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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10-04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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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04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본 문

이사야 8:1-22

 

 오승주 목사

 

Ⅰ. 마할살랄하스바스_이사야8:1-10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가지고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언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내가 내 아내를 가까이 하매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임이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너희 민족들아 함성을 질러 보아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_이사야8:1-10’

 

- 너희 민족들아 함성을 질러 보아라

 

이사야서 말씀을 계속 보고 있는 상황에 여러분이 점차 이사야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또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향해서, 시대를 향해서 어떤 징조를 보여주고 계시는지 조금씩 선명해질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설교말씀과 여러분이 읽는 성경읽기가 그것들을 더 선명하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말씀을 잘 귀담아 듣고 또 깊이 확인하고 또 여러분이 그냥 읽는 성경읽기가 아니기에 성경읽기를 통해서 더 선명해지길 원합니다. 이사야의 아들이 또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이사야의 아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아들이 태어날 것인데 이 이름을 이렇게 지으라는 것이 아니고 이 이름을 큰 서판에 아예 새겨버렸습니다. 아이가 낳기도 전에 임신하기도 전에 너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실은 마헬살랄하스바스가 구약성경의 가장 이름 긴 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이름이 이름으로 짓기가 좀 그렇습니다. 그 당시의 군인들은 전쟁을 하면 전리품을 가져가고 약탈을 합니다. 짐승도 빼앗아 가고 젊은 여자도 데려가고 금은보화도 가져가는 것이 승리의 쟁취를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야 환영받습니다. 지금도 보이지 않게 경제적인 것으로 전쟁을 하지만 그 당시의 전쟁은 진짜 먹고 살기위해서 전쟁하는 것입니다. 마할살랄하스바스. 빨리 노략물을 가지고 전리품을 서둘러 가지고 빨리 고국으로 가지고 가자 이 말입니다. 전쟁 때 군인들이 쓰던 언어입니다. 승리 했을 때 기쁨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엄청 슬픈 말입니다. 지금 이사야의 아들 이름을 이렇게 지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가요? 남유다에게 경고를 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앗수르와 통해서 북이스라엘과 에돔으로부터 승리하게 되는 것인데 남유다, 아하스 왕은 너무 기뻤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앗수르와 동맹을 맺어서 북이스라엘과 에돔이 앗수르로부터 공격을 당합니다. 사실 공격을 당하는 순간에는 아하스, 남유다는 엄청 통쾌하고 시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예언 하냐면 너희하고 동맹을 맺었던 앗수르가 너희를 칠거야 라고 예언합니다. 너희가 다 빼앗길꺼야. 그래서 이사야의 아들을 통해서 예언하는 장면입니다. 5절에 보니까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은 에돔과 북이스라엘의 왕들입니다.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은 의미가 있는데 상수도 같은 개념입니다. 실로아가 나중에 실로암 입니다. 앗수르와 동맹을 맺어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7절에 이야기를 합니다. 실로아 물이 아닌 더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입니다. 누구를 뒤덮냐면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뒤덮는다는 것입니다. 앗수르가 에돔과 북이스라엘을 칩니다. 물로 비유를 하는 겁니다. 앗수르가 다 칩니다. 거기서 끝나야 되는데 8절에 거기서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에는 신학적인 해석이 굉장히 많이 들어갑니다. 집중해서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앗수르가 북이스라엘과 에돔을 치고 나서 바로 남유다를 칩니다. 아하스는 처음에 북이스라엘과 에돔이 무너졌으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잠깐입니다. 스스로 성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기뻐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온 땅에 앗수르의 물이 흘러 넘쳐서 나중에 남유다까지 완전히 범람시키는 앗수르를 상징해서 예언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임마누엘이라는 단어가 왜 나오죠?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징조입니다. 구약백성들에게 준 징조입니다. 굉장히 역설적인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고 이방과 동맹을 맺은 앗수르를 향해서 베푸신 이 진노가 임마누엘입니다. 우리는 임마누엘이라고 하면 응답,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가 선택한 죄악에 대해서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이야기하시냐면 임마누엘이라고 하시면서 역설적으로 이야기합니다. 9-10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습니다. 10절 마지막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 남유다를 하나님이 엄청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 나를 섬기지 않고 나를 예배하지 않고 내가 준 징조인 임마누엘을 붙잡지 않고 앗수르와 동맹을 맺고 세상을 의지하고 우상을 섬겨? 그래. 한번 계획해봐, 말해봐, 소리쳐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그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데 누가 관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관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로 교회 목사님들이 마귀와 하나님을 대립관계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위험합니다. 