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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8-3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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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3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본 문 

이사야3:13-4:6

 

 오승주 목사

 

Ⅰ. 심판하시는 하나님_이사야3:13-15

 

 이사야서를 순서대로 설교하고 있고 강해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중요한 내용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있습니다. 가스펠교회 성도님들이 설교를 들을 때는 그냥 설교를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들을 반드시 묵상하고 성경을 읽고, 하나님 말씀이 설교 한 편을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확인하는 시간이 꼭 있기를 바랍니다. 수요일마다 청년들과 함께 청년묵상을 통해서 주일 말씀을 확인하는 시간이 있는데 성도님들도 시간이 되시면 같이 들어오셔서 들으시면 유익하리라 생각이 듭니다. 성경 읽는 속에서 설교 말씀 속에서 연결이 되는 말씀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읽기도 게을리 하시면 안된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3장 13절-15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_이사야3:13‘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보면서, 특히 코로나 19사태를 보면서 하나님 어디 계신가, 왜 잠잠하고 계시는가,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데 왜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가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을 심판하려고 서신다고 분명히 약속되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중보기도 시간에 다윗의 시편을 통해서도 분명히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악인과 의인을 심판하시고 모든 것을 감찰하신다고 합니다.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때 우리의 믿음, 신앙, 고백을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시니 힘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헛되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했을 때 왜 이렇게 악인들은 잘 되는거 같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감찰하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도다_이사야3:14-15‘

 

