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 주일예배
본문: 창세기26:1-18
제목: [이삭1] 하나님은 나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신다.
찬송: 540장(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지난 설교 생각하고 질문하기]
아브라함처럼 범사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삶을 살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 믿음과 기도
1. 교회 가는 것은 두렵지 않다.
오늘 날 많은 사람이 기독교가 시들어간다고 말합니다. 늘 부정적인 사람들은 역사속에 존재해왔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복음이 사라진다는 말은 초기 기독교 때부터 있었고 그 위협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심이나 방심이나 절망 때문에 복음의 소망과 하나님께서 여전히 역사하고 계시다는 믿음을 우리는 포기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우리 삶과 믿음을 분리하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것은 곧 확실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는 자기가 죽은 뒤 100년 안에 기독교가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성경이 지구상에 한권도 남지 않게 될 것이고 그 이유는 세상이 발전하기 때문에 아무도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예언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음은 온 세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의 역사가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날 우리의 모습은 교회 가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단지, 늦께 가면 주차 자리가 없을 까봐 약간의 긴장감과 어린 자녀들의 행동으로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질까 걱정하는 정도입니다. 또 예배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축구 결승전이나 드라마를 봐야 하는데 목사가 설교를 마치고 또다른 호제를 꺼내 시간을 오래 끌까봐 우려될 수도 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예배드리러 가는 것이 귀찮기도 합니다. 그것이 오늘 날 우리의 모습이라면 우리는 전혀 복음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15,000명의 교인이 예배당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자 ‘시온교회’를 폐쇄하겠다고 위협했다.”(2018년 중국 최대의 지하교회 폐쇄)
제법 오래전 사건이지만, 우리가 복음과 상관없어질 때 중국에서는 복음주의 교회들에 대한 공산당의 탄압이 심해졌습니다. 중국 정부에서 종교 정책을 발표했는데 십자가를 불태우고 중국 국기로 대체하라는 등 기독교의 씨를 말리려는 정책들 뿐이었습니다. 수많은 정부 관리들이 월급을 받으면서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을 추적해서 그들이 복음을 전하거나 예배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예배당에서 시끄럽게 우는 아이가 성가시기는 하지만 충분히 참을 수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도 참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거듭났다면 말입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거듭난 공동체인가?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_요한복음3:14-16’
예수님은 구원을 묘사하는 성경의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가운데 하나를 언급하셨는데, 바로 민수기에 발견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뱀을 보내 물어 죽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긍휼을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의 형상을 만들어 그것을 장대에 달아 높이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구원과 치유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한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쳐다본 이스라엘 백성은 누구라도 다 나음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에 메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며 저기에 나의 구원이 있다고 말하면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계속 바라보면 믿음의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거듭남은 본질적으로 약간의 나쁜 소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거듭나려면 우리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인데 조지 휫필드는 회개에 대해 이렇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첫째,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의)를 회개해야 합니다.
죄는 당연히 회개하는데, 의도 회개해야 하나? 우리의 의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자심감은 복음의 참된 능력을 맛보지 못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의가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온전한 복음의 능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2.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_창세기26:1’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_창세기26:5’
왜 이삭에게도 아브라함과 똑같은 시험이 있었을까요? 아니 아브라함이 걸었던 믿음의 길, 믿음의 성장, 그가 맛본 복음의 능력이 이삭에게 그대로 전달되면 편하게 신앙생활 할텐데 왜 이삭도 똑같이 테스트를 받아야 합니까?
이삭의 연약함은 어쩜 그리 아비 아브라함을 닮았는지요?
‘그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_창세기26:7’
그것은 이삭이 이 복음을 깨달아야 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만났던 하나님을 이삭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삭 역시 아브라함처럼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_로마서3: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_로마서3:23’
우리가 생각할 때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삭에게 그대로 전달 된 거 같지만, 성경은 아브라함이 복음을 듣고 변화된 과정을 이삭도 똑같이 경험하길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이 그 복음을 경험하고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을 때 이삭은 아브라함처럼 복의 사람이 됩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_창세기26:12’
그 복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블레셋 사람이 막습니다. 즉, 이삭이 살아가는 시대에 똑같은 유혹들이, 방해들이, 공격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복음으로 살아가는데 말입니다.
마치 우리가 이제 편하게 교회를 다니지만, 중국에서는 엄청난 핍박이 있는 것처럼 우리 다음 세대에 그런 역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_창세기26:15’
3. 포기하지 않았던 이삭의 믿음
그런데 이삭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_창세기26:19-22’
에섹(다툼) -> 싯나(대적하다) -> 르호봇(넓다)
다툼이 있어서 다른 곳에 팠는데 거기에서는 대적자들이 일어났고 그래서 양보하여 또 다른 곳에서 팠는데 드디어 그들이 다투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물이 많으니 다툴 이유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삭은 바로 브엘세바로 올라가 밤에 여호와를 만납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배합니다. 주님을 위해 단을 쌓습니다.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_창세기26:24’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에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_창세기26:25’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한국교회 믿음의 선배들이 일으킨 부흥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점차 너무 멀어지고 또 희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세대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염려하였습니다. 다시는 이 세대에 영적인 부흥이, 복음의 역사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까? 주차장 걱정이나 하는 우리가 그럴 수 있을까? 교회 임대료 걱정이나 하는 목사가 그럴 수 있을까?
하나님의 역사는 그 시대 엄청난 믿음의 선배들이나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역사가 아닌가?
이번 세미나에서 미국 남침례교 학장인 엘버트 몰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준 사람들 대다수는 우리의 자녀와 후손들입니다. 우리가 낳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그렇게 복음 전도를 잘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_엘버트 몰러(남침례신학교 학장)
미국에서 가장 건전하고 또 건강한 교단이 남침례교입니다. 보수적이고 복음적인 교단입니다. 그런데 학장은 걱정합니다. 그 뜨거운 복음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있다고 말입니다. 침례교에 속한 그리어목사님은 가정들이 복음으로 회복되도록 온 힘을 다해 사역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터전에서 우리 가족 이외에 이름을 얼마나 언급하고 있는가?(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이렇게 된 이유는 교회가 위대한 비전, 훌륭한 리더쉽, 진취적인 정신, 뛰어난 문화사역을 못해서가 아니라 제자양육을 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복음으로 양육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그렇습니다. 저는 어젯밤 11시에 우리교회 청년을 교회로 초대했습니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만날 수 없었는데 통화하면서 토요일 밤 11시면 가능하다는 말에 그러자고 했습니다. 복음으로 양육하고 기도하는 일들이 다시 우리교회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_요한복음9:4’
이제 우리 교회는 제자양육을 해야 합니다.
[제자양육을 받으라/ J.D.그리어]
1. (성경)을 읽고 배우라.
2.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기도)하라.
3. 믿음의 공동체를 (제자로) 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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