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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2-09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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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9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나병에 관한 은혜의 규례

본 문 :

레위기14:33-57

오승주 목사

 

. 나병(차라아트: 악성 피부병, 곰팡이, 곰팡이로 인한 피부질환)

나병은 나병 균이 피부와 신경계에 침투해서 감각신경이 무뎌지고 마비되어서 발가락이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코가 문드러져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무서운 병이다.

 

오늘 1314장에 나병. 문둥병(한센병)이라고도 하는 나병에 관한 규례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나병은 히브리어로 차라아트라고 합니다. 악성 피부병을 포괄하는, 곰팡이, 곰팡이로 인해 오는 피부질환을 통칭해서 차라아트라고 나병에 대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문둥병, 한센병 뿐 아니라 악성피부질환을 통칭해서 이야기합니다. 나병은 나병 균이 있습니다. 이 균이 피부와 신경계를 침투해서 감각신경을 건드려서 감각신경을 무뎌지게 합니다. 무뎌지면 때려도 아프지 않습니다. 그래서 발가락, 손가락이 썩어나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엄청 무서운 병입니다. 제가 대학교 때에 한센병 모여 있는 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붕대감고 있는데 나병이라는 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모릅니다. 구약에서 영적인 의미로는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였습니다. 저주의 상징적인 병이 나병이었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구약에서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저주에 상징적인 병이 나병이었습니다. 나병은 처음에는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도 피부에 무언가 올라오면 처음에는 무슨 피부병인지 모르니까 괜찮겠지 문제없겠지 생각하지만 악성피부병이라고 하면 점차 퍼지고 번지고. 나중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해서 번지는지도 모릅니다. 이 나병이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나병을 보고 죄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구약에 나병을 통해서 하나님은 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죄들이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지만 무섭게 퍼지는 피부병과 같은 죄. 감사하고 다행인 것은 여기에서 건짐 받아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그 죄를 알기도 하고 해결책도 알고 있어서 방어하고 보호 할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나병에 관한 규례를 오늘 주시는 장면입니다.

 

. 나병에 관한 은혜의 규례(진단과 치료법)

- 피부에 이상이 생기면 제일 먼저 제사장에게 가야 합니다.

제사장은 세 번에 걸친 정확한 진찰을 해야 합니다.

나병환자의 애통과 격리(마태복음5:4, 누가복음6:25)

나병환자를 위한 정결의식(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주셨습니다.(히브리서13:12-14)

나병은 온 몸과 옷, 집까지 퍼지는 무서운 전염병으로 옷 즉, 살에도 드러나게 되며, 집까지 퍼져 공동체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나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지 규례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만일 사람이 그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색점이 생겨서 그의 피부에 나병 같은 것이 생기거든 그를 곧 제사장 아론에게나 그의 아들 중 한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갈 것이요_레위기13:2

 

나병이 생기기 전에 피부에 뾰루지만 나도 제사장에게 데려가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첫 번째 진단 치료법으로 주신 것입니다. 피부에 무엇이 나면 제사장에게 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규례 중의 첫 번째입니다. 구약에는 의원이 따로 없었습니다. 제사장이 의원 노릇도 하고 법관노릇도 하였습니다. 과거에 시골의 목사님을 보면 초등학교도 못나온 사람들이 많으니까 시골에서 편지도 읽어주고 산모가 아기 낳으면 아기 받으려도 가고 밭일도 도와주고 슈퍼맨 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예전에 제사장이 이런 역할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질병이 어떤 질병이냐에 따라서 치료법이 다릅니다. 나병이라면 말이 다른 것입니다. 진단하기 위해서 제사장 앞으로 가라. 라고 합니다. 뾰루지가 나더라도 피부에 무엇이 돋더라도 색점이 생기면 제사장에게 먼저 가라고 규례로 주셨습니다. 제사장 앞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의 진짜 제사장이신 예수님 앞으로 간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앞으로 가야 우리의 인생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죄가 들어오면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 앞으로 가야 진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각자 알아서 잘 살아갑니다. 자기들의 지식과 경험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면서 자기들의 기준으로. 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릅니다.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끊임없이 문제가 찾아오고 고통이 찾아오고 아무리 아무리해도 공허함만 남는지 사람들이 알지 못합니다. 제가 인생을 오래산건 아니지만 그동안에 좋은 것 많이 먹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서 무언가 채우려고 애를 씁니다. 예를 들어서 안 좋은 음식 먹다가 좋은 음식을 먹으면 안 좋은 음식은 안 먹게 됩니다. 더 좋은 음식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주나요? 채워주지 못합니다. 자살을 가난한 자들이 많이 할까요? 부자들이 많이 할까요? 무너졌을 때 공허함을 견디지 못해서 부자들이 자살을 많이 합니다. 죄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사람들이 모르니까 예수님 앞에 죄가 생기면 가야하는데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문제가 있으면 숨기기에 급급합니다. 피부에 무엇이 나면 옷으로 감춥니다. 집 안에 들어가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집 밖에 나가지 않으면. 그렇게 숨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이 되나요? 나중에 그 피부병이 번져서 악성 피부염이 생기면 옷에도 곰팡이가 생기고 집안에서 곰팡이가 생깁니다. 번지는 것입니다. 악성피부병은 독한 약을 먹어야 합니다. 피부약이 약 중에서 제일 독합니다. 저는 많이 먹어봤습니다. 나중에는 온몸에 악성피부병이 생기면 독한 약으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작은 죄일 때 예수님 앞으로 가야하는데 죄가 숨기다가 커지면 독한 약을 먹듯이 큰 대가를 치려야 합니다. 피부에 문제가 생기면 제사장에게 가야합니다. 바로 가야 합니다. 영적인 병은 혼자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려 오셨습니다. 레위기13:4-7 시작할 때 이렇게 시작합니다.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라고 시작합니다.