이것이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이 심판하러 이 땅에 오셨는데 제일 먼저 심판하시는데 불신자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고 성도들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지도자들을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왜냐 그 심판의 이유가 무엇이냐면 포도원을 삼켰다고 합니다. 포도원이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 땅에서의 사명이 포도원입니다. 영혼구원 하는 사람이 포도원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포도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혼들, 지경들, 사역들,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명들이 포도원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이 삼켰다고 합니다. 삼켰다는 표현을 뒤에 풀이해주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 집에 있도다. 가난한 자는 교회에서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에게서 물건을 탈취했대요. 그러면서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 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며 목사로서 회개를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영적인 지도자들부터 먼저 심판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맡겨주신 공동체, 한 영혼, 백성들을 삼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포도원은 이 시대가 될 수 있고 여러분의 가족이 될 수 있고 여러분의 믿지 않는 남편과 아내 자녀들이 될 수 있고 인생 중에 만나는 수  많은 영혼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목사, 장로는 아니지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주셨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영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삼켜버렸다. 탈취한 물건들이 너희 집에 있구나.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을 하는구나. 하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을 소개해서 그 영혼들이 하나님께 가도록, 예수님께 가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내 집에 둬버립니다. 아주 악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목사님들이 성도들을 내 교회, 메시지에 가둬버리고 하나님께 안내를 하지 않고 성경을 읽히지 않습니다. 중세교회가 그랬습니다. 사제들, 신부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경을 읽히지 않았습니다. 큰 성당을 짓게 위해서 말도 안 되는 면죄부를 판매하거나 이상한 교리들을 만들어서 성도들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들의 집에 가둬버렸습니다. 머리를 짓밟아버렸습니다. 예수님 못 믿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무궁무진한 성령의 역사로 변화 받아서 엄청난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그것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이 타락하고 병들고 구원의 기쁨과 감사 다 잃어버려서 그것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지도자들, 고관들, 장로들 제일 먼저 심판하시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누구를 탓하고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정말 혼란스럽습니다. 코로나 때문에도 혼란스러운데 이념들이 대립하고 집단의 이기주의가 대립하고 싸우고 심지어 교회들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서로 손가락질하고 있습니다. 제가 요즘 뉴스나 언론, 유튜브를 보면서 진짜 비난일색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걸리지 않았어, 나는 괜찮아, 우리 교회는 깨끗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깨끗한가요? 인간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 사고 자체가 교만입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체계가 하나님 떠난 상태입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왜 주셨냐면 우리가 죄를 깨닫게 하시려고 입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죄인줄 모르고 사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죄인이구나,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구나,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예배하지도 않고 영적인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도 않고 세상의 허랑방탕하게 살아가는 죄인이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인정하지 않고 신약만 인정하는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악한 것입니다. 여러분 죄를 깨닫지 않고서 절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는 죄에 대한 회개, 죄를 깨닫게 하는 설교, 구약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죄를 깨닫지 않고 절대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고 깨달을 수 없고 동행할 수 없고 믿고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죄에 대해서 교회가 설명하지 않고 예수님 영접하면 하나님 자녀가 되요, 당신 이제 구원 받았어요 이런 식으로 악하게 사역을 합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편리주의, 목사들이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숫자적인 대중화를 위해서입니다. 한국교회가 죄에 대한 설교, 경고, 죄를 깨닫게 하는 사역들을 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백성을 죽이는 것입니다. 백성의 얼굴을 짓밟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성도가 죄를 깨닫지 않고 그냥 예수님 영접하고 믿고 구원 받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은 평생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의 그 크신 은혜를 영원히 깨닫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구원 받을 수도 없는 상태로. 왜냐면 죄를 깨닫지 않고 은혜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고관들이 하는 일이고 장로들이 하는 일입니다. 어쩌면 저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죄에 대해서 설교를 하지 못했습니다. 죄는 어렸을 때 예수님을 영접할 때 다 해결됬어. 예수님 영접할 때 다 끝났어. 그렇지 않죠? 신학에는 예수님이 올 때를 시작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를 종말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오셨을 때와 재림하실 때까지.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을 신학적으로 D-Day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를 V-Day라고 합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인척상륙작전이 왔어요. 승리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승리를 위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완전한 승리는 전쟁이 완전히 끝날 때입니다. 십자가로 예수님이 오셨을 때는 예수님이 승리하신 그리스도로,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로 우리 인생에 찾아오셨지만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우리 삶에 끊임없이 영적인 싸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죽기까지 죄와 싸우라고 합니다. 이미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싸울 수 있고 죄에서 벗어날 수 있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와 싸울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이지 죄 문제가 다 끝났어, 이제 마음대로 살아도 되, 예수님 영접하는 순간 네 죄 문제 다 끝났어. 그것은 올바른 신학이 아니며 아주 위험한 신학입니다. 한국교회가 그런 신학 때문에, 편리하고 세속화된 신학 때문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지금 보시면 교회 다니는 성도들 중에 몇 명이나 회개하며 살 것 같으세요? 몇 명이나 빛 가운데 걸어가며 빛과 소금으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것 같으세요? 지금 이 시대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을 손가락질 하고 비난하는 것은 어떤 목사님이 지금은 초대교회 같은 시대라면서, 우리가 복음 전파했기 때문에 핍박 받는 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무슨 우리가 복음 전파해서 핍박 받는 시대입니까? 코로나 때문에, 잘못하고 부패하고 부정해서. 지금은 이사야 시대입니다. 회개하려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고 저들이 우리를 핍박한다 똘똘 뭉치자고 합니다. 저는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만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많은 헌금을 해서 얼마나 많은 어려운 이웃을 돕고 그동안 우리가 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정부가 우리를 핍박하느냐.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들은 그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동안 예수님을 의지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해서 신앙생활 하는 것에 교회가 많이 인색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우리의 공로, 교회가 하는 사역들, 우리가 했던거 그걸 몰라주냐,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1907년 원산 장대현 교회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이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전 세계 신학자들, 교회학자들이 대한민국의 부흥운동, 성령의 역사의 시작을 그때로 봅니다. 장대현 교회 외국 선교사들과 많은 그 지역의 영혼들이 거기에 모였는데 그때 말씀사경회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풀어주는데 어떤 역사가 일어났냐면 기적과 같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임하셨는데 성령이 임하셨다는 증거가 회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가 하나님께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1907년에 일어났던 회개운동이 우리나라 전역으로 흩어졌습니다. 불 같이 일어났습니다. 회개운동의 특징이 뭐냐면 그 당시 기록을 보면 정말 충격적입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성령이 임해서 회개하는데 이성적으로 감성적으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천국 가기 위해서 회개해야 하나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왜 이런 회개를 하는 줄도 모르고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무언가 완전히 성령이 감싸서 집에 돌아가서 자기 아내에게 손찌검 했던 것, 그동안 당신 몰래 이상한 짓 했던 것 회개하고 자기 자녀들 앞에 가서 무릎 꿇고 내가 너희들에게 그동안 몹쓸 짓 했던 것들을 회개했습니다. 회개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구원의 소식을 만나고 나니 내 죄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 가서 회개하고 이웃들에게 가서 회개했습니다. 그 당시에 믿었던 사람이 15,000명 밖에 없었는데 1907년 이후로 수십만 명대로 갑자기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회개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다 난리가 났습니다. 왜 저 사람이 갑자기 술을 끊고 여자를 탐하던 것을 끊고 회개하고 자백하고 고백하고. 어떤 수준, 능력, 그 어떤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회개가 사람을 변화시켰고 누구나 할 것 없이 교회로, 예배로 사람들을 몰려들게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회개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죄에 대한 싸움이 있습니까? 죄에 대한 경계함이 있습니까? 이 말은 죄책감을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의 은혜가 감격스러워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성령의 역사를 구하는 신앙이 없고 전부 자기들이 잘났다고 합니다. 너희는 못했고 나는 잘했어. 한국교회가 다 이런 식입니다. 서로 싸우고 비난하고 비방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중국에서 코로나로 우리를 공격한다고 합니다. 그 말이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 앗수르를 들어서 하나님 백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핍박을 주는 것처럼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바벨론, 앗수르와 싸우라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보면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시고 그 다음 나오는 것이 시온의 딸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너무 구체적으로 잘 나와 있습니다. 여자들이 회개하는 마음으로가 아니고 신부, 시온의 딸들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신앙인들,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을 상징합니다. 신부, 여자, 딸이라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은 교회의 딸, 하나님 나라의 딸 다시 말해서 교회를 상징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이야기합니다. 지금 성경은 불신자보고 회개하라고 하지 않고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 보고 회개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들, 구원 받은 언약백성들, 상징적으로 교회들을 시온의 딸이라고 성경은 가리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은 그 당시 남유다의 상류층 여인들의 타락을 비유해서 묘사하고 계십니다. 실제로 남유다의 상류층 여인들이 어떻게 타락했는지 당시 여인들의 타락을 설명하시면서 교회의 타락을 경고하십니다. 

