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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1-08-08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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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 08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2부예배)
제 목 주님이 행하시는 새 일
본 문 이사야 43:14-28

 

 오승주 목사

 

Ⅰ. 실패된 과거를 바꾸는 길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신자든지 불신자든지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주로 과거의 실패, 상처 이런 이야기들을 되게 많이 합니다.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부모님 탓, 가난 탓, 과거의 누가 나에게 어려움을 줬다는 사람 탓. 이런 것을 주로 많이 합니다. 실패된 과거에 찌들려서 사시는 분들. 그런 분들은 희망이 없습니다. 소망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늘 과거에 묶여 삽니다. 또 반대로 과거의 영광을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내가 옛날에는 잘 나갔는데 말이야, 내가 옛날에는 떵떵 거리고 살았는데 이러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것도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있어서 매여 있어서 오늘을 건강하게 살지 못하는 분들이 되게 많습니다. 진짜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진짜 이상한 것은 뭐냐면 과거가 너무 싫다고 하고 과거의 상처가 너무 많고 과거의 실패가 끔찍하고 우리 부모님, 환경 탓하고 이러신 분들이 이상하게 오늘을 그렇게 살더라고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과거를 바꾸려면 오늘을 다르게 살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오늘이 내일이 되면 과거가 됩니다. 오늘이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것입니다. 흙탕물 시냇물을 바꾸려면 윗물이 맑으면 됩니다. 자연스럽게 다 흘러갑니다. 오늘을 다르게 살면 오늘을 사는 것이 내일은 내 과거가 되기 때문에 오늘을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주로 과거를 원망하고 과거의 실패를 상처를 또 과거의 영광을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오늘을 바꿔서 살지 않더라고요. 정말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도 수준 있는 사람,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람. 우리가 말하는 돈 많이 버는 사람 말고 성공한 사람 있죠? 행복한 사람, 가치 있게 사는 사람, 멋있게 사는 사람들은 과거 탓을 잘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늘 미래를 바라보고 오늘을 성실하게 삽니다.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가 내 틀린 과거, 실패된 과거, 상처 많은 과거를 바꿀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말한다한들 과거는 바뀌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면 조금씩 어두웠던 과거가 밝아지고 실패한 과거가 조금씩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왜? 오늘을 다르게 사니까. 특히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 믿기 전과 예수님 믿은 후의 삶이 달라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었는데 예수님 믿기 전과 믿은 후가 그대로 똑같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여전히 믿음과 상관없는 삶이라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고 계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서도 여전히 과거를 논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예수님으로 인한 변화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는데 그것을 붙잡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똑같이 믿지 않는 사람처럼 예수님 믿기 전의 과거처럼 살고 있다면 우리의 과거는 영원히 변화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우리의 과거를 다 바꿔주시겠다는 것인데 우리를 새롭게 바꿔주시고 변화시켜주시는 분이 누구냐가 중요합니다. 그 분이 누구냐?

 

Ⅱ. 주님이 행하시는 새 일

 

- 누가 바꾸시는가?_이사야43:14-17

 

(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_이사야43:14-17

 

14절. 지금 바벨론 사람을 보내어. 이 사람이 누구죠? 고레스 왕입니다. 하나님이 페르시아를 일으켜가지고 바벨론을 멸망시키겠다고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5-17절. 이것은 뭔가요? 홍해 사건입니다. 모세의 기적, 홍해 사건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바다 가운데 길을 내고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병거들이 와서 함몰되고 수장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분이 애굽에 노예생활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가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 거룩한 이시고 창조주고 왕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낸 세 하나님은 우리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의미는 우리 인간, 죄인과 구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똑같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인간의 착각은 특히 목사님들이나 중직자들이나 신앙생활 오래하신 분들이 마치 자기는 깨끗하고 의롭고 나는 신앙생활 열심히 해서 나는 하나님 앞에 가도 떳떳해 이러신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것은 아직 하나님의 거룩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우리와 완전히 구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거룩이십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가 성공하고 사역 좀 잘하고 나면 뭘 안 하죠?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금세 죄가 들어옵니다. 금방 교만하고 오만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섰다하면 넘어질까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성령충만한 거 같았는데 그 뒤로 회개를 하지 않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이라는 삶을 살지 않으면 금방 또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 순간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완전 구별된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지만 우리의 죄는 따로 다루십니다. 왜?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셨지만 우리의 죄는 따로 다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죄에 대한 회개가 없이 살려달라고만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피상적 구원입니다. 그게 구원파입니다. 죄에 대한 회개가 없이 살려달라고만 하는 것이 피상적인 구원입니다. 그건 정상적인 구원이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를 말씀으로 회개시키는 과정을 거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그래야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고 건강하게 복되게 살 수 있으니까. 우리를 바꾸시는 것입니다. 운동에 재능이 있습니다. 운동신경이 너무 좋아서 농구를 시키고 싶은데 너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으면 이 과정을 통과해야 돼. 그런데 하기 싫어, 하고 싶지 않아, 나 운동 잘하는데요? 훈련 받기 싫어요, 내가 왜 코치님 말을 들어야 돼요? 그러면 절대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는데 회개가 없다? 회개는 하나님이 거룩하시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그래서 예수님이 탕자 이야기를 하십니다. 아버지께 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얼마나 교만했어요? 나도 아버지처럼 살 수 있어, 잘 살 수 있어. 다 탕진했습니다. 세상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다 탕진하고 남의 집 돼지우리에서 돼지 치다가 아버지께 돌아가야지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니까 아버지가 버선발로 나와서 탕자를 맞이해서 씻겨주고 옷도 갈아입혀 주고 한 것입니다. 돌아와야 합니다. 거기에 보면 행위가 나옵니다. 정확히 말하면 행위구원입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여러분이 평상시에 들었던 은혜구원에서 반대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 은혜구원이 곧 행위구원입니다. 탕자가 깨닫고 돌아오지 않으면 아버지가 거기까지 가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것입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해야, 돌아와야 우리가 보이는 문제가 뚫리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본인을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창조한 자다. 내가 너희를 창조한 자다. 우리의 문제는 사실 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너무 잘 아십니다. 육신의 부모도 내 뱃속에서 난 내 자식 잘 알잖아요. 이모들이 모르는 거, 고모들이 모르는 거, 삼촌들이 모르는 거 부모는 다 압니다. 쟤가 가식적으로 이모 앞에 용돈 받으려고 아이스크림 얻어먹으려고 하는 거 부모는 다 압니다. 평상시 삶을 다 보고 24시간을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 한빈이가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아 밥 먹기 싫구나,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티비가 보고 싶구나. 쟤가 왜 갑자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절대 공부를 사랑해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구나. 뭔가 다른 목적이 있구나 이런 것을 다 압니다. 내 자식도 어린 자녀들 얼굴만 보면 다 압니다. 어디가 아픈지, 힘든지, 어려운지.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모르실까요? 너무 잘 아십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우리가 하나님 앞에 폼 잡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식적으로 있는 척, 하는 척, 거짓말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나님 앞에 종교인처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솔직하게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내 마음을 오픈해서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최소한 교회만큼이라도 우리의 예배만큼이라도 진실하고 정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 겉옷을 다 입고 우리 마음 다 감추고 그러면서 말은 오 주님, 바리새인처럼 가식적으로 있는 척, 가진 척, 하는 척, 안 되는데 되는 척. 그러니까 하나님이 너무 답답하신 것입니다. 솔직하고 진실해야 내가 너를 고쳐줄 수 있는데, 부족한 것을 채워줄 수 있는데.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가 믿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도 내가 내 능력으로 잘 할 수 있어 이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왕이시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의 삶을 소유하시고 다스릴 권한이 있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으니까, 거룩하신 분이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왕이 하나님이신데 왕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22-24절에 보니까 이스라엘이 어떤 식으로 신앙생활했는지 보세요. 

