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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6-14 주일예배

 

2020-06-14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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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4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하나님 앞에서 안식을 결단하라

본 문 :

레위기25:1-7

오승주 목사

 

. 안식일에 대한 오해와 진실_마가복음3:1-19

 

레위기 25장은 안식년과 희년에 대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삶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년, 안식일에 대해서 다른 법보다 더욱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안식년을 지키는데 지키는 율법의 내용이 조금 다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년, 안식일에 대해서 엄청나게 오해했습니다. 그 장면이 예수님이 오셔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안식일에 대한 문제로 바리새인들과 부딪히는 장면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마가복음 3장에 나와 있습니다. 마가복음 3장에는 손 마른 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손 마른 병에 대해서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바가 없지만 성경 외에 다른 자료를 통해서 보면 어떤 학자는 석공일을 하다가 손을 다친 불구라고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소아마비로 인해서 손을 쓸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보셨는데 바리새인들의 마음은 완악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손 마른 자를 그냥 지나치는지 고쳐주는지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가난한 자들을 돕고 병든 자를 고쳐주셨다는 것을 알기에 안식일에도 그렇게 일을 하시는 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는 못된 마음과 악한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완악함을 아시고 손 마른 자를 고쳐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어긴 예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죄 몫이 예수님에게 씌워졌습니다. 자신들이 줄곧 지켜왔던 안식일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안식일을 제대로 지켰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안식일에 죽어가는 자들이 있으면 살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말씀을 보면 극빈자가 안식일에 남의 밭을 지나가면서 낟알을 따먹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이 안식일에 남의 밭을 지나가다가 낟알을 따먹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성경은 너무나 정확합니다. 한 나무의 열매를 훔쳐가는 것은 도둑질이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한 개를 가져가는 것은 허락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나중에 안식일에 대해서 법을 제정하면서 그것까지 금지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변경시켰습니다. 철저하게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이라는 법에 수십 가지의 항목을 넣어서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과연 이것이 정말 안식일의 의미일까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레위기, 신명기, 민수기, 출애굽기에 주신 의미일까요?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신데 예수님이 안식일에 손 마른 자, 병든 자를 고쳐주신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우리가 살펴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켜서 스스로 안식일의 주인이 되려고 했습니다. 안식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법이라는 것, 율법은 무엇일까요? 율법 자체를 잘 지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율법을 왜 지켜야 할까요? 법이라는 것이 참 웃깁니다. 원래 법을 만들 때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서, 사회의 악을 막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법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잘못 적용이 되고 잘못 인지가 되면 악법이 되어버립니다. 사람을 죽이는 법이 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레위기에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와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고 중요성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지키지 않는 것을 나눠버렸습니다. 그리고 정죄하였습니다. 자신들은 안식일을 잘 지키면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려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나요? 거기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었습니다. 암흑기의 상태였습니다. 말라기가 끝나고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은 암흑시대였습니다. 완전 로마에 포로가 되어있는 상태이며 전염병이 돌고 있는 상태이며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에 있는 시대였습니다. 암흑시대인데 그들은 그 때도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만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은 호의호식하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안식일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살펴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안식일, 안식년을 주셨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_레위기25:1-2

 

레위기는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을 주는 성경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레위기 25:2에서는 미래지향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안식을 사람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땅에게 주신 것입니다. 교수님들이나 목사님들이 안식년을 가지는데 의미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원래 성경에서 안식년은 땅에게 주신 법입니다. 왜 땅일까요? 왜 하나님께서 안식년이라는 것을 땅에게 주셨을까요?

 

-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_레위기25:3-5

 