대립관계가 아닙니다. 마귀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단은 하나님 허락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결론부분에 말씀드리겠지만 하나님이 마태복음 10장에 참새를 거래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당시는 참새를 현재 돈으로 500원에 거래가 되었습니다. 500원이면 예지, 형민에게 주면 집어 던질 것입니다. 이게 돈이냐, 뭐 500원짜리, 호주머니에 넣어서 세탁기에 돌아갈 것입니다. 신경도 안 쓰는 돈이라는 겁니다. 참새가 그만큼 값어치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참새를 사서 먹었는데 그 거래까지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합니다. 또 그 다음절에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신 바 되었다고 합니다. 머리카락 세는 분 계세요? 없습니다. 이 땅에 그 어떤 사람도 머리카락은 셀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디테일하시고 구체적이십니다. 다 관여하십니다. 지옥도 하나님의 관리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옥에 가면 사단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지옥은 사단을 위해서 사단이 고통 받기 위해서 만든 곳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가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보내실 이를 두려워하라. 지옥을 누가 보내냐면 하나님이 보내십니다. 그걸 두려워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마귀를 두려워하는데 흔히 세상 공중 권세 잡은 자, 악한 영 마귀가 역사하고 있습니다. 죄수는 간수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장, 판사를 무서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판사가 재판을 때리면 끝나는 겁니다. 너 5년, 20년. 서류 조사해보고 모범수로 살았네, 석방 그러면 나옵니다. 간수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심판주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과 남유다 백성들은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심판주 하나님, 구원주 하나님, 하나님이 누군줄 모르는 것입니다.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유익, 이익. 그래서 당장은 내 전략이 먹혔구나 앗수르가 에돔을 치고 북이스라엘을 칠 때 통쾌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어떤 일을 계획해서 이루어지면 대개 좋아합니다. 그 일이 영원한가요? 그 일이 우리 구원과 상관있나요? 그 일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일인가요? 결국 그 일이 우리를 죽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것, 구원을 다 빼앗아 갑니다. 지금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앗수르의 큰 강이 남유다에 넘쳐서 남유다까지 범람할 것이다. 소리쳐봐라. 큰 소리 계속 쳐봐라 아하스 왕. 모여서 계획해봐라. 허리를 동여 메고 노력해봐라 이것입니다. 말해봐 너 말 잘했잖아. 하나님 계획하고 상관없이 너희 계획이면 충분하다며. 임마누엘이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굉장히 중요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자꾸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새신자들에게 목사님, 양육하는 리더들이 괜찮아. 새신자때는 우상숭배해도 괜찮아, 제사 지내도 괜찮아, 죄 지어도 괜찮다고 하는데 괜찮치 않습니다. 그렇게 가르치면 안됩니다. 새신자는 하나님이 약간 봐주시고 그렇습니까? 장로님들은 안 봐주고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공의의 하나님. 죄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그 죄값을 치루는 고통과 고난 속에서 구원과 감사가 있는 겁니다. 다윗처럼 회개하고 다윗은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다 받았습니다. 자녀가 죽고 전염병이 돌고 그런데 왜 다윗이 훌륭한 왕입니까?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을 깨닫고 알아가고 자기의 삶을 구원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변화시켜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가고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범죄함이 그 댓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 안하고 있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님 영접해서 천국가면 되지. 이 말은 정말 어리석은 말입니다. 이 마할살랄하스바스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메세지입니다. 그건 징조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에게서 우리는 벗어나야 합니다. 징조가 왜 중요하냐면 징조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사람들이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지 아시나요? 심판이 당장 없으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안전벨트 꼭 메야해 꼭 메야해, 왜 귀 담아 안 듣나요? 사고를 당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제발 몸에 안 좋은 음식 좀 먹지마 그만 먹으라고 하지만 안 아파봐서 계속 먹습니다. 제가 오래 혼자 살아서 라면을 정말 좋아하고 잘 먹습니다. 병원가서 정말 죽을 수 있겠더라구요. 라면이 그냥 끊어집니다. 라면 쳐다보지도 않고 라면 먹고 싶은데 참아야지 이런 것도 사라졌습니다. 이제 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맛있는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거는 경험해봐서 그럽니다. 죽도록 아팠기 때문입니다. 징조입니다. 저한테는 그 아픔이 엄청 좋은 것이었습니다. 고통스러운 그 질병이 저한테는 징조가 되었습니다. 똑같습니다. 마할살랄하스바스는 하나님이 남유다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깨달았죠?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깨달았습니다. 느헤미야,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에스라, 소수의 선지자와 소수의 정치인과 소수의 믿음의 사람이 깨달았습니다. 임마누엘이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 후손들과 우리에게 구원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Ⅱ. 이사야와 남은 자에게 주신 말씀

