 한다. 내가 겉사람과 속사람이 똑같아지기를 그래서 거룩해지기를 내가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기를 나도 지금 여전히 싸우고 있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그런 싸움을 계속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그런 속사람.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겉사람과 충돌하고 갈등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그 본질은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싸움을 계속 싸우려고 한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단지 방언을 하는 사람이냐. 예언을 하는 사람이냐. 그것이 중요한가요? 그럼에도 바울은 예언하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그 당시에도 예언하는 사람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예언하는 사람은 맨날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그런데 왜 그런 사람을 알아주지 못했냐면 가르치는 자는 정직해야 합니다. 자기 속사람이 다 드러내야 합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해도 거짓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처럼 다 드러내야 합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성도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해. 그러면서 다 드러냈습니다. 우리가 권면하고 위로하고 헌신하려고 해도 다 드러내야 합니다. 하다못해 목사가 되려고 해도 다 드러내야 합니다. 교회에 유익한 자가 되려면 자기 삶을 그냥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유익한 신앙생활을 해봐야겠다. 내가 가스펠교회의 집사다. 가스펠 교회의 성도다. 가스펠교회의 장로다. 가스펠 교회의 목사다. 이러면 대충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감추고 사니까 함부로 사는 것이지 조금이라도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가 가려는 목적을 알면 내 삶도 그것에 보탬이 되려면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내가 직장에서 가스펠교회의 장로다. 내가 집에서 가스펠 교회의 집사다. 그러면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예언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자기 속사람이 강건해서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려고. 방언이 제일 쉽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만 아는 기도입니다. 누구에게 공개를 하지 않아도 되고 누가 들어도 못 알아듣는 말이고. 자기 혼자 신령하고 자기 혼자 거룩하고 심지어 자기도 무엇을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신앙생활이 그렇습니다. 자기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공동체와 전혀 상관없고 이웃과 전혀 상관없고 가족과 전혀 상관없고. 이단 사이비가 가족 다 버리는데 그것이 신앙입니까? 그래서 이단이고 사이비입니다. 진짜 예수님 믿으면 가족을 버릴 수 없습니다. 진짜 예수님을 믿는데 내 자식을 버리고 진짜 예수님을 믿는데 내 공동체 교회를 어떻게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 진짜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미혹의 영이, 악한 영이 온 것이지. 방언하는 사람들은 그냥 싫은 것입니다. 그냥 예언하기 싫은 것입니다. 내 신앙 좋아. 그것은 자기 기준, 자기 신앙으로 자기 신앙 좋아 라고 사는 것입니다. 예언은 가르치는 것이니까 다 드러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섬길 수 있습니다. 남의 발을 씻어 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언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교회에 유익하고 그런 교회가 또 여러분에게 유익하고. 그런데 방언하는 사람은 교회에 유익하지 않다고 합니다. 자기가 무슨 말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물론 방언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적으로 신령하게 기도해야 한다. 너희가 진짜 방언하려면 통역하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짜 방언을 하려거든 통역하는 사람이 있어 교회에 유익하게 만들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말로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방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다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라는 것입니다. 오늘 방언, 예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 공동체를 위한 사랑의 은사를 가지라_고린도전서14:13-25, 로마서12:1-21

 

오늘 본문에 결론은 교회를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은사를 가져라. 방언과 예언은 은사입니다.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_로마서12:2-18

 

사도바울이 요구하는 것은 신령한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신령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연합하고 화목한 것으로만 가능한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너희가 심는 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데 우리 교회 안에서 저 사람 믿음 좋다. 저 사람 신령하다. 이런 말 많이 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가 그것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성경적인 이해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신앙을 봤을 때에 쟤 믿음이 좋다. 신학교 가야한다. 저는 얼마나 많이 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이면에 깔려있냐면 믿음이 좋다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 거칠게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병들고 실패한 사람을 보고 너 믿음 없어서.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믿음은 우리가 승승장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신앙의 분야는 생명과 진리에 관한 것입니다. 신앙은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거룩에 관한 것입니다. 죽었던 내가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 받아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품이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 일에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연습해야 하고 소망도 연습해야 하고 믿음도 연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육신적인 것도 똑같습니다. 제가 기도를 많이 했더니 서울대에 갔다. 과연 기도를 많이 해서 서울대에 갔을까요?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에 갔을 것입니다. 그럼 목사님, 제 자식이 대학 입시하는데 기도 안 해도 될까요? 