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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8-23 주일예배

2020-08-23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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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본 문 :

이사야 3:1-12

오승주 목사

. 내가 지금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서 국가에서 지침을 내려준 대로 각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은 몇 가정이나 몇 분이나 어떤 모습으로 예배하고 있는지 목사로서 궁금합니다. 가정에서 예배 드리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신뢰하기 때문에 신실하게 예배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지난주 우리는 말씀사경회를 통해서 우리가 왜 이런 고통과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제 느낌에 굉장히 현실적으로 피부적으로 와 닿고 있는 지금의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지난주 말씀 사경회 말씀을 들었던 성도님들은 오늘 이 예배 생명 걸고 드리고 있을 거라고 저는 확신하고 생각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코로나 19로 인해서 경제문제라든지 가정에 자녀들 교육문제라든지 많은 문제들이 우리 앞에 와 있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코로나 19 우울증이라는 증상이 생겨서 병원에 우울증 환자들이 많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원인은 코로나 19라는 새로운 병명도 생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마음, 영혼에 자꾸 뭐가 사라지나요? 기쁨이 사라집니다. 행복하다, 즐겁다라는 것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야기해보면 그 전에 가졌던 즐거움, 행복, 기쁨이 내 안에 예수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기뻤던 건가요? 아니죠. 왜 그런 기쁨이 사라졌다고 이야기를 하죠? 제가 이번주에 한 집사님을 만났는데 집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기쁠 일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기쁠 일이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쁠 일이 없다고 소리치는 그 소리가 저와 여러분, 우리의 소리, 성도들의 소리 같았습니다. 사실 기쁠 일이 없을 만합니다. 상황이 녹녹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집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분명히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기쁠 일이 없죠. 왜냐면 하박국 선지자도 기쁠 일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 기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부패하고 타락하고 밖에는 바벨론이 쳐 들어오려고 준비하고 있고 지금 의인,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우리가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기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쁠 일이 없다는 것. 가만 보니까 우리가 그 전에 기쁠 일은 뭐였을까요? 평화로운 거였고 성공하는 거였고 무언가 소유하는 거였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셔서 기뻐했다면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도 똑같이 기뻐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내 안에 있는 걸로 기뻐했다면 코로나 19가 아니라 코로나 1009가 와도 어마어마한 전염병이 와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집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도대체 뭐가 기쁠 일이 없습니까? 뭐 잘 되는 게 없잖아요, 경제도 이상하고 정치도 혼란스럽고 상황이 안 좋은데. 상황이 좋은 걸로 기뻐하는 것이 진짜 크리스천의 기쁨일까요? 집사님 안에 죄에서 건져주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가 집사님에게 있습니까? 우리가 기뻐할 일이 그거 아닌가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무화과 나뭇잎이 없어도 무화과 나무 열매가 없어도 우리의 외양간에 아무 소와 양이 없어도 내가 여호와로 인해서 기뻐하리로다 이 고백은 어떤 고백일까요? 죄는 우리를 굉장히 큰 쾌락과 자극적인 즐거움을 줍니다. 사실 우리가 기뻐했던 것은 죄로 인한 기쁨들이 아니었을까?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그 죄가 주는 쾌락, 죄가 주는 어떤 즐거움을 기쁨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살고 있지 않았나. 우리가 죄를 의지하고 죄에 편승해서 살면서 죄들이 주는 것들에 대한 쾌락 때문에 지금 기쁨이 없다는 것, 지금 어려운 상황에 기쁠 일이 없다는 것은 죄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그런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죄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기쁨,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감사, 감격이 없는 것 아닌가. 