 

(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이사야_43:22-24

 

이스라엘이 얼마나 악한 일을 많이 했는지 하나님이 괴로우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악한 일을 많이 했냐면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왕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안 믿는 것이 아니라 가식적으로 믿은 것입니다. 우상숭배 다 하고, 자기 쾌락에다 다 쓰고. 우상숭배 하는데 다 투자하고 남은 시간 형식적으로 예배한 것입니다. 그게 이스라엘의 예배였습니다. 여러분 예배가 타락한 것은 예배를 드리지 않아서 죄가 아닙니다. 타락한 예배가 죄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이방인들은 아예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스라엘 백성, 거룩해야 될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게 문제인 것입니다. 예배가 타락하니까 하나님께서 고통스러우신 것입니다. 괴로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다루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을 사랑하시지만 죄를 묵과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그냥 보고 계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가 되게 하셨는데 70년 포로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70년 포로생활을 돌아오는 길에 내가 너희의 왕인 것을 너희가 알겠느냐?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냐면 오늘 본문에 홍해사건, 모세의 기적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내가 바다에 길을 내고 지름길을 내고. 여러분 홍해사건은 지금도 이스라엘, 유대 민족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 기적을 모세의 홍해사건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엄청 자부심이 있는 것입니다. 430년간 노예생활을 했던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홍해바다가 갈라져서 200만 명 이스라엘 백성이 건넜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전차 9000승, 믿어지십니까? 얼마나 어마어마한 규모인지 상상이 되지 않으시죠? 200만 명이 바다를 건넜고 애굽의 전차 9000승이 따라와서 그 바다를 같이 건널 때 다 수장되었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하십니다. 병거와 말과 군대와 용사를 이끌어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려져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당시 애굽은 초강대국입니다. 그들의 군사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아십니까? 9000승의 병거가 쫓아왔습니다. 200만 명을 다 죽이려고. 그런데 하나님이 한 순간에 다 없애버리셨습니다. 엄청난 기적입니다. 이 기적을 상기하셨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잘 읽으셔야 합니다. 애굽의 기적을 상기하시면서 바로 하시는 말씀이 18절입니다. 하이라이트 말씀입니다.

 

-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_이사야43:18-21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_이사야43:18

 