제 생각에는 구지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됩니다. 전 국민이 기도할텐데 그럼 전 기독교인이 서울대에 있어야 하는데. 병에 걸렸는데 믿음이 없어서 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건강관리를 못해서 병에 걸린 것입니다. 실패한 것, 가난한 것. 가난하게 살아서 가난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너무 포장해놓았습니다. 믿음 좋으면 하나님이 건강도 해결해주시고 축복도 해주시고 믿음 좋으면 만사형통. 믿음만 있으면 돼. 맞나요? 믿음이 좋으면 흥청망청 살아도 되나요? 아이러니합니다. 믿음이 좋은데 어떻게 흥청망청 할 수 있죠? 그런데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데 흥청망청 삽니다. 믿음이 좋은데 죄를 짓고 살 수 있나요? 믿음이 좋은데 성적인 범죄를 계속 하고 살 수 있나요? 복음 가졌는데 성적인 죄를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짓고 살 수 있나요? 안 맞는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믿음이 좋은데 죄를 계속 짓고 살 수 있구나. 그러니까 여러분,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진짜 사랑을 추구하고 신령한 것을 추구하고 있느냐. 그러려면 예언을 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를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조금이라도 열심히 노력하고 애써서 교회에 유익한 은사를 가지려고 해라. 그것이 너희의 신앙에 도움이 되지. 너희가 방언을 추구하면 신앙에 도움이 안 돼. 쉽게 이야기하면 그런 것입니다. 방언을 하고 있는데 꽹과리인지 나팔인지 피리인지 거문고인지 알지도 못하고 방언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너희의 삶이 갖춰지지 않고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는 상태서 방언을 하고 있는데 무슨 유익이 있느냐.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정말 좋은 교회를 세우자고 합니다. 그러면 좋은 교회를 세우려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뜻을 맞는 목회자의 설교, 행정, 그릇들이 다 필요합니다. 심는 대로 거두니까. 제가 요즘 리퀴드교회 책 소개했는데 꼭 읽어보세요. 리퀴드교회에 빠져서 팀 루카스 목사님은 어떤 목사인지 어떻게 예수님을 믿었는지 어떻게 교회를 개척했는지 파고 있는데 파면 팔수록 신기한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교회가 복음이 없는 불모지에 교회를 세우고 NGO 사역을 하고 도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이 흘러갈 수 있도록 많은 사역들을 하고 있어서 멋있다고 쳐다보고 있는데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팀 루카스 목사님이 원래 미국에서 영어교사였던 사람이 교회에서 청년들과 성경 공부하다가 은혜 받아서 교회를 개척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기도의 사람인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은혜에 감사해서 주체할 수 없는 은혜 때문에 청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그래서 그 청년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하는데 복음을 전하고 싶은데 그들을 돕고 섬기고 주일 날 아침에 그들을 태우려가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같이 가서 도와주고 울어주고 권면하고 그렇게 개척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그것이 예언입니다. 우리가 좋은 가정을 이루어야지. 아빠가 혼자 생각하면 되나요? 아빠가 우리 집은 화목했으면 좋겠어. 우리 집은 행복했으면 좋겠어. 혼자 생각하면 가정이 행복해질 수 있나요? 아닙니다. 엄마도 노력을 해야 하고 자녀들도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제일 먼저 생각한 사람이 아빠라면 그것을 먼저 실천해야 하고 그 믿음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삶으로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아빠가 혼자 좋은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속으로 생각하고 비전을 가져도 아내와 아이들이 아빠가 방구석에 들어가서 뭐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같이 밥도 안 먹고 분리수거도 안 해주고. 놀아주지도 않고. 그런 아빠가 그 가정에 무슨 쓸모가 있나요? 혼자 방언을 하고 있으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서로 연합하고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인데 그것을 삶으로 전해야 합니다. 좋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섬기고 그런 가정 속에서 변화가 있고 물론 힘들고 어렵습니다. 힘들지만 진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신령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아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 좋은 공동체에 대해서 이번 말씀 사경회 때에 성경적으로 나누려고 합니다. 어떤 교회를 세워야 하는가. 저는 우리가 교회를 위한 은사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함께 교회가 되고 교회를 섬길 때에 이 교회는 다음 세대에 이 도시와 이 세대에 생명과 진리를 흘려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장생활이, 가정생활이 교회와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일예배가 우리의 삶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96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예배 때에 올려드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요? 내가 주일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일주일동안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을까? 내 직장에서 내 가정에서. 그것을 고민하고 쓰러져도 일어서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할 수 있을까. 삶을 치열하게 살다가 주일에 오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다를 것입니다. 일주일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교회 가야지. 예배는 드려야지. 같을까요? 오늘 사도바울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왜 예언을 이야기하나요? 왜 교회를 위한 은사를 개발하라고 합니까? 우리의 신앙이 교회와 단절되어 있습니다. 주님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들이 세상에서 왜 욕을 먹느냐. 물론 악한 영들이 교회를 핍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욕을 먹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유는 전부 방언을 하려고 해서 그렇습니다. 알아먹지 못하는 단어로 자기들끼리 충만하다고.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중직자들이 교회 안에 울타리를 쳐놓고 밖의 사람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로 방언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신령한 것들이 밖으로 흘러들어가야 하는데 교회가 밖에 예언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끼리 취해서 방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교회가 있는 이유를 모르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주일에 교회에 모여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우리 직장에 예수님 믿는 사람이 없어. 