 

Ⅱ. 시온의 딸들의 타락

- 예루살렘 여인들의 오만한 자기 과시_이사야3:16-17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작거려 걸으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가 드러나게 하시리라_이사야3:16-17‘

 

개역개정의 번역이 조금 이상합니다. 원어에 보니까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는 것, 정을 통하는 눈은 야시시한 눈, 남을 꼬시는 눈이며, 아기작거리며 걷는 것은 야하게 걷는 것, 꼬리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뭐에요 다? 타락한 여인을 상징합니다. 그 당시 상류층 여인이 다 이렇게 살았다고 합니다. 교만하고 머리를 들고 아기작 걸으면서 정을 통하는 눈빛으로 남자들을 꼬시는 것이었습니다. 상류층 여인들이 실제로 다 누구와 정을 통했냐면 전쟁 용사들과 힘 있는 남자들, 권력 있는 남자들과 정을 통했다고 합니다. 권력 있는 남자들, 전쟁 영웅들을 만나면 여자들의 인생이 완전 폈습니다. 지금은 판사, 검사, 의사가 최고인가요? 그 당시 최고의 신랑감은 전쟁영웅,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떵떵거리며 다니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가 자랑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는 예산이 많아, 엘리트가 많아, 건물도 있어, 권력 있는 사람들이 많아. 똑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들, 성령과 회개 없이 부흥했다고 교만한 모든 원인들. 목사가 교만하고 성도들이 교만한 모든 것들. 하나님께서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겠다고 하십니다. 정수리는 머리 꼭대기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인데 거기에 예수님을 두지 않고 용사를 두고 강인한 남자를 둔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남자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데 다른 신랑들, 우상, 귀신, 악한 영들을 섬기는 모든 것에 상처가 생기겠다고 하십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내용입니다. 창세기 3장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라. 성경은 놀랍게 구속사로 관통이 됩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그리고 하체를 다 드러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우상을 섬기는 것들, 지금 한국교회의 수치가 다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정확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 여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다 보여줍니다.

