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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1-07-25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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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7월 25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2부예배)
제 목 듣지 못하는 사람들아, 들어라
보지 못하는 사람들아, 잘 보아라
본 문 이사야 42:14-25

 

 오승주 목사

 

Ⅰ.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 세대_이사야42:14-17, 시편146:1-10

 

(14) 내가 오랫동안 조용하며 잠잠하고 참았으나 내가 해산하는 여인 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 (15) 내가 산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하며 그 모든 초목들을 마르게 하며 강들이 섬이 되게 하며 못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 (16)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17) 조각한 우상을 의지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_이사야42:14-17

 

지금 이사야 말씀을 차례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맹인들, 또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비유를 하고 계십니다. 뭐라고 말씀하고 계시냐면 오늘 본문 이사야 42장 16-17절에 보니까 

 

(16)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17) 조각한 우상을 의지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_이사야42:16-17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자들, 그것을 하나님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끄시겠다는 것입니다. 맹인은 누구를 뜻하죠? 당연히 남유다, 이스라엘 백성, 지금 바벨론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배경을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을 맹인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그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그들이 어디든지 잘 모르는 곳으로 인도하겠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행하는 이유가 뭐냐면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기 위해서,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버리지  않기 위해서 하는데 그 이유가 또 하나 나옵니다. 너희가 조각한 우상을 의지했고 그 우상을 보고 우리의 신이라고 한 것을 수치를 당하게 하겠다고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수치를 당해야 그 우상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제자리로, 다시 여호와를 섬기는 신실한 백성의 자리로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뺏기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보지 못하고 듣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 당신의 의를 맞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_시편146:1-10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_시편146:3-4

 

