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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4-12 부활주일 주일예배

2020-04-12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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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2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절기를 통해서 주시는 안식과 생명

본 문 :

레위기 23:1-8

오승주 목사

 

. 이것은 나의 절기들이니_레위기23:1-2

 

여호와를 예배하는 절기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

 

오늘 부활절은 어쩌면 기독교라는 종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예배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보통 성탄절에 가장 큰 행사를 하고 있지만, 서구 세계에서는 부활절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오신 성탄, 다 의미가 있지만 부활하지 않으시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이 땅에 오신 것도 쓸모가 없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부활로써 모든 것을 다 증명해냈던, 부활로써 모든 말씀을 다 성취하셨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 기독교 절기 중에 부활절이 가장 중요한 절기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부활절이 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활절에 함께 모여서 전 성도가 예배하지 못해서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는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원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을 때도 그러셨습니다. 그 여인이 나도 예배하고 싶은데 어떻게 예배해야할지 모르겠고 또 예루살렘 성에 살지 못하고 유대 땅에 살지 못하는데 어떻게 예배할 수 있냐 했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너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고 계신다. 여러분이 어느 처소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면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동자로 여러분들을 지키실 것이고, 보살피실 것이며,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말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있는데, 그 병의 이름이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고난과 역경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고 소망을 잃어버리고 절망했을 때, 포기했을 때 죽고 망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책을 읽어보니까 책이 참 좋았습니다. 절망이 인간을 삽시간에 모든 것을 다 포기하게 만들고 절망이 우리를 완전히 망하게 만듭니다. 고난과 역격 때문에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고난과 역경을 만났을 때도 소망이 있는 사람은 살아나고 견디고 이겨내고 승리하게 되지만, 절망이 찾아온 사람은 무너져버리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다보니까 이 말이 얼마나 맞는 말인지요. 성경을 제대로 바르게 읽다보면 이 말이 얼마나 맞는 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정말 성경을 읽으면서 이것이 참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은 고난과 역경을 당할 때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애씁니다. 이겨보려고, 벗어나보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찾지 못해서 지치게 되면 절망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여러분 왜 결국에 인간이 고난과 역경을 만나면 절망하고 포기하게 될까요?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매우 연약합니다. 그리고 또 외부의 요인은 세상이 매우 강하고 악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연약하고 세상은 강하고 악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절망은 필연적입니다. 인간에게 절망은 매우 필연적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그동안의 인간이 생각했던 모든 착각을 걷어내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착각을 했나요? 스스로 강하다고 착각했습니다. 스스로 지혜롭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서구 사회가 속수무책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공산당이든, 이념이든, 경제든, 문화든 완전 다 두 손 두 발 들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쌓은 모든 것들로 하나님을 대적했는데 그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 그것들이 속수무책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멈추어주지 않으시면 이것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모를 만큼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고 떨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죄인이다. 너희의 힘으로 절대 구원 받을 수 없어. 그러니 내 말 좀 들어. 창조주 너희를 사랑하는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 그것이 성경입니다. 그것이 오늘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구원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인간이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계획이 바로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없으면 구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성경을 깨닫지 못합니다. 성령이 내주하지 않으시고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 성경을 깨닫는 것은 올바른 깨달음이 아닙니다. 자기 식으로 해석한 것이고 자기 식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정말 성경 안에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깨닫는 것도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깨달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들어서, 절기를 통해서 예수님이 죽으셨다, 부활하셨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하고 있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는 말은 절망에서 벗어났다는 말이고 완전 새사람으로 산다는 말인데, 다들 관념적으로, 지식적으로, 지성적으로 받아들인 거지 성령의 도우심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우리 현대사회의 많은 크리스천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레위기 23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7대 절기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7대 절기가 이스라엘에서 3대 절기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월절과 무교절은 두 절기이지만 사실 하나로 붙어있는 절기입니다. 고난주일과 부활주일이 하나로 붙어있듯이, 죽으심과 부활이 하나이듯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3대 절기로 지켜지게 되는데, 7대 절기를 하나하나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 절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께서 주신 절기가 인간에게 유일한 소망의 길입니다. 절기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하나요? 절기는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굉장히 튼튼한 기본, 기초,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이 나 운동해야지, 건강해야지, 성공해야지, 축복받아야지 아무리 생각을 하고 마음을 먹는다고 그것이 되나요? 건강하려면 규칙이 있고 그 길을 가야합니다. 성공하려면 성공의 규칙이 있습니다. 축복을 받으려면 축복의 길을 가야합니다. 그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 길을 가야만이 축복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해진 규칙들이 있습니다. 이 절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의 길, 축복의 길입니다. 우리는 절기 없이 너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욕심대로 살아놓고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안에 수많은 인물들의 기도와 그들의 신앙생활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밑바탕에 전부 절기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해 사역을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데 구약의 절기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날짜를 다 지키셨습니다. 시간을 다 지키셨고, 구약의 말씀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구약이 이야기하는, 레위기의 절기대로, 시기를 다 맞추어서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셨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아침에 기도하고 저녁에 기도할 때 레위기의 절기에 따라 기도하고 신앙생활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절기를 기본 베이스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은 절기, 율법, 모세오경들을 터부시합니다. 복음이 있는데, 신앙생활 하는데. 그러면 구약을 찢어 버려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구약을 남겨주셨을까요? 왜 성경 66권을 만들어주셨을까요? 신약의 귀한 복음, 은혜를 깨닫기 위해서는 구약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가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통과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생각한다고 아무리 바라고 원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 놀고먹고 아무 음식이나 먹고 건강해야지 한다고 해서 건강해지지 않습니다. 이 절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기가 없으면 인간은 영원히 절망 속에 살다가 죽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절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절기를 너희에게 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절기라고 합니다. 인간의 절기가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이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내 구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인간을 향한 구원계획은 하나님의 계획이어서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의 일입니다. 반드시 성취가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며 성품입니다. 그렇기에 절기 안에 있으면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언약이 절기입니다. 우리는 언약을 복음이다, 말씀이다라고 하지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를 배경으로 기도하고 절기대로 신앙생활 했습니다. 타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를 회복하면 신앙도 회복되었습니다. 우상숭배에서 하나님을 떠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복한 것이 절기였습니다. 절기를 회복했을 때 하나님의 축복도 회복되었습니다. 그것을 언약이라고 합니다. 특히 다윗의 시편을 보세요. 다윗의 신앙생활 배경에는 절기가 깔려 있었습니다.

