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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찬양예배

2017-09-22 금요찬양예배

2017-09-22 금요찬양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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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2일 가스펠교회 금요찬양예배

제 목 :

(소요리문답강해25) 제사자의 직무

본 문 :

히브리서2:17

임대영 목사

25문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의 직무를 어떻게 행사하시는가?

: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지속적인 중보의 기도를 드리신다.

 

그리스도의 세직무는 상당히 중요한 교리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하셨는데, 그 형상은 외모가 아니라 세가지 직무, 세가지 능력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래인간은 선지자의 지혜, 제사장의 거룩, 왕의 의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무지하고 죄악가운데 불의를 행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가지 직무를 회복해야만, 하나님과 함께 할수 있는데, 인간 스스로는 절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셔서 인간이 타락한 세가지 하나님 형상을 회복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 직분입니다. 선지자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제사장으로써 희생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왕으로써 왕중의 왕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회개는 지정의의 회개여야만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습니다. 하나님 자녀들이 모인 교회또한 세 직무를 감당해야합니다. 예수님이 머리되신 교회가 세 직무를 회복해야합니다. 선지자 직무의 말씀선포, 제사장 직무의 성례의 집행, 왕의 직무인 권징의 시행. 교회가 세 직무를 바르게 감당해야 하나님께 사용받게 됩니다. 소요리문답에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그리스도의 세직무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서론을 이해하고 제사장의 직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지않으면 굉장히 혼란스러울수도 있는 교리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닫고, 그 속에 숨겨진 은혜를 찾는 시간되길 원합니다.

 

 

. 칼빈의 5대교리_제한속죄

 

개혁주의 신앙의 교회에 가장 많은 공격과 오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 함께 묵상할 제한 속죄론입니다. 제사장의 직무를 어떻게 행사하셨는지 자세히 고민하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의 5대교리에 등장하는 제한 속죄론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관련하여 제한된이라는 단어 사용에 불편하게 생각을 합니다. 제한 속죄라는 단어보다 특별 속죄, 한정 속죄라는 표현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한 속죄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무를 가장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한 속죄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다만 몇 사람을 위한 대속의 제물로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_마태복음1:21’

 

예수그리스도의 속죄가 제한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해야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의 가치가 제한된 것이 아니라, 죽음의 속죄적인 규모에 있어서 제한적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보배롭고 완전한 은혜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의 은혜는 자기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것 입니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직접 설정하신 속죄의 한계, 범위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실제로 구원에 이르는 사람은 창세전에 정하신 자들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_요한복음10:15’

 

구원의 대상자, 범위는 성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양, 백성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것입니다. 이것인 창조주 하나님의 고유의 영역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제한되었다는 사실은,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자들에게만 제한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다른 관점들

 

절대적 보편주의_마태복음25:31-46

 

성경의 교훈에 반하는 두 가지 다른 관점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절대적 보편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인의 구원을 원하시고, 그리스도께서도 만인의 구원을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말에 만인이 구원에 참여하게 될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이 교리를 따라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미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구원을 받게 될것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살아도 되게 됩니다. 결국에는 만인이 구원에 참여하게 되기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악인, 하나님의 영이 없는 자들과 지옥에 대한 기록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옹호될 수 없는 견해입니다. 하지만 이런 견해가 현대에 들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합니다. 현대주의적인 교단,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중심으로 절대적 보편주의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 조건적 보편주의

 