두 번째 규례입니다. 제사장이 진찰을 어떻게 하냐면 3번에 걸쳐서 합니다. 작은 피부가 나병인지 악성질환인지 그냥 모기에 물렸는지 모르니 처음에는 그냥 둡니다. 그리고 1회 만에 확인해서 번졌으면 또 치료를 해봅니다. 1회를 기다려서 3번째에 가서 많이 번졌으면 악성이구나. 나병이구나. 라고 진단하는 것입니다. 3차례 집에 가서 확인하였습니다. 집의 벽에 곰팡이가 껴있으면 곰팡이를 떼어냅니다. 1회 만에 가서 보니 번졌으면 긁어냅니다. 3번째 갔는데 온 집안에 곰팡이가 생기면 집을 허물어 버립니다. 이것은 악성이다. 나병의 곰팡이다. 라고 진단을 내립니다. 좋은 의사는 대충 진단을 하지 않습니다. 저희 동네에 돌팔이 의사가 있습니다. 사람이 많으니까 감기네요. 그냥 약을 써서 보냅니다. 좋은 의사는 진단을 바르게 하는 의사입니다. 치료법을 먼저 주는 것이 아니라 진단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을 만나면 솔루션을 주어야 합니다. 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목사님들은 성도들을 만나면 답을 너무 빨리 줍니다. 이 한 사람의 인생을 기도도 없이 두루 살핌도 없이 쉽게 이야기할 수 있죠?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3년 내 내 저는 지켜보는 분이 계십니다. 어떤 분인지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알고 그 사이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하고 강단에서 말씀을 들어서 회복하게 하는 것이 목사가 하는 사역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이야기를 합니다. 부모님들이 오셔서 목사님, 우리 아들이 의사의 소질이 있는데 비전 좀 넣어주세요. 라고 합니다. 의사되게 하라고 메시지를 주라고 합니다.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릇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병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게 만들고 예수님을 믿어서 자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calling을 기다리게 만들고 그 calling이 있어야 진실된 신앙생활을 할텐데 눈에 보이는 대로 사역하고. 저는 목사로서 부분을 회개합니다.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_레위기13:45-46’

 

세 번째 규례가 진단이 되어서 나병이라고 하면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게 되어 있습니다. 군대에 가면 화생방 훈련을 합니다. 생화학공격무기가 오면 방독면을 쓰고 첫 번째 배우는 것이 가스 가스 가스 라고 합니다. 남들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지금 똑같은 것입니다. 나병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가요? 애통입니다. 제사장이 이런 진단을 했을 때에 이 환자는 그것을 받아드린 것입니다. 나병으로 진단을 받으면 애통하게 됩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마음이 아프지만 사실을 받아드릴 때 치료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마음이 강팍하면 절대 치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절대 치료를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매일 라면만 먹고 잠도 안자고 살 때가 있었는데 건강에 대한 조언을 누가 해주셨습니다. 그 조언을 들었을 때 보통 사람들은 너나 잘해. 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것이 뇌리에 담겼습니다. 그것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 옳지 않게 살았구나. 이것이 애통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변화된 식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성격상 강요를 하지 못합니다. 교역자들에게 부탁하지 강요를 한 적이 없습니다. 특별히 강요를 한 사례가 있습니다. 급할 때, 중요한 문제다. 라고 했을 때 강요를 합니다. 강팍하면 저에게서 멀어집니다. 교회에서 공동체에서 더 멀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더 강요를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애통한 마음이 있으면 고칠 수 있습니다. 치료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_마태복음5:4’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_누가복음6:25’