제가 창피하고 쪽팔리는 일이지만 큰 죄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죄를 멈추게 된 계기가 보상심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사역도 잘하고 잠도 잘 못자고 새벽에도 일어나서 뭐 하고 강의도 하고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고 그래서 이 정도는 괜찮아 하는 보상심리로 습관적인 죄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저한테는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아는 선배를 만나서 선배 목사님을 통해서 따끔하게 경고를 받아서 멈추게 되었습니다. 저는 죄 인줄 몰랐습니다. 이것이 죄인가? 지금 생각해보니까 엄청난 죄였습니다.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죄가 주는 쾌락, 즐거움, 짜릿한 기쁨들. 그것이 없으면 나는 어디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지? 이 정도로 거기에 매여서 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죄를 짓고 있는 동안에는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 내가 주님 안에 있는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라는 것을 망각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죄를 멈추고 다시 성경을 읽고 문제와 어려움이 있을 때 주님이 내 안에 계시지, 내가 주님 안에 있지 이 기쁨을 회복하고 나니까 영적인 기쁨을 회복하고 나니까 얼마나 제 삶에 수많은 그런 어둠의 것들이 물러갔는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는 경제의 문제, 삶의 문제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실상 가만히 보면 죄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서 우리가 오염되서 누군가와 비교하고 자존심 상해하고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군가와 비교할 일이 없습니다. 누가 쳐다보든 쳐다보지 않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 앞에서 이 땅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의로운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되는데 왜 기쁨 일이 없죠? 잘되던 것들이 멈추어서, 짜릿하게 누리던 어떤 쾌락들이 멈춰버려서 내가 뭔가 소유하고 더 부유해지고 더 잘되고 이런 것들이 코로나 19로 인해서 멈춰졌다고 생각해서 이제 기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박국처럼 그렇게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냐면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사람은 반드시 우리에게 실망을 줍니다. 내 남편, 내 아내도 실망을 줍니다. 여러분이 섬기고 있는 교회의 목사도 저라는 사람을 의지하면 반드시 실망합니다. 인간은 끝에 가서 결국 실망하는 존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상을 섬기거나 악한 영들, 세상이 제공하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치관과 세상이 완벽해, 완전해라는 것들을 의지하면 곧 여러분은 정말 허탈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공허함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하나요? 어떤 분이 저에게 그랬습니다. 목사님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요? 도대체 우리가 교회 다니고 예배드리고 성경 읽고 기도해서 이 땅에서 얻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이 땅에서 얻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얻으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사는 것 자체가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얻는 것은 천국입니다. 우리가 얻는 것은 천국 보좌에 가서 하나님 품에 안길 때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면류관, 상급, 잘하고 잘했도다, 수고했다, 충성된 나의 종아, 하나님 품에 가는 것, 천국 보좌 앞에서 받는 면류관이 우리가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꾸 이상한 신앙생활 하시는데 이 땅에서 얻는 것 없습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 될 거야. 예수 안 믿어도 열심히 살면 부자 될 수 있고 운동 열심히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왜 주님을 의지합니까? 어둠의 세상에서 답답한 세상에서 믿음을 유지하고 가려고, 우리가 세속에 빠져들지 않고 죄악에 물들지 않고 신앙의 길을 가려고 빛 가운데로 걸어가려고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매일 성경을 읽고 예배 드리려고 사모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려고 무릎 꿇고. 다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들. 이유가 뭐에요? 천국에 가서, 주님 보좌 앞에 가서, 하나님께 의의 면류관을 받으려고 우리가 그렇게 애쓰고 사는 것 아닙니까. 그것을 믿지 않으면 교회는 그냥 종교단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기 때문에 교회가 특별한 거에요, 그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특별한 존재인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약 150년전 예언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망할 것이고 남유다가 이 예언으로부터 150년 뒤에 망할 건데 그 망하기 전의 모습들을 3장에 예언을 해놓는 것입니다. 너희가 왜 망할 것인지, 너희가 왜 포로가 될 것인지, 왜 남유다가, 예루살렘이 완전히 초토화되고 완전히 망할 것인지 그것을 예언해놓았습니다. 이렇게 때문에 너희가 망할거다 라고 기록해 놓은 것이 오늘 31절에서 12절 말씀입니다.

