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주일설교
본문: 창세기31:1-42
제목: [야곱3] 약속대로 축복하시는 하나님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_창세기28:14-15”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이 약속을 믿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축복해주고 싶기 때문이고 또 약속을 지키셔야 하는 신실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도록 성령하나님은 오늘도 일하고 계십니다.
1. 레아와 라헬 이야기_12지파 준비
성경은 야곱이 라반의 집에 머무는 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해 비교적 길게 묘사합니다. 저는 그 부분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사실, 야곱의 아내들이 서로 시기하고 다툰다든지, 육신적인 동기로 자녀들을 낳아서 서로 경쟁한다든지, 심지어 다른 하녀까지 동원해서 아이를 한명이라도 더 낳으려고 하는 것까지 어쩌면 이걸 왜 기록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만일 여기에 그것 이상의 아무것도 없었다면 성령께서는 그것에 대해 이토록 장황하게 기록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정말 많은 사건 사고가 있고 문제들이 있고 어쩌면 끝이 안보이는 답답함도 있는데, 어찌 이유가 없을까요? 라반의 딸들은 야곱을 통해 어쩌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즉 그의 자손들이 가장 부요한 축복을 상속받을 것이며 그들로부터 때가 되면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약속에 영향을 받았음은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 시대의 모든 경건한 여자들이 아이를 낳기를 간절히 열망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그러한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여인들은 아이를 낳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레아와 라헬을 통해 낳은 12아들, 그리고 나중에 야곱이 죽기 전에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힘과 므낫세를 자기 아들 삼아서 14아들이 되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요셉지파가 에브라힘과 므낫세 지파로 나쥐어져서 열두지파로 흡수되어 결과적으로 12지파가 되었습니다만, 표에 보듯이 이 모든 지파가 태어날 때 지은 이름의 뜻대로 나라가 되어 그대로 성취가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의 진행과정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열두 족장들과 그들의 이름의 상징적인 의미와 그들이 언급되는 순서등에 대해 이미 많은 연구가 이우러졌고, 그와 함께 여기에서 죄인들이 은혜로 구원받는 과정이 암시적으로 발견되는 것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첫째 아들의 이름이 르우벤인데 뜻이 ‘보라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다음 둘째는 시므온의 뜻은 ‘들음’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들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들으라 내 영혼이 살리라! 셋째는 레위인데 레위는 ‘연합’이라는 뜻입니다. 레위는 제사장 지파였잖아요. 복음을 듣고 그의 아들과 연합할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 이름은 유다입니다. 유다는 ‘찬송’이라는 뜻인데 찬송은 구원받았음을 그러니까 생명을 뜻하지요. 연합해야 생명이 있지 않습니까. 단은 ‘판단’ 혹은 ‘심판’입니다. 신자가 자신의 죄를 판단한다는 의미이고, 납달리는 ‘다툼,씨름’입니다. 죄와 싸우는 것을 상징하고, 갓은 ‘군대, 무리’라는 뜻인데 하나님의 군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아셀은 ‘행복’입니다. 교제의 결과가 행복이고 잇사갈은 ‘값’을 의미하는데 섬김을 가르칩니다. 스불론은 ‘거하다’인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때까지 하나님의 안에 거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요셉은 ‘더함’이라는 의미인데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 주실 상급을 의미하고 또 요셉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베냐민은 ‘나의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의미인데 그리스도를 가르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야곱의 이름이 나중에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구약의 역사가 12지파의 역사인데, 옆에 표를 보시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레아의 믿음은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가 눈이 좋지 않았고 또 라헬보다 예쁘지 않았지만 지혜로웠고 무엇보다 믿음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중에 유다를 낳았고 유다지파는 나중에 다른 지파들이 다 망할 때 끝까지 약속을 지키려고 몸부림 쳤던 지파입니다. 그에게서 다윗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것입니다.
