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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4-05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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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5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나는 너의 아버지야

본 문 :

레위기 22:1-33

오승주 목사

 

. 나는 너의 아버지야

 

- 제사장(베드로전서2:9)은 하나님께 드렸던 성물을 양식으로 먹고 사는 자입니다.

 

베드로전서 2:9에 보면 저와 여러분을 보고 왕 같은 제사장,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지난주와 지지난주에 구약의 제사장이 오늘날 신약시대에 와서 우리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레위기 22장에 보니까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렸던 성물을 양식으로 먹고 사는 자라고 정의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없고 성물만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이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성도가 저와 여러분이라면, 성도는 하나님께 드렸던 양식을 먹고사는 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를 어기면 내 백성에서 끊어지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쉽게 말하면 형벌을 받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주시는데 말씀의 말끝마다 하나님께서 나는 너의 여호와야, 나는 너의 하나님이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는 너의 아버지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의미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세울 때 다시 말해서 오늘 날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실 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당신의 피 값으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값으로 우리를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에서 사신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저와 여러분의 소유권이 그 전에는 운명, 사주, 팔자, 혹은 사단 마귀, 세상의 권세자들에게 소유권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값으로 저와 여러분을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소유권이 아버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소유권이 아버지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다시 말해서 제사장이 된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소유권이 아버지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말만 들어야 한다.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내 명령에만 순종하고 순복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게 왜 설교를 시작하고 본문을 해석할 때 중요한 배경이 되냐면, 구원의 확신은 사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당신의 소유권을 주장하실 때 그것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구나 라는 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여러분, 잘못된 그릇된 신앙관들은 내가 구원 받았고 내가 내 마음대로 살아도 돼가 아니라 하나님께 내 인생의 소유권이 있다는 것에 대한 고백, 그 확신이 곧 구원의 확신입니다. 이 구원의 확신이 우리가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구나,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구나,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구나.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셔서 자녀 삼아주셨다고 하나님 편에서 완곡한 표현을 쓰셨지만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종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께 구속받았습니다. 구속이라는 단어가 좋은 단어가 아닙니다. 검찰에 구속되었다, 경찰에 구속되었다는 것인데, 성경에 구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구속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이 확신이 있다면, 구원의 확신이 있다면 그 다음 신앙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레위기가 계속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 신앙의 기본이 성실, 열심,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열심,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성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최선. ?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셔서 당신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에 대한 성실, 하나님에 대한 열심, 하나님에 대한 최선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아무리 비싼 악기가 있어도, 수 억짜리 악기가 있습니다. 비행기를 탔는데 저는 이코노미에 앉는데, 비싼 자리를 지나갈 때 어린 여자 학생이 비싼 비지니스석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첼로가방을 벨트로 매서 옆에 두고 앉아 있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악기를 화물로 보내지 비즈니스석에서 하나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전문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첼로가 2-3억정도 한다고 합니다. 기스도 나면 안되기에 사람처럼 자리를 사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비싼 악기를 저에게 주면 제가 그것을 연주를 못하는 데 그것이 저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첼로 2-3억짜리를 줘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비싼 악기가 있어도 연주자가 성실하지 못하고 연주를 게을리하고 최선을 다해서 연주하지 않으면 악기는 빛나지 않습니다. 빛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최고의 신분, 최고의 어떤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최선을 다해서 살지 않으면 우리의 삶을 빛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삶은 빛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제자들에게 바다에 그물을 던져라, 그러면 물고기를 잡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면 그전에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보통은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 상황을 고려해서 예수님이 아무리 말씀하셨어도 이 그물을 던지면 한 마리도 못 잡는다는 거의 포기 상태, 완전히 포기 상태에 있었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던지라고 해서 던져볼까? 라는 것이 아니라 던지면 잡게 됩니다.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러면 던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아무리 그 말씀에 대해서 해석을 하고 신학적인 해석을 하고 뜻이 무엇인지 계획이 무엇인지 논쟁을 하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물을 던지는 것이 열심이고 성실이고 최선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관념적으로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다면 그 다음 신앙의 기본과 기초는 성실, 열심, 최선입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성실이고, 아버지에 대한 열심이고, 아버지에 대한 최선입니다. 지금 현대 시대의 교회는 온갖 신학지식이 난무하고 온갖 전략들이 난무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놓쳤냐면 아버지에 대한 신앙을 놓쳤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앙을 놓쳤습니다. 구원을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입니다. 내가 너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해석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이지만 그것을 내 믿음,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내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상처가 많다고 믿음의 열심을 가지지 못하면 그것도 자기의 것입니다. 인간관계 때문에 믿음의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그것도 자기 믿음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드렸던 성물을 먹고 사는 자입니다. 제사장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이 말씀의 배경을 가지고 한절 한절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22장은 총 4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성물을 먹는 규례