인간이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5절. 왜냐하면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6-7절. 하나님은 정의로 심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정의로 심판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이라는 것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8절. 모두가 다 망하는 것입니다. 법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다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시냐? 맹인들의 눈을 여시고, 비굴한 자를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금 이런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우리에게 잘해주셔 가지고 우리를 그냥 오냐오냐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심판주로 오셔서 우리를 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비굴한 자의 삶을 그대로 살게 하면서 먹을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비굴한 자를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너무 중요합니다. 맹인들이 보지 못하고 사는데 괜찮아, 보지 않고 살아도 괜찮아 그렇게 살아도 너희 끄떡없어 이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때려서라도 우리에게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우리를 포로로 끌고 가셔서라도 우리를 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희 큰아들이 한글을 배워서 한글을 읽을 줄 알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아이스크림 가게, 무슨 가게를 지나가는데 속였습니다. 이거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아니야, 문방구야 이러면서 거짓말 하면서 지나갔는데 이제는 다 읽을 줄 아는 것입니다. 아빠 저기 뭐 판다. 이래서 그냥 지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글만 알아도 우리가 글만 읽어서 깨달아도 우리 삶에 얻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무지하고 배우지 않으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그냥 막 쏟아 부어주고 도와주고. 여러분 우리가 네팔에 많은 재정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재정을 투입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목사 삼고 우리를 교회 삼아서 오승주 목사님 오셔서 말씀 전해주세요. 저는 그런 것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너희들이 스스로 일어나라, 너희들이 공부를 하고 너희들이 제대로 된 지도자가 되고 너희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것은 너희들이 하는 거야. 그게 우리나라에 왔던 초창기 선교사님들의 정책이었습니다. 그게 네비우스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진짜 축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두고 선교사님들이 여기서 정착한 선교사님이 안 계십니다. 우리에게 학교를 세워주고 교육기관을 세워주고 병원을 세워서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우리보고 의사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목사가 돼서 너희 나라를 깨우고 일으켜 세우라고 하는 선교사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웃긴 거 아세요? 그렇게 세워진 한국교회 목사님들은 필리핀이나 이런 나라가서 왕처럼 삽니다. 필리핀에 교회들의 연합기관인 교단이 있는데 교단장들이 다 한국목사님들입니다. 코미디입니다. 한국 목사님들, 선교사님들 회개하셔야 합니다. 왜 필리핀 교회 교단의 총회장님이 한국 목사님들입니까? 우리는 그렇게 은혜를 받아놓고. 그래서 필리핀 사람들은 선교사님들이 전부 돈으로 선교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이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을 두고 공부하고 도전하고 깨어서 내가 이 교회를 목회하고 내가 선생님이 되고 내가 의사가 되서 이게 정상이잖아요? 무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것입니다. 비굴한 상태로 살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즘 미디어, 인터넷이 많이 발전했습니다. 진짜 많이 발전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발전했냐면 솔직히 말해서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아이패드도 필요 없습니다. 이것은 무언가 하려고 필요한 것이지 모든 정보를 요즘 네이버 뿐만 아니라 쿠팡 등 어디서든지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들이 발전이 되고 있습니다. IT산업이 황금기를 맞았습니다. 핸드폰 하나만 있어도 전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미디어나 인터넷이 발전이 했기 때문에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 지식 삼아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 직접 만나서 물어보면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어디서 다 주워 들은 것입니다. 인터넷 같은데서, 유튜브 같은데서 들은 지식을 마치 전문 지식인 것처럼 자기 지식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정확한 정보가 아닌 대충 아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대충 알고 그것을 자기 지식으로 삼아가니까 뭐가 힘들죠? 진리를 전해주기가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진리를 전해주면 다 아는 척합니다.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다 듣고 싶지 않아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전하기가 너무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디서 대충 들은 것을 자기 지식으로 삼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제일 무서운 거 아시죠? 자기 확신, 틀린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제일 무섭습니다. 문제는 신앙에 있어서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이런 영적인 무지, 영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것은 그 결과가 참담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이야 그것에 대한 어떤 책임을 가지고 살겠지만 참담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도 배우지 못하면 공부하지 않으면 기술을 연마하지 않으면 그 상태로 살아가야 됩니다. 그런데 신앙은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에서 자기의 그릇된 지식을 가지고 자기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면 그 결과가 참담합니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구원, 영생이기 때문에. 중세 가톨릭교회를 공부하다보면 의문이 듭니다. 아니 그들이 면죄부를 팔고 어떤 잘못된 교리로 고행을 시켰잖아요. 고해성사라든지,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간다던지, 허벅지에 철사를 감아가지고 철사에 뾰족한 침을 걸어서 나쁜 생각을 하면 그것을 잡아 당겨서 자극을 주게 한다든지. 정말 비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반성경적인 것들을 했습니다. 특히 면죄부입니다. 면죄부를 다 팔았습니다. 말 그대로 죄를 면해주는 증서입니다. 너희 죄가 사해졌다는 증서입니다. 이것을 판매를 다 하고 더 팔아야 하는데 성도들이 이미 다 샀기 때문에 더 팔기 위해서 사제들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 뒤에서 회의를 한 것이 뭐에요? 부모님들을 이용하자. 부모님들이 아직 천국과 지옥에 가지 못하고 연옥에 있다고 거짓말을 쳐서 죽었는데 자식들이 면죄부를 사주지 않아서 어디로 갈지 모르고 떠돌아 다니고 있다는 식으로 사기를 치는. 그런데 이 성도들이 얼마나 무지했냐면. 얼마나 설교를 감동 있게 했겠어요. 얼마나 감동 있게 그 메시지를 전했겠어요.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면죄부를 주셨다 이러면서 얼마나 이야기를 많이 했겠어요. 면죄부를 줄서서 사고 빚내서 샀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정치적인 내용들은 모릅니다. 왜 면죄부를 팔아서 많은 헌금을 거두어들이려고 했는지는 모르잖아요. 역사는 압니다. 왜? 그 당시 중세 때는 교황과 황제들과 대립관계였습니다. 스페인이든지, 이탈리아든지, 프랑스든지, 독일의 황제들과 대립관계였습니다. 어떤 시대 때는 황제가 위에 있었고, 또 어떤 시대 때는 교황이 위에 있었고 얼마나 많은 종교전쟁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교황은 왕들을 자기 발밑에 두게 하기 위해서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 많은 로비를 해야 했고 많은 돈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불필요하게 으리으리하게 지었습니다. 왜? 자기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지금도 유럽에 과면 최고의 관광지는 성전입니다. 덕분에 유럽들이 지금도 먹고 사는 것인데 그러나 예배드리는데 정말 쓸모없는 건물들입니다.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천장이 그렇게 높아서 무슨 예배를 드릴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 하기 위해서 악의적으로 그런 면죄부나 고행들을 했는데 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것을 믿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반성경적인 것들인데 저는 너무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제들만 성경을 읽을 수 있었기에 그것을 보고 신앙의 양심이 있는 어떤 사제들이 그것을 폭로하면 마녀사냥을 했습니다. 그것을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종교개혁자들을 얼마나 비참하게 학살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마르틴 루터 이후 종교개혁자들은 편안하게 종교개혁을 한 것입니다. 루터도 그렇고. 루터 이전에 100년의 종교개혁의 역사가 있는데 그 때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은 화형을 당했습니다. 비참했습니다. 그런데 더 슬픈 것은 그들이 슬퍼했던 것은 로마 교황청이 핍박하는 것이 아니고 같은 성도, 같은 사제들이 손가락질 했다는 것입니다. 왜? 이미 면죄부를 샀고 이미 고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싫은 것이고 짜증나는 것입니다. 손가락질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교회들이 올바른 목소리를 내면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합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입 다물고 입 닥치고 조용히 있으라고 합니다. 불합리하고 반성경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조용히 있으라고 합니다. 여러분 무지하게 조용히 있는 것 그것은 선이 아니고 악입니다.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그것은 악입니다. 그런데 왜 목소리를 못 내냐? 몰라서 못 내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은 무지하다, 무식하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세상 지식이 우리 뇌에 가득차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교만함입니다. 그게 사단이 죄가 우리를 공격하는 영적인 공격이라는 것을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중세나 사사기 시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했다는 그 시대가 역설적으로 반대적으로 문화가 발전하고 종교가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하고 문맹이 발전했다는 거 아시죠? 아이러니합니다. 그냥 일반역사로 보면 그 시대가 부흥기입니다. 그 시대가 르네상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시대를 보고 여호와가 없어서 망한 시대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을 못 가는 것입니다. 우리 코끝에 호흡이 멈추면 우리는 다 흙으로 돌아가야 되고 우리의 생각도 다 멈춥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인간이. 여러분 그래서 무지하고 무식한 것은 불쌍한 것이 아니라 죄라고 성경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Ⅱ. 들어라, 보아라

 

- 듣지 못하는 사람들아_이사야42:18-20

 

(18)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 (19) 맹인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내가 보내는 내 사자 같이 못 듣는 자겠느냐 누가 내게 충성된 자 같이 맹인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맹인이겠느냐 (20)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_이사야42:18-20 

 

