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주일설교
본문: 창세기29:1-20
제목: [야곱2] 변화된 야곱
찬송: 285장(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찬양: 은혜 아니면
[야곱이 길을 떠나_창세기29:]
루스(분리)-벧엘(하나님의 집)
: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도록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으로 떠남으로써 하나님의 집에 들어갑니다.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_창세기28:22”
야곱의 율법주의적 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향유하는 대신, 이런저런 조건을 제시하며 거래를 시도합니다.
• 아마도 야곱은 불안하고 또 두려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너무 좋았지만, 확인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 우리 또한 이런 불안함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나? 정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나? 목사인 저도 불안함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하나님 인도해주실 거죠? 제가 이렇게 기도하는데,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데 도와주실꺼죠? 이렇게 고백할 때가 많습니다.
• 그래서 성경은 이런 서원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변화를 위해 하나님앞에 믿음의 고백을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 야곱의 다음 발걸음을 보면 왜 이것이 우리에게 중요한지 알수 있습니다.
“야곱이 그의 발을 높이 들고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Then Jacob lifted up his feet_창세기29:1"
그가 집을 떠날 때는 그의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그러나 이제 그런 무거움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은 그의 마음과 발을 가볍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여행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의 발을 높이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발을 납덩이처럼 무겁게 만들면서 곤비함으로 질질 끌며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 아니고, 더군다나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을 믿는 믿음의 삶도 아닙니다.
야곱은 800킬로를 홀로 걸어와서 신기하게 바로 라헬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하심이죠. 성경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앞에 결단하고 믿음의 고백을 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인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야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을 위해 감사하며 또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기도하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는 하란의 목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평안하냐 물었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라헬이 오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야곱은 라반이 오는 그 사이에 우울에서 돌을 옮기고 양떼에 물을 먹입니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가 생각나게 하는 모든 것으로 인해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아마도 여기까지 온 과정들, 어머니의 고향, 여러가지 감정으로 펑펑 울었을 것입니다.
이때 라반이 와서 그를 영접하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바로 들입니다.
조카를 처음 본 것이니까 얼마나 좋았을 까요.
사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믿음으로 살면서도 이런 복잡한 가정사, 인간관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거쳐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이죠.
[야곱의 지평선을 보십시요.]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_창세기29:13-14”
야곱은 변화된 사람이었고, 그의 행동은 충분히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따뜻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드러난 지평선이 아닌가요.
그러나, 그가 지은 죄(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해 교활한 계획을 꾸민)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라반의 집에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야곱의 지평선에 먹구름이 끼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부분을 여러분과 깊게 나누길 원합니다. 행한대로 갚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용서와 사랑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또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의 발을 높게 들어 확신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교활한 마음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그분과 그분의 교회를 이용한다면 말입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일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_창세기29:15”
야곱은 섬김을 받는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또 하나님의 나라가 섬김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태어나기도 전에 그런 축복을 받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라반을 7년이나, 또 그의 속임으로 14년이나 섬겨야 하는 야곱의 처지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여전히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원리는 성경 전체에 나와있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왜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할까요?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묵상하고 살아야 하나요?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악을 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을 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_창세기29:20”
하나님은 야곱이 더이상 악한 사람이 되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남을 속이고 정직하지 못하고 죄의 종으로 살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야곱은 알아야 합니다.
본인이 남을 속였는데, 이제 본인이 속임을 당해야 합니다. 이제 본인이 그걸 경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본인이 더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은 여전히 내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신앙은 내가 구원받고 끝나는 것이다. 거기서 머물기 때문입니다.
시편에 사냥꾼의 올무라고 표현합니다. 야곱은 지금 하나님께 서원했음에도 라헬의 미모를 보고, 그리고 거기서 또 자기 지혜와 힘으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이 생각하여 하나님의 뜻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야곱에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1.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했다면, 그는 사람의 종으로서 사람에게 순종하여 섬기는 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2.장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3.하나님께서 야곱의 인내할 줄 모르는 조급함을 고쳐주고 계시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아버지를 속인 야곱은 라반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작은 아들임에도 큰아들로 위장했는데, 작은 딸(라헬) 대신 큰 딸(레아)를 받았다. 또 라헬이 야곱을 속입니다.
염소새끼의 가죽으로 아버지를 속였는데(창세기27:16), 훗날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의 옷을 염소 새끼의 피로 적심으로써 아버지 야곱을 속입니다(창세기37:31).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한 은혜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피하길 원하십니다. 죄가 얼마나 악독한지 새롭게 배우고,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도록 간절히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_갈라디아서6:8”
성령을 위해 심어야 한다는 것은 성령 하나님과 친밀함으로 살아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 안에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 아니면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단 한순간도 제대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 수 없는 우리들인데.
십자가 사랑과 그 능력으로 살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은혜가 우리를 온전히 승리하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은혜 안에 머물도록 도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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