육년을 땅을 가꾸어 경작하고 소출을 거두어서 먹고 마시고 너희 자녀를 키우고 다 하되 칠 년째 되는 해에는 땅에 경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을 그대로 두라고 하십니다. 그 땅이 여호와에 대한 안식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에게 안식년을 가지라고 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제가 성경을 찾아보니까 안식년은 사람에게 주신 것이 아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단지 농사를 잘 짓게 함 일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땅을 육년 동안 계속 경작하고 거두는 것을 반복하면 병들게 된다고 합니다. 한 해 정도 쉬게 해줘야 땅에도 산소가 공급이 된다고 합니다. 육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는 법은 성경적인 법인데 이를 전 세계가 다 지키고 있습니다. 소련을 공산주의로 시작한 레닌은 왜 육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냐고 하면서 비효율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구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철폐했습니다. 더 능률도 오르지 않고 실패한 결과로 인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육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과학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육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게 하는 것이 얼마나 과학적이냐면 예수를 믿든 믿지 않든 전 세계가 모두 지키고 있습니다. 칠일씩 일하지 마시고 하루 정도는 쉬셔야 합니다. 쉰다는 의미가 관광 다니고 놀러다닌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루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명령하십니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 땅에게도 육년간 경작을 하고 한 해를 쉬게 하는 것이 농사를 효율적으로 잘 짓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서 죄로 인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 중에 하나가 욕심입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는 사망이라. 끊임없는 욕심이 땅을 병들게 하고 자연을 병들게 합니다. 자연에게서 오는 재앙들은 찾아가보고 살펴보면 인간의 욕심 때문에 온 것입니다.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고 하나님이 주신 창조세계를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서 과하게 욕심으로 개발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땅들이 신음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물을 사먹을 것을 상상이라도 해봤나요? 저는 어렸을 때 물을 얻기 위해 땅을 파는 것을 보고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수돗물 먹고 지하수 물을 먹고 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있었다는 것도 모르는 시대입니다. 다 병들어 오염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에서 나타납니다. 인간의 욕심은 무엇보다 마음을 병들게 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범죄, 사건 사고들은 전부 인간의 욕심에서 나타납니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음지에 가서 몸을 팔고 범죄를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다 어른들입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겉에서는 법을 만들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댓글 쓰고 항소하고 청원을 넣고 하지만 실제로 악용하는 사람들은 어른들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합니다. 요즘 기사를 보면 화가 많이 납니다. 여자아이를 쇠사슬에 묶어 놓은 계부에 대한 기사를 봤습니다. 그 계부하고 캐리어에 아이를 넣어서 죽게 만든 계모하고 같이 살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저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너무 악합니다. 인간의 욕심이 한 번 마음에 들어오면 주변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안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구원도 안 보이고 하나님이 나를 애굽에서 나를 건지시고 광야에서 나를 훈련시키셨던 것을 잊어버립니다. 무엇보다도 여호수아, 갈렙을 통해서 전해들었던 천국을 욕심은 자연스럽게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끊임없는 욕심으로 인해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만듭니다. 이 욕심이 죄를 만듭니다. 인류역사가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축복과 재앙이 반복된 성경 속에 나타난 기록이 인간의 욕심 때문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소출을 얻기 위해서 옛날에는 농사를 하나만 지었다면 요즘에는 이모작, 삼모작, 사모작을 하며 더 많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땅에 화학비료를 계속 붓고 흙을 다 걷어 내서 새로운 흙을 쏟아 붇습니다. 그래서 땅이 완전 병 들어서 당장은 많은 열매를 맺어서 나는 부자가 되지만 우리 후대들은 농사지을 땅이 없습니다.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서 더 하고 있습니다. 동물들에게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냥 동물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더 살찌게 하기 위해서 화학 사료를 집어넣고 주사를 주고 있습니다. 양계장에 닭들은 다리가 하나밖에 없다고 합니다. 병아리 때 다리를 자르는데 이유는 움직이면 살이 찌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발로 서있게 하고 24시간 불을 켜 놓습니다. 그 양계장의 계란을 우리가 먹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식년을 사람이 아닌 땅에게 주신 명령은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땅이 강제적으로 쉬어야 인간이 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법적으로 땅을 멈추셨습니다. 성경은 강력한 명령으로 하나님 앞에서 안식년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을 아셨습니다. 땅을 안식하게 한다고 생각하면 인간세계에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애굽과 광야를 지나오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훈련을 받았음에도 육년 동안 풍족하게 모으고 먹고 마시고 자녀들을 키우고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살면 좋겠지만 육년 동안 소유물이 쌓이다보니까 잊어버렸습니다. 칠년 째 땅을 쉬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요? 작년까지 돈을 벌었는데, 이 땅에서 수확물을 얻어서 부자가 되었는데, 남들보다 더 잘살게 되었는데 꼭 올해 쉬어야 되냐고 합니다. 한 해만 더, 한 해만 더, 한 해만 더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자신들이 일을 잘해서 부자가 된 것처럼, 마치 자신들이 가나안에 나라를 세운 것처럼, 마치 자신들이 농사를 잘 지은 것처럼, 자신들이 관리를 잘하고 시스템을 잘 갖추어서, 마치 인간이 똑똑해서 그런 것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시키고 광야에서 훈련을 시켜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를 광야에 들여보내놨더니 이제는 자신들이 그 땅의 주인이라고 떵떵거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땅의 우상, 잡신 가나안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바알 신, 아세라 목상을 섬겼습니다. 풍요의 신들, 성공의 신들, 욕심을 위한 신들을 섬겼습니다. 왜 우리가 우상을 섬기나요? 더 잘되려고 더 많이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육년 일하고 칠년 째 쉬는 것이 쉬울까요? 어렵다는 거십니다. 안식년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안식년은 어렵습니다. 제가 안식년을 가보려고 하니까 제 마음이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래도 교회를 지켜야지, 내가 어디가면 성도들 다 떠나가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가 아닌 욕심입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단지 한 해를 일하지 말고 쉬라는 말인가요? 일 년 동안 경작을 하지 않으면서 내 영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예배,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을 회복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단지 농사 짓고 살아가는 육신적인 삶이 아니라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일 년 동안 농사를 짓지 않고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 안식년의 소출_레위기25:6-7