 

. 유월절과 무교절

 

절기는 성회(안식일)로 공포할 것

 

이것이 너희가 그 정한 때에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_레위기23:4

 

오늘 유월절과 무교절을 배우기 전에 1-4절에서 안식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7대 절기는 안식일로 지켜지며 성회로 공포하겠다. 성회는 거룩한 모임입니다. 안식일은 쉬는 날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을 놀고먹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요즘은 크리스마스, 부활주일이 휴가기간입니다.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니까 그럼 놀고먹는 것은 괜찮은 것인가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모든 일을 멈추고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모여서도 예배해야 하지만 안식일은 각 처소에서 지켜야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주일 성수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노동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6일 동안은 성실하게 일하되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즘 현대사회에 와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주일 성수를 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여전히 구원 받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여전히 세상에 속하여 산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일하고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조치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레위기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평생 400년을 애급에서 노예생활 했습니다. 400년 노예생활을 하면 뼛속 깊이 노예라는 사상, 노동(주로 피라미드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벽돌 만드는 일에 주로 투입되어 일했습니다. 노예에게 쉬는 날, 안식일은 없었습니다. 평생 노예 일만 했던 사람들은 생각도 마음도 완전히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의 모든 삶의 판단, 기준이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구원받을 생각도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생각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도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절망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멈추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열심히 일합니다. 돈 벌어서 가족도 부양해야 하고, 또 내가 열심히 일해서 어떤 업적도 남기기 위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삽니다. 그런데 제가 장례식에 가보고 인생의 끝자락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허무함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았을까? 내가 내 아내를 한 번도 사랑해보지 못했고, 남편을 한 번도 위로해보지 못했고, 왜 그렇게 살았을 까라는 후회스러운 고백들을 많이 합니다. 이런 고백들을 들어보면 인생이 참 허무하다. 내가 왜 그때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을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십니다. 우리에게 6일 동안만 일하고 하루는 온전히 멈추라고 하십니다. 멈추어서 하나님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고난이 가득하고 죄악이 가득한, 악한 이 세상에서 수고롭게 사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려고 안식일의 규례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옭아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노예 같은 삶을 사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사랑으로 건져주셔서,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위로받고 소망가운데서 살라고 주신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성회로 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소망을 얻고 너희의 안식이 있는 삶, 영원한 안식 천국을 바라보고 살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유월절_레위기23:5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_레위기23:5’

 