라헬도 언니 못지 않게 자녀에 대한 욕심이 많았습니다. 종을 통해서라도 하나라도 더 낳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라헬을 레아가 다 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두 자매 모두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야곱과 함께 하는 것이 축복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씨와 땅에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바로 그 씨와 땅이었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2. 야곱으로 말미암아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12지파가 이루어질때까지 그가 성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길 원했는데 성격 급한 아니 어쩌면 너무 힘이 들어서 야곱은 요셉을 낳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모든지 하나님의 때가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라반이 보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품삯을 높게 올려줍니다. 그러면서
이때 라반이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시는 줄을 깨달았노니_창세기30:27-28”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야곱 때문에 그동안 정말 부유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 말을 잘 보십시요. 성경은 말미암아가 정말 많습니다. 요셉으로 말미암아 그 집에 복을 내리시고, 다윗으로 말미암아, 솔로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중보자 그리니까 씨와 땅으로 말미암아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르쳐주는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를 용서하셨도다_에베소서4:32”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_요한일서2:12”
구원은 전적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를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걸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은 20년을 더 라반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면서 야곱은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아롱진 것, 점있는것, 검은 것을 달라는 것입니다. 많은 연구로 껍질을 벗긴 가지로 그렇게 되었다고 하나, 사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 동안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12지파와 약속하신 풍요로움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20년의 삶이 어떤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0:43에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놀라운 것은 야곱이 부유해지나 거기를 떠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참 신기하죠. 너무 신기합니다. 가난하고 힘들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기도하더니 이제 살만하면 반대로 이곳이 좋사오니 이렇게 살아갑니다. 그것이 우리네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암튼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하신 약속을 전부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_창세기31:3”
우리는 이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그 때가 왔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을 성공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3. 야곱의 두려움과 하나님의 역사하심
그런데 방해가 있습니다.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이 우리 재산을 다 가져갔다고 하는 말을 듣습니다. 야곱이 그게 신경이 쓰이는 겁니다. 그래서 라반에게 떠나겠다고 말을 못합니다. 그래서 라반이 사냥갈때 몰래 떠나기로 작정합니다. 사실 야곱이 그동안 하나님을 잘 섬기거나 하나님과 교제하거나 그런 내용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이야기로 두려워떠는 것입니다.
그렇게 몰래 떠나는데 라반이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따라 나서려고 합니다. 자기 딸들도 있고 재산도 있고, 그런데 그런 라반에게 하나님이 현몽하십니다.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_창세기31:24
참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에 얼마나 신실하신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우리가 그 약속을 믿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라반이 쫓아와 왜 인사도 하지 않고 가느냐, 그리고 그가 찾은 것은 그들의 신= 드라빔(묻다)입니다. 드라빔은 묻다는 뜻인데, 하나님만 섬기는 줄 알았던 라반의 집에 드라빔이 있다는 것은 다른 신에게 묻고 살았다는 것이고 그걸 라헬이 몰래 가져갔다는 것도 우리는 라반과 라헬의 신앙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입니다. 드라빔은 가족신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끝내 라헬은 잔머리를 써서 드라빔을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가면서 레아는 약속의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고(못생겼지만), 야곱이 한눈에 반한 라헬은 끝내 우상에게 질문하는 인생을 포기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사울의 딸 미갈이 드라빔을 섬기는 모습도 나오고 이 드라빔이 자주 나옵니다.
드라빔을 발견하지 못한 라반은 형식적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와 전혀 다르게 제사를 드립니다.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우고....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_창세기31:43-49”
여기서 여갈사하두다는 증거의 무더기라는 갈대아어입니다. 야곱은 갈르엣이라고 하는 히브리어를 씁니다. 별거 아니겠지만, 우상숭배자인 라반은 세속적인 언어를 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언어도 바꿔야 합니다.
오늘 짧은 말씀이지만, 하나님은 야곱에게 드디어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렇게 점진적으로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인 말씀을 믿고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주십니다.
걱정과 근심, 불안과 불신앙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신앙생활로 바꿔야 합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신앙은 곤경의 때에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 실재는 훨씬 이전부터 드러납니다. 때로 믿음은 사랑 가운데 조용하고 겸손하게 일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분들중에 신앙이 좋다, 신앙의 영웅이다 하시는 분들은 예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평소에는 조용히 예배드리고, 평범하게 사랑하고 섬기며 사는 분들이 교회가 위기를 당할때, 직접 나서서 그 일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 그리스도가 그분에게 가장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_로마서16:4”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사람을 위하여 한다면 그 삶을 결국 약속을 이루는 삶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한다면 그것은 가장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이다.
야곱은 20년간 이방땅에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까지나 그곳에 남아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로 살려고 부르셨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삶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행복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다시 말씀을 통해 이 믿음이 회복되길 기도합시다. 서로 도우면서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말씀을 배우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셨던 이 약속의 말씀을 믿으면서 우리 삶이 그리스도 안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기를 소망합시다.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하시는지 저는 보고 싶습니다. 우리를 어떻게 세워실지 기대합시다. 현실로 계산하지 말고 믿음으로 계산하고, 믿음으로 살아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시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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