 

사람들이 경작하지 않아도 땅은 자연적으로 소출이 나옵니다. 물론 농사를 지어야 좋은 열매가 나오지만 하나님께서는 안식년의 소출을 축복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짜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안식년을 지키면 곧 죽을 것 같은 불안함이 있고 우리가 주일에 예배를 드리면 불안하고 가게 문 닫고 예배를 드리면 가게 망할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일에 다 문열어놓고 일하는 것이 맞는가요? 제가 율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 워너메이커라는 백화점을 처음 만든 미국의 백화점 왕이 있었습니다. 백화점으로 엄청나게 돈을 번 사업가입니다. 이 분의 책을 보며 감동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본업은 주일학교 성경교사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얼마나 확실했냐면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전국으로 시스템을 확장하는 시스템이 없을 때 워너메이커는 백화점을 전국으로 확장했습니다. 국가에서 볼 때 이 시스템을 당장 도입해야 할 부분이 우체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체신부장관 적임자라고 판단하고 백악관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체신부 장관을 하라고 시켰습니다. 장관을 한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명예인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워너메이커는 백화점 사업 때문에 장관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워너메이커는 주일에는 체신부 장관 일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어봤을 것입니다. 주일학교 성경교사를 빼먹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백화점 왕, 대단한 사업가가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도 기적입니다. 사업이 잘 되면 보통 그런 것을 하지 않는데 체신부 장관을 거절한 이유가 바로 주일학교 성경교사였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 일요일에는 체신부 장관을 하지 않는 조건부로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체신부 장관을 은퇴하고 백화점 사업에서도 은퇴하고 워너메이커는 죽을 때까지 주일학교 성경교사를 계속했습니다. 미국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라고 있습니다. 미국의 실력자는 부통령이라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원래 인디애나 주지사 출신입니다.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인데 아일랜드는 천주교 국가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천주교 신자로 컸습니다. 그가 대학 때 복음 가진 친구들을 만나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성경 속 진리에 관심이 있어서 성경공부 클럽에 들어가서 성경을 공부하고 자신의 인생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때부터 누구에게 자기소개를 소개할 때 첫 문구를 저는 크리스천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주지사 연설, 부통령 연설에도 모두 저는 크리스천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보수주의자입니다, 저는 공화당원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로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장로님 대통령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장로님 대통령인데 절에 가서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에 미국이 폭동과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펜스 부통령이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교회를 찾아가서 이 미국 땅에 화합, 인종갈등,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서 정부가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할 일이 맞지만 이 일들을 해결해 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교회에 도움을 구합니다. 진정으로 교회들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예수라는 조끼를 입은 정치인이라고 평가합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요?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대부분 안식년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면 손해 볼 거 같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Risk를 감수하는 신앙생활은 주님을 위해서 내가 주일에는 교회 가줄게 라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진리를 만나고 진짜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는 예배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주일에 예배를 빼먹지 말라고 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정말 붙잡혀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는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던 백성인데 가나안 땅에 와서 육년간 경작을 해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집도 짓고 학교도 짓고 가정을 이루고 축복된 나라를 이루고 살고 있는 그곳에 일 년간 땅을 쉬라는 것은 너희 주인이 누구야? 너희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해? 너희가 지금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야 해? 라는 메시지를 안식년을 통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변해버렸습니다.