 

. 하나님의 백성이 의지하고 있는 것

- 모든 양식, 군사적 세력들, 종교적 세력들, 정치적 세력들_이사야3:1-3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가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그가 의지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정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_이사야3:1-3‘

 

뭐라고 이야기하시냐면 하나님이. 너희가 의지하는 것을 다 제하여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남유다는 언약 백성 아닌가요? 하나님의 백성이 뭔가를 의지하는데 뭘 의지하냐면 제일 먼저 그가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물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제가 웃시야가 어떤 정책을 폈는지 설명을 하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유다는 지형적으로 물이 없는 지역이어서 수로를 개발해서 밖에서 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양식이 풍족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왕이 능력이 있어서 조공을 받아서 풍족하게 양식을 먹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뛰어난 왕으로 인해서 물과 양식을 먹으니까 그것을 의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뿐 아닙니다.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 이게 뭐죠? 정치적으로 뛰어난 인물들, 경제적으로 뛰어난 인물들, 종교적으로 뛰어난 인물들, 심지어는 그 당시에 있었던 사회적 엘리트 계층들을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십부장, 귀인, 모사, 정교한 장인, 능란한 요술자. 지금 남유다에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발전되었다는 것입니다. 재판관도 있고 선지자와 복술자, 전사도 있고 용맹한 군사인 용사도 있고. 이것을 누가 의지하고 있냐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런 사람들을 의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제하여 버리신다고 하십니다. 누가 보면 하나님 왜 이렇게 쪼잔하실까 할 수 있습니다. 물도 의지할 수 있고 음식도 의지할 수 있고, 실력 있는 정권과 휼륭한 지도계층들, 경제인들, 군인들 의지할 수 있지.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데 여러분 그들이 의지하는 것들이 굉장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그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전혀 다른 말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것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편리하고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한 그들. 그렇기에 그것들을 의지했습니다. 물도 의지하고 음식도 의지하고 정권, 군사력 이런 것들을 의지하다보니 뭐가 점차 사라졌냐면 뜨거운 예배가 사라졌고, 간절한 기도도 사라졌구요 사모하는 말씀도 점차 희미해져 갔습니다. 놀랍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차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게 점차 간격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은 뜨겁게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온라인 생방송으로 예배하고 있는 이 시간에 누구는 아직 잠자고 있을 수 있고 여행 갔을 수도 있고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 밥부터 먹고 예배드리자 이따가 녹화 방송 어차피 나올 건데 하면서 식사하는 분들도 계실 수 있고. 그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예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나 예배 갔다 오면 되 이거지 이 예배에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것에 더 이상 성도들이 관심 같지 않습니다. 예배가 어떻게 되든 말든, 교회가 어떻게 되든 말든 나는 편리하게 잘 살고 있어 나는 직장에서 괜찮고 밥 잘 먹고 문제 없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교회 부흥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당장은 괜찮거든, 물도 있고 양식도 있고 국가도 괜찮고 시스템도 좋거든. 내 직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에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아요. 내 주변에 불신자가 있어도 저들에게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까 내가 어떻게 저들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게 할 수 있을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불신자인지 신자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구원의 마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 많지 않은 시대입니다. 그렇죠? 내 집이 불신자 가정인데 하나님 불신가정에 우리 엄마 아빠 우리 형제들이 예수님 믿게해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도 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우리 집 잘 살고 있는데 엄마아빠 건강해, 집도 있고 차고 있고 안정적이라고 그런 것으로 평가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남유다가 딱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냐? 우리가 너무 사소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지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의지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의지했냐면 물을 의지하고 풍요로운 음식을 의지하고 군사력과 경제력과 정치인들을 의지했습니다. 그들의 미래를 요술사, 점쟁이들을 의지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언약 백성이에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 안에 누가 들어와 있냐면 앗수르, 바벨론의 점쟁이들과 문화가 다 들어왔습니다. 교회안에 세상 문화가 다 들어왔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되고 우리가 기도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믿음의 길, 거룩한 길을 가야되는데 교회 안에도 요술자 같은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지금 밖에 최첨단 시대를 달리고 있는데 교회가 이러면 되겠냐면서, 지금 밖에 얼마나 좋은 시스템이 갖춰졌는데 교회가 구닥다리같이 이러면 되겠냐면서. 아니요.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착각해도 너무 착각한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 것들을 인턴쉽 해주는 공간이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 모습을 지켜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의 모습을 허물어버린 순간 교회가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인턴쉽 받으러 가는데 인가요? 교회가 세상 교육 받으러 가는 곳인가요? 교회는 지옥 가는 우리 인생, 재앙과 저주 속에 빠진 우리 인생이 예수님 믿고 천국 백성으로, 어떻게 하면 거룩하게 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 뜻대로 살까 어떻게 하면 믿음의 길을 갈까 그것을 가르쳐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온 맘 다해서 예배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엘리트 만나러 가는 곳이 아닙니다. 교육 받으러 가는 곳이 아니란 말입니다. 인간관계하러 가는 곳이 아닙니다. 저 교회 가면 사업 성공한 사람들이 많은데 조금 도움 받을까? 아닙니다. 교회가 그것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한국 교회가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원래 해야 할 역할. 여러분 인턴쉽은 세상에서 돈 주고 받으세요. 자기개발은 자기개발 강연에 가서 받으면 됩니다. 그것은 교회에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복음을 말해주는 곳이고 성경을 가르쳐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 역할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른 것을 의지합니다. 왜 목사님은 신앙서적만 추천하냐고 합니다. 목사가 신앙서적을 추천하지 어떻게 일반서적을 추천할 수 있나요.

