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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3-29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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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9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본 문 :

레위기 21:1-24

오승주 목사

 

. 죄인이 어떻게 왕 같은 제사장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21장부터는 주제가 바뀌어서 제사장 가문, 아론의 가문에게 주신 규례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잘못 들으면 목사님들만 들어야하는 본문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의 율법, 구약의 말씀은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구약을 구약 그대로 해석하면 우리가 구약 말씀 그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구약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이것도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구약은 이런 것입니다. 큰 빌딩이나 집, 건물을 세울 때 우리가 먼저 구조설계라는 것을 합니다. 철근으로 건물의 형태를 만들어놔야 합니다. 그래야 철근을 박고 시멘트를 내리고 할 수 있습니다. 구조설계를 하고 나서 그 안에서 건물이 지어집니다. 건물이 다 지어지고 나면 구조설계를 철거합니다. 구약은 구조설계와 같습니다. 과도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설명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구조설계를 하시고 계신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이 필요 없지 않습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붙잡고 살면 안 됩니다. 그래서 율법을 해석할 때는 반드시 신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석을 해야 구약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 그러면 신약을 설교하지, 왜 구약을 설교하는지 물어보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뼈대, 우리가 원래 본질을 설교하지 않으면 신약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구약과 신약을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어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가지고 오늘 말씀을 확인해야 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을 목사라고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목사만 깨끗하면 되고 목사만 거룩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술 한잔씩 하시면서 목사가 술 한잔하면 목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반응이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목사가 횡단보도를 그냥 건너면 저희 조카들이 목사가 그렇게 하면 되냐고 하면서 자기들은 건너가고 그랬습니다. 이중적인데 지도자들이나, 목사들이 특히 한국교회는 조금 도덕적일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제사장에 관해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만인제사장설, 전 성도의 제사장직 이라는 신학적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_베드로전서2:1-10’

 

우리가 전에는 빛에 속해 있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빛으로 부르셨기에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우리가 다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디에 제사장인가요? 가정에서, 삶의 처소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인생 가운데 우리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요즘 왜 가정이 무너지나요?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고, 우리의 죄악을 하나님 앞으로 가서 회개하게 해주고, 그들을 위로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달할 제사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사회가 병들어 갈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각 처소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시대에 가정에서 직장과 삶의 터전에서 제사장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죄인인데,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제사장이 될 수 있나요? 하나님께서 레위기를 통해서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모든 가스펠 성도님들에게 위로의 말씀이 되고 치료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오늘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명령하고 계십니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제사장들을 모아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그러면서 21장에는 총 3가지의 말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21장을 읽으시면 여러 가지 내용인 것 같지만 구분을 해서 보면 3가지의 말씀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몸과 마음의 순결을 지켜라_레위기21:1-6,10-12

 

오늘 몸과 마음의 순결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면서 첫 번째 말씀하신 것이 죽은 사체를 만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은 사체를 만지는 것은 몸과 마음의 순결을 지키는 데 첫 번째로 두셨습니다. 우리가 죽은 사체를 만지면 안 될까요? 무조건 만지면 안 될까요? 지금 이 구약에 특히 이제 막 성경이 시작되고, 교회가 되기 전 고대 근동지방에서 가장 더러운 것이 사람의 시체였습니다. 왜냐면 이 당시에는 사람의 시체를 처리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문화가 다릅니다. 지금은 사람의 시체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이 다 갖춰졌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사람의 시체를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고대근동지방에서 가장 부정한 것을 상징하는 것이 사체였습니다. 죽은 자를 만지는 것이 부정하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이 그냥 깐깐하지만은 않습니다. 자기의 살붙이, 어머니나 아버지, 아들이나, 그의 딸이나 그의 형제는 만져도 괜찮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외조항을 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냥 가져와서 지금의 사회에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구약에 죽은 시체를 만지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이 나와 있어서 제가 찾아보았습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구나_마태복음23:27-28’

 

