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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4-2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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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6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내 인생의 부흥을 꿈꾸며

본 문 :

레위기 23:15-22

오승주 목사

 

. 깊고 단단한 인생을 위하여

 

레위기에 나와 있는 오순절 절기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헷갈리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도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제 친구가 일본에 선교사로 가 있는데, 일본은 사회주의 국가이기에 더 혼란스러운 것이 많다고 합니다. 일본은 언론 같은 것이 국가에 의해서 통제가 되는 나라입니다. 태풍이 불 때 방송사에서 제공하는 자료화면이 다 똑같다고 합니다. 국가에서 자료화면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문제없다, 괜찮다, 올림픽을 할 거라고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문제가 커지니까 많은 부분을 내려놓은 상황입니다. 제가 통화를 하면서 상황들을 들었을 때 일본 안에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안에서는 누가 말해주지 않고 언론에서 이야기를 해주지 않기에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하다보면 우리의 관습, 상황, 환경에 갇혀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이 안에서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창조주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계획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상황, 환경에 갇혀버립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갇혀버립니다. 특히 나쁜 일 같은 경우는 문제를 만났다, 어려움을 겪는 때입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자신이 암흑 속에 있는 것 같아서 자신의 심정이 참담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이러한 상황을 겪습니다. 위기라는 것이 찾아오고 문제가 오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마음이 참담하고, 마음이 암흑 속에 있는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코너로 몰리게 되고 동굴 속으로 혼자 갇혀서 들어가게 됩니다. 동굴 밖에 나가면 될 텐데 더 동굴로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은 거기서 인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는 필요 없는 존재다, 나는 왜 태어났을 까라는 혼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무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스스로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우리 인생을 살면서 주기철 목사님도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꽃과 같이 반짝 필 때도 있지만 다 시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시들고 다 죽을 때가 있고, 인생을 마무리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인생을 비춰보고,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도 잘 설정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어른들 1세대가 계시기도 하고 2세대 자녀 세대가 있고 어린 자녀들 3세대가 있기도 합니다. 세대를 바라보면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김준곤 목사님 영상을 봤습니다. 김준곤 목사님 가족들이 6.25전쟁 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지켜봤다고 합니다. 그것을 겪고 지켜본 분들은 반공정신이 투철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켜보지 않았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고 어른들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더 심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더 심한 세대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들이 60-70년대에 했던 신앙생활과 2000년대의 신앙생활은 다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예측은 가능합니다. 젊은이들이, 청소년들, 대학생들이 교회를 떠나고, 예수님을 떠나고 있는 것을 예측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신앙생활 하는 가스펠교회, 이 세대가 어떤 방향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굉장히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복음을 받고 전도를 굉장히 열심히 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냐면 만나면 영접을 시켜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영접을 얼마나 많이 시켰는지 친구들이 영접기계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눈물부터 흘리게 하고 복음을 전하면 다 영접을 합니다. 해외에 가서 현장에 가서 영접하러 다닐 때마다 영접의 열매가 많았습니다. 지금 제가 그때를 냉철하게 보면 많은 사람을 영접했는데 남아있는 친구가 한 명도 없습니다. 어디선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때 영접을 한 것이 저를 위한 행위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5, 10분 만나서 복음을 듣고 영접을 해서 감사한 일이기는 하지만 아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것이 우리의 후손들과 자녀들에게 복음의 선한영향력을 끼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 볼 때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금 느린 것 같고 더딘 것 같지만 깊고 단단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 앞에서 한 고비 한 고비 이겨내고 기도하고 말씀으로 우리 인생을 다 살아내고 나서 우리의 자녀들, 후손들,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저분의 인생에 하나님이 보이는구나. 이것이 진짜 전도가 아닐까요? 진짜 복음이 아닐까요? 우리 인생을 다 살고 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셨구나, 정말 하나님이 동행하시구나라고 이야기 하며 떠나간 청년들과 젊은이들이 주님 앞에 돌아올 때 뿌리 깊은 나무처럼 든든한 신앙으로, 교회로 서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부활신앙을 가진 자들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한 고비 한 고비 넘어서서 뚝심 있게 부활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포기란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고비가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남들이 저에게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이 있냐고 이야기를 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고민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볼 때 목회도 잘하고 아들도 있고 결혼도 잘했는데 뭐가 부족하고 뭐가 어렵냐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은 고비, 위기들이 찾아오는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고비를 넘어가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은 우리는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고 부활을 믿습니다. 첫 열매되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우리의 부활을 꿈꾸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렇기에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아닙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고비와 위기를 눈물의 기도로 넘어가고 하나님의 달콤한 음성을 들으며 넘어가면서 우리의 인생이 변화되고 주님과 가까워지고 우리 인생이 끝날 때 하나님이 보여야 합니다. 자녀들이 볼 때 부모님들에게 하나님이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을 합니다. 영접 했냐, 교회 갔냐. 안 갔냐가 아닙니다. 어린 시절 교육을 했지만,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 교회를 떠납니다. 말은 하나님이고 그리스도이지만 삶에는 하나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고 복음과 상관없기 때문에 다 떠납니다. 이기심이 가득하고 어려움이 가득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봤을 때 교회가 최악의 상태입니다. 물론 교회가 잘못이 없고 외부의 공격하는 세력이 있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초대교회, 주기철 목사님의 시대는 외부의 공격이 없었을까요? 더했으면 더했을 것입니다. 자꾸 교회가 외부의 요인을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보시고 우리의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포로가 되고 외부의 공격이 있다,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봤을 때 우리의 상태에 따라서 주시는 테스트들이지 그것이 우리의 신앙을 좌우지 하는 것은 아닙니다.