 

- 너는 이 백성의 길을 따라가지 말라_이사야8:11-15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려 주시며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 것을 내게 깨우쳐 이르시되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_이사야8:11-15’

 

내가 누구입니까? 이사야입니다. 이사야는 깨닫는 것입니다. 그 징조를 보고 깨닫는 것입니다. 지금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습니다. 그 징조만 보고 깨닫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고 아이가 장성하기 전에 이 일이 다 벌어집니다. 이사야는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소수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두 집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이야기합니다. 누가 이 덫에 걸리지 않고 누가 부러지지 않고 걸려 넘어지지 않고 누가 함정과 올무에 걸려 넘어지지 않나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누가 이 백성의 길을 따라가지 않고 이 시대를 분별하고 이 길이 믿음의 길, 신앙의 길이구나 하고 갈 수 있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왜 두렵나요? 심판주이시기 때문에. 그 분만이 내 영혼을 구원하실 수 있고, 그 분만이 나를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가게 하실 수 있기에.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고 절대자이시고 구원자이신 것을 알면 당연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습관적인 죄들이 많았습니다. 습관들이 죄들이 언제 사라졌나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실 때 죄는 사라집니다. 처음에 저는 습관적인 죄와 싸웠습니다. 또 죄를 짓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살았습니다. 나중에는 그렇게 해서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지 않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하고 멀어지면 습관적인 죄는 또 들어옵니다. 맞잖아요. 사람도 그렇습니다. 내가 좋은 친구, 좋은 사람, 선한 사람과 가까이하고 교제하면 내 삶도 선해집니다. 100%입니다. 좋은 사람과 가까이하고 교제하면 말, 마음도 좋은 사람을 따라갑니다. 맨날 나쁜 사람, 남의 이야기하는 사람, 욕하는 사람, 악한 동기를 가진 사람과 어울리면 나도 따라가게 됩니다. 내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것,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것. 하나님은 사실적이고 실존하시는 분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는 것,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내가 두려워하지 않겠나이다.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는 것. 두렵고 떨리는 경외를 회복하라고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남유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해주고 계십니다.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반역자가 있니 없니, 신앙이 있니 없니, 교회가 이렇니 저렇니, 정말 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의 특징 아시죠? 조선시대에 성리학이 들어왔습니다. 성리학 아시죠? 처음 들어온 성리학이 조선시대 때 양반가문들과 지도계층에서 성리학을 받아들였습니다. 성리학이 솔직히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학자들이 성리학보다 더 나은 학문이 있다고 보완해서 내놓으니 양반가문에서 나라를 어지럽게 했다고 다 죽였습니다. 성리학만이 이 조선을 강하게 할 거야. 지금도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은 처음 들어온 것을 지키려는 심리,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개역개정을 못 벗어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개역개정이 아니면 아닌 것 같습니다. 내년부터 저희 교회는 개역개정과 함께 공식 성경으로 아가페에서 나온 쉬운 성경을 공식성경으로 채택할 것입니다. 훨씬 번역이 잘 되어있습니다. 우리 아이들, 새신자 뿐만 모두가 그 성경을 읽을 때 훨씬 입체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역개정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교단이 인정해서 공식적으로 우리가 보는 성경으로 같이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강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국에 처음 성경해석법이 들어왔는데 영해라는 것이 들어왔습니다. 영해는 영적인 해석입니다. 한국에 처음 들어온 성경해석법이다. 제가 늘 이야기하는 상징적인 해석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지 않고 영적으로만 해석하는 겁니다. 나쁘지는 않고 아주 좋은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문자적으로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성경을 주신 글자체를 받아들이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자적으로 해석했더니 한국교회에서 세대주의자라고 공격하며 문자적인 해석을 폄하시켰습니다. 마치 사이비, 이단처럼. 성경은 두 가지가 다 공존합니다. 영해도 필요하고 문자적인 해석도 필요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한국 신학자들은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에 제 3성전이 우리야, 교회야, 영해 때문에 난무하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놀랍게 지금 이스라엘에 제 3성전이 건축되고 있습니다. 