 

- 사치스러운 예루살렘 여인들_이사야3:18-23

 

‘주께서 그 날에 그들이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귀 고리와 팔목 고리와 얼굴 가리개와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반지와 코 고리와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 주머니와 손 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_이사야3:18-23’

 

다 여자들이 온 몸을 치장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뭘 덕지덕지 붙였습니다. 교회가 막 사치스럽게 꾸미고 있습니다. 너희 교회가 지금 뭐하고 있냐? 하나님의 백성이 지금 뭐하고 있냐? 사치스럽게 막 꾸미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언약 백성들이 앗수르의 문화, 바벨론의 문화를 동경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 그들이 예뻐지고 잘생겨지고 연예인처럼 사는 것. 바벨론이 파멸의 나라인데 멸망의 나라 앗수르인데 그것을 동경하고 그대로 수입해서 꾸미고 산 것입니다. 그것이 파멸로 가는 길 인줄도 모르고.

 

- 버려진 여인들_이사야3:24-4:1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기를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 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수치스러운 흔적이 아름다움을 대신할 것이며 너희의 장정은 칼에, 너희의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_이사야 3:24-25’

 

이것은 언제 벌어지는 일인가요? 이런 사치스러움, 화려하게 교회들이 꾸미는 것이 어떻게 다 빼앗기고 썩은 냄새가 나고 사치스러운 것이 수치스럽게 되냐면 자기가 의지했던 용사들이 멸망할 때, 의지했던 장정들이 칼에 무너질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벨론, 앗수르에게 멸망 당할 때입니다. 몸에 장식하고 있는 여인들, 상류층 여인들이 포로로 끌려갈 때 다 빼앗기게 됩니다. 씻지도 못하고 냄새나게 됩니다. 상류층 여인들이 향수 뿌리고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나라가 망해서 포로가 되어버렸는데. 교회가 이것저것 치장하고 꾸며도 하나님의 진노로 재앙이 들이닥치는데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가르치던 세속적인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교회 건물이 아름다운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교회 안에 엘리트가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가르치던 세속적인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심판 앞에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 가족은 교회를 몇십 년 다녔고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이렇게 성공하고 잘되고 있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멸망 앞에 우리가 진짜 예수님이 없고 구원의 은혜가 없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이 되지 않고 아무것도 없다면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성경은 아주 냉혹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들이 버려졌습니다. 전쟁을 하면 용사들을 다 죽이고 어린아이와 여인들을 포로로 데려갑니다. 그 당시에는 장정들 눈을 다 뽑았고 사지를 찢어서 죽였습니다. 여인들, 아이들이 의지할 것이 없고 그래야 바벨론, 앗수르에 대해서 공포심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이 꼬시던 것들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교회가 의지하던 것들을 다 빼앗아 가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용사들, 장정들 다 빼앗아 가면 교회에 썩은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예수님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던 교회들 다 썩은 냄새가 나게 됩니다. 하체가 다 드러나게 된다고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나 세상을 의지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치스럽게 했던 것들 다 빼앗기고 냄새나고 비참한 노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하는데 세상 것으로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어떤 곳인가요? 교회는 뭐하는 곳인가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하는 곳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은혜가 흘러나와야 하는 교회가 세상 것으로 가득차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희가 회개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만든 너희 지도자들, 백성의 자로들 먼저 너희를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냥 그렇게 두시지 않으십니다.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폐하여 땅에 앉으리라_이사야3:26’

 

완전히 황폐하여 땅에 앉게 됩니다. 그런데 은혜의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4장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 우리가 수치를 면하게 하라 하리라_이사야4:1‘

 