 

. 하나님의 오순절

 

· 레위기23:15-16_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일곱 안식일을 채웠다는 말이 7주를 채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오순절(칠칠절)은 정확히 50일을 계수해서 채우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_ 출애굽기19:10-11’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 밑에 도착한 날이 47일째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강림하셔도 되는데 하나님의 강림을 기다리라고 하면서 50일을 채우도록 하십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까지 하나님 나라의 일을 40일 동안 가르쳐주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이 10일 후입니다. 정확히 절기로 오순절 날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10일을 120명의 성도가 기도에 전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절기와 신약의 절기가 똑같습니다. 예수님의 행적도 그렇고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도 똑같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백성, 유대민족을 선택하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모델적으로 선택하신 것이 구약의 역사입니다. 그들에게 절기를 가르치신 것, 날의 개념을 가르치신 것은 신약에 와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날짜와 절기를 통해서 신앙의 행위를 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우리는 날을 살아가는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날의 개념을 가르쳐주신 이유는 우리의 인생을 계수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내일, 어제, 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인생을 허투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구원 받을 날이 이 땅에서 사는 날 밖에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이 땅에 살 수 있는 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살 때 어린 시절, 청년의 시절, 장년의 시절, 노녀의 시절을 준비하며 그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갱신하며 개혁하며 살아야 합니다. 부활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대충 막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저의 30대를 돌아보면 공부하던 시기입니다. 왜냐면 목사가 돼서 설교를 하고 사역을 하다 보니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가다보면 40-50대는 바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정리해서 전달하다 보니까 그분들이 다 사라지고 내가 어떤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설교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목사 안수를 받고 10년 동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10년이 지나 저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 성경을 읽는 자세, 여러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날을 정하신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삼일이라도 해보라는 것입니다. 삼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50, 40, 10, 신약성경에 가면 제3, 9시 기도시간도 정해놓았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다윗이 내 입술의 제물로 하나님께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윗은 전부 제사법을 가지고 기도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요? 천국은 룰이 있고 법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 인생은 룰과 법칙이 갖춰졌을 때 행복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못사는 나라, 범죄가 많은 나라, 치안 율이 떨어지는 나라는 법이 약합니다. 법 안에서 자유가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교회가 건강하게 부흥하려면 성도들 모두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개인의 신앙이 철저해야 합니다. 이것은 율법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생각, 말도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욕을 하고 안 좋은 말을 하는 것은 바꿔야 합니다. 축복의 말, 긍정의 말을 하도록 바꿔야 합니다. 전부 습관이 됩니다. 우리는 깊고 단단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날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매주 월요일이 되면 일주일의 삶을 설계하며 계획해서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달이 오면 이번 달은 어떻게 살까? 그래서 나팔절이 있는 것입니다. 새해가 되면 올해 어떻게 살까?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날을 정해주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시는 날을 오순절 날로 정해주셨습니다. 초실절을 드리고 부활신앙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50일 만에 성령으로 임재 하셨다는 말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지고 뚝심 있게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의 삶에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시기까지 40일간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시고 그 말씀을 받은 제자들은 10일 동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였다.(사도행전 1)

 