 

- 일시적인 몸의 부정으로 성물을 먹을 수 없는 경우_레위기22:1-9

 

제사장은 반드시 성물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성물을 못 먹는 경우에 대해서 갑자기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성물이 중요한데, 그것은 뒤에 나와있습니다. 성물의 중요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제물을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22장 뒤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22장에서 다루는 것은 조금 의아하게 성물에 대해서 해석하지 않고 성물을 먹을 수 있는 제사장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반드시 성물을 먹어야 하는데 너희가 일시적인 부정의 때에는 하루 동안, 해가 지기 전까지는 성물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에서 성물에 대한 것보다 성물을 먹는 제사장의 삶을 먼저 다룬 것입니다. 제사장의 자세를 먼저 다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성물을 제사장이 먹을 수 있는데 아무렇게나 먹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 말씀을 먹어야 하는데 아무렇게나 먹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병환자는 못 먹게 되어 있고, 유출병자도 못 먹게 되어 있습니다. 시체의 부정에 접촉된 자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벌레를 만져도 먹지 못했습니다. 제사장이 성물을 먹을 때는 엄청난 삶의 자세가 갖춰져 있어야 성물을 먹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체 만지고, 부정한 것을 만지고, 그동안 레위기에서 율법을 통해 주신 모든 부정한 상태에서 성물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녁까지 그것을 먹을 수 없다라고 오늘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의 나라가 쉽게 이루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복음화가 쉽게 이루어질까요?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의 문제가 쉽게 해결될까요? 내 삶에 있는, 내 몸에 있는 어떤 불신앙과 죄악들을 떨쳐내는 것이 쉬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매형께서 낚시전문가이십니다. 낚시를 너무 좋아하십니다. 덕분에 저도 좋은 고기도 먹고 낚시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낚시를 한 번 따라가 봤는데 낚싯대를 그냥 던지면 낚시가 될까요? 절대 잡히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는지 모릅니다. 물고기를 한 마리 낚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과정이 있는지 모릅니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준비해야 물고기를 낚을 수 있습니다. 그냥 가서 잡는다고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물에 수심이나, 온도까지 다 체크하고 갑니다. 꼼꼼하게 준비를 다 합니다. 교회사를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1517년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여서 종교개혁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신학을 공부하신 목사님들은 다 알 것입니다. 우리가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 100년의 역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공부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기 100년 전부터 종교개혁의 열망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만은 신부들, 신실한 지도자들이 타락한 로마 가톨릭을 향해서 몇 번이나 종교개혁을 시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때마다 권력자들에 의해서 화형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감금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루터의 종교개혁 100년 전부터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너무나도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100년의 역사가 밑바탕이 되고 100년의 역사, 구원을 향한, 성경을 읽기 위한 열망들이 하나님의 때가 차서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루터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루터가 있었을 뿐입니다. 루터가 훌륭해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루터보다 훌륭하게 종교개혁을 준비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싸웠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 요한 웨슬레의 동생 가운데 찬송을 많이 지었던 찰스 웨슬레가 있습니다. 그 어머니 수잔나의 희생이 없었으면 감리교, 영국의 대부흥 영적각성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수잔나는 19명의 아이를 낳고 6명의 아이를 잃어버리고 13명의 아이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수잔나가 혼자 아이를 키웠는데, 13명의 아이를 키워보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8남매여서 어릴 적 잠시의 기억이 있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전쟁터 같습니다. 정신이 없는 전쟁터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저희를 잘 못 키워줬다고 부모님을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8남매를 농사를 지어서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알아서 크는 것입니다. 13명의 아이를 키웠는데 수잔나가 하나님이 아니면 아이들을 키울 수 없겠구나 생각하고 아이들 한명 한명 글을 가르쳤습니다. 학교를 보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우리는 좋은 학교 보내고 명문 대학 가면 성공할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 않는 것 여러분이 더 잘아시죠? 수잔나는 집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하나하나 다 가르쳤습니다. 왜 글을 가르쳤냐면 성경을 읽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그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글을 가르쳐서 제일 먼저 아이들이 글에 눈을 떴을 때 성경을 읽혔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밤마다 눈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일대기를 읽어보니까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어려움들, 너무 많은 유혹들. 그때마다 수잔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밤마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는 기도였겠죠. 우리가 몸이 부정하다는 의미는 죄를 지었다는 의미이고, 죄가 우리 삶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살면 결코 하나님의 성물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역사, 부흥, 축복이라는 것을 받으려면 우리는 철저하게 준비된 신앙인이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준비되고 우리 영혼이 준비되고 우리 삶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준비시키는 것을 응답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써야겠다고 저 사람을 바꾸시는 과정, 우리가 견뎌내고 인내하며 그 길을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저는 몰랐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은 고난도 겪게 하시는 거구나 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제사장 가족 중에서 신분 때문에 먹을 수 없는 경우_레위기22:10-13