 

- 강력한 지도자들의 몰락, 소년들이 왕을 하는 시대(섭정시대)_이사야3:4-5

 

그가 또 소년들을 그들의 고관으로 삼으시며 아이들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_이사야3:4-5’

 

이것은 예언입니다. 나라가 어떻게 되냐면 소년들이 고관이 되고 아이가 그들을 다스리게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가 다 포함됩니다. 실제로 남유다는 어린 아이들이 국가를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왕들이 자기 아들들에게 섭정을 맡기면서였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입니다. 히스기야와 헵시바가 결혼해서 나은 아들이 므낫세인데 12살 때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조선시대 역사만 봐도 어린 아이를 왕으로 세워놓고 주변에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왕권을 휘두릅니다. 히스기야가 겨우 예루살렘 성 안에서 우상을 다 끄집어냈습니다. 겨우 끄집어 낸 것을 므낫세가 왕 되자마자 다시 원위치 시켰습니다. 므낫세는 친앗수르 정책을 펼쳤습니다. 앗수르의 모든 문화, 교육을 남유다에 다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므낫세는 어릴 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남유다는 앗수르를 따라서 살거야, 앗수르처럼 강력한 나라가 될거야라는 정책을 폈습니다. 하나님이 어린 므낫세에게 악한 왕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것은 실제 미래를 예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라를 어린 아이에게 맡기고 여자들에게 맡긴다고 합니다. 어린아이와 여자는 보살펴야 될 사람들이지만 이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아주 연약한 사람들, 아직 사리분별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기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앗수르의 우상을 므낫세는 예루살렘 성전 앞 마당에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앞에 앗수르의 우상을 가져다 세웠습니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이렇게 하셨지만 우리에게 또 어떤 의미가 있냐면 어린 지도자들 우리가 의지하는 지도자들, 인도자들이 어리고 여자와 아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맹목합니다. 평범한 동네사람이 동네 이장만 되도 우리는 그 사람에게 권력을 줍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마치 진실인것처럼 어떤 신뢰감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투의 힘입니다. 이 나라 정치 지도자들이나 대통령이 말 한마디 하면 다 정답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심지어 크리스천들도 그리스도인들도 누가 지도자가 되면 똑같이 이야기를 합니다. 아니죠 다 어린사람들이고 연약한 여자들입니다. 세상에 누가 믿을 사람이 있고 세상에 모사가 어디 있고 관원들이 어디 있고. 사도 바울이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를 인도할 사람이 어딨냐는 거에요. 우리를 인도할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고 국회의원이 아니고 동네 이장과 면장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라는거에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완전 착각했습니다. 우와 웃시야 왕 대단하다, 엄청 실력이 있네, 물 공급해 오는 거 봐, 양식을 배부르게 먹게 해주잖아. 완전히 하나님을 버리고 지도자들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 얼마나 섭섭하셨겠어요. 내 백성이. 불신자가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깨지는데 전초 사건들로 므낫세 같은 사람이 왕이 되는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까지 갔습니다. 이렇게 우상을 섬기고 부패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아닌 그 어떤 것도 우리는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십자가에서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 속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 그 분이 우리의 인도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하고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데 혹시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고 여자와 같은 연약한 지도자들을 완전 의지하며 따라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목사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완전한 사람은 이 땅에 한 명도 없습니다.