사실인 겁니다. 실존적으로도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 말씀을 너무 우리식으로 재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신앙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다 난도질해서 나에게 맞는 말씀을 가져다 쓰는 것입니다. 내 사업 잘 되게 해달라고, 응답, 축복받게 해달라고. 그래서 성경에서 응답, 축복에 관련된 성경구절을 다 가져다가 재해석합니다. 원래 뜻은 그게 아닌데. 원래 하나님의 뜻, 성경의 뜻은 그게 아닌데. 우리가 그 뜻을 이해하고 받아드려서 우리가 가야하는 신앙이 거꾸로 되었습니다. 맞잖아요. 여러분 서울대를 가려면 서울대가 제시한 기준에 맞춰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아닌가요? 내 자식이 서울대를 가야 된다면 가야되는 아이에게 서울대에서 제시한 기준 중요하지 않아,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라고 하면 못 가는 것입니다. 맞죠? 맞잖아요. 아무리 마음이 예뻐도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그 기술을 써먹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성경의 말씀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성숙이고 거룩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두렵고 떨리는 경외를 이야기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는 경외가 다 사라졌습니다. 우리 삶을 점검해보세요. 전 제 삶을 점검하면서 다 사라졌습니다. 메시지도 있고 구원의 길 메시지도 너무 많이 알고 어떻게 하면 응답받고 어떻게 기도하면 축복받는다 다 알고 있지만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는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경외는 사라졌습니다. 맨날 예배 시간에 지각하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고 섬기는 예배시간 지각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사는데 누워서 과자 먹으면서 예배드릴 수 있을까요? 열심히 예배드리자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두렵고 떨리면서 경외한다면 신앙생활 대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속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물론 겉모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 중심이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진짜 신앙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속지 않으십니다. 반대로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예배도 안 빠지고 열심히 경건하게 양복입고 예배드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래서 구원은 뭐냐?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될 대상자이신 하나님을 알 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영접기도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군지 알 때. 우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구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셨구나,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고 복이구나. 하나님을 알 때, 알아 갈 때 그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자인 줄도 모르면서 내 맘대로 내 뜻 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구원입니까? 그건 구원이 아닙니다. 목사님들이 교회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지 않아서 성도들이 두렵고 성도들에게 함부로 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젊은 목사들이 목사 안수 받았다고 호주머니에 손 넣고 연세 드신 장로님, 권사님 앞에서 설교합니다. 때리고 싶습니다. 설교준비 하나도 안하고 원고도 없이 올라와서 말하고 그것이 마치 실력 있는 목사처럼 성령충만한 목사인 것처럼 합니다. 그리고 뒤에 와서 돈, 명예를 바라는 그것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중국 현지 성도가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농담조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통역을 해서 들었지만 목사님 한국선교사와 미국선교사의 차이점을 아세요? 한국선교사님들이 훨씬 메시지가 좋고 더 뜨겁다고 합니다. 미국선교사들은 약간 밋밋하고 메시지도 부정확한 것 같고 그런데 이상하다고 합니다. 한국선교사들은 본인들이 아프거나 볼 일이 있으면 한국에 들어가서 3-4달씩 있다가 온다고 합니다. 선교대회나 훈련받으러 가면 선교대회 1주일만 하고 와야 하는데 4-5달씩 있다가 안 온다고 합니다.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다. 미국선교사는 그런 법이 없다고 합니다. 예배를 빼먹는 법이 없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고 늘 기도하고 고국에 가서 훈련받을 때는 정확히 휴가를 받아서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선교사들은 자기 마음대로 4달 있다가 갈 때 전화해서 한 달 있다가 갈게, 앞뒤가 안 맞는다 것입니다. 중국성도가 하는 말은 메시지와 삶이 전혀 안 맞다는 것입니다. 제가 엄청 찔렸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렵고 떨림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긴다는 것이 없습니다. 내 맘대로 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 기분, 감정 따라서. 

