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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8-02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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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02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본 문 :

이사야1:21-31

 

 오승주 목사

 

Ⅰ. 왜 거룩이어야 하는가?

이사야 강해를 시작했는데 이사야 설교를 쭉 듣다보면 이사야서에 관통하는 핵심사상, 주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여러 개가 나오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 사상, 이사야서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려고 하시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이사야 설교를 듣는 내내 거룩함을 직면하게 될 것이고 거룩함에 대한 질문들을 하게 될 것이고 내 삶이 어떻게 하면 거룩하게 될 수 있을 것인지 도전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왜 거룩이어야 하는가?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일 우리가 놓치는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서 이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음, 하나님 이러면 신앙생활 초기에 아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하지 끊임없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면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어있습니다. 비브릿지를 통해서 후원하는 가까운 고아원이 하나 있는데 고아원에 가면 한 살짜리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지금은 우리보다 더 잘 먹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고아원에 후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먹을 것도 많고 장남감도 많고 이제는 고아원을 새로 지어서 시설도 좋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크면서 방황하게 됩니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됩니다. 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갔더니 친구들은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는데 자기는 부모가 없습니다. 살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버림받았습니다. 원장선생님께서 하시는 이야기로는 아이들은 고아원에 있으면 멀쩡한 것 같은데 사회에 나가면 실패한다고 합니다. 적응을 하지 못해 고아원으로 다시 돌아오고 낙오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인데 고아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내가 누구인지, 이 환란의 때에 종말의 세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사명을 감당하고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답고 복되고 귀하고 가치 있게 사는 것인지 알 텐데 하나님에 대한 끊임없는 앎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교육에는 나쁜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나쁜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이냐면 1등만 하라고 하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1등은 한 명 밖에 할 수 없는데 1등만 하라고 합니다. 1등한 사람만 성공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인터뷰를 본적이 있는데 지방에 한 주류업체의 대표님께서 인터뷰를 하신 것입니다. 청소년시기부터 술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먹는 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술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변을 보니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고 너무 다양한 술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술 맛을 보는데 부모님께 엄청 맞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몰래 술을 맛보고 이 소주는 무슨 맛이고 막걸리는 무슨 맛이고. 학교에서나 부모님이 술주정뱅이가 되겠다고 비난했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 지방의 최고 주류업체의 대표가 되었고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또 한 인터뷰를 봤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청바지만 입었다고 합니다. 어는 날은 하루 종일 청바지를 벽돌로 긁고 있었다고 합니다. 공부도 안하고 숙제도 안하고 하루 종일 빈티지 청바지 만든다고 하루 종일 벽돌로 긁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고 빈티지 회사 회장이 되었습니다. 청바지로 갑부가 되었습니다. 물론 내 속에 있는 재능과 학교 공부가 플러스가 되면 시너지는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등은 하지 않더라도 우리 속에는 재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선생님을 만나면 재능을 개발도 못하고 꽃도 못 피우고 사라집니다. 1등하지 못해도 재능을 믿고 꾸준히 개발하고 파헤치면 언젠가 기회가 와서 꽃을 피우게 됩니다. 1등만 강요하는 그 속에서 나만 안 흔들리면 됩니다. 내 정체성만 분명하면 되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꾸준하게 사단은 우리를 불신앙하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넌 안 돼, 그 정도는 어림도 없다고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 기업을 주셨는데 기업은 부흥입니다. 