- 유월절은 애굽에 내린 열 번 째 재앙 곧 장자 죽음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구원받은 날을 그들의 시작으로 본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유월절은 중요한 절기입니다. 유월이라는 단어가 Passover라는 단어입니다. ‘넘다라는 단어입니다. 무엇을 넘었나요? 하나님이 400년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출애굽 시키시려고 모세를 보내십니다. 모세가 9가지 재앙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려고 했는데, 바로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재앙에도 바로는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주신 재앙이 죽음의 재앙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포함한, 애굽의 모든 사람들의 장자, 짐승의 첫 새끼까지 다 죽이겠다고 하셨습니다. 다 죽이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하십니다. 문에 있는 모든 기둥에 양의 피를 바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피 바른 집에서 절대 나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피 바른 집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상징합니다. 유월절은 십자가 사건을 상징합니다. 인간이 애굽에서 평생 노예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죄인으로 태어나서 이 땅에서 온갖 재앙을 당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평생 노동하고, 하나님도 모르고 천국도 모르고 영원한 세계가 있는 줄도 모르고 소망도 없이 평생 노예 생활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벗어날 길일 없습니다. 십자가의 보혈만이, 십자가의 죽으심만이 죽음에서 우리를 건지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죽음을 상징합니다.

 

여호와의 무교절

 

이 달 열닷샛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이레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_레위기23:6

 

유월절날 다음날부터 6일 동안 무교절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붙어있습니다. 같은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교절은 누룩이 없는 날입니다. 누룩이 들어가야 빵이 고소한 맛이 나고 먹을 수 있게 됩니다. 누룩을 뺀 빵을 히브리어로 마짜라고 하는데 정말 맛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만 먹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쓴 나물을 함께 먹게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던 그때의 고통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_신명기 6:20-21’

 

신명기 6:20-21에서 왜 쓴나물을 먹이고 누룩이 빠진 떡을 먹이면 제일 불평할 사람들은 자녀들일 것입니다. 그 자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설명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북한과의 사이를 잘 알지 못합니다.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광복절, 6.25라는 절기를 만들어 지킵니다. 일제의 핍박을 당한 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절기를 만들어서 지킵니다. 자녀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라고 만든 날입니다. 왜 무교절이냐? 자녀들에게 애굽에서 바로에게 종 되었던 그 삶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_12:39

 

- 무교절은 유월절의 뒤를 따라 이어져 7일 동안 지속된다. 모든 기간 동안에 누룩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빵을 먹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출애굽의 수난과 은혜를 감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10가지 재앙이후에 이스라엘의 수많은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나올 때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습니다. 걸어가는 길에 무엇을 먹어야 하는데 그때 먹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이러한 역사들이 철저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출애굽한 사건을 무교절에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애굽에서 벗어나게 되었는지, 종 되었던 삶에서 민족을 이루고 이 땅에서 농사를 짓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는지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1주일동안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대청소를 한다고 합니다. 온 집안을 대청소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교절에는 자녀들과 누룩을 찾는 게임을 한다고 합니다. 누룩을 찾아서 전부 제거를 한다고 합니다. 누룩이 없는 음식으로 1주일을 살고 자녀들과 함께 먹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불평하면 설명해준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이 원래 절망적이었고 애굽에서 이렇게 살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이런 집에서, 축복 속에서 천국을 소망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살 수 있는 보혈의 피, 십자가의 사건 때문이라고 설명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 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_고린도전서 5:7’

 

사도바울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누룩이 죄를 상징한다고 배웠습니다. 죄는 우리의 삶에 퍼집니다. 죄는 우리의 의지에 상관없이 퍼집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연약합니다. 사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이 죄입니다. 죄가 들어오면 가정이 무너지고, 공동체가 분열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을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죄 때문에 인생이 하루 만에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N번방에 가입된 사람이 이번 주에만 두 사람이 자살을 한 것을 보았습니다. 죄로 인해서 완전한 절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새 덩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누룩 없이 순전함으로 진실함으로 가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 되심 밖에 없습니다.

 

- 성전에 올리는 진설병 역시 고운 가루와 기름, 소금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인간의 생각이나 사단 마귀의 속임으로 비롯된 거짓 가르침을 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만 먹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전에 올리는 진설병도 이렇게 설명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인간의 생각이 마귀의 속임수를 뺀 예수그리스도의 순수한 말씀만 먹고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소망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누룩을 제거하는 무교절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이 지금의 고난주간입니다. 고난주간이 유월절과 무교절에 유래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왜 금식하자고 하나요? 그동안 배부르게 먹고 마시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잊어버리고 살았으니까 금식하면 본래의 모습 속에서 십자가를 다시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절기가 참 중요합니다. 절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안식과 생명을 주십니다.