 

-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 봉함하라_이사야8:16-17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함하라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_이사야8:16-17’

 

이사야에게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고 봉함하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제자들 가운데 봉함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내 제자의 정확한 히브리어 번역은 내 자손들입니다. 남은 자들입니다. 제자가 맞습니다. 이 말씀을 싸서 어디에 가운데 봉함하라고 하냐면 내 자손들 가운데 봉함하라고 합니다. 내 자손들에게 이 언약의 말씀을, 임마누엘의 말씀, 이 징조를 봉함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하십니다.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 야곱의 집에 곧 환란이 닥친다는 것입니다. 앗수르가 공격해오는 것을 하나님이 얼굴을 가려버린다는 겁니다. 곧 포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환란이 오는데 가리지만 그 때 이사야의 아름다운 고백이 있습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아멘. 무얼 기다려요? 어떻게 기다렸나요? 말씀을 싸매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가렸지만 그를 바라본다고 합니다. 가렸는데 어떻게 바라보나요? 이사야도 엄청 고통을 당했습니다. 남유다가 공격받고 포로가 될 때 이사야가 호화생활을 했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특별한 존재로 만드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범죄함으로 다 고통당하면 우리도 고통당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다니엘, 에스라도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코로나가 교회를 피해가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합니까? 말씀을 싸매고. 말씀을 싸매는. 한국교회 성도들 대부분 하나님이 추상적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알 것 같은데 말은 못합니다. 너무 추상적입니다. 어디서 찬양은 들어서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사실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왜요? 성경을 제대로 본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올해 들어서 상담만 수십 번하면서 올해 성경을 읽기가 제 마음에 있어서 상담하면서 물어봅니다. 다른 교회 집사님들에게 성경 읽어봤냐고 물어보면 한 번도 읽어본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내 자아와 죄성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사실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래서 순종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면 순종하게 됩니다. 이 순종이라는 것은 목사님 말씀에 순종해야한다 이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라간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에 그 많은 유혹들, 죄의 유혹들을 떨쳐낼 수 있다는 것이 순종의 의미입니다. 내가 천성을 향해. 그래서 신앙 중에 가장 중요한 한 타이틀을 만든다면 천국을 향한 신앙이어야 합니다. 천국이 믿어지니까 이 땅에서 범죄 하지 않고 천국이 정말 믿어지니 이 땅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고 분별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천국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당하는 고통, 고난, 질병, 아픔, 갈등 해석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질병을 주는지 따져 물을 것입니다. 구원이 신앙의 기준이 되지 않으면 내 사업이 망하면 하나님이 안 계신가보다 라고 합니다. 구원이 기준이라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무 사업, 돈, 돈, 돈하니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지 못해서 하나님이 다 가져가셨구나. 내가 다시 하나님을 모실 수 있고 내가 다시 구원을 바라볼 수 있고, 축복입니다. 지금 은퇴하셨지만 100주년 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께서 설교하실 때 이런 예화를 드셨습니다. 자기 교회에 사업을 아주 잘하는 집사님이 계셨는데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중환자실에 갈 정도로 심각하셔서 회복이 안 되서 거의 수년을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괴로울까요. 목사는 최선을 다해서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목사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곧 죽게 되는 것입니다. 회복을 못하고 끝내 죽게 되어 가족들이 목사님을 급히 부른 것입니다. 갔더니 욕창이 가득하고 호스를 꽂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고 얼굴이 잿빛같이 어두운 것입니다. 이재철 목사님이 다른데 같으면 살려달라고 기도하자고 했을 텐데 잠깐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잠깐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그래서 가족들, 자녀들 다 있는데서 집사님 이제 하나님께 가시죠 라고 했다고 합니다. 가족들 얼굴이 다 잿빛이 되었습니다. 죽으라는 말이잖아요. 이제 하나님께 가시죠, 하나님 기다리고 계신다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호수 꽂고 말도 못하지만 눈에서 눈물이 뚝뚝, 얼굴이 그렇게 밝아지더래요. 구원이 우리 신앙의 기준이 안 되면, 그래서 한국교회의 구원론을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영접기도 따라하면 사영리 따라하면 너 구원받았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땅에서 뭐가 되어야해, 복음전하기 위해서 뭐가 되어야해, 사실은 다 위험한 말들입니다. 아닌가요? 구원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역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사야처럼 우리는 여호와를 기다리며 그를 바라봐야 합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삽니까, 그럼 나머지는요? 나머지는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존재로 모시고 살고 그를 바라보고 살면 나머지 일은 어떻게 될까요? 훨씬 더 건강하게 살고 휠씬 더 내가 가진 복음을 남에게 전하려고 하고 훨씬 더 멋있고 내 사업과 기업들을 알차게 가꾸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서 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렵습니다. 이 설교가 굉장히 어려운 설교입니다. 열심히 살아야지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열심히 살게 됩니다. 그게 청교도주의자들이 고백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사는데 내가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안하고, 열심히 안 살아요.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사는데 목회자가 설교준비도 안하고 대충대충 그럴 수 없습니다. 성도들 쳐다보고 있으면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를 어떻게 안 할 수 있나요, 어떻게 바닥에 엎드려서 눈물로 기도를 안 할 수 있나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존재로 경외하고 사는 목사들은 대충 설교준비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성공을 위해서,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유명한 목사가 되기 위해서, 그 차이점을 구분 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아하스가 그렇게 했다는 말입니다.