유대 민족들이 시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살펴보니 돌무덤 안에 시체를 넣어 놓고 돌로 막아놓았습니다. 이것이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냄새도 나고 율법대로 사체를 만지면 안되기에 무덤인지 아닌지 구분을 하기 위해서 칠을 해놓았습니다. 이것을 보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렇습니다. 죽고 나면 관에 시체를 넣어서 땅에 넣고 무덤을 엄청 화려하게 합니다. 비석도 세우고 무덤 관리도 해서 겉은 깨끗합니다. 그런데 안에서는 시체가 썩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외식한 모습을 보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속은 다 죽어있고 병들어있는데 속은 살아있지 않고 죽어 있는데, 겉은 화려하게 해놓는 유대인의 풍습을 비유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말씀을 그대로 문자적으로 받았기 때문에죽은 시체, 병든 자들, 문둥병 환자들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땅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가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율법들 때문입니다. 혹시 사체를 만지면 부정하게 될까봐였습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배경입니다. 또 하나 말씀하신 것이 머리를 대머리처럼 깎지 말라고 하십니다. 머리를 그 나라의 풍습처럼 깎지 말라고 하십니다. 지금 정통 유대인들을 보면 머리를 길게 기르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대로 머리를 깎지 않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가운데서 머리가 긴 사람들은 다 랍비들입니다. 스스로 제사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머리를 자르지 않습니다. 머리를 자르지 말라는 의미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요? 구약의 의미는, 그 당시 가나안, 이방 사람들이 머리를 화려하게 했다고 합니다. 대머리처럼 자르기도 하고 머리를 치장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머리를 짧게 잘랐을 때 그 당시 문화로 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은 머리를 자르러 자주 가야합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목소리도 거룩하고 성경책을 늘 들고 다니는 거룩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갑자기 휴학계를 제출하고 1년 동안 기도원에 갔다 왔습니다. 1년 뒤 돌아올 때 도포 같은 것을 입고 수염을 기르고 머리를 기르고 돌아왔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 물어보니까 예수님처럼 되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걸어오고 나귀를 타고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잘못 적용하면 이렇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_고린도전서3:16’

 

구약의 거룩함은 신약에 와서 내면의 거룩함, 속사람의 거룩함으로 바뀌었습니다. 본질. 겉의 육신의 율법을 말씀하셨지만 이것은 구조설계이고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내면의 거룩함이었습니다. 내면의 하나님 앞에서의 다짐, 하나님을 닮아가려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자기의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의 머리를 풀지 말며 그의 옷을 찢지 말며_레위기21:10’

 

우리의 몸과 마음의 순결을 지키는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것이 머리를 풀지 말고 옷을 찢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당시 머리를 풀고 옷을 찢는다는 것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너무 슬픈 일이 있을 때 옷을 찢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옷을 찢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슬픔을 지속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슬픔을 지속시키지 않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슬픈 일을 겪고 나면 이 슬픔이 우리를 계속 움직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감정을 컨트롤 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가시거나 세월이 지나서 가족이 죽게 되면, 영상에서 본 민로아(밀러)선교사님처럼 전염병이 가득하고 더러운, 척박한 땅에 와서 아이가 죽고 아내가 죽었는데 왜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까요? 아예 이름을 개명했습니다. 찬송가협회를 만들고 충청도 지방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선교사님입니다. 지금도 그의 시신, 아내, 자녀의 시신이 양화진 선교사묘역에 뭍혀 있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선교사님이 이해가 안 되서 물어봤습니다. 예수 믿는 선교사님이신데 아이가 죽고 아내가 죽고 예수님이 누구시길래 왜 이렇게 당신에게 고난을 많이 주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 곡을 붙인 것이 찬송가 96장입니다. 이것을 보급했습니다. 1902년 이 때 처음 이 찬송이 불려지고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위로를 받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의 순결을 지키라는 것은 단지 거룩해라, 순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보고 하나님 여호와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떤 상황이나 사건이나 환경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맡겨져서 사는 신앙이 아니라 매일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깨달음이 되고 그분으로 인해서 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우리의 몸과 마음의 순결을 지킬 수 있는 것 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루를 마감할 때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나 자신을 너무 많이 믿고 삽니다. 우리는 내 경험, 지식, 내가 세운 계획, 내가 세운 수. 이것을 너무 의지하고 믿지만 실상은 인간의 수, 지식, 경험, 계획들이 우리를 살릴 수 있을까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킬 수 있을까요?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뢰하고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 때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너무 슬픔이 오면 거기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아픔을 지속하면서 살면 이것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중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독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하면 술, 담배를 주의하라고 합니다. 성경은 늘 우리가 중독이 되는 것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습니다. 중독이 되면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뭔가에 중독이 되어버립니다. 슬픔, 질투, 미움에 중독되어 버립니다. 이런 것들에 사로잡히면 시야가 굉장히 좁아지고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늘 비교하고 살고, 늘 남을 원망하고 살고,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진짜 내가 해야 할 것,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들을 하나도 찾지 못하고 인생이 끝나게 됩니다. 저희 부모님이 가난하시고 배우지 못하셨는데, 제 마음에 저희 부모님이 왜 이러냐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면 늘 저는 부모님과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나를 이 가정에 제사장으로 불러주셨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 은혜를 힘 입었다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보니까 부모님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생기고 시야가 열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아침에 시편을 1장 읽고, 저녁에 잠언을 1장 읽는 삶을 저는 살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깨달음이 있습니다. 어제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순간이 있을 때 말씀을 통해 내 화가 잘못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내 영혼이 새로워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삶이 없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서 제사장의 삶을 살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는 절대 제사장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의 순결을 지켜야합니다.