 

하나님이 부정한 자에게 성물을 먹지 못하게 하셨는데, 저녁이 되면 그것을 또 풀어주셨습니다. 물로 몸을 씻고 그것을 먹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부정하다는 것을 다 아셔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늘 길을 열어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하나 다루시는 것이 제사장의 가족을 다루십니다. 이 말은 제사장의 아내, 자녀들은 성물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의 가족이라고 해서 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10절에서 일반인은 성물을 절대 먹어서는 안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손님이나 품꾼도 먹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집에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수 있고 제사장의 집에서 일하는 품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성물을 먹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당시에 제사장의 집에 가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왔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말씀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의 돈으로 어떤 사람을 사면 산 사람은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집에서 출생한 자도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딸이 일반인에게 출가하면 먹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요? 우리에게 주신 성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성물. 누구와 나눠 먹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종의 개념, 품꾼의 개념도 있지만 내 사람, 내게 구속된 사람이다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내가 돈을 주고 하루 동안 산 사람은 하루 동안만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평생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주고 샀을 때 그 기간에만 먹을 수 있습니다. 신분은 너무 중요합니다. 이것은 소속감을 이야기하고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제사장의 자녀여서 성물을 먹을 수 있었는데 일반인에게 시집을 가면 먹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시집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무리 성물을 먹었던 사람이라도 제사장의 축복된 자리에서 떠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일반인이 많습니다. 손님도 많습니다. 아무런 신앙색깔이 없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내 소속감, 나는 지금 어디에 속해 있는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배우 중에 이성경이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이 분이 예전부터 본인 SNS에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고 발언을 많이 하였습니다. 얼마전에 본인 교회에서 특송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배우는 자기의 신앙색깔을 계속해서 밝힙니다.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엄청 먹습니다. 그것을 각오하고 또 코로나 때문에 위로를 하기 위해서 빈 교회당에서 특송을 하는데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믿음으로 우리 인생의 색깔을 칠하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색깔을 칠해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데 신앙색깔이 없습니다. 일반인인지, 객인지, 제사장인지 아무런 색깔이 없습니다. 신앙은 내 인생에 색깔을 칠하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의 사람이라는 색깔을, 기도의 사람이라는 색깔을 칠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신앙의 색깔이 어디까지 칠해져 있나요? 나중에 아예 칠해진 색깔을 지우고 일반인에게 시집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다 떠나버립니다. 색깔이 아예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부지중에 성물을 먹었을 경우에 조치할 것_레위기22:14-16

 

부지중은 실수로, 알지 못하고 먹었다는 것입니다. 성물을 고의로 먹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먹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인이 부지중에 성물을 먹었을 때는 하나님이 그 성물의 1/5을 더해서 제사장에게 주라고 법을 정해놓으셨습니다. 알고 먹으면 형벌을 받습니다. 1/5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습니다. 실수로 성물을 먹었기 때문에 이정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고의로 먹으면 이마저도 없습니다. 고의로 먹은 것은 하나님의 것을 부정한 일반인이 먹은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형벌이 있습니다. 왜 성물이 거룩할까요? 왜 성물을 흠 없는 것으로 드리라고 구약에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이 제물이 무엇을 상징하고 무엇을 예표하나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예표합니다. 흠이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것입니다. 내가 부정한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먹으면 형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게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고의가 아니면 1/5을 더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고의로 예수님을 욕되게 하면 이마저도 기회가 없습니다. 고의로 예수님을 욕되게 하면 그것은 형벌입니다. 교회를 비난하고 성경을 우습게 여기고, 이유를 막론하고 하나님은 형벌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장난스럽게 믿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내가 한번 믿어줄게, 내가 당신 봐서 한번 교회 가줄게 이런 식입니다. 주로 예수님 안 믿던 남자들이 크리스천 여자들을 만나서 결혼할 때 하는 말입니다. 내가 결혼하면 꼭 교회 간다고 하고 3주정도 오고 오지 않습니다. 왜냐면 결혼을 해야 하니까, 이 여자와 살아야 하니까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는 것이 장난일까요? 구원 받고 천국 갈 수 있는 축복이 작은 축복인가요?