부흥은 모든 믿는 자의 기업입니다. 술주정뱅이가 예수를 만나고 회개해서 술을 끓고 새 사람이 되어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의 사람이 되는 것. 매일 부부싸움하고 가난하고 불우했던 가정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화목하게 되고 다른 가치, 새로운 가치, 이웃을 돕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복된 가정이 될 수 있는 것.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사는 가정이 될 수 있는 것. 제가 일본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친구를 따라 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권사님이 되셨는데 나이 들어 예수님을 믿고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사는 마을이 조그마한 마을인데 제가 그 마을에 가서 집에 갔더니 별채를 교회로 바꾸고 안채는 누구나 마을사람이 와서 커피 마시고 대화할 수 있는 대도시의 유명의 커피숍처럼 해놓으셨습니다. 이유는 무엇이냐. 예수님을 전하려고. 아침마다 길을 쓴다고 합니다. 마을사람들이 이 아주머니를 보고 얼마나 칭찬하던지. 별 볼일 없던 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온 동네를 바꿀 수 있는 부흥입니다. 여러분, 열왕기를 읽고 계시죠? 이 열왕기는 양이 많아져서 상, 하로 나누어 진 것입니다. 다윗부터 여호야긴까지 북이스라엘, 남유다의 모든 왕들에 관한 기록들입니다. 저희 교회 성도님 중 한 분이 열왕기상을 읽고 있는데 왕 이름도 어렵고 무슨 일을 했다, 그리고 죽었다, 칭찬받았다, 악한 왕이다 이런 내용들 밖에 없는데 끝까지 읽어야 하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제가 볼 때에는 구약에서 모세 5경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열왕기라고 생각이 듭니다. 왜 중요하냐면 솔로몬이 죽고 나서 북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장군인 여로보암이 10지파를 가지고 가서 왕조를 시작하였고, 남유다는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로 인해 남유다가 형성이 되어서 두 나라가 생겼습니다. 양쪽의 모든 왕들을 열왕기에 기록해놓았습니다. 약 400년에 가까운 세월입니다. 그 왕들의 이야기를 47장에 걸쳐서 기록해 놓았는데 열왕기는 왕들에 대한 이야기, 왕들을 통해서 일어난 사건들을 적어놓고 하나님이 평가하는 것이 열왕기상, 하입니다. 이 왕은 선한 왕이다. 이 왕은 악한 왕이다. 그런데 평가를 한다는 것은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열왕기상, 하가 기록되어있나요?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오므리라는 왕이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계속 쿠데타가 일어나서 9개의 왕조가 형성이 되는데 남유다는 다윗의 계보이기에 쿠데타가 없습니다. 계속 자녀들이 왕을 이어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실 때에 남유다가 더 중요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9개의 왕조 중 한 왕조가 오므리 왕조인데 오므리가 얼마나 대단한 왕이냐면 이스라엘에서는 다윗 다음 가는 왕입니다. 실력으로 봤을 때에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군사, 정체, 경제에 있어서 다윗의 나라라고 이스라엘을 평가하지만 밖에서는 오므리의 나라라고 평가할 정도로 대단한 왕조인데 그런 오므리가 열왕기상에는 8절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므리 왕을 악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선한 왕이냐 악한 왕이냐 하나님의 평가를 받습니다. 열왕기에 나오는 모든 왕이 39명인데 하나님께 선하다고 칭찬받는 왕은 8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하다 악하다고 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입니다. 그 언약을 맺을 때 주신 말씀이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613가지나 됩니다. 우리가 함께 말씀을 나눈 레위기에서 언급된 기준만 해서 247개입니다. 613가지 중에서 제사장에게 준, 제사장은 이렇게 제사를 드려야해, 제사장은 이렇게 삶을 살아야해, 제사장은 이렇게 해야 해 하면서 주신 말씀이 25개입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준 말씀도 있지만 제사 즉, 예배에 관한 말씀은 63개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613가지 중에서 정확하게, 하나님의 백성은 이렇게 살아야 해, 결혼은 이렇게 해야 해, 이웃에 대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다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중에 왕에게 주신 것은 9가지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10가지라고도 합니다. 왕에게 주신 것이 10개 밖에 되지 않습니다. 선지자에게 주신 것도 있고 제사장에게 주신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10가지 왕에게 주신 말씀을 악한 왕들은 대놓고 무시한 왕들입니다. 오므리 왕이 대표적입니다. 내가 이렇게 잘나가는데 우리나라가 이렇게 부강하고 번영하고 축복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좋아하면 됐지,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서 살아야 해? 웃시야 왕도 그랬습니다. 웃시야 왕도 왕이여, 제사를 왕이 드리면 안 됩니다 하고 제사장들이 말렸지만 자기가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삼권분립을 제대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실 때에는 왕에게 직접 들려주신 적은 구약에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다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왕에게 전하게 했습니다. 