아니, 모세 이야기 당신이 하셔놓고 모세 홍해 사건 당신이 하셔놓고 왜 갑자기 옛날 일을 기억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냐?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_이사야43:19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홍해 사건을 말씀해놓고 기억하지 말라? 홍해사건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상징적인 유대민족의 사건인데 그래서 그들은 힘들 때마다 어려울 때마다 홍해사건을 기억하고 홍해의 기적을 떠올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역사작품이 홍해사건이고 최고의 영광스러운 과거가 홍해사건인데 그것을 생각하지 말고 기억하지 말라고 합니다. 무슨 말이에요? 과거에 젖어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홍해사건에만 젖어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러잖아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마가다락방, 오순절 사건, 성령강림 사건, 출애굽. 전설처럼 이야기하는 성경의 역사들 막 이야기하잖아요.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억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뭐라고 이야기 하시나요? 너희의 역사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남 이야기 하듯이 홍해사건 이야기하지 말고 내게 일어날 일이라고 우리 교회에 일어날 일이라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애굽이 무너질 수 있다면 너희가 지금 포로생활하고 있는데 바벨론도 무너질 수 있잖아. 환상에 젖어서 상처, 과거의 실패만 가지고 있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애굽은 무너뜨리신 하나님인데 바벨론은 못 무너뜨리실까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서 보니까 바벨론이 너무 막강합니다. 그 당시 바벨론은 애굽보다 제가 느끼고 공부를 했을 때 10배는 더 강대국입니다. 얼마나 강대국이냐? 해양을 다 장악했습니다. 해상무역을 완전 장악한 나라가 바벨론입니다. 그래서 무역선을 최초로 만들었고 해양 무역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 바다를 장악한 나라들은 강대국입니다. 여러분 지금 미국이 왜 강대국인줄 아세요? 군사적으로? 미국이 바다를 다 장악했습니다. 미국 해군이 가지고 있는 공군력이 전 세계 공군력보다 세다고 합니다. 미국의 공군이 아니고 미국의 해군이 가지고 있는 전투기 공군력이 전 세계 공군력보다 세다고 합니다. 미국이 얼마나 막강한 해군을 가지고 있는 줄 아세요? 미국의 해군은 전 대륙에 항공모함이 다 가 있습니다. 중국이 그거 잡아보려고 항공모함 수주하고 이렇게 하는데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미국이 중국 항공모함보고 비웃습니다. 기술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납니다. 그래서 미국이 강대국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미국보다 더 강대국인 것이 바벨론입니다. 완전 절대.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했을 때는 어떻게 바벨론이 무너질수 있겠어? 상상 못합니다. 우리 미국이 무너질 거라고, 중국 강대국이 무너질 거라고 상상 못하죠? 미국, 중국이 무너질 것을 우리가 상상이나 합니까? 그들은 남을 추격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추격 받고 있고. 그런데 그 바벨론이 전세가 역전되어서 무너집니다. 갑자기 페르시아라는 나라 고레스 왕이 나타나서 어디서 나타났는지 진짜 혜성 같이 나타났습니다. 그건 뭐에요? 하나님이 역사를 주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마귀와 마귀의 하수인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바벨론이 강력해 보이죠? 우리는 너무 연약해 보입니다. 포로야,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느헤미야가, 에스라가, 학개가 이런 연약한 선지자들이 뭘 할 수 있겠어?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십자가 보혈 안에 들어오면 은혜 안에 들어오면 그런 기적들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새 일. 이게 뭐냐? 오늘 본문입니다.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가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새 일이 뭐냐? 광야에 길을 내시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광야 모르시죠? 광야는 고속도로를 낼 수 없습니다. 완전 절벽, 바위산들입니다. 다윗이 있었던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척박한 돌산입니다. 더 말도 안 됩니다.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고 합니다. 이 말 자체가 문맥적으로 맞지 않는 말입니다. 사막에 무슨 강이에요. 한강이 사막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오아시스도 없는 것이 사막인데 물 한 방울 안 나는 것이 사막인데 완전 바짝 말라버리는 것이 사막인데 물 부으면 다 스며들어가지고 바짝 말라버리는 것이 사막인데 거기에 강을 내시겠다고 합니다. 한강을 내시겠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을 새 일처럼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가 사막에 강을 내고 광야에 길을 내는데 너희가 봐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보라고 이야기하시냐면 너무 큰일이다 보니까 말로 설명이 안 됩니다. 말로 설명이 안 되는 너무 큰일이다 보니까 너희가 직접 보고 겪어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페르시아를 일으켜 세워서 포로에서 해방시키는 작업입니다. 여러분 이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교를 입학했는데 제가 광주에서 300명 되는 교회를 다녔습니다. 드럼 치고 찬양하고 저는 저희교회가 최고로 은혜 받는 교회인줄 알았습니다. 찬양이 제일 좋은 줄 알았습니다. 또 그때 당시 우리는 복음운동을 하던 때니까 엄청 교만해서 다른 교회들은 복음도 없다 이런 때 아닙니까? 제가 신학교를 갔는데 부산 KBS 방송국 홀에서 찬양집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 선배가 승주야 거기 가자 이랬는데 거기를 왜 가요, 안 갈래요. 그 말은 안 간다는 말은 바빠서 안 간다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 찬양,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안 간다고 했는데 선배가 계속 꼬시는 것입니다. 야 진짜 좋아, 한 번만 가자. 한 번만 가자. 선배가 진짜 밥도 사주고 속아주는 척 하고 뭐 얼마나 가면 성령이 있겠냐, 복음이 있겠냐 복음도 없는 집회 이러면서 갔습니다. 그때 제가 갔을 때 호산나 인테그리티라는 찬양팀이 찬양집회를 하던 때인데 돈 모엔(Don Moen) 목사님을 그때 처음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 잘 모르시죠? 그 분이 지은 찬양이 이것입니다. God will make a way Where there seems to be no way. 그날 그 노래를 발표하던 때이고 그때 론 케놀리(Ron Kenoly) 목사님이나 미국의 진짜 좋은 찬양팀들이 다 와서 집회를 합니다. 심지어 영어로 하고 한국말로 자막을 써주는데 거기에 학생들이 중, 고등학생들이 교복입고 대학생들이,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꽉 찼습니다. 제가 뒤에 앉아서 처음에 팔짱 끼고 있다가 아이들이 울고 은혜 받고 회개하고 같이 뛰고 찬양 부르는데 우와. 제가 눈물이 줄줄줄줄 났습니다. 그때 돈 모엔 목사님의 간증을 듣는데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저는 세상 그런 은혜를 처음 받아봤습니다. 나오면서 제가 목소리가 다 쉬어서. 형 이러니까 오기 싫다더니 목소리 다 쉬었네. 형 다음 집회는 언제야. 이러면서 제가 4년 내내 그 집회를 갔습니다. 모르면 교만한 것입니다. 교만하니까 안 가는 것입니다. 몰라서 교만한 것입니다. 교만하니까 안 가는 것입니다. 모르면 교만합니다. 