조건적 보편주의는 어떤 특정한 사람만을 구원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거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다른 부류는 자신의 행위로 구원에 참여 하도록 남겨 두신 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알미니안 주의의 속제론입니다. 만인 속죄론이라고도 합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처음 제사장의 직무에 대해 배울때가 생각이 납니다. 같이 공부하던 학우중에 굉장히 기도도 많이 하고 뜨거웠던 동기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던지 목소리가 늘 쉬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행실도 바르게 살아 동기들도 존경하고 따를 정도의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리부분을 배우는데 손을 들고 질문아닌 질문을 하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 교수님,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분이신데 어떻게 일부의 사람들을 위해서만을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셨나요. 저는 예수님의 죽음이 만인에게 효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라고 정확히 질문이 아닌, 질문을 하여 다들 혼돈에 빠졌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올 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뜨거움으로 왔는데 교리를 배우는 시간에 제한 속죄에 대한 하나님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불특정 다수를 위해 죄값을 치루셨으며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발판만 마련하셨을 뿐 그것을 취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알미니안 주의의 가르침을 부인합니다. 조건적 보편주의는 인간의 행위로 구원에 참여 할 수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만인을 위해 죽으셨고, 인간은 행위로써 구원에 참여 할 때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공로나 공헌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이미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조건적 보편주의, 만인속죄론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회개하고 신앙을 선택해야 한다라고 가르치게 됩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하나님은 선하신분으로 두고,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신학사상입니다. 이 사상은 곧 인간의 구원의 결정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이러한 알미니안 주의의 사상에 변론하여 칼빈의 5대교리를 정립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모든 사람을 위한 은혜임을 강조하는 조건적 보편주의는 지극히 인간적인 신학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자칫 이런식의 오류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내 생각과 가치관, 이해를 우위에 두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러실 수가 없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야. 하지만 전부 우리의 기준에서 선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내 머릿속에 내 가치관에 내 이해력에서 가두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이심을 기억해야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진리로 자신을 표현하시고 나타내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저자의 의도를 생각하지 않고 독자의 의도로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선과 악은 인간들의 선과 악이 다를수 있음을 생각해보아야합니다.

 

3. 제한 속죄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사도바울도 기록하기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구주라고 하였습니다. 제한 속죄의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대상과 하나님의 선택의 대상이 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제한속죄에 반대되는 두 가지 관점을 먼저 보면, 왜 제한 속죄인지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나 목회자들은 제한속죄론보다 특별속죄론을 사용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제한 속죄론이 더욱더 명확한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자신의 백성, 몇 사람들을 위한 죽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에서 대제사장이 그가 성소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릴 때에, 그의 가슴에 이스라엘 백성의 이름을 붙였던 것처럼,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만인이 아닌 그의 택한 백성을 대표했던 것입니다.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_출애굽기28:21’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신앙의 완성자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의 죄를 위한 모든 빚을 청산하신분이며, 자기 백성의 마음이 중생하여 회개하도록 성령을 보내신 분이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_히브리서12:2’

 

 

. 특수와 보편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모든 언어와 종족, 민족에서 각각 몇 명씩을 불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제한속죄론의 보편성은 모든 나라 민족 종족 가운데서 우리가 자세히 알 수 없는 숫자인 몇몇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 뿐만아니라 이방인을 위해서도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_요한일서2:2’

 

여기서 요한은 예외없이 만인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단지 한 민족에서 몇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의 많은 민족들 가운데서 많은 무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강조하여 말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범위에 관하여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범위를 성경에서 밝히지 않는 특정 숫자를 제시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범위는 분명 하나님의 창세전의 계획속에 포함되어 있고 그 숫자 또한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성경에 기록하지 않으신 이유 또한 하나님께 있을 것입니다.

 

제한 속죄론은 구원받고 예배하러 나온 성도들에게 가장 큰 구원의 기쁨과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창세전의 계획속에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대충 A,B,C를 행위로 하면 구원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영접기도를 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날 교회에 안빠지고 나왔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행위는 하나님 자녀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신앙의 고백으로 나오는 것이지, 결코 구원의 표지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창세전 계획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나를 선택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선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되었고 구원에 참여하게 된것입니다.

 

제한 속죄론의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의 범위, 숫자는 하나님의 선택이고 하나님의 자유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선택의 우리는 감사함으로 반응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몇몇 사람을 위한 은혜인데, 그 몇 사람중에 하나라는 사실은 우리는 감동케하고 역동케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의 기쁨과 확실성을 가지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개인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초청해야합니다. 그누구도 어떤 사람이 선택 받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한속죄에 대한 믿음으로 전도와 선교를 할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_갈라디아서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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