· 레위기23:17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고운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다른 절기, 제사와 다른 오순절만의 특징들이 있습니다. 다 두 개씩입니다. , , 양도 다 두 개, 두 마리입니다. 심지어는 고운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합니다. 신약에 와서 성령이 임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상징적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 구약성경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오순절 날에 두 개씩 드리라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 부활신앙을 경험한 백성들이 오순절 날에 어떤 마음으로 성령을 간구하며 기도했을까요? 하나님께서 무엇을 깨시려고 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의 선민사상부터 깨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성령이 충만했을 때 깨진 것이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 이스라엘 사회에 이방인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줄을 서도 같이 서지 않습니다. 지금도 극우주의자 이스라엘인들은 이방인들과 줄을 같이 서지 않습니다. 구약에 요나를 통해서 이방에 복음 전할 노력을 몇 번이나 하셨지만 선민사상이 가득했습니다.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을까요? 성령이 임하셨을 때,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고넬료의 집에 간 베드로 사건을 비롯해서 하나님께서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를 쓰시지 않고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안디옥교회를 사용하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상징하는 떡 두 개, 고운가우와 누룩, 두 마리

 

· 레위기23:19 화목제물로 드릴 것이요

 

7대 절기 중에 유일하게 오순절(칠칠절)만 화목제물이 있습니다. 오순절 절기에만 나눠먹을 수 있는 화목제물이 들어가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찾아가보려고 합니다.

 

-다른 절기에 없는 화목제물

 

· 레위기23:21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_사도행전2:42’

 

같은 말씀입니다. 주일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 레위기23:22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칠칠절 절기의 결론을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갑자기 가난한 자와 거류민들을 위하여 남겨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중에 룻기에도 이삭줍기가 등장합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구약의 많은 사건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_사도행전2:43-47’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 사건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사건입니다. 각 사람에게 불같은 바람 같은 성령이 임했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그 날에 신도의 수가 3000이나 늘었습니다. 그런데 신도들이 주일에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떡을 떼고 교제하고 기도하기를 힘썼는데 갑자기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는 기록을 사도행전 2장에 기록해서 넣어놨습니다. 이 말은 가스펠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재산을 법으로 등록을 하고 이 돈은 누구든지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한명도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감옥에 가야 합니다. 이것은 불법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은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왜 이런 일을 성경에 기록해놨는지 말씀을 통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성령충만을 굉장히 다르게, 그릇되게 배워 왔습니다. 사업의 성공, 자녀의 축복, 교회의 성전건축,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요? 성령충만을 두고 간절히 기도할 때가 언제인가요? 우리의 성령충만은 무엇인가요?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 구원이라는 사건이 아닌 성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속에 들어오셔서 충만하게 됐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하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진리로 인도하시는 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진리로 인도를 받으면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의 진리, 구원의 진리, 성경의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거부하고 거절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훨씬 편하고 하나님께 함께 해주세요라고 기도는 하지만 막상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늘 하나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들 천국에 가기 싫고 지옥에 가고 싶어 할지도 모릅니다. 천국에 가면 오즈의 마법사처럼 하나님 어디계세요? 라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이 하나님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천국을 품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한다, 하나님이 동행한다라는 것을 정말 원하시나요?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불편합니다. 우리가 왜 성령충만을 구하지 않을까요? 성령충만하면 어떻게 살지 우리는 봤습니다. 성경에서 순교하고 세상을 등지고 살아야 함을 봤습니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성령충만은 이런 삶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성령충만은 풍성하고 잘되는 것,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가지고 있는 성령충만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가장 강력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돈입니다. 이보다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부처상, 마리아상이 우상이 아닌 우상의 배후에 있는 돈이 우상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진짜 성령충만하냐? 그러면 곡물을 벨 때 밭모퉁이까지 베지 말고 떨어진 것을 줍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자들과 거류민들을 위하여 남겨두라고 하십니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이 말씀을 잘못 인용합니다. 이것은 성령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말입니다. 성령, 복음, 십자가를 알지 못하면 이 말씀은 해석이 안 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의 삶에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거류민이 보이고 가난한 자가 보이고 병든 자가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난하고 병든 자, 고아와 과부가 누구인가요? 실제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부자인지 가난한지를 보고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여도 가난한 심령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지 못한 거류민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애절한 관심은 한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 관심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 품어지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충만한데 교회가 너무 이기적입니다. 저희 교단이 아닌 교회 이야기입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의 교회가 존경받고 사랑을 받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전교회가 이삭줍기헌금을 했습니다. 성도수가 2-3만명이 되는 교회에 큰 돈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교단 미자립 교회의 월세 2-3달을 내줬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을 보면서 감동이 되고 멋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이 주인 되며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돈 버는 것, 일하는 것, 공부하는 것 다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청지기의 삶으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이 충만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야 하고 삶에 넉넉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땅의 것을 손에 쥐고 사는 삶은 성령충만한 삶이 아닙니다.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끝날 때 천국으로 입성해야 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벌고 갖춘 것들은 후손들, 자손들, 이웃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물질로 설명을 했지만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모양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삶의 끝을 맞이했을 때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져야 합니다. 제가 평생을 목회하고 인생을 끝내고 난 후 장례식에 사람들이 와서 그렇게 살더니 이렇게 돌아가셨네 라고 하면 될까요? 진짜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선한영향력이고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신앙의 유산입니다. 우리 세대가 살아가는 신앙의 방향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아주 어렵고 힘든 시기에 먹여 살리기 급하고 질병과 어려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급했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했지만 이제 우리는 그렇게 받은 복음의 유산, 축복들을 삶으로 살아내는 신앙을 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렇게나 길거리에서 복음 전하고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 세대는 그 복음을 살아내야 합니다.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님은 하십니다. 성령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인격을 절대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성령은 변화시킬 수 있으십니다. 성령은 우리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성령이 이미 임하신 분은 성령을 소멸시키지 말아달라고 기도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상태를 여러분은 언제 겪어 보셨습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 은혜가 감사해서 손을 들고 찬양하는 성령이 충만한 상태, 삶은 힘들고 어렵지만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상태, 삶이 어렵고 힘들지만 교회의 어려운 지체들이 누가 있나 살펴보고 기도해 줄 수 있는 넉넉함이 있고 여유가 있던 부모님의 세대. 지금은 성령의 충만함이 다 사라졌습니다. 오순절날의 성령의 임재는 상징적으로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 죽음의 오순절, 생명의 오순절_내 인생의 부흥을 꿈꾸며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_출애굽기32:8-9’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_출애굽기32:28’

