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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3-22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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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2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하나님의 마지노선

본 문 :

레위기 20:1-27

오승주 목사

 

. 하나님의 마지노선: 진노

 

오늘 20장은 18,19,20장이 한 내용인데 이 부분에 대한 결론입니다.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증한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시작한 18장의 말씀, 그 풍속을 따랐을 때 내가 어떻게 하겠다라고 결론짓는 말씀이 20장 말씀입니다. 그래서 18,19,20장은 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21장부터는 제사장에 관한 규례, 성물에 관한 규례, 예배에 관한 규례들이 자세히 나타게 됩니다. 성경을 볼실 때 이런 문맥적인 것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말씀이 반복되는 것 같은데 말씀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18,19장에 하신 말씀을 가지고 그 결론을 20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반드시 죽인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죽인다는 표현을 자주 하십니다. 우리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하십니다. 마지노선이 있습니다. 선의 마지막이며,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화를 잘 내지 않는데, 저도 모르는 저의 마지노선이 있습니다. 제가 분노하고 화를 내는 지점이 있습니다. 제가 어리고 성숙하지 않았을 때는 그 지점을 잘 몰랐는데 성숙한 후 어느 지점에서 화를 내는지 알게 되었고 조절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을 통해서 신앙을 통해서 컨트롤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상대할 때도 마지노선이 있습니다. 저 사람과 만나지 않겠다는 마지노선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지노선이 있으십니다. 언제 진노하시냐? 하나님께서 시도 때도 없이 기분 나쁠 때마다 감정적으로 진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도 마지노선,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율법이며 신약에서는 다른 개념으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구약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기본적인 선은 공부하고 신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신약이 이해가 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용서가 얼마나 큰지,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우리가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라잡이 역할을 구약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진노는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진노라는 단어는 존엄하신 분이 하는 것입니다. 제가 화를 내는 것은 진노가 아닌 화내는 것입니다. 존엄하신 분은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화를 내셨을 때 그것을 보고 진노라고 합니다. 사전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존엄하신 분이 몹시 노함: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의 경우처럼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지 못하는 악이나 악한 행위에 대한 의로운 심판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거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바로 진노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_레위기20:23’

 

이것이 레위기 18,19,20장의 메시지입니다. 너희가 앞으로 가나안이라고 하는 땅에 들어갈 텐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줄 텐데 그 땅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교육 하는 시간입니다. 가서 그 땅의 풍속을 쫓지 말아라. 그들이 행한 모든 일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긴다. 그래서 그들을 살리려고, 그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기 위해서 너희를 특별히 구별해서 보내는데 너희가 그들과 섞여가지고 그들이 범한 가증한 일, 풍습을 따라서 행하면 죽을 거라는 경고를 레위기를 통해서 하고 계십니다. 댐이 붕괴되거나 다리가 붕괴 될 때는 폭탄이나 미사일이 와서 붕괴된 것이 아닙니다. 작은 균열이 큰 붕괴를 가지고 옵니다.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할 작은 균열이 큰 붕괴를 가지고 옵니다. 사람들은 작은 균열을 하찮게 생각합니다. 나라가 붕괴될 때 어떻게 붕괴되나요? 역사적으로 국가라는 것은 존속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로마가 어떻게 무너졌나요? 외부의 침략으로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내부의 작은 균열, 부패와 사상이 무너지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것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 주에 굉장히 화가 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메신저 프로그램 가운데 텔레그램이 라는 것이 있습니다. 텔레그램은 비밀보장이 확실히 되는 메신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텔레그램 N번방이라는 국가 청원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별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슈가 되어서 자세히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비행 청소년, 가출 청소년, 탈선 청소년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 만명의 청소년들이 보호센터, 사회 구석구석에서 방치되어 있습니다. 이런 중학생 아이들만 골라서 접근을 하고 협박을 해서 성노리개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다 촬영을 했습니다. 원래 이것을 시작한 사람(갓갓)이 청소년 아이들을 보고 노예라고 지칭을 했습니다. 이 사람을 취재를 했는데 N번방을 공개했을 때는 여자아이들이 자해하고 자살할거라는 협박을 했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것은 방마다 단계를 만들어놨습니다. 처음에는 맛보기로 공짜로 보여줍니다. 처음에 사람이 이것을 보고 나면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정말 나쁜 것이 공지사항을 띄워놨는데 불법적으로 만든 영상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N번방에 들어가는데 들어가는 돈이 몇 십 만원에서 몇 백 만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본 사람이 25만 명이라는 숫자입니다. 이 사회에 왜 재앙이 오고 진노가 오는지 아시나요?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공개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차단해야 합니다. 다 숨겨주고 봐주면 이러한 범죄가 또 반복됩니다. 제 후배가 음주운전사고를 당해서 죽었습니다. 이것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작은 것들이 나라를 무너뜨리고 사회에 균열을 가져다줍니다. 이것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건강한 신앙인으로서 굉장한 경계심을 가지고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자녀들, 후대들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정치와 상관없이 사회에 참여를 해야 합니다. 국가가 국민이 분노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겨서 쫓아내시는 그 풍습을 언약의 백성들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싫어하시는 것을 교회가 가져옵니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풍요하게 해준다는 이름으로 아무 분별없이 가져옵니다. 대표적인 것이 자녀교육방식, 삶의 방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삶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증한 풍속의 마지노선 4가지를 하나님께서 20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4가지 풍속은 그 자리에서 죽이겠다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그 땅의 백성들이 너희를 돌로 쳐서 죽이게 할 건데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죽이겠다고 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죄.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_레위기20:2-5’