 

- 예전과 다르게 돕지 않는 사람_이사야3:6-8

 

혹시 사람이 자기 아버지 집에서 자기의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네게는 겉옷이 있으니 너는 우리의 통치자가 되어 이 폐허를 네 손아래에 두라 할 것이면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아니하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를 백성의 통치자로 삼지 말라 하리라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_이사야3:6-8‘

 

멸망하기 전에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아버지 집에 형제 중에 누가 있냐면 겉옷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것입니다. 겉옷은 직분을 이야기합니다. 예루살렘 성이 폐허가 되고 이 땅이 부패가 되고 교회는 다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다 산산 조각나고 예배가 무너지고 우상이 가득한 시대에 가정에 겉옷 입은 사람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실력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서 우리는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겉옷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폐허를 네 손아래 두어라. 느헤미야 같은 사람은 겉옷을 입고 가슴 아파서 울며 폐허를 손아래 두었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이야기 하죠? 그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다. 신경 꺼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다. 너희는 나를 백성의 통치자로 삼지 말아라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외면하는 것입니다. 목사들, 장로들, 권사들도 다 외면하는 것입니다. 뻔히 교회가 무너지고 뻔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패하고 타락하고 어둠 속으로 가고 있는데 이때를 위해서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겉옷을 주셨는데 다시 말해서 좋은 직업과 실력, 능력을 주셨는데 이때 외면해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양식 없어, 나한테 그런 부담스러운 것 맡기지 마. 성경은 소리 높여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다. 내가 그것을 왜 고쳐. 뭐죠? 신약에 와서 똑같이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병든 자, 가난한자를 돌보지 않는. 여러분 교회가 많은 엘리트들을 배출해냈습니다. 정치인, 실력있는 사업가들을 배출했습니다. 교회가 대학생들 청년들 공부시키고 교육해서 실력 있는 문화인들을 다 만들어냈는데 정작 교회가 어려울 때 정작 신앙이 필요하고 믿음이 필요할 때 다 외면합니다. ? 자기 겉옷 빼앗길까봐. 여러분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 다니엘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이 왜 멸망했죠?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다.

 

- 정확하고 분명한 죄에 대한 결과들_이사야3:9-11

 

그들의 안색이 불리하게 증거하며 그들의 죄를 말해 주고 숨기지 못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_이사야3:9-11‘

 