 

배부른 사람에게 굶으라는 것입니다. 배부름 때문에 우리에게 있는 죄를 들어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웃고 있을 때 죄가 번져 가고 있는 것도 모르기에 애통하라는 것입니다. 그 강팍한 마음을 보고 화있을진저. 사람들이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다보니 지옥이 있다는 것도 천국이 있다는 것도 망각하고 삽니다. 그러다보니 애통과 멀어진 삶을 삽니다. 사실 이것은 저주입니다. 우리에 오는 질병들이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하셨을 때 받아드리지 않는 강팍한 마음이 저주입니다. 애통하고 나면 진영 밖으로 보냅니다. 혼자 살되. 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족들과 같이 지내고 공동체에서 같이 예배드린 사람이 악성피부병이라고 진단을 받으면 애통하는 기간을 가지고 격리가 됩니다. 죄는 격리를 해야 합니다. 이웃과도 공동체하고도 가족과도 격리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도 격리가 됩니다. 분리가 됩니다. 죄는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을 상징합니다. 에덴동산에 살던 인간이 죄를 짓지 마자 바로 세상 밖으로 쫒아내셨습니다. 진영 밖으로 쫒아내셨습니다. 죄를 지으면 은혜의 공동체에서 분리가 됩니다.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저는 가장입니다. 가장이 실족하면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님들이 실족하면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중요합니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라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많이 가져도 고독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소유해도 고독합니다. 차를, 집을 매일 교체해도 고독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진영 밖 세상으로 쫓겨났기에 거룩을 잃어버리고 예배를 잃어버려서 쫓겨났기에. 물론 격리는 더 이상 피부병 확산을 막으려는 하나님의 뜻이고 격리시키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죄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죄는 우리를 단절시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목사가 기도를 시작하고 중직자와 리더들이 기도를 시작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텐데 교사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 시작하면, 성가대원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성도에게 평안과 안식이 되는 찬양이 되도록 기도한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고독 속에서 삽니다. 애통한 마음이 없습니다. 애통한 마음이 없기 때문에 놀라운 역사가 벌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치유의 역사가 시작되지 않고 치료가 시작되지 않는 것입니다. 대부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기도가 없습니다. 기도가 없으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죄가 퍼질 뿐입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대부분 고독 속에서 그냥 지낸다는 것입니다. 재앙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애통하지 않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우리 교회가 성령의 역사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에 성령이 임재하지 않으면 종교단체이지, 교회일까요? 교역자그룹이나 소그룹모임이나 주일학교나 우리의 모임가운데 성령이 임재하지 않으면 죄가 불타지 않고 새로워질 길이 없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성령이 임하실 시간표라고 생각합니다. 어둠의 세력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세력들. 성령이 임해서 태워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해서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 애통이 그것의 시작입니다.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명령하여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_레위기14:2-4’

 

정결기한이 끝나고 나면 애통하고 분리되어서 진영 밖에서 살다보면 제사장이 기한이 다 되어 찾아가는 것입니다. 격리가 되니 피부병이 많이 회복이 됩니다. 색점이 줄어들고 피부병이 줄어들면 정결예식을 드리게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결기한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천국에 입성할 자를 위하여. 구원받을 자를 위하여. 이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어떤 분들은 교회가고 싶어. 복음전하고 당장 열매가 없더라도 낙심할 이유가 없는 것이 그 들었던 복음이 반드시. 그런 마음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이것을 정결기한이라고 합니다. 내가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어. 죄악 속에 살면 안 되겠어.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어떻게 해야지. 이것이 정결기한입니다. 이 정결기한이 끝나면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로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는 다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깨끗하게 살아야지. 도덕적으로 살아야지. 하는 것이 구원받은 것인가요? 눈에 보이는 피부병이 치료가 되면 피부병이 사라졌을까요? 아닙니다. 정결예식을 드려야 합니다. 이 새는 어떤 상징이 있냐면 새 두 마리를 잡아서 한 마리는 피 흘려 죽어서 항아리에 가둡니다. 항아리가 무덤을 상징합니다. 새를 죽여서 넣어놓습니다. 나머지 한 마리는 피를 흘리게 하지만 죽이지 않습니다. 피를 흘려서 제사를 드리고 새를 날아가도록 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나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상징합니다. 방금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야를 설명하면 이해를 못합니다. 정결예식으로 계속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겉모양은 도덕적으로 살면 깨끗해질지 모르지만 내 삶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죄의 문제는 해결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외에는 다른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만이 우리를 죄에서 완전히 건질 수 있고 천국으로 입성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근거가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은 그 누구보다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십일조를 좁쌀들을 정확하게 10분의 1로 나눴습니다. 길거리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죽으심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입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결예식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화심을 알게 하십니다. 죄인인 우리에게 진영 밖에서 애통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십자가의 사건을 주셨습니다. 그 제사를 성문 앞에서 드렸습니다. 이 제사장이 나병환자를 데려다가 성문 앞 어귀에서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이 말은 제사로 정결하게 된 나병환자는 다시 성벽 안으로, 다시 에덴동산으로, 천국입성이 되는 것입니다. 가족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진짜 예배로, 진짜 거룩한 공동체로 입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_히브리서12:12-14’