 

- 가정의 신앙을 지켜라_레위기21:7-9,13-15

가정에 관한 말씀이 나타납니다. 제사장은 결혼은 어떻게 해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런 말씀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단지 제사장이 결혼식 할 때 처녀하고 결혼하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저는 오늘날 목사들이 꼭 처녀하고만 결혼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당시 가나안 땅의 종교는 엄청 더럽고 음란하고 쾌락이 난무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실제적인 우리의 결혼을 의미하는 것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은 가정의 신앙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도 목사, 장로, 권사, 기름 부음 받은 자들을 세울 때 항상 거론하는 것이 가정이었습니다. 가정에서 존경받는지, 가정을 잘 보살피는지, 가정을 잘 돌보는지 그것이 하나님이 교회 지도자를 세우시는 기준 중에 하나입니다. 목회자들이 가정을 팽개치고 사역을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역을 많이 하면 대역사가 일어나나요? 제가 요즘 교회사에 일어난 부흥의 때를 공부를 하고 있는데, 교회가 많은 사역을 하고 훌륭한 목사님들이 많이 나왔을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흥, 영적인 각성운동이 일어났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교회 재정이 많고 돈이 많아서 정치적으로 힘을 얻고 사회에 많은 사역을 했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그 시대에 많은 영혼들이 돌아오고 회개하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중세교회가 타락했다고 하는데 그때가 힘이 가장 막강했을 때입니다. 국가 권력보다 교회가 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어둠의 시기라고 지정해 놓으셨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굉장히 많은 사회운동을 하고 교회들이 대형교회들이 많다보니까 남들이 볼 때 몇억씩 헌금도 하고 복지도 많이 하고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느끼고 있습니다. 과연 지금이 부흥의 때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언제 부흥의 때가 있었냐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목회자들이 가난하고 병들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 엎드려 기도할 때입니다. 놀랍습니다. 배우지 못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 우리 한국도 그렇습니다. 초창기에 십리길, 이십리길 아이를 등에 업고 손에 아이들 데리고 새벽예배 가며 부흥회 간다고 할 때, 한글도 모르고 노동하고 일할 때, 그 가정에 예수 믿는다고 핍박할 때 그때 어떻게 기도했나요? 하나님 우리 가정 구원해주세요. 하나님 우리 자녀들 예수 믿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부흥이 있었습니다. 교회사가 이것을 증명합니다. 우리가 밖에서 하는 퍼포먼스적인 사역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정을 지키고 내가 있는 내 삶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 1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의 신앙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가정의 신앙을 지키라는 것이 자녀들의 신앙까지 지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제사장에게 주신 메시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이 지점이 굉장히 어렵고 고민스럽습니다. 사역은 굉장히 훌륭하지만 가정, 그의 자녀들에 대해서 우리는 많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가정이 살지 않으면 교회가 살지 않습니다. 교회가 몇만명씩 모여도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다음은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제사장의 규례입니다. 가정의 신앙을 지켜라.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두고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입니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이니라_베드로전서3:4’