다윗 옆에는 나단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음성을 들은 것은 다 선지자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지자는 제사장의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했지만 제사를 드리는 것은 제사장의 고유의 업무였습니다. 서로 침범할 수 없습니다. 대단한 왕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없었고 실력 있는 제사장이어도 선지자의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다 부강하고 번영을 이루고 실력을 갖추고 그 일을 침범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준을 주셨습니다. 그 기준을 따를지는 그렇지 않을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로봇이 아닙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닙니다. 이 기준을 두고 따를지 말지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613가지 언약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효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통해 구약을 공부하면서 이것을 다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언약의 말씀을 주시면서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 어디냐.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공통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 있는데 그것이 거룩입니다. 왕들이 처음에는 거룩했습니다. 왕은 스스로 거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래서 왕도 거룩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왕들이 거룩이 필요 없다고 거룩 밖으로 나왔습니다. 인간이 가장 멋지고 아름답고 숭고하고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것은 거룩할 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경외하고 살 때입니다. 그 하나님을 발견하고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거룩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예수이기 때문에 복음이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 거룩을 회복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냐. 기업을 주셨습니다. 기업은 부흥입니다. 많은 선교단체들이 부흥을 외치지만 거룩을 회복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 부흥을 주시지 않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부흥입니다. 반대로 거룩을 잃어버리면 세상적으로 엄청난 번영을 이루었지만 번영 뒤에는 허무한 열매 뿐 입니다. 제가 심리학책을 보니 인간의 가장 강력한 욕구가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가 물질욕 즉 돈입니다. 우리에게 돈이 제일 중요하죠. 저도 돈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돈에 대한 욕구가 가장 강력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한 욕구가 권력욕입니다. 권력을 잡기 전과 후가 사람의 태도가 바뀝니다. 권력이 나를 지배해버립니다. 국회의원들 보면 그렇죠. 태도가 다 바뀝니다. 그런데 이 물질욕과 권력욕이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욕구가 명예욕입니다. 명예욕을 위해서 내가 가진 물질을 다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이 명예욕이 가장 많이 은연중에 가장 많이 드러나는 곳이 어디냐. 종교단체 안입니다. 교회 안입니다. 교회들이 헌금 얼마한지 다 기록 합니다. 이것이 돈이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명예욕에 빨리 가겠지만 돈이 없고 권력이 없더라도 명예욕이 누구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죠? 자존심입니다. 누구나 자존심은 다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면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사람들이 왜 자살하냐. 이 명예욕에 타격을 입어서 자살합니다. 왕들이 이 명예욕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타락한, 다시 말해 욕망이 죄로 물들어서 헛된 명예를 추구하면 엄청나게 큰 환호성을 지를 만큼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중에 공허해집니다.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그래서 참된 경건, 참된 영성의 비밀은 명예욕으로 충만해지는 것인데 성경이 말하는 명예욕은 현세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명예욕을 하나님이 무엇으로 채워주시냐. 주석에 보니 불멸한 명예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명예. 기독교인이 가질 수 있는 명예욕은 불멸의 명예. 무엇인가요? 하늘의 보좌. 그 보좌에서 주시는 의의 면류관. 상금. 그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 것을 찾는 사람은 이 땅에서 수치 느끼지 않습니다. 완전 다른 사람이 됩니다. 스데반, 사도바울, 다윗. 믿음의 사람들. 영원한 불멸의 명예욕으로 충만한 상태. 그것이 진짜 경건이 아닌가요? 기독교인의 참된 영성이 아닌가요? 완전 새사람이 됩니다. 그런 영원한 명예욕이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발견해야 합니다. 어디에 가면 발견할 수 있나요? 거룩함 속에 가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가야 내가 누구인지 발견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가야 내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가치 있고 명예롭게 살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Ⅱ. 신실하던 성읍의 변질