일곱 여자가 뭔 줄 아시겠죠?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한 남자가 누구겠어요? 여기서는 한 남자이지만 원어에서는 The Man 예수 그리스도, 오직 한 남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유일하신 우리의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습니다.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성문은 슬퍼하고 곡하며 시온은 황폐하여 땅에 앉으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전부 구약을 상징합니다. 구약은 전부 땅에 앉아버렸습니다. 슬퍼해버렸습니다. 나중에 말라기 선지자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데 말라기 선지자가 끝나고 무려 400년 동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성경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하나님이 무섭습니다. 400년은 5-6세대가 되나요?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완전 바닥을 쳤습니다. 어둠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 세례요한이며 그리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우리 인생을 향해서 무슨 말인가요? 우리가 철저하게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으면, 예수그리스도가 자기 땅에 왔는데도 그들은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빛이 그들에게 비추었는데 빛인 줄 모르고 외면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는 것입니다. 수치를 면하는 것. 우리가 영원히 버림받아 지옥에 가는 것. 하나님 백성의 가장 큰 수치가 뭐냐면 하나님께 버림 받는 것입니다. 지옥 가는 것입니다.그것을 면하기 위해서 남자를 붙잡는 것. 하나님의 은혜로 이사야서에 흐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에게 언약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떡을 먹겠다, 우리 옷을 입겠다 무슨 말이에요? 세상 옷을 입고 있었어요,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제서야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옷을 입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양식을 먹겠다. 광야에서 주셨던 말씀의 양식을 먹겠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다시 먹겠다. 우리 옷, 하나님 백성의 옷을 입겠다. 회개하고 우리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옷이 있고 자신들이 먹어야 할 떡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입어야 할 옷이 말씀이고 우리가 먹어야 할 떡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았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나요? 4장 2-6절은 이사야서를 관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입니다.

 

Ⅲ. 하나님의 은혜 :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 여호와의 싹_이사야4:2, 11:1, 예레미야23:5, 33:15, 이사야53:2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_이사야4: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_이사야11:1‘

 

이새의 줄기에서. 이새가 누구인가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_예레미야23: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_예레미야33:15‘

 

이 가지, 싹은 다 무엇을 상징합니까?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_이사야53:2‘

 

하나님이 연한 순, 싹을 나게 하신다고 합니다. 거기서 가지가 나게 하신다고 합니다. 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철저하게 예수여야 합니다. 교회의 목적, 목사의 계획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에 예수의 싹, 예수의 가지가 여러분 인생에 나타나는 것이 구속사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으면 거기에 싹이 나기 시작합니다. 나중에 싹이 가지가 됩니다. 가지가 되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인생에 예수님이 싹으로 시작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그 싹이 쉽게 나지 않습니다. 가뭄, 비바람도 지나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서 수많은 풍파를 겪게 됩니다.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깊이 뿌리를 내린 하나님의 싹이기 때문에 그 풍파를 다 견디고 나중에 가지가 됩니다. 거기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복음이 싹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다 죽고 말라비틀어지고 허망하게 사라집니다. 여호와의 싹이 우리 삶에 자라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에 우리 자녀들도 붙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이 열매로 맺히는 것입니다. 그 싹, 가지의 열매는 우리입니다. 나, 내 자녀, 남편, 아내가 구원의 열매입니다. 신앙생활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어디 무슨 직업을 가졌냐, 교회가 몇 명 등록해서 부흥했냐, 내 삶이 얼마나 잘 풀렸냐가 응답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가 내 삶에 가지로 쭉쭉 뻗어나서 내 자녀들이 거기에 주렁주렁 구원의 열매를 맺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소개해주고 만나게 해주냐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런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썩은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 피난한 자, 남아 있는 자, 머물러 있는 자,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_이사야4:3-4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_이사야4:3-4‘

 