하나님은 반드시 보응하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과응보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점차 이사야를 강해하면서 설명이 되고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셈하시고 반드시 그것을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입니다. 죄는 열매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당장은 열매를 맛보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은 150년 뒤의 이야기입니다. 이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물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살기 좋았습니다. 너희가 이렇게 될거야 예언을 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시편에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저 높은 곳에 있기에 나와는 상관이 없어. 내 길은 견고해. 나는 괜찮아. 내가 지금 뭐 하나님이 나를 심판하시겠어. 이 정도는 괜찮아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50년 뒤에 그들의 자손, 후손은 예언대로 완전 멸망했습니다. 소돔과 같이 멸망했습니다. 영혼에 화가 있다고 합니다. 내 영혼에 화가 있다는 것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사실 환경이 무너지고 교회가 무너지고 경제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짜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는 양심에 화임 맞았다고 하죠? 예수님 안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 믿고 부자 되고 떵떵거리고 놀러 다니고 신난다 행복하다. 죽으면 알게 될 것입니다. 지옥이라는 것을. 인생 금방 끝납니다. 80년 금방 지나갑니다. 중요한 것은 뭐가 무섭죠? 내 자손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그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너희가 지금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고 있는데 150년 뒤에 어떻게 멸망할 것인지 봐라. 너희 자손들, 너희 후손들 예수님 모르는 시대가 올 것이다. 저는 솔직히 말해서 그것이 제일 두렵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우리 자녀들이, 제 어린 아이 한빈이, 윤빈이가 커서 교회를 다니지 않고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끔찍합니다. 그럴순 없습니다. 그렇게 돼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 때문이라구요? 내가 지금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그의 은혜를 간구하고 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자녀들은 그런 댓가를 치룬다고 합니다. 저는 내년에 코로나 시대가 끝나자마자 교회 주일학교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몇 년간 올인을 하려고 합니다. 모든 에너지를 다 쏟겠습니다. 교회의 모든 재정, 교회 모든 중직자들의 힘과 능력, 하나님이 주신 축복들, 여러분이 가진 기능들, 증거들을 하나님이 왜 주셨을까, 왜 우리에게 겉옷을 주셨을까? 우리에게 왜 이런 축복을 주셨을까? 우리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하라고. 저는 우리 교회가 조금 힘들고 어려워도 주일학교 신앙교육 시스템, 성경공동체 주일학교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끼리 예수님 잘 믿고 잘 먹고 잘 살면 우리끼리 천국가면 그만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 아닙니다. 죄는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숨길 수 없습니다. 죄는 언제나 재앙을 마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지, 왜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겠다고 했는지, 왜 내가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하는지.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을 사실로 믿어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기뻐하고 그것 때문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죄를 이기지 못하면 보응을 받습니다.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회개하고 벗어나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서 벗어날 수 있고 죄에서 해결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그것은 옛날에 어렸을 때 수련회 가서 받은 거라고 생각하고 착각한다면 우리는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왜 사람들이 별거 아닌 것들, , 음식, 정치 지도자들, 경제인들,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났던 것을 의지했냐면 내 삶에 아주 예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사실, 내가 주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없는. 그래서 너무 편리한 것을 쫓아가다 보니까 내게 윤택함을 주고 내게 번영을 주는 것을 쫓아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 내 안에 예수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사라졌습니다. 구원의 은혜도 사라지죠, 감사함도 사라지죠, 천국의 기쁨도 사라지죠. 나중에 거기에 쾌락이나 세상 즐거움이 들어오기 시작하죠. 그러면 뭐가 없어지나요? 신앙이 당연히 사라지게 됩니다. 내가 왜 힘든 신앙의 길을 가야 돼? 내가 왜 힘든 믿음의 길 가야 돼? 내가 왜 힘든 신앙을 지키고 거룩하고 분별 되서 신앙의 길, 은혜의 길을 가야 돼? 나중에는 질문하며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는, 다시 말해서 내 인도자가 나는 양이고 나를 인도하시는 분은 목자이신데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두려움이 없다. 하나님이 나를 인자하심과 선하심으로 인도하시는데 기쁨이 넘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을 의인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의인은 스스로 의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변화된 삶을 사는 사람을 보고 의인이라고 합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의인에게 하나님께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시냐면. 오늘 31절부터 12절까지 읽는동안에 다 어둡고 무섭고 저주, 진노의 이야기만 하시다가 10절에서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이요. 의인은 뭐가 있다구요? 행위가 있다구요. 믿음의 행함.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잖아요. 죄에도 열매가 있지만 믿음에도 열매가 있습니다. 의인에게 복이 있습니다. 어떤 복인가요? 그 복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_이사야3:12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다스리는 자는 여자들이라 내 백성이여 네 인도자들이 너를 유혹하여 네가 다닐 길을 어지럽히느니라_이사야3:12‘

므낫세 같은 왕도 그렇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학대하는 사람들도 아이라고 합니다. 학대가 뭐에요?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뒤에 보니까 내 백성이여 네 인도자들이 너를 유혹하여 네가 다닐 길을 어지럽히느니라. 우리가 다녀야 할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믿음의 길을 가야 되고 신앙의 길을 가야 하지만 그것을 어지럽힌다고 합니다. 지금도 악한 영, 사단, 마귀, 귀신은 우리를 미혹합니다. 악한 영들은 우리를 미혹하는데 다 알게 미혹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느끼지도 못하게 정치,경제,사회국가시스템을 다 동원해서 미혹합니다. 음식, 물로 우리를 미혹합니다. 무엇을 잃어버리게 하죠? 우리가 가야할 길을 어지럽힙니다. 사단 마귀가 우리 마음에 늘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사단 마귀의 미혹에 목사라도 넘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늘 확인해야 합니다.