보지 못하는 사람아 봐라. 이 말입니다. 못 듣고 못 보는 사람이 누구냐고 이야기 하냐면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실제 하나님의 종이었던 선지자들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선지자들 중에 이사야 선지자나 에스겔 선지자나 믿음의 선지자들이 있었지만 소수였고 대다수의 선지자들은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먹고 사는 것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들 축복해줬습니다. 그렇게 사는 거 하나님의 뜻이라고 축복해주며 거짓메시지를 하였습니다. 여러분 제가 얼마 전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모르는 분인데 제 연락처를 원해서 연락처를 드렸더니 저한테 자기 교회 담임목사님 설교를 보내오셨습니다. 하는 말이 저희 목사님 설교가 조금 이상해요. 저희 교회 성도들이 너무 은혜 받고 있는데 제가 목사님 방송을 듣고 저희 목사님 설교를 들어보니까 조금 이상하다고 합니다, 단어도 이상합니다. 이것을 시리즈로 하고 계시는데 목사님 좀 들어봐주세요 저한테 이렇게 했습니다.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남의 교회 목사님 설교를 판단하고 할 입장이 아니잖아요. 설교를 보냈길래 들었습니다. 한 편 들었을 때 조금 이상했습니다. 이상한데? 왜 해석을 이렇게 하시지? 두 편, 세 편 들었을 때 이상해서 제목, 주제들을 인터넷에 쳐봤습니다. 그리고 발견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신천지 교회 설교를 그대로 가져다가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제가 그 목사님 학교 어디 나오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좋은 신학교 나오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신학교를 나오셨는데. 제일 큰 보수교단의 신학교를 나오셨는데. 목사님은 그게 신천지 거라는 것을 아마 모를 거예요. 왜냐하면 그것을 다 포장해서 올리기 때문에. 더 충격인 것이 있습니다. 그 집사님이 목사님에게 가서 이야기를 한 것 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제 이야기하지 마시고 가서 목사님 설교 지금 어디서 인용하는 건지 목사님 모르시는 거 같으니까 말해주는 거 나쁘지 않다고. 그거 말했더니 목사가 어디 성도가 감히. 성도가 목사한테 와 가지고. 이런다면서. 팩트는 신천지 설교냐 아니냐가 팩트인데 성도가 와서 목사에게 그 설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그게 기분 나빠서 반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게 지금 미디어 시대에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 설교준비를 하지 않고 코미디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게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맹인처럼 보지 못하고. 그러니까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종인데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종인데 거짓 선지자가 되어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가 옵니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 아세요? 알코올 중독자를 사역합니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을 먹지 마세요, 알코올 중독 된 것에서 바뀌려면 술을 끊으셔야 돼요. 그런데 세상은 뭐라고 말하냐? 왜 상처 되게 그런 말을 이야기를 하냐고 합니다. 아, 네. 조용히 있을게요, 그런 말 안 할게요. 그러고 나중에 더 요구합니다. 왜 가난한 자를 돕지 않냐, 알코올 중독자를 돕지 않냐. 알코올 중독자가 교회 와서 교회에서 품습니다. 나중에는 알코올 중독자가 술이 필요하다고 하면 교회에서 술도 사줘야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심각한 일입니다. 선지자들, 지도자들이 눈이 멀어가지고 제물에 눈이 멀고 사람들에게 인기 얻고 교회가 숫자적으로 부흥하는 것에 눈이 멀어서 죄를 죄라고 말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김영준이라는 분이 쓴 책입니다. 이 분이 두 권의 책을 썼는데 두 번째 책이 멀티팩터라는 책입니다. 신앙서적이 아니기 때문에 추천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읽어 보실만한 책입니다. 제가 이번 주에 머리 식히려고 그냥 읽었습니다. 아주 재밌는 책입니다. 그 책에서 이 분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성공 이야기를 세상은 너무 잘 포장해놓고 단순하게 정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성공의 길이 마치 그 길을 가면 성공의 길이 있다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이런 책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대로 하면 성공할 줄 알고 다 일곱 가지 습관을 갖추려고 헬스장 가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이런 것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나는 성공 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처럼 왜 안 돼지? 그것을 이 책이 이면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공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그것을 따라한다고 해서 성공하지 못합니다. 사실 성공하는 것은 수많은 과정들, 그 사람의 캐릭터, 그 사람이 자라온 배경, 거기서 얻은 깨달음 이런 것들이 다 복합적으로 있는 것이 성공입니다. 그것을 단순하게 정리한다고 해서 그 길로 간다고 성공하지 않습니다. 우리 체형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고 감정이 다 다른데. 쉽게 이야기해보면 서울대 나오면 성공한다고 다 이야기를 합니다. 그게 시대가 주는 메시지입니다. 아이들 다 서울대 보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서울대 나와서 암이 걸린 사람도 있고 서울대 나온 학력을 써 먹지도 못하고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성공한 인생입니까? 아니잖아요. 고시 합격하면 성공한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고시를 4년 만에 합격하고 그 다음 해에 암에 걸렸습니다. 성공한 인생인가요? 그런데 여러분 반대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장로님은 암에 걸리셨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실패했다, 불행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로님을 불신자,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았는데 암에 걸리고 나서 누가 자기에게 복음,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해줬습니다. 그 뒤로 병원에서 성경책을 읽고 자기가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이 병상에서 일기를 썼는데 성경을 필사한 것입니다. 성경을 필사하고 자기에게 주신 은혜를 기록한 일기. 결국 그 장로님은 2년 만에 죽으셨습니다. 제가 그 장례식에 가서 성경책과 노트를 올려놓은 것을 읽었는데 진짜 영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암에 걸려도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성공과 실패를 세상은 이거다, 이거다 정의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멀티팩터라는 책에서 우리에게 이것을 이야기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행? 자신감 있게 자신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것을 개발하고 자신의 장점을 개발하고 자신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가 있는 책입니다. 아주 좋은 책이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 죽고 사는 세상이 전부이고 이게 기준이라면 우리는 세상의 것만 듣고 보고 살면 됩니다. 그러나 영원한 천국,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되고 하나님께서 보라고 하시는 것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영적인 지식입니다.