 

가나안에 가면 우상이 엄청 많이 있습니다. 아세라 목상, 바알 신등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노선으로 정해놓으신 우상이 있는데 그것이 몰렉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세라 목상, 바알 신을 섬기는 데는 약간의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몰렉은 다 죽이고 가문을 백성에서 끊어버리신다고 합니다. 몰렉이 누구인가요? 가나안 안에 가나안 사람들도 이방인이라고 하는 족속이 있었는데 바로 암몬 족속이었습니다. 구약에서 암몬에 대해 많이 설교를 하게 될 것입니다. 암몬 사람들이 섬기는 신이 바로 몰렉이었습니다. 열왕기상에는 밀곰, 몰록, 말감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는데 같은 단어입니다. 몰렉은 얼굴은 황소로 되어있고 몸은 철기로 만들었는데 사람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움직여서 아이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저 동상 밑에 불을 지피는 것이 있는데 불을 지핍니다. 그럼 손이 뜨거워지고 손이 뜨거워질 때 아이를 그 손 위에 올립니다. 아이는 고통을 당하며 타서 죽게 됩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실제 고고학자들이 큰 항아리에서 어린 아이들의 뼈들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암몬사람들이 왜 이렇게 하냐면 자녀 한명을 바침으로써 가족이 다 잘 살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사상입니다. 자녀를 많이 낳는데 아이 한명을 바쳐서 나머지 자녀, 부모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면 자녀 한 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똑같습니다. 지금도 부모의 욕심, 이기심,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세상에 내놓지 않습니까? 몰렉신이 지금은 없나요?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제일 갈등을 한 것이 고3이었습니다. 많은 중직자 어른들이 고3때는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에게 와서 고3을 위한 예배를 드려달라고 했습니다. 3에 대한 편의를 제공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대학에 가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좋은 대학에 가면 갈수록 신앙이 사라지게 됩니다. 아이들을 바보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몰렉입니다. 부모들이 가르쳐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 가르쳐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부모들이 불신자들의 사상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3때 예배하면,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인생이 실패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손에 생사화복이 있고 절대주권이 있다고 하지만 애초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몰렉 신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십니다. 자녀들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욕심 채우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달란트를 살펴보고 미래에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 받을지를 기도하고 배려하고 섬기고 바르게 안내를 하는 것이 부모의 사명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가나안 시대에 자행되었습니다. 암몬은 하나님께서 너무 싫어하시는 존재입니다. 암몬이라는 존재가 구약에서 계속 등장합니다.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죄.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_레위기20:6’

 

20장 마지막 절에도 똑같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알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담겨있습니다. 무당을 왜 찾아가나요?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도 능력이 있어 과거를 맞추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귀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것을 경고하셨을까요? 인간의 욕망을 경고한 것입니다. 우리는 왜 미래를 알고 싶어 하고 미래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나요? 허황되고 헛된 마음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지 못하게 하는 마음들. 처음에는 몇 만원의 점이었지만 빠지면 헤어 나오질 못합니다. 무당에게 사로 잡혀서 우리는 오늘 우리가 살아야 하는 성실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신랑으로 삼았는데 다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마음을 품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죄.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_레위기20:9’

 

우리가 부모를 원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원망하는 마음, 싫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부모의 역할은 하나님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육하실 때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이 성숙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노, 재앙에 하나님을 저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같은 상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짜증내며 저주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나님 안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는 엄청난 구원의 섭리를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성숙하지 못한, 깨닫지 못한 인간은 이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성경에 이러한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경계하십니다. 육신의 부모를 통해서 경계하십니다. 제가 청소년 사역을 하다보니까 알코올 중독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응어리져 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성경은 부모를 저주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녀를 몰렉에게 주거나 부모를 저주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나머지의 긴 내용을 하나님께서는 성범죄에 대해 기록하셨습니다.