 

. 절기를 통해서 주시는 안식과 생명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게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_히브리서9:13-14’

신앙은 자신의 한계와 약함을 아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부유해지면서 혜택을 누리고 산다고 자신을 과신하게 되면 결국 신앙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해서 신앙생활을 못하게 되면 발달된 문명과 과학은 저주이며 재앙입니다. 역사가 계속 반복됩니다. 로마, 중세 전부 발달했을 때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성경은 이 때를 재앙과 저주의 때, 암흑시대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시대, 그 시대가 재앙시대입니다. 하나님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착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절망 속에서 인간이 절망 속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필연한 존재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은 이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살면 반드시 죄악의 결과는 절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필연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벨탑을 쌓으면 행복할 것 같은데 절망이었습니다. 네피림 시대가 오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모든 문명이 발달하고 문화가 발달하면 즐거울 줄 알았는데, 그 끝은 절망입니다. 죄는 우리를 늘 불행하게 만들고 절망을 가져다줍니다. 그 절망에 빠지면 인간은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무엇이 절망인가요?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사는 삶이 절망입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약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절망 가운데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려고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면, 소망은 구원에 이르는 약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소망을 회복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리는 주일에 예배하면서 소망을 회복해야 합니다. 세상은, 사단은 우리의 연약함을 표적삼아 우리를 사망으로 위협합니다.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어서 천국을 잊어먹고 살게 만듭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소망은 없습니다. 인간의 발전이 소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자신감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믿음이 소망입니다. 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소망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절기를 주셨습니다. 절기는 이스라엘의 명절 정도가 아닙니다. 단순히 주일의 예배가 아닙니다. 절기는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는 축복, 신앙,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안식과 생명을 주시려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셨다는 깨닫게 하시려는 사건을 절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절기가 중요합니다. 보통 성령인도 받는다고 합니다. 성령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제가 사람들을 만나보면 AB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있음을 듣습니다. 그때 저에게 성령인도 받게 해달라고 기도부탁을 합니다. A가 무엇이고 B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A는 굉장히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이익이 되는 것이고, B는 조금 희생해야 하고 좋지 않은 길입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니까 저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제가 기도해보시라고 성령께서 인도하실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다들 오셔서 성령께서 인도해주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자꾸 인생을 B로 안내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미 자신에게 유익된 것을 정해놓고 기도만 성령인도 받게 해달라고 합니다. 성령인도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꼭 이럴 때만 기도합니다. 성령인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성령이 내 안에 충만한 상태에서 우리가 선택하고 가는 모든 길이 성령인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안에 충만하게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분과 교류하는 상태로 가는 것입니다. 성령인도 받게 해달라는 것은 사실 틀리고 교만한 말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놓고 성령인도 받게 해달라고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놓고 성령인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신앙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절기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7가지 절기를 정확히 배워야 합니다. 십자가 사건은 우리에게 절기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우리 인생의 첫 번째 절기입니다. 그 절기 속에서 우리는 소망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성령을 쫓아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성령을 쫓아야 합니다. 신앙은 성령을 쫓아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묵은 누룩이 성령을 쫓아 살지 못하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항상 진리로 인도하시는데, 이 누룩이 진리로 가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진리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예전에 가졌던 모든 것, 자아를 빼내어야 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 충만할 때 내 안에 모든 것이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냥 빠져나가는 것은 종교입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 인생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성경에 성령충만한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저의 요즘 최고의 관심사가 성령충만입니다. 고난주간 특별새벽집회 때 성령충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성령을 쫓는 신앙생활만이 우리가 이 땅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_로마서6:8-14’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시고, 절기를 통과하면 세상에 대해서 죽게 되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게 됩니다. 우리가 죄, 절망에 대해서 죽어버리고 소망에 대해서 산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늘 악한 사람과 어울려 다니다가 그 일을 청산하려면 그들에게 죽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들과 친해져야 합니다. 그들에게 산자가 되어야 합니다. 절기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줍니다. 그 절기를 통과하면 사망이 다시는 우리를 주장하지 않도록,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도록,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고통과 절망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우리에게 유월절과 무교절의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 삶과 축복을 다 잊어버립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이 나라를 모릅니다. 그냥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좋은 대학 다니고 유학 다녀보면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아보세요. 세상이 변화되나. 피눈물 흘려가면서 세운 나라이고 교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자꾸 사이비들이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절기를 없애고, 전통도 없애고, 교훈도 없애는데 신앙은 발전이 없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의 축복,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십자가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 무교절의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주일은 가급적 하나님 앞에 서려고 노력하시고,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설명하는 날로 삼으시고, 부활을 묵상하고 감사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너무 놀랍습니다. 십자가를 우리에게 직접 지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졌다는 것은 세상에 죽고 하나님께 살아있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지고 고통을 겪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실 때 그런 자가 생명 있는 자로 보시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이 바로 그런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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