 - 신실하던 성읍의 변질_이사야1:21-23

 - 하나님의 슬픔_이사야1:24-27

 -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_이사야1:28-3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_이사야1:21-23‘

 

원래 거룩한 성읍, 신실한 성읍이 해야 하는 일은 고아를 위해서 신원하고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서 살도록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실한 성읍이 패역하고 도둑과 짝하고 물질을 탐하고 물질욕에 권력욕에 명예욕에 타락한, 욕구에 빠져 폐허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신실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절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오만하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30년 해도 거룩에서 떠나면 타락합니다. 신앙생활을 3천년을 해도 거룩에서 떠나면 인간은 무너집니다. 얼마나 인간이 연약한지 아십니까? 목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도 은혜에서 떠나면 타락하는게 인간입니다. 죄가 그렇게 강력합니다. 왜 왕들이 타락하나요? 이 정도로 나라가 잘 살고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고 평화를 이루고 번영하면 예배 잘 드리고 찬양하면서 백성들과 행복하게 잘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평화와 번영 속에서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합니다. 그것이 창세기 3장에 악한 영이 뱀을 통해서 인간에게 준 유혹입니다. 하나님처럼 될 거야. 그것이 명예욕이 아닙니까. 지도자들이 왜 타락합니까.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던 왕들이 왜 교만하고 오만하여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만들어 섬깁니까. 변질되는 것, 한 순간입니다. 타락하는 것, 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제가 뛰어난 왕은 아니지만 목사이니까. 가스펠교회의 영적인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니까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이 슬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_이사야1:24-27’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볼 때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한방에 멸망시킵니다. 한방에 포로가 됩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3번에 걸칩니다. 아람, 앗수르, 바벨론. 3차례 침입을 통해서 나중에 바벨론에게 완전한 포로가 됩니다. 하나님이 남유다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찌됐든 하나님이 앗수르나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남유다 자기의 백성들을 포로 삼으십니다. 끊임없이 공격하고 괴롭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것을 슬프다고 표현하십니다. 그리고 이 슬픔을 내가 앗수르와 바벨론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바벨론이 가장 우상숭배가 심할 때, 바벨론이 가장 악할 때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니까 바벨론을 초토화시키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입니다. 이 슬픔은 부모님은 다 공감하실 것입니다. 내 자녀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 틀린 길을 가는 자녀에게 매를 들 때 가슴을 울며 때립니다. 나와 언약으로 맺은 내 백성이니까 내가 너를 앗수르와 바벨론을 통해서 깨끗하게 하겠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어내겠다. 청결하게 하겠다. 구원받은 자에게 왜 고난이 있냐면 거룩해야 하니까.  구원받은 자에게 왜 고통이 있냐면 기업을 물려받아야 하니까. 하나님께서 슬픔을 가지고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자녀를 훈계할 때 얼마나 슬픈가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갱신해야 할 때가 있어요. 교회도 개혁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한쪽이 부패하면 도려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가슴이 아프지만 도려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부패합니다. 그것이 목회자의 슬픔입니다. 성도를 훈계해야 할 때가 있고 바르게 가르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_이사야1:28-31‘

 

하나님은 알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가 지금 빛을 잃어버리고 거룩을 잃어버려서 곧 부끄러움을 당할 것인데 수치를 당할 것인데. 이 부끄러움, 수치. 지금 한국 교회, 지금 기독교인이 당하고 있는 수치입니다. 앞에서는 깨끗한 척, 앞에서는 부흥을 외치고 거룩을 외치고 뒤에서는 사기치고 거짓말 하고 물질욕, 권력욕, 명예욕에 빠져서 바리새인처럼 우리의 모습. 이 부끄러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냥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획하셨습니다. 앗수르를 사용하시고 바벨론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우리가 거룩을 향하도록 다시 신실하신 믿음을 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않고 다시 거룩한 성읍이 되고 다시 구속을 설명하고 구원을 설명할 신실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Ⅲ. 거룩(신실한 믿음)을 향하는 변화