몰라서 교만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알면 겸손해집니다. 아니까 겸손한 것입니다. 모르니까 무식하니까 교만한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한 달에 한 권씩 신앙서적을 추천합니다. 제가 알고 느낍니다. 뭘 느끼고 있냐 우리 성도들이 안 읽고 관심이 없다는 것을 느껴집니다. 피부로 확 와 닿습니다. 여러분 집에 심방가면 제가 안 보는 거 같아도 쓱 둘러봅니다. 이 집에 내가 추천한 책이 있나 없나. 없습니다. 작년 거 한 권 있고 이랬습니다. 안 읽고, 못 읽고. 힘들다는 거 압니다. 그런데 저는 되게 속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제가 설명이 안 됩니다. 제 실력으로 믿음의 크기가 은혜가 설명이 안 되서 책으로 소개를 해주는 것입니다. 좋은 목사님도 소개하고 이렇게 신앙생활하면 축복받는다는 것을 책으로 소개를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안 읽으시니까 엄청 속상하고 답답합니다. 성경 읽는 것도 그렇습니다. 제가 오죽하면 주일설교, 오승주목사 설교 안 들어도 되니까 성경 좀 읽으세요 할 정도로. 그런 목사가 어디 있습니까. 내 설교 들으라고 하지. 그런데 이 설교보다 성경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그 말은 무슨 말이냐. 저는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와 은혜를 직접 받기를 원합니다. 성도님들이. 그 감동.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얻는 그 풍요로움들을 여러분이 직접 경험하기를 원하는데 제가 그것을 그 기분을 대신 전해드릴 수 없잖아요. 그 감동을. 제가 영화보고 와서 아무리 설명한다고 그 감동이 진짜겠어요? 직접 봐야지. 직접 경험해봐야지. 제가 미국에 가서 그랜드캐니언을 가고 무슨 공원을 가고 우와, 한국에 와서 아이들에게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아이들은 무등산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시골 풍경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직접 가서 보면 우와. 영의 눈이 없으면 보지 못합니다. 기도해야 영의 눈을 떠서 볼 수 있습니다. 보혈의 눈으로 은혜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된 상태를 표현하시고 사막으로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광야인 것입니다. 나 왜 광야야? 나 왜 내 인생 이렇게 사막 같아?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광야 같아? 왜 우리는 포로가 되었어?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죄를 다루셔야 되기 때문에 광야로 우리를 내 모셨습니다. 광야는 사실 시련입니다. 광야는 사실 좋은 곳이 아닙니다. 여러분 사막이 어떻게 좋겠어요. 사막에 강을 내시고 광야에 길을 내시는데 우리는 여전히 포로고 우상을 숭배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거는 늘 실패가 되는 악순환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에 길을 내신다는 것, 사막에 강을 내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길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을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에요? 광야는 현실적으로 뭐에요? 오늘 제가 중요하게 드리는 핵심말씀입니다. 광야 같은 시련, 죄악 된 인생, 예수님 만나지 못해서 실패한 과거. 지금 우리의 인생을 광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포로 된 인생, 사막인 것입니다. 메마르고 척박하고 식물을 심어도 자라지 않는 우리 인생. 완전히 실패한 인생. 광야 같은 시련. 그래서 사람들은 정말 재수 없구나.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부모를 잘 못 만나서, 내 환경이 이 모양이어서, 정말 재수 없구나, 바벨론이 진짜 밉다. 나중에는 바벨론이 미운 게 아니라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뭘 잘 못했습니다. 이런 반응입니다. 지금 기독교인들과 비슷합니다. 아무런 내용도 없고 실력도 없고 믿음도 없으면서 과거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로 우리를 보내셨는데 그 광야에서 빨리 나오는 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광야에서 빨리나오거나 또 광야에서 버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페이스대로 하나님의 인도 따라 가야 되고 거쳐야 되고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왜냐하면 광야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져야 나올 수 있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그냥 통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광야는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오게 하시려고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연단하셔서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강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를 지나고 나왔을 때 우리가 존귀하고 영광스럽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_이사야43:21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왕이신 하나님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광야입니다. 광야의 시련은 나의 한계점 끝까지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에서 살아남지를 못 한다고 합니다.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서 나의 한계점 끝까지. 내 무기력함을 거기서 다 깨닫는 것입니다. 교만했던 마음, 오만했던 마음. 그래서 광야를 만나면 핸드폰 내려놓고 엎드려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핸드폰 만지작거리는 거지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성경책 안 펼치는 거지 진짜 한계를 만나고 무기력을 경험하면 핸드폰이 문제가 아니라  엎드려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한계의 끝으로 가면 내 한계 끝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거기에 있습니다. 거기 가면 하나님의 위로가 느껴질 것입니다. 여러분 쓰레기 같은 광야. 우리 도시, 마을, 우리 집에 오물이 가득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거기에 시냇물이 졸졸졸졸 흐르면 오물이 치워질까요? 시냇물이 졸졸졸졸 흐르면 그 물이 더러워지겠죠? 그래서 하나님은 폭풍우,  태풍을 주시는 것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칠 때 우리는 짜증이 납니다. 왜 내 인생에 태풍, 폭풍우가 오냐? 그런데 폭풍이 와서 쓰레기가 깨끗이 치워지고 나서 물이 흘러야 깨끗한 물을 우리가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흙탕물이 내려오는데, 더러운 것이 있는데 폭풍우가 몰아쳐서 한번 그것을 깨끗이 청소하고 나면 그 다음에 깨끗한 물이 내려옵니다. 그런 쓰레기가 치워져야 합니다. 처음부터 시냇물이 흐르면 쓰레기가 치워지지 않아요. 폭풍우 때문에 우리는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게 아니면 내 영혼에 끼어있는 더러움이 씻겨나갈 도리가 없습니다. 내 인생에 끼어있는 더러운 죄악들이 씻겨나갈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련, 광야는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두고 싶어 하셔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시냇물을 졸졸졸 흘러가게 하기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형통하게 살도록.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_시편34:18