이것을 신학계에서는 남은 자 사상이라고 합니다. 남은 자 신학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겨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이것을 예수님께서 뭐라고 이야기 하셨냐면 요한복음에서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는 자. 임마누엘 하는 자에게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우리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겨주신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더러움이 언제 씻길 수 있냐? 언제 깨끗해질 수 있냐?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죄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우리 죄를 깨닫게 하시는 거고 소멸하는 영, 성령의 영으로 죄를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없으면 죄를 깨닫지 못하고 죄를 깨닫지 못하면 예수그리스도 보혈의 피로 우리가 씻김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두 영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꾸 복음주의자 목사님들이 구약 몰라도 된다, 예수님만 알면 된다, 예수님 영접만 하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니요. 그것은 정말 잘못된 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바울이 가장 중요하게 쓴 성경 중 하나가 로마서, 갈라디아서인데 거기에서 계속해서 율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요? 율법이 없으면 우리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북이스라엘, 남유다의 선지자들에게 통해서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칩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축복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네 민족을 큰 민족으로 이루겠다. 너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오게 하겠다. 수많은 축복들을 아브라함에게 하셨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430년 뒤에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십니다. 그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죄인인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를 하고 있을 때도 자신들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시내 산에서 율법, 모세오경을 받고 나서야 아 우리가 죄인이구나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살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살 수 있는 것은 내가 복음 안에 살고 내가 예루살렘 안에 있고 예루살렘 성안에 살아있는 생존자로 머물러 있는 것은 심판하는 영으로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회개할 때 죄를 깨달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뭐에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안되구나, 예수님이 내 인생에 없으면 안되는구나, 예수님이 아니면 나는 살 수가 없구나 정말 예수님이 내게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 성도들 예수님이 진짜 내 구세주이고 구원자고 오직 예수인가요? 왜 아니죠? 죄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옛날에 어렸을 때 수련회 가서 구원의 길로 영접하면 끝나는 존재. 예수님 내 안에 계세요, 하늘 보좌에 계시구요, 영접했더니 내 안에도 계세요. 매일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까이하고 사모하고 아침마다 저녁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셔야 은혜와 진리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매일 찾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매일 찾으십니까? 찾지 않습니다. 왜요?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율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라는 남자를 찾지 않고 용맹한 남자, 돈 많은 남자를 계속 찾습니다. 교회가 계속해서 그런 것을 찾습니다. 세속적인 성공의 법칙을 찾습니다. 교회가 완전 타락했다는 것은 술 먹고 난장판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찾지 않는 것이며,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가 회개가 없는데 어떻게 불신자들에게,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그들에게 사랑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까? 교회가 회개가 없는데, 교회가 예수님을 찾지 않는데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의 문제의 해결자라고 말해줄 수 있습니까? 저들이 볼 때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인 것입니다. 볼 때는 사치스럽게 걸어 다니고 고개를 쳐들고 걸어 다니고 귀걸이 하고 향수 뿌리고 걸어다니는데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교회입니다. 그들이 말한 복음, 예수 듣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구원의 감사, 감격, 십자가, 매일 매일 예수그리스도로 인해서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는 신앙의 은혜가 없는데요. 회개가 없으니 이것 또한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더러움을 씻기시겠다고 하십니다.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겠다고 하십니다. 언제요? 우리의 죄를 깨닫고 오직 예수 십자가를 의지할 때. 우리 죄를 다 씻기신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더러운 피를 맑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공로, 능력, 수준, 내가 의지하는 용사와 장정으로 우리의 더러움, 냄새가 씻기지 않습니다. 어떻게 씻기시냐?

 

 - 더러움을 씻기시며_이사야4:4-6, 6:3, 시편26:8, 63:2, 요한복음1:14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_이사야4:5-6‘

 