 

이 정결함을 받은 자. 성문 앞에서 다시 제사를 드리게 해서 다시 살리고 회복시키는 과정을 거쳐 가는 정결예식을 여러분은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제사장은 그 속건제물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를 것이요_레위기14:14’

 

다시 정결예식 없는 행위가 있습니다. 나병 걸린 환자가 정결예식까지 드렸습니다. 여기에서 끝나야 합니다. 나 구원받았어. 나 천국에 갈 수 있어. 로 끝나야 하는데 제사장을 통해서 제사 드리고 나온 피를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엄지 발가락에 바르게 하였습니다. 오른쪽은 하나님께 진리를 상징하고 교회를 상징합니다. 정의를 상징합니다. 오른손. 이스라엘 백성의 오른손은 하나님의 능력, 힘을 상징합니다. 귓부리, , 발에 바른다는 것은 성 안에 다시 들어가는데 귀가 새로워지고 손이 새로워지고 발이 새로워지라는 것입니다. 그동안에 들었던 잡다한 소리들, 얼마나 세상의 소리들을 귀로 들었습니까. 피부병에는 이것이 좋을 것이야. 제사장 말을 왜 들어? 세상의 이야기를 얼마나 들었습니까? 귓부리에 피를 바르는 것은 귀를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음성을 듣는 삶으로 새롭게 되라는 것입니다. 손으로 얼마나 많은 부정한 것을 만지고 손은 모든 삶입니다. 모든 일을 손으로 다 하는데 이 손을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손으로 성경을 펼치고 이 손을 들어서 주님을 경배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발은 더 이상 죄악의 길을 걷지 말라고. 발로 이 예배의 자리에 오신 것은 축복된 발걸음인 것입니다. 복된 것입니다.

 

그는 그 집을 헐고 돌과 그 재목과 그 집의 모든 흙을 성 밖 부정한 곳으로 내어 갈 것이며 그 집을 폐쇄한 날 동안에 들어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그 집에서 자는 자는 그의 옷을 빨 것이요 그 집에서 먹는 자도 그의 옷을 빨 것이니라_레위기14:45-47’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정결하게 하셨는지 이 나병이 그냥 두면 어떻게 되나요? 옷에도 번집니다. 옷도 썩습니다. 나중에는 집까지 퍼집니다.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옷은 우리의 삶을 상징합니다. 집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죄는 나 혼자 짓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옷에도 번지고 집에도 다 번집니다. 그래서 반드시 옷을 불태우고 집도 처음에는 수리를 합니다. 마지막에 수리도 안 되면 집을 헐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새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몸은 구원을 받아서 새로워졌습니다. 그런데 옷은 예전 옷을 그대로 입습니다. 내 몸은 거룩해졌는데 집은 그대로입니다. 곰팡이가 낀 집에 들어가 살면 다시 오겠죠. 예수님을 믿으면 성 안에 들어가기 전에 환경도 다 바꾸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나요? 은혜로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가능합니다. 예수님 믿으면 새 삶을 살고 새 환경에서 살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죄의 모양은 허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분리한 죄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비싼 옷이라도 곰팡이가 낀 옷은 빨든지 빨아도 안 되는 것은 태워야 합니다. 예수님 믿으면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예수님 믿으면 새로운 삶을 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죄악된 곳으로 가지 말라고 합니다. 어그러진 다리를 일으켜 세워서 살라고 합니다. 예수님 믿으면 술집도 가기 싫고 죄악된 곳에 가기 싫은 마음이 생깁니다. 술집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 짓던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공동체에도 죄가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가정일수도. 교회일수도 있습니다. 공동체는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가정은 지켜야 합니다. 자녀에게 죄가 들어오면 안 되잖아요. 자녀들에게는 어둠의 세력이 들어오면 안 되잖아요. 가정은 무너져도 예배는 지켜야 합니다. 교회는 지켜야 합니다. 교회가 죄에 물들면 자녀들이 예배할 곳이 사라집니다.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악한 영 사단의 최고 공격지가 교회입니다. 교회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교회가 무너지면 말씀을 들을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 만날 곳이 없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가정과 교회 공동체는 지켜야 합니다. 이 나라가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매우 엄격해야 합니다. 교리가 엄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예배에 임하시는 것에 관해서는 예민하고 엄격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해야 부패한 것들이 곰팡이가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죄악들이 떠나갈 수 있습니다. 예배를 위해서 같이 기도해주세요 가스펠 예배가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그냥 종교단체입니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이 예배의 자리에 성령께서 임하는 것입니다. 많은 영혼들이 주님을 만나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깨달아지고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지 않겠습니다. 그 예배를 지켜야 합니다. 지키는 방법이 죄를 정결예식으로, 정결기한으로 해결 받는 것입니다. 내 것이 번져갑니다. 가정으로 교회로 번져갑니다. 개개인이 경건생활을 하는 것이 공동체에도 유익합니다. 부모님이 경건생활을 하면 온 가정의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규례가 되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교회들이 깨워있으면 이 나라를 공격하는 어둠의 세력들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_이사야11:1-9