그런데 주일에 수백 명, 수천 명씩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의 직장에는 우리 가정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없나요? 초창기 자료를 보니 그 당시에는 장로가 귀하고 집사 직분도 잘 안 주던 때입니다. 집사를 받았는데 얼마나 자랑스럽고 좋은지 한글도 모르는 집사님들이 목사님께 명찰 만들어 달라고. 기록에 보니. 그 집사가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내가 집사니까 밝게 웃죠. 내가 집사니까 당신을 도와주죠. 집사로 살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치는지. 그런 기록들이 있습니다. 일주일동안 명찰 달고 살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주님과 진짜 화목해서 주님의 사랑을 추구하고 신령한 것을 추구해서 세상에 예언하는 존재로. 방언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통역하는 사람을 꼭 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도바울은 어떻게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다고 하나요?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내 모든 은사로 교회를 세울 때에 믿음의 공동체가 악을 이기는 것이지 그 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아니면 선이 악을 이길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이기적이고 화목하지 못하고 비난하고 잘난 체하고 거역하고. 마태복음에 보면 말세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끼리 화목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공동체가 어떻게 세상의 악을 막을 수 있고 우리 자녀들을 믿음 안에서 보호할 수 있단 말입니까. 불가능합니다. 이 말씀이 너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이 시대가 복음 대한 오해를 합니다. 복음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지시고 부활하셨다. 그 기쁜 소식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복음으로 처음에는 신앙생활을 했지만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기에게 쌓였던 경험들, 해석들, 사역들, 시스템을 복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류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매일 만나고 매일 새로워야 하는데 복음이 변질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역하는 것을 복음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옆에 가면 고인이 되셨는데 가수셨던 목사님이  미국에서 목회를 시작해서 책 설교를 들었는데 진짜 설교 정말 잘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설교를 들으려고 했는지. 그런데 이 분이 자살했습니다. 그 교회가 무슨 결정을 했는지 아시나요? 후임목회자를 안 받겠다고 결정을 했습니다. 지금도 죽은 목사님의 비디오 메시지를 돌려 가면서 듣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 소름이 돋습니다. 그 말씀 외에는 다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교회의 가정과 자녀들이 무엇을 배우고 성장할까 싶습니다. 끔찍합니다. 복음은 예수님입니다. 그런 교회들은 성경도 읽지 않습니다. 못 읽습니다. 너무 방언이 좋은 것입니다. 방언에 취해서 삽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어. 에 취해서 사는 것입니다. 나는 복음이고 너는 복음이 아니야. 여기에 취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다 사사시대 같습니다. 다 복음이 아닙니다. 다 타락했습니다. 예수님이 안 계시는데 어떻게 복음입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서자고 이야기할까요? 왜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하고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이런 이야기를 할까요? 우리가 믿음이 좋다는 것은 예수님을 모시고 내 삶이 변화된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지 내 삶에 변화되어서 그래서 내가 믿지 않는 자들과 교회를 섬기려고 은사를 작은 것을 드려서 가르치고 권면하고 위로하고 이것이 믿음이 좋다고 하는 것이지. 그러나 한국 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믿음 좋다고 하지 않습니다. 방언을 좀 해야 믿음 좋다고 이야기하니 얼마나 아이러니 합니까.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앞으로 계속 말세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갈 세상도 힘들지만 우리 자녀가 살아갈 세상은 더 힘이 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세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흘러 보낼 수 있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교회로 살아야 합니다. 어렵지만 이 길이 힘들고. 저도 헷갈리고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교회가 많이 없으니까 모델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리퀴드교회라도 스캇 솔즈 목사님의 교회라도 보니까 몸부림치는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빛이고 소금이구나. 그들의 발을 씻겨주는 존재구나. 그래서 우리는 예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드러내고 내 속사람이 연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이 필요한 믿음으로 매일매일 살아서 감사와 기쁨이 있어야 남도 섬깁니다. 교회도 섬깁니다. 그런데 자꾸 감추는 것입니다. 자꾸 방언만 하는 것입니다. 나도 못 알아먹는 방언만 하는 것입니다. 나 믿음 좋아. 나는 복음 가졌어. 라며 자신만의 성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도 모릅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왜 자꾸 은밀한 죄를 짓고 있는지 내가 자꾸 불평하고 짜증내는지 모릅니다. 방언하는 사람들은. 그러나 방언만 하면 사람들이 우러러보니까 좋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의 은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은사가, 예언이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고 사도바울은 오늘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오래가더라도 더디 가더라도 올바르게 예수그리스도를 따르고 예수로 살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애쓰며 살기를 바라고 원하고 함께 그런 신앙생활하도록 같이 연습하고 노력하고 배우려고 하지 않겠나 생각이 있습니다.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9-04 주일예배  (0) 2022.09.04
2022-08-28 주일예배  (0) 2022.08.28
2022-08-07 주일예배  (0) 2022.08.08
2022-07-31 주일예배  (1) 2022.07.31
2022-07-24 주일예배  (1) 2022.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