이것이 무엇인가요? 더위를 피하게 하시고 비바람을 피하게 하시며 우리를 숨겨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것이 무엇인가? 힘들고 어려운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살면 살수록 어렵습니다. 아닌가요? 저는 믿음으로 살수록 곤란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냥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살면 목회도 쉬울 거 같은데 믿음으로 살려고 하니까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여러분 삶에서 믿음을 지키고 산다는 것, 정직하고 정의롭고 공의롭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요. 왜냐면 세상은 전부다 불법이고 타협이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면 손해 보는 것 같고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저 진짜 외롭거든요. 우리 성도들이 있어서 덜 외롭지만. 그 속에 하나님이 초막을 지어서 그 위에 영광을 두시겠다고 하십니다.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겠다고 하십니다. 영광이 떠나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초막이 뭐에요?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여러분 죄를 깨달은 사람이 복음도 받을 수 있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죄를 깨닫지 못하는데 영접기도하고 구원 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돌팔이 의사와 같은 것입니다. 병원 갔는데 병명도 모르는데 수술 받으라고 하면 돌팔이입니다. 내 죄를 깨닫지 못했는데 예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죄를 모르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나요? 어떻게 치유를 받고 고침을 받을 수 있나요? 은혜가 어디에 있냐면 죄를 깨닫는 곳에 있습니다. 내 죄의 더러움을 깨달아야 씻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알려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죄를 깨닫고 십자가를 깨닫고 은혜로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초막을 주셨습니다. 초막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더위를 피하게 하시고 풍우를 피하게 하신다는 말은 세상을 살면서 이것을 겪는다는 것인데 이것을 피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_시편26:8‘

 

다윗이 이 고백을 어디서 했냐면 성전에서 한 것이 아니고 사울왕을 피해다니는 광야에서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라고 고백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_요한복음1:14‘ 

 

다윗이 고백하던 주께서 계신 집,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이 은혜입니다. 은혜가 우리의 초막입니다. 은혜가 무엇인가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은혜이고 예배입니다. 그가 내 안에 거할 때 그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보기 때문에 천국을 봤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봤기 때문에 세상 풍파, 고생 다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풍파, 고생이 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영광을 봤기 때문에 위로를 받으며 묵묵히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언제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실 때. 성경에 보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는 과정, 즉 성화의 삶.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다고 하죠. 그 삶을 평생 성령께서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성화의 삶. 그런데 자꾸 한국교회는 성화의 삶, 변화를 다 빼버렸습니다. 교회만 잘 다니면 되, 십일조만 잘하면 되, 구원 받았으면되, 성공해야해, 성공해야 복음 잘 전할 수 있어. 아니요 복음 못 전합니다. 다 썩게 됩니다. 성화의 삶을 다 빼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해지고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는 삶을 다 빼버렸습니다. 성경 읽어보세요. 신약성경 바르게 읽어보세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나요?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거룩을 가르치고 경건의 능력을 가르칩니다. 그럴 때라야 우리가 세상에 건강한 교회로, 복음을 말해줄 수 있는 교회로, 저들의 문이 열리는, 저들의 마음 문이 열리는, 시대의 능력 있는 교회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사는 지 지금 이 시대, 확인할 때입니다. 진짜 예수 믿고 있는지 확인할 때입니다. 제가 은혜를 회복하고 나니까 죄가 사라졌습니다. 죄가 언제 사라지냐면 은혜가 회복되면 사라져요. 죄와 죽기까지 싸우라는 말은 우리가 죄를 깨달으라는 말이고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죄는 사라집니다. 어둠은 빛 앞에서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은혜를 어떤 목적, 단어, 응답이라고 생각하는데 은혜는 예수님이며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에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고 말씀을 믿고 붙잡을 때 우리 삶은 놀라운 수치를 면하게 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말씀이 나올 때,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생활이 필요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능력으로 살면 절대 변화되거나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살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사는 그런 변화된 삶, 거룩한 삶,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말씀에 순종할 때만 가능합니다. 남유다가 왜 타락했냐면 말씀을 듣긴 들었지만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하나님 말씀 뜻대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믿음이라고 하냐면 내 상황과 맞지 않는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진짜 우리가 용서하면 회복이 되? 원수도 사랑해라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평양 대부흥운동 때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면서 죄를 회개하래, 남편한테 가서 회개하고 아내한테 가서 회개하고 아이들에게 가서 회개하고 술 끊고 너희가 지었던 죄를 다 회개하고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실거야라고 말했는데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살았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주시고 아멘하고 했더니 난리가 났습니다. 집집마다 회개하고 사랑이 회복되고 화목한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전부 타락하고 변질되고 싸우고 집집마다 전쟁터였던 집들이 회개하고 돌이켰더니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복음은 그렇게 전파되었습니다. 그렇게 한국 땅에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회개로. 회개하지 않는 것이 더 수치스러운가요?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이 수치를 면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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