 

이 말씀은 하나같은데 잘 보면 두 개입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상하다는 것은 마음에 상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상한 자, 상처 받은 자 거기서 끝나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나는 피해자야, 나는 상처받았어. 그러면 절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 충심은 왕이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자를 말합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그래야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가장 뜨거운 예배 여러분 언제세요? 우리가 가장 힘들 때 드린 예배가 가장 뜨거운 예배잖아요. 정말 신음조차 할 수 없을 때, 삶이 다 무너졌을 때 드리던 예배가 가장 간절한 예배였고, 가장 진실한 기도였지. 여러분 그럴 때는 기도제목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삶에 다 무너졌을 때 하는 기도는 기도제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광야가 아니고서는 절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뭘요? 하나님 구원, 하나님 사랑, 하나님 성품. 그래서 우리에게 광야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니엘, 요셉을 사랑하셨습니다. 왜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갑니까? 왜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야 되죠?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당신의 명예에 먹칠을 당했습니다. 다 잃어버린 것 같았는데 아닙니다. 그 광야를 통과하고 나서 더 명예로워졌어요, 잃어버린 명예는 더 높아졌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믿음의 영웅들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임 받는 군사, 용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높아졌습니다. 광야를 통과해야 됩니다. 그런데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했는지. 나를 찬송하게 하려고 광야에 길, 사막에 강을 내겠다고 했는데 22절에 그러나 야곱아라고 나옵니다. 

 

- 그러나 야곱아!_이사야43:22-24

 

(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이사야_43:22-24

 

22절. 무슨 말인가요? 예배드리는데 거짓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재산을 우상에게 바치고 남은 것, 남은 시간, 형식적으로 가식적으로 그렇게 예배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괴롭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괴롭게 한 것이 뭐였냐면.