 

- 내 후손들에게 징조와 예표가 되어라_이사야8:18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_이사야8:18’

 

우리 자녀들이 그래서 말씀을 봉함하고, 말씀을 자녀들에게 봉함하라고 합니다.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라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이사하기 전까지 계약이 2-3년이 남았습니다. 후대들을 위한 성경교육을 3년 정도 준비해서 그 다음 성전을 여기에 계속 있을지 다른 곳으로 갈지에 따라서 방향이 결정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칠까? 우리 교회 성도님들, 소그룹들이 어떻게 하면 성경을 서로 읽기를 권면하고 그 깨달음을 나누고 기뻐하는 공동체가 될까? 교회 와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고 흉보고 비난하고 비교하고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있는 정말 거룩한 공동체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성경을 배우고 입체적으로 우리 어른들의 삶을 보고. 우리가 교회가 된다는 의미는 내 믿음이 내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삶이여야 우리 자녀들이 볼 때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진짜 예수 믿는구나.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하나님도 아시고 사단도 알고 우리 자녀들도 다 압니다. 아닌가요? 그래서 그 고난의 때에 이 어둠의 때에 우리 후손들이 징표와 예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이사야의 후손들이 누구였나요? 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라였습니다. 소규모 생존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끌려갔지만,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갔지만 환란, 고통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봉함 속에 있었고 여호와를 바라보고 두렵고 떨림으로 경외하는 그 신앙 속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그러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 중요한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Ⅲ.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_이사야8:19-22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_이사야8:19-22’

 

이것이 그 당시의 남유다의 문화였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마술사, 신접한 자들이 누구일까요? 진짜 죄송하지만 남유다는 전부 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 속에 신접한 자, 마술사는 거짓선지자입니다. 목사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로라고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는 신접하고 주절거리고 속살거리는 마술사처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거짓 선지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 교역자들에게 사역으로 압박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역을 검사해서 혼낸 적은 없습니다. 본인들이 물어왔을 때 답은 해주지만. 저는 저희 교회 교역자들을 보는 기준은 신앙입니다. 교역자들 은혜 받고 있나, 하나님을 섬기고 있나, 하나님을 정말 믿고 있나. 많은 교회들이 사역을 합니다. 사역 잘하고 스킬이 좋고 능수능란하면 훌륭한 교역자. 한국교회를 다 망쳐놨습니다. 한국교회 목사들 평균 설교 준비시간이 6시간이라고 합니다. 6시간동안 설교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시나요? 6시간동안 가능하려면 남의 설교를 베껴서 하면 가능합니다. 그 말은 설교준비라는 것이 그냥 원고를 작성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설교준비는 엄청 고통의 시간입니다. 일주일 내내 걸립니다. 우리 교회 시간표도 봐야하고 성도들도 살펴봐야합니다. 하나님도 바라봐야하고 하나님의 마음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본문 살펴봐야하고 배경도 살펴봐야하고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로 하나님이 주시는지도 하나님께 물어봐야 합니다. 말씀을 사람들이 따라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까요? 목사들이 말씀을 따라가지 않는데요. 아하스를 따라갑니다. 거짓 선지자를 따라가면 어떻게 된다고요? 여러분이 나중에 하늘과 땅을 보아도 흑암과 고통뿐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거짓 선지자를 따라가는 것, 따라가지 않는 것도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성도들의 책임입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그것은 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 우리 자녀들에게 그런 분별함을 가르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신천지가 나를 속여서 갔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당신이 선택해서 간 것입니다. 그들이 말이 달콤했기 때문에, 속 이면은 성공하려고 잘 되려고 그런 목사들 따라 간 것입니다. 교회에 극장식 의자로 다 바꾸고 성도들을 위한 교회로 시스템 다 만듭니다. 주일에 교회 와서 졸고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번 주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주일예배를 못 드리는 목사님 어떻게 하죠 이게 정상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목사님이 제가 중요한 바이어 때문에 이번 주 주일예배 못 드립니다. 목사님들이 중요한 일 하시는데 예배가 중요하나요, 돈 많이 벌어서 헌금 많이 하시면 되죠 하나님이 다 이해하십니다. 다 죽었습니다. 영혼이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두렵고 떨리는 신앙 한국교회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율법적으로가 주일예배 빼먹으면 번개 맞습니다라고 하는 그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두렵고 떨리는 경외가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심이여 이 신앙이 사라졌습니다. 또 설교 요약해서 응답받기 위해서는 이거 기도하세요, 이 본문 읽으세요 병 걸릴 때는 이 본문 읽으세요. 성경이 그런 겁니까? 조심하세요. 시중에 나온 그런 책들이 너무 많습니다. 질병을 이기는 기도방법, 사업이 잘 되게 하는 기도방법. 이런 책들 다 찢어 불태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십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맞잖아요. 수능시험 잘 보는 기도방법 이런 것도 나왔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심지어 목사가 썼습니다. 수능시험 잘 보는 100일 기도. 다 찢어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외하는 신앙입니까? 어떻게 그것이 구원의 기쁨과 감사가 있는 신앙을 만들어 줄 수 있겠습니까. 내 자녀들에게 마치 서울대만 가면 네 인생이 끝나, 너 인사 이런 거 안 해도 돼, 어른들한테 인사 이런 거 필요 없어, 서울대만 가면 되니깐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 말씀을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_마태복음10:1-15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_마태복음10:1-15’