  • 임마누엘로 말미암아_이사야7:10-15
  • 믿음으로 사는 자의 힘_하박국1:2-3,2:4-8,3:16-19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_로마서1:16-17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_이사야7:10-15‘

 

이사야 7장 설교할 때 제가 아하스에 대해서 설명하겠지만, 아하스가 앗수르를 따를까 북이스라엘 따를까 갈등하고 있는 시기에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기를 하나님께 징조를 구해라 라고 했는데 아하스가 싫어요. 안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왕이 타락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친히 징조로 이야기한 것이 무엇이냐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이렇게 징조를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엉긴 젓, 꿀 먹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 아하스가 임마누엘, 하나님의 징조를 왜 구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몰랐겠지만 자기의 자존심, 자기의 명예를 더 생각했겠지만 거룩을 향하는 변화가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 보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하였습니다. 잠깐은 번영하는 것 같았습니다. 잠깐은 잘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끝에는 끔찍했습니다. 임마누엘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거룩을 향해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거룩을 회복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으로 신실한 성읍으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이사야서의 핵심은 임마누엘이 아니라 거룩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거룩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징조입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그것을 선택 할 수 있는 깨달음이 있을 때 젖과 꿀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박국에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의 큰 내용이 무엇인가요? 하박국 선지자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따지는 것입니다. 의문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악인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악인이 널린 중에 의인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의인이 하박국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따집니다. 하나님, 악인들이 재앙을 당하는 것, 벌을 받는 것, 진노를 받는 것을 알겠는데 왜 우리도 같이 진노를 당해야 합니까? 왜 우리도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라고 따집니다. 그 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답변하시나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끝입니다. 그 말은 그 진노, 고통 같이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저지른 재앙, 바로 이 세상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홍수 피할 수 있나요? 재앙 피할 수 있나요? 없습니다. 우리가 피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방패 되신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똑같이 질병당하죠. 다 재앙을 똑같이 받는 것입니다. 가난, 질병, 이별, 슬픔, 죽음. 그런데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합니다. 저는 하박국 읽으면서 울었습니다. 복음 운동 하는 단체들은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사이비 교주들은 능력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는 타고 났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에 신비를 체험하고 큰 업적을 이루고. 그러면서 따라오는 추종자들을 뭐라고 하죠? 너희들은 이것도 못하냐. 이것을 무슨 심리학적으로 용어가 있습니다. 그러니 더 따라갑니다. 더 대리만족을 얻기 위해서 더 따라갑니다. 교회에서 대역사 일어나신 분을 간증시키잖아요.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직장생활 해야 하고 힘든 가정에서 갈등 속에서 살아야 하고 1%가 되고 0.1%가 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내야 하고 이름도 빛도 없이 사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존 워너메이커처럼 백화점의 왕도 될 수 없고 시대를 변화시켰던 존 웨슬리 같은 설교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대단한 실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냐. 믿음으로 사는 자. 고난 속에서 고통 속에서 믿음으로 사는 자.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사는 자. 반에서 1등 못해도 가난해도 거대한 세상에서 티도 안 나는 것 같은 믿음. 세상을 변화시킬 힘도 없어 보이는 믿음. 그 믿음으로 하루하루 하나님을 의지하고 거룩을 사모하고 성경을 읽어가면서 성실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사는 그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겠다고 합니다. 안 믿어지시죠. 엘리야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엘리야가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나 죽어버릴래요. 유명한 선지자들 다 죽고 유명한 제사장들 다 죽고 저 밖에 안 남았는데 저도 곧 죽게 생겼어요.’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했죠? ‘착각 하지 마.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신실한 사람들이 7천명이나 있어. 7천명의 사람이 유명한 사람인가요? 가정주부일수 있고 학생일 수 있고. 바알에 무릎 꿇지 않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 믿음으로 사는 자가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믿음을 포기 하지 마시지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그것을 깨닫고 나서 하나님이 그 때 무엇을 보여주시죠? 하박국도 이사야가 거룩한 보좌를 본 것처럼 하박국 3장 16절부터 하나님의 영광스런 보좌를 봅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_하박국3:16-19‘