 

- 여호와는 정의를 기뻐하시는 분_이사야42:21

 

여호와께서 그의 의로 말미암아 기쁨으로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하게 하려 하셨으나_이사야42:21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 당신의 의로 그것을 기쁨으로 우리를 깨닫게 하셔서 존귀한 자로 만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어로 보니까 의는 정의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로 일을 하십니다. 이 정의는 공의와 사랑입니다. 심판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를 깨우쳐서 존귀한 자로 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의가 뭐에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쟁을 주시는 것이고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그 의로 기쁜 마음으로 우리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에게 참 어렵습니다. 요즘 한빈이가 유치원을 다녀서 그런지 가끔 나쁜 말을 합니다. 저는 깜짝깜짝 놀랍니다. 가르치지도 않은 거짓말이나 나쁜 말을 합니다. 저희 부부가 한참 대화했습니다. 나쁜 말을 할 때는 호되게 혼내자. 저희 와이프는 유일하게 나쁜 말을 할 때 손으로 입으로 때립니다. 얼마나 아파요. 저도 잘 화를 안 내는데 한빈이가 거짓말을 할 때나 나쁜 행동을 할 때는 엄하게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집에 가면 세상 친구 같이 지내는데. 그런데 아이가 얼마나 혼나는지. 눈물을 빼고 엄마한테 싹싹 빌고 이러는데. 저는 속으로 기쁘더라고요. 왜? 부모가 자식이 잘못되고 나쁜 길 가기를 원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바른 길 가고 바른 말 하라고 나쁜 행동을 하고 나쁜 말을 배워 와서 할 때는 호되게 혼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친구들 다 나쁜 말 쓰는데 왜 우리 엄마 아빠만 나한테 이러는 거야. 아직 그 의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의를 마음에 품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아직 지식이 어린아이의 지식이니까.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실래요? 하나님의 의는 뭐에요? 구원입니다. 그 구원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나님이 우리와 다른 세계에서 일하고 계시는 것을 섭리와 경륜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의 기준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기준이어야 되고 방향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이 기준이고 방향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 말하는 사람도 없고, 듣는 사람도 없구나_이사야42:22-25

 

(22) 이 백성이 도둑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되돌려 주라 말할 자가 없도다 (23)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뒤에 올 일을 삼가 듣겠느냐 (24) 야곱이 탈취를 당하게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약탈자들에게 넘기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그들이 그의 길로 다니기를 원하지 아니하며 그의 교훈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 부으시매 그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_이사야42:22-25

 

22-23절. 이 의를 도둑 맞았다고 합니다. 이제 말할 선지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25절.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쏟아 부으셨는데 깨닫지 못하며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요? 하나님의 의를, 정의를, 구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도둑맞은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략까지 당했다고 합니다. 이 의를 행하면서 살아서 존귀한 자가 되는 것을 다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존귀하게 사는 것을 다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뭐에게요? 우상에게. 이것을 선지자를 통해서 말해주는데 듣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선지자를 죽이고 말하는 사람을 말 못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오죽하면 에스겔 선지자나 수많은 선지자들이 말을 하지 못하게 하니까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장례 치르는 퍼포먼스를 하고 옷을 다 벗고 다니는 퍼포먼스를 하고. 왜 이런 퍼포먼스를 했냐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로 외쳤는데 도무지 듣지를 않으니까. 나중에 그 퍼포먼스 하는 선지자들을 옥에 다 가뒀습니다. 그래놓고 거짓선지자들을 세워가지고 자기를 옹호해주고 이스라엘을 옹호해주고 죄 짓는 것을 옹호해주는 수많은 목회자들을 자기들이 만들어냈습니다. 세상이 살만해서 세상에 취해서 세상 것으로 뇌가 가득차서 이 선지자들이 하는 말이 듣기 싫어서 선지자들을 가두고 죽였습니다. 이제는 전할 사람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그렇습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경건을 이야기 하냐면서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율법ㅇ르 이야기 하냐면서 성경을 이야기 하냐면서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내세를 이야기 하냐면서 시대마다 사단은 죄는 그것을 듣기 싫어하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들고 손가락질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세상에 미움을 받는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세상에 미움을 받지 않고 세상에서 칭찬을 받고 세상과 하나 되어서 간다면 그 교회는 의심해봐야 되겠죠. 세상이 교회를 좋아하면 그것은 이상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 쏟아 부으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처럼 전쟁을 많이 겪은 나라가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뤘어요. 너무 아이러니 한 것은 그들이 동경하고 좋아하던 나라들과 다 전쟁을 치뤘습니다. 앗수르, 애굽, 구스. 자기들이 동경하던 나라. 바벨론. 자기들이 좋아하는 나라들이 쳐들어와서 침략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좋아하는데 세상이 여러분을 구원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그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분 전쟁이 얼마나 끔찍해요? 사방이 불타는 것입니다. 정말 저주입니다. 전쟁은 끔찍합니다. 전쟁에 관한 영상만 찾아 봐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전쟁, 얼마나 끔찍해요. 사실 홍수만 나도. 우리가 지금 온도가 40도 가까운 온도만 나와도 더워서 짜증나고 힘들고 생활하기가 힘든데 우리에게 조그마한 질병만 생겨도 힘든데. 전쟁을 하나님이 쏟아 부으신 것입니다. 이유가 뭐냐면 들어야 살 거든요. 들어야 되니까. 그런데 남유다가 얼마나 악했냐면 전쟁으로 자기 몸이 타는데도 불길에 휩싸였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 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게 죄의 위력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들어야 살겠거든요. 타락해서 목회자들이 말도 안하고 교회들이 깨어서 말을 해야 되는데 교회들이 깨어서 말을 하지 않으니까 듣는 사람도 없고. 여러분 교회가 가만히 있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무지해서 몰라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이 아니고 악입니다. 나라가 일본군이 쳐들어와서 일본에 속국이 되었는데 깨어있는 지성인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지 않으면 그것은 악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고개를 조아리고 권력을 한 자리씩 받아서 그것은 나쁜 것입니다. 그래서 임시정부를 세우고 외교활동을 펼치고 독립을 위해서 싸웠던 수많은 각자의 역할들이 다 귀한 것입니다. 나라가 공산국가가 될까봐 북한과 남한이 나눠져서 싸우는데 그것을 싸우지 않고 나라가 그냥 하나가 되면 좋지, 그냥 한 정부를 세워가지고 같이 가자. 이건 나쁜 것입니다. 몰라서 그냥 무지해서 가만히 있는 것은 악입니다. 중세 시대 때 많은 사제들이 그 신앙양심 때문에 성경을 들고 일어났습니다. 화형을 당하고 가족들이 몰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듣는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들어야 삽니다. 그래서 복음이라는 것은 깨어있는 기독교 지성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깨어있는 기독교 지성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Ⅲ. 복음은 깨어있는 기독교 지성인이 되게 합니다_디모데전서4:6-16, 6:11-16, 디모데후서3:1-9, 14-17