 

출애굽기 32장에 어떤 사건이 있었을까요. 모세는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 산에 올라갔습니다. 3일 동안 정결하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는데 3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한 신이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화가 나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너가 은혜를 몰라? 이 말입니다. 죄와 저주와 사망 권세에서 구원한 하나님의 구원을 모르고 자기들이 만든 우상을 보고 내가 얼마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내가 얼마나 교회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내가 얼마나 성경을 열심히 읽었는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을 통해서 서로 죽이게 만드셨습니다. 최악의 저주였습니다. 이때 3000명 가량이 죽었습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_사도행전2:41’

 

구약의 오순절은 죽음의 오순절이었지만 신약의 오순절은 생명의 오순절이었습니다. 신약의 오순절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순종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뻣뻣하여 교만하여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강림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3000명이 죽고 3000명이 살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숫자적인 대칭이 얼마나 정확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신약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임하셔서 죽어야 하나요, 살아야 하나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우리는 죽어야 하나요, 살아야 하나요? 하나님의 임재가 두려우십니까? 성령이 우리의 삶에 오시는 것이 두려우십니까? 그런 신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성령을 구하지 않고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싫은 것입니다. 마치 시내산 앞 목이 뻣뻣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분명히 3일 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셨는데, 3일을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목이 뻣뻣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살지 않는 것입니다. 요엘서의 말씀처럼 내 백성에게 내 영을 물 부듯이 부어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영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이 싫고,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 싫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을 싫어하는 것이 타락입니다. 어떤 오순절을 기대하고 꿈꾸시나요? 저는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 인생의 부흥을 늘 꿈꾸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부흥이 역사가 일어나는 단회적인 부흥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신앙이 성숙해지고 철이 들고 난 후 보니까 부흥이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통틀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깊고 단단해지는 것이구나, 그래서 자녀들이 우리 인생을 볼 때 하나님이 보이게 만드는 것이구나. 우리에게 수많은 위기, 고비들이 올 때 우리의 잔머리, 재치가 아니라 뚝심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예배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서 고비들을 넘어갈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구나. 때로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해가 안 되고 머리로 계산이 안 될 때가 많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볼 때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구나. 우리는 변화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초대교회를 칭송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악한세력들은 우리를 칭송하지 않겠지만, 최소한 하나님께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들은 우리를 칭송해야 합니다. 칭송이 없이 어떻게 교회를 올까요. 우리가 칭송받는 삶은 도덕적인 삶, 잘사는 삶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만이 세상이 우리를 보고 칭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으로 늘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계산하고 기도하는 것이 충만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오순절이 우리 인생에 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충만했을 때 하나님이 내 인생을 어떻게 사용하실지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매일 성령충만을 간구하는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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