23절. 죄 사함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번제 양을 우상에게 가져다 바쳤습니다. 쾌락을 위해서 썼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얼마나 악한 일을 많이 했는지 하나님이 너희의 악으로, 죄악으로 내가 너무 괴로웠다라고 하나님이 표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힘들잖아요? 우리가 힘듭니다. 우리가 상처 때문에 과거의 상처 때문에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 눈물 닦고 하나님 손 잡으셔야 합니다. 정신 빠짝 차려야 합니다. 광야의 시련은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게 만듭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내면도 보게 하십니다. 광야에 안 가면 우리의 내면을 보지 못합니다. 껄끄러운 옛 사람의 모습, 껄끄러운 내 상처, 남에 대한 핑계, 남을 원망하는 마음,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 이런 상처들이죠. 누구 때문에 이런 것들. 전부 우리 내면 속에 있잖아요. 꽈리 틀고 자리 잡고 있잖아요. 그것을 광야로 가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하게 우리의 내면을 고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고 번제 양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무엇이냐? 여전히 자기들 내면에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어. 자존심. 이런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지금 바벨론, 앗수르 따라서 좋은 나라 만들어가고 있고 잘 살고 있고 부강한 나라가 되어 가고 있는데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우상을 섬겼더니 축복받네? 이런 식입니다. 그러면서 뒤로는 쾌락을 탐하고 음행하고 악한 일을 저지르고. 언제까지 우리가 광야를 통과하고 연단을 통과해야 합니까? 우리 안에 내 연약함이 녹고 사라지고 예수님이 보일 때까지. 예수님의 십자가가 마음에 품어질 때까지. 여러분 예수님은 외로움, 고독, 아픔, 슬픔, 악성 루머를 공생애 기간에 다 겪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으니까. 그 예수님이 다 겪으셨는데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도 그걸 겪어야 되지 않을까. 예수님을 따라가자. 그래서 제가 내년에 가스펠교회 2022년도 송구영신예배 내년 주제를 예수님을 본받아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벌써 내년을 준비하십니까? 그럼요. 예수님을 본받아. 그리스도를 본받아. 예수님을 본받아서 그 말은 우리도 그런 광야와 연단을 통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안에 더러운 죄가 씻기는 것에 집중해야 되고 천국의 상급, 내세를 바라보아야 우리 내면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들이 사역 잘하고 프로그램 가지고 교회 부흥시키고 겉모양 키우는데 집중하잖아요? 그러면 우리 속사람을 고치지 못합니다. 우리 내면은 오만, 교만해지기 때문에 죄악이 더 가득해집니다. 그러면 이 밖으로 펼쳐진 것들은 죄에게 다 쓰임 받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믿음을 신학적으로 증명해낼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 안에 더러운 죄를 씻기는 것에 집중해야 되고 우리가 예수님께 집중하고 천국에 집중했을 때 우리가 변화된 삶을 하나님이 당신의 구속사에 쓰신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때에. 우리의 기도를 쓰시고 삶을 쓰시고 우리의 믿음을 쓰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사역을 월권해서 우리가 전도해야지, 선교해야지, 교회 시스템 깔고 준비하고 너희들 달란트 가져와서 쓰고 이러는 동안에 우리의 내면이 죄에게 다 무너져 있는 것을 저는 너무 많이 경험했습니다. 시대마다 일어났던 전도운동들, 부흥운동들 왜 다 무너졌냐면 끝이 좋지 않냐면 그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지점을 넘어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집중하고 바라봐야 할 것은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매일, 끝까지 교회가 몇 명이 되었다, 몇 천 명이 되었다, 몇 만 명이 되었다? 상관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의 죄를 씻기는 것에 집중해야 하고 하늘 상급을 바라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끝까지 완주할 수 있고 깨끗하게 사역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게 기독교인의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필살기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시대 왜 기독교인들이 문제가 많나요? 이런 필살기가 없습니다. 우리 내면이 변화되지 않는 상태에서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많기 때문에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안에 필살기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게 필살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하나님은 우리의 돈이나 달란트를 사용하신다고 우리는 그동안 생각했습니다. 맞죠? 우리의 재능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우리의 성공한 것을 사용하신다. 그래 맞아요.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히 보면 틀린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이 돈, 재물, 달란트를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약점을 사용하셨습니다. 제가 믿음의 영웅들을 공부할 때 전부 우리의 약점을 사용하셨어요. 약할 때 강함 되시잖아요. 하나님 그것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회개하고 변화된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의 돈, 헌금, 사회적 영향력을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신 그것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불신자 가정에서 은혜를 받고 예수 믿은 분들은 불신가정이 늘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저도 불신가정이었는데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그게 전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전도하죠? 영적문제 심각하네. 나처럼 예수 믿어야 복 받지. 그건 전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완전 쓰레기입니다. 그런 자세, 태도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아직 내면이 바뀌지 않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무식하니까 교만한 것입니다. 진짜 아는 사람들은 겸손합니다. 하나님을 진짜 아는 사람들이 내 이웃과 부모형제를 전도하는데 영적문제 심각하네, 그러다가 지옥에 가, 이런 말을 어떻게 함부로 하나요? 사랑하지, 그들의 발을 씻겨주지, 겸손하게 섬기지. 왜요? 그들이 진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니까 사랑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건 방법에 있지 않습니다. 전도는 방법이 아닙니다. 여러분 수많은 이 땅에 전도전략들이 수천가지가 나왔는데 사실 다 의미 없습니다. 사랑이 전도방법입니다. 우리의 필살기가 무엇입니까? 우리 연약함입니다. 그게 다 산산이 깨지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게 강함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입니다. 광야를 통과해서 주님만이 나의 힘이시라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필살기입니다. 그거 없어서 지금 난리입니다. 세상이 지금 돈이 없어서 난리입니까? 교회가 돈이 없습니까? 건물이 없습니까? 사람이 없습니까? 그런데 왜 교회들이 개독교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까? 지금 교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교회가 부흥하면 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사데교회가 얼마나 부흥했습니까? 얼마나 돈이 많았습니까? 핍박도 없었습니다. 핍박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교회가 부흥하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야기했습니다. 너희가 생명의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죽은 자구나. 하나님은 야곱아 실패와 상처를 가진 야곱아. 이제 나를 좀 바라봐, 이스라엘아. 제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비전이 하나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비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가 개척하면서 제 동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제 목회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런 마음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진짜 건강한 교회, 개척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우리 후배들에게 믿음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 가스펠교회가 도구로 사용해달라는 그런 믿음이 저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에요? 그러다보니까 개척해서 목회를 제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도 지나고 하나님이 저를 연단하시는 것도 지나고.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다 같이. 어려운 시기도 지나가고. 우리가 지금 그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이 보석처럼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사용하실 것입니다. 제가 농담으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진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싶으시면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싶으시면 신학교 가셔서 교회 개척해보세요. 진짜 교회 개척해보세요. 저 개척해서 5년간은 이 교회바닥에 와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진짜입니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예전에 돌아다니면서 칠판에 강의했던 그 강의내용이 쓸모가 없더라고요. 진짜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그 때는 진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게 저한테는 필살기가 되는 것입니다.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신다고 합니다. 사막에 강을 내신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막 같은 우리 인생에 광야 같은 우리 인생에 길을 내시고 강을 만드신 다고 합니다. 은혜입니다. 은혜의 강, 생명의 강, 생명의 길.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을 승리하며 살아갈 힘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늘 살아갈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Ⅲ. 오늘을 승리하며 살아갈 성도의 힘_이사야43:25-28, 시편1:1-6

 

(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26)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27)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 (28)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에게 욕되게 하며 야곱이 진멸 당하도록 내어 주며 이스라엘이 비방 거리가 되게 하리라_이사야 43:25-28

 

25절. 우리는 이 25절만 붙잡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도말하신데, 우리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신데 아멘 이러고 살았는데 그 뒤가 중요합니다. 성경은 한 절, 한 절 설교하는 주제 설교하는 목사를 좋아하지 마세요. 성경 전체를 강해 해주고 설명해주는 설교를 지루하더라도 좋아하셔야 합니다. 26절에 뭐라고 기록합니까? 내 죄를 기억하지 않고 해결해주겠다. 그런데 26절에 단서, 조건이 있습니다.