 

여러분 복음이라는 것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님을 아는 것 자체가 우리를 이제는 듣게 만들고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듣게 만들고 보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은 모든 문제 해결자야, 복음은 우리에게 모든 축복을 다 줘. 이렇게 한국교회가 값싼 구원론을 주장하다 보니까 더 이상 성도들이 교회 안에 가면 안전한 줄 알고. 교회에서 무슨 서비스업체도 아니고. 제가 어떤 교회를 갔습니다. 교회가 극장인줄 알았습니다. 물론 교회가 편리한 걸을 저도 원합니다. 저도 교회가 성도님들이 조금 편하게 예배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너무 과도합니다. 교회 안에 은행도 만들어 놓고 의자도 아예 푹신푹신한 극장식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 미리 헌금준비도 안 해도 되는구나. 교회 가서 다 뽑아서 헌금하면 됩니다. 교회가 무슨 서비스업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반대로 이야기하면 완전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완전 바보가 됐습니다. 판교에 가면 진짜 유명한 교회입니다. 거기는 이제 애완견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신설했다고 합니다. 안 믿기시죠? 왜? 많은 분들이 애완견 때문에 주일에 예배를 못 온다고 합니다. 개를 혼자 집에 두고 교회를 갈 수 없어요. 그래서 그 목사님이 아예 애완견과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저는 예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미국에 애완견에서 세례 주는 것을 가서 봤습니다. 제 친구 영성목사의 교회가 미국교회를 빌려서 쓸 때 미국교회에서 개들을 들고 줄을 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후예배를 드리니까요. 그래서 영성목사보고 이야기했습니다. 개들을 데리고 왜 줄 서있냐? 했더니. 영성목사가 하는 말이 개들에게 세례주고 있는 거야. 기도 안 찹니다.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지한 것입니다. 목사들이 무식해도 이렇게 무식할 수 있을까요? 성도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입니다. 애완견을 키우시는 분들, 애완견을 미워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러나 개는 개입니다. 개는 영혼이 없습니다.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동반자, 좋은 짐승일 뿐입니다.

 

(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1)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_디모데전서4:6-16

 

6절. 단어들을 보셔야 합니다. 좋은 교훈으로. 그냥 교훈이 아닙니다. 네가 따르는. 너를 지도해주는, 너를 가르쳐주는.

7절. 이 연단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계십니다.

8절. 육체의 연단도 유익이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면 유익이 있습니다. 그런 연단을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10절. 경건을 위하여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여러분 경건은 어떤 모양을 갖춰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어떤 조직이나 단체를 유지하기 위한 경건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겉치레가 아니라는 겁니다.

11절.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쳐라. 왜 가르치라고 이야기합니까?

15-16절. 계속하라고 합니다. 왜 성숙해야 되냐? 왜 경건으로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하고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서 구원하리라. 여러분 이게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디모데전서, 후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목회자가 타락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가르침은 타락하기 전과 별반 다르지 않게 잘합니다. 그러면 그 가르침을 들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피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심각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메시지는 일반 강연이나 연설이 아닙니다. 물론 일반 강연이나 연설도 그 사람이 뜨거웠을 때 그 김창옥 교수님 강연 들으면 진짜 뜨겁고 은혜 됩니다. 메시지가 아닌데도 감동이 됩니다. 저는 그 분 강연을 종종 듣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사람이 변질이 되었습니다. 변질되어서 강연을 똑같이 하면 그것을 우리가 똑같이 감동 있게 들을 수 있나요? 없습니다. 그의 삶이 드러났으면 들을 수 있나요?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반 연설이 아닌 설교고 목회자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깨끗한 양심, 올바른 삶, 그리고 그것을 실천해서 살아가서 그 말씀이 내게 감동이 되고 기쁨이 되고 감사와 어떤 깨달음이 있어서 내 것으로 채득되어서 나오는 메시지여야 합니다. 그게 없다면 메시지는 신천지 메시지를 가져다 쓰신 목사님처럼 얼마든지 편집해서 끝내주는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설교에는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역자들도 그렇고 우리 가르치는 분들은 늘 항상 배움이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교만할 틈이 없고 또 낙심할 틈도 없습니다. 목회자가 변질됐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이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구약에 거짓선지자들처럼 돈에 매수가 되었거나, 세상 권력에 매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멈춤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신앙이 멈출 수가 있습니까? 신앙은 내 영혼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인데.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의지 삼고, 내가 의지할 분으로 삼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인데 그게 어떻게 스탑이 될 수 있나요. 교만하고 오만하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 없어 하기 때문에 멈춤이 되는 것입니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_디모데전서6:11-16

 

11절. 그 껍데기 같은 것을 피하고.