 

- 성물로 드릴 제물의 조건_레위기22:17-25

 

제물의 조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레위기를 통해서 공부를 했는데, 또 다루고 계십니다. 아무거나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서 다 성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몇 가지만 봐도 17절에 보니까 흠 없는 수컷으로 드려야 하고, 눈 먼 것, 상한 것, 심지어 종기나 습진이 있는 것도 안 된다고 합니다. 다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놀라운 것은 고환에 관해서 나와 있습니다. 고환이 상하거나 터져도 안 되고 칼로 기스가 나도 안 된다고 합니다. 고환은 생산을 상징합니다. 고환이 상하면 더 이상 생산을 하지 못하기에 이런 것은 하나님께 드려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외국인에게 받은 것도 안 됩니다. 내가 직접 키워서 흠 없이 키워서 내가 드린 것을 받으신다고 합니다. 외국인에게 이방인에게 받은 것이 아무리 깨끗하다고 해도 그것을 받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순결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제물에 대한 신앙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우리가 아예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예수 그리스도만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입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자격이 없습니다. 완전 타락한 죄인입니다. 혹시 내가 70-80년 살면서 교회도 오래 섬기고 잘 살았으니까 이런 마음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천국 갈 것이라는 내 공로가 조금이라도 있으십니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천국에 못 갈 수도 있습니다. 신앙은 완전 예수 그리스도, 완전 예수여야 합니다.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목사가 되고 리더가 될수록, 갈수록 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내가 10%보이고 예수님이 90%보이면 저는 아직 그런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 믿음에 대해서 오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흠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고환이 터져서 아무 생산력이 없다면 그것은 신앙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데 아무 생산력이 없다면 죽은 신앙입니다. 내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내 이웃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하고 그것은 죽은 신앙입니다. 신앙이 변질되어 피부가 병이 들었다면 하나님이 기쁘게 여기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라지고 내 열심, 내 욕심, 내 이기심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바리새인처럼. 바리새인이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께 재물을 드리고 신앙생활을 했나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고 기분 나빠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바리새인들아. 우리가 볼 때는 하루에 3번씩 기도하고 십일조 잘 드리고 얼마나 열심히 했나요. 그러나 화 있을진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깨끗하게 드려지는 것. 너무 중요합니다. 제사장, 오늘날의 성도, 하나님께서 피 값을 주고 사신 성도는 모두 다 제사장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의 제사장이고 이 땅의 제사장 노릇을 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먹어야 할 성물, 다시 말해서 영의 양식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야 합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건가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먹나요? 한빈이가 저희 아내에게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니까 예수님 천국에 가셨다고 거짓말 치지 말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예수님을 우리가 먹는다는 표현이 무슨 표현일까요? 우리 몸 중에 대장의 역할은 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유익 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유익균이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공급해주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나쁜 균도 함께 있다고 합니다. 나쁜 균이 좋아하는 음식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강력하게 땡긴다고 합니다. 이것을 계속 공급해주면 나쁜 균들이 유익 균을 밀어내고 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생기는 것들이 염증이나 수많은 질병들입니다. 아예 먹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먹으면 나쁜 균들이 성장해서 수많은 질병을 만들어냅니다. 영적인 것도 똑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지루하고 맛이 없습니다. 세상의 것이 너무 좋습니다. 막 먹습니다. 여러분 영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나요?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나요? 하나님께서 이상하게 축복하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책을 읽거나 자료를 보면 다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장로님 한 분을 뵙고 간증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한국에서 사업이 어려워져서 미국으로 도피성 이민을 가셨습니다. 미국에서 작은 사업을 시작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되었다고 합니다.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일하는 사업처까지 1시간정도 운전해서 가는데 어느 날 내가 왜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뜻 없이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신앙을 돌아보니까 성경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고 찬송도 다 불러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제일 먼저 찬송을 틀어놓고 찬송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자신이 장로인데 찬송을 1-4절까지 외워서 부를 수 있는 것이 한 곡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차 안에서 매일 찬송을 따라부르고 시간이 나면 회사에서 가사를 확인해서 외웠다고 하셨습니다. 간증을 할 때 40여편을 외워서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성경을 5장씩 읽었다고 합니다. 정말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다 보니까 자신의 마음에 내가 그동안 하나님께 잘못 살았구나, 교회에 못되게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가서 주일학교 교사를 신청하고 성가대를 신청하고 토요일에 교회를 가서 청소도 해야겠구나 라는 것을 간증으로 하셨습니다. 놀라운 일은 이렇게 했는데 사업이 풀렸습니다. 잘 풀린 것이 응답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진짜 응답은 사업이 잘 풀렸는데 그 전처럼 교만하지 않고 변질되지 않고 매일 똑같이 찬송을 부르고 똑같이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그런 것이 자신에게 제일 큰 응답이라고 간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먹어야할지 장로님의 간증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찬송을 먹어야 하고,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 성도가 먹어야 할 유일한 영의 양식: 예수 그리스도_레위기22:31-33