 

- 누가 나의 인도자가 되어 나를 이끌고 있는가?

 

신앙인이라면 항상 다윗은 늘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여러분 우리의 인도자가 누구입니까? 세상 정치인들입니까 권력자들입니까 요술자입니까 군사입니까 물입니까 음식입니까. 그런 것들이 우리를 인도한다면 우리의 끝은 허망할 뿐이고 공허할 뿐이고 멸망일 뿐입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만약에 눈에 보이는 화려한 우상,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주고 성공을 가져다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따라간다면 진짜 큰일 납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 우리를 구원하신, 그냥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우리가 고통당해야 하는데 우리가 영원히 지옥가야 하는데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고난당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침 뱉음 당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체휼하신 그 주님,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인도자가 아닌가요? 예수님을 따라가야 우리는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고 의인으로 살 수 있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 인도자들이 너를 어지럽게 하는데 네가 다닐 길을 어지럽히는데 그 인도자가 맞느냐? 질문하십니다. 우리의 인도자가 예수 그리스도인가요? 신앙공동체가 타락하고 무너지는 것, 어리석은 인도자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가 무너지면 이 공동체 무너지겠죠. 아이요, 여자라 지칭되는 지도자들. 아이, 여자를 비하하는 발언이 아니라 사리분별 안되는. 여러분 한빈이에게 이 교회를 맡기시겠습니까? 유치부, 초등부 아이들에게 교회를 맡기시겠습니까? 유치부 아이들 매일 초콜릿만 살 것입니다. 교회예산으로. 그러면 큰일나겠죠. 남유다의 역사를 보니 이들은 전부 경건치 못하고 사악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신앙의 길을 가로막고 믿음의 길을 가로막고 다른 길을 가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들은 목자를 따라가야 합니다. 양들이 이리를 따라가거나 늑대를 따라가면 저기 좋은 풀이 있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양은 오직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보호하는 목자를 따라가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오늘 그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오직.

 

- 사소하고 작은 것들: 유다는 작정하고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나 이제 하나님을 외면해야지, 하나님이 나의 인도자가 아니야, 나는 이제 우상을 인도자삼고 정치인을 나의 인도자 삼고 좋은 환경을 나의 인도자 삼아서 갈거야 라고 작정하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그렇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남유다는 작고 사소한 것들. 누가 봐도 일반적인 것들을 그들은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큰 죄인지, 우리를 무너뜨리게 하고 멸망시키게 하는 것인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왜요?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물이 뭐가 특별하고 음식이 뭐가 특별하나요? 정치 지도자들, 군사들이 뭐가 특별하나요? 우리 일상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들 사이를 가로막고 분열시켰고 결국 하나님을 인도자로 인정하지 않게 만들고 결국 하나님을 외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작정하고 외면한 것이 아닙니다. 조금 괜찮겠지, 하나하나 챙기고 하나하나 소유할 때마다 하나님을 버린다고 누가 생각을 했을까요? 웃시야 왕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나라가 멸망할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요? 사소한 것들이 결국 그들을 지배해 버렸습니다. 지금 미국 교회가 정말 힘들게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 주일 성수입니다. 왜냐면 미국교회가 한동안 스포츠 문화, 레져문화가 발달해서 성도들이 일요일 에 레져를 가고 스포츠를 보러 가니까 어떻게 하지 하다가 아예 예배를 토요일로 만들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금요일 밤부터 주일 1부 예배가 시작됩니다. 금요일에 예배드리고 놀러가라고 교회가 아예 만들어 줘버린 것입니다. 괜찮겠지, 사소한 것들이 지배해버렸습니다. 미국이 끔찍한 일을 겪었습니다. 자녀들이 마약문제라든지, 동성애문제라든지 그래서 다시 보수주의 미국 교단들이 주일 성수를 회복하려고 하는데 너무 오래된 습관이라 회복이 안되는 것입니다. 이미 다 중독이 되어 버렸습니다. 스포츠나 레져나 여행가는 것에 중독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미 삶은 편리해져버렸습니다. 이미 잘 먹고 잘 사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작은 거 하나가 예루살렘을 무너뜨린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에이 나 하나쯤 괜찮겠지. 그 작은 거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서게 만들었습니다.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_하박국3:16-19