 

마태복음 10장의 내용은 예수님이 12제자를 세우셔서 그들을 가르치고 전도하기 위해서 12제자를 파송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가서 천국복음을 전하라고 10장에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7-10절에 보니 하나님이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하십니다. 남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14-15절에 이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이사야의 아들을 통해서 징조를 주셨잖아요. 그것을 안 받았습니다. 그것을 안 받은 사람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이 더 쉽다고 합니다. 사실 소돔과 고모라는 재앙도 아닙니다. 그 이야기를 하시고 계신 겁니다. 구약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천국복음을 사람들이 안 들어요? 그건 그 사람들 책임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_마태복음10:16-20, 시편62:10-12(쉬운성경)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_마태복음10:16-20’

 

지금 세상은 이리입니다. 뱀 같이 지혜롭다는 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면 이리 같은 세상에 속습니다.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우리를 속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세계가 악한 영, 사단이 역사하는 이 땅, 세상이 신접한 자들이 거짓 선지자들이 주절거리는 입, 속살거리는 말, 속살은 속삭여서 우리 마음의 심금을 울리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이 여러분을 유혹하는 것이 1단계, 2단계, 3단계로 마귀가 공격하는 것입니다. 교회 오는 것을 주일날 마귀가 어떻게 공격합니까? 제일 먼저 교회를 못 가게 합니다. 아프거나, 일이 생기거나 합니다. 두 번째 교회 가서 졸게 만듭니다. 말씀 안 들리게 만듭니다. 세 번째 말씀을 들었는데 순종하지 않게 만듭니다. 1단계, 2단계, 3단계 겹겹이 쌓아서 사단을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혜로우라고 합니다. 지혜가 뭡니까? 성경은 한 가지 이야기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 지혜의 근본이다. 하나님을 알면 지혜가 생기게 됩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저희 부대가 120명 되는 작은 부대에서 일했습니다. 소령이신 대장님이 교회를 한명도 못 가게 했습니다. 행사부대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학생이고 예배를 너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 교회를 못 가게 하는 것은 군법에 종교법이 불법입니다. 우연찮게 교회를 가서 공과공부를 해주시는 분이 대령이었습니다. 참모총장 비서셨습니다. 참모총장님이 그 당시 신앙이 너무 좋으셨습니다. 저를 예쁘게 보셔서 신우회 회장을 시키셨습니다. 신우회는 수  천명입니다. 주일날이면 대령 대장님이 본인 공관차를 저희 부대에 보내주셨습니다. 또 공관차 운전병이 신앙생활을 아주 잘하시는 군종이었습니다. 행사 일 다하고 예배드리러 오라고 차를 보내셨습니다. 우리 대장님도 못타본 차였습니다. 제가 그 분만 바라봤죠. 우리 대장, 부대소대장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대장을 바라보지만 저는 최선을 다해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 소대장도 인정하고 동료들도 인정하고 그래서 우리 부대에 주일날 수십 명이 교회에 갈 수 있도록 다 풀렸습니다. 저는 저희 부대에 큰일 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갈수 있도록 주일날을 만들었습니다. 마치 그런 것입니다. 지혜는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합니다. 순결은 무엇인가요?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물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는 성경을 함께 읽고 신앙의 성숙, 순경을 위해서 같이 애써야 합니다. 기독교인에게 최고의 무기는 거룩, 순결입니다. 그게 진짜 무기입니다. 이 세상을 이기는 무기이고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여도 당하지 않을 무기가 거룩입니다. 마귀는 거룩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기억하고 계셔야 합니다. 순결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왜 도둑들이 사기꾼들이 경찰차 지나가면 벌벌 떠나요? 죄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안 지은 사람들은 경찰차가 무섭지 않습니다. 경찰이 수천 명이 둘러싸고 있어도 죄를 지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나는 거룩할 수 있나요? 순결할 수 있나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겁니다. 임마누엘. 그러니 이사야에게 하나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세상이 다 물이 범람해도, 앗수르로부터 포로가 되어도 이사야 너는 걱정 하지마. 이사야가 고백합니다. 나는 그를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그게 신앙입니다. 순결. 누가 몇 년 전에 저에게 유혹했습니다. 목사님 이렇게 하면 교회가 금방 성장할 것 같고 이렇게 하시면 사례도 더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들이 있습니다. 귀가 쫑긋했습니다. 거절했습니다. 그러더니 떠나시더라고요. 그런 중직자들도 있습니다. 오목사 이런거 하면 좋을텐데. 맞아요. 대부분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좋은 조언을 해주십니다. 그분은 그런 조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유혹했습니다. 가슴이 설레는 유혹을 했습니다. 제가 만약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경외하지 않았다면 제가 습관적으로 교회에 와서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유혹에 넘어갔을 것입니다.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데 아니었습니다. 저는 저희 교회가 잔머리 쓰고 사역을 잘하고 스킬을 잘해서 교회가 부흥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의 한 가지 목적은 가스펠교회 성도님들이 천국 가는 것입니다. 오직 그거 하나입니다.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사역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한 평생에 걸쳐서 성경을 읽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만드는 것이 목회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위해서 저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아닌가요? 그게 진짜 사랑입니다. 성도들이 고난 속에 있을 때 그 고난에서 빨리 벗어 나오게 해주는 것이 안 좋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내버려 두라고 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진짜 내버려 둡니다. 왜요? 성도님들의 믿음이 강해지고 성숙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겪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슴을 치며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 목회자 아닙니까. 성도들이 고통 당하고 있으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서 위로를 얻습니다. 그것이 저 성도님을 향한 사랑이구나. 하나님을 알도록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나님이 지금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계시구나. 그래서 마태복음 하반절에 이야기하십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인생이 구원을 받습니다_마태복음10:21-33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_마태복음10:21-33’