 

- 건강한 삶을 지켜라_레위기21:16-23

흠이 있는 자는 제사장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당시에 장애인데,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은 될 수 없지만 제사는 드릴 수 있다고 표현을 하셨습니다. 지도자, 제사장, 남의 죄를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역할은 할 수 없다고 못 박아 두셨습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일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장애우에 대한 편견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건강한 삶을 지켜야 하는 것. 제가 몸이 아프니까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마음이 힘들면 목사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제가 작년 한해 눈으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 짜증이 많이 났습니다. 눈이 하나만 아파도 사람 역할을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건강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 사회의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육신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육신의 건강을 구조설계를 하셨지만 신약에 와서는 내면, 영혼, 마음의 건강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음의 장애를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에베소서, 디모데전,후서에서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부러지고 엎드려져있는 것을 일으켜 세우라고 하십니다. 마음의 장애를 일으켜 세우라고 하십니다. 슬퍼하고 있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고 질투하고 있고 비교하고 있는 너희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우리는 제사장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육신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건강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목사님들이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전부 영향이 갑니다. 자녀들에게, 교회에, 사역하는 곳에 다 영향이 갑니다. 마음에 장애가 있으면 회칠한 무덤 같다는 것입니다. 제가 헬스장에 가서 PT를 가르쳐주는 청년이 저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일 좋은 것이 몸은 늘씬하고 마음은 풍성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 반대라고 합니다. 마음이 강팍 하고 마음이 병 들어서 넉넉하지 못하고 여유가 없는 시대입니다. 몸은 건강해지고 살기 편한 사회인데 마음을 건강하게 할 곳이 없습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_에베소서5:26-27’

 

지금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말씀하시지만 신약에 와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원리는 거룩입니다. 신약에 와서 내적인 거룩을 하려면 물로 씻어야 합니다. 물은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우리의 마음의 건강, 내면의 건강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시편에 보니까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은 늘 그물 투성이입니다. 악한 영들이 사단이 그물을 늘 우리의 주변에 깔아놓습니다. 그물에 사로잡히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여호와를 바라볼 때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바라본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사역을 할 때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 사귐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이 생각, 상상 속에 있는 것입니다. 24시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많이 들어서 생각만 하고 내가 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유투브를 보면 운동하는 사람이 나오는 영상을 보면 내가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운동한 것과 같은 착각이 듭니다. 음식도 그렇습니다. 백종원씨가 나와서 요리를 하면 너무 쉬울 것 같고 보고 있으면 대리만족을 하지만 막상 요리하면 그 맛이 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이 얼마나 사실적이고 구체적이지 않냐면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청년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일주일도안 성경을 몇 장 읽는지 실제적으로 기록해보세요. 한 장도 안 읽는 신자들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가요. 일주일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이 몇 분인지 적어보세요. 1분도 기도하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삶이 건강할 수 있나요? 오늘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주 구체적입니다. 물로 씻어 말씀으로 거룩하게. 우리가 하나님과 사귄다는 말은 성경을 펼친다는 것이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소리를 내서 기도한다는 말이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돌이킨다는 것입니다.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밖으로 다니고 도와주지 않고 욕하고 때리면 그것이 사랑하는 것인가요? 말로는 사랑이라고 하지만 이것을 보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우리의 외적으로 교회를 가거나 나 교회 다녀요가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 속사람의 거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건강한 삶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육신적인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건강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약에 와서는 우리의 속사람의 건강을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건강할 수 있나요?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영적인 건강은 아무리 생각을 많이 해도 실제가 아니고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하루의 습관으로 아침에 시편 1, 저녁에 잠언 1장을 읽습니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새로워지고 늘 건강해집니다. 깨달음을 주고 사람들과 비교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 이 땅의 제사장이 됩시다.