 

하박국 3장을 다시 볼까요.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_하박국3:16‘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모세오경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이게 틀린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이것이 틀린 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선택하면, 우리가 신앙을 선택하면 고난이라는 것이 와요. 그것을 예상하면서도 믿음을 선택할 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_하박국3:17-18‘

 

이 기쁨, 이 즐거움이 우리에게 있을 때 어떻게 되나요?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_하박국3:19‘

 

어둠이 가득한 시대에 깜깜함이 가득한 시대에 우리가 그 위에서 살게 해주신다고 하십니다. 다른 삶을 살게 만들어주신다고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고 주의 복음을 전하며 병든 자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사는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게 만들어주신다고 합니다. 뭐가요? 하나님 음성 듣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삶이 우리를 이 땅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해주신다고 합니다. 연예인들 중에서도 신실한 크리스천이 있습니다. 신애라씨, 최강희씨. 전혀 다릅니다. 삶이 다릅니다. 차인표씨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은 1년에 1달 정도를 봉사활동을 간다고 합니다. 영화배우가 1년에 1달을 빼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든 드라마, 영화를 계약할 때 이것을 약속으로 넣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가난하고 병든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차인표씨 정도 되면 교회 오면 대접받고 가야하는데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하고 봉사활동 하고 다 합니다. 왜요? 그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기쁨과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남과 비교하거나 우쭐대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속는 거였습니다. 내가 겉옷을 입었는데 말이야. 예전에는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갑자기 성공하고 나서는 예루살렘 성이 폐허가 되었는데 나 집에 돈 없는데 아무것도 없어 못 도와줘, 고치는 사람 안 될거야. 이렇게 변해버렸습니다.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절대 파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예수 보혈의 피로 모두가 다 똑같이 죄인인 우리가 구원 받아서 감사한 사람들만 있는 것입니다. 누구는 죄를 많이 지어서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한 바가지 필요하고 누구는 죄를 조금 지어서 보혈의 피 한 방울이 필요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보실 때 우리는 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단지 우리가 구원 받고 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대로 신앙을 감당하고 사명을 감당한 것뿐입니다. 정말 구원의 은혜가 우리 삶에 회복되면, 정말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면 우리의 삶이 정말 힘들고 어렵더라도 내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그 기쁨 때문에 우리는 사슴처럼 세상과 영향 받지 않고 세상 위에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난하냐 가난하지 않냐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업이 좋은 거냐 나쁜거냐 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멋있고 아름답고 믿음의 사람으로 신실하게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가난하지만 주의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고 내 비록 배우지 못해서 연약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존경할 만큼 정직하고 바르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이 어디에 있냐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나를 인도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나를 구원해주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내 죄 문제를 해결해주신 그분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면 세상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무너져가는 것을 보고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다니엘이고 느헤미야입니다. 성벽이 다 무너졌는데 느헤미야는 그것을 보고 근심하고 기도했습니다. 그거 안 해도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여호와의 백성이고 의인인가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 우리의 환경은 지금 힘들 수 있습니다. 상황은 나빠졌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기쁨을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갑자기 직장을 잃어서 기쁨이 사라졌다. 그러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전에 좋은 직장 때문에 기뻐하셨다는 거잖아요. 안정된 삶 때문에 기뻐하셨다는 거잖아요.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것으로 기뻐할 수 있는 신앙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기쁨,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기 위해서 사는 사람, 죄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날마다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세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 복음을 전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우리가 그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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