 

. 우리의 안식은 예수님입니다.

- 그러나 안식을 선택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역사)

- 안식을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 신앙은 안식을 위한 결단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_여호수아21:43-45’

 

안식일을 지키고 안식년을 지키는 것은 율법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입니다. 그것을 지켰더니 조상들에게 맹세하신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얼마나 갔을까요? 이스라엘 역사를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욕심입니다. 육년 경작하고 일 년 땅을 쉬게 하는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느헤미야 시대까지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 대신 풍요를 선택했고 스스로 땅의 주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얼마나 법적이시고 얼마나 리듬이 있으시냐면 반드시 안식을 찾으시고 회복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안식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을 반드시 회복하십니다. 어떻게 회복하셨나요?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세워서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다 쇠고랑 차고 포로되게 하셨습니다. 강제로 땅을 쉬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핍박이고 고난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강제로 땅을 쉬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가면서 다시 예수님이 필요하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구나 그 안식을 다시 회복하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이러한 재앙이 있음을 회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인간세계의 안식을 찾으십니다. 땅 경작 열심히 해서 창고에 가득 쌓아놓고 욕심 부리며 남들과 비교하며 살던 인간에게 갑자기 포로가 되게 하셔서 멈추게 하십니다. 자신들이 이룬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바벨론은 하나님께 쓰임 받고 완전 망하게 되는데 바벨론에게 모든 것이 다 빼앗기게 됩니다. 인간이 포로가 되었는데 그들은 안식을 얻었습니다. 역설적입니다. 다시 성경을 펼쳐 읽기 시작했고 다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을 기억해내기 시작했습니다. 광야에서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 우리를 애굽에서 건지신 하나님,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던 하나님을 다시 찾기 시작했습니다. 언제요? 포로로 끌려갔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찾으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불편하고 짜증나고 화나고 경제가 무너지고 위기인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십니까? 무언가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안식일의 주인은 신약에 와서 예수님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안식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육일 일하고 하루를 쉬는 하루의 주인이 바로 예수님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육년동안 땅을 경작하고 한 해를 쉬게 하는 그 한 해가 예수님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회복하라고 주신 메시지였습니다. 사십 구년을 일하고 오십 년째 희년을 가지라는 말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모른다면 우리의 신앙은 늘 제자리걸음일 것입니다. 신앙의 기준은 주님을 아는 것이며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목회를 잘하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바리새인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목사도 목회의 가장 귀중한 기준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 구원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안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역을 굉장히 많이 할 때가 있었습니다. 집에 갈 시간도 없이 사역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어느 날 제 마음이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멈추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제 마음이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과 동행하려는 마음이 아니라면 명예나 자리나 돈에 관심이 많았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마음은 남에게 들키지 않고 평가받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만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배하고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신다고 합니다. 그것을 알고 저는 두려웠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으면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님과 동행을 하면서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산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면 신앙적인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한다, 예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은 채로 교회를 다니신다면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 상태로 가시다가 천국 갈 때 천국에 가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안식이며 생명입니다. 이 안식을 얻으면 평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안식을 위해 치열하게 영육간에 싸워야 합니다. 성경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_디모데후서4:7-8’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_히브리서12:1-2’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_에베소서6:11-12’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_베드로전서5:8-9’

 

- 신앙은 안식을 위한 결단입니다

 