 

주님과 교제가 어색하신가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시간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금식을 선포하고 성경을 읽고 친밀한 교제를 하려고 했는데 어색했습니다. 왜 어색하냐면 제가 바쁠 때는 하루에 잠도 3-4시간밖에 자지 못했습니다. 사역하고 회의하고 심방하는 것을 주님과 교제라고 생각하고 사역을 했던 것입니다. 진짜 주님과 친밀하고 교제하려고 하는 것에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또 무언가를 찾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없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고 신앙이 좋은 것처럼 착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관계하는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얼마나 친밀하신가요? 주님과 얼마나 가까우신가요?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구조설계를 미리 해주셨습니다. 부정한 것 만지지 말고, 가정의 건강을 지키고, 건강한 삶을 지켜야 함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은 불편함이 있어야 합니다. 부부사이에도 불편함이 있어야 합니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불편함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금 불편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펼쳐야 하고 무릎을 꿇어야 하고 내 시간을 아껴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고 하나님에 대한 존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원하는 쾌락대로 살면 몸과 마음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세상도 법이 있고 규칙이 있습니다. 이 안에서 자유가 있는 것이 이것을 넘어가면 벌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과의 교제라는 것은 생각으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상상 속에서 살면 안 됩니다. 정말 주님과 친밀하기 위해 애써야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슬픈 일이 생길 때, 내 삶에 문제가 왔을 때, 문제, 위기가 왔을 때 신앙이 테스트가 됩니다. 하나님과 진짜 친밀한 사람은 슬픔을 오래가져가지 않습니다. 정리하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 천국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진짜 믿기 때문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구나, 예수 그리스도가 날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구나. 이 사실을 진짜 믿는 사람들은 늘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갑니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겉으로 사역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이 땅에 부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야 가정에 부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제가 집에 가서 아내와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강압적으로 하면 마음은 병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이 되어 신앙생활을 하지 않게 됩니다.

 

- 제사장은 겉으로 사역을 잘하는 사역자가 아니라 주님과 살아있는 교제를 하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제사장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_요한일서1:6-10’

 

오늘 제사장의 규례이지만 우리가 오늘 날에 와서 하나님이 제사장으로 삼으시는 사람은 우리 마음에 빛이 임하는 사람들입니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에 장애가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가 다 있습니다. 죄가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냐? 빛 가운데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위해서 빛 가운데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이로 만들면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없다면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는 집사님께서 저에게 포럼을 해주셨습니다. 지금 한달 넘게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소파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TV한편 본 것처럼.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아이들이 누워서 예배드리고 장난치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 때 예배당처럼 의자를 세팅하고 예배 전에 나가서 옷을 갖춰 입고 찬양을 부르고 예배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예배가 시작했을 때 교회에서 찬양하는 것처럼 손 들고 찬양을 하고, 아멘으로 화답했다고 합니다. 예배가 끝나고 아이들에게 애들아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란다. 예배 하는 것이 아니야.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란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표현이 되어야하기에 아멘이라고 하고 손을 드는 것이란다.” 가정에서 주일예배를 드리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제사장으로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놓쳤을까요? 사역을 놓쳤을까요? 시스템을 놓쳤을까요? 그것은 너무 좋습니다. 지금처럼 좋은 시대는 없습니다. 그런데 부흥이 임하지 않습니다. 회개가 없고 변화가 없습니다. 너무 좋고 우리 살기에는 너무 편리한데 은혜가 없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의 사명을 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많은 것을 하고 있지만 엎드려 기도하는 목사, 중직자, 성도가 없어 가정, 교회에서는 신앙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발전되어 가지만 구원 받을 길이 사라져 가고 예수 믿을 이유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너무 행복해서 예수님이 필요 없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너무 발전되어서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발전은 저주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내세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하나님과의 사귐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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