 

너희가 진짜 박해도 받고 환란도 받고 어려움도 겪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바알세불을 섬겨라, 다른 신들을 섬기라고 할 것이다. 속지 말아라. 너희가 진짜 두려워 할 것이 있다. 28절. 너희가 누구를 두려워하느냐? 너희 목숨을 앗아가는 환란? 앗수르가 두려워? 두려워 하지마. 고난당해. 포로 돼. 그러나 신앙을 잃어버리면 끝난다. 신앙을 잃어버리면 지옥에 갑니다. 심판이라는 것을 겪어보지 않으셔서 감이 안 오시죠? 우리가 죽고 나서 지옥 간다는 것이 감이 안 오시잖아요.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구원을 위해서 교회가 사역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우리 머리털까지도 세신 바 되신 하나님, 31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절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이것은 복음을 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면서 사는 것이 시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보같이 교회 다니냐, 바보같이 예수님 믿냐, 너 사업 손해 다 보고 예수님 믿냐. 그때 시인하는 것입니다. 내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보내실 이 그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믿음을 지키고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손해 보는 겁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시인해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시인하지 않으면 예수님도 천국에 가셔서 보좌에서 우리를 시인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단은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 신앙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여러분 포기하지 마세요. 낙심하지 마세요.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지었으면 회개를 해야지 낙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살 수 있습니다.

 

‘힘이 있다고 힘을 믿지 마십시오. 훔친 물건에 대해 자랑하지도 마십시오. 재산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 곳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내가 귀담아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또다시 말씀하실 때에 내가 들었습니다. 주만이 힘 있는 분이십니다 주는 사랑을 베푸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행한 대로 주는 반드시 갚으실 것입니다_시편62:10-12(쉬운성경)’

 

여러분 오늘 말씀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난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가지 기억하시면 됩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구원을 사모하고 천국을 사모하며 신앙생활 하는 것, 그렇게 살 때 우리 삶은 거룩해지고 구별되어서 우리 자손들에게 메시지, 징조가 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도 그렇게 신앙을 가르치면 우리 자녀들도 이 시대에 유일한 징조가 될 것입니다. 지난주 메시지처럼 음부의 권세가 해치지 못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사업이 조금 덜 되어도 괜찮습니다. 조금 잘 안 풀려도 괜찮습니다. 신앙을 선택해야 합니다. 제가 왜 이렇게 확신 있게 이야기하냐?  하나님은 실수 없으십니다. 우리 인생 다 셈하고 계십니다. 믿음 선택하세요. 예배를 선택하세요. 두고 보세요. 어떻게 되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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