이 땅에서도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천국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면 우리 마음과 삶, 그리고 공동체(가정과 교회)는 죄로부터 안전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_이사야1:16’

 

이 나병환자가 스스로 씻게 만듭니다. 하나님 목전에서 너의 악한 행실을 버리라고 합니다. 나의 기준에서 악한 행실이 아니고, 인간 세상에서 악한 행실이 아니라 하나님 기준에 악한 행실을 그치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_이사야 11:6-9’

 

어디가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곳일까요? 천국을 이야기합니다. 정결예식을 드리고 입성할 성은 천국입니다. 이 곳은 독이 사라집니다. 여러분, 창세기 3장의 죄 짓기 전의 에덴동산은 독이 없었습니다. 악이 없었습니다. 저를 모함한 분이 계셨는데 누가 전해서 저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따지는 성격이 아닙니다. 속으로 화는 나지만 기도하는데 용서해라. 그분을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보다 더 잘 섬겼습니다. 그랬더니 가까운 사람이 되고 저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사랑과 용서가 열매로 맺습니다. 독이 사라집니다. 천국은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습니다. 슬픔도 아픔도 미움도 정죄도 사라진 곳입니다. 이 땅에서는 이런 삶이 있나요? 없습니다. 죄악이 관영하는 세상인데.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그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나병환자가 진영밖에 얼마나 애통했습니까? 얼마나 가족들에게 가고 싶었을까요? 얼마나 예배드리는 곳에 가고 싶었을까요? 말씀에 순종해서 치료를 받고 정결예식을 드리는 동안 눈물로 드리고. 다윗이 그랬습니다. 시편 132편에. 언약궤를 찾아야 하는데 언약궤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침상에 들어가지도 않고 장막에 들어가지도 않고 잠이 오는 눈꺼풀을 내리지도 않고 언약궤를 찾았습니다. 구약의 언약궤는 성령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부하들이 찾았습니다. 시골마을의 밭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가져와. 깨끗이 씻어. 라고 했을 텐데 시골의 밭 위에 있다는 사실을 듣고 온 예배드리는 멤버들 부하들을 데리고 시골까지 가서 언약궤 앞에서 눈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사모함입니다. 다윗은 언약궤만이 이스라엘을 재앙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스라엘을 구원을 할 것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 가정과 교회, 천국을 사모하는 삶을 살 때 죄로부터 안전합니다. 신앙은 중간지대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죄에서 멀어지며 죄에 가까이 하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과학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합니다. 작은 죄라도 큰 죄가 되었을 때 에는 힘듭니다. 작은 죄라도 예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피부병에 관한 규례에 대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작은 죄, 악이 생기고 미움이 생기면 예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진단해 주실 것이고 말씀으로 치료법을 주실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죄악된 세상에 살면서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지만 천국을 사모하고 흠모한다면 자녀들과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죄로부터 우리의 공동체를 지키는 규례들이 회복되기를. 우리의 교회가 그런 규례가 있는 예배가 되기를. 성령의 임재가 있는 예배가 되기를.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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