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주일설교
본문: 창세기27:1-14
제목: [이삭3] 눈이 어두어진 이삭
찬송: 413장(내 평생에 가는 길)
[지난 설교 생각하고 질문하기]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마지막 희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희망은 누구신가요?
: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1. 이삭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성경 속 증거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_창세기27:1’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내가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_창세기27:7’
에서
1) 익숙한 사냥꾼(사무엘상24:11, 욥기10:16, 시편140:11, 잠언6:26, 에스겔13:18) 성경에서는 사냥꾼은 대부분 악과 관련된 내용으로 전합니다. 또한 한곳에 머물러 있기 보다 끊임없이 이동하며 떠돌아다니는 개념을 전달합니다. 놀랍게 성경에서 사냥꾼이라고 명명된 두 사람: 니므롯과 에서입니다. 바벨탑을 쌓은 니므롯과 에서는 공동점이 너무 많습니다.
2) 들사람(Field, 밭)은 밭사람입니다. 마태복음에‘밭은 세상이요’라는 말씀의 빛에 비추어보면에서 안에 담겨 있는 영적인 사실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는 상징적으로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고 장막에 거주했지만, 에서는 세상에 돌아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
1) 조용한 사람(Plain: 온전한, 정직한, 더렵혀 지지 않은)
2) 장막에 거주
3) 장자의 명분을 소유함
두 사람은 대조가 많이 되는데,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오_창세기25:32’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이나 하나님의 말씀, 예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에서는 세상의 일로 피곤하여 겨우 붉은 음식 한그릇에 장자권을 야곱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_창세기25:34’
에서는 장자의 명분 즉, 하나님의 축복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_히브리서12:16’
히브리서는 에서를 음행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성경은 음행하는 자를 하나님이 다른 우상을 섬기는 자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망령된 자라고 저주를 합니다. 망령되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불경스러운 말이 아닌가요. 에서가 하나님의 축복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는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즉, 에서는 나는 하나님의 약속따위를 먹고 살 수 없다. 나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달라. 당장 죽게 생겼으니. 이것이 에서가 말한 것의 진짜 의미입니다.
결국 에서는 두 명의 가나안 여인과 혼인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고, 그 마음에 있는 것을 여지없이 드러냈습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_창세기26:34-35’
이렇게 하나님을 모독한 에서를 편애한 이유가 고작 그가 사냥한 고기 때문이었다니!
2. 그러면 오늘 본문에 왜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나?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_창세기25:28’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를 잘 잡는다는 이유로 에서를 더 사랑하였던 이삭입니다. 이삭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뎌졌냐면, 자신이 평소 즐겨 먹던 고기 때문에 에서가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떤 길로 가는지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큰 아들을 축복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한다면서 정작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내 뜻대로 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_창세기25:19-26’
이삭이 이 말씀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것은 그가 완전하게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이삭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뜻)을 완전히 잊어버린 이삭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노년이 되어서도 (경외)로 소명을 온전히 지키는 삶을 살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_고린도후서4:16’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_시편92:14’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_잠언16:31’
우리의 신앙이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결코 노년까지 깨어있지 못할 것입니다. 자녀들을 올바른 믿음으로 안내하지 못할 것입니다.
3. 사명을 잃어버린 이삭
이삭은 야곱을 위해 축복(창세기28:3-4) 했지만, 그의 자녀들은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에서는 성경에서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불신 세상의 대표적인 민족인 에돔이 되었고, 야곱도 평생 남을 속이는 삶을 살다가 늦게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자녀들이 그렇게 살았던 이유는 이삭이 나이가 들어서 (자신의 입맛대로)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삭의 버킷 리스트(혹은 욜로) 때문입니다.
인생은 한번 뿐이야 그러니 모든 순간을 가득 채워서 살아야 모든 기회를 잡아 이 삶을 경험할 두 번째 기회를 없을 거야 그러니 할 수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어야지! 이 말이 맞는 말이라고 수긍한다면 우리는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_사탄’
‘우리의 인생은 행복한 사람들과 요란한 음악과 춤이 가득한 아주 큰 파티이다._브레이즈 파스칼’
17세기 철학자 파스칼은 우리의 삶을 행복한 사람과 요란한 음악과 춤이 가득한 큰 파티로 비유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괴물 한 마리가 들어와 파티에 온 사람들을 무작위로 잡아 끌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물어뜯습니다. 그리고 피가 철철 흐르는 시체를 방에서 끌어냅니다. 모두 두려움에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상황이 끝나자 충격으로 서로를 바라보지만, 다시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 경박함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끔찍한 장면을 떨쳐 버리며 말입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상황은 몇분마다 반복되고, 이제 괴물은 이 파티에 참석한 모든 사람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런데도 파티는 계속됩니다. 파스칼은 이 괴물은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알지 못하도록 산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풍악을 울려라!
세상은 이렇게 끊임없이 이 땅이 영원하다고 가르치고 이 땅이 모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즉, 영원을 준비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것입니다.
버킷 리스트는 진리가 결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여유 넘치는 영원한 인생 정도로 생각하는데, 천국은 새 하늘과 새 땅 즉, 새롭게 된 하늘과 땅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좋은 곳을 많이 다니셔도 천국보다 좋은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며 살라고 가르칩니다.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_야고보서4:14’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_누가복음12:20-21’
죽음을 준비하는 삶은 우리 삶을 더 가치 있는 것에 투자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 가치 있는 것은 우리가 죽음을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죽음을 준비하며 사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앞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를 알고 사는 것을 지혜있는 삶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지혜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또 그 목적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왜 깨어 기도하고 항상 깨끗하고 변질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영혼 구원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죽음을 준비하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직업이 달란트, 은사가 그 일에 쓰임 받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_사도행전8:1,4’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일반적인 사람들을 전부 복음의 창끝으로 사용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의 내용을 확장하는 일에 사도들이 아니라 일반 성도들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 남부에 위치한 나라 에스와티니는 에이즈 감염률이 최고로, 국민 4명 중 1명 이상이 감염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의과대학이 없어서 제대로 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11년 전에 서울대학교의과대학교수께서 은퇴하신 박재형선교사님께서 선교하러가셨다가 의과대학을 세워야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은퇴하신 교수님들, 안식년인 교수님을 모시고 사역하시다가 드디어 의과대학을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달란트로 평생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 받기를 축복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더욱 그러하길 축복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이제 주님의 일을 그만하고 여행 다니고 놀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하나님 앞에 서서 영광스러운 천국 입성을 위해 가장 멋진 신앙인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반드시 평생 ‘묵상하는 삶(시편1:1-3)’을 살아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라 행하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행하고 서고 앉으면 안됩니다. 그와 반대로 깨어 있어야 하는데, 깨어있어야 하는 삶을 즉, 복받는 삶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삶입니다. 그 삶은 반드시 하나님앞에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_잠언22:29’
묵상하는 일과 우리의 달란트를 단지 돈이 아니라 능숙하게 하여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연결되길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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