다 예수님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식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를 놓치지 말라는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개념도 있겠지만 훨씬 더 중요한 개념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고 우리에게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놓치지 말라는 메시지입니다. 너희가 땅에 욕심을 갖는 순간, 먹고 마시는 세상 것에 욕심을 가지는 순간 예수님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경계하고 주의하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신앙은 안식을 위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신앙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계속 결단을 요구합니다. 싸워야 한다, 결단해라, 결심해라, 자리를 옮겨라, 거기 있지 말아라, 나와라 등의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결단을 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과 육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앙생활은 결단을 하지 않습니다. 결단은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합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나 존 워너메이커나 믿음의 선배들은 결단을 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야, 나는 주일학교 교사야라는 자기 삶, 신앙에 우선순위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결단입니다. Risk를 감수하고 우선순위를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이 단지 행위냐, 율법적으로 내 의를 위함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그들의 삶의 열매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주일을 철저하게 지킬거야, 너희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다 죽일거야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열매는 사람을 죽이고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이야,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이런 삶을 살거야 라고 결단한 사람들은 그들의 삶이 어떤 삶일까요? 가난한 자를 섬기고 병든 자를 돕고 사랑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신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안식년의 메시지는 이 땅의 주인이 주님이라는 것 입니다. 우리가 밟고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제활동, 여러분의 자녀들, 우리가 세워가고 있는 교회 여기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제가 20년 뒤에 가스펠교회가 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공동의회를 열어서 저를 쫓아내셔야 합니다. 어찌 교회가 제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식으로 욕심을 갖는데 욕심이 잉태해서 죄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스스로 주인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정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자녀들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경제활동의 주인이 누구이십니까?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다가 어느 순간 인생의 은퇴를 하게 되고 때가 되면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진짜 쉴 수 있는 안식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천국 밖에 없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성육신 안에, 교회를 통해서, 주의 말씀 안에서 자신을 주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주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결단해야 합니다. 성육신을 결단해야 하고, 교회를 결단해야 하고, 말씀을 결단해야 합니다. 제가 사역을 하면서 너무 충격적인 것은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싶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예수님을 너무 알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 읽으세요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 힘들잖아요 라고 합니다. 너무 웃깁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축복받고 싶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을 읽으라고 하면 그거 말고 더 쉬운 길은 없냐고 이야기를 하며 성경을 읽지 않음을 많이 보게 됩니다. 쉬운 길은 없습니다. 성경 읽고 계시나요? 앞으로 가스펠교회 다니실 때 성경을 읽지 않으시면 교회 다니시는데 힘들 것 같습니다. 왜냐면 그 결단이 필요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마귀가 악한 영들이 우리 마음에 집어 넣어주는 것들이 무엇인가요? 물질, 명예, 성공을 가져다줍니다. 이것들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나요? 마귀가 쾌락을 줍니다. 그런데 쾌락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지 못하고 평안을 주지 못하고 기쁨을 주지 못하고 구원의 감사와 감격을 주지 못합니다. 천국을 흠모하며 사는 복된 삶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 쾌락이 자리 잡으면 그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연예인들이 그것을 자랑하지만 그들의 삶은 얼마나 어렵고 비참한 삶인가요. 마약을 하고 우울증에 걸립니다. 허무하고 허전하기 때문입니다. 전부 쾌락을 위해서 전쟁하고 싸우고 죽이고 있습니다. 단지 사람들과 싸우고 전쟁하고 죽이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_마태복음11:27-30’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세상 짐을 지고 가는 우리에게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짐을 지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가볍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안식을 결단해야 합니다. 주일에 꼭 예배드려야지는 율법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거 말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주인 삼고 사는 삶입니다. 육일을 일하고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삶입니다. 육년을 땅을 경작하고 한 해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하고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안식년의 소출은 거류민들과 나그네들과 병든 자들과 가난한 자들과 나누면서 살라고 하십니다. 안식년이 없으면 우리는 늘 모으고 나를 위해서만 살지만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는 이웃이 보이고 병든 자와 가난한 자들이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가치 있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멋있게 살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안식일이 아니고 안식년이 아니면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끊임없는 욕심에 빠져서 사는데 하나님 앞에 설 때라야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라야, 말씀 앞에 설 때라야 내가 연약하구나, 내가 남을 정죄하고 남을 비난할 때가 아니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율법적으로 주일을 빼먹지 않겠다가 아니라 진짜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섭리, 사랑, 긍휼이 안식일과 안식년의 법입니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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