26-28절. 하나님이 네 이름 기억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거 다 과거입니다. 과거에 너희 부모들, 조상들이 우상 섬기고 성소를 욕되게 했고 이스라엘이 비방거리가 되게 했다, 범죄했다. 그러니까 네가 이제는 나를 기억나게 하고 그 죄를 나한테 와서 변론하고 해결하자 이 말입니다. 그래야 너의 허물을 도말하고 네 죄를 기억하지 않을게. 오늘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는데 지금 네가 내 앞에 나아와서 회개하고 나를 창조주로 인정하고 왕으로 인정한다면 네가 전적으로 나를 의지한다면 바벨론? 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 이 말씀입니다. 새 일을 행할 거야. 저와 여러분은 오늘을 승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새 일을 행할 거야. 저와 여러분은 오늘을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의로움을 나타나시게 하시겠다고 더 이상 조상들의 죄가 너희들에게 과거의 상처를 그대로 두지 말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는 오늘을 바꾸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편 1편에 다윗이 자기 인생을 다 살고 고백한 고백입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_시편1:1-6

 

1-2절. 여기서 복은 우리가 말하는 세상적인 복이 아니라는 것을 다 배우셨죠? 이 복은 생명입니다. 히브리어로 생명입니다. 구원을 말합니다. 이 복, 천국 가는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 그거보다 큰 복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악인들의 꾀를 따르면 이 복을 받지 못합니다. 죄인들의 길에 서면 이 복음 받지 못합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으면 이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을 오만한 자리에 앉고 죄인들의 길에 서는 서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이길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무엇으로요? 말씀으로.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했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다윗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고 다윗이 어떤 믿음의 필살기로 쓰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좋습니다. 가스펠교회가 성장을 꾸준히 해왔고 앞으로도 성장하겠죠. 천명, 이천 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데 교회처럼 성장했는데 교회가 커져서 선교도 하고 세상에 선한 일도 하고 교회가 중요한 사역들도 다 했는데 성도 개개인들이 하나님과 상관없다면. 성도 개개인들이 광야를 통과해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지 못한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혹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교회가 커지고 목회를 잘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다 실패입니다. 사데 교회처럼 실패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 주일마다 수천 명, 수백 명씩 앉아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과연 개개인들은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고 있나? 그래서 이 코로나시대가 진짜 헷갈리는데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여서 많은 사역들을 할 수 있지만 우리 개개인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이 성경 한 장도 읽지 않는 시대이고 나의 내면의 죄를 해결하려고 기도도 하지 않는 시대,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을 가지고 신앙생활이라고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진리에 대해서 설명할 길도 없고, 내 삶으로 예수님 나와 동행하는 것을 전할 수 있는 그 경건의 능력도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몇 가지 점검해야 됩니다. 제일 먼저는 설교를 점검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정말 교회라는 것을 이해하고 계시다면 믿는다면 설교를 제대로 깨닫고 이해하도록 그래서 그 설교가 깨달아져서 순종이 되는 한 주를 살아야 합니다. 제가 이 설교가 너무 궁금한 것입니다. 설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청교도들 아시죠?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미국으로 넘어가 퓨리탄들 입니다. 그들이 미국에 가서 완전 성공했습니다. 미국을 완전 새롭게 건국했습니다. 교회를 짓고 병원과 학교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일했는지 청교도들은 일을 예배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 청교도인들이 세상에서 성공한 이유가 있는데 그게 바로 설교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그 설교를 어떻게 목회했냐면 청교도자들은 주일날에 설교를 한 편 합니다. 이 설교를 성도님들이 이해하고 이 설교를 순종해서 살도록 그 설교를 이해시키는 설교를 또 한 것입니다. 그게 수요예배, 성경공부, 심방입니다. 그러니깐 이 선포된 말씀을 설명하는 설교들을 주중에 또 하는 것입니다. 성경공부하고 수요예배 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보세요. 1부 예배 설교 다르고 2부 예배 다르고 저녁예배 설교 다르고 수요예배, 새벽예배, 금요예배 설교 다릅니다. 하도 많이 들어서 뭘 붙잡고 살아야 할지를 모릅니다. 이 시대가 주는 마귀가 주는 우리를 무너뜨리는 공격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설교 이것저것 막 들어서 머리는 엄청 커졌는데 몸은 요만해져서 가분수처럼 살지 마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설교 한 편을 뚫어내셔야 합니다. 뚫어야 됩니다. 영어도 잘하려면 영어 한 문장을 뚫어야 합니다. 이것저것 이 사람 저 사람 쫓아다니면 뚫리지가 않습니다. 기술도 한 가지 기술을 뚫으면 다음 기술이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조금하다가 저것 조금하다가 절대 완성된 기술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중에 한 편의 설교를 이해하고 깨닫고 그래서 그 한 편의 설교를 내가 소화하고 내 삶에 적용하고 순종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중요한 것은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말씀묵상의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여러분 아시죠? 죄가 왜 무섭냐면 죄가 무서운 것은 죄 자체가 무섭기도 하지만 죄가 우리에게 습관이 되었을 때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반복하면 습관이 되고 죄의 습관은 우리를 암흑으로 끌고 갑니다. 그래서 마약 하는 사람들 습관이 되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 다 습관입니다. 우리가 막 분노하는 것도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막 짜증내고 욕하는 것도 습관입니다. 내가 그러지 않고 싶은데 나오는 것이 습관입니다. 그게 내 인생을 나락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가정을 어렵게 하고 관계를 어렵게 하고 습관입니다. 남 비난하는 거 다 습관입니다. 남 욕하는 거 다 습관입니다. 남 탓 하는 거 다 습관입니다. 알고 보면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마음은 안 그러는데 습관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 다 습관입니다. 그게 반복하다 보니까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성공, 수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차이가 있는데 습관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여유롭게 멋지게 사는 사람들은 그 습관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나 이렇게 안 살아야지.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습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서 내가 어떤 습관을 가져야 되는지 여러분 고민하셔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오만한 자리에 가지 않으려고 거짓된 삶을 살지 않으려고 죄악 된 길에 가지 않으려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을 습관 들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는 정도가 아니라 다윗은 성경을 완전 암송하여서 읊조리고 살았고 그 읊조리면서 오는 깨달음을 또 기록하고 그 기록한 것을 후세의 자녀들에게 남기려고 곡조를 붙여서 찬송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시편입니다. 