12절. 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나요. 그게 영생을 취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확인하고 넘어갑시다. 영생을 미리 주는 것이 아니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서 영생을 취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이를 위하여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이유가 뭐냐면.

15-16절. 때가 이르면, 때가 차면.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라면 이 말씀을 들을 필요도 없고 이 말씀을 믿을 필요도 없지만 우리에게는 반드시 내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코끝에 호흡이 멈추면 우리 몸은 다 흙으로 돌아가고 우리 생각은 스탑이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우리가 이루었던 것 아무 쓸모없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다 심판대 앞에 서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 심판대를 패스할 그 신앙,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는 그 분. 진짜 빛 되신 그 분.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라는 겁니다. 영생을 얻으라는 겁니다. 이것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신앙은 죽는 것,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진짜 중요합니다. 그래서 잠언에 보면 우리 마음을 지키라고 마음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메시지를 줍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고난,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가짐에 따라서 그 고난을 밟고 일어서서 성공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낙심해서 평생 원망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저 앉아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가짐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안 믿어도 긍정적인 사람, 삶의 희망 있는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주로 성공합니다. 제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뉴턴 베이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계 1차 대전 때 미국에 국방성 장관, 지금으로 말하면 국방부장관이었습니다. 세계 1차 대전 때 국방부장관이었으니 엄청나게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세계 1차 대전 당시에 전쟁에서 몸이 다친 사람들이 머물러 있는 야전병원에 위로 차 방문을 한 것입니다. 야전병원에 갔더니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고 폭탄에 맞아 하반신이 잘려져 있었고, 몸이 잘려있었습니다. 세계 1차 대전이 비참했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 청년하고 대화하기 위해서 국방부장관이 갔습니다. 이 청년은 포탄으로 두 다리가 잘렸고 한 팔이 잘렸고, 포탄 파편 때문에 한쪽 눈이 실명된 청년이었습니다. 그 청년을 간호사가 돌보고 있었습니다. 청년하고 대화를 했습니다. 다른 청년들은 다 죽어가고 하였지만 이 청년은 정말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나라를 위해서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감사하고 내가 이렇게 목숨이 붙어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참 특이하다. 그렇게 한참 세월이 흘러서 이 야전병원에 이 국방부장관이 또 방문을 하는데 그 청년이 기억났습니다. 그 청년은 퇴원했나, 어디 있냐? 찾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거기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그를 돌보던 간호사와 눈이 맞아서 결혼했다는 것입니다. 간호사도 미쳤죠. 하반신이 잘리고 한쪽 팔이 잘리고 한쪽 눈이 실명된 사람과 어떻게 결혼할 수 있냐는 거예요. 이 남자의 매력이 무엇일까. 전쟁이 끝나고 세월이 진짜 한참 흘렀습니다. 이 뉴턴 베이커가 국방부 장관에서 잘리게 되었습니다. 잘리고 다행스럽게 존 홉킨스 병원에 이사장으로 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장으로 취임한 그날에 의료 박사학위 수여식을 겸해서 같이 한 것입니다. 그래서 존 홉킨스 이사장으로 가서 박사학위를 수여하려고 보니까 학위를 받으러 오는데 어떤 한 여자가 휠체어에 사람을 태우고 온 것입니다. 가까이 와서 보니 그 병사, 그 간호사입니다. 세월이 한창 흘렀는데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두 다리가 없고 한쪽 팔이 없고 한쪽 눈이 실명 됐으니까요. 얼마나 감동이에요. 거기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 박사학위를 받은 병사가 존 홉킨스 병원에 이사장이 된 뉴턴 베이커에게 한 말입니다. 그 장관 자리에서 잘렸다고 하시는데 너무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장관님은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도리어 위로를 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뉴턴 베이커가 기록해놓았습니다. 그 청년이 얼마나 매력이 있고 생동감이 있고 희망이 있었으면 그 간호사가 시집을 갔을까요. 보통은 팔, 다리가 잘리면 나라를 원망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한다고 합니다. 한 가난한 청년이 너무 가난해서 이 부농, 부자 농부의 머슴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부농이 집도 주지 않고 헛간에 지푸라기를 깔고 거기서 지내면서 일을 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고 잘했는지. 잘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부잣집 딸과 눈이 맞은 것입니다. 그 딸도 제정신이 아니지. 자기 집에서 일하는 머슴과 눈이 맞을 일인가요. 그런데 그것이 아빠에게 들킨 것입니다. 부농이 노발대발하면서 제정신이 아니라면서 얼마나 많이 화를 냈는지. 결국 농부가 머슴에게 거렁뱅이, 빌어먹을 자식이라고 심한 욕을 하면서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딸로 얼마나 혼났겠어요. 세월이 진짜 많이 흘렀습니다. 실화이니까요. 그 부농이 헛간을 새로 지으려고 헛간을 정리하는데 헛간 벽에 수많은 낙서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뭐라고 적혀있는데 그 밑에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가필드. 그 순간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이름이 가필드인데. 미국에 20대 대통령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대통령 얼굴이 어디서 낯익었다 싶었는데. 그 청년인 것입니다. 그때 시집을 보냈어야, 내가 대통령을 사위로 두고 떵떵거리며 살았을 텐데 후회했겠죠. 그 가필드가 거기서 쫓겨났을 때 신세를 한탄하고 이 머슴제도를 원망하고 살았으면 가필드가 대통령이 되었을까요? 술이나 퍼마시면서 신세를 한탄했으면, 더러운 세상 이러면서 살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필드가 벽에 낙서한 내용, 그리고 나중에 정리한 그의 결심이 이것입니다. 저는 대개 감동이여서 이 열 가지 결심. 가필드가 평생 자기의 신념으로 가지고 살았던 열 가지입니다. 

