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주일예배
본문: 창세기26:26-33
제목: [이삭2] 이삭에게로 온지라
찬송: 84장(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지난 설교 생각하고 질문하기]
제자훈련은 어떤 기준으로 받아야 할까? 그리고 왜 제자훈련을 받아야 하는가?
: 성경과 기도, 그리고 제자가 기준입니다.
: 제자훈련을 받아야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1. 이삭이 등장하는 첫 번째 우물은 ‘브엘라해로이(라해로이 우물)’입니다.
가나안 땅은 빌립보서3:20에 우리의 시민권이 있는 하늘과 에베소서6:12 이 땅에서의 영적싸움을 상징합니다. 족장들 가운데 평생 가나안 밖으로 나가지 않은 사람은 오직 이삭뿐입니다.
‘그 때에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_창세기24:62’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_창세기25:11’
*라해로이: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창세기16:14)
*우물: 저수지와 다르게 물이 솟아오르는 샘의 근원이다.(창세기26:19)
사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달리 온유하고 조용하고 다투지 않는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이삭은 항상 들에 나가 묵상하는 사람이었고,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브엘라해로이 근처를 떠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삭이 흉년이 들자 아비멜렉에게 간 것은 정말 엄청난 과정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흉년이 들 때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갔습니다.(창세기16:1) 이것은 브엘라해로이를 떠난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됨을 의미합니다. 브엘라해로이는 생명을 상징하는 우물이고,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임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이삭을 보십시오. 그는 먹을 것을 쫓아 아비멜렉에게 갔는데 어김없이 그곳에서 범죄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특징은 범죄하였음에도 오히려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사실, 아버지 아브라함과 같은 종류의 범죄를 하였는데, 그 결과가 엄청난 번성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한주 내내 수많은 자료들을 살펴봤습니다. 두 가지 결론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이삭의 본래 성품에서 나오는 성공입니다.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상속자였기 때문에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네게 복을 주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복을 받을 이삭은 지금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아버지의 잘못된 본을 따르는 이삭으로부터 우리는 반드시 신앙의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 보살핌을 떠나 사람을 따르면, 사람에게 가면 반드시 사람의 기질 여부와 상과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지켜주지 않을 때 여지없이 넘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경고가 됩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통해 이삭을 다시 하나님과 교제의 자리로 내몰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_창세기26:16’
아비멜렉이 떠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죠.
그리고 간 곳이 그랄 골짜기이며 거기에서 샘의 근원을 얻었습니다. 막았던 우물을 다시 팠고 이것은 메워져있던 생명수 샘을 다시 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기는 지난 주 설교의 내용입니다. 샘의 근원을 얻게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삭은 브엘세바로 올라갑니다.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_창세기26:23’
이삭이 본래의 교제의 장소로 돌아온 것을 상징합니다.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을 상징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약속으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삭은 제단을 쌓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2. 이삭에게로 온지라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도 온지라_창세기26:26’
이삭을 내쫓은 아비멜렉이 친구들과 군대 장관과 함께 이삭을 찾아옵니다. 전에 원수였던 자들이 그를 찾아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심을 증언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이삭이 하나님과 교제의 장소로 돌아오니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_잠언16:7’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음으로_창세기26:28’
그러나 정말 놀라운 것은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언약을 맺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삭의 성품입니다. 온유함입니다.
여기서 이삭은 큰 잘못을 저지릅니다. 이삭은 원래 성품이 온유(창세기24:63)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환영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은 온유함은 의의 요구를 제쳐놓지 않습니다. 이삭은 아비멜렉이 그를 찾아왔을 때 반드시 그들의 우상숭배와 죄악들을 회개하도록 책망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삭은 그런 경험을 했고 다시 하나님의 교제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rebuke, 책망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_누가복음17:3’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정말 위대합니다.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_창세기21:25’
저와 여러분이 정말 주의해야 할 신앙의 원리가 아닙니까? 하나님과의 교제를 떠나면 우리도 역시 범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제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받은 자에게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증언할텐데 우리는 그들에게 온전한 믿음을 요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변화된 성품으로 그들을 섬기기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를 통과해야 하는 믿음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3.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마지막 희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마지막 희망이 변화된 우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삭처럼 말입니다. 우리교회? 오승주목사? 어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됩니다.
그 희망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종종 정치적인 입장을 표현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과격하고 자기 주장을 격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놓칩니다.
‘우리가 선택한 정치인들의 죄를 묵과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서 그 죄를 용납하기 때문이다._존 맥아더’
때론 우리의 신앙의 과정들이 위대해서 하나님을 놓치기도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얼마나 바보 같은 신앙입니까? 하나님을 놓치다니요.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다니요!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버리고 사람에게 가다니요.
저는 사복음서를 매우 좋아합니다. 사복음서에서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귀신에게 괴롭힘당하고 있는 딸을 고쳐 달라고 간구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처음에 냉정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_마태복음15:26’
이것은 가나안 여인이여서, 종족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믿음으로 은혜를 간절히 구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_마태복음15:27’
하나님의 은혜는 비록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같더라도 개만큼이나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까지 충분히 먹을 만큼 풍성합니다. 결국 가나안 여인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변화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소망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말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_이사야59:1-2’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찾습니다. 환경, 상황, 문제 해결할 어떤 경험을 찾습니다. 바울은 로마서4:17,21에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며....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미래를 생각해보십시오? 영적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베푸신 은혜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면 하나님은 채우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갑자기 줄어들거나 그분의 사랑이 갑자기 차갑게 식는 법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교회를 굳게 세우실 것을 믿는다면 우리와 교회와 우리 자녀들의 미래는 하나님의 약속만큼이나 밝다._윌리엄 캐리”
하나님의 종들이 지녀야 할 가장 온당한 태도는 [개처럼 겸손히 자기를 낮추는]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수 있고, 우리를 의롭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가나안 여인처럼 주께 간절히 그 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보일 것이며, 통찰될 것이며, 기도의 자리로 예배의 자리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_고린도후서4:16-18’
그리고 이삭에게 벌어진 일들이 우리에게도 벌어질 것입니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그마저도 곧 지나가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행한 일만 남으리라_J.D.그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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