말씀을 듣고 끝난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깨달아질 때까지가 설교 한 편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는 주일에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가 완전 이해가 되고 깨달아질 때까지가 설교 한 편을 들으셨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뭐에요? 성경을 펼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경 읽는 것을 못하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우리가 제자니, 하나님께 쓰임 받니, 영광, 기업, 축복, 천국이니. 꿈도 꾸지 마세요. 성경도 읽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어요? 목수가 되어서 집을 한번 짓는다는 사람이 못질도 못하는데 페인트칠도 못하는데 예를 들어서. 농구선수가 기본기도 없는데 어떻게 프로선수가 될 수 있냐는 말입니다. 성경을 못 읽는 삶은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야 한다고 말 많이 합니다. 그게 어디서부터 시작되나요?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오늘, 오늘의 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얼마나 애써야 하는지 모릅니다. 저도요, 진짜 기도가 안 됩니다. 목사인데 기도가 너무너무 안 되어서 교회 와서 교회 바닥에 앉았는데도 핸드폰이 켜집니다. 왜? 올림픽이 있잖아요. 결과가 너무 궁금한 거야. 어제 밤에 기도하려 여기 내려와서 저도 모르게 핸드폰 보고 있더라고요. 야구 결과가 궁금하니까요. 지는 야구를 왜 봤는지 모르겠는데. 결과만 볼 걸. 그런다고 기도시간 다 놓쳐서. 잠도 못 자고. 시간은 지켜야 하니까요. 습관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이것을 하잖아요? 우리의 과거는 자연스럽게 바뀝니다. 과거가 내 힘으로 바뀝니까? 왜 과거가 안 바뀌죠? 하는 시늉만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처럼 거짓으로 예배하고 거짓으로 하는 시늉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는 매일 똑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과거를 원망하며 원망스러운 과거를 오늘 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믿었는데 변화가 안 일어난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안 믿은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저희 교회에 맨날 철야하는 청년이 한 분이 있었습니다. 맨날 교회에서 자고 철야, 기도합니다. 그러면 남들이 믿음 좋다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저희 박이석 목사님이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하셨습니다. 쟤가 직장이라도 하나 구해야 할 텐데. 제가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왜요? 목사님? 우리가 어릴 때 목사님께 물어봤습니다. 목사님이 하는 말이 쟤 밤에 교회 와서 철야기도하고 낮에 집에 가서 하루 종일 잔데.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교회가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신다고 합니다. 우리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만 생각합니다. 이 길 밖에 없어 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다릅니다. 제가 광주에 살다가 서울에 왔는데 서울 길을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9km니까 강남 어디서 보기로 했는데 30분전에 넉넉하게 도착하겠다 생각했습니다. 킬로수가 9km입니다. 30분이면 가겠지 하고 갔는데 1시간 늦었습니다. 9km를 무슨 한 시간 넘게 걸리더라고요. 차가 안 가고 서있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입니다. 차가 왜 서있지? 왜 안가지? 서울에 와서 1년간 얼마나 약속을 어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려고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저희 와이프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약속을 지켜서 갑니다. 왜냐하면 와이프는 서울 골목길, 뒷길을 다 압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운전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길을 잘 아는지 저는 이 길과 이 길이 연결된다는 것을 이해를 못하는데 와이프는 이 길과 이 길이 연결된다는 것을 다 압니다. 내비게이션 안 찍고 다닙니다. 저는 길을 모릅니다. 막히는데 이 길밖에 없겠지 하고 가는 것입니다. 아, 우리가 생각하는 길은 이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길을 다르구나. 다 알고 계시구나. 우리는 이 길로 가면 패배자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이 패배자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막으로 이끄시는데 그게 실패했다고 생각하는데 실패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를 연단하시고 바꾸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폭풍우를 우리 인생에 몰아치게 하는 것입니다. 전쟁역사책을 읽었더니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인류 역사를 담은 책이 있습니다. 제가 왜 그런 책을 읽는지는 모르겠는데 읽었더니 하나 깨달음이 있습니다. 모든 전투에서 첫 번째 전투를 승리하는 나라, 팀이 결과적으로 다 진다고 합니다. 처음 들어보셨죠? 첫 전투에서 진 나라들이 거의 이긴다고 합니다. 일본이 첫 전투에서 세계대전에서 이겼습니다. 미국이 완전 졌습니다. 미국이 열 받아서 기술 개발하고 원자탄 개발하고 해군 배를 개발하고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우리는 처음 이기면 다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처음 이기면 무슨 마음이 드나요? 교만한 마음이 듭니다. 됐다, 이겼다. 그러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 전투에서 지고 나서 다들 정신 차린다는 것입니다. 전략도 고치고 저 팀은 무기가 강력한데 우리는 무기가 약하네, 무기도 새로 개발하고. 그래서 큰 전쟁에서 결과적으로 승리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책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광야에 가는 것이 실패가 아니구나. 지면서 실력도 키우는 것이고 패배하면서 전략, 무기도 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사람, 기독교인의 필살기, 믿음 그런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_예레미야 33:3

 

개역개정말고 다른 성경에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신다고 합니다. 다음 주 말씀사경회 놓치지 마세요. 우리는 오늘을 승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인이라고 대충 막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믿음의 삶을 사는 것 그때라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 선교한다고 막 살면 안 됩니다. 함부로 살면 안 됩니다.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 믿음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시고 새 일을 행하신다고 합니다. 그것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가스펠교회에 새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광야에 길을 내실 것을 믿고 사막에 강을 내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게 부흥이잖아요. 우리 자녀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고 뜨거운 은혜가 우리 교회에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해야 합니다. 믿기 때문에 십자가 보혈로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될 건데 그것을 믿기 때문에 성경도 펼치는 것입니다. 그런 기적들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무릎 꿇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광야가 저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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