첫 째 게으르지 말자, 주어진 수입에서 생활하자.

두 번째 약속은 적게 하고 진실을 말하자.

세 번째 좋은 친구를 사귀데 끝까지 사귀자.

네 번째 남을 절대 나쁘게 말하지 말자.

다섯 번째 요행은 바라지말자. 게임이라도 요행은 바라지말자. 

여섯 번째 정신을 맑게 하지 않는 음료(술)은 마시지 말자.

일곱 번째 비밀은 나의 것이나 남의 것이나 지키자.

여덟 번째 돈은 마지막 순간까지 빌리지 말자.

아홉 번째 행동에 책임을 지며 절대 내 행동에 대해서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자.

열 번째 잠들기 전에 매일매일 반성의 순간을 가지자.

이게 행동지침이었습니다. 두 청년 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가필드는 믿음이 좋기로 소문이 난 미국의 대통령입니다. 믿음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데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깨닫는데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지해서 따르지 못하면 그것은 죄가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불쌍하다고 보시지 않는 것입니다.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_디모데후서3:1-9

 

1-4절. 지금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5절. 이것을 이기지 못하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합니다.

6-7절. 겉으로는 경건의 모양을 갖추고 있으나 뒤로는 범죄하는 것입니다. 성적인 범죄를 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부패하고. 그런데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됩니다. 원어에는 그런 사람들은 항상 배우는 것 같으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8절.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왜냐하면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진리를 진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부패했고 믿음에 관하여 버림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경건의 모양으로는 이런 시대, 말세에 고통하는 때를 이길 수 없다는 메시지이기도 하지만은 그 경건의 모양만 가르치는 것에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들, 목회자들.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누가 책임 질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뭐냐? 경건의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능력을 부인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 같이 다니는데, 예수님을 다 같이 믿는데, 성경책을 읽는데 능력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부인한다?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합리적이고 똑똑하고 “야, 저 사람들 크리스천들인데 진짜 말 통하네” 이럴지 모르지만 믿음에 관해서는 버림 받은 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_디모데후서3:14-16 

 

뭘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합니까? 이게 능력입니다. 여러분 배우지 않으면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한글을 모르고 돌아가셨습니다. 평생 원통하셨습니다. 일하신다고 한글 배울 시간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진짜 답답해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오디오로 듣기만 하셨고 읽지 못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배우지 않으면 답답하게 살아야합니다. 한글을 배우지 않고 전문지식을 배우지 않으면 답답하게 살아야 합니다. 대학에 지식을 배워서 직장에 갑니다. 그런데 그것을 체득한다고 합니다. 그 전문기술, 전문분야를 체득하는 과정을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평생 사원으로 살아야 합니다. 지도자, 리더로 위의 자리로 가기 위해서는 그 전문지식을 체득해서 완전히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과장도 되고 상무도 되고 사장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입니다. 그런데 그 지식을 체득하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생을 불확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은 대학을 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바다의 어부가 되더라도 바다에서 고기 잡는 법을 내 것으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물고기를 많이 잡고 성공하겠죠. 그런 사람을 서로 데려가려고 하겠죠. 배우지 않으면 확신한 일에 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14절. 내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에게 배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15절. 내가 누구에게 배운 것을 알며 그 내용이 뭐예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구원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는 겁니다.