 

우리는 이 땅에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성물을 먹어야 합니다. 성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은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_요한복음5:38-41’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성경에서 영광을 취하신다고 합니다. 성경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_요한복음6:3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_요한복음6:45’

 

하나님께 어떻게 갈 수 있나요? 듣고 배운 사람이 갈 수 있습니다.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갈 수 있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_요한복음6:48-5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_요한복음1:12-14’

 

이 과정이 아버지가 자녀에게 요구하시는 십자가 입니다.

이 과정을 겪어야 비로소 제사장(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참 어렵습니다. 신앙은 이 과정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과정입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도록, 내 인생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도록, 하나님 앞에 갈 때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도록 하는 과정입니다. 마치 우리가 우리 몸에 필요한 음식을 먹어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듯이 우리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야 구원 받고 살아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먹는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직접 가르쳐주셨습니다. 바로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모여서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을 읽는 커뮤니티 모임을 해야 하며, 왜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설교를 듣고, 말씀을 듣고 내 것으로 만드는 묵상의 시간이 필요한지. 제사장은 성물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사장의 사명은 이 땅에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의 사명은 제사장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물을 먹지 않는 순간부터 제사장은 타락해버리고 아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사사시대이며 구약의 시대입니다. 우리가 병에 걸리면 제일 먼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일 먼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알리는 것이 수치스럽고 창피하지만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먹는 것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주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먹는 것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사는지 오픈하지 않으면 성경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저에게 성경을 이렇게 안 읽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셔야 합니다. 읽는 척,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의미 없습니다. 주일 강단 말씀을 내가 어떻게 듣고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다들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저에게 상담이 오면 항상 질문을 합니다. 잘하고 있다고 하는 대답이 너무 두루뭉술합니다. 신앙생활이 너무 두루뭉술합니다. 성경을 읽고 있는지, 설교를 듣고 있는지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잘 모릅니다. 이 과정이 아버지가 자녀에게 요구하시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는 과정입니다. 십자가가 우리가 생각하는 가난, 경제, 자녀, 부부간의 갈등 문제가 아닙니다. 이 땅이 죄악된 세상이기에 당연한 삶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에 주인 되는 과정입니다. 내 안에 예수가 사시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겪어야 비로소 우리가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고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은 것은 우리가 그 십자가를 통과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먹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저희 집이 어려워서 하나님이 십자가를 주셨네요, 제가 갈등이 많고 우리 자녀들이 저를 괴롭히고 하나님이 저에게 암을 주셨는데 십자가를 주셔가지고. 이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축복입니다. 십자가는 저주가 아닙니다. 저주의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셨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복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매일 십자가를 지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먹으시고, 예수님을 먹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먹기 위해서 우리 삶을 조정하셔야 합니다. 우리 삶이 부정한 것을 만지고 있다면 조정해야 합니다. 우리 삶이 무엇 때문에 말씀을 읽지 못하고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서 조정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신실한 주의 백성으로, 신실한 제사장으로서 우리 가정과 공동체를 살릴 그런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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