 

가난하지만 가진 것이 없지만 영원한 명예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하박국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해왔지만 하나님이 주신 기쁨으로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고 고백하면서 사는 것. 우리가 신실한 성읍이 되고 거룩을 향해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합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믿음을 선택해서 사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에서 믿음으로 살 때 무슨 일이 벌어지냐. 이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로마서가 인용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_로마서1:16-17’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나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거룩을 향해서 살 때 우리의 삶에 의가 나타납니다. 의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이루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믿음이 되게 하고 믿음이 믿음으로 확산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의.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정직하고 청결하고 깨끗하고 변화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깨끗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직하고 깨끗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우리 어른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다 엄지 척했습니다. 변화되었습니다. 정직했습니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두고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의는 눈에 보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것이 믿음을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산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때문에 나 때문에 비록 가정이 가난하고 힘겨운 상황이지만 믿음을 가지고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해서 거룩함을 사모하고 사는 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세요. 가스펠 교회 성도 몇 명되지도 않는데 거룩 거룩 한다고 해서 한국 교회가 변화되겠나. 그것은 제가 알바가 아닙니다. 교회가 작으니까 제가 목소리 낸다고 해서 아무도 안 들으니까 저도 같이 타락하고 불법을 저지르고 살까요?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하늘 보좌를 보고 사는데 하늘의 의의 면류관, 그 상금을 보고 사는데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부흥되고 큰 역사가 일어날지 관심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서 하나님이 시간표에 필요하신 만큼 사용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입니다. 내가 사람을 두려워하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죠.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지요. 그래서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의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선하다고 한 왕들은 누구인가요? 바로 믿음으로 살았던 왕들입니다. 같이 고난을 당하고 같이 포로로 끌려갔지만 다니엘,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같이 고난 속에 있었지만 하박국 선지자처럼 난 여호와로 기뻐하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다. 고백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시나요? 오실 메시야의 언약, 구속사를 이루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힘겹고 어렵습니다. 종말의 세계를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정답인지도 모를 만큼 혼란스러운 세상에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여러분의 가정이나 이것들이 대게 잘 사는 나라인 것 같고 부유한 나라가 된 것 같지만 사실은 갈수록 어려운 것이 정상입니다. 마음이 더 힘들고 스트레스가 훨씬 더 많고. 왜요? 종말의 끝이 가까우니까. 갈수록 사랑은 없어지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돈을 사랑하고 성경이 기록된 종말의 징조들입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떤 징조를 봐야 하나요? 임마누엘. 임마누엘 하지 않으면 우리는 거룩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우리는 거룩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거룩을 통과해야 하나님이 주신 기업, 부흥을 맛볼 수 있습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부흥. 변화되는 것. 새 사람 되는 것, 영광스런 하늘의 보좌를 바라보고 사는 삶. 그것이 부흥입니다. 거룩함을 통과해야 그 삶이 보입니다. 거룩함 속으로 들어가야 그것이 보여서 우리 인생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 어떤 일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거룩함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쏟아부어주시는 하늘의 은혜로 충만할 때에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그 변화가 의입니다. 어떻게 저 사람이 변화되었지? 어떻게 저 사람이 새 사람이 되었지? 하나님의 의입니다. 정말 힘겹고 어려운 환경에서라도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잘 것 없다고 자책하지 말고 포기하시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의로 여러분의 인생에 보여주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 길을, 거룩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갑시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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