16-17절. 그 온전이 무엇이냐?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는 겁니다. 뭐가요? 경건의 능력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것이 그것을 듣게 하고 보게 하기 때문에. 듣고 봤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속지 않는 것입니다. 왜 우상을 섬깁니까?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우상 섬기는 것의 비참한 최후를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공부만 해도 우상을 섬기지 않습니다. 왜 남의 이야기를 하고 남을 험담합니까?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손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도록,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듣도록 천국을 보도록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성경을 읽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찌 성경을 공부하지 않고 성경을 묵상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말이 됩니까? 성경을 안 읽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제 설교를 듣고도 성경을 안 읽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 일이고 죄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자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기독교인이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기독교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코로나시대에 저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서 예배를 못 드리게 하니까 불합리하다, 4단계가 극장, 뮤지컬, 식당도 오픈하는데 교회는 왜 오픈을 안 해주냐 해서 예배를 회복하자고 싸우고 있고 저도 지지합니다. 제가 보아도 상식선에서 불합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전쟁을 우리에게 쏟아 부으신 이유는 본질적으로 그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그동안에 주일예배 안 드렸습니까? 교회에서 성전건축하고 헌금하면서 주일 1,2,3,4부 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새벽예배 안 드렸나요? 다 드렸습니다. 그런데 경건의 능력이 사라지는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우리가 누구를 만나서 진리에 관해서 도전해줬을 때 그 진리에 관해서 설명해주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고 선한 일을 하는 능력을 갖춰서 그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삶을 살지 못했잖아요. 은밀한 곳에서 죄를 짓고 목회자들이 뒤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이상한 짓을 하고 그래도 우리는 말 한마디 못했잖아요. 우리가 회복할 것은 단순히 주일예배를 회복하자. 코로나 때 정부가 주일예배를 막냐, 그런 자유도 회복해야 되겠지만 진짜 회복해야 될 것은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우리 삶에서 거룩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진짜 예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경건의 능력이 사라져서 이 말세 때, 이런 시대에 살아갈 능력이 없게 만드는. 리얼 크리스천이 없는 시대. 기독교 지성인이 사라지는 시대. 목숨 걸고 예배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신앙을 위해서 싸울 수 있는 힘이 없고 능력이 없는 시대를 한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싸워야 될 것은, 회복해야 될 것은 오래 걸리는 싸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될 예배는 주일 1부예배, 2부예배가 아니고 우리 삶에서의 예배입니다. 우리가 일을 성실하게 하고 가정을 다시 회복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떨림으로 이루면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사는 그 예배를 우리가 회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라. 우리는 배워야 됩니다. 듣고 봐야 합니다. 어설프게 인터넷, 유튜브 같은 거 보고 아는 척하고 공부하지 않으려고 진리에 대해서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라고 살아가면 안 됩니다.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운동도 하다가 멈추면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때는 알았는데 왜 안 돼지? 왜? 연습을 멈춰버린 것입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왜 배워야 되고 듣고 봐야 되죠? 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를 생산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다이아몬드가 뭔지 몰랐습니다. 그냥 다이아몬드 가지고 던지고 공놀이하고 노는 것입니다. 영국 사람이 아프리카에 갔다가 사람들이 가지고 노는 것이 다이아몬드입니다. 수 억짜리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새총놀이 이런 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서 봤더니 이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를 모르네. 그래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런 거 가져다주면 한 개에 천 원씩 줄게. 일 억짜리인데. 이 돌을 천원에 준다고? 갔다가 캐다 바친 것입니다. 이것으로 막대하게 부자가 되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여전히 가난합니다. 왜? 무식해서, 무지해서. 실컷 땅만 파다가 죽는 것입니다. 무식하면 그렇습니다. 무지하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배우지 않은 사람은 그게 그냥 돌인 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교회 다니는데 도대체 뭘 공부를 해야 됩니까? 교회 다니면서 귀찮게 공부를 하라고 합니까? 그래야 여러분이 하나님,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우리의 미래, 내세를 볼 수 있게 때문입니다. 시대의 미래 보는 것도 올바른 지식이 있어야 시대를 바르게 판단하고 분별하고 지켜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미디어나 언론에 너무 현혹되지 마세요. 그들은 돈이 되는 거라면 아무거나 다 이야기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팩트를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야 되고 이게 사실인지 공부해서 사실을 믿어야 되는 습관을 길러야 되는 것이 선진국의 시민들, 백성들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거짓말을 합니다. 지금 시작했습니다. 거짓말. 그걸 또 믿어서 저 분이 공약한대로 될 거 같아 해서 투표 몰아줘가지고. 물론 몰아줄 사람이 없으니까. 이번에 어떤 정치인은 누군지 모르겠지만 청년들에게 1년에 200만원씩, 전 국민에게 100만원씩 준다고 합니다. 제가 계산해봤습니다. 그러면 한 달에 8만원에서 9만원 정도 받는 건데 우리 삶이 나아지나? 그 돈이 한 사람한테 줄 때는 얼마 아니지만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그렇게 해서 망한 나라가 남미입니다. 베네수엘라, 쿠바. 비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방법은 뭐에요? 우리를 가르쳐서 일으켜 세워서 존귀한 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을, 젊은 청년들을 야 열심히 일하지 마, 너네 진짜 불쌍하네, 너네 진짜 힘들게 고생하네, 우리가 돈 줄게. 아이들 다 죽이는 것입니다. 지금 필리핀이 그래서 주저앉았습니다. 선교사들이 가서 필리핀 사람들 돈으로 다 선교하고 있습니다. 공부할 기회를 주고 열심히 일할 기회를 주고 공부해서 의사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목사가 돼서 자기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해서 일으켜 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전부 요행을 바라게 만들어놨습니다. 정말 우리나라 청년들이 나라에서 주는 돈. 주면 받겠죠. 감사하다고. 지난번에 통신비 3만원 줄 때 다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진짜 아이러니한 것입니다. 그게 나쁘다고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3만원이 없어서, 100만원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그것은 선택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지금 네팔을 돕고 있잖아요. 서초구청을 통해서 부모가 없는 자녀들 20-30만원씩 비브릿지가 지원하고 있잖아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주저앉지 말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입니다. 이게 육신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돈 이야기가 아니고 성공 이야기가 아니고 영적인 이야기를 지금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누가 지켜줄 수 있습니까? 여러분 믿음을 목사가 지켜줄 수 있습니까? 정치하는 목사들이 지켜줄 수 있습니까? 교단의 총회장들이, 신학 박사들이 우리의 믿음, 우리의 구원을 책임져 줄 수 있습니까? 내 믿음은 내가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제가 성경을 읽어줄 수 있습니까? 내 믿음은 내가 지켜야 됩니다. 영적인 지성인이 되는 것. 기독교 지성인이 되는 것.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힘들고 어렵지 않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너무 행복하고 좋습니다. 우리가 한글을 공부를 할 때는 힘들지만 한글을 알고 글씨를 읽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죠? 어떤 기술을 연마해서 월급을 받고 내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 되었을 때 기분이 너무 좋잖아요. 힘들고 어려웠지만 내가 이 기술을 남에게 가르치는 전문가가 되었을 때 기분이 좋잖아요. 하물며 복음이겠습니까, 영적인 지식이겠습니까. 우리 가스펠교회 성도님들이 이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듣기를 원하고 보기를 원합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세대라면 이제 우리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해져서 선한 일을 하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저는 저희 교회 성도님들이 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고 저희 교회 성도님들이 장례식 때 다 슬피 울면서 구원 받았을지 못 받았을지 이런 장례식을 치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정말 힘 있고 능력 있고 소망이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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