 

가족, 동성과 성관계를 하는 죄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_레위기20:10-21’

 

동성, 동물, 가족 내의 성관계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동성애자들이 퀴어축제하는데 이것은 인권이 아닙니다. 사람은 미워하면 안 되지만 죄는 미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관계에 대해서 반드시 죽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나안 땅에는 이러한 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가서 이러한 문화에 젖어들어 작은 균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 이러한 일들이 생겼습니다. 정상이 비정상이 되게 보이고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문화가 되고 쾌락이 되고 즐거움이 되어버립니다. 25만명중 한 명이 글을 써놓은 것은 보았습니다. 몰랐다고, 처벌이 되냐고 써놓은 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쾌락에 빠지게 되면 이것이 죄인줄 모르게 됩니다. 죄는 달콤하게 우리를 중독 시키는데 중독되고 난후 후회해도 이미 중독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악질범죄에 대해서 국가가 강력하게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법을 강하게 정해놓으셨습니다. 그래야 깨닫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도 죄는 우리의 삶에 스며듭니다.

 

.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 가나안 땅(이 시대에,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이(우리가) 살아갈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주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내가 그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짐승이 정하고 부정함과 새가 정하고 부정함을 구별하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부정한 것으로 구별한 짐승이나 새나 땅에 기는 것들로 너희의 몸을 더렵히지 말라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_레위기20:22-26’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약의 말씀은 우리에게는 굉장히 난해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우리를 속박하고 부담을 주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레위기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들으면 괜히 불편하고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불편한 것입니다. 성경을 내가 듣고 싶은 것, 나에게 유익한 것만 가져다가 설교를 하고 성도들이 들으면 어떻게 될까요? 병 걸리게 됩니다. 우리 아이가 죄를 짓고, 무언가 잘못을 하고 있고 말을 듣지 않으면 매를 들어서라도 고쳐야 합니다. 음식도 편식하면 고쳐줘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별된 백성으로, 제사장 백성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구원의 소식을 전할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선택받은 우리의 마음에 죄에 대한 갈등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고 육신을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에 죄에 노출된 삶을 늘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고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크고 작은 죄가 우리 주면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죄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_시편11:1-4'

 

악인이 죄를 화살로 당겨서 우리에게 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새가 날아서 도망가듯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도망가라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내가 죄를 지은 상태인데도 하나님의 성전, 성산을 지킬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우리를 감찰하시는 삶을 살거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 하나님을 떠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언가 범죄를 하면 하나님께서 멀어지려고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아예 멀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사단, 마귀이 속삭임입니다. 우리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기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하나님의 성전에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감찰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그늘 아래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때마다 회개하고 새 마음, 새 은혜, 새 삶을 바라며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포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복음적인 삶은 율법적인 삶이 아닙니다. 인간은 절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항상 내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내 영혼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늘 속마음을 하나님께 열었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지켜져야, 영혼이 살아야 우리의 삶이 거룩해짐을 다윗이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깨끗한 척하면서 뒤로는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죄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요? 마음을 열고 살아야 합니다. 겉모양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겉모양을 키워가려고 하는데,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은 속사람을 강건하게 했습니다. 저는 교회가 부흥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두 마음이 있습니다. 저의 싸움은 내면을 지키는 싸움입니다. 교회가 숫자가 많아져도 하나님이 보실 때 영혼이 변질되어 있으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가요? 우리는 우리의 내면, 속사람을 지켜야합니다. 지키는 방법은 하나님께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에 대해서, 세상을 향해서 거룩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꾸 우리의 기준이 세상에 있습니다. 성경은 나에게 거룩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 거룩하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서라는 말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이 성전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보좌, 하늘을 바라보고 살라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저는 그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늘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않기를, 오만하지 않기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기를. 우리는 하나님과 신실하고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집이 부자가 되고 자녀들이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에 갔는데 하나님이 없다면 그것이 가나안이고 암몬입니다. 영원한 지옥입니다. 영원한 영적인 세계, 내세가 있습니다. 모세오경을 통해서 출애굽해서 광야, 가나안은 신앙의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구원 받기 전에 우리는 애굽, 예수님을 믿고 훈련받고 연단되는 과정은 광야, 우리가 이 땅에서 사명을 감당해야 할 곳이 가나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가나안 땅, 이 시대에서 살아갈 이유를 레위기를 통해서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지노선을 우리는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를 보호할 수 있나요? 영혼, 마음이 병들지 않아야 합니다. 작은 균열들이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작은 균열을 계속 가지고 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늘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지키고 우리의 내면을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더욱 그래야 합니다.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가식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신앙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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